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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홍성우·한인섭 『인권변론 한 시대: 홍성우 변호사의 증언』, 경인문화사 2011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간 인권변호사
신홍범 愼洪範
언론인 newhb7@hanmail.net
유신체제가 시작된 1972년부터 노태우정권이 끝나기까지의 약 20년 동안을 우리는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권위주의시대’ ‘군사독재시대’라 부르기도 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하도 많이 잡아들여 ‘감옥의 전성시대’ ‘암흑시대’ ‘야만의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이 어두운 시대를 돌아보는 회고록이나 실록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아주 ‘특별’하고도 ‘탁월’한 증언록 『인권변론 한 시대: 홍성우 변호사의 증언』이 출간되었다. 지난날 수많은 양심수들과 함께 법정에서 싸웠던 인권변호사가 당시의 변론기록과 체험을 토대로 그 시대의 진실을 ‘육성’으로 증언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책의 발간과 함께, 수십년 동안 간직해온 1207종, 4만 6천쪽의 방대한 민주화운동 사건 변론기록을 전산화하여 귀중한 역사적 사료로 남겼다는 점도 특별하다.
홍성우(洪性宇) 변호사는 70~80년대의 중요한 민주화운동 사건치고 변론을 맡지 않은 것이 없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도 민청학련 사건을 비롯한 48건의 큰 ‘시국사건’을 골라 그 시대의 실상과 감춰졌던 뒷이야기들을 밝힌다. 당시엔 조그만 시국사건도 거의 모두 법정에 세워졌으므로, 그때의 변론기록은 우리의 민주화운동사이자 학생운동사이며 노동운동사이고 사법의 역사이기도 하다.
홍성우 변호사는 대담자인 서울대 법대의 한인섭(韓寅燮) 교수와 함께 당시의 재판기록을 다시 읽고 검증한 후 여기에 당시의 시대상황을 결합하여 어두웠던 우리 현대사를 기록영화처럼 ‘탁월하게’ 재현시켰다.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많은 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사건에 얽힌 비화까지 소개되어, 마치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울어야 할 때 웃는 것이 비극이고 웃어야 할 때 우는 것이 희극이라더니, 우리는 당시의 비참한 역사를 대하면서도 너무나 기가 막히고 어이없어서 웃게 된다.
‘긴급조치를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긴급조치’ 위반이 되는 괴물 같은 법률, 작가의 머릿속에 든 작품 구상마저 끄집어내어 공산주의자로 몰아 죽이려는 검찰, 양심선언을 통해 ‘맑스가 꽃을 꽃이라고 불렀다 해서 왜 내가 꽃을 꽃이라고 말해서는 안되는가’라고 항변하는 시인, 문학작품인 시(詩)를 ‘사실왜곡죄’로 법정에 세우는 검사, ‘붉은 꽃을 흰 꽃이라고 말했다면 잘못이지만 아름다운 꽃을 아름답다고 말한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법정에서 외치는 소설가, 생존을 위해 노동운동을 했다고 똥물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는 여성노동자, 성고문을 당하는 여대생 등 문명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왔는지 잘 보여준다.
고문으로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수사기관, 고문으로 조작한 사실을 그대로 기소하는 검사, 고문 사실을 알면서도 검찰의 요구대로 공소장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판결을 내리는 판사…… 이런 반인륜적이고 야만적인 사법절차가 그 시대의 많은 시국사건에서 되풀이되었다. 우리는 어째서 그 많은 판사들 가운데 자신의 양심에 따라 소신있는 판결을 내리고 스스로 옷을 벗은 용기있는 법관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이 책은 지난날의 검찰과 법원에 대한 준엄한 고발장이다. 사법당국과 더불어 권력의 주문대로 양심수들을 범법자, 빨갱이로 낙인찍은 언론 또한 그 시대 악(惡)의 공범자들임을 우리는 본다. 권력이 ‘예스’를 강요할 때 침묵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정치적 입장인데, 당시의 언론은 그것조차 지키지 못했다.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는 지식인 집단들이 저지른 이런 행위, 그것은 ‘과오’인가 ‘범죄’인가? 과오라면 반성의 대상이지만 범죄라면 처벌의 대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나찌에서 해방된 직후의 프랑스와, ‘진실’과 ‘용서’를 맞바꾸어 과거사를 정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는 격렬한 토론과 논쟁을 거쳐, 나찌 하에서 조국과 정의를 저버린 사람들의 책임을 준엄하게 물었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지식인들의 죄를 엄하게 물었다. 베르꼬르의 말대로 ‘카인의 죄는 아벨에 그치지만 지식인의 죄는 무한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나라가 고통에 찬 끔찍한 시대를 겪었다면 진지한 성찰을 거쳐 그 시대를 ‘정신적’으로라도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한편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감동은 인권변호사로서 가시밭길을 걸어온 홍성우 변호사의 고난에 찬 삶이다. 세차례나 수사기관에 잡혀가고 안기부에 끌려가 휴업신고서를 쓰도록 강요당하며 집안에 협박장이 날아드는데도, 남들이 두려워 회피하는 ‘위험한 사건’들을 도맡아 굽힘없이 험난한 길을 걸어갔다. 경찰이 사건 의뢰인들을 협박하는 일까지 벌어져 일반사건은 맡을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 빚을 지고 사무실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혹독한 세월을 10년 이상 견뎌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이 남몰래 그를 도운 미담도 이 책에서 공개되었다.
홍성우 변호사는 양심수의 소신을 지켜주고 그 의미를 세상에 드러내어 역사에 기록하게 하는 것이 변호사가 할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양심수들과 함께 싸우면서 역사를 만들고 그것을 기록했다. 가족조차 만날 수 없는 고립무원의 피고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형, 오빠, 아버지처럼 감옥을 찾아다녔다. 면회를 통해 감옥에 갇힌 연인들의 사랑을 전해주는 메씬저 역할도 하고 그 결혼의 주례를 서기도 했다.
홍성우 변호사는 사악한 ‘실정법’에 맞서 ‘양심의 법’을 가지고 싸웠다. 독재의 법정에서는 졌지만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겼다. 정성을 쏟아부은 변론요지서와 항소이유서 등 그 옛날의 변론기록에 힘입어 지난날의 유죄판결이 오늘날 잇따라 무죄로 바뀌고 있다. 이돈명(李敦明), 한승헌(韓勝憲), 조준희(趙準熙), 황인철(黃仁喆) 변호사 등 인권변론 선구자들과 함께 어렵게 일구어낸 맑은 샘물이 ‘정의실천법조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정의의 강줄기가 되어 흐르고 있다.
이 책에 나타나 있는 오늘의 홍성우 변호사는 그야말로 ‘자유인’이다. 모든 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인이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유인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다. 인생을 부끄럽지 않게 산 사람만이, 대의를 위해, 남을 위해 자신을 바쳐 고결하게 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다. 이 책은 법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넘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참으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은 무엇인가를 깨우쳐준다. 이 책이 많은 대학에서 법학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교재로 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