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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차주일 車週日
1961년 전북 무주 출생. 2003년『현대문학』으로 등단. chaji@arko.or.kr
내게 카트리지바늘 두 갤 박아줘
지금껏 들어온 노래들, 지겨워졌어
이젠 남의 노랜 물려
평생 내가 듣지 못한 노랜 단 한 곡
카트리지바늘 하나론 감당할 수 없는 긴 노래
나를 듣고 싶어
내가 날 들을 수 있게
내게 카트리지바늘 두 갤 박아줘
내 땀구멍 수만큼 날 찔러줘
내 흘린 땀 모두 모으면 검게 탄 소리
내게 검정을 주입해줘
주름 더 뚜렷해지도록
내 삶은 가락과 소리로 모두 기록돼 있어
바라봐 주름투성이 내 몸을
long playing음판을
죽기 전까지 다 들을 수 있을까
개작도 필요해
다시 들어봐야 하기도 해
카트리지바늘 두 갤 박아줘
나는 내 주름을 듣고 싶어
내 주름에 눈썹을 올려놓아야겠어
마모된 눈썹자리에 문신을 새겨줘
주름에 마모되어 푸르게 환생하는 눈썹문신을 봐
그걸 지워지는 거라 말하지 마
주름은 늘어날수록 짧아지는 미완성청춘곡
서둘러, 카트리지바늘 두 갤 박아줘
나 내 젊은 하룰 들으며 face-off
The target
지구가 나무 아래 수평으로 짐승들의 성역이었을 때
그리움으로 요동치는 유인원의 첫걸음을 허락했다
정신이 육체를 옮기는 그 발자취 차마 지울 수 없어
길이란 이름으로 역사하는 순간
지구는 그리움을 기록하는 경전이었다
한 그리움이 한 그리움을 만난 곳에서 최초의 기호 十자로가 생겨났다
十자를 마음의 결승처럼 섬기는 그들 목소리는 향기처럼 떠다녔다
정착과 경작을 생각해낸 변종은 다른 길을 만들었다
무기와 도구를 옮기는 길은 소유와 두려움의 경계가 되었고
짐승이 피 흘린 자리마다 十자로가 생겨났다
땀에서 시취가 나는 변종은 첫 인류가 되었다
인류는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
감히 나무보다 높은 성지에 마천루와 항로를 만들었고
4억 3,100만km나 되는 항로는 템펠1혜성1을 명중시켰다
인간의 두려움이 신의 성역까지 침범한 그 순간
十자 표적 깜빡거리던 템펠1혜성은 모니터에서 사라졌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인간들이 가슴 밖에 성호를 긋는다
저 신호는 그리움이 두려움으로 진화를 마쳤다는 것
인간이 만세를 섬겨온 마음속 결승이 풀려 사라지고
두려움이 두려움을 위무하는 곳에서 최후의 기호 十字架가 생겨난다
그것은 하루에 한차례 깜박거린다
신의 영역에서 수많은 표적을 바라보는 이
다시 발사버튼을 누를 것이다
인간은 표적을 향해 모여드는 종족이므로
인간이 멸종된 지구는 나무 아래 수평으로 영원히 성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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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와 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혜성으로, 2005년 미항공우주국(NASA)의 딥 임팩트(Deep Impact) 작전으로 파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