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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신예작가 5인선

 

161-소설-최정화_fmt

최정화 崔正和

1979년 인천 출생.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daysmare@hanmail.net

 

 

 

타투

 

 

그는 회전유리문을 통과한 뒤 병원 로비를 지나 허겁지겁 2층으로 올라갔다. 친절하게도 계단 맞은편에 표지판이 있어 오른쪽으로 가면 수술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몸을 틀고 복도를 달렸다. 뒷목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움직일 때마다 어깨에 멘 카메라가 등과 허리를 때렸다. 한번 다리를 접질렸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택시를 탄 게 실수였다. 퇴근시간이라 도로가 너무 막혔다. 딸이 다쳤다는 전화를 받은 지 한시간 반 만에야 그는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술실 앞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 그는 벽에 등을 기댔다. 가슴이 급히 부풀어올랐다가 다시 급히 가라앉았다. 그는 몸을 웅크리고 바닥을 바라봤다. 바닥을 딛고 있는 구두를 봤다. 굽 가장자리에는 흙이 묻어 있었고 발가락이 꺾이는 부분에는 비뚤고 가느다랗게 금이 여러 줄 생겨 있었다. 구두가 너무 크고 낡아 보였다. 아직도 숨이 찼다. 그는 고개를 들고 두툼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전화를 한 선생일 것이다. 지나가 다쳤습니다. H대학병원 B병동 25호 수술실로 빨리 와주세요. 상황이 급해서였을까, 신경질적이고 깐깐한 목소리였는데 예상과 달리 중키에 몸집이 좋은 사내였다.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재킷은 어딘가에 벗어두고 셔츠 차림이었다. 선생은 그를 발견하고 왼손으로 가슴께를 털더니 그의 얼굴 대신 의자에 시선을 두고 천천히 걸어왔다.

선생은 자판기 커피를 들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한 뒤에 커피를 권했다. 그는 사양했다. 커피는 하나뿐이었고 그건 상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놀라셨죠?”

“아, 네. 어쩌다가 이렇게, 아니 지금 상황이 어찌된……”

물어볼 것이 많았는데 입에서 단어들이 엉키고 꼬여서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할 수 없었다. 선생이 진정하라는 듯 손으로 허공을 내리누르는 시늉을 했다.

“체육을 하다가 다친 모양입니다.”

“체육이요?”

잔뜩 긴장한 어깨에 힘이 풀렸다. 체육시간에 다쳤다면 그래도 목숨이 위태롭다거나 대수술이 필요한 일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선생은 뭔가 망설이는 얼굴이었다. 고개를 저었다가 무슨 말을 꺼내려고 했다가 다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머리를 다친 걸까? 아이가 위급한 상황인가? 그는 더 물어봤다.

“체육이라면 어떤……”

“뜀틀이었습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뜀틀을 어떻게 했기에 수술을 해야 할 정돈가요?”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선생을 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선생은 고개를 돌려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뜀틀을 하다가 넘어졌는데 발목뼈에 금이 갔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선생은 거기까지 말하고 커피잔을 휘휘 돌렸다. 그게 무슨 신기한 현상이라도 된다는 듯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선생은 커피잔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임신 중이었다는 것을 자기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침을 꿀꺽 삼켰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다고 느꼈다.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또 목을 긁었다. 지금 선생이 분명히 임신이라고 했나? 분명 그 말이었나? 지나가 임신을 했다고?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물론 딸이 임신을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생리를 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떤 가능성, 단지 꽃의 암술 같은 것에 불과했다. 암술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 꽃가루가 달라붙고 햇볕과 물과 비료를 충분히 공급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까. 그러기에 그앤 아직 어려. 너무 어리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열다섯살짜리 딸이 임신을 했다는 게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그는 멍한 눈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이 복도 끝을 가리켰다.

“저쪽에 자판기가 있어요. 뭐라도 좀 마시고 더 이야기하시죠.”

그는 선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도 잊고 자판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발목뼈의 접합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하혈이 있었을 뿐 임신 두달째인 태아는 무사하다고 했다. 그는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나는 그저 침대에 누운 채로,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지나의 기억은 자신이 뜀틀과 함께 넘어졌다는 데에서 멈춰 있었다. 그는 지나에게 당장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뭔지는 스스로도 잘 몰랐다. 아마 도피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거짓말을 했다. 하필이면 뜀틀을 넘는 순간에 장에 탈이 난 거라고 했다. 정확한 병명을 들어도 아마 너는 모를 거라고 얼버무렸다.

그가 잔뜩 긴장한 것과는 달리 지나는 의외로 그의 설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지나가 그를 보자마자 한 말은 휴대폰을 빌려달라는 거였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지나의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나가 저렇게 명랑한 말투로 휴대폰을 찾을 상황은 분명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이라고? 지금 휴대폰을 찾을 때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고 휴대폰을 건넸다.

휴대폰을 받을 때 지나의 손이 그의 손에 닿았다. 지나의 손은 보드랍고 조금 찬 듯했다. 그는 그게 딸의 손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어색해서 그는 소스라칠 뻔했지만 지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지나의 육체를 예전과 전혀 다르게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껏 지나는 그에게 무성(無性)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여자였다. 배 속에 생명체를 품고 있는 성숙한 여자.

전화를 거는 방법을 모른다는 듯 지나는 그저 휴대폰을 들고만 있었다. 그는 순간 지나가 망설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망설임 끝에 자기를 임신시킨 그 녀석의 번호를 누를 거라고. 그러나 지나는 고개를 흔들더니 휴대폰을 그에게 내밀었다. 왜? 왜 전화를 하지 않는 걸까? 그가 보고 있어서? 아니면 그 형편없는 녀석이 지나의 전화를 피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는 가슴이 쿵쿵거렸다.

“왜 그래?”

“외우는 전화번호가 하나도 없어!”

지나는 짜증이 난다는 듯 휴대폰을 그에게 돌려주고 돌아누웠다. 무릎을 안은 채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지나는 키가 크다. 160쎈티미터가 훨씬 넘는다. 뼈대는 가늘어서 몸무게는 50킬로그램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다운 데가 없어서 어릴 때부터 남자애들한테 인기를 끌진 못했다. 가슴도 엉덩이도 빈약했다. 다리에 굴곡이 없었고 상체보다 하체가 튼실한 편이라 어딘가 둔해 보였다.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렀지만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콧대가 납작했기 때문에 성형을 하고 싶어할 정도였다. 그나마 쌍꺼풀이 없는 긴 눈이 조금 신비한 느낌을 주긴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눈길을 끄는 타입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딸의 첫 경험이 다른 아이들보다 늦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야?”

지나가 엎드린 채로 그에게 물었다.

“목요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지나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싸.”

지나가 킬킬거렸다. 그는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생수를 쥔 손이 떨렸다. 웃음소리를 들으니 생수병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왜?”

그가 뻣뻣이 선 채로 물었다.

“목요일엔 수학이 두번이나 들었거든.”

지나의 따귀를 올려붙이고 싶은 것을 참고 있으려니 몸이 더 경직되는 것 같았다. 그는 한쪽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회문화를 빼먹긴 싫은데.”

지나가 콧등을 찡그렸다.

“사회문화?”

그는 화가 나는 것을 겨우 참으며 건성으로 물었다. 지금이 사회문화 타령을 할 때인가. 지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턱을 올렸다. 양 입가를 올려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정말 열다섯살 같은 얼굴로 말했다. 열다섯살 같은 얼굴. 아이를 임신하지 않은 평범한 열다섯살 말이다.

“내가 사회문화를 좋아하거든.”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임신을 한 마당에 사회문화를 좋아하든 정치경제를 좋아하든 그게 무슨 대수인가.

“아빤 몰랐는데.”

그의 목소리는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딱딱하고 톤이 낮았다.

“선생님이 아주 멋있어.”

그는 멍하니 반대쪽 벽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그 말에 정신이 들었다. 아까만 해도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으나 지금 그는 또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멋있다고?”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이십대 후반인데 진짜 아는 게 많아. 내가 만나본 여자 중에 제일 똑똑해.”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빠 물 좀 마시고 올게.”

그는 병실 밖으로 나와서 복도 의자에 앉았다. 그는 지나의 엄마에게 연락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지나가 태어나자마자 둘은 이혼했고 중학교에 진학한 후로 지나는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지방출장이 잦아서 아이를 혼자 돌볼 수 없었다. 지나는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입시보다 인성이 우선이라는 대안학교에서 지나는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작문에 관심을 보이고 동아리 활동으로 방송부에 가입했다고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 학교 앞 농장에서 키우는 닭이나 토끼와 함께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그는 지나의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가 그를 배신했다. 그는 무방비 상태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학생 무리가 병실 앞에서 서성였다. 그는 그들이 지나의 친구들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웅성거리던 아이들은 문에 붙은 팻말에서 지나의 이름을 확인하고 병실 문을 열었다. 그는 알 수 없는 흥분상태에서 아이들을 뒤따라 들어갔다. 사진에서는 애송이로만 보였던 아이들을 실제로 맞닥뜨리자 그는 좀 당황했다. 몇몇 여자아이들을 제외하면 아이들 모두 그보다 키가 컸다. 특히 남자애들은 모두 덩치가 컸고 힘으로 겨루면 그는 상대도 안될 것 같았다. 그는 잠깐 위압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친구들을 맞이하는 지나의 얼굴이 밝았다. 무리 중 가장 키가 작은 여자애가 침대로 달려가 지나를 안았다. 지나는 여자애를 껴안고 눈을 감았다. 여자애가 지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나머지 애들은 침대 주위를 빙 둘러쌌다. 그는 지나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실제로 처음 보았다. 지나는 웃음이 많았고 여자애들이랑은 스킨십을 자주 했다. 그는 지나가 낯설다고 느꼈다. 그의 기억에 지나는 말이 없고 여간해서는 웃는 일이 없었으니까. 저런 식으로 남자에게 기대고 남자를 만지고 몸을 내주었을까. 저런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을 지우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남자애 하나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 그 녀석이 자꾸 신경 쓰였다. 그 남자애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했는데 뿌리 부분에서는 시커먼 머리카락이 몇 쎈티미터 자라 있었다.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오른쪽 머리칼은 귀 바로 위까지 오도록 비스듬하게 잘랐고 왼쪽은 길러서 귀를 가리고 있었다. 그는 그 헤어스타일이 꼴사납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오른쪽 귀에는 피어싱을 세개나 하고 있었다. 아래쪽 두개는 팥알만한 크기의 은이었고 맨 위는 해골 모형이었다. 그 녀석은 다리를 떨면서 지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지나랑 눈이 마주쳤을 때 재빨리 윙크를 했다. 그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는 냉장고에서 과일주스 팩을 꺼냈다. 포도와 오렌지 주스였다. 그는 침대를 빙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주스를 건넸다. 마치 용의자라도 되듯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눈여겨보았다. 그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그를 향해 웃어 보이는 그 노랑머리 녀석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지나의 발끝 쪽에 있던 남자애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버튼을 이리저리 눌렀다. 휴대폰에 동영상이 재생되자 지나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지나는 그걸 받아들어 자기 옆에 있는, 아까 지나를 껴안았던 키 작은 여자애와 같이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노랫소리도 간간히 들리고 애들이 소리를 지르는 소리,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조용해졌다가 어떤 한 아이가 지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지 못한 친구들이 동영상을 찍어 보낸 모양이었다. 그애가 말하는 동안 옆에서 다른 아이가 계속 떠들고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지나야, 사랑해!”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 순간 범인은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더 불안해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지나가 고개를 들고 그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남의 침실을 몰래 엿보다 들킨 사람처럼 민망했다. 그는 병실을 나섰다. 자기가 왜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없을 때 뭘 하려는 거지? 무슨 얘기를 나누려는 거야? 그는 문 앞에서 몸을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불량기가 가득하고 절제란 걸 모르는 그 어리석은 무리를 한번 노려본 뒤 문을 닫았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복도에 있어봤자 병실 안이 신경 쓰일 게 뻔했다. 지나도 지나지만 아이들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책임이나 의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면서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뭔지도 모르는 자유를 떠들어대며 방만하게 행동하는 십대들이 싫었다.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른들이 고리타분하다고 말하는 그런 애들 말이다. 그는 어딘가 앉아서 좀 쉬고 싶었다. 지하에 휴게실과 매점이 있어서 그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매점에서 국수를 먹으면서 그는 동료와 통화를 했다. 내일은 늦게라도 사무실에 들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동료는 그에게 다른 작업은 다 끝냈으니 사진 파일만 얼른 보내달라고 했다. 근처 피씨방에서 일을 해결할 생각으로 그는 한시간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동료는 짜증스러운 듯 당장은 어렵냐고 했다. 그는 동료에게 사실을 털어놓을까 잠깐 생각했다. 병원에 와 있어. 아직 중학생인 외동딸이 임신을 했어. 결혼도 하지 않은 열다섯살짜리가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대신 그는, 미안해, 금방이야, 한시간 안에는 꼭 보낼게, 아직 길이야,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그는 면을 허겁지겁 입에 우겨넣었다. 국물을 들이켜자 겨드랑이에 축축하게 땀이 고였다.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어 실내온도는 충분히 낮았는데도 더웠다. 그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답답했다. 망할, 하필이면 지 엄마를 빼다 박았나봐.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지나의 엄마를 클럽에서 만났다. 그 여자는 검은자위가 커서 솔직해 보였고 그가 말할 때마다 대답 대신 소리 내어 웃었다.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밝은 하이톤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흥을 돋우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확인했지만 그날은 춤만 추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 여자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그다음 주말에 연락을 했다. 클럽에서는 성숙해 보였는데 여자는 그와 열살이나 차이가 났다.

여자는 스무살에 지나를 낳았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그는 잘해보려고 했다. 배가 부르기 전에 결혼식도 올렸고 해외는 아니지만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하지만 여자는 결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대낮의 햇살 아래서 여자는 불안해했다. 여자는 아이를 가질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아이가 생긴 것을, 엄마가 된다는 것을 끝까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도우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우울증에 빠졌고, 결혼식 사진에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부였다. 아이를 낳자마자 여자는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여자를 떠올리자 그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혼자 딸을 키우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유혹해오는 여자들이 있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계모의 손에서 자란 아이들은 삐뚤게 자란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엄마가 없다는 결핍감을 지나가 느끼지 않도록 그는 최선을 다했다. 이런 결과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났다. 기필코 그놈이 누군지 알아내고야 말겠다. 당장 병실로 올라가서, 지나가 말을 안한다면 모여 있는 그 친구놈들을 족쳐서라도 그놈이 누군지 알아내야겠다. 피씨방에 가서 사진을 보내는 대신 그는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매점은 지하 3층이었기 때문에 그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어떤 젊은 남자가 뛰어와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다시 열리고 남자가 가쁜 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왔다.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이어폰을 끼고 있는 이십대였다. 남자는 그의 뒤에 섰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그는 버튼이 있는 벽으로 한걸음 붙어 섰다. 뒤에 서 있던 그 젊은 남자도 그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목을 움츠렸다. 목 뒤가 간지러웠다. 남자가 하필이면 그의 목 뒤에다 더운 숨을 내뿜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물론 숨을 쉬어야겠지만 엘리베이터 안이 아무리 붐빈다고 해도 고개를 돌릴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 정도의 매너는 지켜야 했다. 그는 불쾌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천장을 바라보며 실실거리고 있었다. 그가 쳐다보자 남자가 시선을 내렸다. 그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오른쪽 입가를 올려서 미소를 만든 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를 마주 보았다. 한심한 새끼. 그는 남자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소리로 뇌까렸다. 그가 주먹을 쥐었을 때 엘리베이터가 2층에 도착했고 벨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이들은 벌써 돌아간 뒤였다. 병실 문을 열었을 때 딸은 목발에 기대어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에서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너머로는 도로가 뻗어 있었고 도로 건너편에는 증권회사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저 애는 무얼 보고 있는 걸까? 그는 지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발소리에 지나가 뒤돌아보았다. 아빠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지나는 침대로 자리를 옮겨 벽에 기대고 앉았다. 그는 침대 위의 얇은 이불을 밀쳐 자리를 만들고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그가 가까이 가자 지나는 몸을 뒤로 움직이려다 벽에 살짝 부딪쳤다. 그는 지나가 자기를 피한다고 느꼈다. 혹시 다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애들 중 누군가가 사실을 알고 얘기해준 걸까?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지나는 고개를 들어 건너편 벽 모서리에 있는 티브이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티브이를 보려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는 지나가 자신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그런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학교로 간대. 곧 축제가 있거든. 우리 학교 애들은 축제를 꽤나 중요하게 생각해.”

지나는 여전히 티브이 화면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지나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그는 기분 나쁜 냄새를 맡았다. 담배 냄새였다. 그 냄새는 분명히 지나의 입술 사이에서 나고 있었다.

만약 지나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는 폭력 부모 소리를 듣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지나를 흠씬 때려줬을 것이다. 아빠가 무서워서라도 다신 그런 짓을 못하게. 하지만 그는 냄새를 못 맡은 척했다. 때릴 수 없을 정도로, 지나가 그에게서 아주 멀어져버렸다고 느꼈다. 그는 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그는 그게 뭐든 일단 아무거나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넌 축제에서 뭘 하니?”

“시를 썼어. 그걸 전시할 거고.”

“시?”

그는 시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것처럼 물었다. 지나와 시. 그는 생각해봤다. 지나가 시라고? 그는 왜 그런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네가 시를 쓴다는 얘긴 처음 듣는구나.”

“쓴 지 얼마 안됐으니까.”

“작문을 좋아한다고만 알고 있었지. 그 과목은 반에서 늘 일등이었으니까.”

지나는 별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친구들을 모아서 시 창작 동아리를 만들었어. 매 학기에 시화전을 열기로 했고.”

“재밌겠구나.”

그는 명랑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으나 기운이 쭉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입술이 바싹 말라 혀로 침을 묻혔다. 쓴맛이 났다.

“시 써봤어?”

“아니.”

그는 자기가 너무 성의 없이 대답하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이런 시시껄렁한 얘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지금 이 대화가 매우 중요한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좀더 적극적으로 딸과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그들에겐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다.

“어떤 시를 써?”

“그냥 이것저것.”

“축제에 가서 꼭 볼게.”

지나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도 고등학교 때 동아리 같은 거 했어?”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에게 고등학교 시절이 있었나 싶었다. 그 시절을 불러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빤 사진반이었어.”

“그래서 기자가 된 거구나. 그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거야?”

“아니, 난 교사가 되고 싶었어. 근데 시험에서 세번이나 떨어졌어.”

“그런 얘긴 처음 듣네.”

지나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는 자신의 어떤 말이 그애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난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어.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

무엇이 지나의 마음을 열었는지 평소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술술 꺼냈다. 그는 침착함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난 네가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어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지난겨울엔 심리학 책에 빠져 있었으니까 희망직업란에 그렇게 쓴 것뿐이야. 지금은 그쪽 분야의 책은 읽지도 않는데.”

“천천히 생각해보자.”

지나는 아빠와 장래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나누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그는 지금 그런 것에 대해서 떠들어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네가 네 장래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나 아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는 지나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을 흘리며 앞일을 두려워하고, 그의 눈앞에서 자기가 저지른 돼먹지 못한 짓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게 뭐란 말인가. 그는 얘기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그 편이 얘기를 나누기 훨씬 쉽지 않았을까.

병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화를 참느라고 얼굴이 후끈거릴 지경이었기 때문에 그는 간호사의 등장이 반가웠다. 간호사는 지나에게 불편한 데가 없는지 묻고 링거 선에 주사기를 꽂고 피스톤 끝부분을 눌렀다. 지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간호사가 나가자 지나는 졸립다고 했다. 드러눕기 전에 지나가 물었다.

“지난봄에 왜 데리러 오지 않았어?”

지나는 그렇게 말하고 베개에 머리를 푹 파묻은 채 눈을 감았다. 봄방학 때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보름간의 방학이 잡지 마감과 겹치는 바람에 지나를 데려온다고 해도 함께 있어줄 시간이 없었다. 거기다 지나의 할아버지도 입원한 상황이어서 지나가 학교에서 방학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문득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가 불편하고 미안하더라도 지나가 집에서 지냈다면 지금 이런 일은 없었을까? 그는 지나를 바라보았다. 지나는 금세 잠들어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겨우 초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콧대가 낮은데다 턱이 짧아서 어린아이 얼굴이었다. 저 아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갑자기 죄책감이 몰려왔다. 조금 전까지 지나를 향해 있던 분노가 자기 쪽으로 돌아서 달려들었다.

음료수를 냉장고에 넣으려고 몸을 일으키다가 그는 침대 옆에 좀전까지 보지 못한 가방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아마 친구들이 가져온 모양이다. 거기에 뭐가 들었을까? 그는 아까 딸의 입에서 나던 기분 나쁜 냄새를 떠올렸다. 기껏해야 담배 같은 게 들어 있겠지. 그는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는 이 가엾은 십대의 가방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지퍼를 열고 앞주머니를 들여다보니 작지도 크지도 않은 주머니가 보였다. 초록색 인조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였다. 지퍼를 열자 립스틱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그는 숨을 멈추고 지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잠이 깨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서 립스틱을 주웠다. 주머니 안에는 화장품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는 지퍼를 닫고 주머니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어쨌거나 자기가 하는 짓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은 어느새 다시 가방 속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두꺼운 다이어리가 손에 잡혔다. 물방울 무늬가 그려진 분홍색 리넨 천을 덧대었고 똑딱이 단추가 달려 있었다. 그는 다시 지나를 흘끗 바라보고, 단추를 열었다. 다이어리에는 친구들의 생일과 보충학습을 하는 과목, 그리고 써클 모임날짜 등이 적혀 있었다. 비밀스러운 내용은 없었다. 주간계획 부분을 넘기자 줄줄이 노트가 나타났고 거기에 뭔가 적혀 있었다. 지나가 아까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게 시라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좀더 걸렸을 것이다.

그는 하나를 골라 읽어보았다. ‘촛불’이라는 시였다. 무엇을 위해서 그대는 자기 자신을 자꾸만 허물어뜨려가는가, 하고 묻고 있었다. 그는 지나가 왜 그런 시를 써야 하는지,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시들을 몇개 더 읽었지만 그저 낯선 단어들의 배열일 뿐이었다.

다이어리를 넣고 지퍼를 닫으려는 순간 가방 안쪽에 작은 지퍼가 달린 것을 보았다. 거기에 손을 갖다댔다. 작고 납작한 뭔가가 있었고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러나 지퍼를 열고 발견한 것은 종이 갑에 들어 있는 껌이었다. 지퍼를 닫으면서 그는 차라리 가방 안에서 뭔가 놀랄 만한 것이 발견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등을 돌리고 자던 지나가 몸을 뒤치며 돌아누웠다. 지나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날이 무더웠다. 지나는 답답한지 환자복의 목 부분을 손으로 쥐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병원 안은 후덥지근했다. 그는 지나가 덮은 얇은 이불을 걷어내어 발치에 밀어놓고 구석에 있는 선풍기를 끌어와 버튼을 눌렀다. 지나는 몸을 웅크렸다가 엎드려누웠다.

선풍기 바람에 환자복이 위로 말려올라가며 지나의 등이 드러났다. 그의 시선이 지나의 등에서부터 허리를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을 때, 그는 움찔했다. 허리 오른쪽 아래 부분에 뭔가가 있었다. 초록색 잉크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그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구부렸다. 그제서야 그게 타투라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그저 형태가 없이 뭉그러진 자국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어떤 문양이었다.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나뭇가지가 새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왜?라고 되묻는 동시에 그는 새가 앉아 있는 가지의 끝에 두 눈이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눈은 꽤나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그게 그림이라는 걸 알면서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나뭇가지의 눈과 그의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그게 나뭇가지가 아니라 뱀이라는 걸 깨달았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당장이라도 새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타투의 짙은 색깔 때문인지 피부는 창백할 정도로 하얗게 보였다. 진녹색의 뱀이 지나의 부드러운 피부 위에 찰싹 달라붙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딸의 허리 위에 손을 올렸다. 움푹 들어간 허리에서부터 툭 튀어나온 골반뼈까지 그의 손이 뱀처럼 미끄러져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