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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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4535

전효정 全孝貞

연세대 인문과학부 1. 1992년생.

gldjfj1343@naver.com

 

 

 

산책하는 이의 즐거움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저 멀리서 코끼리가 다가오네요.

으쓱으쓱 조용히 다가온 코끼리는

제 가슴에 발을 올리고서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코끼리의 발에 밟혀 죽을지도 몰라요.

얼른 옆에 있는 불치병 환자가 꼭 읽어야 한다는 책을 꺼냅니다.

그렇게 한참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코끼리는 사라지고

조용한 휴식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책을 읽으면 피곤해서 코끼리가 슬며시 사라지거든요.

잠에 빠져들기 전에 책 속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불치병 환자인 저자의 말대로

다음날부터 산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벌레는 스스로의 고통을 알아채지 못하고

코끼리가 주변을 성큼성큼 돌아다닐 때

집 앞에서 살짝 발을 내밀어봅니다.

저 멀리서 코끼리가 으쓱으쓱 다가오네요.

그러고는 가슴에 두 발을 올리고 말합니다.

‘벌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목이 휘어질 만큼 좌우로 힘껏 고개를 흔듭니다.

코끼리는 슬며시 가슴에 얹은 발에 힘을 주네요.

가슴을 저리는 압박에 저절로 고개가 하늘로 향하고 깨끗한 것이 보입니다.

가슴에 실린 코끼리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저 웃으며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벌레도 코끼리도 시선을 올려 함께 ‘그것’을 쳐다보았습니다.

 

 

 

시곗바늘이 한발짝 움직일 때

 

 

잠에서 깨어나 보면 자연스레 정면의 벽으로 향하는 눈.

그곳에는 작지만 위대한 평야가 있어서

보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시곗바늘이 한발짝 움직였다.’

검은색 야생마 한쌍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달리기를 겨루는 가운데

아직 색이 옅은 가녀린 망아지가 부모말 사이로 지나가고

위대한 세계는 미미하지만 드넓은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평야에는 몇개의 검은 잡초만 자라고 있을 뿐이어서

거칠 것이 없는 야생마 가족은 느릿느릿 차근차근 평야를 지나간다.

 

벽에서 눈을 떼서 창밖을 바라본다.

‘시곗바늘이 한발짝 움직였다.’

세상은 여전히 돌고 있으며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야생마 가족은 잠시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망아지는 여전히 신이 나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새벽 배달 아줌마가 우유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이것만은 변하지 않을 모양이다.

 

다시 벽 쪽을 바라본다.

‘시곗바늘은 꾸준히 움직였다.’

무심코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울컥하는 것을 모아 내뱉었다.

 

 

 

말의 요리

 

 

말을 요리하기 위해선 먼저 재료부터 준비합니다. 기본재료인 말과 부드러움과 조용함을 챙기고 격렬함과 노성은 걸러내세요. 그것들이 들어가면 딱딱하게 굳어버릴 테니까요.

이제 바탕재료를 준비하면 본격적인 레시피가 시작되는 거예요.

준비한 재료에 은혜 향신료를 조금 섞으면 반죽이 물렁물렁해져요. 거기에 약간의 정성을 넣어서 찰기가 있게 해주세요. 그래야 흩어지지 않고 잘 붙어 있을 수 있어요. 반죽을 할 준비를 했으면 이제부터가 중요해요. 적당히 물렁해진 것을 늘여서 준비해둔 향신료를 넣고 반죽해요. 배합은 부드러움 반 조용함 반이에요. 만약 여유가 있다면 감사를 한번 넣어보세요. 부드러움 속에 따뜻함이 생겨날 거예요.

힘이 들어서 땀이 나겠지만 참아야 해요. 말의 반죽은 조금만 신경을 안 써도 금방 딱딱해져버리거든요. 저 멀리서 까마귀 한마리가 다가오네요. 조심하세요. 언제 반죽을 채어 가져가버릴지 모르니까요.

반죽을 마무리짓고 나면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이제 조심스레 피륙으로 만들어진 오븐에 반죽을 넣고 세기를 조절해요. 여기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예요. 세기를 아주 세밀하게 주의하면서 조절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언제 반죽이 터져버릴지 모르거든요.

자, 이제 구워진 반죽을 꺼내면 완성이에요. 완성된 것을 상대에게 건네주기 전에 조곤조곤 나긋나긋 시럽을 뿌려보세요. 그러면 받는 사람은 분명히 활짝 웃으며 받아줄 테니까요.

 

 

 

시 | 심사평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가 망설여진다. 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책을 읽는 사람을 간간이 볼 수 있었는데 순식간에 그런 사람들까지 집어삼킨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을 대학생 예비 시인들은 어떻게 부리고 있을까. 요즘 젊은 시인들이 쓰는 작품과 대학생들이 쓰는 작품은 분명히 구분될 거라는 기대가 모아져, 설레는 마음으로 응모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편차가 심해 같은 사람이 쓴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글을 쓰는 데 있어 게으름보다 더 나쁜 습관은 조급함일 것이다. 차서 흘러넘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이야말로 글을 망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실하지도 않은 것을 절실한 척 가공해서 쓰는 글은 여지없이 독자에게 들키고 만다. 절실함을 넘어 절박함을 가지고 쓰는 글이야말로 독자를 압도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기 급급한 응모작과 여기저기에서 기성시인의 시를 옮겨와 짜깁기한 응모작을 만날 때는 가슴이 아팠다. 또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길을 택해 손쉽게 시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갈 수 없는 길을 걸어가야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 외로움을 견뎠을 때 얻게 되는 쾌감이 진정 시가 아닐까.

반복해서 응모작을 읽는 동안, 만들어진 시와 그렇지 않은 시를 분별해낼 수 있었다. 처음 읽을 때는 그럴듯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틈이 벌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포장만 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속에서 잘 발효된 이미지를 사용하기보다는 책이나 영화, 인터넷에서 보고 느낀 조각들을 끌어다 쓰고 있었다. 무의식의 도움 없이 현재의식만으로 시를 쓰다 보니 한계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상상력은 기발한데 끝까지 끌어가는 집요한 의지가 부족한 작품도 여럿 보였다.

예심에 오른 「나는 빛보다 작았다」 외, 「시계론()」 외, 「아이다호」 외, 「기절낙지」 외, 「눈 오는 전주」 외, 「산책하는 이의 즐거움」 외, 「뱀눈나비」 외, 일곱명의 작품을 놓고 고심한 끝에 「산책하는 이의 즐거움」 외, 「뱀눈나비」 외, 두명의 작품을 최종 논의하게 되었다. 앞 응모작은 한번에 쓰여진 것처럼 자연스러운 반면 산만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노력해서 쓸 수 없는 작품이었다. 뒤의 작품은 이미지를 정확하게 포착하여 묘사하는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었으나 형식의 면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해서 이미지를 포착해 꿰어엮는 능력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없는 작품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산책하는 이의 즐거움」 외 4편은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상상력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앞으로도 눈치를 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작품을 써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가능성이 큰 신인을 뽑게 되어 심사위원들은 기쁘게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새싹을 나눠주는 시,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시를 오래 쓰리라는 믿음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고형렬 김소연 이윤학

 

 

 

시 | 당선소감

 

수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가 그 정도의 인물이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심사위원 고형렬, 김소연, 이윤학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제 곁에서 말없이 응원해주고 지켜봐주던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대산대학문학상은 저에게 있어 다섯손가락 안에 들 큰 도전이었습니다. 근래에 아는 분에게 시를 조금 배웠다곤 하지만 그것도 새 발의 피 정도였습니다. 시로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심사위원들께서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산책하는 이의 즐거움」의 시작은 그저 길을 거니는 것이었습니다. 작년 가을과 겨울의 캠퍼스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풍경을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추위 때문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산속, 그곳 야트막한 언덕 위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노을이 나타날 때까지 우두커니 있었던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자신의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다른 이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어쩌면 저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라는,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길을 걷고 있기에, 그리고 막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하기에,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현실을 택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상을 좇아 달려가는 중이고 그로 인해 스스로가 살짝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는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끝에 있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길은 가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남들이 가지 않은 곳을 향하는 모험가처럼, 남들이 바쁘게 보낼 시간에 밖으로 나와 여유로이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처럼.

전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