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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신예작가 5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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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崔旻宇

1975년생. 2012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daftsounds@gmail.com

 

 

 

코끼리가 걷는 밤

 

 

나는 민영의 결혼식 전날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결혼식 다음날까지 양동이와 변기를 닮은 거라면 뭐든 붙들고 토했기 때문에 준호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적어도 1월의 어느 저녁 홍대 부근 일본식 주점에서 인사를 나눌 때는 그랬다. 경기가 나쁜 탓에 신년 기분은 약에 쓰려 해도 없었고, 거리에서는 요란한 음악과 번쩍이는 네온사인이 호객에 안간힘을 썼다. 그날 준호는 멋스러운 인디 핑크색 코듀로이 셔츠에 폭신한 느낌을 주는 재질로 된 연두색 격자무늬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짧게 친 머리는 바짝 올렸고 갈색 뿔테안경 뒤에서 작은 눈을 깜박였다.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내가 생각한 답에 다큐멘터리 감독은 없었다. 사생활이 문란한 게이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면 모를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진짜로 그때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독립잡지 편집자, 문화평론가(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생태주의자(이 사람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고양이를 데리고 제주 이민을 고려중인 씨나리오 작가 등이었다. 잡지 편집자를 제외하면 모두 초면이었다.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고, 준호는 팔짱을 낀 채 대화 틈틈이 ‘흠, 흠’ 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어쩌면 추임새는 생태주의자가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남자처럼 목소리가 굵었는데 대체의학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직장에 채식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으며 친구 아버지가 버섯으로 암을 고쳤다고 확신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술이 거나해진 문화평론가가 날 붙들고 단편소설 원고료가 얼마인지 캐물었다. 말을 못할 건 없었지만 질문하는 방식이 무례했고, 그래서인지 대답하고 나자 이유도 없이 중요한 걸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그걸 계기로 사람들이 앞다퉈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경제상황을 테이블 위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준호가 신도시 아파트를 올려놓았을 때는 테이블이 한쪽으로 기우뚱하는 게 실제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 자리에서 은행대출을 받을 깜냥이 되는 유일한 사람인 셈이었다. 그의 첫 직장은 케이블 방송국이었고, 현재는 학교 선배가 경영하는 외주제작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지상파 방송국에 납품하고 있었다. 아이 다섯을 혼자 키우는 호떡장수, 운영비가 없어 내일 모레 하는 보육원, 리어카 한대가 생계수단의 전부인 할머니 등이 그가 촬영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문화평론가가 그런 프로그램들의 진짜 역할은 사실 시청자들에게 상대적인 안도감을 주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타인의 불행을 전시하면서 말이에요.” 대체의학이 사기라는 문화평론가의 주장에 속이 상해 있던 생태주의자가 준호를 보았다. 준호는 그녀처럼 그럴 수도 있지요,라며 착하게 항복하지 않았다. 한쪽 눈썹을 냉소적으로 치켜올리며 남의 직업을 너무 쉽게 말한다고 정색했다. “방송 끝에 자막으로 후원계좌가 나와요. 화면 왼쪽 위에 전화번호 뜨죠? 프로그램 가지고 뭐라 하기 전에 그거 한번이라도 눌러본 적 있어요? 지금 여기서 자기 불행을 전시하는 거 말고?” 준호는 ‘전시’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양손 약지를 작은따옴표처럼 까딱였다. 나는 한편으로는 고소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파트 소유자에게 가차 없이 면박을 당하는 문화평론가가 가엾기도 했다. 조금 전 그가 자기 두달 수입을 합쳐도 단편 고료보다 적을지 모른다고 토로한 참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토로한 게 우선이었다.

그 모임이 있고 나서 두달 뒤 나는 중남미문학 세미나를 참관하러 경기도의 한 대학에 갔다. 중남미문학에 대해서는 사자가 여물 앞에서 보이는 수준의 관심밖에 없었지만 거기서 발표를 하기로 한 대학 선배가 이번에 못 만나면 다음에는 자길 보러 스페인으로 와야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놨던 것이다. 나는 타면 탈수록 차체가 바람에 닳아 얇아지는 베이지색 경차를 몰고 가서 모데르니스모1)에 대한 프랑스 교수의 난해한 주장을 경청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박사과정 학생이 통역과 청중은 아랑곳없이 프랑스 교수에게 에스빠냐어로 질문을 하고 있는데 감색 정장을 입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올린 여자가 세미나실 앞문으로 조용히 들어와 교수 옆자리에 생수병을 올려놓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영은 나와 사귀던 시절 자주 차던 바다색 팔찌를 걸고 있었다. 전보다 좀 여위어 보였지만 그 때문에 늘 감탄하던 우아한 목선이 더 돋보였다. 물소떼가 평원을 질주하듯 옛 기억들이 심장 안쪽에서 쿵쾅거렸다.

나는 아옌데 정권 시절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뒤로하고 세미나실을 나왔다. 민영은 복도에서 팸플릿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제 헤어진 친구를 만나듯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검고 침착한 눈이 나를 차분히 응시했다. 저 눈 뒤에 있는 뜨거움과 자만심을 나만 안다고 생각했던 게 언제 적 일이던가? 그녀는 내가 세미나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면서 소설가는 소재 찾으러 이런 데도 오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늘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잘 지내냐고 묻자 그녀가 말했다.

“나 이혼할지도 몰라.”

세미나가 끝난 뒤 나는 선배에게 마드리드에서 꼭 만나자고 약속한 다음 민영이 행사 뒷정리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결혼 뒤부터 교직원으로 근무했다며 가녀린 몸으로 바지런히 책상과 의자를 옮겼다. “내 전공하고 대충 어울리지 않아? 하긴 교직원에 전공이 무슨 상관이야. 연극할 시간이 없게 된 건 좀 아쉽긴 해도.” 민영은 내가 기다린 것에 대해선 별말이 없었지만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묻자 저기 남는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고 정리가 다 끝난 다음 어디 가서 차나 마시자는 제안도 점잖게 물리쳤다. 그녀가 옳았다. 솔직히 그때 나는 여러가지 의미로 좀 꼴사납게 흥분한 상태였으니까. 우리는 잠시 강당 로비에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다 형식적인 안부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녀는 이혼이라는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대화에서 내 머리에 남은 건 그 단어뿐이었다.

그뒤로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민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단편소설 마감이 엿새 남았던지라 이야기의 시작을 결정하는 첫 문장을 막 멋지게 뽑아낸 참이었다. 우리는 불편했던 추억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옛날이야기를 했다. 내가 쓴 소설을 한편 읽어봤다길래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음, 그냥 순문학 같았어”라고 대답했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내가 그녀의 남편을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는 이런 게 진짜 우연인가보다 하며 듣기 좋은 목소리로 웃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게 하고팠던 게 남편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연락하는 게 너 이용하는 거 맞지? 내가 나쁜 거겠지? 그런데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정말 너밖에 없네. 바쁜 거 아니야?”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첫 문장만 쓰면 뭐, 다 쓴 거나 다름없지.

민영은 준호가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촬영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자기가 찍는 사람들의 삶에 공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한테 말려들어가서는 안된대. 결국 촬영이 끝나고 방송이 나가고 나면 남남인 거고, 그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이 일도 못한다는 거야. 의사와 환자의 관계랑 비슷하다나. 그러니 의사로서의 사명감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도 그랬고. 이건 딴 얘기긴 한데, 나한테 확실히 말은 안했지만 그 사람도 소설을 쓰고 싶었나봐. 왜 글 좀 읽을 줄 아는 남자들은 다 소설을 기웃거리는 거야? 내가 만나는 사람만 그런 건가?”

작년 겨울 준호는 여관을 전전하는 아버지와 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아버지는 금형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문을 닫았고,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는 여의치 않았다. 소녀는 아침에 여관방에서 컵라면을 먹고 등교하고 친구들의 눈을 피해 하교한 다음 여관방에서 구직에 실패한 아빠와 함께 컵라면을 먹었다. 여관 주인은 사정은 딱하지만 다음주까지는 방세를 받아야겠다고 아버지를 재촉했다. 아버지는 이번주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자리를 구하겠다며 굽실거렸다.

나는 나중에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그 프로그램을 봤다. 아버지는 볼링공 위에 찐빵을 얹은 것 같은 체격에 큰 귀와 선하게 처진 눈이 기억에 남는 마흔 중반의 남자였다. 관상만으로 인생이 결정된다면 어느 대기업 사무실의 사훈 옆에 회장님 사진으로 걸려 있을지도 모를 얼굴이었다. 이제 막 중2가 된 소녀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손발이 크고 통통했다. 인스턴트만 먹어서 그런지 혈색이 나빴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어다녔다. 가끔 각도가 제대로 잡힐 때는 이중으로 겹친 턱 속에 숨겨진 예쁘장한 얼굴이 언뜻 드러났다. 방송 말미에 아버지는 고깃집에서 초벌구이를 하는 일을 얻게 되고, 처음 근무를 끝낸 날 주인이 그에게 돼지갈비를 싸준다. 부녀는 여관방에서 돼지갈비를 컵라면에 곁들여 먹는다. 따뜻한 목소리의 성우가 감상적인 뉴에이지 피아노곡을 배경으로 세상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내레이션을 읊는다. 2주분으로 편집된 그 프로그램 어디에도 어색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준호는 촬영 첫날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아버지와 딸은 따로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다가 같이 있으면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여관방은 좁았고 촬영 스태프까지 들어오면 더 좁아졌는데도 엄청나게 조심조심 움직인 탓에 몸을 부딪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팔이라도 스치면 화들짝 놀랐다. 둘 다 그랬는데 특히 딸이 민감했다.

촬영 사흘째에 준호는 소녀의 아버지를 따로 불러내 무슨 일인지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촬영을 더 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하지만 경고라니, 무엇을?). 아버지는 애가 말을 안 들어 손찌검을 했다면서 딸이 그것 때문에 화가 나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가 잘 달랠 테니 걱정 말라며 준호가 두르고 있는 연두색 목도리가 따뜻해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딸애도 연두색이 잘 어울릴 텐데 말이에요.” 그러면서 선한 눈을 껌벅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둘은 여관방 침대에 나란히 앉아 일일드라마를 보고 돈 때문에 말다툼도 했으며, 그러다가 화해를 한 뒤 서로 컵라면을 끓여오겠다며 다정하게 실랑이를 벌였다.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자 소녀는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와 튀김을 사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인물의 변화가 있는 편이 시청자에게 훨씬 큰 재미를 준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아버지도 촬영이 끝나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벌였고, 결국 고깃집에 일자리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재활의 의지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시청자가 더 크게 공감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신기한 것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하는 게 빤한 그런 행동들이 뷰파인더를 통해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스태프로 처음 합류한 새끼작가는 이 부녀가 무척 협조적인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준호의 혀끝에서 맴돌던 단어가 바로 그거였다. 그들은 무척 협조적인 출연자였다.

촬영 마지막날, 준호가 여관에 찾아가자 아버지가 당황하며 그를 맞았다.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준호는 몇 장면을 추가로 찍기로 했는데 잊었느냐고 말했다. 그는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침대 옆에 빈 소주병 세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오줌이 마려웠던 준호는 아무튼 실례 좀 하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갔고, 일을 보고 나서 변기 레버를 내리다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는 콘돔 두개를 발견했다. 순간 그는 지난 열흘간 품었던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한 것 같았다. 지린내가 나는 화장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마치 진실의 빛이 망치로 벽을 부수고 들어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것들을 단숨에 비춰주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그 빛 아래 드러난 건 무엇인가? 의문이라면 무슨 의문이고 답이라면 무슨 답인가? 의문에는 근거가 없었고 답에는 증거가 없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웃으며 준호를 대했지만 그의 검고 침착한 눈동자 뒤에서 더는 협조적이지 않은 감정이 핀볼 게임판 위의 공처럼 사방팔방으로 빠르게 튕기며 번쩍였다. 준호가 소녀와 같이 TV를 보는 장면을 한번만 더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딸이 오늘 아침에 고모집에 갔다면서 당분간은 거기 있을 거라고 했다. “왜 진작 고모네 집에 보내지 않으셨어요?” “방학이라서 며칠 가 있는 겁니다. 오래 있으면 뭐라 그래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준호는 좋은 그림이 필요해서 그러니 잠깐만이라도 딸을 불러달라고 설득했지만 아버지는 찍은 것 중에 고르면 되지 않느냐고 버텼다.

준호는 여관을 나오자마자 회사 대표인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증거는 있어?” “아뇨.” “다른 아이템은 있고?” “검토 중인 건 있어요.” “당장은 없는 거네. 그리고 다 찍었잖아.” “찝찝해서요.” “애가 고모네 집에 가니까 아빠가 아가씨를 불렀을 수도 있지.” “여관 주인 말로는 여자는 안 왔대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럴 돈이나 있을까도 모르겠고.” “그럼 니가 방송국에 말해. 증거는 없는데 찝찝해서 안되겠으니까 한달만 기다려달라고. 회사 문 닫는 건 각오하겠다고.”

결국 방송은 예정대로 나갔다. 준호는 자기가 두시간 분량으로 깔끔하게 편집한 결과물이 전국에 퍼지는 광경을 우울하게 지켜봤다. 그걸 기획한 사람도, 찍은 사람도, 편집한 사람도 준호였다. 하지만 그는 방송을 보는 내내 맹인견 체험에 참가한 사람이 느끼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그가 목적지에 가기 위해 한 일이라곤 눈을 감고 끈을 잡은 것 말곤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개가 어쩌면 맹인견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 일로 그 사람,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렸어.” 민영이 말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몇주 뒤 준호가 여관을 다시 찾았을 때 부녀는 없었다. 여관 주인은 배은망덕한 인간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렇게 잘해줬더니 방을 완전히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나갔다며, 대판 싸운 게 분명한데 방 안 꼴을 봤을 때 차라리 송장을 치우는 게 더 나았을 거라며 투덜거리다가 그래도 송장보다는 낫겠지,라고 생각을 바꿨다. 고깃집에서도 소식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안 나오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고깃집 주인이 덤덤하게 말했다. 같이 떡볶이를 먹었던 친구들은 소녀가 어디로 전학을 갔는지 몰랐다. 고향이 전주라던가, 아니다 그거 비빔밥 얘기였던가,라고 소녀의 친구 중 하나가 말했다.

준호는 회사를 쉬고 집에 틀어박혀서는 예전에 만들다 만 독일군 전함 모형을 조립하며 시간을 보냈다. 집 안에 본드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는 남편을 다독이기도 하고 야단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이를 가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까지 꺼냈지만(이 대목에서 내 가슴이 또 철렁 주저앉았다) 모두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준호는 갑자기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더니 그 사람들을 찾아봐야겠다며 갈색 백팩을 메고 집을 나갔다. 첫날 밤에는 민영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종일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 저녁에야 통화가 됐다. 그녀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그는 지금 전주에 있다면서 제일 큰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고 있다고, 양은 보통인데 쓸데없이 비싸기만 하다고 했다. 그는 닷새 뒤 거지꼴로 돌아와서는 그 부녀가 분명 서울에 있을 거라며 인구 천만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기를 조롱하고 있다고 화를 냈다.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그래서 자기를 갖고 논 건지 확인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날 밤 그들은 크게 싸웠는데, 감정이 격해진 민영이 저도 모르게 남편의 뺨을 올려붙였고, 준호는 그들이 신혼집을 꾸밀 때 처음 같이 샀던 수면용 스탠드를 벽에 던져 박살을 냈다. 그녀를 더 비참하게 만든 건 그가 이 난장판을 같이 치울 생각도 하지 않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자기가 알고 사랑하고 결혼한 그 남자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각자 식사를 해결하고 따로 잠을 잤다. 화장실이 두개인 게 천만다행이었다. 씽크대 옆에 각종 레토르트 식품 포장지가 설치미술처럼 쌓여가는데 누구도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기까지 얘기하고 민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이야기였는데 정확히 어디가 이상한지 짚어내기가 어려웠다.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흘러가는 구름처럼 형태가 분명치 않았다. 프로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이보다 더 험한 일도 겪지 않았을까? 이 일이 이혼 얘기가 나올 정도로 큰 문제로 번진 이유는 뭘까? 민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감정이, 라디오 채널이 잡히지 않을 때처럼 답답한 긴장감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정보를 더 주지 않는 건 그녀가 자주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한 걸음만 더 움직인다면, 사정을 좀더 자세히 얘기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결국 자발적으로 그녀를 돕는 셈이 될 것이다. 그녀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도움을 주는 꼴이 될 것이다. 일은 늘 그렇게 시작됐고, 그녀의 변덕과 이기심과 비밀주의에 시달리는 건 온전히 내 몫이자 책임이 되곤 했다. 더는 그래서는 안됐다. 하지만 나는 그 진창 속으로 기꺼이 끌려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애를 써야 했다. 과거와 현재로 만든 바이스에 머리가 꽉 낀 기분이었다. 그 순간 내게 필요했던 건 아주 약간의 정직이었다. 그녀가 조금만 먼저 솔직하게 군다면…… 그때 갑자기 민영이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고는 개회식에서 테이프를 커팅 하는 귀빈처럼 전화를 뚝 끊었다.

나는 나와 민영을 모두 알고 지내는 친구인 세라에게 시간이 나면 그녀를 한번 만나봐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선까지 얘기를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과 사이가 좋은 것 같지 않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걔가 그걸 왜 너한테 얘기해? 「사랑과 전쟁」 찍어?”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한번 만나는 보겠다고 했다. 원고를 보낸 잡지사에서 토막살인 현장처럼 새빨갛게 물든 교정지를 내게 돌려보냈을 즈음 세라가 밥이나 먹자고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이태원에서 만났다. 그녀는 브리또에 고수 빼달라고 하는 걸 깜박했다고 투덜거리면서, 민영이 평소처럼 잘 웃고 역시 평소처럼 참 싸가지 없게 말하더라며 혹시 최근에 나를 만난 적이 있는지 슬쩍 떠보았다고 했다. “헤어진 뒤로는 얼굴도 본 적 없다더라. 하도 진정성있게 말해서 난 네가 꿈을 꿨나 싶던데. 기집애가 원래 포커페이스긴 하지만.”

그뒤 민영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이래저래 바쁘게 살았다. 공모전에 제출할 장편소설을 삼분의 이까지 쓰다가 마감기한을 넘겼는데, 나중에 당선작을 보고서는 내가 쓰던 것보다 별로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내년에 응모하면 뽑힐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쓰다 만 원고를 뒤적이면서 블랙 유머를 가미해야겠다는 메모를 원고 여백에 파란 볼펜으로 적어넣었다. 그동안 발표한 단편들을 모아 공개하지 않은 작품들과 함께 단편집을 내고 싶다는 메일을 출판사 대여섯군데에 보냈다. 한곳에서 답장이 왔다. 말씀은 알겠지만 발표작보다 미발표작이 많은 단편집을 낸다는 건 아무리 그래도 좀 보기 그렇다는 내용이었다. ‘섹스, 맨, 더 시티’라는, 의도도 목적도 알기 쉬운 제목을 단 기획소설집에 발기부전으로 고민하는 이십대 청년을 소재로 한 단편을 하나 실었다. 연애를 할 기회가 두번 있었는데 한번은 시작하자마자 차였고 다른 한번은 감질나게 탐색전만 벌이다 끝났다.

가끔 먼발치에서 그들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혼잡한 거리를 걸을 때, 퇴근길 버스를 탈 때, 대형마트에서 특가상품을 뒤적이고 시식코너에서 녹말 이쑤시개로 소시지 조각을 찍어 먹을 때, 푸드코트 주방에서 종업원들이 하얀 위생모를 쓰고 바쁘게 움직일 때, 노숙자들이 슬슬 자리를 깔기 시작하는 지하철역에서 막차를 기다릴 때, 택배기사가 퉁명스럽게 물건을 문 앞에 놓고 갈 때, 우리가 필요할 때는 말을 걸고 관심을 기울이고 때로는 동정도 하지만 결코 얼굴을 기억하지는 않는 사람들과 불현듯 눈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 코끼리처럼 큰 귀에 우람한 덩치의 중년 남자와 커서 미인이 될지도 모를 퉁퉁한 여중생이 불길한 비밀을 감춘 채 인구 천만의 도시 속에서 약간의 후원금을 벗 삼아 발걸음을 옮기며 골목과 거리를 떠도는 모습을 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소녀 아버지의 생각은 옳았다. 소녀에게는 연두색 목도리가 잘 어울렸다.

세라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우리는 을지로에서 만났고, 그녀는 육수에서 걸레 맛이 나는 것 같다며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평양냉면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세라는 수육을 추가로 주문한 뒤 민영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본인 말로는 속전속결로 감행했다고 그러네. 애도 없겠다, 뭐 적당할 때 한 거지. 지나고 하는 말인데 난 그 둘이 별로 안 어울려 보였어. 너랑 어울려 보였단 얘기는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고. 그냥 걔는…… 글쎄, 어떤 사람이랑 어울릴까? 예전에는 알 것도 같았는데 지금은 모르겠네. 난 걔는 알수록 모르겠더라.”

나도 동의했다.

세라는 민영이 교직원을 그만두고 대안학교나 장애학교와 연계하여 연극이나 음악 공연을 기획하는 사회적 기업에 입사했다는 얘기도 해줬다. “요즘 좀 사는 집에선 대안학교에 애들을 많이 보내거든. 왜 있잖아, 유학 보낼 정도는 아닌데 공교육에 자기 애 맡기는 건 질색인 부모들. 그런 부모들과 사바사바하는 거지.” 헤어지기 전에 세라는 걔 전화번호 바꿨는데 가르쳐줄까,라고 물었다. 나는 번호를 받았지만 먼저 전화하지는 않았다. 옛 애인이 이혼하자마자 짱뚱어처럼 폴짝폴짝 뛰어가는 게 꼴사나워 보일 거라는 생각에 부담스러워서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세라에게 나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 게 마음에 걸려서만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날 편하게 대할지도 모른다는 게 제일 두려웠다.

가을 태풍이 왔다 가고 나서도 사람들이 여전히 반바지에 쌘들 차림으로 한강에 드러누워 열대야와 싸우던 어느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상대는 저를 잘 기억 못하시겠지만,이라고 운을 띄웠고, 몇번 대화가 오간 끝에 그가 지난겨울 일본식 주점에서 만났던 씨나리오 작가라는 게 생각났다. 그는 여전히 제주 이민의 꿈을 꾸고 있었지만 막상 알아보니 땅값도 만만찮고 해볼까 싶던 게스트하우스는 차고 넘친다며 좀 막막하긴 하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현재 작업 중인 씨나리오를 마치기 전까진 집 앞 편의점보다 더 멀리는 나갈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좀 도와주실 수 있나 해서요. 『섹스, 맨, 더 시티』에 실린 작품을 읽어봤는데 딱 이분이다 싶었거든요. 사례가 넉넉지는 않지만.”

그가 부탁한 것은 간단히 말해 씨나리오 각색작업이었다. 현재 자기와 다른 작가가 공동으로 작업해서 초고를 뽑은 씨나리오가 있는데 투자를 받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좀 미진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그래서, 그의 표현을 빌자면, 순수한 외부인인 동시에 프로페셔널한 작가의 시선에서 작품의 설정과 캐릭터, 서사구조를 검토하고 손봐줄 사람이 필요하게 됐다는 사연이었다. 나는 씨나리오가 발기부전으로 고민하는 이십대 청년과 연관이 있는 내용이냐고 물었고, 작가는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를 기억해낸 진짜 이유는 넉넉지 않은 사례와 더 관련이 있는 것이겠지만 나로선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음날 영화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나는 프로페셔널한 외부인답게 약속시간에 딱 맞춰 영화사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작사 사장과 신인감독, 씨나리오 작가 옆에 얼룩말무늬 뿔테안경을 쓴 낯익은 얼굴이 앉아 있다가 알은척을 했다. 준호는 카키색 브이넥 셔츠에 코발트블루 계열의 남방을 걸치고 있었고 목에는 사슬 모양의 은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이번에는 초면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끈 떨어진 기둥서방이나 포주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는 오랜만이라며 악수를 했고, 더할 말이 없어 머뭇거리다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제작사 사장은 여전히 내가 미심쩍은 눈치였다. 신인감독은 공책과 볼펜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언제라도 대화에 끼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씨나리오 작가가 내게 출력된 대본을 건네줬다. 표지에 ‘코끼리가 걷는 밤(가제)’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이게 영화계 용어로 ‘책’이라 부르는 그건가 생각하며 이리저리 넘겨보는데 씨나리오 작가가 씨놉을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간단히 말해 부녀사기단 얘기예요. 이 친구가 원안을 냈고요.” 그가 준호를 가리켰다. 나는 가능한 한 순진한 표정으로 더 설명해달라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씨나리오 작가가 대부분 말을 했고, 준호는 옆에서 가끔 작가를 거들었다.

가는 곳마다 사기를 쳐서 소소한 후원금을 받아 챙기는 부녀에 관한 얘기였다. 제목에 코끼리가 들어간 것은 주인공의 외모가 코끼리를 닮아서였다. “눈동자가 검고 눈매가 침착해 보이는 배우가 일순위예요. 그게 맘대로 되지야 않겠지만. 사실 아버지보다는 딸 역을 맡을 배우가 중요하죠.” 아무튼 딸이 어릴 때는 사람들의 동정을 얻기 쉬워서 일이 편했는데 딸이 점점 커가면서 사기를 치기도 힘들어지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할 생각으로 가난한 가족들에게 경품으로 아파트를 주는 오디션 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한다는 게 기본 설정이었다. 여기에 오래전에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가 TV에서 부녀를 본 뒤 그들을 찾아오고, 예전에 그들에게 속아 원한에 불타는 VJ가 결정적인 순간에 복수를 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다른 한편 프로그램에 참가한 딸은 강력한 우승후보인 다른 집 아들을 볼 때마다 뺨이 발그레해지기 시작하는데, 아버지 코끼리는 사춘기 딸이 일을 망칠까봐 노심초사한다.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씨나리오 작가가 말하는 내용을 성심성의껏 받아적는 척했다.

영화사 사장이 말했다. “제가 이 바닥에서 솔직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할게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절대로 코미디가 돼야 해요. 그래야 투자를 받을 수 있단 말이지. 웃음과 감동 말입니다. 그런데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전체적으로 톤이 다운돼 있거든요. 통통 튀는 맛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캐릭터 문제인지 우리끼리 얘기를 해보는데 답이 안 나오더란 말입니다. 제목부터 봐요. 코끼리가 걷는 밤. 독립영화나 단편영화 같잖아요. 너무 문학적이야. 오해는 마시고요. 문학 갖고 뭐라 하는 건 아니니까. 문학이 무슨 죕니까? 그냥 저는 선생님께서 이 씨나리오를 자유롭게, 하지만 좀더 화창하게 수술해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은 겁니다.”

“제목이 좀 그렇죠.” 신인감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유도신문이 잘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질문했다. 이 씨나리오의 소재는 어떻게 얻은 것인지? 씨나리오 작가가 준호를 보았다. 준호는 자기가 예전에 가난한 사람들을 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PD를 했는데 거기에 출연했던 한 가족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그램 제목을 가르쳐주면서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를 할 수 있을 텐데 혹시 막혀 있으면 파일을 받을 수 있는 다운로드 링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람들이 부녀사기단이었던 건가? 준호는 아니, 그건 아닙니다. 그건 절대 아니에요,라고 하고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씰룩거렸다. 씨나리오 작가가 준호의 말을 받았다.

“뭐 어때요, 이제 다 옛날 일인데.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그 출연 가족에서 출발한 게 맞아요. 맞는데, 그 사람들은 그냥 평범하게 불행한 사람들이었고…… 말해놓고 보니 이상하네. 평범하게 불행하다니. 아무튼 씨놉을 짜는 과정에서는 준호씨 아내 얘기를 많이 참고했어요. 지금은 이혼했으니 말해도 되는 거죠? 그쪽 집안 사정이 알고 보니 아주 많이 복잡하더래요. 준호씨도 충격 좀 받고 그랬어요. 막 자세히 얘기할 건 못되는데. 물론 명예훼손이나 이런 것도 걱정을 하다보니 디테일을 바꾸긴 했어도 기본 베이스는 그래요.”

“명예훼손은 조심해야죠.” 신인감독이 신중하게 말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영화사 사장이 사례금 얘기를 꺼냈다. 나는 그가 제시한 액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문득 그들과 내가 만났던 겨울밤에 소설가의 원고료를 말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사례금을 좀더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여기서 그 오래전 기억을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챙기는 사람은 소설가 말고는 없을 터였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잘 부탁드린다며 손을 내밀었다. 돈 샐 틈이 없는 단단한 손아귀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불행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쓰면 안되는 거네요.”

“그겁니다. 바로 그거예요. 불행을 전시하면 안되는 거예요, 이 영화에서는.” 씨나리오 작가가 말했다. 신인감독은 그 말을 듣자 별안간 영감이 떠올랐는지 노트에 뭔가 맹렬히 적기 시작했다. 회의실을 나오는데 준호와 눈이 잠깐 마주쳤다. 그는 회의 내내 기가 죽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꼭 가져왔어야 했던 것을 집에 놓고 온 사람처럼. 그가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목례를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씨나리오 작법 책을 한권 샀다. 그걸 후루룩 읽은 다음 약속한 기간인 한달 동안 생각나는 방법을 모조리 동원해서 「코끼리가 걷는 밤(가제)」을 뜯어고쳤다. 사장의 말이 옳았다. 코미디인데도 씨나리오가 무겁고 눅눅했다. 부녀의 불행을 다루는 부분은 어둡고 사실적이었으며 결말은 애매했다. 나는 주인공과 조연의 등장 시점을 조정해보고, 대사의 순서와 리듬을 바꿔보고, 맨 마지막 장면을 맨 앞이나 한가운데 배치해보고, 아예 인물을 없애기도 해보고, 없던 인물을 만들어 넣어도 봤다. 나중에 써먹으려고 컴퓨터 폴더에 쟁여뒀던 웃긴 표현들도 꺼냈다.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다. 쌔틴 원피스에 묻은 얼룩을 지우겠다고 물을 뿌릴 때처럼 씨나리오는 손을 대면 댈수록 점점 더 지저분해져갔다. 어느날 새벽, 나는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 원인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은연중에 씨나리오 안에서, 마치 몰래 서랍을 뒤지는 탐정이라도 되는 양 민영의 모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알던 그녀의 모습뿐 아니라 내가 몰랐던 모습들. 그녀의 본모습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힌트들. 준호와 민영을 갈라놓은 계기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를 단서들. 날 버린 이유들. 내게 숨긴 사연들. 우리가 사랑했을 때는 알 필요도 없었고 알아봤자 아무 쓸모도 없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이 씨나리오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과 거리를 둬야 했다. 평범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듯 필요한 것 이상은 알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씨나리오 작가가 전화를 걸어 작업이 잘돼가는지 물었다. 나는 일에 몰입하다보니 꿈에 그 부녀가 나올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건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코끼리 아버지 옆에 민영이 벌거벗은 채 온몸에 연두색 젤을 바르고 있는 꿈을 꿨다. 꿈에서 그녀는 여신처럼 아름다웠고,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손에 쥐고 있던 청약통장을 건네주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슬퍼서 그런 건지 고마워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씨나리오 작가가 혹시 꿈속에서 배역에 적합한 배우 얼굴을 못 봤냐고 농을 쳤다. 나는 한창 인기몰이 중인 보이그룹과 걸그룹 멤버 이름을 댔다.

“야, 그거 진짜 제대로 꿈이네요.” 작가가 말했다.

중간점검 때 사장은 문신한 눈썹을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돈이 자기 손아귀에서 쓸데없이 빠져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런 얼굴을 했으리라. 하지만 대놓고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남은 기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종 각색원고를 메일로 보내면서, 나는 어쩌면 이 씨나리오의 진짜 문제는 준호가 전 부인을 여전히 못 잊고 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그것만으로는 좀 모자란 것 같아서 제목 후보도 생각나는 대로 몇개 적었다. 씨나리오 작가와 준호와 영화사에서는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 대신 며칠 뒤 내 계좌로 깔끔하게 수고비가 입금됐다. 투자를 받는다고 해도 영화 제작이란 오래 걸리게 마련이다. 내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그때 가서 확인해도 충분할 것이었다.

 

*

 

가을이 깊어갈 무렵 세라가 전화를 했다.

“나보고 대안학교 아이들 연극하는 거 보러 오지 않겠냐고 하던데. 너 달고 가도 되냐고 했더니 상관없대. 갈래?”

나는 좋다고 했다.

우리는 대학로에서 만났다. 세라는 자기가 페이스북에서 본 화덕피자집이 있다며 날 끌고 갔지만 대기줄이 너무 길었다. 그녀는 비빔국수로 실망을 달랬다. 나는 만두 한 접시를 더 시켜주면서 연극 제목을 물었다. “「에쿠우스」래. 정말 대안학교스러운 레퍼토리 같지 않냐? 말들 눈을 막 찌르는 소년 얘기잖아.”

식당에서 나오자 차고 단단한 바람이 옷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한 골목에 있는 소극장으로 가서 표를 끊고 지하로 내려갔다. 민영은 하얀 면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연극 팸플릿을 쌓아놓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단발로 예쁘게 다듬어져 있었다. 통통해진 뺨에 온화한 생기가 돌았다. 그녀는 우리를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호들갑스럽게 반겼다. 어떤 장신구도 없는 부드러운 손가락이 내 손을 감쌌지만 나는 온기 말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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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0년대 중남미에서 일어난 문학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