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신상철 『천안함은 좌초입니다』, 책보세 2012

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다

 

 

정현곤 鄭鉉坤

세교연구소 상임기획위원 jhkpeace@empas.com

 

 

10123신상철(申祥喆)의 첫 공판이 있었던 2011822일, 사람들이 놀랄 만한 일이 여럿 있었다. 그날 피고인 신상철은 자신의 모두(冒頭) 진술을 총 98장의 슬라이드로 구성해 ‘발표’했다. 천안함사건같이 민감한 소재를, 그것도 국방장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조사본부장, 합조단장 등 전・현직 모두 합쳐 14개의 별이 고발한 피고인의 행위 치고는 꽤 호사였던지 법정에는 가벼운 탄성들이 오갔다. 이어진 증인심문에서 천안함 장병들을 구조했던 해경 501함의 유종철 부함장이 다음과 같이 말하자 법정이 크게 술렁였다. “천안함 함수가 침몰 다음날 아침까지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다.”

천안함 함수는 사건 이틀째인 2010328일 오후 6시경에 음파탐지기로 발견된다. 정확한 시간은 알기 어려운데, 국방부 원태재(元泰載) 대변인이 328일 오후 727분에 함수에 위치 표지 부이(buoy)를 설치했다고 하니 그쯤으로 짐작할 뿐이다. 해난구조대(SSU) 증원요원 32명이 백령도에 도착한 시간이 27일 오전 854분. 이들은 곧바로 수색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함수를 만지며 탐색을 실시한 것은 29일부터다. 떠 있을 때는 접근도 안했고, 가라앉았을 때는 곧바로 찾아내지도 않았고, 음파탐지기가 발견하고서야 탐색이 이루어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함수가 가라앉은 시간은 언제일까? 27일 오후 137분이다. 이렇게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간이 상황일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2차 공판이 있던 날 증인으로 나온 해군작전사령부 심승섭 작전처장이 이를 확인해주었다.

자, 여기서 의문이 쏟아진다. 함수가 떠 있을 때 왜 구조작업은 진행되지 못했나? 해경 501함으로부터 함수를 인계받는 해경 253정은 왜 함수를 둔 채 사라졌는가? 가라앉은 함수의 ‘실종’으로 날려버린 16시간 동안 구조대는 무얼 했는가? 국방부는 이 사실을 알았는가 몰랐는가? 군 기록과 보고체계상 알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왜 함수가 함미에 이어 곧바로 침몰되었다고 계속해서 거짓으로 발표했는가? 혹시 국방부가 천안함 수색과 구조작업과는 다른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 의문들이 신상철 비망기 『천안함은 좌초입니다』의 출발점이다. 이 책에는 천안함사건의 진실과 매우 밀접히 연관되는 두개의 표현이 나온다. ‘핵심 중의 핵심’(82면)과 ‘열쇠’(110면)다. 저자가 천안함의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공언하는 근거의 ‘핵심 중의 핵심’은 함수 탐색을 하던 해군특수전여단(UDT/SEAL) 소속 한주호(韓主浩) 준위의 사망 장소가 국방부가 발표한 함수 침몰지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준위는 전혀 다른 위치에서 천안함 함수가 아닌 다른 침선을 수색하다가 사망했는데 그 위치가 바로 ‘제3의 부표’ 지점이다. ‘제3의 부표’는 당시 이 사실을 보도한 KBS 취재팀이 함미 또는 함수의 위치와 다른 제3의 위치라는 의미에서 붙인 명칭이자, 실제 수색작업을 했던 대원들이 함수의 위치로 알고 작업했던 지점을 칭하는 말이다. 제3의 부표와 관련한 공방은 20122월의 제5차 공판에서부터 시작되며, 이 책에서 가장 진지하고 긴장되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76~86면). UDT대원들이 함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천안함이 아닌 다른 침선을 탐색했다는 것, 그 침선은 크기가 60m 가량인데, 해치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했다는 증언은 충격과 파장이 크다. 저자는 이 물체가 천안함과 충돌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진실에 접근하는 ‘열쇠’로 저자가 지목하는 것은 천안함 프로펠러의 변형이다. 천안함에는 두개의 프로펠러가 있는데 그중 우현 프로펠러가 손상을 입었다. 다섯개의 블레이드가 모두 휘어졌고 일부는 S자로 휘어져 있다. 이런 휘어짐의 원인은 뭘까? 천안함이 공격을 받아 엔진이 정지되자 갑작스런 동력 차단으로 인해 관성이 작용했다는 정부의 주장이 있었다. 이에 대한 일반의 지식은 관성이 작용했다면 천안함 프로펠러의 휘어짐 방향은 반대로 되어야 한다는 정도였고 그것으로도 충분한 반론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선박의 경우 자동차와 달리 프로펠러를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 장치가 전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로펠러는 해수의 저항에 의해 적당히 돌다가 멈출 뿐 관성력 자체가 작용하지 않는다. 백번을 양보해서 갑자기 정지하는 메커니즘을 설치한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프로펠러가 휘는 것이 아니라 샤프트가 부서지고 말 뿐이다. 천안함 프로펠러 변형이 보여주는 것은 1m 정도 깊이로 모래톱을 파고들어 좌초한 상태에서 배가 빠져나오기 위해 후진하면서 생긴 흔적이다. 열세척의 선박 건조를 직접 감리한 감독 출신이라 그런지 이 대목에서 저자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렇듯 ‘열쇠’와 ‘핵심 중의 핵심’을 통해 저자가 찾은 진실은 이렇다. 곧 천안함사건은 좌초에 이은 충돌이라는 이중의 해난사고라는 것이다.

이 책을 한번 읽고 다시 중요한 대목을 찾아 읽는 와중에 천안함사건과 관련된 또 하나의 소송 결과가 전해졌다. 버지니아대 이승헌(李承憲) 교수가 『디지털 조선일보』와의 민사소송 1심에서 이겼다는 소식이다. 판결 날짜는 2013123일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교수의 주장을 잘 정리하고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천안함 선체와 어뢰의 부착물질에서 황(알루미늄황산수화물)이 발견되었다. 일반적으로 폭발의 경우 황이 발견될 수 없으므로 이는 폭발이 없었다는 증거다. 합동조사단은 모의 폭발실험을 하여 흡착물질을 얻었다. 폭발로 생긴 흡착물질에는 산화알루미늄이 포함되어 있을 뿐 황이 나올 수 없는데 합동조사단은 모의 폭발실험 데이터에 황이 포함되도록 조작한다. 그래야 천안함이 이 어뢰에 의해 폭침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에서는 이교수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다루지는 않았다. 『디지털 조선일보』가 이승헌 교수의 주장을 왜곡했느냐를 다루었고, 그렇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판결은 천안함사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방향을 주었다. 합동조사단이 실시한 모의 폭발실험을 공동으로 실시한 후 생성된 데이터를 합조단 실험 데이터와 비교한다면 천안함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 이는 이교수가 계속 주장해온 바인데 이번 판결을 통해 추진 의지를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천안함은 좌초입니다』에도 그런 강한 힌트가 있다. 그것이 ‘제3의 부표’이다. 이곳은 백령도 용트림바위에서 가까울 뿐 아니라 20m 깊이의 얕은 해역일 따름이다. 천안함의 진실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