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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21세기 중국문학에서의 ‘저층문학’

 

 

리 윈레이 李云雷

중국 문학평론가, 문예지 『文藝理論與批評』(중국예술연구원 발간) 부주간. 저서로 『如何述中的故事』 등이 있음.

 

 

1. ‘저층문학’의 출현

 

2004년 이래 중국문예계에서 점차 집중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저층(底層)문학’1)이다. 저층문학은 21세기 들어 새롭게 출현한 문예사조로서, 중국사회의 현실과 문학계 및 사상계에서 일어난 변화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 중국문예계의 발전 양상이자 ‘인민문예(人民文藝)’ 혹은 문예적 ‘인민성’2)의 신시대적 전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른바 저층문학이란 대개 다음과 같은 작품경향을 가리킨다. 내용상으로 주로 사회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리며, 형식상으로는 리얼리즘 위주지만 예술적 변신과 탐색도 거부하지 않는다. 엄숙하고 진지한 창작 태도와 현실에 대한 반성적・비판적 자세를 주요 특징으로 하며, 하층민의 삶에 동정과 분노를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배경의 사상적 자원들은 서로 다르다. 역사적으로는 주로 20세기 좌익문학과 민주주의・자유주의 문학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사고 및 창조정신과도 어우러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저층문학의 출현은 우선 현실의 변화로 인한 것이다. 30년 개혁개방이 중국의 발전에 거대한 활력이 되었지만, 빈부격차나 부정부패 등 새로운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다. 쑨 리핑(孫立平, 1955년생. 칭화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지적대로 개혁의 기본적 공감대는 깨어졌고, 개혁의 동력과 메커니즘은 이미 특정 지역 내지 일부 개인의 이익으로 왜곡되었다. 개혁의 공감대를 재건하고 보통 사람들의 인식과 지지를 다시 모아야 할 때다. ‘삼농(三農)문제’3)의 제기에서 ‘랑 셴핑(郎咸平, 1956년생)4) 선풍’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개혁’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소수 엘리트에게 기댈 것인지, 다수의 저변 민중에게 기댈 것인지, 자본주의세계의 시스템과 ‘연계’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현실에 밀착할 것인지, 의존적인 길을 택할 것인지, 독자적인 길을 갈 것인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생각이나 답변은 현실 정책의 변화와 조정 속에서 드러난다. 저층문학의 출현과 전개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이 바로 이런 요소들이다.

사상계에서는 1998년 ‘신좌파’와 ‘자유주의’ 논쟁 이래로 중국이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하는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있었고, 최근 몇년 ‘국학열(國學熱)’로 대변되는 문화부문의 ‘보수주의’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 논쟁과 문화현상이 중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결국 어떻게 중국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사회 ‘저층’을 다룰 것인가이다. 요컨대 그들을 발전도상의 ‘짐 보따리’로 내던져버릴 것인가, ‘낙수(落)효과’의 수혜자로 간주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발전의 근본동력으로 삼을 것인가. ‘보수주의’가 만일 봉건적 계층질서를 계속 밀고 나가거나 여전히 ‘복고’적 주관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면, 결국 현대사회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자유주의’는 현재 지성계의 ‘상식’과 무의식이 된 셈이지만 대표하는 것은 특정 계층의 이익일 뿐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민주’도 그래서 반성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신좌파’로서는, 어떻게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아우르고 새로운 이론자원을 중국의 현실과 결합시킬 것인지가 당면문제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의 사고를 사회 저변, 즉 ‘저층’의 운명과 연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평가할 만한 방향이지만 말이다.

개혁개방 이후 문학분야의 변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순문학’이 점차 문단의 주류가 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조류의 특징은 형식 중시와 기교 및 서사방식의 탐색과 변신이었다. 사회현실의 직접적인 묘사를 피하고 개인의 추상적 정서나 감수성을 표출하여, 서방의 모더니즘과 최신 유행의 모방 및 학습에 치중하는 것이었다. 이전 문학의 폐단에 반발한다는 역사적 역할을 하거나 문학작품의 전체적인 예술성을 높이는 데는 의미있었으나 나중에는 몇가지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 결과적으로 형식의 탐색이 마치 ‘선봉(先鋒)5)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서방을 배운다면서 맹목적 숭배로 흐르기도 했던 것이다.

2001년 드디어 ‘순문학 되짚어보기(反思純文學)’를 시작한 문학계는, 예술성에 무게를 두는 동시에 현실세계와의 연계도 재구축하며, 문학에 더욱 큰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21세기 들어 저층문학은 뛰어난 작품들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그 대표작가들이 서로 다른 작풍을 형성하며 중국문학의 훌륭한 성취를 보여주었다. 예술적인 면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폭넓은 영향을 주면서 저층문학은 부단히 풍부해져가는 과정에 있다.

 

 

2. 저층문학의 대표작가와 작품

 

저층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차오 정루(曹征路, 1949년생), 왕 샹푸(王祥夫, 1958년생), 류 지밍(劉繼明, 1963년생), 천 잉쑹(陳應松, 1956년생), 후 쉐원(胡學文, 1967년생), 러우 웨이장(羅偉章, 1967년생) 등이 있다. 이들의 주요 작품과 사상 및 작풍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차오 정루의 주요 작품에는 중편소설 「그곳(那兒)」 「네온(霓虹)」 「두선사건(豆選事件)」6),장편소설 『창망한 물음(問蒼茫)』이 있다. 「그곳」은 한 정의감 넘치는 노동조합 대표가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유자산의 유실을 저지하려 애쓰다 실패하고 끝내 자살하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작은 외삼촌’은 고독한 노동자 지도자의 형상으로, “공()을 사()”로 만드는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인물이다. 주위는 모순투성이다. 공장 우두머리와도 새롭게 주인이 될 기업과도 갈등관계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윗사람을 찾아다니며 호소하지만, 노조 대표이자 “성급(省級) 모범근로자 및 현급(縣級) 우두머리”로서 보통 노동자들과는 거리가 있던 주인공이 그들의 저항을 ‘대표’할 수는 없었다. 가족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작은 외삼촌을 만류하고, 그는 소시민적 범속함과 스스로 견지해온 사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결국 ‘저항’과 “저항해선 안된다”의 고통스런 몸부림 속에 심신이 피폐해지고 급기야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2004년 잡지 『당다이(當代)』에 실린 가장 중요한 작품이자,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리얼리즘 역작이다. 중대한 현실문제를 드러냈을 뿐 아니라 예술적 역량도 상당해서 강렬한 울림을 줄 수 있었다. 「그곳」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는 「네온」은, 하층 매춘여성의 비참과 절망, 그리고 절망의 몸부림 속에서 커나가는 힘을 보여준다. 당대 농민의 정치생활을 다루는 「두선사건」에서는 어느 선거판을 무대로 여러 세력이 각축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새롭게 태어나는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창망한 물음은 선전(深圳)의 한 농촌지역과 대만 자본의 기업을 중심으로 한다. 몇차례의 노사분규와 파업을 근간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여러 계층 및 여러 유형의 인물, 다중적인 사연이 뒤얽힌 사건과 인간관계를 통해 현실에 대한 작가의 복잡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사회문제와 하층 노동자의 생존적 곤경 그리고 중국이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작 「그곳」과 「네온」에서처럼 등장인물의 소박한 계급의식을 포착해서 불합리한 현실질서에 저항하는 사상적 도구로 삼는 차오 정루의 소설은 현실의 삶 속에서 익숙해져 그냥 지나치는 권력관계를 들춰내는 데 뛰어나다. 또한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품고 있다. 독자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점일 것이다.

후 쉐원의 중편소설 「명안고현(命案高懸)」 「젖은 날개(淋濕的翅膀)」 「흙속을 걷는 물고기(行走在土里的魚)」 「물 같은 부드러움(像水一樣柔軟)」 「샹양포(向陽坡)」 「규지인(虬枝引)」 등도 저층문학의 수작이다. 특히 「명안고현」7)은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촌부(村婦)인 샤오메이(尹小梅)가 어떤 사소한 일로 향()정부에 붙들려가 의문사하자, 가족은 배상금 8만위안과 함께 담담하게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마을의 ‘건달’ 우샹(吳響)은 달랐다. 샤오메이에게 마음이 있던, 그리고 그녀가 붙들려가는 데 얼마간 책임이 있는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혼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러 다닌다. 이야기의 줄기인 의문사의 추적과정에서 향촌사회의 복잡한 문화와 정치행태가 드러난다. 후 쉐원의 소설세계에서 ‘저층’은 단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잡다단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 자신의 내적 논리, 혹은 다른 사람은 체험할 수 없는 미묘한 부분들이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성하며, 이들 논리와 세목에 대한 파악에서 작가 나름의 관찰과 사고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후 쉐원의 붓 아래 태어나는 주인공은 하나같이 ‘왜소한 인물’이지만 일종의 집요함과 백절불굴의 정신, 한가지 목표를 위해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 기질을 가졌다. 이들 ‘저층’에 놓인 백성들은 정치・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빈곤상태에 놓여 “모욕당하고 손해 보는” 이들이지만, 바로 이런 정신 때문에 존엄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왕 샹푸의 「교통정체(堵車)」 「임산부(孕婦)」 등은 하층민의 본성과 인정미를 그려낸 작품들이다. 「위쪽(上邊)」 「쟁기 다섯개(五張犁)」에는 특히 하층민의 내면세계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있다. 그러나 그의 최근 소설들이 주목하는 당면 사회의 정신상황은 허약해진 도덕성으로 집중 표현된다. 가령 「심사무문(尋死無門)」에서는 간암에 걸린 해고노동자가 죽기 전 얼마간의 돈이라도 아내에게 남기고자 여러 방법을 궁리한다. 자신의 신장을 팔기로 하는가 하면, 달리는 차에 치여 거액의 배상금을 타낼 생각도 한다. 작자는 주인공의 죽으려는 충동과 살려는 본능의 틈새에서 “빈천한 부부, 그 백태(百態)의 비애” 그리고 하층민이 극단적으로 착취당한 끝에 겪는 정신적・도덕적 공황상태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아본선량(我本善良)」 역시 보통 사람의 도덕상황에 주목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을 살릴 것인가’ 여부이고, 그 점이 부정되고 있음을 간파하는 데 왕 샹푸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풍속화 식의 세상 묘사 속에 전개되는 희극적 스토리는 중국사회의 복잡한 도덕상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작가 스스로의 물음이자 반성이기도 하다. 하층민에 대한 왕 샹푸의 애정과 관심은 서술의 속도감과 자연스러움, 일상의 세부 묘사에 깃든 섬세함 등과 결합된다. 그런 점에서 그는 『홍루몽(紅樓夢)』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고전적 ‘세정(世情)소설’의 전통을 잇는 선명한 예술적 개성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천 잉쑹의 「마쓰링 살인사건(馬嘶嶺血案)」도 2004년의 화제작이자 또 하나의 저층문학 대표작이다. 광산의 현지 실사팀과 두 짐꾼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비롯해 계급모순의 화두를 끌어들이면서도 강렬한 예술적 효과를 보여준다. 시내에서 온 과학기술 실사팀이 마쓰링 광산을 현지조사하는 명목은 이 지역의 발전을 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광산은 결국 소수의 힘있는 자들의 독차지가 되고, 주 차이슈(九財叔) 같은 평범한 농민에게는 고된 막노동이나 짐꾼 노릇을 할 기회 말고는 근본적으로 전혀 이점이 없다. 그들 눈에 실사팀은 높으신 고용자일 뿐이었다. 실사팀의 부유한 생활과 사람을 부리는 난폭한 태도는 짐꾼들에게 돈에 대한 갈망을 자극했고, 그런 가운데 조만간 드러날 최후의 비극—실사팀원의 피살—이 익어간다. 이 소설은 삼중의 모순을 건드리고 있다. 첫째는 계급모순, 즉 빈부격차와 생활방식의 차이가 결국 살인사건을 부른다. 또 하나는 도농 간의 모순이다. 도시의 실사팀원과 농민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 놓여 있고 생각에도 큰 차이가 있다. 마지막은 ‘계몽주의’의 실패, 즉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몰이해의 간극이 존재했던 것이다. 바로 이 삼중의 모순이 뒤얽히면서 형상화된 소설의 비극성은 강렬한 감동을 준다. 특히 계급모순의 재언급은 오늘날 중국에서 의심할 바 없이 중요한 현실적 의의를 갖는다. 그의 또다른 소설 「태평스런 개(太平狗)」는 시골 출신의 막노동자 청 다중(程大種)이 애견 타이핑(太平)과 함께 겪는 비참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에서 벌어지는 계급 풍경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류 지밍은 일찍이 ‘문화관심소설(文化關懷小說)'8)로 유명한 작가로, 선명한 선구적・탐색적, 이른바 ‘선봉적’ 자세를 지닌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그는 ‘어떻게 사회 저변을 서사할 것인가’라는 이론적 고민을 하게 되면서 한층 현실사회에 밀착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하층민에 대한 깊은 배려는 소설의 작풍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더욱 열리고 심원해진 생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주목을 끈 작품은 「방성가창(放聲歌唱)」 「우리 부부 사이(我們夫婦之間)」 「단편2제—차지단(短篇二鷄蛋)」 등이다. 「방성가창」은 도시로 간 농민의 고된 노동을 그리는 동시에 ‘탸오쌍구(跳喪鼓)’라는 민간가무(民間歌舞)의 쇠락을 이야기하고 있다. 농민이 정치와 경제 부문에서는 물론 문화적인 면에서도 존재감을 상실해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깊이있는 발견이 더해진다. 한편, 「우리 부부 사이」에서는 한 퇴직 부부가 겪는 삶의 곤경, 즉 생활고의 압박 아래 상식적 윤리가 붕괴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결국 아내는 매음에 나서게 되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배웅하거나 마중하고 나아가 그녀의 매춘을 주선하기까지 한다. 서사 자체는 평범하지만, 십수년 이래 변화된 중국사회의 윤리상황을 특정 측면에 집중해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치밀하게 그려지는 그 굴곡의 과정을 통해 경악을 불러일으킨다. 류 지밍은 사상의 관조와 역사의 연계 속에서 깊은 뜻을 발견해낼 줄 아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서사의 전개 속에 몇몇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끝부분에서 늘 독자에게 깨달음을 주곤 한다. 최근작에서는 대체로 보통 사람의 삶을 그리고 있다.

러우 웨이장의 대표작은 「변검(變臉)」 「우리는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我們能夠拯救誰)」 「아주머니의 노래(大嫂謠)」 「우리의 길(我們的路)」 「우리의 성장(我們的成長)」 등이다. 이들 소설은 하층민의 고난을 묘사하면서도 도시 대 농촌 혹은 빈()과 부() 식의 단순한 이원대립에 빠지지 않으며, 한층 복잡한 시각으로 현실의 풍부함을 파악하려 하고 있다. 「변검」의 천 다쉬에(陳大學)는 하청업자다. 도시의 더 ‘굵은’ 업자에게는 비위를 맞추고 선물도 하지만, 시골 출신의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삭감 내지 지불연체를 하기 일쑤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인물에 대해서도 손쉽게 가치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그 삶의 복잡성과 내면의 분열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분열’이야말로 바로 어느 인력하청업자가 도시와 농촌 사이에서 겪는 난감함이기도 하고 시대적 정신‘증후’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의 길」에서는 도시와 농촌 사이에서 돌아갈 곳 없는 두 아르바이트 청년의 운명이 그려진다. 이들은 도시에 몸을 맡길 곳도 없고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는 존재다. 그들은 끊임없이 시골의 고향으로 도망치듯 내려가지만, 다시 도시로 도망치듯 되돌아오고 만다. 러우 웨이장 소설의 주인공은 대부분 주변화된 소지식인, 농촌 출신이고 도시생활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는 존재다. 이들은 화자이자 등장인물로서 이야기에 참여하는 한편, 부단히 상황을 되짚어가며 독특한 시각을 형성해나간다. 그런 인물들의 시각에서 현실을 관찰하면 다른 세계가 눈에 들어온다.

이외에도 사회 저변의 삶을 다루는 다수의 작품들로 ‘저층문학’은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다. 류 칭팡(劉慶方, 1951년생)의 「신목(神木)」과 「스파이(臥底)」, 자 핑아오(賈平凹, 1952년생)의 「기분 좋아(高興)」, 츠 쯔젠(遲子建, 1964년생)의 「뉴멍즈의 봄(牛虻子的春天)」과 「기무(起舞)」, 판 샤오칭(範小靑, 1955년생)의 「아버지는 아직도 위인졔(父親還在漁隱街)」, 웨이 웨이(魏微, 1970년생)의 「이생기(李生記)」, 마 추펀(馬秋芬, 1949년생)의 「주다친, 방송국으로 연락주세요(朱大琴, 請與本臺)」, 저우 창이(周昌義, 1956년생)의 「강호의 왕년(江湖往事)」, 리 루이(李, 1950년생)의 「태평풍물(太平風物)」, 추 허(楚荷, 1962년생)의 「소태나무(苦楝樹)」와 「공장노조(工廠工會)」, 쑨 후이펀(慧芬, 1961년생)의 「마산좡에 쉬다(歇馬山莊)」 시리즈 등이 있다. 그리고 장 추(張楚, 1974년생), 거 량(葛亮, 1978년생), 루 민(魯, 1970년생), 천 지이(陳集益, 1973년생), 구이 진(鬼金, 1974년생), 하이 페이(海飛, 1971년생), 리 톄(李鐵, 1962년생) 같은 작가들 역시 다른 시각과 작풍으로 ‘저층’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 사조의 생명력과 폭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3. 저층문학의 이론적 의의와 중요성

 

한편 저층문학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도 있다. 주로 지식인이 과연 ‘저층’을 위해 발언할 능력이 있는가, 저층문학이 ‘도덕적 우위’를 독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저층문학이 사회학적 의의는 있지만 ‘문학성’은 결핍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들이다.

어떤 의미에서 저층문학은 좌절한 ‘좌익문학’ 전통의 산물인 동시에 그 부활의 조짐이다. ‘혁명문학’ ‘사회주의문학’ 혹은 ‘인민문학’으로도 불릴 수 있는 ‘좌익문학’은 사회평등을 추구하고 계급압박에 저항하며 인민성과 현실비판의 강조를 특징으로 한다. 비교적 넓은 의미에서 이해하자면, 이 문학조류는 1920년대 ‘혁명문학’ 논쟁에서 시작되어, 30년대 ‘좌익문학’, 40년대 ‘해방구문학’ 및 그후의 ‘17년문학’9) 그리고 ‘문혁문학’을 거쳤다. 1980년대 이래 전통 맑스주의와 마오 쩌둥 사상이 지속적으로 주변화되면서 이 문학조류는 기본적으로 폐기되었다. 저층문학의 대두는 1990년대 중국사회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 그리고 이 변화가 촉진한 ‘신좌파’와 ‘자유주의’ ‘순문학’ 논쟁 등 사상계 및 문학계의 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경향이 과거 ‘좌익문학’이 추구하던 것과 상당히 닮은 구석이 있다는 점에서 ‘좌익문학’의 전통도 새롭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저층문학이 제창되어야 할 이유는 주로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현재 저층문학은 문학의 ‘선봉’에 있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는 모두 ‘선봉문학’에 대해 관념화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형식상의 탐색이 기존과 다른 방식의 작법으로 씌어졌다고 인정되면 모두 ‘선봉문학’이라 부르곤 했다. 다만 이 용어나 개념이 ‘형식’에 한정되어 쓰이면서 저층문학은 ‘선봉’에 접근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내용상의 탐색, 즉 내면을 외부세계의 탐색과 결합시키는 것으로도 ‘선봉성’은 구현된다. 중국의 총체적 현실 변화나 사상계・문학계의 변동과도 더욱 밀착될 수 있다. 30년간의 개혁개방이 중국에 가져온 큰 활력 속에 모두가 반성하는 문제들이 내재해 있고, 그런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에 문학의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저층문학이다. 1980년대 문학계의 주류를 점한 ‘순문학’은 21세기 들어 이미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반성적 사고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학계에서 진행중인 ‘반사(反思)’도 문학이 또다시 현실 및 사회 저변부와의 관계를 재건하려는 노력의 하나이다.

둘째, 저층문학은 ‘54문학’의 계승자, 일종의 ‘신문화’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우리는 점차 54신문화운동(1919) 이래 신문학의 방향과 결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세가지, 즉 좌익문학・자유주의문학・예술을 위한 예술이 포함된다. 이들 사이에 내부적 격투가 있겠지만 모두 54신문화운동이 창출한 사상과 문학의 방향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기부터 좌익문학은 기본적으로 문학사 서술에서 제외된다. ‘자유주의’ 작가의 수가 부단히 증가했고, 이른바 ‘선봉문학’ ‘순문학’이 성행하게 되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가 되면 자유주의와 선봉문학의 영향조차 점점 작아지고 작은 테두리 안에서 ‘순문학’이 견지될 뿐이었다. 시장경제와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문학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달라졌고 ‘계몽과 구망(救亡)’도 소비와 오락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후 통속문학은 계속 영향 범위를 넓혀갔다. 54 시기의 신사상과 신문화의 중요성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54신문화가 없었다면 신중국도 없고 우리의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말에 이르면, 특히 문단 주류는 이미 54신문학의 방향을 등졌다. 이런 의미에서 저층문학의 출현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 저층 민중의 이익을 대표할 뿐 아니라 54신문화의 방향성도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저층문학이기 때문이다. 저층문학은 이전 사조에 대한 반성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선봉’일 수 있다.

셋째는 저층문학의 사회적 역할이다. 저층문학의 중요한 역할은 의식영역에서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고, 문학적 지도권의 쟁탈 혹은 간단히 표현해서 ‘번심(飜心)’이라는 말로 아우를 수 있겠다. 만일 ‘번신(飜身)’하여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주인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실제 근본적인 각성, 즉 ‘번심’의 과정이기도 하다. 저층문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돌이키게’ 한다면, 즉 사회의 불평등을 의식할 수 있게 한다면, 거기서부터 현상황의 변화 가능성은 시작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각성 과정상의 역할이고, 그뒤로는 각성 후의 역할도 있다. 기사회생 이후에도 만일 여전히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과 ‘사람이 사람을 먹는(人吃人)10) 사회를 자기동일시한다면, 이전의 피억압자는 간단히 현재의 억압자가 되는 법이다.

저층문학은 이런 ‘번심’의 매개역할을 해낼 수 있어야 하고, ‘번심한 이후’에는 ‘이전의 그 마음’이 아니도록 해야 한다. 세상의 유행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지게 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인간관계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저층문학이 비로소 중국과 세계의 변화 속에 녹아들어 인류사회의 공평한 정의를 위해 자신의 힘을 보태려면 그런 과정밖에는 길이 없다.

번역 | 임명『런민화바오(人民畵報)』 외국인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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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제는 「新世紀中國文學中的底層文學”」으로, 본지 요청에 따라 집필한 것이다. 본문의 각주는 모두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옮긴이 주다. ⓒ 李云雷 2012 / 한국어판 ⓒ 창비 2012

 

1) 한국의 ‘민중문학’과 통하는 개념이다. 위안 잉이(苑英奕) 「한국의 민중문학과 중국의 저층서사 비교연구」, 서울대 대학원 협동과정 비교문학전공 박사학위논문, 2009 참조.

2) 한국문학사에 ‘민족문학’이 있다면, 중국문학의 맥락에서는 ‘인민문예’가 있다.

3) 농업・농촌・농민문제. 산업화 및 도시화 이후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심각한 사회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4) 홍콩중문(中文)대학 재정학 석좌교수. 중국 현실에 대한 직언으로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을 지녔으며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베스트셀러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 『자본전쟁』의 저자이다.

5) 중국어에서 ‘선봉’은 전위, 아방가르드를 뜻한다. 여기서 필자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중국문학계의 주요 사조였던 ‘선봉문학’을 꼬집고 있다.

6) ‘두선(豆選)’은 콩알을 이용해 투표하는 민주적 보통선거로, 과거에 대중의 문맹을 배려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7) 명경고현(明鏡高懸, 밝은 거울을 높이 내걸듯 사리에 맞게 일을 처리하다)을 비튼 제목으로, ‘미해결 살인사건’을 의미한다.

8) 문예지 『상하이원쉐(上海文學)』가 류 지밍 소설을 소개할 때 붙인 이름이다. 1990년대 이후 신세대 소설이 고독한 ‘자기’를 주로 그린 데 반해, 류 지밍은 타인의 영혼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는 뜻이다. 이후 ‘문화관심소설’은 인간에 대한 인도적 관심과 배려를 담은 소설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9)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서 1966년 무산계급문화대혁명 개시 직전까지의 문학. 정치성이 절대적 우위를 점한 시대이긴 하지만 근현대문학의 원로작가 외에도 여러 역량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나왔다.

10) 루 쉰의 단편소설 「광인일기」의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