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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정민 『한밤중에 잠깨어』, 문학동네 2012
다산의 한시를 어떻게 읽어낼까
류준필 柳浚弼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 pilsotm@inha.ac.kr
올해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의 탄생 250주년이다. 다산학 관련 기관과 단체에서 기념행사가 많이 열리는 중이다. 1900년대의 다산 저술 간행, 서거 100주년을 계기로 전개된 1930년대의 조선학운동, 1960~70년대에 본격화된 실학연구 등을 계승하는 일이겠다. 이러한 흐름과 무관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같이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독특한 다산 연구가 근자에 지속되었다. 그것은 실학적 비판성보다는 취향의 문화사적 변동에 초점을 맞춘 경향이며, 어찌 보면 학술의 취향화 경향이기도 하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어록청상(茶山語錄淸賞)』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등의 저술을 간행한 정민(鄭珉)이 이를 주도해왔다. 최근 『한밤중에 잠깨어: 한시로 읽는 다산의 유배일기』(이하 『한밤중』)를 출간함으로써 정민은 다산과 관련된 자신의 저술목록에 한권을 더 추가했다. 이번엔 다산의 한시를 읽자고 한다.
『한밤중』은 정약용이 장기(長鬐)와 강진에 유배되어 있던 기간(각각 1801.3~1801.10, 1801.11~1818.9)에 쓴 한시 작품의 일부를 뽑아 풀이한 책이다. 유배지의 한시에는 “다산의 맨 얼굴이 그대로 보”여서 “그도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이었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도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유배 초기 장기에서 씌어진 시편들에는 “들끓는 마음을 가누지 못해 쩔쩔매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더 잘 드러나 있다(6~7면). 『한밤중』의 3분의 2가 7개월 장기 유배기의 한시들로 채워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마 정약용이라는 대표적 실학자의 면모를 조금은 색다르게 읽고 싶은 저자의 충동이 작용한 결과겠다.
이 책에서 각 작품을 다루는 방식은 한시 원문, 번역, 해설, 자구 설명 등 네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진다. 한문학 작품의 대중적 해설서가 취하는 전형적인 체제다. 다만, 한시 작품의 해설 방식이 약간 독특하다. 1인칭 화자, 즉 정약용의 입장에서 독백체로 서술된다. 아울러 평소 잠언・경구의 청언(淸言)에 관심이 많은 저자여서인지 독백투의 짧은 문장을 이어 해설문을 만든다. 한시와의 거리감도 좁히고 정약용의 심정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방편이다. 이 책의 부제가 ‘한시로 읽는 다산의 유배일기’라는 데서 짐작되듯, 대학자의 드높은 성취 이면에 놓인 내면의 굴곡을 보이려는 의도의 표현이다.
저자의 의도를 그 자체로는 인정할 만하다. 그렇지만 과연 『한밤중』 전체에 걸쳐 긍정적 효과가 발휘되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고작 이런 인간이었나” “내가 내 깜냥을 몰랐을 뿐” “허물을 벗고 더욱 건실해지리라” “남 탓하지 않겠다” “미루지 말게. 다음번은 없네” 등과 같은 독백이 앞에서 반복된다. 반성의 감상적 반복은 상투적 변명처럼 들린다. 이렇게 되니 한시와의 거리감을 줄이려는 애초의 의도는 희미해진다. 원래 작품 속에서 울리던 정약용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개별 작품의 다채로운 형상화에 견주어 보자니 저자의 독백투 해설에는 상투적 감상이 범람한다는 인상이다.
왜 이런 격절(隔絶)이 생겨났을까. 저자가 공력을 기울여야 할 곳은 이러한 독백투 해설은 아니었지 싶다. 그보다는 한시의 ‘번역’에 몇갑절 더 힘을 기울여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다음 번역의 결과를 놓고 왜 이렇게 번역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내용이 해설문이어야 했다. 가령 “취한 듯 술 깬 듯 반평생을 보내니/간 곳마다 이 몸의 이름만 넘쳐난다./온 땅 가득 진창인데 갈기 늦게 요동치고/하늘 온통 그물인데 날개 마구 펼친 듯해”(12면)는 「나를 비웃다(自笑)」 연작 첫째 수의 1~4구이다. 흔히들 율시의 번역은 4음보 4・4조 형태를 취하는데, 여기서도 동일하다. 하지만 율시의 함련(頷聯, 3~4구)이 대구를 이루어야 한다는 형식적 규칙이 번역에 가한 제약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평자라면, 한시 번역의 4・4조 강박에서 벗어나려는 취지도 보태어, “泥沙滿地掉鬐晩/網罟彌天舒翼輕”의 원문을 “땅이라면, 진창 속의 물고기〔말갈기〕 때늦은 몸부림/하늘이면, 그물 아래 새 신세 연약한〔경솔한〕 날갯짓”(〔 〕은 다른 번역 가능성)으로 번역하고 싶다. 그런 다음 이렇게 번역한 이유 설명으로 해설을 대신하겠다.
4・4조 4음보 혹은 7・5조 3음보 형태로 일관되는 시 번역의 고충과 불가피성은 충분히 헤아릴 만하다. 그렇지만 번역 율조의 단순성으로 인해 정약용 한시의 다양성이 손상되기 쉽다는 번역자의 고민이 번역에 녹아 있어야 했다. 더구나 한시 양식에는 문화적 관습의 무게가 늘 전제된다. 그 관습을 번역에 담아내는 노력은 지난하지만 필수적이다. 『한밤중』에도 다양한 시체(詩體)가 포괄되어 있듯이, 특히 정약용은 다양한 시 양식을 두루 활용한 시인이라 더 그렇다. 「내가 그리는 옛 사람(我思古人行)」 연작은 7언 6구의 짧은 가행체인데, ‘我思古人’이 반복되어 더 단순한 형식이다. 저자는 이 구절을 “내 그리는 옛사람” “내 옛 분을 그리다가”로 달리 번역했다(32면). 도리없이 민가(民歌)적 단순성은 그만큼 약화된다. 「古詩」 19수의 시적 전범성을 의식해서 정약용의 「古詩」 27수(38~95면)가 태어났다. 장기 유배기의 한시에 정약용의 ‘맨 얼굴’이 드러난 것도 시 양식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 그때 정약용이, 나아가 시인들이 ‘옛날(古)’을 포착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유한성의 자각〔無常感〕과 별리의 정한(情恨)이라는 「古詩」의 두 기조가 교직되는 자리가 아닐까. 정답이 있다기보다 번역(자)의 입장이 필요한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귀양지의 여덟 위안(遷居八趣)」 「근심이 밀려와(憂來十二章)」 「근심을 보내고(遣憂)」도 5언 4구 스무글자 고시풍의 짧디짧은 시편들이다. 그런 만큼 자연스럽고 선명한 마음의 응축이다. 독백이든 평설이든 말을 달고 나면 그 시심(詩心)이 이지러지기 쉽다. 따라서 번역 자체가 해설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늘어진 해설 독백 탓에 그 시가 태어나던 그 순간의 시심이 흐릿해진다.
『한밤중』은 ‘한시로 읽는 다산의 유배일기’를 표방했다. 그렇지만 한시로 읽을 때와 다른 것으로 읽을 때의 차이를 예민하게 드러낸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한)시를 번역한다는 작업의 깊은 울림이 약해 보인다. 번역에는 분명 맞고 틀림이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과는 상관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번역을 표준화하려는 욕망과 그것을 거부하려는 욕망의 갈등이라고 할 수도 있다. 번역을 맞고 틀림의 문제로 환원할 때 군림하게 되는 억압적 권위와는 달리, 표준화될 수 없는 번역(언어)의 개인성은 범례들의 축적으로만 그 전범성이 실재화된다. 한시 번역의 분야에서 멀지 않아 그러한 범례가 등장한다면 정민은 그 유력한 후보의 한 사람이다. 그가 내는 책을 매번 펼쳐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거니와, 『한밤중』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