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2011년 6월 10일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는 염무웅 한기욱(문학평론가), 박성우(시인)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여 제29회 신동엽창작상 심사를 시작했다. 신동엽창작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작가의 최근 3년간 한국어로 된 문학적 성취들을 심사대상으로 한다. 심사위원들은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의 추천목록을 참조하여 한달간 작품을 검토하고, 다음의 시집 3권, 소설집 3권으로 심사대상을 압축했다.
고영민 『공손한 손』, 박형권 『우두커니』,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상 시), 김미월 『여덟번째 방』, 김사과 『02』, 김이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상 소설).
심사위원들은 7월 15일 모임에서 이상의 6권을 검토한 끝에, 노동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과 젊은 세대의 삶과 고뇌를 심도있게 탐구한 김미월 장편소설 『여덟번째 방』을 올해 신동엽창작상의 공동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심사평
박성우(朴城佑) 시인
뭐랄까 곤혹스러운 즐거움이었다. 빼어난 개성과 역량 앞에서 여러번 무릎을 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려 목덜미를 풀어줘야 했다. 심지어는 만만치 않은 작품들 앞에서 풀이 죽기도 했으나,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취합되는 과정에서 큰 이견이 나오지 않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6권의 심사대상작 중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박형권 시집 『우두커니』와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김미월 장편 『여덟번째 방』이었다. 이 중에서 어느 한 작품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박형권의 시는 낡은 것들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농촌과 어촌, 그리고 도심 변두리에 이르기까지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얘기를 능청스럽게 들려준다. 시의 전개가 다소 거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을 딱히 흠으로 잡아내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다만, 다른 심사대상자들에 비해 등단시기가 늦으므로 다음에 또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송경동의 시는 한국문단에서 폐기한 지 오래인 ‘현장’에서 노동시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고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쓰라린 얘기를 치열하게 들려주고 있는 그의 작품은 묵직한 감동을 주며 읽는 이를 반성에 이르게까지 한다. 무엇보다 그의 시에서는 현 시대 자본의 지배에 정면대결하는 결기가 느껴진다. 민중을 향한 애정과 연대를 치열한 자기성찰과 결합하고 있는 목소리는 우리 시대 노동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다만 목소리가 너무 큰 몇몇 시편들에서는 오히려 감정을 좀더 빼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보기 드물게 귀한 시집임에는 틀림없다.
김미월의 장편은 20대와 30대 젊은 세대의 힘겨운 삶과 고뇌를 심도있게 탐구하면서도 경쾌한 긍정의 세계관을 제시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피폐하고 냉혹한 현실세계의 아픔을 발랄하고도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보편적인 독자 중 한사람인 나를 집요하게 끌어당기고도 남았다. 무거운 주제의식을 결코 가볍지 않은 명랑함으로 때론 감동으로 보여주는 이 소설은 한마디로 황폐한 세상조차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심 끝에 공동수상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두 작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염무웅(廉武雄) 문학평론가
최종심에 오른 세편의 소설(집)은 각각의 특색과 장점을 갖고 있어서, 심사의 과정은 대상작에 대해 논의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심사위원인 나 자신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라는 두려움을 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심사는, 다른 문학상 심사도 대체로 그럴지 모르지만, 우열을 따지는 평가의 문제라기보다 어느정도 선택의 문제였다.
소설의 경우 나는 처음부터 김미월의 『여덟번째 방』을 지지하기로 작심하고 최종심 회의에 나갔는데, 나보다 최근작들에 대해 독서량이 훨씬 많고 실험적 내지 전위적인 문학에 대해 더 적극적일 것으로 짐작되는 다른 두 심사위원도 선선히 내 의견에 동의해주어서, 나로서는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여덟번째 방에서 결함이라 할 만한 요소를 지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영대가 ‘잠만 자는’ 싸구려 지하방에 세들어 살아가는 이야기(A)와 그전까지 그 방에 살던 여자가 이사가면서 실수로 남겨놓은 수기 속의 이야기(B)가 A-B-A-B로 교차되는 일종의 액자소설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그 구조가 소설전개를 위해 억지로 짜낸 작위로 느껴진다. 내 생각에 영대와 지영은 다른 개성을 지닌 두 인격체라기보다 똑같은 감성을 지니고 똑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일한 인물의 ‘남녀로 분리된 쌍생아’, 즉 작가 자신과 너무도 닮은 두 분신인 것 같다. 그 주인공들을 둘러싼 조역들도 엇비슷해서 때로는 서로 구별이 안된다.
이런 형식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우리 시대─여기서 ‘우리 시대’란 IMF 금융위기 이후 시대 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적 고민에 육박하고자 하는 진지한 문학적 천착이며 이 시대가 낳은 헐벗은 청춘들에 대한 공감어린 소설적 성찰이다. 암울한 현실을 다루었으되 시종 밝게 읽힌다는 것도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이다.
시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의 시인 송경동은 박노해・백무산을 잇는 한국 노동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온몸을 다한 치열한 실천의 면에서, 좀 묘한 얘기지만, 이미 신동엽창작상 수상의 경계선을 통과해 지나간 듯한 느낌도 준다. 물론 그의 이번 시집에 수상의 영예가 돌아가는 데는 이의가 없다. 『우두커니』의 시인 박형권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뒤늦게 등단해 3년 만에 첫시집을 출간한 ‘늙은 신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늙지 않았을뿐더러 단순히 신인의 것도 아니다. 그가 다루는 세계는 왕년의 소설가 이문구, 근년의 소설가 한창훈을 연상케 하는 농어촌 현실인데,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간 이 주변지대의 고달픈 삶을 노래하는 그의 언어운용 솜씨는 미묘하면서 은근하고 구수하면서도 능숙한 데가 있다. 한마디로 그의 시집은 ‘농촌시’에서도 문학적 진화가 그치지 않고 있음을 실증하는 하나의 유력한 증거다. 그러나 시집 뒤로 갈수록 시적 긴장이 처지고 빈번한 성적 이미지들도 본연의 건강성을 잃어가는 듯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될 만하다.
이상의 작품들을 두고 여러모로 논의한 끝에 우리 세사람은 송경동의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과 김미월의 장편소설 『여덟번째 방』을 공동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기꺼이 합의했다. 훌륭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내놓을 수 있어서 더할 수 없이 기쁘다.
한기욱(韓基煜) 문학평론가
최종심 대상작들이 다양한 개성과 미덕을 갖추고 있어 수상작을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고영민의 시는 낯익은 풍경과 일상사를 범상한 듯 비범한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사물과 사람 속의 숨겨진 빛이 스며나오게 한다. 『공손한 손』에서 목격하는 것은 현란과 과장을 거절하고 오래된 삶에서 우려낸, 조촐한 말들의 섬세한 쓰임새다. 박형권의 첫 시집 『우두커니』는 농어촌의 삶의 현장을 생동하는 감각과 해학적인 이야기로 거침없이 노래한다. 도시의 식민지처럼 쇠락한 농어촌의 삶에서 활달한 서정과 걸쭉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솜씨가 일품이지만, 그 건강한 삶의 이면에 도사린 현실적인 어둠을 직시하는 면은 약하다.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은 돈의 가치를 떠받드는 오늘날의 지배체제와 주류적 삶의 방식을 노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문제삼는다. 이 시집이 그간 푸대접받던 노동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최상의 노동시가 좁은 의미의 ‘노동시’라는 범주를 초과한다면 그의 시들이 바로 그러하다. 그의 최상의 시에는 삶다운 삶의 기본 요건들, 즉 타자와의 관계와 노동과 자연과 말에 대한 물음과 깨달음의 계기들이 내장되어 있다.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토로하는 시인의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김사과 소설집 『02』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체제와 전통적인 소설문법에 대한 파괴적 충동으로 끓어넘친다. 그의 소설은 이를테면 자본주의 ‘체제’가 하나의 밀폐된 공간처럼 옥죌 때 그 속에 갇힌 개체가 느낄 공포와 절망, 분노와 폭력을 현시하는 분열증적 광란극에 가깝다. 파괴의 충동을 끝까지 밀어붙일 때의 발작적인 매력이 상당한 만큼 새로운 시작(始作)의 계기에 대한 탐구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오늘날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은 흔하디흔한 주제가 되었지만, 그에 대한 반감이 김이설의 소설에서만큼 절절한 경우는 드물다. 그의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의 주안점은 한국의 가족관계가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라기보다 사실상 파탄난 가족제도를 봉합하려는 시도가 어찌하여 위선이요 또 한겹의 억압인지를 ‘말하는’ 작업이다. 이 발설작업은 당대 삶의 가장 추악하고 어두운 지점을 직시하는 소설적 미덕을 안겨주지만 자연주의적 결정론과 세태주의의 유혹에 취약한 면도 드러낸다.
김미월 장편 『여덟번째 방』은 우리 시대 청년세대가 직면하는 암담한 삶의 조건을 성실하게 제시하면서도 인물의 주체적인 대응을 중시하는 드문 미덕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장치는 서울 토박이인 복학생 영대가 자기가 세든 방에서,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와서 셋방을 전전한 지영의 일기를 발견하여 읽는 우연한 사건에 기대고 있다. 지영의 일기를 매개로 두 남녀의 삶이 교직되면서 현실과 문학, 남자와 여자, 서울과 지방, 90년대와 2000년대 등이 대조되는 잇점과 재미가 있지만 작위적인 장치로 매개된 만큼 대조의 효과가 온전한 예술적 힘으로 전화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청년세대를 향한 공감과 비판이 균형을 이루고 팍팍한 현실에도 씩씩하게 새 길을 찾는 그의 소설의 가능성을 높이 사고 싶다.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과 김미월의 『여덟번째 방』을 공동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합의했으며, 수상자들에게 충심으로 축하드린다.
시 | 수상소감
자본주의여! 안녕
송경동 宋竟東
1967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났다.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 있다.
미안하지만, 이 글을 빨리 마쳐야 한다.*
며칠 전 어느 보수언론 기사에 따르면 내 본업은 노동운동가고, 시인은 부업이라고 한다. 시인을 가장해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 한미FTA 반대운동,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용산참사 시위 등을 쫓아다닌 ‘전문시위꾼’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요 근래에는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버스’ 기획자라는 묘한 일을 하고 있다. 부산 영도에 있는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200여일째 농성중인 김진숙이라는 한 여성노동자를 응원하는 연대의 버스다.
김진숙, 그는 스물한살에 최초의 여성용접공으로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꿈 많은 아가씨였다. 그러나 그 공장은 용접슬라그에 얼굴이 패고 용접불똥을 맞아도 아프다 소리도 못하던 곳이었다. 감전사고로 혈관이 터져 죽어도 산재가 뭔지 몰랐던 곳이었다. 동료들 문병과 문상 다니는 시간이 잔업 다음으로 많았던 곳이었다.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스물다섯에 해고된 후 대공분실 세번 다녀오고, 수배생활 오년 하고, 징역 두번 살다보니 머리 희끗한 쉰두살이 되었다.
1차로 16대 버스에 735명이, 2차로 195대의 희망버스가 영도에 갔다. 1차 때는 104명이 경찰에 소환됐고, 2차 때는 50여명이 연행되었다. 그리고 지금 7월 30일, 3차 희망버스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그 배후이자 주동자라고 한다. 며칠 전 체포영장이 청구되었다가 기각되었는데, 재청구를 해서 모레쯤 떨어질 거라고 한다. 영광이다. 2008년 용산참사 범대위 일을 하다 새벽녘 교통사고로 몇달을 쉬었다. 작년 기륭전자 투쟁에선 포클레인 붐대에서 고공농성을 하다 떨어져 다섯달 정도 누워 쉬었다. 올해는 어쩌면 특급호텔 ‘빵’에 들어가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 900만 시대, 모두가 힘든 시절에 이렇게 해마다 긴 휴가를 보내도 되는지 미안하고 낯부끄러워 죽겠다.
그런데 이제 상까지 받으라니, 면목이 없다. 죽어라고 더 큰 죄를 지어보려고 노력하는데, 더 아래로, 거리로 내려가보려고 애를 쓰는데 그럴 때마다 본의 아니게 바닥이 드러나고 만다. 아직 얕아서다.
스무살 초입, 돈 삼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해서 옷보따리 하나 메고 떠돌던 잡부 숙소와 지하철공사장 함바가 생각난다. 잠잘 곳을 찾아 들어간 콘크리트 뼈대만 세워진 건물 지하의 스티로폼 위에서 초를 켜놓고 보던 책들이 생각난다. 거기에는 갑오농민전쟁의 현장을 쫓아가던 신동엽 선생의 시들도 있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산으로 갔어요’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의 신동엽 선생이 있었다. ‘4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선생이 있었다. ‘중립의 초례청’을 꿈꾸던 슬픈, 벅찬 영혼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 궁핍했던 시절을 잊고 싶지 않다. 그리고 지금 궁핍한 사람들을 잊고 싶지 않다. 외롭고 눈물겹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잊고 싶지 않다.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잊고 싶지 않다. 청년의 기백을 잃고 싶지 않고,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꿈을 잃고 싶지 않다. 설혹 그 길이 다시 ‘꽃살이 튀는 산허리’에서 ‘장총을 버려 던진 채’ 잠이 들었다가 적들의 탄환에 맞아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더라도 오늘의 부패에 몸을 섞고 싶지 않다.
다 어떻게 갚으라고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더 열심히 사는 것으로 갚을 길밖에 없다. 더 외롭게 사는 것으로 갚을 길밖에 없다. 더 당당하게 사는 것으로 갚을 길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지는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존중받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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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7월 24일 본지에 전달되었으며, 송경동 시인에 대한 체포영장은 이틀 뒤인 26일에 발부되었다—편집자.
소설 | 수상소감
책상 밖의 세상으로 불러내는 빛
김미월 金美月
1977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고려대 언어학과 및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 장편소설 『여덟번째 방』이 있다.
전화를 주신 분이 물었습니다.
“신동엽창작상 아시지요?”
“그럼요, 당연히 알지요.”
대답하고 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이번 수상자를 인터뷰해달라는 전화인가보다 하고요. 그래서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도 그 뜻을 얼른 해독할 수가 없어 멍하니 제 운동화 신은 발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수상이라니. 내가 신동엽창작상을 받게 되었다니. 설마, 내게는 너무 과분한 상인데. 나는 아직 멀었는데. 당최 믿기지 않아서 저는 며칠 동안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많은 분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습니다.
“두배로 축하해요. 다른 상도 아니고 신동엽창작상이라니요.”
“너 정말 복 받았구나, 신동엽 시인 이름으로 상을 받다니.”
“신동엽 이름 때문에 특별히 더 영광스럽겠네요. 축하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신동엽이라서 더욱 특별하다고, 신동엽의 이름을 딴 것이라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이라고.
정말 그랬습니다. 신동엽 시인은 그냥 이름 석자만으로도 너무 밝아서, 늘 어두운 곳에서 헤매는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분이었습니다. 문학은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님을, 책상 밖의 세상을 온몸으로 겪고 나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임을 일생으로 증명해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빛으로, 그분의 자리는 늘 눈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마음이 무겁습니다. 기쁘다기보다 두렵습니다. 이 상이 제가 뭔가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디 앞으로는 좀 잘해보라고 주시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겁고 두려워도, 신동엽 시인의 이름 앞에 떳떳할 수 있도록, 이 마음 내내 지고 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압니다. 마땅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 신동엽 시인이 지금 저쪽 세상에서 이쪽 세상을 내려다보고 계시다면 이렇듯 큰 상 앞에 놀라서 쩔쩔매는 저에게 한말씀 해주시지 않을까요? 그래, 맞아. 좀 잘해봐. 열심히 해봐. 그러고는 따뜻하게 허허 웃어주시지 않을까요?
제 모자란 글을 눈여겨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늘 저를 지켜봐주고 믿어주시는 부모님께, 그리고 이 귀한 상을 만들어주신 모든 관계자분들께, 머리 숙여 인사 올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