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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덕영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 인물과사상사 2008
막스 베버의 삶과 학문적 호소력
전성우 全聖祐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chon@hanyang.ac.kr
김덕영(金德榮)의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는 세가지 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역작이다. 첫째,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 중 하나인 막스 베버(Max Weber)는 전문 사회학자뿐 아니라 사회과학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 사이에 회자되지만, 그의 사상이 난해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선뜻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베버에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평탄한 길을 우리에게 터주고 있다. 책제목에서 표현되듯이, 저자는 베버의 “거대한 지적 체계”(8면)가 아니라‘사람’베버를 생생히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비록‘인간’베버의 조명이 저자의 주된 목적이긴 하지만, 동시에‘학자’베버(물론 이 두 측면은 어차피 불가분의 관계이다)의 진수 역시 높은 수준에서 소개하고 있다. 베버가 현대 사회과학계에서 차지하는 막중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전문적 연구풍토는 아직 상대적으로 매우 척박한 상황임을 고려할 때, 이 책은 이런 메마른 땅을 일구는 데 적잖이 기여할 수 있다. 즉 이 책은 대중성과 전문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저자가 단순히 연대기적 서술방식을 택하지 않고 베버의 학문적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사건들’또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를 재구성하고 있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셋째, 이렇게 생애와 학문을 결합한 자신의 베버상을 “거울”(10면) 삼아 저자는 한국의 대학문화와 지식인사회-저자는 이를 “조폭과 마피아를 방불케 하는 패거리 문화”(5면)로 규정한다-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물론 이 세 차원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서술되고 있는바, 이런 작업은 독일에서‘교수자격증’(Habilitation)을 획득한 극소수의 외국 학자군에 속하는 저자가 베버의 생애 관련자료와 그의 학문세계를 온전히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다음에서 평자는 제한된 지면을 고려해 이 저서의 몇가지 측면들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저자는 풍부한 사진자료와 비교적 최근에 출간되어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서신자료를 활용하여, 베버의 내면세계와 외적 환경을 매우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근엄한 대학자 베버의‘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가령 가부장적 아버지와의 갈등(이 갈등의 결과 베버의 아버지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고 그로 인해 베버는 몇년간 극심한 신경쇠약증에 시달리게 된다, 103면) 또는 그의 여성편력(307면)도 포함된다. 물론 베버 생애의 다양한 사적 측면들은 그 자체로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이 저서의 묘미는 저자가 이러한 사적 차원을 당시인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초 독일의 지적·정신적·정치적 상황과 탁월한 방식으로 연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권위주의에서 자유주의로」라는 제하의 서술은 이런 연계작업의 백미이다, 96~98면).
그렇다면 당시 독일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우선 정치적으로 독일은 이른바 “지각한 국가”(35면)였다. 독일은 영국, 프랑스 같은 주변국가들보다 훨씬 늦게 통일된 근대적 국민국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후발적 상황은 독일의 근대화를‘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특수한 경로로 이끌었다. 이것은 시민혁명 등을 통한‘아래로부터의 근대화’가 아니라 국가주도적·권위주의적 근대화였으며, 당연히 시민계급의 예속화를 초래했고 비판적이고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형성을 지연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막스 베버, 그는 누구인가”(17면)라고 묻는다면, 평자는 저자와 함께 주저치 않고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조국의 후진적 상황을 극복하려고 치열하게 몸부림쳤던 지식인 그리고 이 과업을 학문을 통해 달성한 정신적 거인이라고.
베버는 독일이 노정하는 다양한 방면의 후진성-팽배한 권위주의 문화, 국가주의, 보수주의, 시민계급의 정치적 무관심과 무능 등-에 대해 평생 고뇌하면서, 이론과 실천 양 차원에서 그 해결책을 추구했다(저자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 베버는 당시 자유주의적 시민사회의 모범을 보여주던‘선진국’영국을 깊이 동경했다). 그런데 방금 언급한‘독일적’상황은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우리 한국의 상황이었고 또 아직도 상당부분 현재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막스 베버가 우리에게‘거울’이 되도록 하려면 우리는 그에게 다음 질문을 던지며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당신 조국의 그‘후진적 특수성’에 대한 성찰로부터 현대 사회과학도의 절대 다수가 아직도 경탄해 마지않는 그 위대한‘보편적 이론’을 구축해낼 수 있었소? 물론 이것은‘대학자’베버에게 던질 질문이고, 따라서‘인간’베버에 초점을 맞춘 이 책에서 저자가 그 답을 체계적으로 추적하고 있지는 않지만, 저자는 다양한 맥락에서 이 문제에 대한 흥미로운 암시들을 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여러 곳에서 베버가‘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해 가졌던 열정과 헌신, 학자적 직업윤리의 엄격한 요건(169, 233면) 등을 기준으로 우리의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으며, 평자는 이런 비판에 대부분 동감한다.
몇가지 편집상의 아쉬움(가령 주석에서 각주와 미주를 같이 사용하고 있어 불편하다는 점), 내용상의 아쉬움(가령 전기적 사실의 중언부언이 과도하다든지 독일 대학제도와 강의방식을 우리의 경우와 너무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점), 한두가지 오역(가령‘Sache’는‘사실’이 아니라‘본분’이다, 218면 첫번째 인용문)이 있지만, 이런 것들은 이 책이‘막스 베버, 그 사람을 보도록’만드는 데 발휘하고 있는 크나큰 호소력에 비하면 극히 사소한 것들일 터이다. 따라서 평자는 이 책을 베버의 사회학에 처음으로 입문하려는 독자, 베버의 생애와 사상의 연관관계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원하는 독자, 그리고 우리 학문풍토에 대한 비판적 자기성찰과 그 해결책을 추구하는 독자 모두에게 적극 추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