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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중・일 작가가 말하는 동아시아문학

 

동아시아문학포럼과 동아시아문학

 

 

모옌 莫言

1955년 중국 샨뚱성 출생. 1981년부터 작품활동 시작. 국내 소개된 작품으로 장편소설 『붉은 수수밭』 『홍까오량 가족』 『술의 나라』 『사십일포』 『인생은 고달파』 등이 있음.

 
 

최근 몇년간 동아시아문학포럼 창설과정에 참여하면서 나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양국의 작가, 시인, 그리고 문화계 인사 들과 많은 만남을 가졌다. 그런 덕에 동아시아문학이라는 주제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이 생긴 듯하다.

먼저 2005년 나는 서울에서 열린 대산문화재단과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공동 주관의 세계작가대회에 참가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몇십개국에서 온 작가와 시인 들이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오에 켄자부로오(大江健三郞) 선생도 수차례 중요한 강연을 했다. 오오에 선생은 세계문학의 일환으로서의 ‘아시아문학’을 만들자는, 자신의 오랜 지론을 강연에서 거듭 표명하여 청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아시아작가인 내가 그의 말에 큰 흥미를 느낀 것은 당연했다.

2006년 겨울 한국외국어대학교의 박재우(朴宰雨) 교수가 뻬이징으로 나를 찾아왔다. 중국, 일본과 연계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문학포럼을 한국의 대산문화재단에서 개최하고 싶어하는데, 일본측에선 오오에 선생의 적극적인 추진 아래 이미 민간단체가 조성되었다며 중국의 입장 표명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사업을 담당할 단체를 찾는 데 내가 나서주길 바랐다. 나는 박교수에게 이러한 다국적 대형 포럼을 중국에서 개최하려면 정부의 참여와 지지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국통이었던 박교수는 이런 말을 금방 이해했다. 그는 내가 적극적으로 주선하여 되도록 빨리 이 일을 성사시키기를 희망했다.

내가 봤을 때 이 일은 중국작가협회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가장 적합했다. 당시 작가협회 주석 자리에 오른 지 얼마 안된 톄 닝(鐵凝)은 단호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다. 대외 문학교류는 그녀의 중대한 관심사였다. 나는 즉시 이런 상황을 알렸고 그녀는 비상한 흥미를 보이며 그 자리에서 박교수와의 만남을 약속했다.

가급적 빨리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나는 중국작가협회 대외협력부에 편지를 보내 작가협회 내부의 당조직 간부에 전해줄 것을 청했다. 나는 편지에서 한국의 민족지도자 김구(金九)의 말을 인용했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동아시아 지역은 지리적・문화적 연원으로 인해 정치・경제공동체를 구성할 필요성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복잡한 역사적 원인 탓에 이러한 공동체를 세우는 데 어려움이 매우 많다. 그러나 역시 역사적・문화적 원인으로 인해 문화공동체를 세우는 어려움은 (정치・경제공동체보다) 훨씬 적다. 한국과 일본이 이러한 의향을 주도적으로 밝혀온 지금 우리는 이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얼마 후 중국작가협회의 당조직 간부와 통화를 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성의에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당시 관련 기관에서 포럼이 많다는 이유로 그 수를 규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훗날 다시 상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측의 노력은 매우 끈질긴 것이었다. 박재우 교수와 대산문화재단의 곽효환(郭孝桓) 선생이 수차례 연락을 해왔고, 서로의 친밀도를 높이고 이해와 신뢰를 다지기 위해 먼저 중・한 양국의 문학교류 행사 개최를 제안했다. 한국이 먼저 중국의 작가와 시인 그룹을 한국으로 초청한 후, 나중에 한국 작가와 시인 그룹을 조직해 중국으로 오기로 했다. 행사 주제는 모두가 호응할 만한 것으로 정하기로 했고, 행사명은 ‘장강(長江)에서 한강으로’라 붙이고 다음엔 ‘한강에서 장강으로’라 하기로 했다. 성의를 표하는 뜻으로 중국 대표단의 방한경비는 한국측에서 담당하고, 한국 대표단의 방중경비 또한 한국측이 지급하기로 했다.

2008년말 중국 대표단 일행 수십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측은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고, 회의기간에 한국의 중량급 작가와 시인 대부분이 참석했다. 중・한 양국 작가의 공통적 관심사를 위주로 심도 깊은 토론을 진행했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국의 작가, 시인이 서로 어울려 깊은 우의를 다졌다는 점이다.

중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작가협회의 당조직 간부에게 또 한통의 편지를 써서 이번 중국작가 대표단이 한국에 방문한 상황을 보고했고, 동아시아문학포럼 개최의 중요성을 힘써 강조했다.

같은해 12월초 한국 대표단이 중국에 왔다. 그들은 뻬이징과 샹하이 두곳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양국의 작가와 시인은 다시 만난 고향친구처럼 흥겹게 노래하고 춤을 추는 등 매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 기간에 작가협회의 당조직은 한・일 양국과 함께 동아시아문학포럼을 기획하기로 결정했고, 즉시 전문기구를 설립했다. 동아시아 지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문학계의 성대한 행사가 마침내 서막을 연 것이다.

2008930일 제1회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이 서울에서 개막했다. 중국은 톄 닝을 단장으로 한 고위급 그룹을 보냈고, 일본은 시마다 마사히꼬(島田雅彦), 쯔시마 유우꼬(津島佑子) 등 실력파 작가들로 구성된 참가단을 보냈다. 한국측의 준비 역시 대단한 것이어서 참석자들은 주최측의 열정과 한국문화의 매혹적인 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201012월 일・중・한 동아시아문학포럼이 일본 키따큐우슈우(北九州)에서 열렸다. 시마다 마사히꼬 등이 포럼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큰 힘을 쏟았다. 이때에도 많은 세부적인 사항들이 참가자에게 감동을 주었다.

2012년 하반기에는 중・일・한 동아시아문학포럼이 뻬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다. 중국측은 이미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포럼도 반드시 성대한 행사가 될 것이라 믿는다.

중・한, 중・일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 각국간 문학교류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빈번해지고 있다. 동아시아문학포럼은 단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이 지역 작가, 시인의 잦은 교류의 기반은, 첫째는 공통으로 지닌 역사와 문화의 자원이 많은 공통의 화제와 창작소재를 제공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매우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이 서로의 왕래를 쉽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역의 작가와 시인 들이 교류하는 목적이 같은 풍격(風格), 같은 내용의 작품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공통적인 것을 찾음과 동시에 각자의 개성을 더 많이 발견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오오에 켄자부로오 선생이 구상하는 아시아문학도 충분히 개성을 발전시키고 보존할 수 있는 문학이다. 세계문학 안에서 아시아문학은 개성이 뚜렷하다. 아시아문학 안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문학도 개성이 뚜렷하다. 동아시아 지역의 문학 가운데 중국문학이든 한국문학이든 일본문학이든 모두 개성이 뚜렷하다. 그러나 세계문학 안에서 아시아문학의 개성, 아시아 지역 안에서 동아시아문학의 개성, 동아시아 지역 안에서 각국 문학의 개성은 바로 이 지역과 국가의 ‘문학공통성’이다. 나는 최종적으로 각각의 작가와 시인 모두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쓰길 희망한다. 그러면서도 역사와 문화 유전자의 공통성 때문에 우리는 각 국가와 지역의 문학에 깃든 공통성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중국어로 번역된 것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읽은 한국과 일본 작가의 작품 수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정된 독서범위에서도 여러 작가들의 사고의 깊이와 창의성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황석영(黃晳暎) 등 원로작가가 거대한 역사소재를 파악하는 능력에 매우 탄복했다. 또한 신경숙(申京淑), 은희경(殷熙耕) 등 중견작가가 자기 경험과 일상생활에 밀착해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내놓은 것도 놀랍다. 물론 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세대의 작품에서는 생소한 것도 많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기법은 모두 혁신성과 가능성을 드러내는,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문학포럼에 참가한 후에도 나는 한국 및 일본 문학계와의 적잖은 교류활동에 참여했다. 비록 언어의 장벽이 우리 교류의 깊이와 넓이에 영향을 미쳤지만, 언어 없이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언어 없이도 전해지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가장 귀중한 정수다.

번역 | 유다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