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2012년 6월 14일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는 김선우(시인), 전성태(소설가), 정홍수 한기욱(이상 문학평론가)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여 제30회 신동엽문학상 심사를 시작했다. 신동엽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작가의 최근 3년간 한국어로 된 문학적 성취들을 심사대상으로 한다. 서른번째를 맞는 올해는 상의 위상을 높이고 제정 취지를 강화하기 위해 명칭을 ‘창작상’에서 ‘문학상’으로 바꾸고 수상자도 시・소설・평론 부문에서 2인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의 추천목록을 참조하여 한달간 작품을 검토하고, 다음 시집 6권, 소설집 6권으로 심사대상을 압축했다.
권덕하 『생강 발가락』, 김승일 『에듀케이션』, 김중일 『아무튼 씨 미안해요』, 서효인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이근화 『차가운 잠』, 이은규 『다정한 호칭』(이상 시), 김사과 『테러의 시』, 김성중 『개그맨』, 김이설 『환영』,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최진영 『끝나지 않는 노래』, 황정은 『파씨의 입문』(이상 소설).
심사위원들은 7월 20일 모임에서 이상의 12권을 검토한 끝에, 변화무쌍한 언어로 자아와 세계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김중일 시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와 우리 시대 고통스러운 현실에 가녀린 선의로 맞서는 인물들을 개성적 어법으로 그려낸 황정은 소설집 『파씨의 입문』을 올해 신동엽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심사평
김선우(金宣佑) 시인
김중일이 가공하는 컬러풀한 그림자의 세계, 그 바닥에는 퍼즐처럼 숨구멍이 숨어 있거나 때로 의도적으로 숨구멍이 삭제된다. 두 경우 모두에서 김중일은 ‘시적 세계’를 기필코 건축해내고 만다. 그가 감당해내는 이 집요한 고독이 믿음직하다. 그림자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다초점렌즈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그러나 만나지는 않으면서 의도적으로 비껴선, 그 어디쯤에서 세계에 대한 김중일식 응전이 더 단단하게 무르익기를. ‘아름답게 찢어진 커튼’의 저편과 이편을 마구 교란하는 천공지성(天空之城)의 세번째 시집을 벌써 기대한다.
이근화는 일상에서 건져올린 언어들이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 다채롭게 변신하는 놀이터를 펼쳐 보인다. 세번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고른 수준을 유지하며 이근화가 축조하는 시적 일상엔 과장도 위악도 위선도 없다. 이 담담한 놀이터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은 놀이터 모래바닥이 되어 켜켜이 쌓인다. 일상을 낯설게 보여주려고 굳이 애썼다기보다 너무나 낯선 세계를 발견해놓고 이것이 일상 같지 않느냐고 말갛게 물어오는 이근화식 어법, 혹은 고집이 나는 참 좋다.
이은규의 예민한 귀가 몰두해 보여주는 다정한 심연은 때로 너무 따듯해서 처연하다. 바람소리를 조각도처럼 쓰며 바람의 뼈를 발라가는 지난한 작업에 배어 있는 고통. 소리를 통해 보여주는 이 짠한 무늬들이 어느 순간 무늬를 통해 소리를 창조하기 시작할 때 이은규의 다정함은 그 무엇인가 엄청나게 짠한 것들을 낳게 될 것이다. 부디 건투를.
황정은은 두말할 것 없이 독보적으로 유니크하다. 유니크한데 보편의 울림을 동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황정은은 닳고 닳은 세상에 촘촘히 존재하는 그 모든 폭력의 실재와 징후들을 너무도 유니크하게 구부려 너무도 이상하고 너무도 현실적인 세상을 창조한다. 가슴속에 벼려진 세상과의 불화가 더욱 폭발적으로 흘러나와도 좋겠으나, 지금으로도 충분히 좋다.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작가후기를 읽고 한참 웃었다. 그는 등장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섬세하게 터프해지고’ 있다. 팬으로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던 밤. 나는 앞으로 이 작가를 응원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소설쓰기의 지난함을 투정부리지 않고 감당하면서 쓰기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해가는 눈물겨운 중얼거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가 감당하는 고독의 깊이, 끝없이 상처 입을지라도 내밀었던 손을 거두지 않은 채 기꺼이 감당하는 쓸쓸함, 포기하지 않는 따뜻한 맥박과 숨소리. 다음 장편을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김성중이 창조하는 매혹적인 허공과 그림자의 세계는 이 작가의 다음 행보를 너무나 궁금하게 한다.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게 훨씬 많은 미지의 느낌. 이것은 매우 큰 자산이다. 건투를 빈다.
최진영은 한발짝씩 문을 열고 나아가는 중이다. 클래식한 서사에 자신의 개성을 차분하고도 당차게 입혀가는 그의 성실함에 응원을 보낸다.
전성태(全成太) 소설가
새로이 단장한 신동엽문학상 심사에 참여하는 감회가 남다르다. 그새 서른돌, 창작기금에서 창작상으로, 그리고 이제 문학상으로 거듭난다. 푸른 나이에 이 기금을 수혜한 이문구, 김남주, 박영근 선생들이 그사이 곁을 비우셨다. 천둥벌거숭이였던 나 역시 크게 독려받으며 서른을 맞은 게 어제 같다. 신동엽창작상 이전까지는 역량을 살피고 앞으로 펼칠 문학을 위해 이 기금이 주어졌다. 다음 작품이 태나기를 기다려 수상작은 공란으로 비워져 있었다. 앞날을 부추기는 상이라 좋은 의미에서 빚진 마음으로 글을 쓰게 하였다. 시쳇말로 권위에 낭만과 서정이 있었다. 문단으로 보아도 미덕이 만만찮았다. 요새는 그 뉘앙스가 더 통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마치 문예지에서 신인추천제가 사라지고 신인상만 남게 된 연유처럼 말이다. 그래도 ‘젊은 작가여, 건필!’ 하고 하이파이브 하듯이 주어졌던 이 상의 뜻과 영광됨이 퇴색 않고 더욱 새겨지길 바란다.
서효인의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은 생활의 세부들이 실감나고, 삐딱한 시적 화자가 마치 개성적인 소설 인물처럼 시종 또렷해서 유쾌했다. 가출한 조카를 찾아나섰다가 납득당해 의기투합한 느낌이랄까. 그 조카가 천연덕스럽게 ‘인류의 평화’를 들먹이는데 대책이 있겠는가. 그 신선한 발성법이 낙차 큰 시어들을 한데 품는 데 기여하고 있다. ‘고래’와 ‘브래지어’가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은 흔치 않을 것이다. 자기 근원이 잘 드러나고 시에 대한 보폭까지 밝혀서 첫 시집으로서 훌륭했다. 10, 20년래 변화의 폭이 클 수밖에 없는 시풍인데 그 여로가 궁금하다.
김중일의 『아무튼 씨 미안해요』는 첫 시집 『국경꽃집』처럼 아득하고 스멀스멀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고 그 이야기들은 신비로운 비유와 상상력을 입고 있다. 무중력 공간에서 천천히 돌며 이마에 오른손바닥을 올려 외계를 내다보는 소년의 심상이랄까. 그 세계가 안온했다. 그러나 자아를 사물로, 우주로 확장해 보려는 낮은 숨소리는 매우 절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상상력의 세부들이 단정하고 품격이 있었다. 시집에서 물러나 앉은 시간에도 그 절박성이 외계의 신호처럼 가시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김사과의 『테러의 시』,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 황정은의 『파씨의 입문』을 눈여겨보았다.
김사과의 『테러의 시』는 듣던 대로 세다. ‘정념의 언어’ 소유자답게 그녀가 그려 보이는 서울 풍경은 고비 모래바람 속에 앉은 라마사원의 적나라한 지옥도를 연상시킨다. 서울이 가도가도 사막의 한켠인 것처럼, 그리고 서울이 정주의 도시가 아닌 충분히 뿌리 없이 유랑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환각상태의 언어로 풀리기도 하고, 대형 교회와 불법 섹스클럽이 한통속이라는 설정처럼 상징과 상징으로 연결되며 반복되는 구조적인 문장, 이 두 속성이 기우뚱한 울림을 선사한다. 그러나 김사과의 일련의 소설 중에 단연 이 작품이 으뜸인지는 의문이다.
탈북 난민을 다룬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는 아마 세 문장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으로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이 세 문장은 이 소설의 구조와 주제를 대변한다. 중국으로 나와 벨기에 브뤼쎌을 거쳐 런던에 이른 로의 행적을 좇는 이 소설은 세겹의 이야기, 세겹의 상처로 이루어져 있다. 나, 로, 박으로 짜인 세겹 구조가 빤해서 답답한 가운데, 그래도 작가의 목소리가 문학의 근본 된 자리를 환기시킨다. 자기 삶을 굳이 남의 삶과 겹쳐보지 않더라도, ‘미안한 마음’과 같이 타자의 절망, 세계의 고통과 공명하는 언어는 언제나 힘이 있다. ‘로’를 찾는 이런 소설들이 많이 나왔으면 싶다.
황정은의 문장은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대상의 더듬이로 표현하려고 하는 힘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마치 영매와 같은 화법이다. 그녀의 문장들을 피아노로 얘기하자면 맨 좌측 어디메, 아니면 맨 우측 어디메 건반들에서 연주되고 있다. 특히 1인칭 소설들을 보면 황정은이 닿고자 한 소설 언어의 형식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1인칭 소설들은 친숙한 작법이 아니라 묘하게 전지적 시점으로 형질변화가 이루어져 있다.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가 기묘하게 내통하며 한꺼번에 성취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타자의 목소리, 객관의 세계에 대한 황정은식 윤리이고 연대 방식으로 읽힌다. 문학의 언어는 과장이 불가피하다. 간곡히 타자를 향해 있는 언어의 특성상 그렇다. 황정은은 언어의 방향성을 들키지 않으려고 비유, 대화, 상징, 에피소드에서 두겹 세겹 에돌아가기도 한다. 이것이 또한 그녀 언어의 특징으로 보인다. 그래서 황정은에게서는 한 예외적인 개성이 확인된다기보다 최근 수년간 한국문학의 여러 모색들이 수렴되는 풍경이 겹치기도 한다.
김중일 시인과 황정은 소설가에게 축하를 보낸다. 훈훈한 가을잔치를 거든 느낌이 들어 흐뭇하다.
정홍수(鄭弘樹) 문학평론가
본심에 오른 소설 작품은 여섯편이었다. 모두 다 귀기울일 만한 소설적 성취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도 좀더 오래 눈길이 머무는 작품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와 황정은의 『파씨의 입문』이 그랬다.
『로기완을 만났다』는 타인의 아픔에 대한 연민 혹은 공감은 과연 어느 만큼이나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쉽게 놓지 않는다. 그 회의와 반성의 겸허하면서도 집요한 질문은 타인의 아픔에 대해 어디까지 들어가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포개지면서 소설이라는 글쓰기의 자리를 근본에서 돌아본다. 내게는 시종 머뭇거리며 조금씩 스스로를 향해 밀어붙이는 이 수고로운 질문이 몹시 소중해 보였는데, 이런 질문을 건너뛴 채 세상의 비참과 문학의 역능을 과장하거나, 아예 이런 유의 질문 자체를 봉쇄해버리는 위악적 냉소가 이즈음의 한국소설에 얼마간 있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로기완을 만났다』의 조심스러운 겸허함이 좀더 과감한 소설적 모험과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아쉬움 때문에라도 앞으로의 작업에 더 많은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올해 신동엽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작은 아무래도 황정은의 『파씨의 입문』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2005년 등단 이래 한권의 소설집과 한권의 장편을 거쳐 오늘에 이른 황정은의 소설적 성취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것이었다. 황정은의 소설은 대개의 사람들이 보거나 듣는 것을 멈추고 떠난 자리에서 계속 무언가를 보고 듣고 있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해서 무언가가 포착되고 들릴 때, 황정은의 소설은 거기에 “잔, 잔, 잔, 잔” “팟. 착. 착. 착” “파각” 하고 마치 겨자씨만한 파씨의 발생을 기록하듯 갓 태어난 언어를 조용히 가져다놓는다. 때로 그것은 환청이나 환상처럼 제시되지만, 황정은의 깊고도 특별한 응시와 경청은 그 환상이 밀려나고 배제된 현실의 또다른 얼굴임을 이야기해준다. 우리 시대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맞서 황정은 소설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작은 선의들—집들이에 온 친구들의 우산을 챙기거나 지하철에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일, 혹은 보리개떡을 파는 트럭의 확성기 소리에 눈물짓는 일—은 일견 미약하고 무능하다. 그러나 그 가녀린 무능의 수락에서 우리는 일각의 과장된 분노와 절망의 서사가 주지 못하는 강력한 문학적 감응에 이른다. 수상을 축하한다.
김중일의 시를 읽는 일은 단일한 의미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이미지의 힘찬 약동과 생성에 동참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때론 돌연하고, 때론 아득하기도 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사이에서 모호하면 모호한 대로 버티고 있다 보면 무언가 낯선 기척의 도래와 함께 수런수런 이야기가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들어올리고 넓히려는 이미지의 격렬한 싸움 뒤에 시인의 언어와 상상을 납작하게 만들려는 ‘새벽의 철거반원’들이 언제든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밤을 파수(把守)하려는 시인의 불면에 서둘러 지지를 보내고 싶어졌다. 첫 시집 『국경꽃집』의 뛰어난 성취에 대한 뒤늦은 격려를 포함해서 김중일의 시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를 올해 신동엽문학상 시부문 수상작으로 하는 데 기쁘게 동의했다. 수상을 축하한다.
한기욱(韓基煜) 문학평론가
올해 최종심에는 우리 시대 문학의 새로운 경향과 언어적 혁신을 보여주는 수준작이 많이 올라와서 선별적으로 논평하고자 한다.
곡진한 언어와 섬김의 미학을 보여주는 권덕하의 시편은 최근 우리 시의 경향에서 예외적인데, 그 우리말 사랑과 서정성이 사뭇 지극하다. 래퍼처럼 박동치는 서효인의 시는 거리의 활력이 넘치고 흥겨운 우연과 일탈의 상상 속에서 도래하는 성찰이 그럴듯하다. 반복과 차이의 일상적 삶 속에서 기묘한 언어 낚시로 심미적인 성찰을 끌어올리는 이근화의 시집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눈여겨본 것은 변화무쌍한 언어로 자아와 세계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김중일의 시편이다. 존재적 변화와 경계에 대한 그의 밀도 높은 언어는 낡은 자아상을 해체하는 비범한 이미지로 가득하고 미지의 밤으로의 시적 여정은 수수께끼 같은 변전을 겪으면서 겨우 세상의 본래 기슭에 도달하는 듯하다.
소설 대상작들이 하나같이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과 무시당하는 타자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세상과 주체를 다루는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김사과와 김이설의 장편은 돈만 알고 여자를 깔보는 세상에 대한 강렬한 분노와 적대적인 대응방식이 인상적이지만, 여성이 그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나아가는 길을 깊이 사유하는 것 같지는 않다. 조해진의 장편은 세상에 대해 온건하지만 타자를 향한 따뜻한 공감을 바탕으로 뜻깊은 관계를 이뤄낸다. 김성중의 소설집은 세계와 자아에 대한 고정된 상을 거부하되 주로 SF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삶에 접근한다. 그의 파국과 재앙의 서사는 내부로부터 도래하는 파열의 선(線)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상당한 알레고리적 비판력을 내장하고 있다.
황정은의 소설집은 세상과 자아에 대한 물음이 깊고 언어적 감각이 특이하고 섬세하다. 「디디의 우산」과 「뼈 도둑」에서 잘 드러나듯 그의 소설은 세상의 약자와 타자에 대한 깊은 공감이 배어 있고 돈만 아는 세상이 도래한 연유와 그 책임을 추궁한다. 그의 소설 속 인물은 무시되거나 끔찍한 고통을 겪거나 사라져가는 존재이지만 결코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다. 「대니 드비토」와 「낙하하다」에서 그려지는 사후의 세계는 예술적으로 실감나며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깊은 관심은 가히 자비심이라 일컬을 만하다. 그의 작품들이 2010년대 문학이 거둔 뚜렷한 성취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심사위원들은 김중일 시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와 황정은 소설집 파씨의 입문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뛰어난 수상작을 내놓을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
시 | 수상소감
상상 이상의 현실 속의 문학
김중일 金重一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가 있음.
구로공단 인근 주로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골목에서 저는 유년을 보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한쪽 손이 없었고, 학교 대신 공장에 다니던 옆집 누나는 명랑했지만 자주 울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대학에서 우연히 처음 시집이라는 것을 읽었습니다. 창비시선이었습니다. 창비시선은 제 유년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이었습니다. 제 유년의 기억은 그 시절과 공간이 갖는 역사적・사회적 의미와 무관하게 아름답지만, 군데군데 다시금 생생히 되살아나 전혀 다른 의미로 재조합되기도 하는 강렬한 체험을 저는 문학을 통해 선사받은 것입니다. 그 체험은 제가 문학에 매혹되고 읽고 쓰게 된 촉발점이었습니다.
제가 등단하던 해에는 월드컵이 있었고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해의 달뜬 틈을 타고 저는 몰래 낯선 시의 나라로 건너왔습니다. 좋은 시를 쓰고자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창비에서 첫 시집을 출간하기로 한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창비에서 시집을 내다니! 내 생애에 있어 손꼽히는 무척이나 설레는 순간이었습니다. 기다리던 첫 시집이 출간되었던 그해에도 대선이 있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고, 제가 등단하던 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분은 비극적으로 서거했습니다. 점점 현실 속에서 상상 이상의 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잦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에 대한 저의 불성실이 문학으로부터 완전히 떠나지도 못하게 하는 어떤 부채감처럼 저를 얽매고 압박해왔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명의 창작자로서 절망과 상실의 시절을 보내며 자꾸 흩어지려는 열망을 그러모아 두번째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총선이 있었고 올림픽이 있었고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12년 올해의 일입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제가 살고 있는 시절을 시라는 장르 속에 재현하고자 하지만, 비교적 저는 개인적인 미적 취향에 충실한 글쟁이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제가 과연 신동엽 선생님의 귀한 이름을 새긴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물음과 의심은 가슴속에 묻겠습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돌아온 상은 당연히 더 노력하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상상 이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시절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문학의 그릇을 만들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습은 다르지만/나중은 같은 공간 속에 살아요/꼭 같은 노래 부르며”(「달이 뜨거든」)라는 신동엽 선생님의 목소리를 옮기며 저의 시도 언젠가는 그런 노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설 | 수상소감
모두 건강하시기를
황정은 黃貞殷
1976년 서울 출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가 있음. 2010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요즘은 문장을 쓸 때마다
바늘 한개를 쥐고 막막하게 벽을 쪼고 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벽은 완강하고 바늘은 자꾸 부러져 발등을 덮도록 쌓여가는데
벽의 두께도 잘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날은 무덥고 땀은 흐르고 문장보다도 말이 많아 가장 의기소침할 때
소식을 받았습니다.
더 부러뜨려보라, 라는 응원으로 여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