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삶도 사랑도 동사(動詞)다
고은 시집 『상화시편』 『내 변방은 어디로 갔나』
장석주 張錫周
시인, 비평가. 비평집 『이상과 모던뽀이들』, 시집 『몽해항로』, 산문집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등이 있음. kafkajs@hanmail.net
이 글은 시력(詩歷) 50년을 넘긴 고은(高銀)이 근자에 함께 내놓은 시집 『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창비 2011)과 『내 변방은 어디로 갔나』(창비 2011)에 대한 서평이다. 나는 『만인보』(전30권, 창비)의 시적 폭발을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징후라고 읽었다. 만인의 삶을 두루 톺아보고 역사라는 큰 테두리에 비추어 그 뜻을 새겨 꿰는 신묘한 솜씨로 시인은 이미 높은 경지에 들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낸 바 있다. 이 두 시집은 그 이후다. 먼저 『상화 시편』은 시인이 아내에게 바친 연시(戀詩) 모음집이다. 연시는 사랑의 현전이 빛바랠 수 있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오늘도 나는 감히 사랑의 떨려오는 처음입니다”(「사랑은 사랑의 부족입니다」)라고 쓸 수 있는 자만의 것이다. 모든 사랑은 ‘나’라는 일인칭을 기점으로 삼는다. 여기에서 출발해 “겉잡을 수 없이 참을 수 없이”(「지각」) ‘너’에게 미쳐가는 도정이다. 끝내는 ‘너’에 대한 갈망에 바치는 ‘나’의 헌신, 몸과 마음의 아낌없는 바침, 자발적 얼빠짐으로 귀결한다. 사랑은 본질에서 이타주의의 원시적 흔적이고, 그 시원(始原)이다. 만남, 헤어짐, 재회, 결혼, 임신, 나날의 일상으로 이어지는 편력 속에서 얻은 그 사랑의 황홀경에 대한 예찬이요, 그 사랑의 중독성에 대한 성토요, 그 사랑의 불가피성이 불러오는 기쁨의 확신에서 우러나온 ‘자랑질’이다.
두 사람이 사랑으로 스미고 섞인 뒤 나온 시들이지만, 뜻밖에도 연시의 사인성(私人性)과 내밀함은 희박하고 고은 시의 시적 공공성이 엄연하다. “너를 사랑해야겠다/세상의 낮과 밤 배고프며 너를 사랑해야겠다”(「서시」)와 같이 사랑에의 의지가 분명한 반면, “어떤 새는 한 번 울고 죽는단다 왜 그러는지 모른단다”(「서시」)와 같이 사랑 밖의 일들은 ‘잘 모름’ 속에 있다. ‘잘 모름’의 본질은 소극적 세계 부정이다. 이는 사랑 앞에서 어디로도 “도망갈 데 없”고, “화장실에서/내 오줌도 바로 숨족”(「네가 화낼 때」)여야만 하는 그것의 압도적 영향 아래서 일어난다. 고은의 연시들은 “그대와 나는 젖형제였는지 몰라/아니 누가 먼저 나온 줄 모르는 쌍둥이였는지 몰라”(「골백번」)에서 “사랑은 너무 늦게 내 몸에 박힌 화살들”(「지각」)이라는 각성을 거쳐, “사랑은 감히 한 시기가 아니라 한 생애 그다음까지이리라”(「춘당지」)라는 미래까지 선취하고 포괄한다. 사랑에의 의지는 기어코 사랑에의 앎으로 바뀌는데, 그 앎이 가닿은 궁극에 “사랑은 자못/사랑의 부족입니다”(「사랑은 사랑의 부족입니다」)라는 구절이 오롯하다. 오로지 사랑만으로 사랑의 황홀경을 감당하는 고은의 연시들은 결핍으로써 존재증명을 하는 사랑의 인식론적 깨달음 위에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고은의 시는 교향악적 융합의 시다. 고은의 시들은 나와 너, 일인칭과 삼인칭, 삶과 죽음, 구체와 추상을 뒤섞은 융합이고 그것의 눈부신 육화다. 아울러 세계의 구태와 나태의 징표인 진부함을 뒤엎는 혁신의 역동성으로 빛나는 게 고은 시의 현재다. 시인은 “가장 흉측망측하고 뻔뻔한 중심이라는 것”을 전면 부정한다. 왜? 그게 삶을 가리산지리산하게 만들고 삶의 바탕을 파괴하는 가까인 까닭이다. 중심을 부정하고 찾는 게 ‘변방’이다. 그 변방은 “호된 가난 견디어온 광대뼈로/제사상 앞에 엎드리던 곳/백년대계 따위 소용없는 곳/궂은비 오는 날 끼리끼리이던 곳”(「내 변방은 어디 갔나」)이다. 비록 푸서릿길을 가는 변방의 삶일지라도 거기에는 삶의 실체적 진실이 스며 있다. 변방의식은 혁신의 역동성을 낳는 시작점이고 당위론적 근거다. 내 변방은 어디로 갔나에서 이 점은 또렷하다. “이토록 지엄한 암석의 하세월”(「태백으로 간다」)에서 “아하 너나 나나 다 진화 멈춘 지 오래”(「잠꼬대」)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거침없이 관습의 도식을 넘어서서 본질을 꿰뚫는다. “살아가고 있다//또는//죽어가고 있다//쓰르르히 밤바람소리 인다 살아 있다고 횡경막께 아파온다”(「자정 무렵」)라는 구절에서 더욱 선연해지는 삶의 구체적 실감에, 문명의 반생명성을 꿰뚫고 나오는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다시 말한다/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포고」)이라는 명령문들이 포개어지고, “소위 근데 보편의 은유들 너무나 오래되었다”(「다시 은유로」)라는 통찰들이 덧씌어진다. 시인의 그윽한 시선이 가닿은 곳은 “밀물로 오고/썰물로 가는 것 좀 봐” “따라서/저 개펄 게들 게새끼들 눈코 뜰 새 없는 그리움 바쁜 것 좀 봐”(「저 그리움 좀 봐」)라는, 생명들이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기운들로 꽉 찬 곳, 생채(生彩)로 가득 찬 지공무사(至公無私)의 현실계다. 시인의 부정은 지극한 긍정이다. 그래서 「일몰」에서처럼, 이 세상은 단 한번도 다시 태어나서는 안될 누추한 세상이면서 동시에 여섯번이나 일곱번씩 다시 태어나고 살아야 할 빛나는 세상이다! 시인에겐 그런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삶도, 사랑도 다 동사(動詞)다. 동사로 삶과 사랑을 늠름하게 밀고 나가는 고은만이 유일하게 고은 이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