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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금수 『세계노동운동사』(전3권), 후마니타스 2013

노동운동의 어두운 터널, 역사에서 길을 찾는다

 

 

이원보 李元甫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leewbb@daum.net

 

 

160_촌평_세계노동운동사_fmt김금수(金錦守) 선생의 『세계노동운동사』가 출판되었다. 모두 1983면을 세권으로 나눈 이 책은 노동자계급의 탄생에서 1945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장구한 세계노동운동의 물줄기를 담은 대작이다. 1권은 자본주의의 발생과 노동자계급의 형성에서 20세기 초반 러시아혁명 전후까지, 2권은 1차대전과 러시아 10월혁명, 3권은 세계대공황과 2차대전 종전까지를 싣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제국 노동운동의 큰 흐름과 함께 식민지 종속국, 동구권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이루어졌던 노동자들의 투쟁·조직·이념을 세세히 살피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계급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한 큰 투쟁의 고비들과 그 원인·과정·결과를 풍부한 자료를 동원해 설명한다. 본문 곳곳에는 노래·시·성명·격문 등을 실어 노동자들의 의식과 정서를 표현하고 있고 권말에는 꼼꼼한 인명과 조직명 찾아보기를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유럽, 북미,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조선으로 나눈 연표를 달아 세계노동운동의 발자취를 일별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여든 가까운 고령에도 묻혀 있던 국내 연구성과를 발굴해내고, 거금을 들여 외국서적을 번역하는가 하면 몇몇 나라를 직접 방문해 희귀한 자료들을 찾아오기도 했다.

이 저작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10여년 동안 현장의 노동운동가들과 함께한 학습과 토론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현장 운동가들의 이론과 인식수준 그리고 현실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살아 있는 역사서이지, 책상물림의 학술연구서가 아닌 것이다. 함께 실린 학습참가자 56명의 이름은 공동저작이라는 의미와 함께 운동가들의 역사에 대한 책임감과 실천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도 26년만에 나온, 역대 세번째로 쓰인 세계노동운동사 저작이다. 앞선 두권은 미국공산당 서기장을 지냈던 포스터(William Z. Foster)가 1956년에 낸 Outline History of the World Trade Union Movement: 1881-1961(한국어판 『세계노동운동사』, 정동철 옮김, 백산서당 1986)과 소련과학아카데미—국제노동계급운동연구소가 1980~87년에 걸쳐 영문판으로 낸 8권의 The International Working Class Movement: Problems of History and Theory(한국어판 『국제노동계급운동: 역사와 이론의 문제』, 전진출판사 1989; 『세계노동운동사: 현대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운동 1945-1979』, 태암 1989)이다. 이 세 저작 모두 10년이 훨씬 넘는 기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저술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또한 각국 노동운동을 단순히 나열하거나 집합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계급이 세계사적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행한 계급투쟁의 역사를 하나의 통일적인 운동의 체계로 담아낸다. 소련과학아카데미가 지적한 것처럼 “국제노동운동은 여러 나라의 국민적 노동운동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만 그들의 단순한 총계는 아니다. 그것은 각국의 운동을 결합함과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본질의 기초에 놓여 있는 계급투쟁의 일반적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터의 작품은 약사(略)의 범주에 머물렀고, 소련과학아카데미의 것은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국제노동운동에 대한 러시아—소련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김금수 선생은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함에 더불어 노동운동의 중요한 역사적 고비마다 권위있는 연구자들의 견해와 평가를 다수 소개함으로써 균형있는 시각으로 넓고 깊게 노동운동사를 서술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맑스주의 계급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노동계급 형성이론과 관련한 에드워드 파머 톰슨(E. P. Thompson),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 등의 주장이나 빠리꼬뮌에 대한 맑스, 엥겔스, 레닌, 홉스봄의 분석과 평가 등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는 세계노동운동사가 합법칙성이나 보편적 원리를 추구하는 데 집중할 때 각국 노동운동이 지닌 불균등발전의 양상을 놓치기 쉽다는 허점을 메워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김금수 선생의 『세계노동운동사』는 시기상으로는 세번째지만 기존의 저작이 지닌 한계를 해소한 세계 최초의 작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의 두 책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많은 국내외 자료를 발굴해냈음에도 지구상에 존재해온 모든 나라—특히 제3세계—의 운동을 좀더 풍부하게 담아내지 못한 점은 각 나라 자료의 한계나 언어장벽을 극복하면서 앞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둘러싼 모든 조건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정리해낼 수가 없다는 점에서 관련된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총합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세계노동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은 각국 노동운동의 구체적인 모습·특징과 함께 세계노동운동 전체의 진행경로를 추적함으로써 노동운동 발전의 합법칙성과 교훈을 추출해내는 과정이다. 이것은 확고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노동운동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 장기간을 버텨내는 인내력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여든에 가까운 고령에 이르기까지 저자를 세계노동운동사 연구에 진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심각한 위기국면에서 헤매고 있는 한국 노동운동이 제자리를 잡고 재도약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이념·조직·전략·전술·지도력·도덕성·연대성 등 주요 측면에서 끝모를 침체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노동운동이 전반적인 침체양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더러 나타나는 데 비해 우리의 위기상황은 탈출의 전망 없이 지나치게 오래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저자가 세계노동운동사 연구를 시작한 2000년대 이전부터 이미 두드러지고 있었고 저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동운동의 추락상을 지적하고 분발을 촉구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저자는 “우리의 노동운동이 깊은 침체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그 길을 역사에 묻기 위해” 책을 썼다고 했다. 곧 역사 속에는 장구한 시간 동안 노동자계급이 승리와 패배를 거듭하면서 숱하게 잔혹한 억압을 극복해온 풍부한 경험과 교훈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이 안고 가야 할 원칙과 지침이 면면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노동운동사 연구에 대한 저자의 집념은 평생을 헌신해온 노동운동, 민중운동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에 바탕을 두고 있거니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모든 일의 기본으로 삼아온 저자의 신념의 소산이기도 하다. 저자가 바란 대로 이 책이 세계 통사와 노동운동 전개과정의 상호관련과 작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노동운동의 근본과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에 바탕한 실천을 위한 학습과 토론의 교재로서 그 몫을 다하길 기대한다. 아울러 노동운동사 연구에 자극을 주고 침체된 인문사회과학 출판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세계노동운동이 재도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이 책의 외국어 번역작업도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