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논단과 현장
한국의 중산층을 다시 생각한다
구해근 具海根
미국 하와이대학 사회학과 교수. 국내 소개된 저서로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이 있음.
hagenkoo@hawaii.edu
*이 글은 2010년 필자가 서울대 규장각 국제한국학센터 초빙연구원으로 있으며 조사 연구한 결과에 크게 도움을 받았음을 밝혀둔다.
중산층의 위기가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1990년대말 외환위기 이후 그리고 최근의 세계적 경제불황 속에서 한국 중산층이 소멸 또는 몰락하고 있다는 인식은 정치권과 미디어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많은 공감과 함께 연구와 논의가 있어왔다.1)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중산층 논의는 대체로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왔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논의가 중산층을 어떤 고정적인 성격의 집단으로 간주한 채 그 집단에 속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줄어들고 있는가에만 관심을 집중했을 뿐, 그 집단의 내부구성이나 사회적 성격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논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이 강조하듯이 중산층은 결코 어떤 객관적 지표에 의해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고, 한 사회의 전체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와 성격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실 경제적 기준에서만 본다면 현재 한국 중산층의 평균소득이나 생활수준은 과거에 비해 결코 낮지 않을 것이며, 또한 소득분배 면에서 규모를 측정해보더라도 2009년 현재 전체 가구의 67%가 중산층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2) 좀더 체계적인 최근 분석에 의하면 중산층 비율은 2003년의 60.4%에서 2009년 55.5%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다.3) 이러한 여러 통계 수치들은 확실히 지난 몇년간 한국의 중산층이 축소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러나 엄연한 사실은 아직도 한국에서는 중산층이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층에 속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중산층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중산층은 분명히 와해 또는 몰락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가 단지 많은 중산층 가정의 경제상태가 악화되어 하층으로 떨어져나간다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중산층은 단지 양적 축소만이 아니라 중대한 질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즉 현재 한국 중산층은 과거 경제개발기에 존재했던 비교적 동질적이고 유동적인 사회계층에서 점차 내부적으로 분화하면서 사회이동의 통로가 막힌 계층집단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안정세력이 아니라 좌절감과 불안이 고조되고 정치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사회세력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한국 중산층의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글로벌시대에 이들이 놓인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맥락을 분석하고, 이 시대에 중산층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의 목적은 필자가 2010년과 2011년 여름 한국에서 관찰과 비공식 심층면접을 통해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중산층의 변화를 포괄적인 각도에서 분석하는 데 있다.
1. 경제개발시대의 한국 중산층
중산층의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계층의 형성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사회계층/계급은 역사적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국의 중산층은 1960~80년대에 형성된 경제발전의 산물이다. 이 시기의 급속한 산업화는 많은 관리직과 전문직 그리고 사무직 종사자를 생산해냈고, 그와 함께 도시 자영업자도 증가함으로써 자연스레 중산층의 중추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한국 중산층은 이러한 경제적 변화에만 의해서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의미에서 중산층은 담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중산층은 정통적인 사회학 개념인 중간계급과 달리, 상반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계급 개념이라기보다 경제발전에 따른 생활수준의 향상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나타내는 비맑스주의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중산층 개념의 등장은 박정희정권의 경제발전 지상주의와 관련이 있고, 이른바 ‘중산층 사회’를 이룩함으로써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군사정권의 전략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중산층 개념이 순전히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서만 생겨난 것도 아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실제로 국민 대부분의 생활수준을 현격하게 향상시켰고, 자신의 경제적 위치가 부모세대와 그리고 자신의 과거 상황과는 무척 달라져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중산층은 이러한 개인의 계층상승의 경험과 열망을 대변해주는 개념이었다.
이처럼 중산층은 경제가 발전해가는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1980년대까지 한국의 중산층은 경제적 위치가 크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돼 있었고, 신분상승을 열망하는 많은 서민에게 중간층 또는 주류층에 진입할 수 있는 사회적 이동의 통로를 제공했으며 비교적 열려 있는 계층이었다. 박정희정권 시절 많은 국민이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너도 나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꿈을 품었던 것은 일종의 사회계약(social contract)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 암묵적 계약은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고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기꺼이 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중산층이 이처럼 사회적・정치적 안정세력으로 자리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가 열린 집단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중산층으로의 진입이 비교적 쉽고, 이를 통한 사회적 상승이동의 기회가 많은 구성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조건이 1970~80년대 한국에는 존재했다.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었고, 일단 중산층 성원이 된 후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장에서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하고 봉급이 오르고 집도 마련하고, 또 주거하고 있는 아파트의 가격도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비교적 만족스러운 중산층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개발시대의 중산층은 비교적 동질적이고 유동적이며 열려 있는 사회계층으로 존재했고, 이러한 계급적 성격이 한국의 중산층을 사회통합적이고도 안정적인 집단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근거였다.
2. 중산층의 내부 분화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고도의 경제발전을 성취하면서도 비교적 평등한 소득분배를 유지했다. 그러나 소득분배와 달리 자산 면에서, 특히 부동산 면에서의 불평등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1980년대에 들어서 부동산 소유를 바탕으로 한 부의 집중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등장한 부유층이 서울의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형태와 여가생활을 즐기게 됨에 따라 서서히 사회적・공간적으로 차별화된 계층집단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 한국의 부유층과 기타 중산층 사이의 사회적 격차는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부유층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아직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한 것은 아니었고, 다른 중류층 사람들에게도 경제적 여건이 좋아지면 언제든 부유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둘째, 1980년대까지 한국의 중산층은 주로 경제적 자산에 의해서만 다른 계층과 큰 차이가 나는 집단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인 차이는 사회적・문화적인 면에서 미처 뚜렷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특권적인 기회구조를 소유하지도 못했다.
그 중요한 요인 중에는 이른바 ‘발전국가’의 역할이 있었다. 박정희정권 때부터 유지한 수입통제, 외환관리법, 해외여행 금지, 교육평준화, 과외교육 처벌 등 일련의 권위주의적 정책은 경제적 자원이 소비나 교육의 기회로 전환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두환정권 이후 시장자율화가 시작되고, 1990년대에 들어서 한국경제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편입됨에 따라 한국의 계급/계층구조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가 가장 뚜렷이 나타난 계기는 물론 1997~98년의 외환위기다. 잘 알다시피, 이 위기는 한국 중산층과 노동자층의 삶의 조건과 생활양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였다. 대규모 실직사태와 조기퇴직, 부도, 도산 등이 발생했고, 이후 시행된 산업개편과 기업구조조정은 노동자층뿐 아니라 관리직과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직업환경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평생직장이라는 전통적 직업개념이 사라지고 많은 노동자들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대기업에서는 노동유연화 정책에 따라 중간층 관리직 수를 줄이거나 아웃소싱, 임시직 등으로 대체했다.
이와 동시에 자영업계는 경제적 불황으로 시장 여건이 나빠졌음에도 종사자가 늘어났고, 대기업의 침투와 경쟁 속에 도산할 확률이 높아졌다. 자영업은 대기업의 명예퇴직자, 조기퇴직자 들이 퇴직금을 투자하여 창업했다가 실패하면서, 그나마 생활자금마저 잃고 중산층 밑으로 떨어져나가는 통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과거 안정적이고 상향지향적이던 중산층의 물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과거 중산층의 핵심에 있던 많은 관리직, 화이트칼라, 자영업자 들을 밑바닥으로 추락시켰다. 그들이 비록 겉으로는 여전히 예전의 생활양식을 유지하며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자위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불안정한 생활 여건과 불투명한 미래가 그들에게서 과거 중산층이 가졌던 안정감과 낙관성을 빼앗아가버린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환위기나 이후의 산업구조조정이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외환위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직, 조기퇴직, 도산 등의 타격을 안겨주었지만, 자산을 충분히 소유한 일부에게는 경색된 자금시장과 가격이 폭등한 부동산시장에 투자함으로써 자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므로 외환위기를 통해서 빈부의 차이가 확대되고 기회구조의 불평등도 심화된 것이다.
한편, 외환위기 이후에 진행된 산업개편과 신자유주의적 기업구조조정은 임금노동자들간의 고용형태와 소득의 격차를 증폭시켰다. 다국적기업이 대거 한국에 진출했고, 외국기업과 한국기업의 합작회사 수도 늘어났으며, 한국 대기업의 해외진출도 활발해지면서 고급 기술인력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게 되었다. 다른 선진 자본주의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글로벌기업들이 요구하는 인력은 전문기술을 보유하고 영어를 잘 구사하며 해외경험이나 국제적 감각을 갖춘 인재였다. 이들은 다른 전문직・관리직과는 전혀 다른 보수와 대우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미국식 경영방식을 채택한 많은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의 경쟁씨스템과 능력별 연봉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같은 조직 내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두가지 기제에 의해 계속 양극화 추세로 진행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과거 고속도 경제발전시대의 정치경제학적 기제고, 다른 하나는 최근 글로벌화 과정에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적 기제다. 전자가 중산층 내에서 부유층과 다른 일반 중산층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후자는 중산층 노동자(관리직・전문직・화이트칼라) 중에서 이른바 승자와 패자의 분화를 조장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시기를 통해 마침내 승자로 떠오른 사람들은 두개의 다른 집단이 아니라, 2~3세대를 거친 같은 집단의 출신일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산업화시대에 부유층으로 자리잡은 가정의 자녀나 손자들이 더 좋은 교육과 문화적 기회를 통해 현재 세계화시대의 새로운 엘리뜨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계급적 자원이 자녀의 생활기회(life chance)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부모의 경제적 자원(economic capital)이 자녀세대에는 주로 문화적 자원(cultural capital)으로 전환되어 계급적 기회를 증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현재 한국사회의 계급불평등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화시대와 세계화시대에 걸쳐 세대간에 일어난 계급역학을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경제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부문에서 진행된 계급분화 과정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계급구조에 나타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은 단지 경제적 분배 과정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문화적 불평등과 중첩됨으로써 더 강화되고 구조화되는 것이다.
한국의 양극화 현상에 있어 경제적 측면의 변화는 지금까지 비교적 많이 연구되어왔으나, 사회적・문화적 부문의 변화는 충분히 분석되지 못했다고 보인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 과정에 대해 소비와 교육에 나타나는 계급적 측면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3. 소비주의와 계급구분 짓기
현대사회에서 계급/계층구분은 자신의 경제적 소유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고 소비형태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소비는 현대인이 자기의 정체성과 계급적 위치를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다. 특히 다른 어느 계층보다 중산층에게 더욱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중산층의 구성원은 직업이 다양하고 생산부문보다는 써비스계통 종사자가 많아서, 직업상의 지위가 아닌 소비수준과 소비양식을 통해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과시하고 확인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1980년대 이후 이 소비영역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1960~70년대의 한국은 소비보다 저축을 하는 사회로 알려져 있었다. 국민의 평균 소득수준이 낮기도 했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박정희정권의 철저한 통화정책과 수입억제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전두환정권 시절부터 무역자유화가 시작되고,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과 더불어 수입사치품 소비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1987년 이후의 정치적 민주화는 다방면에 걸쳐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구속을 약화시킴으로써 소비생활에도 자유화 풍조를 강화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변화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시장이 세계경제에 깊숙이 통합됨으로써 일어났다. 과거에는 극히 통제되던 고급사치품이 자유롭게 수입되었으며, 해외여행이 본격화되었고, 1990년대초부터는 소위 명품 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국의 소비가 차츰 세계화・고급화・다양화함에 따라 부유층과 일반 중산층의 소비형태에서도 더욱 뚜렷한 간극이 나타나게 되었다. 부유층은 고급 사치품만이 아니라 이른바 웰빙 제품과 웰빙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돈이 있으면 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쾌적한 주거지역에서 더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실 수 있고, 더 첨단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성형기술과 피부관리로 외모 또한 더 잘 가꿀 수도 있게 되었다. 2000년대 한국의 소비문화는 가히 명품 소비, 웰빙 추구, 외모지상주의라는 특징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고, 이 현상이 한국의 계층구조에, 특히 중산층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이런 소비주의(consumerism)가 한국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려면 우선 세계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소비주의는 후기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요소이고,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21세기 선진자본주의 생산체제는 과거의 포드주의적 다량생산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의 생산에 집중하는 체제로 전환했고, 유명 브랜드 제품, 웰빙 제품, 그리고 고급써비스 생산에 최신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고급제품의 주요 고객으로 아시아의 신흥 중산층이 대거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명품 열풍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동아시아 전지역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4)
그러나 한국이 다른 동아시아사회보다 이런 고급 소비문화가 더욱 일반화된 이유는 크게 보아 두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국가의 경제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강한 신분경쟁 의식이다. 먼저 경제정책 면에서 본다면, 1990년대말 이후 급속하게 추진된 세계화정책이 한국경제를 세계자본주의시장에 깊이 통합시켰고, 이는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과 소비주의를 무방비상태로 받아들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는 소비시장 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부추김으로써 각 가정의 소비수준을 더욱 높여놓았다.
그런데 소비는 결국 당사자가 결정해서 하는 일인 만큼 개인의 동기가 중요하고, 그 면에서 신분경쟁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소비를 통한 신분경쟁에서 한국적인 특징은 비단 경제적 여유가 있는 층뿐 아니라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같은 열성을 가지고 이 경쟁에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승용차 소유를 당연시하고, 패션 명품을 소유하지 못한 젊은 여성들은 ‘짝퉁’이라는 위조품이라도 가지려고 노력하며, 휴가철이면 유명 휴양지라도 다녀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등은 모두 한국식 신분경쟁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분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한국인들이 아직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평등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에 들어와 양반제도와 지주계급이 몰락하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사회가 평준화되는 과정에서 자리잡은 의식이라 하겠다. 또다른 이유로는 최근 경제발전의 와중에 등장한 부유층이 전통적인 상류계급의 문화를 소유하지 못한 채 주로 가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계급구조가 차츰 고착화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상류층의 문화적 우위나 정통성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가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소비를 통한 신분경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소비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이에 따라 가계에는 큰 무리가 생겨났다. 바로 이 점이 중산층 붕괴의 주요 원인인 셈이다. 즉 많은 중산층 가정이 고용과 소득 면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몰리는 여건에서도 소비수준은 계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가계부채는 늘어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5) 그 결과가 다름 아닌 중산층 내에서의 지위하강 추세다. 이는 과거 중산층에 속했던 많은 가정들이 더이상 안정적 중산층에 머무르지 못하고 하강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자산을 충분히 소유한 가정은 각종 고급화된 소비행위를 통해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과시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을 발달시켜 일반 중산층 가정과의 계급적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은 1980년대 이후 서울의 강남이 새로운 부유층 주거지역으로 자리잡으면서 새로운 중산층 소비문화를 대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강남 주민들이 다 부유한 것은 아니고 강북에도 부유한 동네가 많이 있지만, 강남의 중요성은 (적어도 핵심 강남의 경우) 주민의 소비형태나 라이프스타일이, 그리고 교육환경과 기타 문화시설이 다른 지역과는 뚜렷하게 차별된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남의 등장은 바로 중산층의 내부 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4. 교육의 세계화와 기회구조
소비영역에서 나타나는 계급분화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분야에서 심화되는 계급불평등 문제다. 어느 사회에서나 계급/계층과 교육기회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특이성은 1960~80년대 고도성장기를 지나는 동안 교육기회가 비교적 평등하게 제공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근대 역사적 격변을 겪으면서 형성된 한국인의 강한 평등의식과 과거 군사정권이 정당성 확보를 위해 추구했던 교육평준화 정책에서 비롯한 바 크다.
그런데 경제발전과 더불어 증폭된 계급불평등은 교육경쟁의 구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자녀에게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소망이며, 돈 있는 사람이 남보다 더 좋은 교육을 시킬 기회를 찾는 것 또한 당연한 인간적 욕구일 것이다. 그러나 이 욕구가 어떻게 발현되는가는 한 사회의 제도적・계급적 환경에 달려 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나타난 교육기회 구조의 변화는 크게 보아서 두가지 추세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사교육시장의 팽창과 계층화고, 다른 하나는 교육시장의 세계화다. 이 두 현상은 물론 계급구조의 변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1980년대 사교육시장의 팽창은 흔히 군사정권이 채택한 중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지만, 사실 사교육은 평준화 정책 이전에도 존재했고, 애초 박정희정권이 과격한 정책을 택했던 동기 자체가 바로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과외교육을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평준화 정책이 사교육시장을 기형적으로 키우는 모순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1980년대에 벌어진 계층간 차이로서, 이 경제적 차이가 교육경쟁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부유층이 강남의 이른바 ‘8학군’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지를 정함에 따라, 그 일대에 신흥 일류 고등학교와 강북에서 이전해온 기존의 일류 고등학교가 집결했고, 동시에 인기있는 명문 입시학원들이 들어섰다.
강남 일부 지역의 부동산가격이 유독 높은 이유가 고급 교육시설(공/사교육시설 포함)이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로, 이른바 ‘강남 엄마’ 또는 ‘대치동 엄마’들의 교육전략은 현재 한국 부유층의 교육방식을 대변하는 계급전략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6) 이 지역의 높은 부동산가격이 불가침의 진입장벽을 쌓아 중하류층 가정의 접근이 불가능한 것 또한 사실이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한국의 교육시장에 나타난 이같은 교육경쟁이 바로 중산층의 양극화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교육시장에는 더욱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교육의 세계화 또는 글로벌화다. 한국 교육의 글로벌화는 여러 형태로 일어나고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어의 비중 증가와 이를 기점으로 나타난 교육기회의 세계화다. 영어는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항상 중요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1996년 김영삼정부가 세계화정책을 발표한 이후 그리고 이듬해 외환위기가 발생한 뒤로 그 중요성이 놀랄 만큼 커졌다.
지금 영어는 취업경쟁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자격이며, 단지 외국어 구사능력을 넘어 개인의 지적・문화적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격차는 대학입학과 취업경쟁, 그리고 직장내 승진과정을 통해 크게 벌어진다. 한마디로 21세기 한국사회의 문화적 양극화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정보 격차)보다 ‘영어 디바이드’로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영어교육이 다른 어느 분야보다 돈이 많이 들고, 따라서 계층간 차이가 확연히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원어민 가정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부모와 외국여행도 자주 다닌 학생과, 학교에서 교과서로만 공부한 학생의 실력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어 디바이드’가 곧 ‘계급 디바이드’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영어의 중요성이 커지는 동시에 한국경제가 글로벌화함에 따라 교육시장의 글로벌화도 뒤따랐다. 이 현상은 외국 교육써비스의 한국시장 침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로 한국 학생들의 해외유학 형태로 진행되었다.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의 조기유학이 급증했고, ‘기러기 가족’이란 초국가적 가족 형태의 유학이 등장하여 전세계 영어권 국가로 퍼져나가면서 외국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재 미국 대학에서 유학하는 한국 학생의 수가 중국, 인도 다음으로 많다는 것은 영어 실력과 미국 교육이 한국사회에서 성공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한국의 교육경쟁이 더이상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교육시장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교육경쟁이 세계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기회의 분배가 계급적 자원에 의해 결정됨을 의미한다. 예컨대 돈이 있는 가정에서는 자녀가 국내 일류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희박하면 일찍 유학을 보내서 그에 상응하는, 또는 오히려 더 나은 외국 학력을 받아오게 할 수도 있다. 이렇듯 세계화는 교육의 기회와 전략 면에서 계층간의 사회적 차이를 별려놓는 역할을 한다. 교육경쟁의 세계화는 과거보다 더 다양한 교육전략을 필요하게 만들고, 이 전략이 각 가정의 자원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계급재생산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7) 글로벌화된 기회구조는 자연히 경제적 자원을 소유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의 간격을 넓혀놓고 사회이동의 장벽을 두껍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5. 변질되는 중산층의 의미
현재 한국사회에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이 체험적으로 느끼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양극화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한국사회가 맑스주의적 의미에서 유산자와 무산자 두 계급으로 나뉘고 있다는 주장이 아니며, 또 중산층이 계속 감소해서 마침내 사회적 중간지대가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예측도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중산층은 현재 한국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중산층의 내용과 사회적 의미가 과거 경제발전기에 존재하던 중산층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한국의 중산층은 더이상 사회적 완충지대나 사회적 이동의 통로로 작용하지 못하면서 그 대신 심각한 계급 내 경쟁과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한 사회적 장(social space)으로 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계급구조 내에서 가장 중요한 분계선은 더이상 노동자계급과 중산층을 가르는 데 있지 않고, 차츰 상류 중산층과 대중(서민) 중산층을 구분하는 데로 상향이동하고 있다. 그 근거는 현재 한국의 계급구조에서 주요한 진입장벽, 즉 사회적 이동의 벽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에 달려 있다.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이 진입장벽은 노동자층에서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데보다는 중하류 중산층에서 흔히 ‘강남 부유층’으로 대표되는 상류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데 놓여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진입장벽은 경제적 소유에 의해 일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지만, 그밖에도 생활양식과 교육기회, 그리고 사회적 연결망 등의 차이에 의해 더욱 두꺼워지고 있다.
이렇게 중산층이 내부 분화하고 이질화함에 따라 현재 한국사회에서 그 의미는 극히 모호해졌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과연 누가 중산층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물론 중간계층의 중간에 위치하며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이 이 계층을 대표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중요한 준거집단은 자신의 상위에 있는 부유층이고, 그들과 비교해볼 때 자신은 중산층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보다 하위에 있는 불안정한 중산층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2011년 여름 서울의 여러 중산층 가정을 심층 인터뷰하면서 발견한 것은 객관적으로 중산층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중산층적 생활양식을 견지하면서도 속으로는 스스로의 중산층 위치를 의심하고 있으며, 상류 중산층과 비교해서 상당한 정도의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엄연히 중산층인데도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그 이유인즉 현재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에 속하려면 거의 부자 소리를 들을 만한 자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중산층’의 의미가 상향조정되어서 ‘상류 중산층’만 실제로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인식인 것이다.
요컨대, 현재 한국사회에서 중간계층은 그저 단순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내부분화를 겪으면서 와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발전기에 등장한 중산층 개념은 21세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시대에 더이상 유용한 사회학적 개념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어떠한 새로운 개념으로 이를 대체해야 할지 앞으로 한국의 사회학자들이 심사숙고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6. 양극화의 정치적 함의
그렇다면 이렇게 내부적으로 분화되고 불안정한 중간계층이 한국사회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은 좀더 체계적인 연구를 필요로 하겠으나, 여기서는 일단 잠정적인 견해만 피력해보려 한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한국의 중간계층이 과거 중산층이 수행했던 사회통합과 안정화의 역할을 더이상 담당하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중산층은 하나의 단일한 사회세력을 구축하는 대신 각 내부집단의 계층적 이해관계와 정치적・사회적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계기가 최근에 치른 일련의 지방선거다. 특히 2011년 서울시장 선거는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계급투표적 경향이 농후했다. 잘사는 지역과 못사는 지역의 투표성향이 뚜렷하게 갈려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현재 한국사회에서 계급의식이 가장 확고한 집단은 강남의 부유층이 아닐까 한다. 그 근거는 지난 몇년간 여러 선거를 통해 이들이 보수정당 후보나 보수적 사회정책에 던졌던 몰표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일반 중산층은 아직 애매하고 유동적인 성향을 보이면서도 젊은층의 급속한 진보화를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런 경향은 단지 세대차이만이 아니라 계급적 경험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50대 이상의 중산층 사람들은 과거 경제발전기에 중산층으로 진입하여 안정적 위치를 누려본데 반해, 40대 미만의 젊은층은 그같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못 받아보았고, 게다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속에서 경제적 불안과 좌절감을 혹독하게 경험하고 있다. 후자는 당연히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경제체제에 비판적이고, 직업 안정과 사회적 복지의 확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반면, 전자는 아직도 과거의 중산층적 환상을 버리지 못한 채, 경제성장이나 부동산시장 활성화 같은 성장위주 정책이 예전의 중산층적 삶을 복구해주리라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경쟁일변도로 그리고 승자독식의 형태로 계속 진화하면서 빈부차이를 점점 확대해간다면, 중산층의 불만과 좌절감이 더 심화될 것이고, 그때는 새로운 경제체제와 사회제도를 요구하는 그들의 정치적 반란도 예견해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과연 그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정당이 존재하느냐 여부일 것이다.
여기서 잠깐 중간계층과 노동자계급의 관계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데, 앞서 지적했듯이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경제에서는 중간계층과 노동자층의 계급적 차이가 많이 희석되어 있다. 왜냐하면 두 계층이 모두 일자리 불안과 함께 점증하는 재생산(교육, 의료, 레저 등)비용의 부담에 시달리고 있으며, 동시에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불안감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논리적으로는 두 계층이 같은 정당이나 사회운동으로 결합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되지만, 노동조합운동이나 진보정당들의 현황으로 미루어보아 그 가능성은 높지 않을 듯하다.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중산층의 질적 변화는 단지 새로운 정치적 반응을 발생시키는 것 이상으로 사회구조 전반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중산층에 일어나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 변화는 결국 한국 계급구조의 재구조화 또는 공고화라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즉 비교적 유동적이었던 과거의 중간계층이 소수의 상류 중산층과 일반 중산층으로 양분됨에 따라 사회적 이동성에는 장벽이 세워지고, 양 계층의 생활양식 및 세계관 그리고 계급재생산의 기회조건도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양극화가 비단 없는 자뿐 아니라 있는 자에게도 계속 불안과 좌절감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비교적 부유층에 속하는 가정마저 불안을 겪는 까닭은 그들의 계급적 우위가 주로 물질적 소유와 소비경쟁에 머무를 뿐, 진정한 의미의 상류층 문화로 발전하지 못해서다. 한국의 상류층 문화는 극히 물질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며 서구모방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문화적으로 확립하기보다는, 경제력의 과시와 사교육시장에서의 전략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써 계급재생산을 도모하고자 한다. 그러나 평등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들은 끝없는 경쟁과 직면하게 마련이다. 세계화 속에서 다양해진 소비와 교육시장에서 요구되는 재정적・정신적 투자는 계속 증가하게 되어 있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은 우위마저 오래 유지되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은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중산층의 위기는 결코 한 계층만의 고충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며, 근본적으로는 불평등구조의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허물어지는 중산층의 저변을 끌어 올리려는 노력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복지를 증진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그와 동시에 사회적 가치의 무게중심이 경제성장과 무한경쟁에서 비물질주의적, 공동체적 그리고 범인류적 관심사로 이동할 수 있도록 문화적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에게 좋은 사회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
1) 신광영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을유문화사 2004; 유팔무・김원동・박경숙 『중산층의 몰락과 계급 양극화』, 소화 2005; 홍두승 『한국의 중산층』, 서울대출판부 2005; 한국사회학회 엮음 『기로에 선 중산층: 현실진단과 복원의 과제』, 인간사랑 2008.
2) 통계청 「KOSIS 2009년 4/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 통계청의 중산층 규정은 전국 2인 이상 비농가 가구 중위소득의 50%~150% 소득에 해당하는 가구 비중을 뜻한다.
3) 삼성경제연구소 『한국 중산층의 변화와 경제사회적 결과』(2010). 이 분석에서도 통계청과 유사한 중산층 정의를 사용했다.
4)Radha Chada and Paul Husband, The Cult of the Luxury Brand: Inside Asia’s Love Affair with Luxury, London: Nicholas Brealey International 2006.
5) 김현미 「중산층의 욕망과 커지는 불안들」, 『창작과비평』 2011년 가을호, 38~54면.
6)Park, So Jin. “Education Manager Mothers: South Korea’s Neoliberal Transformation,” Korea Journal 47 (3), 2007, 186~213면; 박소진 「‘자기관리’와 ‘가족관리’ 시대의 불안한 삶」, 『경제와사회』 2009년 가을호, 12~39면.
7) 조은 「세계화의 첨단에 선 한국의 가족」, 『경제와사회』, 2004년 겨울호, 148~7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