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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중・일 작가가 말하는 동아시아문학
같음으로 다가가는 통로를 내며
김인숙 金仁淑
1963년 서울 출생.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함께 걷는 길』 『그 여자의 자서전』 『안녕, 엘레나』, 장편소설 『그래서 너를 안는다』 『우연』 『봉지』 『소현』 『미칠 수 있겠니』 등이 있음.
포항에서 만났던 옌 롄커(閻連科)라는 중국작가가 떠오른다. ‘아시아문학포럼 2008’ 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에서 한동안 살았던 경험 때문에 무슨 국제행사에 참석을 하면 주로 중국작가들을 소개받게 되는데, 옌 롄커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김태성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가 중국에서는 판매금지 되었다는 이야기를 통역자가 들려주었다. 그때까지 그 책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예의바른 미소만 지었다. 그러나 제목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동문학을 하는 사람인가. 판매금지를 당한 이유는 또 뭔가. 나중에 이 책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인민해방군의 모범병사인 주인공은 부대장의 아내와 밀회의 약속을 정할 때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 쩌뚱(毛澤東)의 교시가 적힌 액자를 이용한다. 성불구인 부대장은 아내의 성적 만족을 위해 이 밀회를 묵인한다. 부대장의 아내가 행복해야 부대장이 행복하고, 부대장이 행복해야 부대가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가는 군대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군대다.
그야말로 통렬한 비꼬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소설을 쓰고 책을 내자마자 판매금지를 당하게 된 옌 롄커는 뜻밖에 아주 수줍은 사람인 듯했다.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할 때 부끄러워하는 미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중에 그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얼굴이 종종 떠올랐다. 책의 후기에는 그가 한동안 병에 걸려 허리를 쓰지 못하자 누워서도 집필할 수 있는 기구를 직접 제작, 침대에 누워 글을 썼다는 내용이 있었다. 수줍다고 여겼었던 이 작가는 실은 뜻밖에 아주 강인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침대에 누운 채 글을 쓰는 한 작가의 엄숙한 모습이 그려졌다. 수줍든 엄숙하든, 나는 어쩐지 이 작가가 매우 친밀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한번의 만남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중국에서의 내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 3년 반 이상 살았던 나에게 중국은 특별한 나라다. 글이 전해주는 것 이상의 행간이 내 기억과 맞물리는데, 따롄(大連)이나 뻬이징 거리에서 만났던 사람들, 나와 이웃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그 소설 속에 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보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외국문학과 외국작가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작품을 읽는 것이다. 국제포럼에서 외국작가들의 육성을 직접 듣고, 간단한 토론을 하고, 혹은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신다고 해서 그들과 그들의 문학을 각별히 가깝게 여기게 된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나의 외국어는 제한적이다 못해 극히 가난하고, 심지어는 불통이기까지 하다. 통역을 사이에 둔 채, 우리는 이미 친구가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의례적인 인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행사가 열리고, 그런 행사에 참석을 하고, 또 그곳에서 만난 작가들과 술을 마시기 위해 뻬이징과 토오꾜오의 밤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몇해 전 전주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에서였다. 방글라데시 작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발표에 앞서서 그녀가 말했다. 자신은 행사에 참가한 유일한 방글라데시 작가이고,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리라고. 그래서 자기네 노래 한곡을 먼저 부르겠다고 했다. 그 작가의 말마따나 나는 방글라데시 문학을 접해본 적도 없었고, 그 나라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도 않았다. 그러나 무반주로 울려퍼진 그 노래는 가슴을 울렸다. 언젠가 방글라데시 문학을 접한다면 나는 아마도 어김없이 그 노래를 떠올리게 되리라 생각했다. 말하자면 방글라데시 문학에 관해서는 전주에서 들은 그 노래 한소절이 나의 행간이 된 셈이다.
중국, 일본 작가들과의 만남은 조금 다르다. 중국이나 일본은 방글라데시처럼 낯선 나라가 아니다. 그들의 문학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소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국소설도 서점에 넘쳐난다. 중국이나 일본에 가보지 않았다고 해도 중국과 일본의 거리들이, 사람들이, 그들의 농담이나 습관 들이 책 속에 이미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것은 책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역사와 현실의 상황들이 엮어놓은 편견과 오해가 그들에게 느끼는 친밀감 이상으로 완고하다. 오래된 역사는 오늘날에도 계속 흐르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될 터이니, 그러한 편견과 오해가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과의 만남은 그들을 이해하거나 오해하는 우리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로 교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가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글을 통해서라는 생각은 확실하다. 글로 다 말하지 못한 것은 말로도 전해지지 않는다. 말로 덧붙일 것이 남았다면, 그것이 어디 좋은 글이겠는가. 그러나 펼쳐지지 않는 혹은 못하는 책이라면 그 책은 어떻게 말을 건넬 것인가.
중국이나 일본의 독자들을 만날 때,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한국의 문학이 아니라 한류라 일컬어지는 드라마나 대중가요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만들어놓은 한류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것들로 표상되고 전형화된 한국의 모습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작품을 모아놓은 서점의 매대가 드라마를 소설화한 책들로 채워진 것을 볼 때는 당혹스러운 기분이 든다. 그런 책들 앞에서 그 나라의 독자와 함께 서 있게 된다면, 그야말로 무엇이든 한마디쯤 말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용기있는 독자는 묻기도 한다. 한국사람들은 정말 다 이렇게 살아요? 그 질문이 혐오든 동경이든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문학은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같음으로 다가가는 통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차이를 알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을 걷어낸 후의 바닥과 깊이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궁극적으로 모두 똑같다는(그런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어 나는 글을 쓴다. 그 똑같은(똑같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들은, 사실 아주 미세한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이 주목하는 것은 겉으로 현란하게 드러나 있는 것들이 아니라 그 속에 감추어진, 말할 수 없으나 말하고 싶어지는, 그런 것들이다. 지구의 어느 한켠에 몰려 살고 있다고 해서 동아시아라고 분류되는, 중국과 일본과 한국의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들의 문학은 어떠한가.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한쪽에 몰려 뒤엉겨 산 덕분에, 크게 다른 것들과 미세하게 다른 것들이 완전히 같은 것들과 조금 엇비슷한 것들 사이에 뒤범벅으로 공존한다. 그래봤자 다 걷어내고 나면 결국 똑같이 먹고 싸고 자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터인데, 실은 ‘그래봤자’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듣고, 읽는다. 그러는 동안 미처 몰랐던 상처가 덧나기도 하고 또 위로받기도 한다.
연전에 시모노세끼(下關)의 고등학생 독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여고생들은 발랄하고 예뻐서 바라보는 사람을 설레게 했다. 시모노세끼는 한・중・일 세 나라에 모두 매우 의미심장한 고장이지만, 나는 그 발랄한 여고생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문학 얘기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가 높은 지대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높은 곳에 학교가 있으면 다리 굵어진다고 불평이 많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전부 와하하 웃었다. 문학 얘기를 하자고 만들어진 자리기는 했지만, 문학이 별건가. 내 마음뿐이기는 하겠지만, 학교 옥상에서 바라보이던 바다 얘기만 해도 좋겠다 싶었다. 각기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겠으나 바다가 바다인 것은 다르지 않을 터이니. 그래도 바라보는 방향도 다르고 바람 부는 방향도 달라서, 거창한 주제를 내놓지 않아도, 할 이야기가 많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