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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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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片惠英

1972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재와 빨강』,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등이 있음. fragmenta@naver.com

 

 

 

비밀의 호의

 

 

택시는 떠날 것이다. 기사가 창문을 올렸다. 경술은 꿈쩍 않고 보도에 서 있었다. 이내 택시가 거리를 향해 육중하게 움직였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경술을 보았다. 경술은 택시가 남기고 간 불빛을 보고 있었다. 그는 경술을 역에 보내려 했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경술은 닫힌 방문 앞에 앉아 있었다. 경술은 현관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고는 드디어 피붙이를 만났고 초행인데도 잘 찾아와서 부모의 심부름을 해냈다는 자부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막차 시간이 임박한 걸 알고는 서둘러 돌아나와 택시를 잡았다. 서둘러도 늦을 거라는 경술의 말이 맞았다. 경술을 방에서 재우는 일은 무척 불편할 테니까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자 불편하기보다 몹시 화가 났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잊었지만 화를 내기도 피로한 일을 그날 낮에 겪었다. 서울에서 지내게 되면서 경술과는 명절이나 경조사가 있을 때나 한번 보는 정도였다.

그는 하나뿐인 이불과 베개를 경술에게 내주고 찬 바닥에 누웠다. 딱딱하고 냉기 어린 바닥에 누워 있자니 다분히 보호자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고작 이부자리를 내준 건데 뭔가 희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해준 게 없다는 뜻이어서 미안하기도 했다. 경술은 금세 서운함을 잊고 순전히 생애 첫 서울 나들이의 감회로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그는 딱딱한 바닥잠에 익숙지 않았다. 그들은 천장을 보고 누워 얼마간 얘기를 나눴다. 식구들이 나눌 법한 얘기였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 늘 아이를 화제 삼듯이 그들은 치매 걸린 할머니 얘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대학생인 그를 남편으로 착각해서 교태를 부리거나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는데, 그와 경술은 그러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흉내냈다. 부모가 보았다면 할머니를 돌보는 일에 지쳐 있었어도 그런 장난은 지나치다 싶어 야단을 쳤을 것이다. 그와 경술은 할머니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자책에 묘한 공모의식을 느꼈다.

나중에 할머니가 죽었을 때 그는 전혀 슬프지 않았다. 할머니는 죽어가면서 그의 손을 잡고 여보, 혼자만 먹지 말아,라고 했다. 할머니가 남긴 대사가 좀더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이면 좋았을 거였다. 늘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기 때문에 죽었다기보다는 잠시 잠이 든 것 같았다. 조만간 벌떡 일어나서 음식을 떠먹여달라고 앙탈을 부릴 것 같았다. 입관 때는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조금 울었지만 할머니 앞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와 달리 경술은 탈진할 정도로 울었다. 그 밤의 공모를 기억하고 있던 그는 괜히 머쓱해졌다.

화제가 끊기자 이번에는 경술이 서울과 대학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는 무뚝뚝하게 대꾸하다가 미안한 마음에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길게 덧붙였다. 그러기를 몇차례 되풀이하다보니 불쑥 피로해져서 그만 자라, 하고 말했다. 경술이 시무룩해져 입을 다물었다가 “여긴 정말 정신이 없는 곳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실로 정신없는 일이 그의 주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늘 뭔가 선택해야 했고 선택이 잘못되었으리라는 불안에 시달렸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가 더 큰 모멸감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뭐든 잘될 것 같아요.”

경술이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경술은 아직 고등학생이었고 서울에 머물 수 없는 집안사정이 있었다. 짐짓 애틋해져서 면박을 줬다.

“그게 뭐니. 좀 논리적으로 굴어라. 정신이 없는데 잘될 리가 있니.”

“그러면 재미가 없지요. 나는 비논리적이고 비약하는 게 좋아요. 그런 건 나만 하니까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 경술의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경술이 그에게 배가 고프다거나 날이 춥다고 하는 것 말고도 의견을 말하는 게 있구나 싶어서였다. 경술은 얘기를 나누거나 뭔가를 의논할 상대가 되지 않는 어린아이였다. 그와 경술은 아홉살 차이가 났다. 그의 부모가 아이를 낳던 시절에는 흔치 않은 터울이었다.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으로 그를 낳은 후 오랫동안 임신을 두려워했다. 그의 말은 무엇이든 당연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배어 있었고 그에게 크게 통박이라도 당한 것처럼 그를 어려워했고 주눅들어 보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경술이 그가 매번 논리적으로 생각하려다가 천편일률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걸 비아냥거리는 건가 싶었으나 그럴 리 없었다. 경술은 그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도 마찬가지로 경술을 모른다는 것은 한참 후에 깨달았다.

아침에 깼을 때 경술은 없었다. 첫차로 내려갔겠거니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부모에게 경술이 그날 이후 나흘간 집에 내려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모는 소문이 돌까 겁이 나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경술은 어디서 뭘 했느냐는 호된 다그침에도 입을 꽉 다물었다고 했다. 그가 나중에 경술을 보았을 때는 이미 충분히 야단을 맞아서인지 얌전하고 묵묵한 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보고 있자니 경술에게 그 나흘은 영영 지나가버린 것 같았다. 그런 순간일수록 금세 지나가고 지나가고 나면 그뿐이라는 걸 배운 듯했다. 그 나흘에 비하면 고향집의, 오래 밟아 삐걱대는 마룻바닥이나 집을 떠받치는 밤색 나무기둥, 치매 걸린 할머니의 어리광, 한적한 흙길과 야트막한 지붕들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이내 깨달았을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경술을 야단치려고 마음먹었다. 그에게 왔다가 생긴 일이어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쉽게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명절이라 친척들이 계속 드나들었다. 짬을 내 경술의 방으로 갔다. “경술아.” 책상에 앉아 있던 경술이 뒤돌아봤다. 그는 조금 주저하다 “그때 말이다” 하고 굳은 표정으로 말문을 텄다. 경술은 뭔가를 생각하듯, 그러니까 ‘그때’를 생각하듯 조금씩 표정이 변하더니 칭찬이라도 받을 것처럼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무심하거나 주눅든 얼굴이 아니었다. 그 표정에서는 숫제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것에 스스로 다가갔다는 자부, 생은 비밀을 갖는 것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통감한 긍지 같은 게 보였다. 생각해보면 부모와 함께 있을 때 경술에게서 보았던, 멍한 표정이나 딴 생각에 빠진 듯한 말투는 그 또래 계집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것이지 경술에게서만 보이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의 아이가 세상이 이물스럽지 않고 순조롭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니까. 경술은 허공을 향해 살짝 웃었다. 그가 다그치려는데 한떼의 친척 아이들이 경술의 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는 하릴없이 경술의 방에서 나왔고 밤 내내 그러면 재미가 없지요,라는 말과 함께 그와 부모가 모르는 나흘을, 경술을 의기양양하게 만든 나흘을 생각했으나, 다음날 일찍 서울로 돌아가야 할 일이 생기면서 다시 묻지 못했다.

그 나흘을 모르는 채로 오십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가 모르는 것은 비단 나흘만이 아니었다. 경술과 그는 식구들끼리 일상적으로 나누는 익살, 예를 들면 치매 걸린 할머니 흉내내기나 조금만 술에 취하면 나오는 아버지의 주정, 어머니의 반복되는 잔소리 같은 것을 함께 기억했지만 그밖에 사소하고도 일상적이며 소소한 삶은 내내 각자의 것이었다. 어린 시절, 경술이 따라다니며 놀이에 끼려 칭얼대면 그가 경술을 떼어놓으려 애쓰던 때도 있었을 테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아이에서 남자로 자라고 경술이 꼬마에서 여자로 자라면서부터 경술과 그는 남 보듯 대하는 게 익숙해졌다. 자라면서 경술이, 그가 보기에도 여자의 것처럼 보이는 맨다리를 내놓고 낮잠을 자거나 아니면 살이 희미하게 비치는 스타킹을 신고 스커트를 입거나 어머니의 축 처진 젖가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젖가슴이 어느날 얇은 티셔츠 위로 도드라진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짐짓 놀라기도 했으나 경술이 자신과는 다른 생리적, 신체적 질서를 가졌음을 깨닫는 게 다였다. 그들은 일생 이해할 필요도 없고 딱히 이해 못할 것도 없는 가족으로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서로 울음을 터뜨려본 적 없고 뭔가를 털어놓으려고 작은 소리로 속삭인 적도 없었다. 다툰 적이 없어 말 한마디 없이도 화해가 되는 신기를 경험해보지 못했고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지 않아서 크게 웃을 거리도 가져보지 못했다. 부모의 생일이나 집안 의례가 있을 때면 서로 상의했지만 예년 수준에서 비용을 각출하고 일을 분담하는 것으로 쉽게 합의했다.

그는 내내 궁금했다. 경술이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그가 보기에는 난봉꾼이 틀림없는 사내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 사내가 다른 여자 때문에 집을 나갔을 때, 하나뿐인 아들이 미국 유학을 가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통보했을 때 경술에게 사정을 묻고 위로를 하는 대신, 그 나흘간 뭘 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나흘을 알면 경술의 일생을 알 것 같았다. 경술이 가까운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으로 생의 이력을 쌓아가는 것도 오래전의 나흘 때문인 것 같았다. 경술에게 시력 상실이 진행 중인 걸 알았을 때도 그랬다. 언제부터 그런 것인지, 진단을 받아본 적 있는지, 그걸 알고 미국에서 돌아온 것인지 하는 것보다 그 나흘간 뭘 했는지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인생은 잠들어 있는 사나운 개와 같아서 일단 건드려놓으면 계속 으르렁대며 노려보고 경계하려 들기 마련인데, 그 나흘 동안 경술이 개의 꼬리라도 밟은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경술이 곤란할까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싶은 동시에 절대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게 뭐든 전적으로 경술 인생의 일부였다. 결코 그의 인생으로 스며들어서는 안되었다. 알고 나면 그의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아 불안했다. 경술은 이미 느닷없이 미국에서 돌아와 그의 집으로 들어왔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경술이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죽을 때까지 경술을 다시 보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전화로나 소식을 듣게 될 텐데, 그건 틀림없이 부고일 것이었다. 그가 전화로 듣는 소식이 죄다 그렇듯이. 그에게 무슨 일인가 생긴다면 경술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둘은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다. 경술이 미국에 있는 아들 집으로 떠나기 전 짧게 통화를 한 게 다였다. 함께 식사라도 할 법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와 경술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경술은 매사 트집을 잡았고 부러 친절하지 않은 말투를 썼다. 아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는 두 사람의 적의에 무관심했다.

커다란 트렁크를 현관 안으로 먼저 밀어넣고 나서 경술이 들어왔다. 경술이 놀란 표정의 그에게 말했다.

“드디어 내가 태어난 때로 돌아갔네요. 세상에나, 우리가 다시 같이 살게 되다니요. 태어날 때도 그랬는데, 죽을 때도 함께 있는 거잖아요.”

해후의 순간에 그를 붙든 것은 당혹감과 불쾌감이었다. 연극적으로 과장하는 말투는 확실히 감회를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 그는 왜 네가 여기서 살 생각이냐고 묻지 못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오빠를 돌봐주러 왔다는 경술의 능청스런 대답을 들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경술은 트렁크를 풀고 방 하나를 제가 쓰겠다고 한 후 당장 냉장고를 열어 안에 든 것들을 다 꺼내더니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경술을 만류할 기회를 놓쳤다.

그와 지내는 동안 경술의 눈은 점점 나빠졌다. 얼마 전까지는 빛과 어둠을 구분했고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알았고 눈앞에서 손을 흔들면 알아봤다. 최근에 급격히 나빠진 게 분명했다. 아예 외출을 하지 않으려 들고 집 안에서 소파나 식탁 모서리, 벽에 자주 부딪혔다. 시계를 읽지 못했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소리로만 듣느라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손으로 더듬거려 물건을 파악했다. 그가 있는 쪽을 보기는 하지만 시선을 마주치지는 못했다. 이미 심각할 정도로 시력 상실이 진행된 것인지도 몰랐다.

아무도 그에게 눈이 먼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경술의 증상을 알아채고 그가 겨우 떠올린 사람은 교사 시절의 동료였다. 동료는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신경외과에서 찍은 뇌 영상을 판독해보니 거대한 종양이 양쪽 전두엽으로 번져나가 있었다고 했다. 신경세포를 따라 뇌 구석구석 뻗어나간 종양은 영상으로 보면 검은 혈관처럼 보였다. 우려와 달리 종양은 양성이었으나 워낙 크기가 커서 수술로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신경학 계통에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교사들은 한동안 모일 때마다 눈이 먼 동료를 화제에 올렸다.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을 때 상식적으로 서둘러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상식적’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무슨 일인가 결정해야 할 때면 최악을 면할 방편으로 그 말을 떠올려봤다. 별 도움이 안됐다.

경술을 볼 때면 상식적으로 늦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술은 단순히 노안으로 시력 저하를 겪는 게 아니라 질병을 앓는 것 같았다. 뇌손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흔한 안과 질환, 이를테면 녹내장이나 황반변성, 색소성망막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그간 경술이 해온 말들을 무심히 넘겼다. 눈이 침침하다거나 시야가 뿌옇다거나 사물이 찌그러져 보인다는 말들을. 눈이 안 보이는 척해서 관심을 끌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경술은 참을성이 없고 워낙에 말이 많았으며 전조 없이 질병을 앓을까봐 두려워해서 작은 증상도 참지 않고 모조리 말하는 편이었으니까. 경술은 나이가 들면 주름이 늘거나 검버섯이 피거나 관절 사이가 헐렁해져 시큰거리는 것처럼 육체의 노쇠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고려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예민했다. 좀더 일찍 예민하게 굴어서 치료를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후에 예민하게 굴었다. 그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무척이나 피곤하게 만든다는 의미였다. 나중에 경술은 자신이 맹인이 되는 것에 그가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그는 오히려 불행이 멀지 않다는 걸, 경술의 방에 항시 깔려 있는 이부자리처럼 가까운 곳에서 늘 불길한 냄새를 풍기며 자리잡고 있다는 걸 상기해야만 했다.

경술이 한사코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해서 병명을 묻는 요양원 상담자에게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상담자는 진단을 받아본 적 없다는 말에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그게 왜 그런 걸까요?”

그가 우둔하게 묻자 상담자는 전화상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고만 대답했다. 그는 상담자가 경술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명백한 대답을 유보하는 게 못마땅했다.

“이제야 개나리가 저렇게 피네요.”

전화를 끊고 나가보니 경술이 베란다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개나리는 며칠 전부터 노랗게 질린 얼굴을 아파트 담벼락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목련도 피려나 봐요. 그렇지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경술이 손을 뻗어 가리킨 부근에는 꽃망울을 터뜨린 목련나무가 서 있기는 할 것이었다. 경술은 그것들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뉴스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젯밤 그들은 이른 봄의 때아닌 추위로 서울에서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함께 보았다.

“그래, 곧 활짝 피겠구나.”

그는 나무를 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꾸하고는 경술에게 물었다.

“오늘은 뭘 할 거니?”

대답을 기다리며 경술을 보았다.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경술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경술은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시간과 희미하게 어둠이 살포된 저물녘을 공기 변화 없이는 알아채지 못했고 짐작이나 추측, 기억에 의지하지 않고 사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목소리를 듣지 않고는 상대를 알아볼 수 없고 냄새로 기후 변화를 알아챘다. 변한 듯 그대로인 창밖 풍경이나 집 안에 쌓여가는 먼지, 손자국이 많이 나서 반사기능이 떨어진 거울 같은 것이 경술에게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술은 이제 예순을 조금 넘었다. 청춘이라고 과장할 수는 없지만 삶의 영역을 최소한으로 한정하기에는 이른 나이인 게 분명했다.

“오빠는 서재에서 책을 보실 거죠? 저는 청소를 할까 봐요. 오후에 친구가 찾아올지도 몰라서요.”

그에게는 서재가 없었다. 지은 지 이십오년이 넘은 아파트에 방은 두개뿐이고 그와 경술이 각각 하나씩 쓰고 있었다. 찾아올 친구도 없었지만 경술은 매번 그런 식으로 대꾸했다.

“누가 온다는 거니?”

“오빠가 모르는 친구예요.”

되묻는 법 없던 그가 캐묻자 경술은 조금 당황한 듯했다.

“오늘은 산책을 좀 가자.”

“어디로요?”

“좋은 숲이 있다더라.”

“날이 좀 따뜻해지면 가요.”

“오늘만 해도 따뜻한 거지. 포근해진다 싶으면 금세 더워질 거다.”

“이맘때는 황사도 자주 오잖아요. 밖에 나가기 좋은 날은 아니에요.”

“집에만 있기에도 좋은 날은 아니다.”

그는 품위있고 다정한 연장자로서의 대화에 흥미를 잃고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경술이 정말 나갈 거냐는 듯 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의지를 보여주듯 딱히 들를 곳도 없으면서 현관문을 나섰다. 그는 오늘의 외출을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충동적으로 취소할 수는 없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푹 꺼진 밋밋한 둔부가 먼저 눈에 띄었다. 계단을 청소하는 노파였다. 노파는 엉덩이를 높이 들고 계단에 세제를 뿌려 일일이 솔질을 하고 있었다. 약간 굽고 살집이 붙긴 했지만 여전히 묵직하고 튼튼한 그의 허리에 비해 노파의 허리는 구부정하고 뭉툭했다.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에 노파가 뒤를 돌아봤다. 눈이 마주쳐 할 수 없이 인사를 건넸다. 노파는 제 성량보다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는데 그가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무슨 일로 나오셨어요?”

그는 대꾸하지 않고 현관 쪽으로 갔다. 노파가 재빨리 그를 따라와 셔츠 자락을 움켜쥐었다.

“어딜 혼자 나가시려고 해요. 동생이 걱정하니까 얼른 들어가세요.”

그는 길을 막아서는 노파 때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실랑이를 벌이지는 않았다. 노파가 왜 그러는 줄 알 것 같아서였다.

“멀리 가시면 안돼요. 동생분이 걱정하신다고요. 아셨죠?”

노파가 어린아이 달래듯 했다. 그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노파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부담스러워 도망치듯 몸을 돌려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몇층 가시는 줄은 아시죠?”

노파가 엘리베이터 안쪽까지 바짝 얼굴을 디밀고 물었다. 그는 갈 데도 없는데 뒤로 물러섰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닫힌 엘리베이터 문에 비쳤다. 놀란 듯하면서 근심에 싸인 얼굴이었다.

노파가 그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은 경술 탓이었다. 그는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던 사람들이 경술이 온 다음부터 할아버지라고 호칭을 바꾸는 것을 귀담아들었다. 이웃들은 그가 퇴직한 교장인 줄 알고 있었다. 예전에 교사였다고만 말했지 평교사로 사직했다는 얘기를 생략해서 생긴 일이었다. 그동안 그가 해온 교양있고 점잖고 의젓한 퇴직교사 행세는 경술이 오면서 곧 끝났다. 그는 까탈스럽고 인색한 노인네가 되었다. 경술은 그런 육친을 돌보는 일로 이웃에게 동정을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또 이웃들은 그에게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아내가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언젠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경비원과 주민 몇명이 암에 걸린 이웃을 걱정하며 얘기를 나눌 때, 그가 무심코 대꾸하며 끼어들었다가 그렇게 알려져버렸다. 누군가 암에 걸린 가족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주워들은 얘기로 아는 척한 게 머쓱해서였지만, 침묵은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니까. 그 침묵 때문에 사람들은 아마도 가까운 가족을, 그러니까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비약이 지나치다 싶었지만 한번 알려지자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오해를 방관했다. 물론 경술이 오기 전까지의 일이다. 지금은 간혹 아파트에서 만나는 사람들, 청소부 노파나 경비원, 이웃들의 눈빛을 통해서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방금 노파를 통해 알게 된 것처럼. 이제는 숫제 치매환자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홀로 고요히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해도 소용없었다. 그에 대한 평판을 만드는 건 언제나 경술이었다.

그도 그 사람들을 알았다. 청소부 노파는 종합검진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는데, 암 치료보다 이혼한 아들과 중학생 손녀 걱정이 마를 날 없었다. 경비원은 그 자리에 들어오기 위해 관리사무소에 얼마간의 돈을 냈다. 옆집 여자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알코올중독자가 분명한데, 매일 바깥에서 페트병에 든 맥주를 마시고 술을 안 마신 척 엘리베이터나 계단참에 빈 병을 버려두고 집으로 들어갔다. 모두 경술에게 들은 얘기였다. 고스란히 믿을 수 없었으므로 이웃과 화제로 삼지는 않았다. 경술의 얘기는 건성으로 대꾸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 얘기를 곧이듣는다면 어떤 경우에는 이웃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경술의 말에 따르면 이웃은 모두 조울증을 앓고 있으며 비밀로 삼을 만한 가족사를 술이나 담배 같은 것에 의존해 해소했고 치료가 시급하나 완치가 어려운 질병에 걸려 있었다.

그는 화가 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경술은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단출한 짐을 들고 서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경술이 현관 쪽을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과 달리 경술은 말이 많았다. 경술을 보면 늙어가는 건 말이 많아진다는 걸까 싶기도 했다. 확실히 그랬다. 사람들에게 자기에 대한 것뿐 아니라 그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얘기해대는 걸 보면 자제력을 잃은 게 틀림없었다. 말이 많고 눈이 먼 사람과 함께 지내는 일에 대해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 생각할 것도 없이 답은 간단했다. 그런 말을 포함해서 그에게 뭔가 얘기를 해줄 사람은 경술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경술은 눈이 침침하다거나 피로하다며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함께 외출하는 건 처음인데도 그가 경술을 부축하고 버스 의자에 앉히고 길을 인도하는 게 비교적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경술은 버스 안에서 계속 떠들어댔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과 얘기했고, 그 사람이 내리면 몸을 돌려 뒤에 앉은 그에게 말을 걸었고 그도 아니면 혼잣말을 했다. 신통할 것 없는 얘기들이었다. 처음에는 한탄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자랑으로 끝나는, 실망만 안겨준 미국 생활과 아들 얘기거나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이웃 얘기였다. 적당히 말을 쉬는 법 없이 누군가 들어주지 않을까봐, 말할 기회를 잃게 될까봐 걱정된다는 듯 떠들어댔다. 경술은 자기가 늘어놓는 무미건조한 이야기에 도취된 것 같았지만 무한정 계속하지는 못했다. 이야기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산만해지는 건 금세 알게 되니까.

그는 스스로 남의 말을 경청한다고 자처했다. 입을 꾹 다물고 사려깊게 몸을 끄덕이면서 말이다. 성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법이 없고 의견이 다를지라도 일단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교적인 성격이거나 면밀한 계산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별로 말이 없는 편인데다가 누가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수긍하며 들어줄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경술의 얘기에도 분명 그런 점이 있었다. 그는 경술이 아파트 복도에서 혹은 제 방에서 이웃과 하는 말을 들으며 경술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과 말하고 싶지 않은 게 무엇인지 알았다. 그 구분을 통해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고 싶어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았다. 경술은 거의 모든 것을 다 얘기하는 듯해도 절대로 오래전의 나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있고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다는 건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로 그러나 단호하게 경술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했지만 얘기를 시작할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내거나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경술 때문에 이내 의지가 꺾였다.

아내가 남자 문제로 집을 나간 후 그는 빠르게 달라졌다. 동료 교사들에게 자주 술주정을 했다. 조회를 빼먹고 술냄새를 풍기는 채로 간신히 일교시 수업에 들어갔다. 그가 십오년간 담당했던 타자과목이 교과과정 개편으로 없어진 지 채 일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는 일정 기간 까다로운 연수를 받았고 국어과목을 가르치게 되었다. 타자과목에 비하면 국어과목은 해야 할 말이 많았다. 그는 거의 매시간 아이들에게 교과서만 읽게 했고 시를 외우게 했고 자습서에 쓰인 해제를 그대로 불러주거나 필기시켰다. 성실함을 잃게 되자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되었고 술값을 지출하는 일이 늘면서 동료들에게 푼돈을 빌려 쓰기 시작했다. 빌린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모른 척하며 갚지 않았고 지각과 조퇴를 예사로 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동료들은 얼마간 그를 너그럽게 봐주었다. 그는 담당하던 교과를 잃었고 기존 국어교사들의 텃세에 시달렸으며 무엇보다 아내가 갑자기 떠났으니까. 동료들은 그를 안쓰럽고 애처롭게 여겼으나 그는 동료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될까봐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잔뜩 꼬여 있었다. 거칠게 말하고 거짓말로 변명하고 심술궂게 대하고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계속 쓰자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간신히 의지를 추슬러 다른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을 때는 몇년간의 칩거와 고립이 이미 그를 어떤 일에도 맞지 않는 인물로 만들어놓은 후였다. 전업할 수 있는 시기도 오래전에 놓쳤다. 그는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는 돈의 일부를 주식에 투자하는 식으로 생계를 꾸리고자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액수의 돈을 탕진했다. 누군가 그에게 주식거래의 핵심은 신속함이라고 충고했으나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매번 한발 늦었다. 짧은 기간의 주식투자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정당한 노동이 가장 손쉬운 돈벌이라는 당연한 교훈 말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생각해서 결정하면 항상 늦는다는 것 말이다. 그는 행동하기 전에 많이 생각하고 망설이는 성격이었다. 그러다가도 결국 행동을 취해야 할 때가 닥쳐오면 자신이 가장 좋지 않다고 생각해온 선택을 했다. 그는 뭔가를 선택하는 일을 늘 두려워했는데, 주식은 그에게 날마다 선택하고 결정하게 했고, 언제나 선택이 틀렸다는 자괴감을 남겨주었다.

나이가 들자 뜻밖에 괜찮다 여겨지는 것이 많아졌는데, 그중 하나가 선택해야 할 일이 줄었다는 거였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새로울 게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원하지 않는 노동을 견디며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없고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거나 애써 긍정감과 희망을 품을 필요도 없었다. 시간을 다투지 않아도 되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책임져야 할 일도 없고 사이가 틀어질까봐 조심해야 할 사람도 없었다. 과거에 알았던 사람들과 연락이 끊기면서 근황이나 아내 소식을 묻는 사람도 없어졌다. 그 덕에 고요해진 탓인지 그럴 만한 시간이 지나서인지, 아내에게 화도 나지 않았고 그럭저럭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다. 마음만 먹으면 영 다른 사람 행세를 할 수도 있을 만큼 오며가며 마주치는 아파트 주민들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어졌는데, 이상하고 믿을 수 없지만 평온했다. 일생 이렇게 평안하고 행복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앞으로는 그저 육체적 허기에 답하고 쇠약에 적응하는 일로 간소하고 소박한 일상을 채워가면 될 것 같았다. 늙는다는 게 뭔지 잘 몰랐지만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점차 사그라들다 한순간 훅 꺼져버리는 불꽃처럼 노쇠한 숨이 이어지다 돌연 끊어지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막연하게도 그는 노년이란 모든 운명이 종결되는 시기이므로 우연의 신비를 더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체념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불확실성을 확실하고 결정적으로 잠재우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경술이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경술은 끊임없는 수다와 특유의 솔직함으로 그가 인생에서 숨기고 싶었던 것, 비밀로 삼아왔던 것들을 거리낌없이 폭로해버렸다. 그럼으로써 혼란을 야기했고 거짓말의 충돌로 인한 오해를 만들었다.

이웃에게 알려졌다고 해서 그가 비난을 받거나 입방아에 오르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를 힐끔거리거나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내가 집을 나간 것은, 그것도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일은, 자신에게나 특별한 일이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절친한 사람을 예기치 못한 일로 떠나보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믿었던 사람의 변심은 흔하디흔한 것이어서 위로나 격려를 받을 사건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풍파를 경험한 늙은이라면 누구나 과거의 일부를 과장하고 허세를 떤다고 생각했다. 그가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이웃에게 관심을 살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 일은 그에게만 충격을 주었다. 그는 비밀이라는 명분으로 인생을 포장해왔던 자신과 직면했다. 겸연쩍었고, 참을 수 없이 슬퍼졌다. 그의 슬픔은 자신의 비밀이 대단치 않은 것임을 깨달아서였고, 사람들이 이미 그것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였다. 무엇보다 비밀이 있건 없건 적막과 고독 속에서 지내야 한다는 게 자명해서였다.

버스에서 내린 후에는 간이 이정표를 따라 좁은 숲길을 걸어야 했다. 그는 경술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경술에게 이부자리를 내주고 찬 바닥에 누웠던 밤을 떠오르게 했다. 딱딱하고 차가운 밤이 그에게 보호자로서 위신을 세워줬다면, 축축하고 눅눅한 손바닥은 그에게 부양자로서의 부담과 경술에게 성급하게 수의를 입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을 불러왔다. 그 때문에 금세 피로해졌는데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점차 땀이 차오르는 두개의 손바닥을 견디는 일은 힘들었다. 기억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그가 경술과 손을 잡은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그만큼이나 경술도 어색하고 불편해하는 걸 감지했으나 동시에 의지할 데라고는 이 손밖에 없다는 체념도 느껴졌다. 먼저 손을 빼지 못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랬다.

경술은 느릿느릿 걸으면서 자주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는 식으로 장소를 살폈다. 이 난데없는 산책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하지 못할 텐데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는 부쩍 말수가 줄었다. 그의 손을 잡고는 있지만 걷는 일에 집중하느라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그저 산책 삼아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은 진작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목적지를 짐작하는지도 몰랐다. 문을 닫고 통화하기는 했으나 그는 제법 자주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으니까. 먼 데서 새소리가 들리자 경술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땀이 찬 손바닥을 떼어내고 가방에서 무늬 없는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손바닥을 닦으려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식초가 섞인 듯한 땀냄새가 났다. 손수건을 건네주자 경술이 자기 손과 얼굴을 조심조심 닦고는 그의 점퍼 주머니에 손수건을 넣어주었다. 경술에게 뭔가 얘기해야 한다면 지금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일 같았다. 그런데 눈이 완전히 멀지도 않은 경술을 곧 눈이 멀 거라는 이유로 병원도 아닌 요양원에 방치하는 일을 어떻게 얘기할지 생각하자 매우 곤란하고 어려운 문제로 여겨졌다. 그는 경술과 좀더 함께 지낼 수도 있었다. 경술이 비록 거동이 불편하더라도 활달하고 말 많은 과부로 적응해가는 걸 지켜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지내고 싶었다. 일시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경술에게 종종 화가 나고 귀찮기도 했지만 그런 순간이 지난 뒤에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뭔가를 바란 지 하도 오래되어서 자신에게 욕망이 생겼다는 데 놀랐다. 그것이 깊고도 지속적이어서 또 한번 놀랐다. 경술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만약 물었다면 치료를 위해서라고 안심시킬 수도 있었다. 경술은 사실이 아님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 치료 때문이라면 도시의 병원으로 데리고 갔을 테니까.

다시 손을 잡고 얼마간 걸은 후에 철문을 밀어 여는 소리가 나자 경술이 그가 있는 쪽을 보며 도착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경술이 먼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게 소리를 내어 철문부터 현관까지 몇걸음이나 되는지 세기 시작했다. 모두 열한걸음이었다. 경술이 잊지 않으려는 듯 여러번 되뇌었다. 열한걸음이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러나 경술은 혼자 걷는 것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을 때와 폭과 속도와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므로 방금 자신이 걸어온 열한걸음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지, 더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것이다.

상담실에서 그들은 나란히 앉아 설명을 들었다. 상담자는 경술이 수술로 시력을 회복할 수 없는 경우라면 장차 점자와 지팡이 사용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했다. 경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연한 태도 때문에 그는 경술이 모든 것을, 그러니까 치료가 실명 시기를 늦추기는 하겠지만 시력을 완전히 잃는 걸 막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외출의 목적지가 요양원임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심 속에서도 경술이 손을 더듬어 문장을 읽고 지팡이로 길을 익히는 모습을 떠올리니 불쾌해졌다. 상담자가 펼쳐놓았던 수첩을 딱 소리가 나게 덮었다. 끝났다는 신호였다. 이제는 경술에게 뭔가 물어볼 시간도 없고, 이별에 예의를 차릴 만한 시간도 없었다.

상담자가 일어서는 소리에 경술이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따라 일어섰다. 손짓에 대꾸하듯 상담자가 경술의 팔을 잡아주었다. 경술이 상담자에게 의지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경술이 자기를 보려 한다고 생각했고 무슨 말인가 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경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보는 대신 문 쪽으로 걸었다. 경술은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경술을 잃었다. 그것은 경술이 눈이 멀고 진심 섞인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그가 눈이 멀지 않고 계속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요양원을 나서자마자 그는 경술의 쉴 새 없는 재잘거림이, 거짓말과 진실이 뒤범벅되어 전부를 거짓말로 만드는 기묘한 언술이 그리워질 것 같았다. 당장 모든 일을 물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일렀다. 내일이면 늦을 게 분명하지만.

그가 자책과 절망이 섞인 열한걸음을 되짚어 걸으려 할 때 “오빠”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상담자는 어디에 간 것인지 없고 경술이 복도에 혼자 서서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한때 경술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빛과 그림자가 뒤섞여 있거나 희미하게 빛이 흩어진 분자로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경술은 옅은 미소를 띠고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눈을 반쯤 덮을 정도로 처진 눈꺼풀과 아마도 흰 코털이 비어져나와 있을 콧구멍, 가느다랗게 숨이 새어나오는 벌린 입, 얼굴을 뒤덮은 검버섯, 깊게 파인 주름 같은 것을 낱낱이 살펴보면서. 낯선 듯 익숙한 미소는 오래전 비밀을 품어 의기양양해진 웃음과 닮아 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해서 경술을 보았다. 경술이 천천히 그러나 똑바로 걸어와서는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손금이 느껴질 정도로 메마르고 차가운 손이었다. 경술이 그를 마주 보았다. 잠깐이지만 그는 자신이 경술에게 뭔가를 물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 뭘 했느냐거나 어디서 지냈느냐는 질문 말이다. 경술이 그 대답으로 웃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술은 아무 말 없이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고 이내 돌아서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숲길을 걸어내려오는 동안 차츰 빛의 잔광이 사라졌다. 그렇기는 해도 어두워진 건 시간은 아니었다. 언덕 위에 있는 요양원은 나무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점퍼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경술은 숲길을 걸어내려갈 사람은 그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듯했다. 그는 손수건을 길가에 버렸다. 어떤 물건이든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한 물건은 언젠가 버려지는 법이니까. 게다가 자신은 뭔가를 잃는 걸 당연하게 여길 만한 나이니까, 괜찮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주저앉아 신발을 벗었다. 신발 안에 작은 돌멩이가 들어갔는지 걸음이 내내 편치 않았다. 탁탁 소리가 나게 신발을 털고 안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돌멩이를 찾아 밑창에 손을 넣었다. 끈적거리는 게 묻었을 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다시 신을 신고 의자에 앉아 적막한 도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도로는 뭉텅 잘린 듯 보이지 않아서 거기서 버스가 나타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간간이 새가 울었다. 사위는 어둡고 고요했다. 그는 드디어 홀로 남았다.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지만 그 또한 괜찮았다. 셀 수 없는 주름과 거칠고 메마른 살갗, 아침이면 마른 몸에서 떨어지는 살비듬과 숱 적은 흰 머리, 제 기능을 잃어가는 내장들이 차차 그를 따뜻하게 감싸고 호의를 베풀고 안정감을 줄 테니까. 앞으로의 삶은 비밀을 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므로 비밀이 없어 허허롭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가 언젠가 겪었음직한 일만 겪게 할 것이고 모든 것이 불분명하지만 다 알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동시에 이토록 늙어가도록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괴를 줄 것이고 그럼으로써 무엇도 기대하지 않게 만들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는, 그게 늙음 탓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