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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리처드 도킨스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김영사 2012

과학책을 읽는 즐거움

 

 

이강영 李康榮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 kylee14214@gmail.com

 

 

6899쏟아지는 과학책을 접할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들곤 한다. 일반 독자를 위한 과학책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대중을 위해 쓴 과학책의 목표는 무엇일까? 물론 독자에게 과학을 알려주려고 쓴다. 그럼 다시 물어보자. 과학책을 읽으면 정말 과학을 알 수 있는가?

왜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가 하면, 과학을 알고 싶다고 해서 과학교과서를 읽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과학을 알고 싶다고 하는 사람에게 일반물리학이나 일반생물학 개론, 혹은 양자역학이나 전자기학 교과서를 권해주는 일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 책들이 너무 어려워서? 그럴 리 없다. 일반물리학 개론은 특정 학과에서만이 아니라 과학과 공학 계열의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본다. 그러니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다른 학문 분야의 교과서에 해당하는 책을 일반인이 읽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런데 유독 과학교과서와 대중과학서 사이의 아득한 간극은 무엇 때문일까? 과학을 정말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과학책을 왜 읽는 걸까? 과학 주변의 에피소드나 신기한 이야기가 주는 흥미 때문에? 그런 정도의 지식을 주는 것이 대중과학서의 목적일까?

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The Magic of Reality: How We Know Whats Really True, 김명남 옮김)을 읽으면서 이런 고민에 대해 하나의 답을 얻었다. 도킨스는 오늘날 대중을 위해 과학책을 쓰는 과학자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가장 성공적인 저술가일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부터 『만들어진 신』까지, 진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대중에게 생물학을 설명하는 그의 저서들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많이 팔렸으며,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와는 달리) 널리 읽히며 대중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도킨스는 훌륭한 저술가에서 그치지 않고 강력한 논객이며, 미신과 ‘가짜 과학’의 비판자로서, 과학자 중 최고의 전사다. 그는 단지 과학지식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론, 지적 설계론, 초능력 같은 가짜 과학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의 비판은 종교 일반으로 확대되어, 2006년에 나온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는,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고 단언하며 적극적으로 무신론을 옹호했다.

도킨스는 또한 “생명체란 유전자들의 생존기계”라고 할 정도로, 진화생물학자 중에서도 가장 철저하게 유전자의 역할에 중점을 두는 입장이다. 유전자를 통해 유기체 모두를 설명하려는 그의 강한 환원적 입장은, 일부 다른 생물학자들로부터 유전자 결정론자라든가 초() 다윈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은 도킨스의 예전 책들과 조금 다르다. 이 책은 비판과 논증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목처럼 독자의 ‘가슴을 뛰게’ 하기 위해 쓴 것이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얼마나 재미있고 아름다우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가를 소개한다. 그래서 전투적이고 비판적인 면모는 사라지고(약간은 남아 있다), 자세한 설명이나 논증보다 아름다운 비유와 재미있는 실제 혹은 상상의 예들로 가득 차 있다. 다루는 주제도 생물학과 진화에 국한되지 않고 지구와 우주의 역사, 우주의 시작, 물질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도킨스는 이 책을 열두개의 질문으로 구성하고, 각 장마다 먼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담고 있는 신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신화와 과학이 주는 설명 중에서 어느 편이 더 신비로운가, 더 놀랍고 흥미로운가를 묻는다. 그럼으로써 과학을 통해 이해하는 세상이, 고대인이 바라보던 세상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과학을 안다는 것이란 과학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의 일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우주가 137억년 전에 빅뱅으로부터 시작했다든지, 인간과 침팬지는 600만년 전에 갈라져 나온 종이라는 지식을 기억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런 단편적인 지식들보다 가령 인체의 자가면역질환은 초식동물이 풀숲에 표범이 숨어 있다고 가정하고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 도킨스는 그런 식으로 과학의 원리들을 이야기로 바꾸어서 전달한다. 그 때문에 과학의 원리가 주는 감동, 그 경이감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과학자가 보는 세상을 묘사한 것이다. 무지개의 원리나 눈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 대목을 보면 그것을 잘 느낄 수 있다. 무지개란 누가 만들어서 걸어놓은 것이 아니라 햇빛과 공중에 떠 있는 작은 물방울과 그것을 보는 우리 눈 사이의 조화가 빚어내는 하모니다. 이런 식으로 과학책은 과학자가 보는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 과학책은 과학자가 과학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래서 현대과학이 파악한 세상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과학이 주는 경이감을 전달하는 것, 그리고 과학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그려내는 것, 이 두가지가 내가 이 책을 통해 발견한 과학책의 역할이다. 과학자는 과학을 이해함으로써 이 두가지를 얻지만, 과학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이에게도 과학자가 세상을 보는 법과 그 감동을 전해줄 수는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수준에 맞춰져 있다.

덧붙이자면 도킨스는 이 책에서 과학자의 중요한 태도 한가지를 몸소 보여준다. 원자의 구조를 전자, 양성자, 중성자로 설명하고 난 다음 대목이다. 도킨스는 양성자 내부에도 쿼크(quark)라는 새로운 구조가 있지만 그것까진 설명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여러분이 아니라 일단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한계를 안다”라고 말한다. 과학은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으며, 과학자도 모든 것을 알진 못한다. 단 과학은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어디부터 모르는지를 알려준다.

영국에선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과학을 소개하는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면 왕립학회의 크리스마스 강연이 그렇다. 이 강연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강연을 요청받은 학자에겐 큰 영예가 될 만큼 중요한 행사다. 도킨스도 1991년에 ‘이 우주에서 성장한다는 것은’(Growing up in the universe)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그의 강연은 BBC에서 방영되었고, 2007년에는 DVD 타이틀로도 출시되었다. 1826년 첫 크리스마스 강연의 초청학자였던 마이클 패러데이는 “자연의 법칙에 맞는다면, 아무리 멋진 것이라도 진실이다”라고 했다. 바로 이 책을 통해 도킨스가 하고 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