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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돌베개 2011

분노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목수정 睦秀貞

작가 bastille@naver.com

 

 

14371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스테판 에셀(Stéphane Hessel)의 『분노하라』(Indignez-vous!)는 전세계에 분노 씬드롬을 촉발시킨 불꽃 같은 책이다. ‘나는 계급투쟁중’이라는 시뻘건 슬로건이 거리에 차고 넘치던 연금개혁반대 파업과 집회들. 그 흥분된 저항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개악을 강행하던 싸르꼬지 정권. 허탈해진 프랑스인들 가슴에 분노가 일렁일 무렵 출간된 이 소책자는 메마른 들에 번지기 시작한 불처럼, 프랑스를 넘어 전세계를 분노 열풍으로 물들이고, 이제 한국에 당도했다. 살인적인 등록금을 향해 드디어 그간 학생들이 삭여왔던 분노를 조직하고, 김진숙의 외로운 싸움에 희망버스들이 남쪽으로 밀려들며 다시 뜨거워지는 한반도 남쪽 땅에.

한권의 책이 1년도 안돼서 200만부가 팔리는 일은 분명 사회적 현상이다. 프랑스처럼 모두 저 잘난 맛에 사는 동네에서는 더욱. 최고권력자를 향한 분노가 들끓고 있던 프랑스 사회가 이 세기의 베스트쎌러를 만들어낸 첫 공신이라면, 두번째는 물론 저자 자신일 것이다.

스테판 에셀을 수식하는 첫 단어는 레지스땅스다. 1917년생인 그는 젊은 시절 나찌라는 야만에 저항하기 위해 레지스땅스 활동에 투신했다. 프랑스는 승리했고, 레지스땅스 세력은 전후 새로운 프랑스 건설의 주역이 된다. 거기서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성에 힘을 보탠다. 참담한 암흑속에서 마침내 밝은 빛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이끌어낸 그 힘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인권을 천명함으로써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의 분노는 그를 위대한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했고, 진보로 향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했다. 야만에 저항한 숭고한 용기와 이후에 그가 누렸을 거대한 환희. 이 모두는 거대한 ‘분노’가 낳은 결과들인 것이다.

싸르꼬지가 붕괴를 꾀하는 국민연금제도를 비롯하여, “모든 시민에게 노동을 통해 인간다운 생존의 방편을 보장해주는 사회보장제도, 각종 에너지원, 전기와 가스, 탄전, 거대 은행들의 국영화”는 스테판 에셀 인생의 본류인 레지스땅스들의 구상에서 비롯되었다. 그와 동지들이 젊음을 바쳐 구축해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초석들이 60여년이 지난 지금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목도하는 에셀은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고 다음 세대에 주문한다.

그의 글은 원망이나 찬탄, 절규가 아니다. 그의 20대 때 나찌가 분노의 대상이었듯이, 지금 모두가 함께 분노해야 하는 주된 대상은 국가 최고권력까지 장악한 금권의 충복들이라고 단호히 지목하면서도, 차분하고 마냥 여유롭다. 한세기 가까이 살아온 자의 경험으로, 결국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단지 지금, 반죽을 부풀릴 몇개의 누룩이 필요할 뿐이라는 듯. 분노한 선동가의 표정에서 흔히 보기 힘든 그 온화한 여유의 배경은 돌베개에서 나온 한국어판에서 찾아볼 수있다.

한국어판엔 저자와의 서면 인터뷰가 본문의 멋진 골격에 예기치 않은 풍성한 살을 붙여놓고 있다. 거침없이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이 인터뷰는 프랑수와 트뤼포의 영화 「쥘과 짐」에서 장 모로가 연기했던, 자유의 화신 같은 여인의 실제 주인공인 어머니에 대한 얘기로 시작된다. 그녀는 에셀에게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행복해야 한다”고 의무라도 지우듯이 반복해서 말했고, 그는 그래서 “행복해지려고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다(54면). 스스로 지성과 행복을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 어머니로부터 받은 평생의 사랑과 행복, 자유에 대한 가르침은 그의 삶의 원천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육체의 놀라운 강건함의 비결로,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능력’과 평생 누려왔던 ‘기쁨’을 꼽는다. 그 어떤 힘든 순간에도, 어머니가 가르쳐준 행복해야 할 의무와 행복을 최대한 누리는 능력은 그를 지탱해주었고 또다른 투쟁에 그를 나서게 했다. 자신이 행복할 수 없도록 방해하던 세상을 향해 그는 분노했고, 그 분노를 통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었으며, 자신이 누린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확대하기 위해, 아흔셋의 나이에 여전히 운동가, 집필가로 싱싱한 삶의 전성기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1945년에 다가온 우리의 해방은 프랑스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김구를 중심으로 임시정부가 준비하던 대대적인 무력저항은 생각보다 이른 일본의 항복으로 무산되고, 우린 자력으로 해방을 쟁취한 자들이 누리는 거대한 자부심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프랑스 레지스땅스들처럼, 해방후의 아름다운 조국을 꿈꾸고 예비하던 항일독립운동가들은 새로운 사회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이승만이 친일세력과 손잡아 불온한 역사를 엮어간다. 우리 역사의 가장 치욕스럽던 시절이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크게 도약할 수 있던 기회는 그렇게 해서 수포로 돌아간다. “친일을 하면 삼대가 잘살고,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가난하다”는 말이 입증된 것이다. 공적인 분노가 충전해주는 에너지로 암흑의 시대를 극복했던 그 찬란한 기억의 산증인 에셀은 좌, 우 어느 쪽에 있는 자도 부인할 수 없는 영광스런 승리의 기억을 프랑스인들에게 일깨우며 당당하게 분노할 것을 주문하나, 분노가 쟁취해낸 승리의 기억이 상대적으로 얇은 우리는 그 주문에 즉각 반응하기를 주저하는 걸까.

과거 프랑스와 한국 두 나라가 각각 독일 나찌즘과 일제에 맞서 싸웠다면, 지금 두 사회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짓밟고, 신자유주의를 유일한 원칙으로 신봉하는 한줌의 지배계급과 대적해 싸워야 한다. 이 두 나라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지배하에 신음하는 거의 모든 나라가 같은 전선에 놓여 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닫힌 세계, 아랍권에서의 연이은 혁명들은 그 신호탄이다.

분노를 지니고 사는 것은 매우 고달픈 일이다. 그러기에 종교들은 쉽게 용서를 권한다. 그럼으로써 위장된 평화는 세상을 덮을지언정 정의는 불투명해지며, 불의는 멈추지 않는다. 공적인 분노. 모두가 함께 갖는 정당한 분노는 세상을 진보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동력이었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더 큰 기쁨을 얻기 위해 분노하라고, 에셀은 매우 희망적인 제안을 더한다. 승리의 그날까지 오늘의 삶을 희생시키거나 기쁨을 유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삶의 기쁨을 먼저 누리고 그 기쁨을 더 확대하기 위해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분노하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의 말처럼, 내가 행복해야만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에셀은 분노와 함께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었던 기쁨을 위한 실천을 소개한다. 마음과 정신을 지속적으로 계발하기 위해, 에셀은 평생 좋은 시를 읽고 암송해왔다. 게슈타포 수용소에 갇혔을 때도 셰익스피어, 괴테의 시에 담긴 아름다움이 그를 기쁨의 세계로 안내했고, 상상력을 북돋기 위해서도 시를 항상 곁에 두어왔다.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가 찾아낸 주옥같은 비결들. 그것은 분노, 자유, 시, 기쁨, 사랑이다. 이토록 충만한 인생이 있을 수 있다는 데서 큰 감동을 주는 사람, 스테판 에셀이 유언처럼 건네는 『분노하라』는 비틀거리는 혁명의 나라에서 나옴 직한 21세기 프랑스 버전의 행복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