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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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생태적인 삶과 인간다운 삶

 

 

박대우 朴大雨

편집자, 창비 인문사회출판부 pelle@changbi.com

 

 

44125년 전 아내와 내가 신혼생활을 시작한 곳은 인천의 한 변두리 양옥집이었다. 집을 보러 간 첫날,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현관 양옆에 뿌리를 내린 포도나무가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30여년 전 그 집을 직접 짓고 살아온 주인 내외는 세입자를 반가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곳을 떠나는 게 못내 서운한 듯했다. 전세계약서에 날인을 하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계약서를 잠깐 달라시더니 이 녀석들을 잘 보살펴달라며 좁디좁은 여백을 채워갔다. 배나무, 감나무, 사과나무, 매실나무, 포도나무, 단풍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석류나무……

얼마 뒤 장모님이 오셔서는, 뒤에는 산(수봉산) 앞에는 물(경인고속도로)이니 풍수가 좋고 마당에 있는 과실수들을 잘 가꾸면 과일 사먹을 일도 없을 것 같다며 덕담을 해주셨다. 이웃집들이 사방을 막아선 구조였지만, 기울어진 언덕을 깎아 터를 잡은 덕에 마당으로는 볕이 꽤 오래 머물렀다. 이렇듯 전체적인 조감 면에서나 내부조성 면에서나, 전통적 생태 개념으로 보았을 때 도시에서 이처럼 잘 갖춰진 집을 찾긴 어려웠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집 가꾸기에 들어갔다. 당시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은 제목도 거창하게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법’. 나무 그늘을 피해 창고건물 위에는 채소를 가꿀 화분을 옮겨놓았고, 마당에는 태양광 집열판이 부착된 소형 조명등을 꽂아두었다. 해가 지면 저절로 켜지는 게 신기했다. 그 은은한 불빛이 약간 으스스하다 싶기도 했는데, 마침 동네에서 진돗개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중 잘 뛰어다니는 놈을 골라 들여놓고 나니 왠지 무서움도 덜했다.

집 내부는 마루의 아랫목 벽면에 책장을 놓고 윗목 구석에 냉장고를 놓는 정도로 단조롭게 꾸몄다. 텔레비전은 처음부터 들여놓지 않았다. 백구가 한살이 될 때까지 마루에서 뒤엉켜 놀며 키웠으니 저녁마다 심심할 틈이 없었다. 에어컨도 들여놓지 않았지만 손님들이 찾아올 적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듬해에 장모님에게서 얻었다. 옛날집이라 습기와 곰팡이도 많았고 기왕에 들여놓았으니 잘 써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되도록 쓰지 않고 대신 숯을 잔뜩 사서 구석마다 놓아두었다. 숯은 제습과 탈취에 좋아 여전히 잘 쓰고 있다.

지은 지 오래된 집이어서 난감한 사건들도 있었다. 어느날 밤 천장에서 쥐들이 살금살금 다니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침에 일어나니 이부자리에서 개미들이 줄을 짓고 있었을 때, 곰팡이때를 아무리 지워도 그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을 때,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결국엔 백구가 포도나무 줄기를 입으로 끊어냈을 때…… 천연덕스럽게 이게 바로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고백하는 집 앞에서 우리는 대책을 강구하며 전전긍긍했다. (저 원주민들과의 격전에 대해서는 비공개로 해두고 싶다. 만약 해충에게 기록문자가 있다면 우리 집에서 벌어진 전쟁과 학살에 대한 기록도 한줄 들어갈 법하다.)

1년 전 직장을 파주로 옮기면서 그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자 한편으론 아쉽고 다른 한편으론 후련했다. 이삿짐 정리가 늦어져 오후 늦게야 마당을 치우기 시작했다. 오래 묵혀두려고 했던 낙엽더미를 가마니째로 버릴 때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조명등의 빛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제는 곰팡이와 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파주에 와서는 지역 내에 생태 관련 모임이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볼 기회가 종종 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좀 비싸더라도 땅과 여러 생명들을 살리고 농민의 건강도 보호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을 사먹거나 직접 기르고(화학비료 없는 농사의 실천), 육류소비를 점차 줄이고 행여 먹더라도 방목해서 기르는 고기를 택하며(동물권 보호), 자가용 운전을 되도록 줄이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화석에너지 줄이기) 식이다. 우리 또한 시에서 주관하는 주말농장 땅 15m2(약 5평)를 1년 임대료가 5000원도 안되게 얻어 주말마다 즐겨 찾는다. 올봄엔 감자를 키워 수확했고, 가을엔 배추를 심어볼 생각이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는 한때 공동묘짓길에서 지갑을 잃어버리고 논두렁에 빠지는 등 사고가 많아 중단하긴 했지만 올가을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아직 설익은 계획이지만 언젠가 실현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다. 화석에너지를 쓰지 않는 대신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얼마 전, 아파트 베란다를 개조해 태양열 집열판을 들여놓고 전기를 생산할 순 없을까 해서 업체를 찾아 문의해보았다. 집열판 가격보다 설치비가 상당하다는 점, 남의 집에 세를 사는 경우엔 주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 난관이었다.

자동차는 쓰지 말까 고민하다가도 그 편리함 때문에 계속 망설이게 되는 애증덩어리다. 요즘 길에서 종종 보이는 외제 친환경자동차에도 관심이 가지만, 감히 엄두도 못 낼 높은 가격이다. 대신 5년 전부터 미국에서부터 상용화된 폐식용유 연료변환장치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당장은 한 개인이 디젤유 정제회사와 거래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관심있는 동네사람들과 힘을 모아 지역 차원에서 실현해볼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올해 3월 후꾸시마 대지진과 우리나라 집중호우를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 마음이 조금씩 조급해지기도 한다. ‘이건 아무래도 오존층을 파괴해서 북극의 얼음이 기하급수적으로 사라져가기 때문일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그 근본적인 원인인 냉매(HCFC)를 잔뜩 안고 있는 저 에어컨을 꺼야겠다 싶기도 하지만, 더위에 금세 지치는 우리 인간의 생태도 무시할 수 없는 법. 망설임 끝에 이렇게 글로만 적어본다.

누군가 말했듯 저 바다와 구름은 정녕 추억이 없는 것일까. 지진과 해일과 비바람은 수천년간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집과 길을 순식간에 휘몰아갔다. 중계방송을 돌려보며 나는 자연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맹목적 사랑과 배신의 사건사고를 되새겨보았다. 그러면서 내 조급함을 다스려보기도 한다. 그래, 도대체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뻔뻔할 정도로 대담하게 일을 벌이는 저 자연 앞에서 인간이 뭔가를 만들어 저들을 막아보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