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어준 『닥치고 정치』, 푸른숲 2011
놀라운 통찰과 예지의 정치 구라
김보협 金補協
『한겨레21』 기자 bhkim@hani.co.kr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라디오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와 그에 힘입어 인문사회서로는 드물게 25만부 넘게 팔린 『닥치고 정치: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지승호 엮음)의 공통점은 ‘김어준(金於俊)’이다. 10월 재보선 전후 증폭된 정치적 열기는 급기야 ‘김어준 현상’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한겨레21』 879호(2011.10.3)에 실린 「지금은 개념구라 전성시대」를 취재하면서 김어준에게 ‘구라’의 비법을 물은 적이 있다. “타고나는 것”이란다. 『닥치고 정치』에서 그는 좌파와 우파 역시 타고난 기질이라고 주장한다. 천성이라는 얘기다. 이런 말들과 그의 프로필을 연결지어보면 김어준은 ‘천재’일지도 모른다. 유명 대학이나 국가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적이 없고, 대단한 학술적 업적이나 논문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와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천재의 정의에 비춰볼 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1998년 ‘황색 사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을 표방하며 ‘각종 사회비리에 처절한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아 태동한 인터넷신문 『딴지일보』의 총수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의 천재성은, 나꼼수와 『닥치고 정치』에서 정점을 향하고 있다.
지배집단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촌철살인의 풍자가 주특기인 김어준의 재능은 복잡하고 어렵게 꼬인 사안을 만났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흐름과 맥락 속에서 본질을 콕콕 짚어낸다. 김어준의 말과 글을 통하면, 지난 2007년 대선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각종 의혹들, 즉 도곡동 땅-다스-BBK 실소유주 논란은 물론이고 최근에 불거진 내곡동 땅 문제까지 술술 풀려나온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 말하는 이들은 희소가치가 있다. 게다가 김어준은 재미까지 있다.
평소 고매한 인격을 자랑하거나 품위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은 『닥치고 정치』를 읽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김어준식으로 말하면 제목부터 “졸라” 예의 없다. 소설가 박민규식 문체로 쉼없이 쉼표를 남발한 서문에서 그는 미리 경고한다. “근본있는 자들은 괜히 읽고 승질내지 말고 여기서 덮으시라.” 약도 올린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열 받으면 니들도 이런 거 하나 쓰든가.”
이 책에는 김어준이 약속한 “어떤 이론서에도 없는, 무학의 통찰”이 정말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21세기판 『정감록』처럼 정치와 관련해 많은 예언을 내놓는다. 그 예언의 적중률은 100%다. 올해 5월 초부터 한달에 걸쳐 여섯차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묻고 김어준이 답한 것을 엮었는데, 10월 초 책으로 내면서 이미 벌어진 일들을 가필하지 않았다면 정말 대단한 통찰력과 예지력이다. 대담 이후 7월께 벌어진 손학규의 지지율 하락과 문재인의 부상, 홍준표의 한나라당 대표 당선, 그리고 ‘안철수 돌풍’과 자신의 ‘나꼼수 대박’까지 정확히 예측해냈다.
『닥치고 정치』의 ‘앙꼬’는 2012년 대선 전망이다. 정치심리학이라는, 대중에겐 생소한 프레임으로 본 김어준의 전망은 이렇다. ‘거대 유행’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메가트렌드’는 일반적으로 “갖지 못한 걸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대선도 마찬가지란다. “5년간 대통령 하면, 그게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때론 그의 장점조차, 사람을 피로하게 만드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 그로 인한 피로감, 그리고 그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을 메우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꽃미남’에 열광하다 씩씩한 수컷에 대한 아쉬움으로 ‘짐승남’을 찾게 되고, 목 위가 부실한 짐승남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도회적이고 세련된 남자 ‘차도남’에 끌리게 되는 것처럼, 대선에도 메가트렌드가 있다는 얘기다.
그의 책에는 ‘시대정신’ 같은 고담준론도, 과학을 빙자한 여론조사 수치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정치와 연애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다. 이른바 정치심리학이다. 이를 토대로 그는 2000년 노무현의 부상, 2010년 심상정·노회찬의 엇갈린 선택을 예로 들면서 “선거에서 당선이란 정치인이 대중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왔던 부채의식, 그 빚을 한번에 찾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어준이 발굴한, 탐욕과 꼼수로 가득찬 이명박시대의 결핍을 메울 ‘차도남’은 문재인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이 붙으면 문재인이 이기고, 대통령이 되면 잘할 거라는 ‘썰’을 한참 풀어놓고서는, 문재인은 출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을 덧붙인다. 자기가 만나봤더니 그렇게 생겨먹었단다. 책에는 김어준이 세상을 보는 창, 예를 들면 좌・우의 개념, 그리고 그가 파악한 BBK사건의 전말, 그리고 재벌, 특히 글로벌 기업이라고 자랑하는 삼성의 꼼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밖에 대중이 알 만한 정치인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대부분 김어준이 인터뷰하고 “매우 개인적인 결론”을 내려놨다.
그가 정치와 정치인을 읽는 코드는 독창적이다. “정치를 이해하려면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과 그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섭해야 한다.” 자신은 그걸 한다고, 주장한다.
김어준은 사실 텍스트보다는 구라에서 제맛이 난다. 1970,80년대에는 재야운동가 백기완, 소설가 황석영, 미술평론가 유홍준이 ‘조선의 3대 구라’로 불렸는데, 김어준과 그의 친구들의 구라는 21세기형 개념 구라, SNS(사회관계망써비스) 시대의 마당놀이라고 부를 만하다. 동네의 넓은 마당이나 장터에서 풍자와 해학을 버무린 재담과 노래로 구경꾼들의 흥을 돋우는 마당놀이는 민중의 애환과 현실비판이 핵심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오프라인의 마당보다 더 넓은 마당을 열고 나꼼수의 구라들이 신명나게 놀면, 수백만의 청취자가 폭소와 댓글로 추임새를 넣는다.
언론이라는 게 없거나 언로가 막혔을 때 마당놀이가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가카 헌정방송’을 표방하는 나꼼수의 인기도 이명박 시대에서 비롯한다. 이명박정부는 온갖 꼼수를 동원해 영향력과 파급력이 큰 방송을 장악하고 친여 성향의 신문에는 종합편성채널이라는 특혜를 안겨줬다. 그리하여 말길이 막혔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손석희, 정관용, 김제동, 김미화, 윤도현 등을 쫓아내면서(김어준도 MBC라디오에서 쫓겨났다) 정치적 담론뿐 아니라 놀이의 장마저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김어준은 스마트폰 2천만 시대에서 새 말길의 가능성을 봤다. 나꼼수를 두고 국민대 교수(신문방송학) 이창현은 “소셜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저널리즘”이라고 평가했다.
나꼼수가 ‘객관성과 불편부당성을 접고 들어가는’ 만큼 정치성향이나 사안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은 아예 등을 돌린다. ‘품격 제로’를 불편해하는 이도 있고, 사실로 확정되지 않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힘든 부분에 대한 단정이 지나치다는 쪽도 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한겨레21』(881호, 2011.10.17)에서 “나꼼수에서는 상상력을 통해 사실과 픽션이 자유롭게 결합한다. 이른바 파타피지컬(Pataphysical)한 태도, 즉 어떤 것이 픽션인지 뻔히 알면서도 마치 사실인 척해주는 놀이는 디지털 문화의 일반적 특성이다. (…) 문제는 이 놀이가 ‘As if’(~인 듯이)의 성격을 벗어날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꼼수가 놀이를 넘어 선동이 된다면서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의 사례를 꼽았다.
지난 10월 29일 서울에서 열린 나꼼수 콘서트는 ‘폭로 저널리즘’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에리카 김의 녹취록(“〔그분과 나는〕 부적절한 관계였다”) 공개와 이명박 대통령의 혼외 자녀를 암시하는 듯한 “눈 찢어진 아이” 언급은 위험 수위를 넘나든다. ‘안기부 출신’ 국회의원 정형근의 호텔방에 방송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이명박과 에리카 김, 그리고 실존 여부가 불분명한 ‘아이’에게도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과 인권은 있다.
이명박정부는 나꼼수의 구라에 재갈을 물려 나꼼수를 더 키워줄 조짐을 보인다. 경찰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방송된 ‘연회비 1억 피부과’ 편을 수사하겠다고 했다. 나꼼수에 열광하는 일부에서는 나꼼수에 대한 애정어린 건강한 비판마저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의 팬덤 현상도 나타난다. 김어준과 나꼼수, 여러모로 연구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