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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신예작가 5인선
김엄지 奇俊英
1988년 서울 출생. 서울 출생.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등단. thea18@naver.com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그는 산으로 갔다.
그는 산으로 가기 위해 배낭을 샀다. 양말과 팬티, 점퍼와 트레이닝 바지, 치약과 칫솔, 야구모자와 수영모, 물안경을 챙겼다. 그는 계곡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다이빙을 하고 싶었다. 3미터는 돼야 해. 그는 수심 3미터 이상의 계곡이 있는 산을 검색했다. 익사, 중태 같은 기사를 여러건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산으로 가기 위해서 네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그리고 두번 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잠에서 깰 때마다 그는 고민했다. 며칠 동안 산에서 머무를 것인가. 그가 고민하는 동안 비가 내렸다. 장마는 끝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비는 계속 내렸다.
휴게소에서 그는 소시지와 통감자구이를 사 먹었다. 버스가 다시 출발했을 때 가슴 언저리에서 소시지와 통감자구이가 거북하게 일렁였다. 그는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고 심호흡을 했다. 그는 멀미를 앓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며칠 동안 산에서 머무를 것인가. 아주 오래 머물고 싶기도 했고, 다이빙을 단 한차례만 한 뒤에 곧바로 돌아올 생각도 있었다.
그가 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 비는 거의 내리지 않는 것처럼 내렸다. 그래서 그는 비가 그쳤다고 생각했다. 그는 좀 쉬고 싶었다. 하늘이 어두웠다. 민박이나 펜션, 산장 같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어두운 하늘과 텅 빈 주차장, 수심 3미터의 계곡이 있다는 크고 짙은 산, 산의 입구를 상징하는 녹슨 철제 구조물, 비교적 환하게 빛나는 24시 편의점뿐이었다.
근처에 숙소 있습니까? 그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물었다. 편의점 직원은 없다고 대답했다. 없어요. 짧은 대답이어서 그는 섭섭함을 느꼈다. 그는 1.5리터 게토레이를 계산했다.
근처에 숙소 있습니까? 그는 등산복을 갖춰 입은 오십대 남자에게 물었다. 등산복 차림의 남자는 편의점 계산대에서 버터오징어를 계산하는 중이었다. 없습니다. 등산복의 남자 역시 짧게 대답했다. 그는 이제 누구에게 더 물어보아야 할지 고민됐다. 그는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에서 게토레이를 계산하고 숙소를 물었을 뿐이었지만 그사이 하늘은 더 어두워졌다. 산은 좀더 짙어졌고, 산 입구를 상징하는 철제 구조물은 좀더 녹슬어 보였다. 그리고 주차장은 더 넓게 비어 있었다. 그는 가끔 공간이 넓어지는 현상을 겪었다. 실제로 공간이 넓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었다. 가벼운 공황증세를 갖고 있기 때문인데, 그는 자신이 공황증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 그는 편의점 유리 앞에 서서 1.5리터의 게토레이를 들이켰다.
좀더 어두워지기 전에. 그는, 좀더 어두워지기 전에,라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했다. 좀더 어두워지기 전에. 좀더 어두워지기 전에. 좀더 어두워지기 전에. 그는 한가지 생각을 반복적으로 되새겼다. 그가 가벼운 강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벼운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 그는 1.5리터의 게토레이 병이 순식간에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한꺼번에 많이 마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많이 마셨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화장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좀 참아보기로 했다. 좀 참고, 좀더 어두워지기 전에.
그는 편의점 유리 앞에 서서 하산하는 등산객 둘에게 다시 숙소를 물었다. 삼십분쯤 걸어야 합니다. 그중 한 등산객이 그에게 말했다. 그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등산객에게 인사를 했다. 등산객은 등산로를 따라 산속으로 삼십분쯤 걸어가라 했다.
그는 산속으로 걷기 시작했다. 흙과 잎이 진한 냄새를 뿜었다. 축축하고 신선한 냄새였다. 축축하고 신선하게, 그는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였다. 신비로운 기분은 그가 십분 정도 더 걸었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십분쯤 걸었을 때 그는 안개에 휩싸였다. 그는 안개 속에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뜨는 사이에 사위는 더 어두워졌다. 그는 안개 속에서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쌌다. 그는 한 방향으로 힘을 주었다. 그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비가 멈췄다고 생각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내렸다. 그래서 그의 옷과 몸은 천천히 계속 젖었다. 흙과 잎, 등산로 역시 젖어 있었지만, 그는 비와 어둠에 적응하면서 그런대로 잘 걸어나갔다. 하지만 두번의 심한 오르막을 거치고 나자 배낭이 무겁게 느껴졌다. 길은 걸을수록 가팔라졌고, 그가 배낭 안에서 무언가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숙소가 보였다. 숙소라기보다 허름한 식당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백숙과 막걸리, 라면, 몇가지 스낵을 파는 곳이었다.
잘 수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잘 수 있습니다. 비쩍 마른 여자가 대답했다. 여자는 비쩍 마른데다가 거의 백발이었다.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단발이었다. 허리가 약간 굽어 있어서 더욱 나이 들어 보였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는 27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등산객이 일러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뿌듯했다.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라면을 주문했다. 늙고 마른 주인여자는 방으로 가져다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옷을 갈아입었다. 옷과 몸이 젖었다는 것, 심지어 자신의 몸이 차갑다는 것이 의아했다. 산속을 걷는 내내 더웠고, 비가 그친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서 그는 담배를 태웠다. 집에서 나온 뒤로 처음 태우는 담배였다. 맛이 좋았다. 그가 담배 한대를 다 태우기 전에 주인여자가 방문을 두드렸다.
계곡은 여기서 얼마나 가야 합니까? 그는 라면을 가져온 주인여자에게 물었다. 여기서 멉니다. 한시간은 걸어야 합니다. 주인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굵었다. 체형과 어울리지 않는 톤이었다. 보이는 대로라면 실같이 가늘고 작은, 떨리는 목소리를 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주인여자의 나이를 다시 가늠했다. 그는 방문을 닫고 라면을 먹었다.
그는 라면을 다 먹은 후에 담배를 한대 더 피웠다. 그리고 구석에 놓인 요와 이불을 방 한가운데에 펼쳤다. 눅눅하고 무거운 이불이었다. 그의 집에 있는 것과 꼭 같은 눅눅함과 무거움이었다. 그는 친근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불을 빨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2년 7개월 동안 이불을 빨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2년 7개월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면 이불을 빨아야겠다고 결심했을 뿐이었다. 그는 눅눅하고 무거운 이불 속에서 고민했다. 며칠 동안 머무를 것인가. 그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머물 수도 있었고, 다이빙을 단 한차례만 한 뒤에 돌아갈 수도 있었다. 이불의 눅눅함과 무거움이 익숙해서인지 오랫동안 머물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꿈 없이 잠을 잤다.
아침이 되어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침이 되어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이미 예보는 장마의 끝을 선언했지만 갑자기 굵은 비가 내리기도 했다. 산속은 춥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는 추위에 선잠이 들었다 깨었다. 어둡고 추웠기 때문에 그는 계곡과 다이빙을 떠올리지 못했다. 더 자고 싶은 마음과 춥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아침으로 라면을 주문했고, 주인여자가 방 안으로 라면을 들이며 그에게 하루 더 머물 것인지 물었다. 그는 아직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계곡은 어떻게 가야 합니까? 그는 주인여자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주인여자는 그에게 약도를 그려주었다. 주인여자는 약도를 많이 그려본 솜씨였다. 감사합니다. 그는 인사했다. 인사 후에 방문을 닫고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웠다. 라면보다 담배가 더 맛이 좋은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우려고 라면을 먹은 사람처럼, 진득한 침을 쩝쩝거리면서 담배를 빨았다. 그는 여전히 깊은 계곡을 기대했지만 어둡고 추웠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이불 속이 너무나 편안하다는 사실, 그의 집 이불과 같은 무게, 같은 눅눅함, 같은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오래 이불 안에 머물게 했다. 그는 편안했다. 편안함과는 별개로, 그는 집으로 돌아가면 이불을 빨아야겠다고 다시 결심했다. 그는 결심을 잘하는 편이었다.
비가 멈추겠습니까? 그가 주인여자에게 물었고, 주인여자는 정오가 되면 날이 갤 것이라고 말했다. 주인여자는 날씨에 대해 잘 아는 듯했다. 계곡에서 다이빙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주인여자에게 물었고, 주인여자는 기꺼이 그러라 말했다. 그는 하루 치의 숙박비를 미리 계산하고 숙소를 나섰다. 물안경과 수영모를 잊지 않고 챙겼다.
그는 사실 다이빙을 해본 적이 없었다. 수영을 배우긴 했지만, 잠수는 서툴렀다. 그는 삼년 전 어느날 갑자기 다이빙을 결심하게 되었다. 돌고래가 나오는 다큐를 시청한 날이었다. 다큐의 돌고래는 다이빙하지 않았지만, 그는 돌고래를 보자 다이빙이 하고 싶어졌고, 결심했다. 그에게 결심은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불현듯 생겨났다.
주인여자가 그에게 준 약도는 힘있게 그려진 약도였다. 계곡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능숙한 약도였다. 그는 주인여자를 믿었다. 주인여자가 그려준 약도를 믿었다. 그러나 그의 믿음과 상관없이 산길은 어둡고 추웠다. 가끔씩 굵게 비가 내리기도 했다. 정오가 거의 다 되어갔지만 날은 개지 않았다. 그는 삼십분째 비를 맞으며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내리지 않는 듯이 내리거나 혹은 확실하고 굵게. 그러니까 비는 어떤 식으로든 내렸다. 삼십분을 걷는 동안 그는 몇번인가 안개에 휩싸였다. 그때마다 신비로운 기분은 아니었다. 조급함이나 이상한 안달증이 들었다. 무엇에 대한 조급함과 안달인지 그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는 한시간 동안 걸었지만 약도에 그려진 절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뒤로 한시간 더 걸었지만 절을 발견하지 못했다. 절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가야 했다. 오른쪽으로 더 걸으면 계곡이 나타날 것이라 주인여자는 말했다. 약도 역시 그렇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두시간을 걸어도 절은 보이지 않았다. 무성한 잎과 거친 돌길이 나타났고, 갑작스럽게 안개에 휩싸일 뿐이었다. 정오가 훨씬 지났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등산객과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발이 무거웠다.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멀리서 표지판을 보았다. 표지판은 무성한 풀숲 가운데 솟아 있었다. 절의 위치를 가리키는 화살표거나, 어쩌면 곧장 계곡을 가리키는 화살표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어쨌든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는 화살표임에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표지판에 화살표는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한 표지판은 나무 합판이었다. 거기에 산불 조심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억하심정에 연달아 담배를 세개비 피웠다. 줄담배는 오랜만이었다. 그는 여러번 침을 뱉었다. 곧 갈증이 났다. 그러나 물은 가져오지 않았고, 물안경과 수영모만 챙겨왔을 뿐이었다. 목마르다. 목마르다. 목마르다. 그는 반복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같은 생각을 할 때마다 멀미와 같은 증상에 시달렸다. 뒷골이 당기고 속이 메슥거렸다. 그는 그것이 강박증세일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비위가 약한 체질이라고 스스로 짐작할 뿐이었다. 지레짐작은 그를 슬프게 했다. 목마르다. 목마르다. 목마르다. 그는 슬프도록 목이 말랐다. 그는 심호흡을 했지만 멀미 증상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그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혀를 내밀었다. 혓바닥에 비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계속 목이 말랐다.
그는 조금 더 걷기로 했다. 길이 나 있는 쪽으로 걷다보면 무엇인가, 누군가와 마주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의 기대는 소박한 편이었다. 깊은 계곡과 다이빙보다도 절이 나타나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더 커졌다. 그의 기대는 유연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떤 기대와도 상관없이 그는 흙바닥에 늘어진 검은 물체와 마주쳤다. 정확히는 검붉은 색이었고 아무렇게나 헝클어지고 축 늘어진 상태였다. 아무렇게나 벗겨진 흙 묻은 목장갑이었다. 그는 놀랐지만, 목장갑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어떤 것의 시체도 아니었고 단지 목장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흙과 잎의 색이 더욱 짙어진 것을 보았다. 어두워졌고 앞으로 더 어두워질 것이었다. 목이 말랐고 앞으로 더 목이 마를 것이었다. 그는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빠르게 걸었다. 그는 넘어지고 싶지 않았다.
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주인여자에게 말했다. 그가 산을 헤매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아주 어두워져 있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네요. 주인여자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어려운 길은 아니라고 주인여자는 덧붙였다. 이상한 일이군요. 그는 주인여자의 말에 수긍했다. 산이란 게 그렇습니다. 주인여자는 그를 위로했다. 산이란 게 그렇군요. 그는 힘이 없었다. 그는 시무룩했다. 배가 고프지는 않나요? 주인여자가 그에게 물었고, 그는 목이 마르다고 대답했다. 주인여자는 그에게 물을 떠다주었다. 그는 벌컥벌컥 마셨다. 오늘은 하늘이 붉습니다. 불이 나고 있나봅니다. 주인여자는 서쪽을 가리켰다. 서쪽 하늘이 환하게 붉었다. 산불인가요? 그가 주인여자에게 물었다. 네. 주인여자는 굵고 낮게 대답했다. 그는 연달아 피웠던 세개비의 담배가 떠올랐다. 비가 오는데도 산불이 납니까? 그가 주인여자에게 물었다. 비는 비고 불은 불입니다. 비가 와도 불은 납니다. 주인여자는 산에서 산불은 흔한 것이라 대답했다. 그는 주인여자에게 산중턱에서 담배 세대를 태웠다고 말하려다 하지 않았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 라면을 주문했다. 허기가 졌던 탓인지 두어 젓가락으로 라면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라면을 다 먹은 뒤에 입맛을 다시며 담배를 빨았다.
아직도 타고 있습니까? 그는 방 밖으로 나가 주인여자에게 물었다. 네. 훨훨 잘 타고 있습니다. 주인여자는 여유로웠다. 여기까지 내려오진 않습니까? 그는 산불이 숙소까지 내려올까 두려웠다. 그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주인여자가 말했고, 그는 주인여자의 말을 믿기로 했다.
얼마 동안 머무를 것인지 그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고, 얼마 동안 머무른대도 상관없었다. 그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산으로 온 지 하루가 지났지만 아무도 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 역시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연락하는 것과 연락 받는 것에 대해서 그는 무감한 편이었다. 그러나 산불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치지 않는 비 때문에, 그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약간 초조했다. 무엇을 향한 초조함인지는 알 수 없었다. 참지 못할 만큼의 초조함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그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휴대폰 배터리가 8퍼센트 남아 있었다. 그는 충전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잘 깨닫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잘 잊는 편이었다. 제법 멍청한 편이었고, 우유부단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늘 사소한 망설임과 걱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이 꺼질까 걱정되었다. 그것은 멍청한 걱정이었다. 배터리가 모자란 휴대폰은 꺼지는 것이 당연했다. 더욱이 아무도 그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충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인여자에게 휴대폰 충전을 부탁했고, 충전기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없습니다. 주인여자의 대답은 짧았다. 그는 섭섭함을 느꼈다. 주인여자는 휴대폰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주인여자의 나이를 다시 가늠했다. 아무래도 칠십대 후반 같았다. 사람은 칠십대부터 비슷한 얼굴을 갖게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주인여자는 구십대일수도 있고, 백세를 넘겼을 수도 있다. 그는 피곤했기 때문에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눅눅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내일이면 휴대폰이 꺼질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인정하고 나니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이 꺼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어딘가 아쉬웠다. 언제까지 산에서 머물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 휴대폰을 켤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 목록을 훑었다. 64명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뜻밖의 인물의 번호도 있었다. 헤어진 여자의 번호였다. 헤어진 여자의 이름으로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는데, 그는 속으로 그 이름을 몇번 불렀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또다른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살폈다. 이미 본 이름과 전화번호를 반복해서 돌려가며 보았다. 차례차례, 그들의 번호를 외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연락처 목록을 훑어보는 사이에 배터리의 잔여량이 7퍼센트로 떨어졌다. 그는 휴대폰이 꺼지기 전에 어디엔가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연락처 목록에는 딱히 친구라 불릴 사람이 없었고, 동료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없었다. 애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없었고,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있었지만 차마 전화를 걸어 할 말이 없었다.
딱 한통만 걸어야 한다면, 걸 수 있다면…… 그는 생각했다. 뒷골이 당기고 속이 메스꺼웠다. 라면이 잘 소화되지 않는 것 같았다. 산길을 너무 오래 헤맨 탓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산불에 놀란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배터리가 없고 충전기도 없기 때문에 아마 체한 것이라고 그는 짐작했다. 그는 트림을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답답했고, 문득 내일 아침도 라면을 먹어야 할지 고민됐다. 백숙이나 막걸리는 더욱 아니었다. 그는 차라리 회가 먹고 싶었다. 그는 생 연어를 좋아했다.
그는 일단 휴대폰을 꺼두었다. 단 한 통화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휴대폰을 켤 생각이었다. 일단 휴대폰을 끄고 배터리를 아끼는 행동이 현명하다고 여겨져서 그는 스스로 뿌듯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그는 이불을 말아 안고 벽을 보고 누웠다. 집으로 돌아간 후에 그가 할 일은 없었다. 내야 할 세금이 있기는 했지만, 크게 마음 쓰이지는 않았다. 그는 습관처럼 세금을 밀려서 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그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이불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는 곰팡이 냄새를 잘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이불 빨래를 하리라 다시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일년 전부터 이불 빨래를 결심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 우기와 같은 장마철을 지나고 나서였다. 어떤 날에는 이불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후텁지근해졌다. 그는 답답한 기분이 들 때마다 반드시 이불을 빨리라 결심했지만, 가을과 겨울과 봄이 지났다. 그의 가을과 겨울과 봄은 다르지 않은 계절처럼 지나갔다. 그는 가을에도 겨울에도 봄에도 물먹은 이불을 덮고 꿈 없이 잠들었다. 그는 꿈을 잘 꾸지 않았다.
언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그는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오래 고민하다 잠들었고,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뻘과 부메랑이 등장하는 어두운 꿈이었다. 하늘이 붉었다. 전쟁 탓이었다. 그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질척한 뻘을 달렸다. 사방에서 크게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람이 사방에서 그를 향해 몰아쳤다. 그는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러나 계속해서 뻘이었다. 하늘이 붉었고, 수십개의 부메랑이 그의 근처를 맴돌았다. 부메랑은 그의 머리 위, 어깨 옆을 스쳤다. 그는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무서웠다. 부메랑 때문인지, 시뻘건 하늘 때문인지, 끝없는 뻘 때문인지, 헬리콥터 소리와 강풍 때문인지, 그중 무엇이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이 계속해서 무서웠다. 잠에서 깨기 직전이 가장 무서웠고, 그는 신음하며 잠에서 깨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엎드린 채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엎드려 잤기 때문에 악몽을 꾼 것이라 그는 짐작했다. 아직 어두웠다. 그러나 아침이었고 주인여자는 그의 방문을 두드리며 하루 더 묵을 것인지 물었다. 그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주인여자는 문 밖에서 무어라 몇마디 낮게 중얼거리고 사라졌다. 그는 주인여자가 무어라 했는지 궁금했지만 간절하지는 않았다.
그는 대체적으로 간절한 것이 없었다. 언젠가 그는 종교를 갖고 있기도 했다. 그때에도 그는 간절한 것이 없어서 기도가 늘 부실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종교를 잊었다. 그는 이제 곧 다이빙에 대한 열망도 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산에 머물러 있었고, 오늘은 꼭 계곡을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비가 그치겠습니까? 그가 주인여자에게 물었고, 주인여자는 정오가 되면 비가 그칠 것이라 대답했다. 주인여자에게 비는 정오에 그치는 것이었다. 정오가 되면 점심인데 배가 고프지 않겠어요? 주인여자가 그에게 물었고, 그는 초콜릿과 하루 치 숙박비를 미리 계산했다. 그는 초콜릿과 물안경과 수영모를 챙겼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우산은 쓰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집에서부터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에겐 비가 그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그의 기대에는 확실한 이유가 없었다. 그는 어제보다 더, 계곡과 다이빙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기대와 확신으로 그는 간밤에 꾸었던 악몽을 잊었다.
그는 산을 오르는 내내 초콜릿을 먹었다. 입안이 달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두시간을 걸어도 절이 나오지 않기는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등산객은 보이질 않았고, 어제보다 더 짙은 안개에 휩싸일 뿐이었다. 초콜릿을 모두 먹고 나자 그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다. 그는 담배를 꺼내어 물고 앞을 내다보았다. 멀리 풀숲에 솟아 있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는 표지판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표지판에 화살표는 없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산불 조심’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어제 산불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불도 계곡도 그가 서 있는 산속에 있었지만, 그는 불도 계곡도 찾질 못했다. 그는 곧 계곡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세시간째 걷고 있었다. 그는 그가 세시간째 걷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안개에 익숙해졌다. 돌길과 젖은 풀숲에도 익숙해졌다. 어둠과 비, 어쩌다 들리는 짐승 소리에도 익숙해졌다. 갑자기 시작되는 가파른 언덕이 버겁기는 했다. 버거웠지만, 그는 계속 걸었다. 걷는 중에 그는 약간 슬퍼졌다. 그는 가끔씩 슬펐다. 특별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문득 좀 쉬고 싶었다. 그는 무릎까지 오는 풀숲 한가운데 멈춰 섰다. 목이 마른 것도 같았다.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혀를 내밀었다. 그의 혀 위에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비가 그친 것 같았다. 그는 비가 그쳤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대로 오래 혀를 내밀고 서 있었다. 혀가 마르도록 내밀고 서 있었다. 비는 확실히 그쳤다. 비가 그쳤기 때문에 그는 이제 정오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꺼놓았던 휴대폰을 켰다. 아무도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온몸이 끈끈하게 더웠다.
그는 등산로를 벗어나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절은 보이지 않았고 계곡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무릎까지 오는 무성한 풀숲에서 휴대폰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휴대폰의 GPS기능을 켜고 자신이 있는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휴대폰 액정 가득히 연두색이었다. 액정 속에 그는 어딘가를 향한 세모꼴의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분명히 산속에 있었다. 그는 분명히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디를 향해 서 있는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조차도 몰랐다. 그는 이제 숙소로 돌아가는 길도 몰랐다. 그는 너무 많이 걸었다. 그는 119에 전화를 걸어야 하는 것일까 고민되었다. 계곡과 숙소, 어느 곳에도 찾아갈 자신이 없었지만, 119를 부를 필요까지 있을까 싶어 망설여졌다. 그는 그의 연락처 목록을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연락처 목록에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그는 헤어진 여자의 전화번호에 눈이 갔다. 헤어진 여자가 지리를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아는 게 많은 여자이기는 했다. 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두번 울렸을 때 헤어진 여자는 전화를 받았다.
헤어진 여자는 그의 전화를 반가워했고, 자신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헤어진 여자는 일주일에 두번 요가를 하고, 일주일에 두번은 달리기, 일주일에 한번은 격한 근육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운동선수가 된 거니? 그가 물었다. 헤어진 여자는 마라톤에 중독됐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에게 마라톤을 권유하기도 했다. 아니야. 나는 체력이 좋지 않아. 그는 거절했다. 그녀는 체력이 좋지 않을수록 달리기가 이롭다고 말했다. 그는 전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나는 지금 산속에 있어. 그가 말했다. 정말? 너무 부럽다. 헤어진 여자가 말했다.
나는 지금 계곡을 찾고 있어. 그가 말했다. 정말? 너무 좋겠다. 헤어진 여자가 말했다.
다이빙을 할 생각이야. 그가 말했다. 정말? 너무 멋있다. 헤어진 여자가 말했다. 헤어진 여자는 그에게 처음으로 멋있다는 말을 했다. 연애를 할 때도 그에게 멋있다고 한 적은 없었다. 멋진 일이 아니야. 길을 잃은 것 같아. 그가 말했고, 정말? 이제 어떡할 거야? 헤어진 여자가 그에게 물었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119를 불러야 할까? 그가 되물었다. 그녀는 그러라 했다. 119말고 방법은 없을까? 그가 헤어진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없어. 헤어진 여자는 짧게 대답했다. 그는 섭섭함을 느꼈다. 그러나 섭섭함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우린 왜 헤어진 거야? 그는 문득 궁금했다. 미래를 위해서. 헤어진 여자가 대답했다. 그뒤로도 얼마간 그들의 통화가 이어졌고, 배터리는 5퍼센트로 떨어졌다. 배터리가 없다. 한번 보자. 그래, 한번 보자. 그들은 각자 전화를 끊었다.
개 같은 년. 그는 헤어진 여자가 딱히 밉지 않았지만 욕지기가 일었다. 그리고 119를 부르기 싫어졌다. 그는 일단 시야가 트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도 쉽지 않았다. 어쩌자고 이렇게 풀숲으로 들어온 걸까. 그는 생각해보았지만, 그저 그렇게 된 것이었다. 비가 그치자 더위가 시작되었다. 오후 네시가 되어갔고, 천천히 해가 나타났다. 그는 윗옷을 벗었다. 바지도 벗었다. 팬티를 벗고 오줌을 쌌다. 아무렇게나 갈겼다. 그의 손목에 오줌이 튀었다. 뜨거웠다. 그는 오줌줄기가 가장 멀리 뻗는 곳, 그 방향으로 걸을 작정이었다. 무모하고 아무런 근거가 없는 행동이었다.
미래. 미래. 미래. 미래. 그는 미래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되새기면서 걸었다. 그의 발걸음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종아리에 가늘고 거친 풀이 스쳤다. 그는 쓰라렸지만 아무렇지 않게 걸으려고 노력했다.
미래. 미래. 미래. 그는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노래가 하고 싶어졌다. 딱히 부를 노래가 떠오르지 않아서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고 나니 노래를 부른 것처럼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해가 떴기 때문인지 계곡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계곡은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서 걸었다. 그의 미래에는 눅눅한 이불과 밀린 세금이 있었다. 그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던 중 새로 도배를 해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다. 그는 깨끗한 흰색으로 도배를 하고 싶었다. 도배를 하고 나면 새로운 여자가 생길 것도 같았다. 아주 좋은 예감이었다. 그래서 그의 기분은 고조되었다. 그의 기분은 십분쯤 더 걸었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십분쯤 걸었을 때 그의 눈앞에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은 큰 나무와 큰 바위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무가 높게 자라 있어서 해가 들지 않았다. 나무와 바위 밑에 서늘하게 물이 흘렀다. 그는 계곡물에 얼굴을 씻었다. 머리통을 물속에 담그기도 했다. 물을 마시기도 했다. 그는 119를 잊었다.
그는 3미터 이상의 수심을 찾기 위해 바위를 기어올랐다. 징검징검 뛰어넘었다. 뛰어오르고 기어오르기를 계속했다. 이끼가 짙은 바위도 있었다. 그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 미끄러졌다. 손바닥과 무릎이 까졌다. 피가 맺히긴 했지만 뚝뚝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쓰라렸다. 바위에 닿도록 나뭇가지가 길게 늘어져 있기도 했고, 높은 나뭇가지에까지 바위가 불쑥 솟아 있기도 했다. 그는 숨이 찼다.
그는 담배를 물고 바위 위에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대부분 나무에 가려지긴 했지만 햇빛도 느껴졌다. 그는 한숨 자고 싶었다. 그는 다이빙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다이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찾아낸 수심은 족히 3미터가 넘어 보였다. 수심을 알 수 없도록 물 한가운데가 검은색이었다. 그는 그가 검색하다 보았던 익사, 중태 같은 말들이 떠올랐다. 그는 익사, 중태라는 단어를 떨쳐내기 어려웠고 어디엔가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수심이 얼마나 되는 걸까. 그는 알지 못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알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서쪽의 산 중턱에서 산불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제와 다른 불이었다. 산불은 그가 이틀간 머물렀던 숙소를 향해 번지고 있었다. 이제 곧 허름한 식당 같은 숙소가 불에 탈 것이었다. 백발의 늙은 주인여자는 69세였으며, 내일을 위해 닭을 삶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과 별개로 그는 다이빙을 할 것이었다. 그의 휴대폰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물 묻은 이끼들은 짙게 번쩍였다. 그는 바위의 가장 높고 가파른 곳에 올라서서 어깨를 돌렸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숨을 멈췄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