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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세대’로 동원되지 않기 위하여
김준연 金俊淵
창비 교과서사업본부 편집자 leoniscore@changbi.com
지난 대선이 치러진 2007년에 나온 책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의 반향은 컸다. 20대가 경제적 위치와 환경으로 볼 때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2000년대 이후로 20대가 다른 세대와의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2000년대 이래 젊은 세대의 상당수가 취업난과 고용불안, 저임금에 시달리며 경제적・사회적 곤궁에 처하게 되었음은 잘 알려진 바다. 이 책을 통해 물 위로 떠오른 세대간 대결 구도는 이후에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세대론 자체가 사회를 분석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회의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20대’라는 세대는 다시 연령이나 계급, 지역, 성별, 취향 등에 의해 세분되므로 이를 한덩어리로 묶는 것은 힘들다. 세대론은 이러한 이유로 비판받기도 한다. 20대라는 생물학적 연령의 개인이 겪는 문제들을 20대의 공통적 특성으로 환원하여 선동의 힘을 획득했다고 비판하는 이 입장에서는 착취의 구조를 기반으로 20대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세대 간 불평등은 실제로 그다지 크지 않으며, 오히려 세대 내 불평등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고 다시 대선 시즌이 돌아왔다. 김종배(金鐘培)의 책 『30대 정치학』(반비 2012)은 386세대와 88만원세대 사이에 끼어 변변한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세대가 정치적 주체로 묶이기 위해서는 그 세대가 공유하는 정치적 담론이 있어야 하는데,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맞설 수 있는 ‘구조개혁’과 ‘복지’가 30대의 키워드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범진보 정치세력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저자는 ‘리모델링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치참여(촛불시위), 정치 효능감(박원순 시장 이후의 서울시 변화) 등을 공통으로 경험했다는 점에서 한국정치를 리모델링하는 주체가 되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
30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분석에는 공감하는 바이지만 대선에 즈음하여 세대론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마뜩찮다. 정치적 계기가 있을 때마다 세대 담론이 동원되는 모양새 때문이다. 그저 호명하기 손쉬운 세대로서 동원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대와 계층 모두가 사회경제적 권리를 유지할 수 있는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최근 SNS 공간에서 번지고 있는 ‘대나무숲’ 현상에 관심이 간다. 젊은 세대가 계층으로서의 권리를 찾아나가는 운동의 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숲’은 노동자들이 고용자나 상사에게 직접 말하지 못한 고충을 익명으로 고발하는 트위터상의 공동 계정이다. 다종다양한 대나무숲을 모은 계정(@bamboo_forest)에 등록된 수는 11월 5일 현재 모두 52개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으로부터 시작해 퍼져나간 대나무숲의 면면을 살펴보면 자취방 옆 대나무숲, 학원 옆 대나무숲, 영화광고대행사 옆 대나무숲, 편의점 옆 대나무숲, 우골탑 옆 대나무숲 등으로 다양하다. 심지어는 백수 대나무숲도 있다. 이 현상에 대한 견해 역시 다양하다. 이것이 배설 자체의 효용은 있으나 다양한 지향을 가진 작은 주체들이 많이 나와 사안별로 연대하는 편이 더욱 건설적이라는 의견이나, 분노한 다음은 조직하고 참여하고 움직여야 세상이 바뀐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담론의 설정은 자신이 처한 조건에 대한 객관적 인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나무숲은 ‘못살겠다’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맹아로서 의미가 있다. 대나무숲에서 불만을 터뜨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배설에서 그치지 않고 현상의 개선을 위한 제안으로 확대된다면 SNS는 사회경제적 약자의 권리를 찾아나가는 움직임의 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온라인에서의 이러한 시도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려는 움직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대나무숲을 지켜보는 한 트위터 이용자의 코멘트를 보자. “@gwanyul 대나무숲 모음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한국의 갑을구조가 보이는 것 같다. 을을 코스프레하는 갑의 대숲은 썰렁하고 정통 을의 대숲은 갈수록 흥한다. 진짜 을 중의 을은, 트위터를 안한다.” 그의 말마따나 ‘진짜 을 중의 을’은 대나무숲의 목소리에 관심이 없다. 대나무숲을 넘어서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세대가 되었건 계급이 되었건, 움직임의 장소가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말이다.
‘바빠서’ 투표를 포기했다는 사람들이 2007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SBS와 한국리서치 패널여론조사 결과 2007년 41%, 2008년 44.9%, 2010년 55.8%가 ‘바빠서’ 투표를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대선 투표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15대 대선 투표율은 80.7%, 16대 대선 투표율은 70.8%, 17대 대선 투표율은 62.9%였다). 범진보 정치세력은 바쁜 이들을 위한 투표시간 연장을 제안했다. 이제 막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입한 젊은 세대에게는 기쁜 소식일 것이다. 투표시간이 연장된다면 소극적인 정치 참여의 기회나마 돌려받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의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계층으로서의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전달할 때다. 이를 수용하는 후보를 가려 투표를 하자. 그것이 젊은 세대가 동원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