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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정윤수 『인공낙원』, 궁리 2011

김성홍 『길모퉁이 건축』, 현암사 2011

도시를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들

 

 

박해천 朴海天

홍익대 BK연구교수 haecheon@gmail.com

 

 

155_426“도시는 선()이다.” 이 말은 병참을 주특기로 삼았던 장군 출신의 김현옥(金玄玉) 전 시장이 1960년대 후반에 서울의 현대화를 위해 내세웠던 구호다. 당시 산업화 열풍은 서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었고, 서울은 무방비상태로 그 열풍을 맞대면해야 하는 처지였다. 김시장은 대처방안 중 하나로 ‘자동차 도로망의 입체적인 확장’을 제안했다. “도시는 선”이라는 구호가 등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 구호는 현대적 도시의 규모에 걸맞은 새로운 시선의 등장을 암시하고 있었는데, 바로 창공의 헬기에서 내려다보며 도시 전체를 선과 면의 배치로 재구성해낼 수 있는 조감의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김시장의 ‘서울’을 상징하던 인공물들은 이미 철거되었거나, 겨우 살아남아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가 의지했던 조감의 시선만큼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세훈(吳世勳) 전 시장의 ‘디자인서울’ 정책이 쏟아내던 수많은 컴퓨터그래픽 조감도가 증명하듯이, 미래 도시에 대한 상상력은 여전히 창공의 시선들에 포획되어 있다. 그렇다면 김시장의 ‘서울’을 밑바탕삼아 도시 경험의 윤곽을 그렸던 세대는 지금의 서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혹시 그들은 조감의 시선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두권의 저서, 정윤수(鄭允洙)의 『인공낙원: 현대 도시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과 김성홍(金成洪)의 『길모퉁이 건축: 건설 한국을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을 읽으면서 집어든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먼저 『인공낙원』을 펼쳐보자. 축구 평론가로 활동했던 개인적 이력이 반영된 것인지 그는 광장, 극장, 모델하우스, 모텔, 카지노, 백화점, 테마파크, 경기장, 박물관, 공항, 기차역 등을 인공낙원의 11진경으로 호명한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공간들 대다수는, 거의 언제나 테마파크를 꿈꿨으나 단 한번도 모델하우스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도시의 운명을 증언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자칫 이 책을 교과서적인 공간문화 비판서 정도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이 책의 주인공이 11개의 공간이 아니라, 저자의 시선이라는 점을 쉬이 간파할 수 있다. 그 시선은 발품을 팔아가며 도시를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책에도 개입해 나름의 방식으로 텍스트와 이미지를 편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선의 정체는 무엇일까?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것은 오랫동안 길 위를 배회한 연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시선이며, 그래서 거리의 추억들이 잔상처럼 명멸하는 시선이다. 1976년에 이사한 이후 계속 서울에서 거주했던 저자는 청량리역 맞은편의 지중해다방과 피카디리극장의 매표소 옆과 광화문 앞 큰 서점을 연결하는 길 위에서 “무소속”의 청년으로 성장했고, “수많은 골목과 노점과 포장마차와 폭우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보행과 관찰의 기예를 체득했다.

이런 경험의 흔적은 책 곳곳에서 돌출된다. 이를테면, ‘테마파크’를 다루는 장을 보자. 그는 에버랜드 방문을 앞두고 굳이 월미도 유원지로 향한다. 그러고선 그곳에서 “들떠 있으면서도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눈빛의 청춘들을 마주한다.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초점 없이 한군데 눈을 던지기도 하고, 자신을 바라볼 것만 같은 많은 시선들을 맞받아치려고 일부러 힐끗거리는 시선들.” 이같은 묘사를 읽다보면, 저자는 마치 이 시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또다른 장면을 보자. 책 전체에 걸쳐 두차례 등장하는 푸드코트 장면이 그것이다. 저자는 “‘밥 먹는 일’을 그 어떤 노동보다 고역스럽게 여”긴다면서 푸드코트야말로 자신이 사랑하는 최고의 식당이라고 소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길 위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도시를 관찰하고 취재하던 저자의 시선이 이곳에서만큼은 한숨을 돌린 뒤 식당의 대형 유리창 너머로 주변 경관을 내려다본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월미도 유원지는 이제 중년의 고비를 넘어선 저자가 이 책에서만큼은 길 위의 방황을 지속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장소처럼 보인다. 또한 푸드코트는 섣불리 스펙터클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관찰자의 윤리를 확인하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지난 90년대 후반 요절한 63년생 소설가 김소진(金昭晉)의 소설이 “문학사 이전의 기록”이라고 말하는 대목도 도드라져 보인다. 나 역시 저자를 흉내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김소진’이라는 대명사로 소환될 수 있는 특정 세대의 기록이라고 말이다. 저자는 서울 북쪽 동네를 떠나 일산의 아파트에 거처를 마련한 자신의 이주경로가 김소진의 그것과 유사한 것을 두고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우연이야말로 그의 책에서 ‘강남’의 지명을 찾아볼 수 없는 필연적인 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흥미롭게도 김성홍 교수의 『길모퉁이 건축』 역시 일산의 출근길에서 시작한다. 『인공낙원』이 길 위를 배회하는 자의 시선으로 도시의 거대 인공물을 바라본다면, 이 책은 길의 생태계를 해부하는 건축가의 시선으로 도시의 흐름을 응시한다. 양자는 동일한 대상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데, 전자에게 그 대상은 ‘국가’와 ‘자본’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호명되었던 반면, 후자에 오면 “건설 신화”와 “디자인 경제주의”라는 좀더 구체적인 이름을 얻는다. 저자에 따르면, 거대 건물에 집착하는 건설 신화는 “도시 건축을 너무 위에서 내려다보”려 들고, 상품미학에 도취된 디자인 경제주의는 “가까이서 보되 겉만 보”려 한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가 『인공낙원』의 저자와 유사한 눈높이의 시선을 취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두 저서는 ‘문화평론’과 ‘건축’이라는 각각의 프로그램에 맞춰 기능적으로 분화된다. 『인공낙원』이 성찰과 진단에 집중한다면, 『길모퉁이 건축』은 처방과 치유에 집중한다고 할까? 그렇다면 후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전통적인 건축이론의 틀이 방법론으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길-속도-상업건축’이라는 세개의 축으로 구성된 개념좌표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길은 “거미줄처럼 엮인” 교통의 네트워크이며, 속도는 다양한 교통의 미디어들이 제공하는 경험의 생산양식이고, 상업건축은 길의 속도와 관계 맺는 건축물의 형식이다. 여기서 저자가 도시 변화의 동인으로 주목하는 것은 ‘속도’이며, 이에 따라 수레, 자동차, 승강기, 온라인이라는 속도의 네가지 지표를 내세워 길과 상업건축의 역사적 존재 양태를 탐험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시의 중간지대, 즉 이면도로의 생태계를 “변화의 동력”으로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이 중간지대는, 건축가들이 다양한 삶의 흐름을 조직하는 공간의 안무가로서, 주거와 상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건축 논리를 ‘발명’할 수 있는 장소다.

자, 이제 마무리하자. 이 두 책은 특정 세대의 도시 경험을 얼개로 삼아, 조감의 시선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바라보려 한다. 그렇다면 이후 세대는 어떤가? ‘하우스푸어 세대’든 ‘88만원세대’든, 그들 역시 나름의 시선을 개발해 새로운 도시공간을 상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런 시선‘들’이 하나둘 모여질 때, 비로소 회색빛 서울은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