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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SNS 뒷담화

 

 

한진금 韓珍今

편집자, 창비 계간지출판팀 goldjk@changbi.com

 

 

2341SNS(Social Network Service)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이 한국에 들어온 직후 소셜마케팅이다 뭐다 난리를 칠 때만 해도 그저 호들갑으로 보였고, 새로운 매체에 대한 강박증으로 느껴져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사회가 SNS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음을 어떻든 인정하게 되었다. 서울시장 재선거, 희망버스, ‘나꼼수’ 같은 정치적 사안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인터넷을 열면 간밤의 트위터에서 오간 말들이 쏟아져나온다. 가볍게 한마디 올렸다가 구설수에 오른 아이돌 가수가 해당 트윗을 삭제하고 사과를 구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논란을 빚은 정치인이 해명을 표했으나 더 엄청난 ‘멘션테러’를 맞게 되었다 등등. 저 멀리서는 탈레반이랑 나토군도 야 이 바보야(dumb dumb) 하며 말싸움을 벌였다고 하니, SNS는 정말이지 이 시대 보편적 소통수단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SNS는 날이 갈수록 사랑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니 트위터 본사마저 심의니 검열이니 하며 헛발질을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이미 광범하게 확산된 소셜미디어 문화가 쉽게 위축될 것 같진 않다. 정치권에서도 SNS의 자유로운 표현을 규제하기보다는 울며 겨자먹기라도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택했다. 그 실제적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할뿐더러 ‘소통’과 ‘젊음’이라는 키워드를 짝꿍처럼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들을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트위터부터 개설한다.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또한 공천심사 때 SNS활동지수를 평가항목에 넣는다며 log와 ∑를 사용한 엄청난 산출공식을 만들어냈다. SNS를 이용한다는 행위 자체가 소통과 변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 자리잡은 것이다. 대중의 인정과 애정을 갈구하는 자는 어쨌거나 SNS를 앞에 두고 끙끙댄다. 스마트폰 붙잡고 미주알고주알 트윗 날린다고 해서 막혔던 대화가 뻥뻥 뚫리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와의 진정한, 바람직한 그리고 실현 가능한 ‘소통’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이런 현상이 어느정도는 고무적이라 생각한다(제발).

내가 몸담은 창비 역시 일찌감치 SNS를 시작했고, ‘소통하는 출판사’를 당차게 기치로 내세웠다. 창비 트위터는 @changbi_books라는 대표계정 하나로 운용되다가, 작년부터 인문팀·문학팀·어린이청소년팀 이렇게 세개의 하위계정을 두었다. 새책 소식이나 창문 블로그, 창비주간논평에 올라오는 글들을 바로바로 전하고, 원고를 보다가 필이 꽂히는 문장이 있으면 트위터로 날려 널리 공유를 시도한다. 페이스북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고부터는 ‘편집자 레터’ ‘편집자의 책꽂이’ 같은 코너를 마련해 책과 관련된 단상을 편집자들이 돌아가면서 직접 쓰기 시작했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독자들의 반응과 동향을 즉각 확인해볼 수 있고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야 SNS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도구지만, 문제는 이걸 이용하면 할수록 고민이 불어나고 수심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아는 게 병이다.

현재 창비 트위터의 팔로워가 24천여명. 페이스북 소식을 받아보는 사람들이 1800여명.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늘고 있다. 그들의 얼굴과 재잘거림이 타임라인에 흐른다. 친구를 얻은 것만 같아 든든하지만, 독자의 존재를 ‘실감’한다는 것은 늘 긴장되는 일이기도 하다. 페이스북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똘똘해서, 각 게시물이 노출되거나 언급된 수치 등을 정량화해주고 ‘전파성’이라는 항목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기능은 점점 진화해서 자꾸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어떤 글에 사람들이 호응하고 열광하는지, 또 어떤 글이 그저 묻히고 마는지를 매우 전체적으로, 또한 구체적으로 즉각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꺾은선 그래프의 오르락 내리락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긴장시키는 것은 눈앞에 바로바로 펼쳐지는 ‘날것’의 반응들이다. 뭉뚱그려 하나로 불리는 ‘창비 독자’가 아닌, 제각각 발자국을 꾹 남기고 가는 독자 하나하나의 말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려온다. 이것을 주워담으며 교정지 너머의 세상으로 힐끔 고개를 들어본다. “1) 많이 읽히는 책을 읽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왠지. 2) 사람들의 어떤 우려가 이해 안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난 김애란 소설을 읽으면 “살고 싶어져”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p.271) 좋더라.” 140자로 간결히 표현된 누군가의 진심. 독자의 존재가 새삼 느껴진다. 김애란의 애독자로서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어릴 적에 창작과비평 많이 있었는데.. 대딩 이후 좀 맘에 안 들기 시작해서 안 읽었는데.. 다시 보니 반갑다” 누군가 툭 중얼거려놓은 트윗. 다소 복잡한 심경이 들 수밖에 없다. 정색하고 “왜요?” 하고 물을 수 없는 노릇이니 그저 마음에 고이 담고 분발을 모색한다.

필자 본인으로서는 SNS를 슬그머니 시작해보는 단계. 섣불리 다가서지는 못하고 근방을 서성거리고 있다. 트위터에 ‘창비’나 ‘창작과비평’으로 검색해본다. 간밤에 주고받은 말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냥 좋아해주면서 다가와주는 독자도 있고, 책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아낌없이 격려해주는 독자도 있고, 빈정대며 조롱하는 독자도 있다. 그야말로 툭 내뱉었을 말들이지만 슥 지나치기는 어렵다. 좋은 책을 만들고 싶으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해줬으면 좋겠으니까. 여기저기 쉴새없이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목소리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그러니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 늘 고민하게 된다. SNS가 가져다준 각성상태, 이것이 어찌되었건 발전의 길을 이끌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