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창비 2012
가을, 뉘른베르크에서의 사색
이기웅 李起雄
열화당 대표・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yhdp@youlhwadang.co.kr
시월에 접어들 무렵 나는 뉘른베르크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독일의 가을 새벽은 차갑고 무거웠다. 이 도시는 새벽 일찍이 깨어 산책 나선 나그네의 가슴을 안으로 지그시 누르면서 사색의 길로 이끌었다. 나의 손에는 유홍준(兪弘濬)의 새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 들려 있었다.
인류는 선사기를 끝내고 혼돈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이른바 문자로써 문명인간의 삶을 일궈내기 시작한다. 역사를 거듭하면서 많은 오류를 낳기도 했지만, 예지와 양식(良識)은 인간됨의 본령을 재빨리 되찾으려 노력해왔다. 이런 노고 끝에 생산된 이른바 ‘유산(遺産)’이라는 흔적은 세상 어느 도시 못지않게 뉘른베르크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바이에른 지방을 대표하는 역사도시이고, 이른바 범게르만운동의 본거지이기도 하기에 도처가 유적이다. 통일 독일의 교훈과 더불어, 범게르만주의가 나치즘으로 왜곡 발전하여 큰 전쟁을 벌이게 되고 그러면서 끔찍한 학살 만행에 이르도록 오류를 범한 독일이, 전후(戰後) 처리를 비교적 잘해내면서 가꾼 뜻깊은 유적들까지도 뉘른베르크에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근현대 문화재의 변용(變容)의 지혜를 보게 된다. 예술적・역사적, 그리고 건축적 의미가 다양하고도 의미심장한 조형성으로 구성되고, 또 시대의 요청에 따라 재구성된 실재들이 있었다.
나치 건축 가운데 가장 거대하며 잘 보존된 새 의사당을 보자. 뉘른베르크의 건축가 루드비히와 프란츠 루프가 설계한 이 건물은 5만명을 수용할 대규모의 집회시설이었다. 나치제국의 권위를 자랑하다가, 패전한 독일을 향해 진격하는 연합군의 포격을 받아 많은 손상을 입었던 이 과대망상의 건축물을, 전후에 오스트리아 건축가 귄터 도메니히(Günther Domenig)가 도큐멘테이션 센터를 이 폐건물의 내부에 삽입시켜, 놀랍도록 재구성해놓았다. 독일 제3제국의 잘못을 비판・반성하고 그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불행한 역사적 사실들을 이 센터에 재현해놓은 것이다. 거대한 나치의 상징물인 이 건축물에 마치 화살이 꽂힌 것처럼 사선(斜線)의 공간을 길게 개입시켜, 히틀러 나치의 망상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건축가의 교묘한 패러디는, 문화유산이 가지는 놀라운 깊이와 넓이를 느끼게 한다.
독일과 같은 시기에 겪었던 분단의 아픔을 아직도 열병처럼 앓고 있는 우리를 생각하니, 이곳에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곱번째 책을 펴들고 있는 나의 가슴은 새삼 먹먹해진다.
1982년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출간한 열한권짜리 『한국의 발견』은 잘 접근된 우리의 지리지(地理誌)이지만,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한창기(韓彰琪)의 간행사에서처럼 “지구 위의 한반도 특히 그 남쪽 절반을 다룬” 것이라 안타깝지만 불구(不具)스러운 책이다. 유홍준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이제까지의 답사기 일곱권 중에 두권을 할애하여 북한 지역을 다루었지만, 그것으로 한반도 절반 북쪽의 무수한 문화유산을 감당하기엔 무리다.
『한국의 발견』 머리말에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대동지지(大東地誌)를 편찬한 외로운 선구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님께 그 책을 바친다는 헌사가 눈에 띈다. 고산자야말로 우리나라 지리연구의 선구자이며, 그가 겪었던 고난과 고통은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창기는 말한다. “조선시대 말기의 침체된 나라 형편을 걱정하고, 실용학문의 중요성과 더불어 지도와 지리지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깊이 깨달았던 그는 ‘청구도(靑邱圖)’를 만든 것에 이어 서른몇해에 걸쳐 지리지의 편찬에 골몰하여, 이 나라 오천년 역사에 민간의 손으로는 처음으로 제대로 엮은 인문지리서인 ‘대동지지’를 완성하여 ‘대동여지도’와 함께 내놓았으나, 그다음에 그에게 주어진 것은 비참한 죽음뿐이었다.”
이 비장한 찬사를 읽으면서, 유홍준의 답사기를 생각한다. 1993년 당시 첫권의 서문을 보자.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답사기를 쓸 것이다. 그 양이 얼마가 될지 나 자신도 가늠치 못한다. 어림짐작에 국토의 절반, 남한땅을 다 쓰는 데만 서너권의 분량이 될 것 같다.” 이 글에 의하면, 북한 지역 두권을 제외하고는 이미 완간된 셈이다. 그런데, 듣자니 저자와 출판자 사이에는 계속해서 책을 낼 계획이 있다고 한다. 남아 있는 국내 지역(충북, 도서, 서울・경기)과 일본 속의 우리 문화유산을 다루는 책까지 써서 완결할 것이라니 앞으로 그의 작업에 계속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겠다. 이제까지 답사기는 글쓴이와 읽는이가 함께 성공탑을 쌓아올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답사기, 어떻게 다시 쓰고 어떻게 다시 출판할 것인가’란 주제 아래 공론화를 위한 세미나라도 한바탕 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다. 여기서 ‘다시 한다’ 함은, 기왕의 책이 나빠서라기보다 좋은 점들을 확실하게 보완하고 ‘전체성’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한다면, 이제 드디어 ‘획기적’인 오늘의 우리 지리지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남북을 아우르는 지리지를 완성함으로써, 고산자의 슬픈 전설은 유홍준의 새롭고 아름다운 책으로 승화할 것이다.
유홍준은 놀라운 몇몇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 수많은 유물을 만지고 부딪치고 살피어 비교하는 감수성과 노력들이 참으로 별나고 뛰어나다. 집요할 정도이다. 매 순간마다 예민한 촉수와 반복적인 관찰로 남이 얻어내지 못한 요소들을 찾아 꺼내놓는다. 그동안의 책들은 그런 순간순간들이 오래도록 축적된 기록이다. 둘째, 유홍준 글쓰기의 근간은 자신이 우리 미술사학 전공자라는 신분을 잠시도 잊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생존해 있는 최고의 미술사학자나 미학자를 찾아가, 그 선배들이 하는 화법과 연구하는 방법을 익히고 그분들이 갖고 있는 자료를 만지고 보고 하는 일은 그에겐 큰 자양(滋養)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셋째, 그는 실핏줄같이 얽힌 네트워크를 통해 모은 단서나 정보,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비교하고 분석하고 판단하여 글쓰기에 끊임없이 줄을 댄다. ‘유홍준식 부지런함’은 어느 분야에 비춰보아도 들어맞는 성공 비결이다. 이처럼 그는 생각하고 말하고 쓴다는 삼각 원리를 잘 터득하여, 우리 문화를 옳게 보는 방법을 잘 세워주었다.
어느새 ‘답사기’의 이력이 일곱권에까지 이르렀다니, 특히 이번 책은 ‘제주도’만을 조명하고 있으니, 그 깊이와 넓이는 읽어보지 않고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제주도 한번 가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겠지만 유홍준이 탐사한 제주도가 어찌 여느 휴양지나 관광지와 같을까. 혹자는 미술사학자가 ‘제주학(濟州學)’이라니 주제넘다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 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제주의 문화, 언어, 민속, 그리고 지리지까지 총체적으로 끌어안으려는 야심찬 기획과 이 섬에 대한 두터운 사랑에 독자들은 곧 설득당하고 말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가 아니라, 보면 알게 되고 그래서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반대의 명제도 성립한다는 사실을 목격할 것이다.
그리하여 새 책 제주편은 마치 우리나라 지리지의 온전한 모습을 찾아 떠나려는 참에 울리는 뱃고동 소리 같다. 하지만 항해가 그리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문화유산에 대한 정의나 기준 그리고 범주와 한계가 너무 모호하고 방만해서, 엄격한 잣대와 관리가 시급하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문화재가 매우 중요하다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잘 보존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련다. 작년 어느 일요일이었다. 경주 남산을 오르려고 들어섰는데,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사진가 강운구(姜運求)와 ‘경주 남산’이라는 거대한 작업을 진행하던 팔십년대 초중반 무렵의 이곳은 순례자를 위해 준비된 길이었다. 일행의 어느 지식인은 이런 현상이 문화재 관심의 바이러스를 퍼뜨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때문이란다. 옳은 말은 아니나, 이 순례의 길이 어지러워지게 된 것을 직시하면서 이를 계몽하고 교육할 책무까지도 짊어지겠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 기준으로 말한다면, 우리 문화재의 현주소는 위기 그 자체이다. 원형성의 훼손이 제일 시급한 문제인데, 이는 온 국민적 무지에 기인함은 모두 알 만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홍준의 답사기는 현재의 수준에서 지리지의 수준으로 더 치밀하게 조직될 필요가 있다. 가령 ‘유홍준의 조선국토 지리지’가 그것이다. 이 책의 부록으로 남북을 아우른 ‘전국 문화유산 분포도’가 붙는다. 유홍준은 가능하다. 아니, 유홍준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