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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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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 소설집 『1인용 식탁』이 있음. shellmaker@naver.com

 

 

 

월리를 찾아라

 

 

나는 198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개성있는 삽화가인 마틴 핸드포드는 내게 ‘월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 첫 이름은 월리가 아니라 왈도였지만, 스물몇번 국경을 넘으면서 월리, 윌리, 찰리, 발리 등의 이름도 필요해졌다. 이름은 바뀌어도 사람들은 쉽게 나를 알아보았다. 나는 출간되자마자 그해의 유명인이 되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한국에 진출한 건 1990년 겨울이었는데, 책을 사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내 이름을 알았고, 설령 이름을 모르더라도 내 인상착의는 익숙했다. 그 인지도에는 25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옷차림도 한몫했다. 나는 늘 빨간색과 흰색으로 된 가로 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방울 달린 니트 모자를 쓰고 다닌다. 동그란 뿔테 안경과, 올리브색 지팡이, 그리고 같은 색깔의 크로스백도 익숙하다.

마틴 핸드포드의 책에서 내가 없는 페이지는 의미가 없다. 나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다. 한 페이지 안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대략 400명 정도다. 그건 최소한으로 잡은 숫자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촌스럽게 놀란다. 400명이 아니고서야 이런 숨바꼭질이 25년 넘도록 지속될 리 있나. 독자들은 군중 속에서 나를 찾아내려 하고, 그게 이 책의 유일한 줄거리다. 그래서 월리를 찾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또다시 월리를 찾는 거지.

 

월리 역을 맡게 된 남자는 스물일곱살의 제이였다. 소장은 바퀴 달린 의자를 살짝 뒤로 밀면서 제이를 좀더 객관적으로 볼 거리를 확보했다. 제이는 키가 멀대같이 크다는 것만 빼면 월리와 닮은 점이 좀체 없었다. 소장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그는 최대한 월리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려고 했다. 가장 명확한 부분은 입매였다. 월리의 입은 알파벳 U자를 옆으로 길게 잡아당긴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제이의 입가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 제이가 예전에 월리 분장을 해본 적이 있다고 하자 소장은 조금 안심했다.

“아마도 그 예전 행사란 건, 어디 개업 행사였겠지?”

“장난감 출시 기념 행사였어요.”

“이번 건 차원이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네, 나는. 이번 행사는 그래. 그땐 그럼 가발을 썼나?”

“네. 노랑머리요.”

“그렇다면 이번엔 진짜로 머리를 이렇게 만들어봐. 누가 봐도 감쪽같이 월리여야 해.”

제이는 주로 주말에 일했다. 월리도 그 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톰과 제리도 있고, 슈렉도 있고, 헐크나 일곱 난장이도 있었다. 캐릭터는 많았고 그 캐릭터대로 몇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요즘에는 어린이집이나 상점 개업 행사, 신제품 출시 홍보 같은 것이 많았다. 이번 행사는 토요일에 리버시티에서 열린다고 했다. 리버시티는 천안과 대전 사이에 있었다. 12시부터 9시까지 일하는 거니까 아침 9시에 출발하자고 소장이 말했다.

“아홉시간이나 일해요? 그럼 수당이 세겠네요?”

제이의 말에 소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수당이 문제야, 지금? 잘만 하면 우리 회사가 리버시티 같은 큰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고.”

제이는 민망한 듯 슬쩍 웃었다. 소장이 저렇게 신경을 쓰는 걸 보면 무척 큰 행사인 게 분명했다. 제이는 미용실에 갔다. 월리의 앞머리는 사람 인()자 모양으로 생겼고, 그 위로 니트 모자가 덮여 있었다. 제이는 미용사에게 휴대폰에 저장해둔 월리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모자 쓸 거거든요. 이런 형태로 되게요, 이 색깔에 이 모양으로요.”

미용사는 단박에 월리를 알아보았다.

“어머, 이거 예전에 진짜 좋아했는데, 얘 찾기 너무 힘들지 않았어요? 전 거기 나온 사람들 표정 보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표정이 똑같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어요. 근데 진짜 이렇게요?”

미용사는 자신의 결과물에 만족했고, 잘 어울린다고까지 말해주었다. 제이가 보기에도 원래 머리 스타일보다 월리의 머리 스타일이 자신에게 더 맞는 듯했다.

제이의 시력은 좋았지만, 도수 없는 뿔테 안경도 필요했다. 지난번에는 알 없는 안경을 썼지만, 그런 건 어쩐지 소품 같지 않은가. 소장이 강조한 것처럼, 이번에는 최대한 ‘진짜’처럼 준비해야 했다. 안경점에서는 난시교정 안경을 권했다. 제이의 눈에 난시가 있다는 거였다. 안경을 쓰자, 그간 인식 못하고 있었던 뿌연 세상이 조금 또렷해졌다. 거울 속에는 정말 월리가 있었다.

차는 토요일 아침 9시에 출발했다. 제이는 오늘 일당이 30만원이라는 것에 몹시 고무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장도 리버시티에 볼 일이 있다고 해서 왕복 차편도 해결된 셈이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주말이었다. 그들은 휴게소에서 라면과 우동도 먹어가면서 리버시티를 향했다. 가는 동안 소장은 리버시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거대한 홍보 공간인 리버시티는 백화점 일곱개를 합친 규모지만,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판매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지갑은 리버시티를 나간 후에 열렸다. 그 가능성을 위해 어마어마한 샘플과 체험서비스가 리버시티를 가득 채웠다. 모두 무료였다. 방송프로그램이나 설문조사, 또 플래시몹이나 서프라이즈 행사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오늘과 내일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고들 했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도 먹고 보고 즐길 거리가 많아 좋은 데이트코스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서는 말이야. 한명이 재채기를 하고, 또 한명이 재채기를 하면, 다른 한명도 재채기를 한다더군. 그러니까, 재채기 충동이 없는 사람도 말이야. 알아서 에이취 한다는 거지.”

“왜요?”

“난들 아나. 근데 그렇게 된다더군. 뭐랄까, 무의식적으로도 전염이 되는 거 아니겠어. 아니면.”

“아니면?”

“의식적으로 전염이 되거나.”

리버시티의 유동인구는 하루에 30만명이었고, 그 30만명의 80%가 오후 12시부터 9시 사이에 몰려 있었다. 마틴 핸드포드의 그림 속에서는 한 페이지에 월리가 존재하기 위해 400명 정도의 군중이 필요했다. 그 공식대로라면 24만명의 사람들을 위해서는 적어도 600명의 월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날 출근한 월리는 모두 60명에 불과했다. 그건 책보다 더 어려운 난이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리버시티의 예산 때문이었다. 그날 월리들의 일당은 꽤 높았다. 아홉시간 일하고 오후 5시쯤 저녁식사가 제공되는 조건이었다. 그 60명 중의 한명이 이제 막 출근하고 있었다.

“너한테 우리 업체의 운명이 걸려 있어. 같이 살거나 같이 죽는 거다. 신뢰감있게 해.”

소장의 응원을 받으며 월리는 리버시티로 들어갔다. 거대한 회전문과 보안검색대를 차례로 통과하니 리버시티가 펼쳐졌다. 입구에 커다랗게 ‘월리를 찾아라’ 이벤트를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제이는 그림 속 월리의 자세를 흉내 내어 보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어찌 보면 인간 제이보다 월리가 더 괜찮은 것도 같았다. 빨간색과 흰색의 줄무늬 티셔츠, 푸른색의 청바지를 입고, 빨간색 방울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그의 한쪽 어깨로부터 다른 쪽 골반뼈를 향해 상체를 가로지른 크로스백은 올리브빛이었고, 같은 빛깔의 지팡이도 있었다. 그렇게 제이는 월리가 됐다.

 

나는 점점 영악해졌다. 이제 나는 그냥 월리가 아니라 ‘지도를 보는 월리’나 ‘신발을 신는 월리’처럼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들먹이기도 했고, 나아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나온 런던 가이드북을 보는 월리’나 ‘나이키 러닝화를 신는 월리’를 언급하기도 했다. 내가 요구하는 품목에 사람들이 집중하는 바람에, 내 몸값은 점점 비싸졌다. 사람들은 내 이미지에 돈이 오간다고 생각했다. 대중의 시선이 곧 돈인 시대, 내가 입고 쓰고 말하는 모든 것이 홍보효과를 낼 수 있었다. 하물며 내가 나눠주는 선물이라니. 오늘 내가 홍보해야 할 것은 사과다. 이제 빌헬름 텔, 파리스, 뉴턴이나 이브에 이어 또 하나의 사과가 중요해질 것이다. 사과를 받고 싶다면, 월리를 찾아라.

 

이벤트 내용은 단순했다. 사람들은 월리 옷차림을 한 이를 발견하면 다가와서 ‘좋아요’ 스티커를 그에게 붙여준다. 스티커는 리버시티 입구에서 행인들에게 나눠주는데, 스티커를 월리에게 붙인 사람들, 그러니까 월리를 찾은 사람들에게는 저만치 출구 쪽 부스에서 사과를 한알씩 준다고 했다. 월리는 사람들이 스티커를 붙여주면 그들에게 사과 한알 교환권을 나눠줘야 했다. 월리의 올리브색 가방 속에 그 교환권이 100장 들어 있었다. ‘좋아요’ 스티커를 100개 받게 되면, 오늘 월리의 일과는 끝나는 거였다. 어느 사과 유통사에서 하는 홍보 이벤트였다. 이 일만 보면 굉장히 쉬울 것 같은데, 홍보맨의 일이란 게 사람과 직접 몸으로 부딪는 거여서 같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드문 경우지만 사인을 해주기도 하고 웃어주며 농담도 주고받기 시작하면 시간은 훌쩍 지나갈지 몰랐다.

오후 1시. 행사가 시작된 지 한시간이 지났다. 다른 월리들은 어떤지 몰라도 제이는 아직까지 그 ‘좋아요’ 스티커를 구경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쳐다보기만 할 뿐 그 이상의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월리는 소장의 조언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지 모르니, 휴대폰이나 지갑 같은 건 지퍼 달린 주머니에 잘 넣어두고, 젖꼭지나 불알도 조심하라는 거였다. 그 와중에 더듬는 사람들도 있다나. 소장은 십년 전 날씬했을 때 가수 ‘신화’의 한 멤버 역할을 맡았다가, 여중생들에게 부대껴서 허리를 삐끗한 적이 있었다. 소장은 자신이 가짜 신화였는데도 여중생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신화는 되고 월리는 안되나. 제이는 너무도 한적한 자신의 반경 1m를 보며, 꼭 ‘얼음’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가와서 ‘땡!’을 외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 여자가 제이를 향해 웃으며 다가온 건 의아함이 초조함으로, 그리고 약간의 피로감으로 바뀔 무렵이었다. 그 여자는 한눈에 봐도 월리에게 스티커를 붙여줄 사람은 아니었다. ‘은하철도 999’의 메텔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월리에게 월리의 일이 있듯이 메텔에게는 메텔의 일이 있을 터였다. 메텔의 부탁대로, 제이는 ‘1분이면 되는’ 설문지를 작성했다. 그는 메텔의 일 다음에도 해리포터의 일과 뽀로로의 일에 휘말렸다. 이곳에는 캐릭터가 넘쳐나고 있었다. 월리도 그 캐릭터들의 일부였다. 그러니까 군중의 일부였다. 발견되려면, 좀더 평범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월리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그러니까 자신을 돋보이게 해줄 군중이 많은 곳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툭툭 쳤다. 뒤를 보라는 거였다. 제이는 긴 줄의 허리쯤을 툭 끊고 들어가려는 모양새로 서 있었다.

제이는 뒤로 밀려나서 자연스레 그 줄의 끝이 되었다. 인근에 경마공원이 생긴 기념으로 100% 당첨 다트게임을 하는 줄이었다. 그가 이 줄의 일부가 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면 누군가 제이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엇, 저기 월리가 다트게임 앞에서 줄을 서 있다, 월리를 찾았다! 이렇게.

그러나 아무 일 없이 시간이 갔고, 줄은 줄어들었고, 제이의 차례가 되었다. 제이는 말 인형을 받았다. 그는 월리의 올리브색 크로스백을 열어 인형을 집어넣었다. 말 머리를 마구 눌러야 가방 뚜껑을 닫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홀쭉하던 그 가방은 초콜릿과 화장품 샘플, 손난로와 포춘쿠키를 넣자 두툼해졌다. 이건 월리의 일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 휴대전화가 몸을 흔들었다. 소장이었다. 월리는 반가워서 냉큼 전화를 받았지만 소장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대체 어디 처박혀 있는 거냐고?”

“리버시티죠.”

“리버시티 어디?”

“우물길 지나왔는데요. 지금은 화장실에 좀 가려고요.”

“장난해? 지금 한시간 반이 넘도록 월리를 찾았다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데, 그렇게 꼭꼭 숨어서 행사를 망칠 작정이냐고.”

소장의 말에 의하면 월리마다 스티커 개수가 집계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벌써 스무개 넘는 스티커를 확보한 월리도 있다고 했다. 월리들은 대부분 영세한 홍보업체 소속인 것 같았는데, 일을 말끔히 해야 리버시티에서 다음 행사도 계약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소장이 말했다. 소장은 너를 믿는다는 말을 해주었다.

“월리는 군중 속에 섞여 있어야 하지만, 절대 숨어 있어서는 안돼. 적당히 노출될 만한 곳에 서서 사람들에게 발각되어야 한다고. 스티커 다 못 받으면, 버리고 갈 거다.”

이런 종류의 일자리는 종종 있었지만, 소장은 제이의 편의를 많이 봐주는 편이었다. 가끔은 인생선배 노릇도 하려고 했다. 제이는 소장 밑에서 4년을 일했고, 그들 사이에는 나름의 규칙이 생겨서 편했다. 제이는 소장이 자신을 배려하는 이유가 뭔지 알고 있었다. 소장은 자주 사람들 앞에서 제이의 근성을 칭찬했고,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한다고 치켜세우곤 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잘하고 싶었다.

 

제이는 걸음을 멈춰 행인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두 부류였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아예 그가 보이지 않았다. 제이를 향해 있어도 그들의 눈에는 어떤 상()도 맺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를 봤고, 그의 움직임을 따라 그들의 동공이, 고개가, 발끝이 돌아갔다. 간혹 그들은 멈춰서 제이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손을 뻗어 제이의 가슴팍에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 그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듯했다. 손발을 움직여야 할 그 몇미터, 그 몇초간의 이동이 귀찮았던 것이다. 처음에 제이는 멀뚱히 서 있기만 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쳤다. 이제는 누가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면 그 가까이로 냉큼 달려가거나, 장난스럽게 앞을 막아서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은 뒷걸음질을 치거나 손을 내저었다. 어떤 남자는 제이에게 스티커를 붙이면 뭘 받게 되느냐고 물었다.

“사과 교환권을 드려요. 비타민C가 일반 사과보다 세배 더 높은 거예요. 이건 저녁에 먹어도 좋아요. 이 사과를 남문과 서문 쪽 출구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 박스?”

“아뇨, 하나요.”

남자는 사과 한알 정도는 쉽게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나마 그가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었으니, 제이로서는 대체 다른 월리들이 어떻게 해서 스티커를 그렇게 덕지덕지 붙였다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리버시티에 오는 사람들은 어디에 뭐가 있나, 볼 게 뭐가 있나, 받을 게 뭐가 있나, 할 게 뭐가 있나, 모든 자극에 반응할 준비가 된 것처럼 걷는다던데. 그러나 지금 제이에게까지 그 관심이 오지 않는 것은, 너무 많은 이벤트가 이 안에서 벌어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월리 역시 몇명이나 있으니 사람들이 꼭 제이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전화가 울렸다. 소장인 줄 알았는데, 건너편 목소리는 장이었다. 장은 주말이라 서울이 한가해져 좋다면서, 사람들이 못 돌아오게 톨게이트를 다 잠가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딱 이 정도의 인구가 좋은 것 같지만, 자기가 올라오고 나면 그다음에 잠글 거야. 장은 그렇게 말했다. 어쩐지 조금 무료하게 들리기도 했다.

제이는 장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장을 처음 봤을 때도 장은 저런 목소리에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그날 같은 봉고차를 타고 결혼식에 갔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누구도 말이 없었다. 그들 외에도 다섯명 정도가 더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몰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신랑신부의 친구라는 것. 신랑신부의 이름을 오늘 알았다는 것. 신부대기실 혹은 로비에서 신랑신부에게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박수를 치고 밥을 먹고 돈을 받고 올 거라는 것. 그중에서도 장의 역할은 중요했다. 장은 이미 스무번도 넘게 하객 역할을 한 프로였고, 부케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제이는 두번째로 하객 역할을 하는 날이었다. 온통 고용된 하객으로 넘치던 그 결혼식에서 신부는 누가 부케를 받을 것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실은 분간할 필요가 없었다. 장은 노련했고, 모든 건 예정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정해진 순서에 장이 나서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부케 받을 사람은 나오라는 말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신랑신부 뒤로 병풍처럼 서 있던 하객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다. 다들 ‘나는 아닌데’ 하는 표정이었다. 장 역시 ‘나는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이는 장이 부케 받을 친구라는 걸 알았지만 당혹스러워서 가만히 있었다. “부케 받는 친구분 나오세요”라고 사진사가 몇번 더 외쳤지만 부케 담당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눈치만 보던 하객들 중 누군가 나서서 부케를 받았다. 진짜 하객인지 가짜 하객인지 알 수 없었다. 제이는 장의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하객들은 일렬로 카메라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제이에게는 장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도 장은 용케 밥을 먹었다. 그러나 수당을 받거나 봉고차를 타지는 못했다. 장은 그대로 잘렸다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그만둔 거라고 봐야 옳았다. 제이는 그때 장과 함께 봉고차 밖에 남았다. 장의 그 묘한 표정을 좀더 보고 싶어서였다. 그게 장을 만난 첫날의 일이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제이가 대체 왜 그랬느냐고 묻자, 장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두 사람이 사귀게 되었을 때, 장은 불쑥 그 얘기를 꺼냈다.

“그때 말이야, 심심해서 그랬어. 내가 안 나가면 어떻게 되나 갑자기 미친 듯이 궁금하더라고. 그런데 뭘 느꼈는지 알아?”

“뭘 느꼈는데?”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네.”

“너 없으면 나는 안돼.”

제이는 그렇게 대답했고, 장은 웃었다. 지금도 장은 그런 기분일까. 제이가 장에게 말했다.

“사과 먹고 싶지 않아? 받고 싶으면 리버시티로 와. 그래, 천안 지나서 대전 가기 전에. 기차 타고 오면 금방이야. 고기 사줄게. 월리 알지? 월리를 찾아. 교환권 백장 줄게!”

물론 교환권은 일인당 한개까지만 유효하지만, 기분 같아서는 남은 교환권을 아무렇게나 나눠주고,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제이가 가진 교환권은 여전히 100개였고, 아무도 월리를 알아보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넘었고 제이는 여전했다. 그는 빈 의자에 앉아, 가방 속에서 초콜릿과 포춘쿠키를 꺼냈다. 초콜릿은 초콜릿 회사에서, 포춘쿠키는 포춘쿠키 회사에서 무료로 나눠준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 자신이 홍보하고 있는 사과는 한입 맛보지도 못했다. 행사가 다 끝나면 사과 한알이라도 주려나. 제이는 초콜릿을 씹어먹으면서 포춘쿠키를 반으로 갈랐다. 황당하게도 포춘쿠키 안에는 메시지가 두개나 들어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불량 같은데. 두 문장은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면 딱히 두 문장이 공존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당신은 사람을 잃게 될 겁니다’와 ‘당신은 귀인을 만나게 됩니다’는 그의 인생 안에서 충분히 동거할 수 있었다. 어느 문장이 먼저 일어날 것인지 순서가 궁금할 뿐이었다. 포춘쿠키가 하나 더 있었다. 제이는 그것도 마저 반으로 갈라보았다. 이번엔 ‘무관심이 당신의 적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세요’라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제이는 억울했다. 무관심이라니. 그는 오히려 반대의 경우에 더 가까웠다. 몇년 전에 제이는 빵 포장지의 제조자 이름을 보고, 그 사람을 찾아보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 무렵 그는 늘 고동빵으로 아침 한끼를 때웠는데, 고동빵은 고동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고동빵을 사면 운을 시험해볼 수 있었다. 봉지 안에는 빵과 함께 그날의 운세도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이는 늘 그 운세 한 문장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 포장지에 찍혀 있던 제조자의 이름 ‘김정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고동빵을 사먹은 지 거의 한 계절이 지나갈 즈음이었다. 그후로 몇 계절을 더, 제이는 ‘김정민’씨가 만든 빵을 먹었다.

그리고 어느날 제이는 그 김정민이 궁금해졌다. 평소처럼 포장을 뜯고 빵을 먹기 직전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1년간 한 사람이 똑같은 제조자의 빵을 먹는다는 게 흔한 일일까. 제이가 늘 같은 편의점이나 같은 동네에서 그 빵을 사먹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신기한 일이었다. 제이는 토요일과 일요일, 행사를 따라 봉고차를 타고 여러 도시들을 오갔다. 낯선 지역에서도 제이의 아침식사나 간식은 늘 고동빵이었는데, 거기서도 ‘김정민’이라고 인쇄된 세 글자를 계속 본다면 그건 우연이 아닐 수도 있었다.

물론 그날 하필 고동빵 안에는 ‘오늘의 운세’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았다. 그건 불량이었지만, 제이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제이는 운세 대신 포장지의 깨알 같은 글자를 읽었다. 그리고 제조자의 이름을 읽었다. 공장의 컨베이어벨트가 흘러 흘러 여기까지 온 거라면, 그걸 거슬러보고 싶기도 했다. 그는 수신자부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제가 거의 일년 동안 고동빵을 먹었는데요. 제가 먹는 빵은 계속 그분이 만드셨거든요.”

제이의 전화는 여러 부서를 경유했다. 그 긴 추적은 제이를 피로하게 하기는커녕 설레게 했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던 것이 필연처럼 바뀌고 있었다. 반드시 김정민과 통화하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제이의 전화가 김정민씨와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되었을 때,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이런 말이 돌아왔다.

“지속적으로 이물질이 발견되었다는 겁니까?”

제이는 오늘의 운세가 들어 있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걸로는 김정민을 만날 수 없었다. 식품회사에서는 빵을 교환해주겠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제이는 김정민씨가 궁금했고, 혹시나 그와 통화하게 된다면 고맙다는 식의 말을 하고 싶었다. 당신이 만든 빵을 일년째 먹었다고 하면 그 사람도 신기해할까. 그러나 그런 걸 설명하려고 보니 마음만 바쁘고 설명하기 힘들었다. 결국 제이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지만.”

김정민씨가 궁금했다. 김정민씨를 만나고 싶었다.

“빵에서 살아 있는 지렁이가 나왔습니다. 제가 반을 먹었다고요, 벌써.”

제이가 지렁이를 구해다가 반쯤 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 즈음에는 그런 이물질 사고가 몇차례 있었고, 식품회사 쪽에서는 논란의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시간 안에 김정민이 제이를 만나러 왔다. 과연 그가 진짜 김정민인지 아닌지, 제이는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지난 일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김정민은 제이에게 고동빵 한 상자와 서류를 내밀었다. 고동빵 스물네개가 줄 맞춰 들어 있었고 서류의 내용은 기분이 나빴다.

“김정민이 만든 빵이 문제인데, 또 그걸 한 박스나 먹으라고요?”

그날 제이에게는 그 식품회사의 고급 쿠키세트와 백화점상품권 몇장이 더 전달되었다. 그후 제이는 고동빵을 먹지 않았다.

 

누군가 제이에게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이미 크로스백은 각종 홍보물로 터질 지경이 되었다. 제이는 종이를 비스듬히 말아서 고동빵 모양으로, 아니 망원경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 둘둘 말린 한끝에 눈을 대고 다른 한끝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너만 빼고 다들 벌써 몇십개씩 스티커를 얻었다더라, 하던 소장의 말은 거짓이었다. 아니면 저 앞에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눈빛으로 어슬렁대는 월리들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적어도 네명쯤은 되어 보였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거냐고 제이가 물었을 때 소장은 너무 준비 없이 왔다고 제이를 나무랐다. 그건 아니었다. 제이는 억울했다. 그는 사흘 전에 미용실에도, 안경점에도 가지 않았는가. 오랜만에 사우나에도 갔고, 아침에는 남성용 비비크림까지 세심하게 펴발랐다. 저기 보이는 월리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정교하지 않은가. 진짜 책 속에서 튀어나온 월리 같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스티커를 받아야 진짜 월리였다. 어쩌면 그 책 『월리를 찾아라』에는 한 페이지당 월리가 한명만 있는 건 아닐지 모른다고, 제이는 생각했다. 어릴 때는 한명이라도 월리를 찾으면 그만이었고, 월리를 찾으면 곧 다음 페이지로 책장을 넘겼지만, 어쩌면 선착순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월리는 사실 400명 중에 네다섯명쯤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중 가장 눈에 잘 띄는 월리만 정답이 되고, 발견되지 못하는 윌리는 결국 군중의 몸체만 불려줄 뿐이었다.

그때 종이망원경 한쪽 끝에서 다른 동공이 보여 그는 깜짝 놀랐다. 동공은 제이가 그토록 찾고 또 찾던 스티커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제이에게 월리 어쩌고 중얼거리면서 스티커를 붙였다. 스티커가 제이의 가슴팍에 붙는 순간, 약간의 찌릿함을 느꼈다. 조금 더 과장하자면 온몸에 쥐가 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살아 있어, 제이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제이는 그 행인에게 거의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스티커를 훈장처럼 달자 걸음이 좀더 빨라졌다. 경쾌해졌다. 그동안 너무 천천히 움직인 것도 같았다. 좀더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뛰다시피 걷고 있을 때, 누군가가 제이 옆으로 다가왔다. 월리였다. 그의 가슴팍에도 스티커가 하나 붙어 있었다. 저만치 스티커가 하나 정도 붙은 월리들이 더러 보였다. 두개 붙은 월리들도 보였다. 제이는 다시 초조해졌다. 제이 옆으로 다가온 월리가 제이에게 말했다.

“저녁을 다섯시에 준다던데요.”

“네, 그렇다더군요.”

“드실 건가요?”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눈빛으로 제이는 그 월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월리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안 먹는다는 월리들도 많더라고요. 스티커가 부족해서. 행사시간이 반이나 갔으니까요.”

“그래요?”

뭐 그렇게 할 것까지야, 제이는 조금 짜증이 났다. 월리가 다시 물었다.

“계속하게요?”

“아홉시까지 아닌가요? 안 하면 어쩌겠어요.”

제이의 대답에 월리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월리가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전 고민입니다. 게다가 그 월리들 사이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요.”

그렇게 말하는 월리의 눈 주위가 부어 있었다. 입술도 약간 부르튼 것처럼 보였다.

“다들 챔피언이 되고 싶어하니까요. 그 스티커 조심하세요.”

“챔피언이요?”

“모르시나본데, 그걸 모르고 온 사람들도 꽤 있더라고요. 주로 업체 사장이나 선배들이 중간에서 가로채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모르셨어요, 챔피언?”

월리는 제이를 답답하게 여기는 듯 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행사에서 가장 근성있는 월리 한명을 챔피언으로 뽑는다고 했다. 챔피언의 혜택은 이 리버시티에 취직하는 거였는데, 그것도 이벤트 부문을 총괄하는 관리직급이라고 했다. 연봉이나 기타 조건도 꽤 좋은 편이어서, 사람들이 기를 쓰고 스티커를 갈취한다는 거였다.

“갈취요?”

월리는 자신의 눈과 입 주위를 가리켰다. 이미 두개나 빼앗겼다는 거였다. 다른 월리들에게. 제이가 물었다.

“챔피언의 조건이 뭔데요?”

“그건 몰라요. CCTV가 곳곳에 있으니까, 그걸 보고 판단하는지. 근성 말고는 따로 설명된 게 없어서 사람들이 더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나봅니다. 일단 스티커를 단시간에 백개 채우는 게 유리하지 않겠냐는 거죠. 전 그래서 최대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도 친절하게 대했어요. 혹시 서비스 마인드를 보는 건지도 모르니까요.”

“챔피언에 나이 제한은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일흔 먹은 할아버지도 도전했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뭘.”

그 순간 제이의 눈앞에 소장이 얼굴이 떠올랐다. 소장이 왜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는지를, 그리고 왜 챔피언 얘기는 하지 않았는지를, 스티커 개수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침에 소장이 리버시티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의 관리직이라면 소장으로서도 탐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작태가 싫어서 관두고 나간 월리도 많답니다. 저녁까지 굶고 일하려는 월리도 있고요. 혹시 지금이라도 그만두실 거라면, 그 스티커는 절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월리가 말했다. 제이는 미안하다며 일어섰다. 챔피언이라니. 그런데 왜 소장은 직접 뛰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자신을 대타로 보냈을까. 그게 이상했다. 다음 순간 제이는 자연스레 그 이유를 알았다. 제이의 뒤통수를 누군가가 세게 후려쳤던 것이다. 제이가 머리를 감싸는 사이에 그 큼지막한 손이 제이의 가슴팍에 붙은 스티커를 잡아당겼다. 전자칩이 붙었긴 했지만, 거대한 힘 앞에서 쉽게 떨어져나갔다. 그 손의 주인은 친절한 월리였다. 그는 제이의 스티커를 빼앗아 자신의 가슴팍에 붙였다. 그리고 짤막하게 사과하고는 유유히 걸어갔다. 그 장면을 목격한 행인 하나가 월리에게 스티커를 붙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덩달아 몇개를 더 붙였다. 제이 쪽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싸움에서 승리한 월리였다.

 

5시가 넘었다. 제이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할지, 지금 그만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제이는 소장에게 전화를 했다. 소장은 단번에 전화를 받았다. 제이가 소장님, 하고 부르자 소장도 약간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대답했다.

“소장님은 절 찾으실 수 있겠습니까?”

“난 네 뒤태만 보고도 알 수 있지. 멀리서 봐도 딱 티가 나. 그 엉덩이 말이야.”

“다행이네요.”

“싱겁군.”

“전 절 못 찾겠거든요.”

“엉덩이만 봐도 티 난다니까. 내가 늘 너를 그런 식으로 해서 찾았지.”

“전 제 엉덩이를 보기 힘드니까요. 그건 뒤에 있고, 눈은 앞에 있어서.”

“그만하라고. 그래서 스티커는 많이 확보했나? 내가 지금 전산실로 가고 있는 중이긴 한데, 얼른 걸으란 말이야. 몸이 열인 것처럼. 알겠어? 그리고 중간중간 연락을 하라고. 그리고 말이야. 막춤이라도 춰서 시선을 끌어봐.”

제이는 전화를 끊었다. 엉덩이만으로도 제이를 알아볼 수 있다던 소장은 통화 중에 제이의 옆을 스쳐 저만치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제이는 목소리로 소장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또한 월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제이보다 덩치가 작고 좀더 늙었지만, 좀더 계산적인, 그런 월리였다.

 

제이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서 미친 듯이 춤을 췄다. 행인들을 가로막고 춤을 췄다. 마치 홍보용 풍선 같은 허우적춤이었다. 그 말도 안되는 춤 때문인지, 지나가던 행인들이 제이에게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모두 세개였다. 그것으로 제이는 표적이 되었다. 저 앞에서 400명의 군중이,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월리였다. 제이는 뒤도 안 보고 뛰었지만 곧 그 거대한 파도에 휩쓸렸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 그에게 남은 것은 몇군데의 상처와 통증뿐이었다. 티셔츠를 벗으려면 두 팔을 위로 올려야 가능하지 않은가,라고 제이는 생각했다. 팔을 위로 든 기억이 없는데, 두 팔은 갈비뼈를 꼭 끌어안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제이의 티셔츠가 벗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벗은 기억도 없는데 사라진 것은 티셔츠만이 아니었다. 안경알도 두쪽 다 빠지고 테만 남아 있었다. 두 팔로 꼭 끌어안았던 갈비뼈조차 몇개 빠진 것 같아서 제이는 가슴께를 꼭 감싸안았다.

그리고 화장실로 갔다. 제이는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허리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거울 속에는 러닝셔츠만 입고 있는, 반쪽 짜리 월리가 있었다. 줄무늬 티셔츠도 없어졌으니 더이상 월리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소장은 자신을 방패막이 삼아 스티커를 확보해서는 마지막 순간에 교묘하게 제이로 둔갑하려던 게 분명했다. 선배라고 부르라더니, 야비한 자식. 챔피언에 눈이 먼 자식. 배가 아팠다. 제이는 화장실 한칸을 찾아 들어갔다. 이렇게 작은 공간이 더 마음 편했다.

제이가 지팡이를 화장실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곳에서 나와 얼마간 걸었을 때였다. 지나가던 아이 하나가 제이를 보고 “월리다!” 소리치며 스티커를 붙였던 것이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지 않았는데도 월리를 알아보다니, 제이는 그 순간 자신의 소품을 다시 점검했는데 지팡이가 없었다. 화장실로 다시 뛰어갔지만, 그곳은 그새 조금 낯설어져 있었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대략 열개의 칸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또 열개의 칸이 있었는데, 그 둘은 데깔꼬마니처럼 완벽하게 대칭되는 구조여서 제이는 자신이 어떤 칸으로 들어갔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입구 맞은편으로도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입구가 있어서, 제이가 원래 들어갔던 입구가 이쪽인지 저쪽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갔을 게 분명하다고 제이는 생각했지만 정작 어느 입구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문 열린 모든 칸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그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딱 하나의 칸만 문이 닫혀 있었다. 아무래도 그 칸이 제이가 십분 전에 머물렀던 곳 같았다. 제이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딱히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잠시 후에 똑똑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는 손을 씻으며 기다렸다. 어떤 냄새도 기척도 없었다. 알 없는 안경 때문에 시야가 뿌옇기만 했다. 마음이 급해진 제이는 닫힌 문을 향해 말했다.

“저기, 죄송한데요, 제가 지팡이를 놓고 가서요. 혹시 그 안에 지팡이 없나요?”

한참 있다가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내가 힘든 볼일을 보고 있으니까, 쫌만 기달리소.”

노인의 목소리였다. 제이는 얌전히 기다렸지만,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칸만 확인하면 되는데, 이 노인네는 왜 안 나오는 거야, 누가 이미 집어간 거 아니야, 제이는 다시 말을 걸었다.

“올리브색 지팡이인데요.”

“올리…… 뭐?”

“황토색 지팡이요, 거기 바닥에 있을 텐데.”

“바닥엔 없어!”

제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외치는 소리였다. 그는 차마 선반도 한번 봐달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저 좌변기에 앉았을 때 선반 위까지 시야가 확보되는지 아닌지를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동안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제이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 죄송한데요. 제가 시간이 좀 급합니다. 선반 위에 지팡이 같은 게 있는지만 좀 봐주세요. 예?”

신경질이 가득한 목소리로 “있어!”란 대답이 돌아왔다.

“쫌만 기다리라니까, 지금 팔이 안 닿아. 그새를 못 참고그래? 내가 지금 어쩌지 못한단 말을 그렇게 하는데도.”

“급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그것 좀 이리 주세요.”

한참을 투덜거리는 말이 들리던 그 칸에서 별안간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나더니, 화장실 문 아래로 뱀처럼 지팡이가 기어나왔다. 검고 주름이 많은 손이 문밖까지 나왔다가 급히 안으로 되돌아갔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팡이 끝이 단단하게 무언가에 걸려 있었다. 문 밑으로 지팡이 끝을 잡고 있는 검은 손과 그 손 위로 희고 붉은 줄무늬 티셔츠의 한 자락이 보였다. 제이는 힘을 다해서 지팡이를 홱 잡아당겼다.

화장실을 나오자 그새 월리들이 번식한 듯 더 많아져 있었다. 이상하게 제이의 눈에는 월리만 들어왔다. 월리들 틈에서 월리 아닌 사람을 찾기가 더 쉬울 것 같았다. 누군가가 줄무늬 티셔츠도 입지 않은 제이에게 스티커를 또 붙여주었다. 마음을 비우고 나니 스티커가 몇개나 더 생긴 셈이었다. 그 몇가지 사소한 일들이 제이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그는 저녁이나 먹고 시간을 때우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티커를 몇개 받는 순간, 그는 자신이 화장실에 놓고 온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화장실 칸 밑으로 언뜻 보이던 그 줄무늬 티셔츠 자락을 생각했다. 그건 월리의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제이의 것이 될 수도 있었고, 제이가 더 가능성이 있는지도 몰랐다.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그의 가슴팍에는 ‘좋아요’ 스티커가 스무개 가까이 붙지 않았는가. 진짜 챔피언이 되는 길이 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소장도 누구도 아닌, 제이 자신이 월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월리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줄무늬 티셔츠가 있어야 했다. 제이는 화장실로 되돌아갔다. 그가 노리는 칸은 이미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차마 문을 더 밀어서 그 안을 확인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얼음’이 된 것처럼 멈춰 있다가, 뒤도 안 보고 도망쳤다. 누군가 뒤에서 그를 가리켰다. 그는 뛰고 또 뛰었다.

 

지팡이에 왜 둥근 부분이 있는지 나는 처음 알았다. 그것은 손을 위한 것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목을 위한 거였다. 내 경우에는 목의 용도에 해당되었다. 내 뒤에서 나타난 지팡이의 둥근 부분이 내 목을 감았다. 그는 말했다. 조용히 티셔츠를 벗어. 나는 25년간 한번도 이 옷을 벗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럴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그런 대화는 무의미했다. 나는 결국 줄무늬 티셔츠를 빼앗기고도 흠씬 두들겨맞았다. 내가 올리브색 크로스백에 무엇을 넣고 다녔는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는 가방 안에서 말 인형을 꺼내 내 입에 쳐넣었다. 말 엉덩이는 내 입에 꼭 들어맞았다. 내가 으악 소리를 내도 말의 엉덩이가 모든 말을 다 먹어버렸다. 그는 내 뒤에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를 다시 본 건 구타의 시간이 끝난 후 리버시티 측에서 CCTV를 공개해줬을 때였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나는 그를 분간할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나와 너무도 똑같아서, 누가 맞고 누가 때리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냥 월리였다. 마틴 핸드포드의 책에서 내가 없는 페이지는 의미가 없지만 나만 있는 페이지도 의미가 없긴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은 결국 휘발될 것이다.

 

육중한 유리회전문이 돌아가는 속도는 느렸다. 제이는 마음이 급해서 회전문을 재촉했지만, 회전문은 제이를 그 안에 가둔 채로 작동을 멈췄다. 그는 회전문이 만드는 네개의 구획 중 하나에 갇혀 이도 저도 움직이지 못했다. 회전문을 더 세게 밀어보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잘 닦인 유리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줄무늬 티셔츠는 그에게 조금 컸다. 그의 것이 아니었다. 제이는 눈을 감고 유리문에 온 체중을 실었다.

그때 누군가 저 밖에서 유리문에 노크를 했다. 장이었다. 장은 제이를 보며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시늉을 했다. 제이가 장을 따라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고, 제이의 손이 떨어지자 곧 유리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이는 그제야 회전문에 붙어 있는, 손을 대지 말라는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장은 제이를 안아주었다. 제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전화 꺼져 있어서 걱정했잖아. 집으로 가자. 일단 밥부터 먹고.”

장의 말에 제이는 배고픔을 느꼈다. 벌써 리버시티 밖은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장은 노련한 가이드처럼 움직였다. 장이 물었다.

“그 안에서 대체 뭘 한 거야?”

“월리를 찾아다녔지.”

“네가 월리라며?”

그들은 리버시티에서 멀어졌다. 그렇지만 제이에게는 반쯤 열려 있던 그 화장실 문이 자꾸 따라붙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한참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줄무늬 티셔츠와 지팡이 따위를 벗어던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