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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지식산업사 2011

‘해방세대’ 역사학자의 우공이산

 

 

정병욱 鄭昞旭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jungbw@korea.ac.kr

 

 

13728‘회고록’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인생 이야기가 아니다. 1부는 농업사 연구의 배경, 체계구상, 자료와 집필과정에 관한 보고서이고, 2부는 1960년대 문화학술운동의 일환으로 강의했던 한국 근대사학사를 정리한 것이다. 1부와 2부는 ‘표리’를 이룬다고 한다. 자신의 농업사 연구가 한국 사학사(史學史)라는 좌표축에서 이해되길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겉표지 뒷면에 쓰인 대로 김용섭(金容燮) 사학의 ‘입문서’ ‘안내서’란 설명이 제격이다.

50여년간 농업사라는 한 우물을 판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를 안내하는 책을 본인이 직접 쓴 것도 드문 일이다. 보통 자기 연구를 자신이 해설하는 경우에는 강조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평자는 그 강조점이나 이전 서술과의 차이점을 알아차릴 정도로 저자나 그 분야에 정통하지 못하다. 경제사를 연구했지만 주된 관심사는 식민지 금융이라 농업은 문외한에 가깝다. 농업 관련 연구사를 정리할 때면 저자의 글을 읽었고 농업금융과 식민지 지주제에 관해 글을 쓰면서 저자의 책을 인용한 적은 있지만, 감사해야 할 따름이지 이렇게 나설 일은 아니다. 만용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이번 기회에 스승 세대의 삶과 학문을 거울삼아 우리 세대의 과제를 고민해보자.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해방세대’로서의 자기규정이다. 책의 부제도 ‘해방세대 학자의 역사연구 역사강의’다. 김용섭은 1931년생으로 1951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자기보다 앞선 세대를 일제하 대학에서 공부한 ‘일제하세대’, 일제 말년에 학업을 중단당했다가 해방후 복귀하여 학업을 마친 ‘학병세대’로 구분하면서, 자신은 ‘전쟁’이 아니라 ‘해방’세대라 한다. 더욱이 ‘학병세대’가 ‘해방(또는 광복) 이후 1세대 학자’라고 불리는 상황을 감안하면 강한 목적과 대결 의식이 느껴진다. 이 책, 아니 그의 삶을 관통하는 중심 서사는 식민주의 역사학 청산을 둘러싼 앞선 세대와의 대결이다. 청산과 자주적인 역사학 재건은 “악전고투”였고 세대간의 갈등으로 직장을 옮겨야 했지만, 그는 식민주의 역사학이 주장하는 정체론(停滯論)을 타파하기 위해 한평생 농업사의 체계를 세우고 그 발전의 흐름을 규명해왔다.

그의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서는 실증과 이론 양면에서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안하든 이제 어느 누구도 우리 역사를 보는 데 내적 흐름을 경시하지 못한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1950~60년대까지 정체론, 타율론이 대세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반세기 만에 사학사의 흐름이 바뀌었고, 그 시작과 바탕이 저자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앞에 큰 산이 가로놓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 5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해는 서산에 저물어가는 데 저의 작업은 겨우 그 산의 한모퉁이를 답사하는 데 그쳤습니다.”(100면) 평자에겐 우공이산(愚公移山)으로 보인다.

‘해방세대’란 규정은 시대적 맥락 속에서 자신을 봐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면 ‘국가’에 대한 생각과 자세가 요즘 세대와 다르다는 점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국가의 대표성, 통합성, 중요성을 훨씬 더 강조한다. 근대나 발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해방세대’를 포함하여 앞선 세대가 근대, 국가, 발전을 얘기한다고 해서 그 단어 뒤에 ‘지상주의’를 붙여 한통속으로 치부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생산적 논의도 아니다. 우리가 탈근대, 지역, 환경에 대해 토론을 벌이듯 그들에게 근대, 국가, 발전은 사회구성원의 좀더 나은 삶을 위한 화두였고, 이를 둘러싼 상호경쟁과 대립도 뚜렷했다. 어떤 면에서 지금의 논의보다 덜 공허하고 더 치열한 면도 있다. 여전히 다수의 삶에는 ‘탈국가’보다는 ‘좋은 국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다른 세대의 시대적 맥락을 이해하는 일은 자신의 세대를 되돌아보는 길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어떤 세대인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온 평자는 민주화세대라 할 수 있다. 역사학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화세대가 역사학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민주화가 왕이나 특정층 중심으로 회전했던 세계를 민(民)이나 뭇사람 중심으로 회전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역사학에서 민주화는 서술의 주어를 왕에서 민으로 바꾸는 것이리라. 몇백년 사이에 세상은 그렇게 변화해왔고, 역사학 또한 그래왔다. 물론 주체의 전환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최근 복지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아직도 평등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 정착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주체의 전환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 왕의 이름을 대체했던 것은 민족, 국민이나 민중 같은 구조적인 집단주체였으며, 최근에 와서 조금씩 무명의 뭇사람들이 옛날 왕들처럼 고유명을 얻게 되었고, 개별성은 차이로 존중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경험을 중시하는 생활사, 구술사 등의 출현이 이를 반영한다.

주체의 전환이란 과제에 비추어볼 때 저자 또는 ‘해방세대’의 ‘내재적 발전론’에서 ‘모순의 내재적 발전’이란 측면을 계승하여 좀더 궁구할 필요가 있다. ‘내재적 발전’의 ‘발전’은 경제발전만이 아니라 모순의 형성과 심화도 포함한다. 주지하다시피 저자의 연구는 ‘전봉준 공초(供草)’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처럼 사회모순이 집약되어 그 갈등이 민족 내부에서 전쟁으로까지 확산되었던 역사적 사례로 전봉준과 농민전쟁을 주목한 것이다. 물론 그후로 모순의 배경인 농업 실태를 파악하느라, 주체(농민)와 그 무대(농촌)에서 멀어진 감이 없진 않으나 고민의 출발점은 모순이었다. 우리 세대의 주체 연구는 기존의 정치와 운동 중심을 비판하면서 일상과 생활로 들어갔으나, 그 자체로 대상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 전망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상과 생활에 즉하여 주체를 둘러싼 다양한 층위의 모순구조를 파악하고 그 형성과 변화 과정을 밝히는 것이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앞선 세대와 대결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의 스승인 신석호(申奭鎬)란 존재다. 저자에 따르면 ‘일제하세대’로서 실증주의자였던 그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친일한 것을 속죄하는 뜻으로 개인의 연구는 포기하고 후진을 위한 뒷바라지로 남은 생을 보냈다. 뒷바라지란 연구조성사업을 말한다. 국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사료를 수집하고 자료집을 내며, 그곳에 신진학자들이 모여 훈련받고 연구할 수 있게 하였다. 그의 너른 품 안에서 김용섭, 강만길(姜萬吉)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일부 앞선 세대의 자기비판과 기반축적이 없었다면 ‘해방세대’의 앞길은 더 험난했을 거다.

회고록 전반이 건조한 편이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장면도 적지 않다. 예를 들자면 일제시기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고민을 부여잡고 일본에서 옛 조국의 왕자(영친왕)를 만났을 때 느낀 절망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들 조선사람은 한없이 작아져 땅 밑으로 꺼지고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기분.” 저자는 만주 장춘에서 독립운동 무장투쟁 얘기를 듣고 나서야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해방 이후 역사청산 과정에서 벌어진 세대간의 갈등은 탄식을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60년대말 70년대초 ‘학병세대’가 저자에게 건넨 “이제 민족사학 그만 하자”는 말이 압권이다. 논문 대량생산체제에 시달리는 세대로서 스승 세대의 연구환경이 부럽기도 했다. “1년에 두편의 논문을 써야 했으므로 힘들었다”는 구절에 오랫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앞으로 ‘김용섭과 그의 시대’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