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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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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鄭美景

1960년 경남 마산 출생.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내 아들의 연인』, 장편소설 『장밋빛 인생』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아프리카의 별』 등이 있음. mkjung301@hanmail.net

 

 

 

달콤한 게 좋아

 

 

*

 

들어오면서 그거 하나 사와라.

버스에서 막 내리는 순간 날아온 문자를 본 추는 저도 모르게 버스 정류장 주위를 살펴보았다. 엄마는 이 근처 어딘가에 CCTV를 설치해놓은 게 틀림없다. 혹은 천리안을 가졌거나. 아니면 이 예지력은 정녕 그것들의 신묘한 약효일까.

버스에서 내릴 때면 밀려오던 빵냄새의 행복감은 엄마가 그놈들을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끝났다. 성냥팔이 소녀의 마지막 성냥개비처럼 마음까지 훈훈하게 데워주던 달콤한 냄새는 이제 추의 얄팍한 지갑을 털어가는 재앙의 냄새로 바뀌었다. 어쩌겠나. 잔 매는 맞아줘야지.

추가 들어서는 걸 본 빵집 아저씨는 달라는 소리를 하기도 전에, 오늘은 재고가 없어, 하며 카스테라를 꺼냈다. 얼마 차이 안 나는데 신선한 걸로 사다드려. 그나마 하나 남았네. 거저 주는 것도 아니면서 생색은. 누가 먹는지도 모르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건 칠천원에 주지만 재고가 없는 날엔 겨우 천원을 깎아준다. 어머님이 워낙 좋아하시니 드리긴 하는데 이렇게 하면 우리도 남질 않아, 우는 소리까지 보탠다. 이거면 나흘이나 버틸라나. 지갑에 달랑 한장 남아 있던 만원짜리를 내밀고 도너츠 하나를 집을까 망설이다 그냥 거스름돈을 돌려받았다. 설탕에 굴려낸 도너츠는 추가 가장 좋아하는 빵이다. 이렇게 사는 줄 누가 알아. 그동안 이놈의 카스테라에 들어간 돈만 해도 오십만원은 좋이 될 것이다. 지난주에도 그랬다. 버스에서 막 내리면서 엄마의 문자를 받았다. 들어오면서 그거 하나 사와라. 집에 들어서자 연속극에 완전히 몰입해 있던 엄마는 눈을 몇번 깜박여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꺼칠한 새끼 얼굴보다 손을 먼저 쳐다보았다. 아이고, 아까 나갔다가 깜박했지 뭐냐. 깜박하긴. 카스테라는 언제나 추가 집에 오는 날 바닥났다. 분심이 공복감과 섞여 자글자글 끓어오른다. 엄마가 처음부터 못 주겠다고 딱 잘랐으면 이렇게나 헛돈을 카스테라에 쏟아붓진 않았을 것이다.

손에 쥐고 있으면서 안 주는 에미가 어디 있겠어. 좀 두고 보자.

어렵사리 돈 얘기를 꺼낼 때마다 엄마는 그렇게 여운을 남겼다. 복작거리는 골목시장을 걸어오르며 추는 오늘 꺼낼 얘기를 중얼중얼 몇번이나 연습해본다. 추의 집, 아니 엄마 집은 시장이 끝나는 지점에 있다. 일층은 절반으로 나누어 화장품 할인점과 죽집에 세를 주었고 이층은 엄마가 쓴다. 그 위는 원룸인데 추는 거기서 세가 얼마나 나오는지 모른다,기보다는 엄마가 가르쳐주질 않았다. 봄가을로 세금 내고 시도때도 없이 고장나는 데 수리하고 나면 입 하나 근근이 풀칠하기도 어렵다. 숫자로 얘기하면 간단할 걸 엄마는 언제나 몇줄의 비극적 문장으로 풀어냈다. 설이 지난 후로 독한 추위는 없었지만 아직 봄은 아니다. 추는 문을 열고 들어서며 오히려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루는 난방을 하지 않아 바깥보다 더 써늘하다. 엄마는 안방에서 연속극을 보며 손바닥에 쑥뜸을 뜨고 있다가 돌아보았다.

“왔냐?”

역시나 들어서는 추의 얼굴보다는 손을 먼저 쳐다본다.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쑥뭉치들을 핀셋으로 툭툭 털어내고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더니 문갑 위에 올려놓은 종이상자를 소중히 안아내린다. 뚜껑을 열자 반질거리는 흑갈색 점들이 확 흩어진다. 모두 한가지 종이나 크기는 제각각이다. 이것들은 날마다 새끼를 치는 걸까. 깨알 크기부터 엄지손톱만한 것까지 촘촘하게 모여 있다. 고물거리는 그것들은 추가 보기엔 영락없는 바퀴벌레인데 엄마는 절대 아니라고 우긴다. 그럼 뭔데? 따지듯 물어보면 엄마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은근하고 달착지근해진다. 이름이야 있지. 이름을 알아서 뭐 할라고. 부를 것도 아니고. 사실 이름을 부르면서야 어떻게…… 하며 말끝을 흐렸다.

엄마 이론으로는 이게 집안에 번성하면 부자가 되는데 그건 부수적인 효과고 오래된 고질병에 이보다 더 영험한 약이 없다는 것이다. 젊어서 늑막염을 앓았다는 엄마는 빨리 걸으면 숨이 찬 것도, 환절기면 마른기침이 심해지는 것도, 날이 궂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는 것도 다 늑막염의 후유증이란다. 추의 눈엔 엄마가 남달리 허약해 보이진 않는데 추의 그런 견해를 엄마는 정 없다며 서러워했다.

왔냐, 하며 추를 희뜩 쳐다보던 것과는 달리 정이 넘치는 눈길로 고물거리는 모양새를 한동안 내려다보던 엄마가 손을 내밀어 바닥을 슥 훑는다.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손바닥이 스치는 곳에 있던 놈들을 남김없이 쓸어담는 동작은 어찌나 빠르고 정확한지 볼 때마다 새삼 경이롭다. 주먹을 쥔 채 입안에 보리차를 머금고 있다가 고개를 젖히는 동시에 손에 쥐었던 것을 입안에 탁 털어넣고 꼴깍 삼키는 과정은 숙련된 마술사의 손놀림처럼 군더더기 없이 환상적이다. 채 넘어가지 않았는지 다시 보리차를 마시려고 입을 조금 여는 순간 급변한 환경으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던 놈들의 머리 부분이 입가로 삐죽 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등으로 자연스레 밀어넣는 엄마의 표정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종교적 차원의 신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종이상자 안은 그사이 평온을 되찾는다.

처음엔 엽기적이었지만 추는 언제부턴가 이 대체의학의 잔혹함에 무심해졌다. 좁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바둥대고 있을 그것들의 공포를 상상하면 이상한 쾌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그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몰입되면서 중독성 있는 재미마저 느껴졌다. 아무 목적 없이(얘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반박할까?) 이토록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다니! 놈들의 먹이를 종종, 아니 거의 매번 자신이 조달해야 한다는 사실만 빼면 적의를 느낄 까닭이 없었다. 미워하며 정든다더니, 언제부턴가 이것들은 수시로 추의 눈과 뒤통수 사이에 출몰하여 바글거리곤 한다. 지칠 때나 불안할 때, 화날 때나 막막할 때,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는 무심한 순간에도.

육 센티미터쯤이나 될까. 종이상자가 높지 않은데도 그것들은 바깥으로 나오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다. 상자 가운데에 카스테라를 놓아두는 작은 접시 하나가 있는데 뚜껑을 열어놓아도 놈들은 카스테라의 자기장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면 엄마가 먹어치운 만큼 수가 불어나 있고 가장자리엔 후춧가루처럼 검고 고운 배설물이 소복했다. 화장실 정도는 구분하는 놈들인 것이다. 그것들이 엄마의 예쁜 위장에 도달할 즈음이면 엄마는 언제나 깊은 애도를 표한다.

“아이고, 이 불쌍한 것들. 난들 먹고 싶어서 먹겠냐. 늑막염이 오래되면 가슴에 물이 차서 주사기로 한 대롱씩 빼내야 된다는데, 그게 다 네 짐 아니냐. 네 생각을 해서라도 내가 참 열심히 먹는다.”

“많이 잡솨. 많이 잡수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그것들을 삼킨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말끔한 얼굴로 엄마는 해맑게 웃는다. 벼르던 얘기를 꺼내기에 맞춤한 분위기였다.

“엄마, 가을 오기 전에 결혼을 했음 좋겠는데, 우리 여기 들어와 살면 안될까?”

엄마는 무척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는데 눈꼬리가 심하게 쳐진 바람에 길쭉한 세모꼴이 되어버렸다.

“얘 좀 봐! 지금 그 방이 어때서. 에미 골병든 거 안 보이냐? 오죽하면 이것들 먹고 있는 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이 몸으로 며느리 밥해대라고? 새끼 낳으면 키우라고? 난 못해.”

“누가 밥해달래? 아침 안 먹고 다녀.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올게. 아니, 우리가 집안일 다 할게.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들어와 사는 동안은 애도 안 낳을게. 엄마, 그 방이 작아서가 아니라, 새해 들어서 월세를 이십이나 올려달라는데 매달 칠십을 어떻게 부담해.”

“한번 생각해봐라. 혼자 벌어서는 굶어죽기 딱 알맞으니 네 색시도 일하러 나가겠지. 여기서 같이 살면, 시간 없고 부엌일 서툰 민혜가 하겠니, 손 빠르고 맛있게 하는 내가 하게 되겠니?”

추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엄마는 다시 조근조근 따져물었다.

“며느리 야근하느라 늦는 날, 내 밥만 차려먹으면서 넌 기다렸다 네 색시 오면 같이 먹어라, 너 같으면 그럴 수 있겠니?”

“사실, 그럴 수는 없겠죠.”

“거봐라. 같이 살다보면 결국 나만 나쁜 사람 되는 거야. 서운하다 생각 마라. 같이 산다는 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린데, 꼭 남자가 집 마련해야 되는 법이라도 있니. 네가 키가 작냐, 인물이 빠지냐. 남의 집 자식들은 연애도 계산속 있게 하더만, 내 복에……”

엄마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마른기침을 쏟아낸다. 기침소리는 늑막이 아니라 목구멍 끝에 매달려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거절당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아니, 말도 못하게 서운하다. 법정 전염병 환자라도 이렇게 대놓고 어깨를 돌려세우는 건 아니지. 울컥했지만 더 밀어붙였다간 아예 판을 깨게 생겼다. 사실 집문제야 엄마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니다. 상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을 먼저 하라. 일단 거절당한 후 진짜 원하는 걸 꺼내라. 협상 전문 실용서에서 읽은 얘기다. 추는 서운한 낯빛을 감추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그건 됐고. 엄마, 오백만 빌려줘. 그냥 달라는 거 아니야. 딱 일년만 빌려줘. 나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고 일어설 거 아냐. 일년 뒤엔 원금하고 은행이자 쳐서 한번에 돌려줄게. 각서라도 쓸게. 아들 한번 믿어봐.”

나름 콧소리에 어깨도 살짝 흔들어보았다. 오백 얘기도 처음은 아니다. 다만 여태까진 유산 먼저 주는 셈치고 그냥 달라 했었다. 카스테라 사들고 다니며 무던히도 실랑이를 했지만 엄마는 맷집 좋게 버텨왔다. 결혼할 아들이 홀어머니 모시고 살겠다는 걸 거절한 판에, 일년 후에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며 빌려달라는 것마저 안된다 하지는 못할 것이다. 추의 계산이었다.

그랬는데 엄마는 세모꼴 눈으로 추를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석가모니와 가섭이 이러했겠지. 그 눈빛은 백마디 말을 담고 있었고 그 한마디 한마디가 눈에서 눈으로 전해져왔다. 차라리 꽥 소리라도 지르면 이렇게 힘이 빠지진 않겠다. 엄마는 상자 위로 머리를 굽히고는 아기 어르듯 콧소리를 내며 카스테라 한조각을 접시에 놓아준다.

“오백만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는 오빠가 카스테라 사왔네. 많이 먹소, 많이 먹어. 예쁜 새끼들.”

가까이 있던 놈들부터 달려들어 카스테라 조각에 머리를 박기 시작한다. 카스테라는 금세 까맣게 끓어오르는 액체처럼 보인다. 몸에 비해 유난히 작은 머리통은 막무가내 들이밀기에 딱 좋은 구조다. 그렇긴 해도 어디에나 뒤처지는 놈들이 있다. 기웃거리다 도무지 틈을 찾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놈이 하나 보인다. 재빠르게 오가는 것들 사이에 가만히 멈추어 있는 놈을 지켜보다 가운뎃손가락으로 꾸욱 눌러버렸다. 깨알만한 머리로는 생각이란 걸 하지 말아야지, 이놈아. 누릿한 체액이 터져나온다. 미약한 몸부림마저 없다. 엄마가 등을 찰싹 때리며 비명을 질렀다. 얘 좀 봐! 어찌나 아픈지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건 추다. 던져준 먹이도 못 챙겨먹는 놈은 죽어야 돼, 엄마. 엄마는 눈을 허옇게 흘기곤 카스테라 한조각을 더 잘라서 넣어준다. 새로운 먹이를 향해 까맣게 달려드는 놈들을 엄마가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 문갑 아래를 흘깃 훔쳐보았다. 낯익은 박스 끝부분이 보인다. 지난 번에 사온 것이니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을 것이다. 깊숙이나 밀어넣어두던지. 자식놈 피가 마르는 줄도 모르고 카스테라 하나라도 더 긁어내고 싶을까. 카스테라 박스야 손닿는 곳에 놓여 있지만 엄마의 통장이 어디 있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 지난주엔 엄마가 잠깐 시장에 내려간 틈에 허겁지겁 찾아보았지만 통장은 흔적도 없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서랍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자식이 도둑도 아니고, 이렇게 못 믿나. 추는 고물거리는 것들을 입이라도 맞출 듯 사랑스럽게 들여다보고 있는 엄마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자존심 세우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나빴다.

“엄마, 그러면 삼백이라도.”

엄마는 이제 추를 쳐다보지도 않고 판소리 가락을 늘어놓는다.

“남들은 욕을 하겠지. 이만한 집 가지고 있으면서 자식에게 박정하다고. 천장에서 쥐가 떨어져내리고 저 혼자 바스라져내리는 집 손보기도 넌더리난다며, 네 아부진 팔아치우고 조그만 아파트로 가자 했지만 늙어서 뭐 먹고 살겠냐며 헐어서 새로 올리자고 우긴 건 나다. 돈이 있어서 지은 게 아닌 줄은 너도 알잖니. 공사대금이 턱없이 모자라 빚 갚느라 말도 못하게 고생했다. 잡부 하나라도 줄여볼라고 벽돌을 들어 나르다 결국 늑막염에 걸리지 않았니, 내가. 상량도 못하고 네 아부지 저세상 가는 바람에 새집에 발도 못 들여봤지. 복이라곤 없는 양반. 그 인간이 내게 해준 거라곤 싹퉁머리 없는 아들 하나 떨어트려 평생 지고 가게 만든 거밖에 없다.”

추는 얼른 종이상자를 들여다보는 척했다. 엄마는 아무리 먼 곳에서 화살을 날려도 과녁을 놓치는 법이 없다. 다만 과녁도 아프다는 걸 모른다.

“세 받아먹고 사는 게 신선놀음으로 보이냐? 전생에 죄 많은 인간이 세 받아먹고 산다. 제때 월세 내는 인간 하나도 없다. 목구멍에 가래톳이 서도록 들볶아야 적선하듯 내놓는다. 계단청소 하느라 관절이 닳아서 네 어미가 계단을 기어서 오르내리는 줄은 아냐? 엄지손가락이 고장나 툭하면 밥숟가락 떨어뜨리는 줄은 아냐? 내가 왜 이 불쌍한 것들을 한주먹씩 삼키는 줄, 너 아냐?”

터져나오는 방언을 가까스로 멈추고 엄마는 보리차를 한모금 마시며 추를 버러지 보듯 쳐다보았다.

“나도 이거 팔아치우고 네 몫 떼어주고 근처에 있는 다가구라도 들어가 살면 세상 편하겠다. 왜 못하는지 아냐? 전세 빼주고 쪼그만 거 하나 사면 빈손인데, 그때부터 내 생활비는 누가 대니? 네가?”

추는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그새 카스테라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 나! 그때 벽돌 날라 이 집 짓지 않았으면 손가락 빨다 진즉 굶어죽었다. 자식 꼴이 이런데.”

엄마는 꾹꾹 눌러놓은 심사를 오늘에야 터뜨린다는 듯 통절하게 외쳤지만, 순서까지 다 외우고 있는 이야기다. 그 소리 나올 줄 몰라 말 꺼낸 게 아니다. 한달 넘게 이리저리 날뛰면서 깨달은 바지만, 단돈 십만원도 남의 돈 빌리는 게 쉽지 않았다. 엄마 외엔 카스테라 한조각 던져줄 인간이 이 우주에는 없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 일주일 사이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만큼 엄마가 유연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찾아온 건 그만큼 사정이 화급해서다.

채권추심 담당자는 우선 이자라도 갚으면 원금 부분에 대한 환급은 유예를 해주겠다고 했다. 안 받겠다는 것도 아닌데, 저승사자처럼 덤비다 그렇게라도 형편을 봐주겠다니 눈물이 팍 쏟아졌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던가. 실제보다 대폭 축소했음에도, 상황을 털어놓은 이후로 민혜 역시 추를 버러지 보듯 쳐다보았다.

강에게 주기로 약속한 투자금의 아귀를 맞춰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을 때였는데, 하필 휴가기간에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민혜에게까지 돈 빌릴 생각은 안했을 것이다. 네 눈이 어때서. 예쁘기만 한데. 오빠 말고 다른 사람 눈에도 예뻐야지. 외모가 경쟁력이잖아. 지금도 넘치게 예쁘다. 그러지 말고 그거 몇개월만 투자해라. 일년만 투자하면 두배로 돌려줄게. 그때 하면 원금은 고스란히 남잖아. 몇번 만나지 않아서 추는 강의 화법을 닮아가고 있었다. 재차 조르자 민혜는 눈을 몇번 깜박였다. 차용증 써줄 수 있어? 차분한 목소리였다. 차용증? 되묻자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싫으면 그만두고. 사실 엄마가 못 준다 할 때보다 더 서운했다. 차용증이라니. 언제는 나 죽으면 따라 죽겠다더니. 차라리 돈이 없다고 그래라. 야, 너 어떻게 그래? 민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대답하는 대신 뜬금없는 걸 물었다. 오빠, 이건희 회장 재산이 얼만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천억도 넘겠지. 흥, 소심하긴. 일조도 넘을 걸? 쪼그만 게 간은 커가지고. 민혜는 한숨을 폭 쉬었다. 그래, 쪼잔하게 천억이라고 치자. 만약 누가 천억을 빌려달라고 했어. 이건희는 빌려줄 마음이 있어. 그런데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받을 거 같아? 안 받을 거 같아? 유치한 말이었지만 민혜 목소리는 진지했다. 무엇보다도, 천억이 전재산이라면, 빌려줄까? 이건희도 안하는 일을 왜 나한테 강요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차용증을 써서 이름을 쓰고 도장도 찍어주었다. 기특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매사에 이런 식이면 살림은 또 얼마나 야무지게 하겠나. 서운한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얘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조근조근 잘하게 된 거지? 이게 모두 나 때문인가.

눈치는 또 얼마나 빠른지, 지연되긴 하지만 큰 문제 없다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강의 말을 그대로 옮겼지만 쌍꺼풀 수술을 하지 않아도 예쁜 민혜 눈에서는 즉시 눈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거, 개같이 벌어서 모은 돈이야. 추도 안다. 땀내에 전 캐릭터 인형 뒤집어쓰고 미친년처럼 춤을 춰서 받은 돈이었고, 한겨울에 맨다리 내놓고 종일 밖에 서서 판촉하느라 생리불순에 냉증까지 얻으며 모은 돈이었다.

만난 지 삼년이 넘도록 지하철에서 삼초면 하나씩 눈에 띄는 명품가방 하나 사주긴커녕 수술할 돈마저 날려버린 자식을 믿고 사는 자신이 불쌍하다는 듯 민혜는 다친 사슴처럼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추가 야망이 큰 인간은 못되지만 단 한사람에게만은 세상의 어떤 화살도 뚫을 수 없는 갑옷을 입은 용사로 보이고 싶었다.

쌍꺼풀 없이 얇실한 민혜의 눈을 보고 추의 친구들은 색기있는 눈이라며 조심하랬는데, 자보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찌나 독창적이고 성실한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울 지경이었다. 그랬던 민혜가 요즘은 계를 받은 비구니처럼 굴었다. 추가 손을 대면 천연두 환자라도 되듯 펄쩍 물러섰다. 피가 끓을 나이는 지났지만, 옆구리에 사리가 생길 것만 같았다. 솔직하자면 급한 건 결혼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성생활이었다. 간소하게라도 올해 결혼을 하자 했을 때 민혜는 추의 얼굴이 아니라 벽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마 호환보다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신용불량이야. 언제부턴가 남자 재력 따지는 애들이 속물로 보이지 않더라. 난, 꿈이 소박해. 그저 늙어서 연금 나오는 남자면 돼. 철없을 땐 몰랐는데, 이 나이 되니까 연금의 세계라는 게 보이더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죽을 때까지 연금이 따박따박 나오는 사람과 연금 한푼 없이 늙어가는 사람. 솔직히 말단공무원 매력 없다 여겼거든. 근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이월이나 구월이나 매달 생활비가 나온다는 거, 그게 진짜 럭셔리 아니겠어? 말해봐. 동사무소 가서 창구에 앉은 사람 존경해본 적 없지? 삼십년 후에 그 사람들이 자길 얼마나 우습게 볼지 곰곰 생각해봐.

그건 그 사람들이 아니라 제가 우습게 본다는 말이겠다. 생각해보니, 제 형편이 그물을 감고 물에 빠진 꼴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차용증을 쓴 순간 민혜와의 관계는 다른 차원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지금으로선 그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는 네 인생, 나는 내 인생이 있다. 서운타 마라.”

더이상 긴말 하기 싫다는 듯 화두를 던진 엄마는 종이상자 위에 코를 박는다. 쥐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으랬는데. 오백이면 우선 민혜에게 준 차용증을 찢어버리고, 육개월의 상환유예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요즘 자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지, 왜 밤마다 불면에 시달리며 미쳐가는지, 사람취급 못 받는 전화와 문자에 시달려 피가 마르는지 안다면, 이럴 수는 없다.

추는 부엌으로 나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단숨에 반이나 들이켜고는 현관문을 밀고 나왔다. 문이 닫히자 옥상으로 연결된 계단 쪽 쎈서등이 반짝 켜진다. 계단참을 돌자 아래쪽 등이 꺼지고 위쪽이 환해진다. 모퉁이를 돌자 켜지고 꺼지고. 다시 켜지고 꺼지고. 인생이란 것도 이렇게 아주 짧게 켜졌다 꺼지는 순간일 뿐이겠지. 그 순간이 길어봤자 얼마나 길겠는가.

 

*

 

옥상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밖으로 나서자 눈이 저절로 가늘어졌다. 늦겨울의 오후치고 옥상은 기이하리만치 환하다. 자잘하게 부서진 햇살이 투명하게 남실거린다. 추는 눈을 몇번 깜박이다 고운 비단의 결을 살피듯 손바닥을 허공에 대고 살짝 쓸어보았다. 콘크리트 바닥이 햇빛을 고스란히 되쏘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잠시 후면 이 공간, 그리고 시간과도 영원히 헤어질 것이라는 예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싸한 추위마저 팔월의 풋사과처럼 상큼하고 젖아기의 날숨처럼 달게 느껴진다.

추는 옥상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별을 고하는 시선이었으나 옥상엔 감회를 실어 바라볼 만한 것이 없었다. 옥상에 마지막으로 올라와본 게 언제더라. 이 집에 살 때도 담배를 피우러 저녁 때 가끔 올라온 적은 있지만 낮에 올라와본 기억은 없다. 난간 아래로 크기가 제각각인 화분 몇개가 놓여 있었는데 안에 담긴 식물들은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세입자들은 개업 때 들어온 화분이 시들거리면 물을 제때 안 준 생각은 안하고 햇볕을 못 받아 그렇다며 옥상에 올려다놓았다. 평소엔 있는 줄도 몰랐던 그것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작은 화분에 심긴 제라늄 속잎엔 아직 흐릿한 녹색 기운이 남아 있다. 한번도 예쁘다는 느낌을 가져보지 않았던 식물인데 짠한 마음이 들었다.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물을 주고 싶었다. 이 갑작스런 연대감은 그것의 추레한 모양새에서 촉발되었을 터이다. 혹은 의식하진 못했지만 무언가를 지연시키고 싶은 두려움의 가면이기도 했다.

계단과 연결되는 비상구 뒤편으로 돌아가보았다. 낡은 수도꼭지가 하나 있었는데 꼭지를 돌려보지 않아도 물이 나오지 않으리란 걸 알 수 있었지만 추는 꼭지를 비틀어놓고 아무 기척도 없는 그걸 잠시 내려다보았다. 난간과 출입문 고리를 연결해놓은 나일론 줄엔 집게 몇개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겨우내 엄마는 빨래를 거실에서 말렸다. 난간 너머로 몸을 조금 내밀자 집의 뒤편이 내려다보인다. 건물은 오후의 햇살 아래 초라한 밑천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콘크리트 바닥에 푸르게 낀 이끼는 벽을 따라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건물은 어느새 이 건물을 짓기 전에 있었던 집만큼이나 늙어 있다.

추는 아래를 망연히 내려다보며 제 삶을 정리해보았다. 지금의 추를 인수분해하면 나오는 인간관계라고 해봤자 셋이었다. 그 관계들은 하나같이 망가져버렸다. 민혜는 민혜가 아니고, 엄마는 엄마가 아니다. 강만이 허세와 허황뿐이던 옛모습 그대로였고 이 붕괴의 근원은 강의 그 성격이었다. 강이 아니었다면 통장엔 이천만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고 민혜가 추를 천연두 환자 보듯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추는 휴대폰을 꺼냈다. 요즘 강은 단번에 전화를 받는 일이 없다. 받을 때까지 걸어댄다는 걸 강도 알고 있다. 긴 발신음 끝에 강의 급할 것 하나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으응, 지금 좀 바빠서. 추는 머릿속으로 정리해놓은 말들을 또박또박 쏟아냈다. 잘 들어. 여기, 우리집 옥상이야. 나는 이제 뛰어내릴거고, 나 혼자 가진 않을 거야. 너도 같이 지옥으로 끌고 갈 거라구. 내가 죽고, 너의 악랄한 행각을 피로 적어놓은 다이어리가 공개되면 넌 살아도 죽은 목숨이야. 지금 당장 달려와. 네가 한 인간을 어떻게 망쳐놓았는지 보여줄게. 수박처럼 터져서 너한테 지워지지 않을 피를 뿌리고 갈 거야. 너는 평생…… 강이 말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있잖아, 좀 이따 전화할게. 지금 거래처에 나와 있어서. 그리고, 네가 연예인이냐. 누가 네 일기장에 관심을 가지겠어. 녀석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추가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평정심이 그 당치않은 차분함 때문에 폭발해버렸다. 야, 이 씨발새끼야. 지금 당장 뛰어와. 네가, 이 새끼야, 나한테 네가, 내가, 귀신이 돼서라도 네 목을…… 추의 말은 물기를 머금고 뭉개지는데 강의 목소리는 더욱 나직해진다. 얘가 성격이 왜 이러냐. 알았어. 금방 가볼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전화를 끊고 나자 숨이 더 가빠진다. 오기는 할까. 숨쉬는 거 외엔 이놈 목구멍에서 나오는 건 죄다 거짓말인데. 이 자식 만나면서부터 내 인생, 비탈을 굴러내리기 시작했는데.

 

물장사라는 말이 왜 나왔겠어?

도저한 강물이 흐르듯이 이야기하던 강은 거기서 말을 잠시 멈추고 추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지만 딱히 대답을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강이 얼음이 다 녹아버린 물을 단숨에 마셔버리는 걸 쳐다보며 추는 침을 꼴깍 삼켰다. 촉촉해진 목소리로 강이 다시 말을 시작했다. 있잖아, 그냥 물을 파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돼. 너희 집 수도요금이 얼마야? 만원쯤 될걸? 추가 자신 없이 대답했다. 그럴 거야. 한달 내내 펑펑 써도 만원 안팎이지. 그 물을 파는 거라구. 근데 물을 그냥 팔면 물값밖에 못 받으니까 물에다 뭐를 쪼끔, 아주 쪼끔 넣는 거지. 너도 알겠지만 원두가 싸진 않아. 백화점 가면 요만큼에 이만원이잖아. 우린 유기농 원두를 산지에서 직수입해. 물론 로스팅 기계가 있지. 우리 거 마시면, 스타벅스 커피는 못 마신다. 사람의 미각이란 게 그렇게 간사하더라구. 강의 목소리 사이로 원두 갈리는 소리, 주문을 반복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섞여들었다. 드드드 울리는 분쇄음은 강의 어깨 뒤로 성공한 젊은 남자에게 어울리는 후광을 드리워주었다. 점심시간 전인데 까페 안은 붐볐고 테이크아웃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 덥지 않았지만 벌써 사람들은 차가운 음료를 주문하고 있었다. 활기가 넘치는 풍경이었다. 정직하게 비싼 원두 쓰면서 남는 게 있을까? 남아. 강이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원두를 직수입하면 팥보다 싸.

팥!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듯 팥, 해놓고 강의 눈빛이 아스라해졌다. 생각해봐라. 어디 가서 팥죽 한그릇 먹으면 육천원이야. 사먹는 입장에선 싸지 않은데, 만들어서 파는 사람에겐 팥죽 한그릇이 참 멀고 험하거든. 팥죽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이라도 있다는 듯 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잖아, 먼저 팥을 푹 삶아. 손가락으로 집으면 뭉그러질 정도로 푹. 그걸 체로 걸러. 아주 곱게 걸러서 다시 끓여. 묽게. 뻑뻑하면 나중에 두부처럼 엉겨버리거든. 훌렁한 팥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그때 새알심을 넣는 거야. 새알심은 어디서 그냥 나오나. 가래떡처럼 파는 데가 있길 해? 찹쌀을 불렸다가 방앗간에서 빻아서 그걸 또 뜨거운 물에, 찬물이 아니라니까, 반죽을 해서 동그랗게 비벼. 아주 싹싹 비벼야 돼. 근데 비비는 게 장난이 아니야. 대충 하면 이게 끓일 때 풀어져요. 대개 팥죽장사 일년이면 손금하고 지문이 다 없어져. 새알심을 넣고는 눋지 않게 계속 저어줘야 돼. 힘든 일이지. 손목엔 파스 떨어질 날이 없고 팔뚝엔 팥물에 덴 자국이 여기저기, 담배빵처럼……

얘기를 듣는 한편, 얘는 언제 숨을 쉬지? 생각을 하는데 강이 갑자기 얄따란 입술을 일자로 다물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얘가 독심술을 하나. 강의 목소리가 느릿하고 끈적해졌다. 막 울고 난 후처럼.

울 엄마 얘기야. 엄마가 팥죽 팔아서 나 키우셨잖아. 그거 보고 자라면서 맺힌 게 있어서, 내가 죽어도 먹는장사는 안한다 했는데, 운명이란 게 있더라고.

광대뼈 사이는 넓은데 턱선만 가파른 얼굴이 추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없는 셈 치고 묻어두면, 매달 백은 맞춰줄 수 있어. 너, 한달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알아?

없는 셈 치라니. 추는 속으로만 그렇게 중얼거렸다. 강은 액수를 말할 때 만원이라는 단위를 떼고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강과 몇번 만나지 않아 추 역시 그런 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오천에 백이라면 은행이자에 비해 엄청나긴 했지만 추가 가진 건 이천이 전부였다.

사실 담보가 좋으니까 대출받아도 돼. 근데, 네가 제일 먼저 생각나더라구. 너 잊었냐? 내가 전화했을 때 신당동에서 신촌까지 돈 들고 달려와준 건 너뿐인데. 난 못 잊어. 이자를 쳐서 주면 나야 부담이 덜하지만, 너한테는 배당제로 해줄게. 인생 얼마나 산다고. 하긴 추도 잊지 않았다. 이 여자를 놓치게 되면 죽어버리겠다고, 오늘밤 자빠뜨리지 않으면 끝이라고 울부짖던 강은, 다음주 안으로 갚겠다던 모텔비 삼만원을 여태 갚지 않았다.

아주 긴 얘기를 끝낸 강은 이제 선택은 너의 몫이라는 듯 의자에 등을 기댔다. 추는 막 뜨거운 팥죽 한그릇을 급히 먹고 난 후처럼 노곤해졌다. 팥냄새가 코에 감돌았다. 추는 팥죽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언제 한번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두세번 만나는 사이 서먹함은 사라졌지만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벌써 프랜차이즈 까페를 경영하는데, 자신은 그동안 오천도 모아두질 못했다고 제 입으로 털어놓기가 싫었다. 강의 목소리는 종이상자 속의 그놈들처럼 밤낮없이 추의 머릿속을 고물고물 헤집고 다녔다. 결국 추를 움직인 건 그 말이었다.

너, 한달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알아?

너무도 잘 안다. 월세와 관리비 고지서를 받아들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의 속도감에 매번 어리둥절하니까. 한사람의 인생이란 결국 한달, 한달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정기예금을 해약하고 민혜의 수술비 삼백에 칠백을 대출받아 삼천을 강에게 건넸다. 강은, 그렇다면 이자로 오십을 주겠다 했다. 그땐, 아귀 맞춰 오천을 투자하지 못한 게 그렇게 아쉬웠다.

 

“너 오랜만이다. 그새 결혼했니?”

돌아보니, 옆 건물 옥상에 올라와서 빨래를 널고 있던 이웃집 아주머니다. 엄마보다 열살쯤 아랜 줄 알았다는 얘길 무심코 엄마에게 했다가 동갑인데 자신이 그렇게나 겉늙은 까닭이 다 너 때문이라는 지청구를 일년 동안 들어야 했다. 아직요, 했더니 아주머니는 이쪽 빨랫줄을 가리켰다. 집게 몇개만 빼서 던져줄래? 죄다 삭아버렸네. 그쪽 옥상 바닥엔 집게들이 부서진 채 널려 있었다. 집게를 떼어 들고 난간으로 가 몸을 내밀고 휙 던졌는데 하나가 난간턱에 부딪혀 아래로 떨어져내린다. 쳐다보고 있으니 제 몸이 같이 추락하면서 집게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바닥에 퉁 부딪는 영상이 3D화면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추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빨래를 다 넌 아주머니는, 엄마 어디 가셨냐, 통 안 오시네, 한번 놀러 오시래라, 건성으로 말하고는 내려갔다. 무슨 사연이 있어 추운 옥상에서 서성이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빈 빨래통을 챙겨 휙 돌아서는 아주머니가 추는 서운하다. 동갑 사건 이후로 엄마는 발을 끊었지, 아마.

추는 휴대폰을 한동안 만지작거렸다. 엄마는 바로 아래 있으니 민혜에게 먼저 전화를 해야겠지. 이게 우리의 마지막 통화가 될 것인가. 이렇게 끝낼 줄 알았으면 그놈의 쌘들이나 사줄걸. 민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것들이 진짜. 대신 문자가 왔다.

누구세요?

추는 숨이 턱 막힌다. 네가 내게 이럴 수는 없다. 강의 꼬드김에 왜 그리 쉽게 넘어갔는데.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하겠다는 열망이 없었다면…… 내가 일확천금을 꿈꿀 사람이 아니다. 엄마에겐 좀 미안하지만, 강에게 첫 수익금을 받던 날, 난생처음 땀 없이 번 그 돈을 가장 먼저 민혜에게 보여주었다.

거기 서 있어봐.

막 현관문을 닫고 들어서려던 민혜가 고개를 갸웃하며 추를 쳐다보았다. 비둘기를 날리는 마술사처럼 추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돈뭉치는 어느 지점에서 중력을 따라 흩어져내렸다. 하나씩 흩어지던, 깃털처럼 우아하던 지폐의 푸른 비행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문득문득 몸을 뒤채던 지폐들이 내려앉은 방바닥은 빈틈없이 푸르렀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말없이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산정에 올라 태평양을 마주친 꼬르떼스의 심경이 그러했을까. 아, 방이 조금만 더 컸으면. 추가 탄식하자 민혜는 아니라 했다.

작아서 더 좋아!

추를 올려다보며 민혜는 달래듯 말했다. 방이 크면 이렇게 돈으로 침대를 만들 수 있겠어? 그날 민혜의 몸은 얼마나 뜨거웠는지. 작아서 더 좋아, 그 문장은 시였다. 민혜는 시인이었고 사랑은 손바닥만한 방바닥에도 한줄짜리 시를 쓰는 거라고 가르쳐주었다.

강의 말마따나 한달은 금방이었다. 넉달째 배당금을 건네주며 강이 물어보았다. 직영매장 하나를 여는데, 아예 네가 점장을 맡아볼래? 얼마 동안은 많이는 못줘. 그래도 독서실 총무보다는 낫게 줄게. 대신 손익분기점까지는 네가 직접 투자하는 걸로 하자. 그게 언젠데? 매장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육개월 정도? 말이 총무지 청소부에 경비에 잡역부까지 도맡고 있던 추에겐 그 신분상승이 믿기지 않았다. 사준 건 아니지만 민혜는 할인매장에서 양복을 골라주었다. 손익분기점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추상의 목적지였다. 어렵게 물어보면 강은 회계프로그램을 열어놓고 분명 우리말인데 독해가 되지 않는 말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때마다 뜨거운 팥죽을 급히 먹은 후처럼 노곤해졌다. 매장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멱살을 잡힌 날, 추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처음엔 투자금을 돌려받으려, 나중엔 은행 대출금이라도 해결해보려고 뛰어다닐 때도 이렇게 완전히 빈손으로 떨려날 줄은 몰랐다. 마지막으로 밀린 점장 월급만이라도 확보해보려고 고용부에 체임신고를 하러 갔을 때 서류를 검토하던 여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업자, 파산신청 들어왔는데요? 그럼 어떻게 되나요? 솔직히, 아직 못 받은 부분에 대해선 포기해야 한다고 봐야겠죠? 이 여자가 잘못 알고 있지 싶어 다시 물었다. 설마, 파산신청 하면 과거 채무가 면제되는 건가요? 이제 알았느냐는 듯 여자가 시원스레 대답했다. 크게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무슨 이런 법이 있나. 국가가 남의 돈 떼먹는데 보증을 서주다니. 강의 채무가 면제되는 법이라면 자신의 채무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거,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여직원은 대답 하나는 시원시원하게 해주었다. 구비서류가 들어가야죠. 부채증명서 같은. 그럼 가족에게 빌린 건요? 증명서가 없으면 인정 못 받나요? 여직원이 핀잔을 주었다. 그건 본인들끼리 해결할 문제죠. 그리고 파산신청은 담당기관이 따로 있어요. 그러니까, 그 다음은요? 파산신청 한 다음요. 추가 물어본 건 절차상의 문제였는데 여자의 대답은 방향이 좀 달랐다.

빚이야 안 갚을 수 있겠지만 제도권에선 그림자 인생이 되는 거죠.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구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끔찍한 말을 해대는 게 모두 한통속인 것 같아 뺨을 후려쳐버리고 싶었다. 강을 찾아가 어떻게 된 파산신청이냐며 따지자 녀석은 미안해하긴커녕 화를 냈다. 고만 해라. 망하고 싶어서 망하는 사람 어디 있겠냐. 강의 설명에 의하면 추는 채권자가 아니라 투자자였다. 강이 뒤늦게 가르쳐주었다. 리스크 없는 투자가 어딨냐. 그러려면 은행에 묻어놔야지.

연락받고 나갔던 채권자 모임엔 딱 두번 참석하고 말았다. 두번째 만났던 저녁, 법원 근처 분식집에서 밥부터 먹기로 했는데 추의 옆자리 여자는 하필 팥칼국수를 시켰다. 팥물만 봐도 토할 것 같았다. 저 여자한테도 팥죽 얘길 했을까 싶었는데 추처럼 뭉칫돈을 빌려준 사람은 둘뿐이었다. 나머지는 밀린 월급이나 알바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었다. 무슨 포커판이라도 된다고. 자신은 얼마가 물렸는지 끝내 얘기하지 않던 중년의 남자는 크고 누런 앞니를 드러내며 반말로 물었다. 공증 해놨어? 가등기는? 주소라도 옮겨놨어야지. 추가 고개를 가로젓자 이런 멍청한 놈하고는 한마디도 더 섞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팥칼국수 쪽으로 돌아앉았다. 언니, 고용보험은 들어놨어? 아뇨. 왜? 사장님이 그 돈만큼 차라리 보너스로 주시겠다 해서…… 여자가 말꼬리를 흐리자, 주시겠다? 당해도 싸다는 듯 그렇게 흉내를 내더니, 어리석은 백성에게 한 말씀 들려주겠다는 표정으로 떠들었다. 파산신청이란 게 원래 뜻은 정리해서 남은 돈 채권자에게 준다는 거긴 하지. 문제는 파산신청 하기 전에 재산을 모조리 빼돌려놓지 않는 놈이 없다는 거지. 여자의 젓가락에서 팥칼국수 가락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아 더는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법률구조공단으로, 상담센터로 미친개처럼 뛰어다니는 걸 보면서도 민혜는 같이 속끓여주긴커녕 모자란 사람 취급을 했다. 어쩌다보니 한대 올려붙이긴 했지만, 그런 소리 듣고 그냥 넘어가는 놈도 있을까. 같이 있을 땐 아예 휴대폰을 꺼놓는 꼴이 수상쩍었다.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같이 먹고 있을 때 문자수신음이 울렸고 추가 재빨리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민혜가 얼른 채갔지만, 이미 읽은 후였다. 저녁 먹었어? 어젠 정말 즐거웠어. 민혜는 문자를 슬쩍 확인해보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사장님이야. 어제 행사 끝나고 단체로 저녁 먹고 헤어졌어. 이게 단체문자야? 이놈은 연금이 나오는 모양이지? 납작 엎드려도 넘어갈까 말까 한데 민혜는 얼굴을 반짝 치켜들었다. 연금만 나오는 줄 알아? 너처럼 배가 나오지도 않았어. 하긴 삼십대에 배 나오기가 쉽나? 추의 배를 흘깃 쳐다보았다. 배라니. 배가 나오지도 않았다니. 배를 어떻게 본 건데? 둘이서 잔거야?

그럼 셋일까?

저도 화가 나서 속을 뒤집어놓으려 한 소리라 믿고 싶다. 사실이라 해도, 뺨을 때리는 대신 한번만 더 그러면 죽여버린다고 으름장만 놓아야 했다. 민혜는 막말을 하던 기세와는 달리 붉게 손자국이 난 뺨을 손으로 만지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끝이야. 그렇게 나직이 말하고는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한때 푸른 지폐로 뒤덮였던 방바닥엔 불어터진 라면이 담긴 냄비가 놓여 있었고, 그 두개의 풍경은 꿈과 현실처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민혜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밤을 떠올리자 추는 누구세요,라는 문자를 이해하기로 했다. 받을 때까지 계속 전화를 해보겠다는 각오가 무색하게 한동안 벨이 울린 끝에 민혜는 전화를 받았다. 대신 아무 말이 없었다. 추는 그 차가운 숨소리를 향해, 이제 자신은 옥상에서 뛰어내려 출구 없는 삶을 마감할 것이라는 얘기를 더듬거렸고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몇번이나 말을 멈추어야 했다. 말은 앞뒤가 없고 토막났지만, 죽음 앞에서 토하는 진술에는 힘이 있는 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가까스로 말을 마쳤을 때 민혜는 씹던 껌을 뱉듯 툭 던졌다.

미쳐, 내가.

도치법을 쓴 그 말투에서, 민혜를 미치게 하는 게 연인의 죽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이게, 법적으로만 남남이지, 서방님이 이 세상을 떠나겠다는데 기절을 하긴커녕.

너, 그 잘난 구두 때문에 여태 이러는 거야?

구두? 흥, 구두!

완전히 다른 억양으로 두번 구두를 외치는 목소리를 들으니, 얘가 아무래도 구두에 대해선 아직 안 풀린 모양이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작년 여름 명동에서 냉면을 먹으러 걸어가는 길이었다. 민혜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구두가게 앞이었다. 그 눈길이 닿는 곳에 흰 쌘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구경만 하고 갈게. 그 쌘들은 민혜를 디즈니 영화의 신데렐라로 변신시켰다. 요술지팡이 같은 구두였지만 너무 비쌌다. 29만원이라니. 다른 데도 둘러보자며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애초에 구두를 사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가게를 나서자마자 유월의 하늘에서 서리가 내렸다. 추가 너스레를 떨었다. 세상에, 새끼지렁이만한 가죽끈 두줄 엮어놓고, 29만원! 가죽이라도 좀 넉넉하게 들어갔으면 또 몰라. 민혜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옛날옛적에 울 할머니가 유머랍시고 들려준 슬픈 이야기가 생각나네. 시골영감이 손목시계 사러 와서 그랬대. 아니 이 큰 사발시계가 이만원인데, 이렇게 작은 걸 이십만원 달라고? 민혜야, 솔직히 너무 비싸잖아. 옷 잘 입은 거지가 밥이라도 얻어먹는 거야. 우리가 거지냐? 됐어, 구두가게 직원이 날 얼마나 우습게 봤겠어? 저 사람하고 아는 사이야? 다시 볼 일 없잖아. 수습해보려 한마디 할 때마다 민혜의 표정은 점점 싸늘해졌다. 지나고 보니 이건 평생 갈 뒤끝이었다.

민혜야, 사실 마음으로는 그 쌘들 사주고 싶었어.

이젠 백켤레를 사준대도 싫어.

이야기는 점점 옆길로 새고 있었다.

마음 같은 거 따로 있는 게 아니야. 가죽이 지렁이 두마리만큼이라도 갖고 싶어하면 사주는 거, 그게 마음이야. 오빠는, 내가 갖고 싶었던 게 구두라고 생각해?

강이 도착하기 전에 민혜와 엄마까지 나와서 서 있어야 하는데. 추는 결국 싹싹 빌듯 달래야 했다.

민혜야, 마지막으로 한번은 봐야 되지 않겠어? 너 이러면 후회한다, 응?

후회! 후회는 이미 남부럽잖게 하고 있어. 그래, 할 말도 있고 가기는 가는데, 철 좀 들어. 오빠는, 지속적으로, 점점 세게 날 실망시키기 위해 하느님이 보내주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 할 소리를 야무지게 다하고서야 민혜는 전화를 끊었다. 요즘 일하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바로 출발한다면 걸어와도 십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햇살의 각도가 툭 꺾인다. 골목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한동안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추는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결정적인 순간이 아주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은 얼음물이 담긴 컵처럼 명징해졌다.

 

*

 

먼 곳에서 싸이렌 소리가 들릴 때만 해도 그게 이곳으로 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골목을 비집고 올라오는 경찰차를 보고서야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걸 알았다. 셋 중 누가 연락을 한 것일까. 두대의 경찰차가 건물의 양옆으로 나누어 섰다. 공포를 가장 크게 느끼는 높이가 11미터라던가. 얼추 그 정도는 될 것 같다. 채 일초도 걸리지 않겠지. 추의 선택에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되면, 세사람은 일생 동안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디서 몰려든 걸까. 바글거리는 검은 점들은 카스테라로 달려드는 그것들을 닮았다. 제복 차림의 경찰들이 사람들을 바깥쪽으로 밀어낸다. 둥그스름한 반원 형태의 선이 만들어지자, 그 라인이 착지점의 최대치를 추정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뛰어내리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그 광경을 내려다보자 서운함 같은 게 치밀었다.

고개를 한껏 꺾어 위쪽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중엔 낯익은 동네 사람들도 있고 골목시장에서 장을 보다 달려온 여자들도 있다. 상황이 끝나고 나면 저들은 비닐봉지를 꼭 쥔 채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달려가겠지. 어제와 똑같이 반복된 무미한 일상의 소중함에 부르르 떨며. 시금치나물을 무치고 뭇국을 끓여 저녁을 준비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가족이 모인 식탁에 감사하며 자신의 목격담을 조심스레 늘어놓겠지. 그뿐, 떨어져내린 검은 덩어리를 두번 다시 떠올리지 않겠지.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다보는 얼굴 중에 강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개자식.

민혜는, 마치 지나가다 붙들린 사람처럼 뒤쪽의 사각지대에 엉거주춤 서 있다. 엄마의 얼굴도 보인다. 고맙게도. 방금 전화를 끊기 전 불같이 화를 내던 걸로 봐선, 새끼야 죽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라며 모든 고통을 잊게 해주는 그놈들에게 더 깊숙이 엎드려 따스한 숨을 불어넣어주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엄마와의 마지막 통화를 그런 식으로 하려던 건 아니다. 더이상 남아 있는 희망도 살아갈 기운도 없다고, 이제 모든 걸 끝내려 한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마침 우물거리고 있던 무언가를 꿀꺽 삼키고는 쏘아붙였다. 카스테라 하나 사오라는 게 그렇게 고깝드나. 철없기는. 네가 뛰어내리겠다 해서 줄 돈이 있으면 그러기 전에 줬다. 문제는 카스테라가 아니라고 말하려다 말고 추는 물어보았다.

엄마, 나 어릴 때, 몇살이었는지는 모르겠네. 어린이날이었던가. 놀이공원엘 갔는데 거기서 광선검 사달라고 하니까 엄마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내 뺨을 때렸지?

얘 좀 봐. 내가 언제?

그러니까 언젠지는 기억 못한다니까? 뺨을 맞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이킹도 타고 하늘관람차도 타다 돌아왔는데.

네가 꿈을 꾸었다. 그런 적 없다. 놀러가서 왜 때렸겠어?

내가 꿈하고 현실을 구별 못하는 사람 같아?

몰랐냐? 그런 줄.

민혜에게 했던 것처럼 결국 빌다시피 제발 한번 나오기나 해보라 하고는 전화를 끊고 나서 후회했다. 차라리 처참하게 망가진 몸뚱어리를 보여줌으로써 지워지지 않을 죄책감을 안겨주는 편이 나았을 텐데. 엄마는 늘 집에서 입는 꽃무늬 조끼 위에 패딩잠바까지 챙겨입고 나왔다. 이월이 봄은 아니지.

추는 난간 바깥으로 상체를 쑥 내밀었다. 난간 위로 올라서면 더 효과가 강하겠지만 난간의 쇠막대는 올라서기엔 너무 좁고 가늘었다. 확성기 소리가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한번도 없는 생이었다. 추는 난간을 꼬옥 움켜쥐고 소리쳤다.

“다들 물러서. 뛰어내릴 거니까, 죽고 싶지 않음 비켜서.”

확성기를 치켜든 경찰이 무어라 외쳤지만 추는 제 이름을 제외하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관자놀이가 툭툭 튀었다. 어디선가 달고 매콤한 국물 속에서 떡이 말캉하게 풀어지고 있다. 튀김기름 속의 닭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간다. 어제저녁 내린 비냄새가 비릿하게 차오른다. 냄새들은 섬모가 달린 벌레처럼 살갗에 착 들러붙는다. 막 떠나려 하는 세계가 내뿜는 냄새들이 못 견디게 달콤하다. 추는 깊이 숨을 들이쉬어보았다. 양념이 잘 밴 떡볶이를 한입 베어물고 싶다. 찝질한 맛이 혀뿌리에 감돈다. 혀를 깨물었을까. 엄마가 팔을 크게 휘젓는 게 보인다. 민혜의 표정은 여전히 새치름했는데, 그건 지금 이 순간 지을 표정은 아니라는 생각과, 내가 갖고 싶었던 게 구두라고 생각해? 하며 쏘아붙였을 때도 저런 표정이었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럼 뭘 갖고 싶은 거냐고 물어보았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둥근 곡선을 그리며 둘러서서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맞은편 과일가게 진씨가 가판에 내놓았던 과일 위에 비닐을 덮는다. 다시 비가 내리는 걸까. 이제 추의 살갗은, 모든 감각기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가위눌린 꿈속처럼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웅웅대는 확성기 소리에서 제 이름을 구분해낼 때마다 추는 화들짝 놀란다.

“내가, 내가 너무……”

엉킨 말을 간추려 가까스로 입을 떼었을 때, 누군가 위문공연 무대로 뛰어든 이등병처럼 앞으로 달려나온다. 경찰의 손에서 확성기를 확 뺏어들고 아, 짧게 테스트를 하고 고개를 위로 치켜든 사람은, 엄마다.

“이놈아, 뛰어내려.”

옆에 서 있던 경찰이 얼른 확성기를 빼앗으려 했지만 엄마는 그 손을 탁 털어내고 이번엔 목소리를 뒤집어 달래듯 부추긴다.

“뛰어내리라니까.”

경찰과 실랑이를 하다 확성기를 결국 빼앗긴 엄마는 이제 생목으로 소리를 내지른다.

“어서 뛰어내려. 아, 못 뛰어?”

확성기 따위 없어도 엄마의 목소리는 11미터쯤은 거침없이 날아오른다. 엄마는 무슨 기운으로 저리 크게 외치는 걸까. 그 카스테라 귀신들은 정녕 불로장생의 영약이 맞는 것인가. 엄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처럼, 자신을 붙드는 경찰을 온몸으로 털어내며, 비통하고 위엄있게 소리쳤다.

“이노므 자슥아, 뛰어내리란 말이다, 응?”

그렇다. 추야말로 정말 뛰어내리고 싶다. 한발만 앞으로 내디디면,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지금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열두가지 고통의 끈을 단숨에 끊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민혜는 이제 팔짱을 끼고 시어머니가 되었을지도 모를 여인의 발악을 쳐다보고 있다. 그 몸짓은 이렇게 동조하는 것 같다. 그래, 뛰어봐, 어서. 미쳐, 내가. 강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기왕 뛸 거면 어서 뛰어내려. 이번엔 우렁우렁한 남자 목소리다. 진씨 아저씬가. 오후 장사 공쳤다고 이럴 수가. 진씨만이 아니다. 어이 힘을 내. 순간이야, 어서 뛰어내려. 그 소리들이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건지 제 머릿속에서 울리는 건지 알 수 없다. 딱 한번 본 적 있는 뮤지컬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목소리들이 부딪치며 코러스를 이루고, 내용도 선율도 이윽고 하나로 귀결되어 추의 목을 감는다. 뛰어내려, 뛰어내려, 어서 뛰어내려! 땀구멍에서 땀이 솟는다. 이미 죽은 사람처럼 손이 써늘하다.

여기서 그냥 내려가면, 살아도 못살아. 추는 가슴과 배를 힘껏 부풀려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아니, 들어올리려는데 운동화가, 아니, 발바닥이 묽은 콘크리트 반죽에 빠져 굳어버린 것처럼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그 아우성을 한 호흡으로 제압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프리마돈나의 그것처럼 도드라진다.

“너, 오늘 못 뛰어내리면 내 손에 죽는다.”

아, 엄마. 절정의 아리아가 막 끝난 순간처럼 이제 무대는 고요하다. 사족을 붙이는 목소리는 더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엄마 바로 곁에서 정육점 아줌마가 오른손에 칼을 쥔 채로 올려다보고 있다. 엄마 말을 들으라는 듯.

건물은 짐작보다 낮을지 모르겠다. 육성이 이리 가까이 들리니. 뛰어내려봤자 뼈만 바스라져, 죽기는커녕 한차원 높은 고통의 세계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추는 고개를 들어 은하수처럼 걸쳐 있는 금속성의 스모그 아래 펼쳐진 도시의 지붕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카스테라 귀신들의 고물거리는 모습이 떠오르자 하마터면 미소를 지을 뻔했다. 내가 없으면 카스테라는 누가 사주지?

그리고 엄마. 저렇게 앞장서 외치는 엄마의 마음을 나 아닌 누가 알아줄까.

초등학교 때,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날,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기이한 우산을 쓰고 가는 남자를 보았다. 우산이 아니라 누군가 쓰다 버린 파라솔이었다. 강렬한 원색이 칸칸이 뒤섞이고 살은 절반이나 부러진,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큰 그걸 들고 가는 남자를 보고 친구들이 웃었다. 그 광경은 확실히 우스꽝스러운 것이었지만 추는 전혀 우습지 않았다. 등줄기로 땀이 조르르 흘러내렸고, 손가락질을 하며 웃는 친구들 사이에서 추도 이윽고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큰 소리로, 누구보다 오래 웃어댔다. 그 남자가 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통화를 하는지 오른손을 귀에 댄 채로 빵집 모퉁이를 막 돌아서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강의 모습이 보인다. 저 새끼한테도 받아야 할 게 있지. 추는 이제 콘크리트 반죽 속에서 굳어버린 발을 빼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아래를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젖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듯 일렁이며 겹쳐진다. 비가 오고 있는지, 묻고 싶다.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비상계단 쪽에서 회색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저토록 비장할 필요는 없는데. 엎어질 듯 달려오지 않아도 되는데. 추는 그 짧은 순간, 눈앞의 풍경이 죽죽 늘어나는 것을, 그들과 자신 사이의 거리가 좀체 좁혀지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맨 앞에 달려온 남자가 추의 등을 껴안으며 꽉 조였을 때, 자신의 팔힘으로는 그 완강한 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명백히 느꼈을 때 추는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그 품속에 기대어 있고 싶다는 생각에 아이처럼 흐엉흐엉 울었다.

 

*

 

엄마는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추가 들어오는 걸 보자 물 묻은 손으로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물을 한잔 가득 따라 건네준다. 물은 시원하고 달았다. 엄마가 참고 있는 말이 미친 놈,이란 걸 알고 있다 해도 여기서 나가 상수동의 제 방으로 돌아갈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옥상에서 내려와 경찰차를 타고 지구대로 가서 간단한 진술서를 쓰고 돌아왔을 뿐인데,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으깨져버린 듯 온 데가 결리고 극심한 무력감이 들었다. 추의 손에서 받아든 빈 컵을 헹구려다 말고 엄마는 소주병을 꺼내 컵에 절반이나 부었다. 그걸 느릿느릿 마시고 나서 엄마는 창밖을 무연히 내다보았다. 어둠이 내리고 있다. 긴 오후였다. 창 너머 추레한 건물들의 모서리가 무디어진다.

“해가 많이 길어졌네.”

“그런가. 애들 저녁은 줬어, 엄마?”

“아직이다. 이제 줘야지.”

“엄마, 걔들이 두배 세배 불어나면 부자가 될까?”

“그렇다니까.”

“늑막염에도 효과가 있고?”

“덕분에 내가 이만큼이나마 살잖니.”

“엄마, 벌레들이 떼지어 밥을 먹는 건, 공포 때문이래. 사랑이나 연대감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세계와 다가오는 시간이 불안해서.”

“얘 좀 봐. 나한텐 벌레 아니라니까 그러네.”

엄마의 목소리는 유통기한이 한참 남은 카스테라처럼 촉촉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는 통 늙지 않았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속 여인의 미소 같은 게 엄마의 뺨에 잠시 머문다. 그때가 언제인지 엄마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는 방으로 들어와 문갑 위 종이상자를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카스테라를 접시에 내려놓기 전, 한쪽을 떼어 제 혀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달콤하구나. 혀 아래로 침이 잔뜩 고이며 뺨이 쥐난 것처럼 뻐근하게 아파온다. 손 그림자에 놀라 흩어지던 그것들은 잠시 멈칫거리다 접시 위로 까맣게, 소리 없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