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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백수린 白秀麟
1982년 인천 출생.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paper_petal@hanmail.net
폴링 인 폴
이것은 폴에 관한 이야기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내가 아는 만큼의 폴에 관한 이야기. 이것이 폴이라는 한 인간의 실체인가 하면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타인과 조우하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그것을 폴에게서 배웠다. 폴 자신은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준 일 없노라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므로 나는 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나는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대륙의 한복판에서 한 여자의 남편이 되겠다고 서약하고 있을 폴.
나는 도대체 어쩌다가 폴에게 빠져버린 것일까.
폴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폴의 담임을 맡게 된 재작년 가을이었다. 처음 폴이 우리 반으로 배정되었을 때, 레벨 테스트를 담당했던 동료교사 윤은 내게 메모를 남겼다. 회화는 그럭저럭 가능하나 한글은 하나도 쓸 줄 모르는, 전형적인 교포 레벨. 첫 수업시간에 나는 폴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중국인, 일본인, 독일인으로 구성된 우리 반에 ‘재미교포 스타일’을 하고 있던 사람은 단 한명밖에 없었으니까.
안녕하세요. 폴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습니다’ 체를 미처 배우지 못해 말끝에 무조건 ‘요’를 붙이던 폴의 자기소개가 떠오른다.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는 그날도 틀림없이 내가 좋아하는 보조개를 만들며 쑥스러운 듯 “요” 하고 발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무렵 나는 그의 보조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고, 다만 그가 재미교포라는 사실에만 주목했다. 수많은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한국어수업을 할 때, 역시 가장 곤란한 부류는 교포였다.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그들에게 기초부터 다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피차 상당히 지루하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회화가 가능한 교포들은 너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해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다른 초급자에게 위화감을 주었고 학기 중반부를 넘어서면 수업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분위기를 망쳐놓기 일쑤였다. 나는 폴의 존재 때문에 수업 첫날부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재미교포답게 싹싹했고, 유쾌했고, 수업시간에 적극적이었다. 나는 폴이 수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와 동시에 다른 학생들이 폴 때문에 수업에 방해를 받는다고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그 균형을 맞추느라 매일 진땀을 뺐다. 그런 탓에 폴과 가까워지게 된 것은 수업시간이 아니라 개인면담 때였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다른 한국어교육기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몸담고 있는 기관이 도입한 것은 ‘오피스 아워’ 제도였다. 안 그래도 많은 수업과 수당에 포함되지 않는 과한 잡무에 치이던 강사들에게는 고역이었지만, 오피스 아워의 취지는 분명했다. 학생들의 고충을 실시간으로 들어주고 수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학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인들이 개인면담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폴은 달랐다. 그는 오피스 아워이기만 하면 아무때나 나를 찾아왔고,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 심각한 얼굴로 물어보았으며, 그러고 나서는 일상생활의 고충이라든지, 한국에서 겪은 문화충격 같은 것들에 대해 한참을 토로했다. 그것도 알아듣기 곤혹스러울 정도로 지독한 영어식 발음으로 말이다. 내가 귀찮아하는 줄도 모르고.
덕분에 나는 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그는 시카고에서 왔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누나와 함께 자랐으며, 많은 교포들이 그러하듯 언어장벽 때문에 사춘기시절 부모와의 골이 깊어졌다. 또, 나는 그가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이제는 포기했으며 어느날 불현듯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져 이곳을 찾아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타지에서 외로웠던 탓일까. 의무감 때문에라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누군가 필요했던 것일까. 어차피 판에 박힌 교포들의 사연이라 여기고 그가 떠드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다음 수업 교안을 짜거나, 주말에 쇼핑해야 할 물건들의 목록을 떠올리며 건성으로 들어주기 일쑤였는데도 폴은 참 열심히 나를 찾아왔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한달 사이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폴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몇 안되는 내 친구들 모두 어느덧 애엄마, 애아빠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기만 하던 폴의 방문이 언젠가부터 아주 조금씩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폴은 내가 규칙적으로 단둘이 만나는 첫번째 남자였다.
주변의 모두가 바닷물이 들고 나듯 연애와 실연을 반복하는 그 오랫동안, 나는 늘 혼자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벽을 치고 산다며 쉽게 진단을 내렸다. 좋게 말해주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지 않아 그렇다는 식으로 에두르기도 했다. 나는 딱히 나 자신을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다만 주변의 권유로 소개팅이나 맞선 자리에 나가보아도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별로 없었을 뿐이다.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해보라며 다가오면 두려워졌고, 반대로 자기를 이해해달라 덤벼대면 진력이 났다. 사람들이 적당한 거리를 지킬 줄을 몰라. 나는 늘 투덜댔다. 진씨는 눈이 높은가봐. 직장동료들은 수군거렸다. 오래 혼자 지내다보니 이상형의 기준만 높아가는 것이 사실이긴 했다.
물론 폴은 내 이상형의 조건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폴은 나보다 훨씬 어렸다. 나는 이제 삼십대 중반을 향해 있었고, 폴은 이십대 중반을 막 지나선 나이였다. 연상연하의 커플이 더이상 낯선 시대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여섯살 차이는 조금 많게 느껴졌다. 나는 폴을 향한 나의 감정이 제자에 대한 스승의 사랑 혹은 나이를 초월한 우정, 뭐 그 비슷한 지점에 위치한다고 믿었다. 그러는 사이 초급과정을 뗀 폴은 한국어 공부를 그만두고 한 학원에 나가 초등학생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만나 함께 술을 마시며 오피스 아워를 계속 이어갔다.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친누나 같아요.
폴이 유리꼬에 대해서 처음으로 말을 꺼낸 것은 혀가 풀린 채로 내게 누나 같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술이 엄청 썼다. 폴은 내가 허락만 하면 누나라고 불러댈 기세였다. 분명 고마움의 표시랍시고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나는 평생 맛보지 못했던 상실감을 그순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언젠가부터 폴과 만날 때면 어려 보이려고 포니테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혹스러웠다.
사실 폴을 알게 되었을 즈음부터 나는 한국어교사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패턴화된 수업과 박봉에 비해 과한 업무량 탓이었다. 몇년간의 한국어교사 생활 끝에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수업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약간의 테크닉과 갈수록 견고해지는, 외국인에 대한 모종의 편견뿐이었다. 출신 국가에 따라 학생을 분류하여 그에 맞는 가장 능률적인 수업방식을 찾으면 그걸로 족했다. 그런 편견에 따르면 폴의 붙임성 역시 미국인 특유의 것이었으리라. 나에게 친근한 게 꼭 그런 기질 때문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도대체 어느 틈에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것인지. 나는 낭패감을 느끼며 나에게 네번째로 누나 운운하는 폴 앞에서 묶었던 머리를 풀었다.
그러나 그날의 술자리에서 나를 참담하게 만든 것은 폴이 나를 누나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폴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자각이 아니라, 폴이 내게 털어놓은 유리꼬를 향한 마음이었다. 초급반 수업을 들었던 작고 귀엽게 생긴 유리꼬. 폴이 사랑하는 사람이 유리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의 늙고 커다란 몸뚱이를 감추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을 해? 심술처럼 불쑥 그런 말이 입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질문인지는 내가 더 잘 알았다. 그러므로 답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다행히 그는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폴이 유리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유리꼬의 무엇을 사랑했는지, 그 둘이 얼마나 애틋한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기 시작했는지는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둘의 사랑이 커져가는 동안 내가 얼마나 고독했는지, 그리고 맞선을 보라고 종용하는 부모님의 성화에 얼마나 괴로웠는지만 기억할 뿐이다. 폴이 내게 연락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폴과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사이에 계절이 두번 바뀌었다. 그동안 몇차례 선을 보았고, 번듯한 직업을 가진, 머리숱이 적고 배가 나온 남자와 시내의 호텔 라운지에서 몇차례 칵테일을 마셨다. 어떤 계기로 한국어교사가 되셨습니까? 한국어를 가르치다니 참 의미있는 일이군요. 선본 남자는 무척 예의 바르고, 선을 지킬 줄 아는 단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맞선에 익숙한지 내 부모의 직업과 나의 직업, 사는 동네와 출신 학교만으로 나를 이미 다 파악한 사람처럼 능숙하게 대했다. 집앞까지 바래다주는 그의 차에서 내릴 때면, 나는 어쩌다 한국어교사가 되었는가를 스스로 되물었다. 그럴 때마다 계기가 무엇이었든 참 멀리 온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내가 원했던 것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어학수업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정작 알지 못했다. 다만 폴의 부자연스러운 한국말 발음이 수시로 떠올랐다. 표준어에서 한없이 멀리 위치했던 그의 엉망인 발음. 그리고 연필을 입에 물고 발음을 고치던 어린 나의 모습도 가끔씩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 곳곳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라도에서 충청도로, 다시 충청도에서 강원도로 전학할 때면 언제나 내게 남아 있는 타 지역의 발음을 고치는 데 열중했다. 내게 남아 있는 경상도 사투리 혹은 전라도 사투리의 억양은 새로운 학교의 아이들이 나를 배척할 만한 충분한 동기가 되었던 것을 이미 여러차례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전학할 때마다 나는 늘 무리 속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다. 한번 굳어진 발음과 억양을 고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는 까닭에 나는 기껏 고쳐놓은 폴의 발음이 만나지 못한 사이 망가지지는 않을까, 몹시 우려되었다. 살면서 누군가와 혀를 섞어본 일이 없었는데도, 폴의 발음에 대해 생각하다 잠이 드는 밤이면 나는 꿈속에서 내 혀에 감겨오는 혀의 감촉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러다 소스라쳐 잠에서 깨면 어쩌다 폴을 좋아하게 된 것인가 낭패스럽고 괴로웠다. 간혹, 폴에게 먼저 연락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 대신 머리숱이 적은 남자를 몇번 더 만났다. 그는 여전히 함부로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반듯한 선의 저 반대편에 서 있었다. 나는 폴이 몹시 그리웠다.
몇달 만에 폴의 연락이 온 것은 비가 쏟아지던 어느 목요일이었다. 비가 옵니다. 그래서 우산을 씁니다. 비가 옵니다. 천둥도 칩니다. 수업시간에 판서했던 단정한 문장들의 세계를 흩어놓는 빗방울처럼 폴의 짧은 문자메씨지가 후드득, 내 가슴에 꽂혔다. 비가 와요. 할 얘기 있고 만나고 싶어요. 그동안 연락도 없더니 뭐냐 하는 서운한 마음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나는 휴대전화의 폴더를 열었다. 수십번 지우고 다시 쓴 끝에 완성한 문자 메씨지는 결국 이런 것이었다.
그래 만나자. 언제가 좋니?
우리가 즐겨 가던 파전집을 다시 찾은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일요일이었다. 제법 그럴듯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폴을 보자 우리가 만난 지도 꽤 오래되었음이 실감났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바닥에 앉는 것이 힘들어 몇번이나 자세를 바꾸던 폴이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술을 먹겠다며 굳이 이 집을 찾아왔었다.
너무 오랜만이죠?
폴의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마주한 폴의 얼굴이 너무 생경해 나는 깜짝 놀랐다.
낱말을 고르느라 때때로 끊기고, 간혹 영어를 섞어 이을 수밖에 없었던 폴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연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던 게 그의 아버지가 한국에 다녀갔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 많은 오피스 아워 중에 폴이 아버지의 존재를 언급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70년대 말에 미국으로 건너가 단 한번도 한국에 들어온 일이 없었다는 폴의 아버지에 대해 기껏해야 내가 아는 것은 그가 세탁소의 주인이라는 것과 폴이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반대했다는 것뿐이었다.
삼십여년 만에 고국을 찾는 남자의 마음이 어떨지 나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고국이 한국이라면 더욱더. 한달 사이에도 수없이 모습이 바뀌는 이 나라가 삼십년 동안 얼마나 달라졌을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놀라웠을지 막연히 짐작만 해볼 수 있을 뿐이었다.
shock. shock를 한국말로 뭐라고 하죠?
충격?
응, 충격. 아버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yeah, it was a huge shock to him.
인천공항에 발을 디디며 아버지가 처음 한 말은, 뭐야, 오헤어 공항하고 다를 게 없잖아,였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은 듯, 시시하다는 듯. 그러나 아버지는 한국에 있는 동안 술에 취하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미국이랑 똑같아졌다니.
그 말을 하면서 어떨 때는 웃었고, 어떨 때는 울었어요.
폴은 막걸리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아버지는 어떤 일로?
아버지가 다녀갔다면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 나는 그간 서운했던 감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쨌거나 아버지가 돌아가자마자 나에게 다시 연락을 해온 것이다. 역시 폴은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게 틀림없어. 나는 유리꼬의 존재를 잊고 그렇게 내 멋대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착각은 폴의 대답 한마디에 산산이 부서졌다.
유리꼬를 만나러 왔어요.
폴의 태평한 목소리. 아버지가 유리꼬를 만나러 올 정도로 둘 사이가 깊었던 거구나. 내 눈앞에 앉아 있던 폴이 순식간에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멀어져갔다. 나는 의연한 표정으로 폴의 말에 호응을 해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누나의 역할까지 빼앗기면 폴을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는 절박감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잖아.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마침 술이 다 떨어졌고, 폴은 능숙하게 막걸리 한병을 더 시켰다. 새로 나온 술을 따르며 폴이 내게 전해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사실,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도 한동안 폴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유리꼬의 존재를 알리지 못했다. 보수적인 부모 중 누구도 유리꼬와의 연애를 반길 리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폴이 한국에서 일본 여자아이와 연애중이라고 누나가 알려주었을 때 폴의 부모는 노발대발했다. 이렇게 누나를 통해 이야기가 흘러들어올 정도면 보통 심각한 사이가 아니겠느냐며 결혼은 결코 안된다는 극심한 반대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폴의 부모는 자기 자식이, 대다수 재미교포 2세가 그러듯 한인교회를 다니는 다른 재미교포 2세와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미국인도 아니고 일본인이라니! 게다가 그 일본인은 교회에 다니지도 않았다. 한인교회의 권사로서 교포사회에서 어느정도 위치에 있던 폴의 부모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폴이 유리꼬에게 청혼한 뒤 미국에 그 소식을 알리려 전화를 걸었을 때, 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자를 직접 만나보고 나서 승낙 여부를 결정하겠노라 고집을 부렸다. 아버지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폴은 내심 어머니가 한국에 들어오기를 바랐지만, 어머니는 누나가 낳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가 한국땅을 밟게 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다.
결, 결혼을 한다고?
찌릿한 통증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더이상 태연한 표정을 지을 수 없어 애꿎은 김치만 젓가락으로 찢어댔다. 애초에 내 감정을 깨달았을 때부터 결말을 알고 있던 사랑이었지만, 이것은 실로 너무 갑작스러운 실연이었다. 폴 때문에 행복했던 기억들이 갑자기 나를 덮쳤다. 한국말에서도 사랑에 빠지다, 이렇게 한다면서요. 영어도 fall in love인데. 선생님, 저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언젠가 유리꼬를 향한 그의 사랑을 알게 됐던 날 느꼈던 상실감이 다시 가슴을 차갑게 베고 지나갔다. 폴이 갑자기 더 낯설어졌다. 그런 나의 심정을 알 턱이 없는 폴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이야기는 시간을 건너뛰어 폴이 아버지와 고향에 내려갔던 날로 이동해 있었다.
아버지와 같이 아버지의 고향에 갔어요. 폴 아버지의 고향은 남쪽에 있는 정산이라는 작은 마을이라 했다. 선생님, 알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강원도 정선은 들어봤지만 정산이라니. 정산은 교보문고에서 산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아요. 사실 나는 더이상 아무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혹여나 폴에게 내 마음을 들킬까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냥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일어서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는커녕, 폴의 이야기에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새파랗게 어린 남자아이 앞에서 쩔쩔매는 내가 한심하고 또 한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사이는 엉망진창이었어요.
안 그래도 어색하던 아버지와 폴의 관계는 유리꼬로 인해 더 악화되었다. 폴의 아버지는 첫눈에도 일본인처럼 보이는 유리꼬를 보는 순간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만 몇번 내뱉었다. 일본에 대한 반감이 아버지를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인 질료들 중 하나임을 폴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미국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의 일그러진 근현대사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인 양 억울해했다. 일본놈들만 쳐들어오지 않았더라면, 6・25만 없었더라면. 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그러는 게 정말 싫었어요. 솔직히, 미국을 선택한 것은 아버지잖아요. 오히려 나는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만요. 폴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렇지, 넌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렀다. 나는 생각을 털어버리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왜요? 폴이 물었다. 아, 아니야. 나는 당황해서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럴 바에는 그냥 일어나자. 나는 또다시 몇번이나 속으로 결심했지만, 갑자기 그랬다가는 내 감정을 들키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는 것만은 죽어도 싫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들켰다가는 두번 다시 폴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어차피 혼자 앓다 정리하고 말았어야할 짝사랑이었다. 오늘만 무사히 넘기자는 마음으로 나는 폴이 들려주는 아버지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왜소한 체구의 한 동양남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역사와 시대를 탓하지 않고는 삶에서 맞닥뜨리는 고비들을 지나올 수 없을 만큼 인생이 고단했던 한 남자. 그러나 나는 폴에게 아버지를 이해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왠지 폴도 사실은 알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머리로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폴 역시 아버지를 탓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순간들을 통과해온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을 테니까. 나는 술을 한모금 마셨다.
유리꼬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으면서도, 폴의 아버지는 유리꼬와 가까워지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어려운 한국말을 툭 뱉어놓고, 유리꼬가 알아듣지 못하면 쯧쯧쯧, 혀를 차는 식이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세탁소를 오래 비울 수 없어 일주일 기한으로 한국에 들어온 아버지는 떠나기 전에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아버지와 단둘이 서울집에 있는 것이 참기 힘들어진 폴에게는 차라리 반가운 말이었다. 폴은 유리꼬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그 계기로 아버지가 유리꼬와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아버지의 태도에 화가 치밀 대로 치밀었던 터라 폴은 이것을 끝으로 더이상 어떤 설득의 노력도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있었다. 만약 이번에도 아버지가 계속 불쾌한 태도를 보인다면, 허락이고 뭐고 아버지의 의사 따위는 무시해버리겠다고 속으로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웬만큼 큰 남한 지도 어디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그 고장을 찾아 폴과 유리꼬 그리고 아버지는 함께 기차를 타고 달렸다. 무심히 바뀌는 차창 풍경을 바라보며 폴의 아버지는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정산에 내린 아버지는 인천공항을 보았을 때보다 더 놀란 듯 보였어요.
도로가 닦이고, 학교는 재건되었으며, 중앙로에는 다방이나 식당 들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번화가가 다 되었구나! 아버지는 탄식조로 내뱉었는데, 그 다방과 식당이란 게 다 합쳐봐야 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상기된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걸을 때마다 낡은 코르덴 바지가 앙상한 다리에 휙휙 감겼다. 앞장서서 걷던 아버지가 우뚝 멈춘 곳은 시멘트로 된 이층집 앞이었다. 아버지는 감흥에 젖은 눈으로 그 집을 한참 바라보다가 폴을 향해 중얼거렸다. 여기가 내가 옛날에 살던 집이 있던 자리다. 아버지와 열명이나 되는 남매들이 함께 살던 작은 집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당연한 거지,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졌으니까. 한참 만에 아버지는 덧붙였다. 풀이 죽은 듯했던 아버지는 이내 활기를 되찾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가 원래 부엌이었고, 저기가 안방이었어. 그리고 저 건넌방에는 술주정뱅이네 가족이 세들어 살았었다. 술주정뱅이? 하고 폴이 묻자 아버지는 알콜릭, 알콜릭 하고 얼른 서툰 영어로 대답했다. 술주정뱅이가 아내를 때리던 밤, 노크라도 하는 것처럼 벽에 부딪히던 그 여자의 머리. 그런 기억이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찾아왔는지 아버지의 눈빛은 소년의 것처럼 빛났다. 형들이랑 나랑 나란히 서서 이 담벼락에 종종 오줌을 쌌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킬킬킬 웃었다.
유리꼬만 없었더라면 아버지는 거기에 당장 오줌을 누었을 거예요. 폴이 웃으며 말했다. 유리꼬 대신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던 나는 폴의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옛집 앞에서 잠깐 회상에 잠겼던 아버지는 폴과 유리꼬를 데리고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폴의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러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할아버지가 정산에 계셔?
네, 산산에요.
산산?
네, 가족들 죽으면 묻는 고향 산요.
아, 선산이야, 선산. ‘어’ 하는 발음했다가, ‘아’ 발음으로, 선산.
Seon San?
응, 선산.
폴과, 유리꼬, 그리고 그 앞에 선 폴의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굽이 있는 구두를 신은 유리꼬는 산길을 오르며 힘겨워했고, 폴은 유리꼬가 발목을 접질리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할아버지의 무덤은 산 중턱에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 준비했는지 마른 북어를 꺼내 봉분 위에 올려놓고, 소주병 뚜껑을 땄다. 아버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새들이 겨울 하늘을 가로지르고, 유리꼬가 구두를 벗어 구두굽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폴이 그런 유리꼬의 발목을 들여다보던 순간. 울음소리가 점점 거세지더니 기어이 아버지의 무릎이 꺾였다.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본 건.
폴의 아버지는 언제나 투박했고, 옹고집이었고, 거칠었다. 폴의 눈에 아버지는 감정이 결여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통곡에 폴이 놀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여섯달만이었다.
그것이 눈물을 거둔 아버지가 폴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나는 아버지와 대화할 수 없었어요. 아버지는 영어를 못했고, 나는 한국말을 몰랐어요. 집에서 통역사 역할을 한 것은 누나였어요. 고지서? 맞죠? 여러가지 고지서 같은 거 내용을 번역하고 보험회사와 엄마 대신 싸우는 거는 전부 누나였어요.
폴은 누나만큼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다. 폴의 아버지는 폴이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오히려 불같이 화를 냈다.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주장이었다. 통역을 해야 했던, 그러니까 한국문화와 미국문화 사이의 다리가 되어야 했던 누나와 달리 폴은 철저히 미국인이 되기를 요구받았다. 폴이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처음부터 가능했겠어요? 아버지는 내가 미국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고 언제나 말했어요. 그건 너무나 한국적인 이유잖아요. 내가 미국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그렇게 한국적인 것이라니, 아버지가 내게 준 임무는 mission impossible이었던 거죠.
미션임파써블. 폴은 그렇게 말하고 술잔을 비웠다. 폴의 얼굴에 어른거리고 있을 쓸쓸함 대신 나는 mission impossible,이라고 발음하는 폴의 입모양을 바라보았다. 영어의 세계에서 한국어의 세계로 넘어오는 혀의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귀찮았던 폴의 방문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던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선생님, 선생님, ‘관광하다’와 ‘여행하다’는 뭐가 다른 말이에요? 선생님, 선생님, 계란찜이랑 찐 계란은 뭐가 달라요? 나를 따라서 입모양을 바꾸고 혀의 위치를 달리하던 폴.
다른 교포들과 비교해도 폴의 듣기와 말하기 실력의 격차가 유난히 컸던 게 아버지 때문이었구나. 폴은 내가 하는 말을 곧잘 알아들으면서도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데는 서툴렀다. 소주나 막걸리와 함께했던 폴과의 보충수업 시간들. ‘ㅂ’과 ‘ㅍ’, ‘ㅃ’ 간의 차이를 알려주기 위해 폴의 입 앞에 내 손을 대면 손바닥에 닿던 폴의 숨결. 술김에 뜨거워진 내 손바닥이 마치 그때처럼 간지러웠다. 딴 선생님들이 선생님 한국말 발음이 가장 좋댔어요. 내가 lucky guy래요. 그렇게 말하며 씩, 웃던 폴.
직업 탓이었겠지만, 나는 한국사회에서 교포들이 맞닥뜨리는 애환을 자세히 알았다. 많은 교포들이 토로하던 흔한 고충, 내가 아는 한 그것은 대체로 그들이 가진 한국인의 외양과 한국어 실력의 격차에서 비롯했다. 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누구보다 완벽한 한국어 발음을 폴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뿐이라고 믿었다. 우습게도. 거기까지 생각이 흘렀을 때, 술잔을 한참 만지작거리던 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의 울음이 잦아든 것은, 해가 뉘엿뉘엿 산 너머로 지기 시작할 때였다. 한기가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만 내려가자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얼음이 녹듯 아주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들썩이는 아버지의 어깨가 너무 앙상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폴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폴은 미식축구를 가르쳐주거나 함께 캐치볼 따위를 해주던, 친구들의 건장하고 유쾌한 아버지를 늘 부러워했다. 아들에게 오십개 주 이름의 스펠링을 알려주고, 메이플라워 선언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아버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몰라 폴이 망설이는 사이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에 붙은 풀을 떨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 말라버린 눈물을 훔치려는 듯 소맷부리를 얼굴에 갖다대었다. 저…… 이것.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폴은 고개를 돌렸다. 유리꼬가 아버지를 향해 손수건을 내밀었다. 아버지와 여태껏 한번도 말을 제대로 섞지 못했던 유리꼬. 일본인 특유의 발음이 차가운 산 공기를 진동시켰다. 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손수건을 내려다보았다. 보라색 물방울무늬가 귀여운 손수건이었다. 보나 마나 아버지가 유리꼬의 성의를 무시할 거라는 생각에 폴은 짜증이 치밀었다. 뭐하러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며 손수건을 가로채려는 사이, 아버지가 손수건을 받아쥐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눈물과 콧물 자국을 닦았다.
나는 결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한국말을 배우려고 결심한 것도 아버지와 communicate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내가 벗어던지려 해도 절대, 절대 벗을 수 없는 내 피부색의 역사를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폴의 머리 위로 주홍 불빛이 아늑하게 쏟아져내렸다. 어스름한 주점에 진동하는 식용유냄새와 담배냄새,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폴이 파전을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마다 자신의 사연을 품은 채 온갖 말들이 부유하는 주점에 앉아 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오래전 폴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도, 왜 영화감독의 꿈을 접었느냐 했던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 것이다. 교포들의 역사는 narrative가 진부하죠. 어느 집의 역사든 다 다르지만 이야기로 만들고 나면 cliche예요. 처음에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 내 이야기 하고 싶어서였는데, 너무 뻔해. 그래서 관뒀어요. 폴이 그 말을 하며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따뜻한 정종과 어묵탕이 있던 일본 선술집에서였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교포의 삶은 더더욱 알지 못하던 내가 왠지 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사실뿐이다. 누군가에게 가장 절실한 사연이 왜 타인 앞에서는 진부해지고 마는 걸까. 나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우리의 첫 오피스 아워를 기억해냈다. 폴이 파전을 한점 집었다. 주점 밖에서도 사람들은 토해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품고 비틀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폴을 잃고 있음이 점차 실감이 났다.
폴과 유리꼬는 산에서 내려온 뒤 아직까지 마을에 살고 있던, 아버지의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 함께 술을 마셨다. 술기운까지 겹친 탓인지 폴은 아버지와 동창들이 사투리를 섞어가며 나누는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뭔가 굉장히 즐거워 보였어요. 미국에선 늘 이방인 같았던 아버지는 동창들과 함께 있으니 오랫동안 거기에 섞여 살아온 사람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유리꼬는 그들의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였는지 아버지의 동창들에게 서툰 한국어로 자꾸 말을 붙였다. 일본 며느리가 싹싹하구먼! 아버지의 동창들은 그런 유리꼬에게 술을 연거푸 따라주었다. 싹싹허기는. 아버지는 유리꼬가 따라준 술을 받아마셨다. 한국의 중년남자들 틈에 혼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비뚜름히 앉아 있는 일본 여자아이. 이방인 중에 가장 이방인처럼 보였을 그 아이의 모습이, 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안에 떠올랐다가 환영처럼 사라졌다. 그사이 아버지는 폴에게 여러차례 눈짓을 했다. 폴은 그것이 술값을 몰래 계산하라는 싸인이라는 것을 이내 알아챘다. 멀리서 온 손님한테 우리가 사줬어야 하는데! 폴이 이미 계산을 마쳤음을 알게 된 아버지의 옛 친구들이 거나하게 취해 왁자지껄 큰 소리로 떠들었다. 미국 가서 돈도 벌고, 아들도 신수가 훤하고, 아주 성공했구먼! 아버지는 바로 그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동창들과 헤어진 뒤, 하룻밤을 묵기 위해 사촌형네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는 넘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비틀거렸다. 폴은 아버지의 야윈 허리를 부축했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소주와 골뱅이 냄새가 진동했다. 폴과 아버지, 그리고 그들 뒤를 따라오던 유리꼬는 다시 예전에 아버지가 살던 집 근처에 다다랐다. 아버지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이제는 남의 집이 된 그곳 마당을 바라보았다. 아니, 마당 한복판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를. 봄이 오면 저기에 목련이 피었단다. 너 아냐, 목련?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고 싶어요? 폴이 물었다.
80년대에 이미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2000년대 초반까지 그린카드 소지자로 머물러 있었다. 영어실력이 도무지 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달러를 벌어들이고 아들을 미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한국의 망령에 씐 사람처럼 한국어만 썼고, 청국장을 끓여먹었고, 교회 사람들 몰래 제사를 지냈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 자주 답답해했지만 그날밤 폴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진정한 바람은 보란 듯이 성공해서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이서 다시 이 근처 어딘가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동창들과 소주를 마시며 천천히 늙어가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답은 폴의 상상과는 다른, 영 엉뚱한 것이었다.
모든 게 참 달라졌구나.
달라졌다는 것이 아버지의 옛집인지, 정산인지, 아니면 한국인지 폴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버지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하다는 사실이었다. 한참 동안 담장 너머 목련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유리꼬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물었다.
미쓰 유리꼬. 유 러브 마이 썬?
유리꼬가 수줍게 웃으며 한국말로 대답했다.
네, 사랑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그러나 한국인 특유의 팔자걸음으로.
나 대답 잘했어요? 유리꼬가 불안한 눈빛으로 폴에게 물었다.
이상하죠?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알 수가 있었어요. 그순간, 아버지가 유리꼬를 approve했다는 걸요.
폴은 유리꼬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한 뒤, 아버지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버지, 우리 여기다가 오줌 싸요.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싶어 폴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바지춤을 풀었다. 폴과 아버지는 지도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정산의 어느 돌벽을 마주보고 나란히 서서 오줌을 오래오래 누었다. 휘황하게 보름달이라도 떴으면 그들의 오줌줄기가 곡선을 그리며 빛났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날은 달이 뜨지 않는 그믐이었다. 그렇지만 폴은 말했다.
그렇게 시원하게 오줌을 눈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멈추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쏟아졌으니까요.
그것이 끝이었다. 폴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그리고 며칠 후, 폴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봄에 식을 올리는 것으로 알겠으니 날 풀리기 전에 유리꼬와 함께 미국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남긴 채.
그래서, 저 잠깐 미국으로 돌아가려고요.
결혼소식을 알리기 위해 이 긴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한무리의 사람들이 와아아,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술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술을 마시는 동안 비가 오기라도 했는지 아스팔트는 젖어 있었다.
선생님, 미국 다녀와서 나중에 유리꼬랑 함께 또 봐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폴이 아주 예의 바르게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나는 여러 계절 나를 웃게도 울게도 했던 나의 짝사랑이 저물어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폴은 아버지와 완전히 화해한 것일까? 팔자걸음으로 내게서 멀어져가는 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궁금증이 일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설혹 그림책의 한 장면처럼 달빛 아래 함께 오줌을 누었다 해도 현실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언제나 아름다운 엔딩을 갖고 있지 않는 법이니까.
폴, 왜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해준 거야? 술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폴의 답이 그 순간 떠올랐다. 왠지 선생님만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줄 것 같았어요. 도대체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수많은 취객들 사이에 마주 앉아 폴이 들려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지금,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의해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자 내게 실연을 안겨준 그가 더이상 원망스럽지만은 않았다. 실연당한 여자의 자기위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어쩐지 그가 해준 이야기가 내 초라한 사랑에 대한 그만의 응답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폴.
나는 폴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의 이름을 다급히 불렀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이제 두번 다시 나는 이런 감정으로 그를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한번도 그럴 듯하게 명명된 적이 없는 초라한 내 사랑. 이제와 고백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만큼은 건네고 싶었다. 삼십대의 사랑은 그렇게 쉽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가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폴의 얼굴이 지닌 곡선들을 눈으로 더듬듯 천천히 바라보았다.
폴, 아버지의 고향이 충청도지?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폴은 어떻게 알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많이 고쳐졌지만 폴에게 한국어를 처음 가르쳐주던 오래전, 폴의 어눌한 한국어에는 충청도식 억양이 상흔처럼 남아 있었다. 아무도 모르던 그 사실을 알아채고 나서 나는 폴의 비밀을 공유하게 된 것 같아 얼마나 행복했는지.
폴.
나는 또 돌아서는 폴을 붙잡았다. 그가 천천히 뒤돌았다.
폴, 한국 이름은 뭐야?
내 질문에 폴이 씩 웃더니 대답했다.
Junchan.
준찬. 폴의 부모가 그에게 지어준 이름에는 외국인이 구분해 발음하기 힘든 음운인 ‘ㅈ’과 ‘ㅊ’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ㅈ’과 ‘ㅊ’ 대신 원순성을 동반한 유성 파찰음 j와 무성 파찰음 ch 그리고 ‘ㅏ’와 ‘ㅐ’의 중간 발음인 ‘a’로 이루어진 폴의 이름을 입속으로 가만히 불러보았다. 내가 온전히 발음할 수 없고, 폴의 부모도 온전히 발음할 수 없을 그 이름, Junchan. 그라는 사람은 준찬과 Junchan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었다. 나는 이번엔 폴의 발음을 교정해주지 않았다. 비록 내가 그의 이름을 그가 발음하는 대로 부를 수 없더라도 이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나는 믿었으므로.
안녕.
나는 속으로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폴은 슬몃, 미소를 짓더니 다시 뒤돌아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눈앞이 온통 아시아인들뿐이라 너무 놀랐어요. 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나는 오랫동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폴이 그를 닮은 듯 닮지 않은 사람들에 섞여 더이상 구분이 되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