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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평화의 섬에서 띄우는 공생의 메시지

5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 참관기

 

 

강영규 姜瑛奎

창비 계간지출판팀장. iwejam@changbi.com

 

 

지난 628~30일 오끼나와(沖繩) 나하(那覇)에서 제5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가 ‘연동하는 동아시아: 진정한 지역평화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 회의는 2006년 창비의 창간 4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계기로 결성된 것으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을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비판적 잡지들이 격년으로 주최지를 달리해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2006년 서울, 2008년 타이뻬이, 2010년 진먼(金門), 2012년 다시 서울에 이어 2014년에 제5회 행사를 가질 차례였지만 올해가 오끼나와의 잡지 『케에시까지』(, 역풍이란 뜻의 오끼나와어)의 창간 20주년이라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한해를 앞당겨 오끼나와에서 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비판적 동아시아 잡지들의 주요 참여자가 연합하여 (홍콩의 夢周文敎基 지원 아래) 만든 아제서원(亞際書院, Inter-Asia School)과 창비 등이 후원하고 오끼나와대학 지역연구소와 『케에시까지』가 주관한 이번 회의에는 본지를 비롯해 중국의 『熱風學術』(상하이) 『區域』(베이징) 『開放時代』(광저우) 『人間思想』(항저우), 대만의 『台灣社會硏究』와 ACT(Art Critique of Taiwan), Inter-Asia Cultural Studies, 일본 토오꾜오의 『世界』 『現代思想』 『圖書新聞』과 오끼나와의 『케에시까지』, 말레이시아의 『民間評論』, 싱가포르의 『圓切線』 등 총 18개 잡지의 편집자들이 참가했으며, 그 외 잡지 편집자는 아니나 아제서원 및 동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인 현대아시아사상(MAT, Modern Asian Thought) 프로젝트의 구성원도 함께 모였다.

사흘간의 행사일정은 628일 저녁 오끼나와대학 동창회관에서의 환영만찬으로 막이 올랐다. 시종 소박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이날 만찬에서 본지 백낙청() 편집인은 동아시아 지식인 연대와 사상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주최측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고, 오끼나와의 대표적인 원로지식인 아라사끼 모리떼루(新崎盛暉)의 저서 『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의 한국어판(창비 2013)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도 뒤따랐다. 이어서 장소를 소극장으로 옮겨 오끼나와 출신의 영화감독 타까미네 고오(高嶺剛)의 작품을 감상하고 간략한 토론을 하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다음날 29일 오전 10시 주최측을 대표해 카또오 아끼히꼬(加藤彰彦) 오끼나와대학 총장이 개회사를, 2006년 결성 때부터 이 회의를 조직해온 본지 백영서(白永瑞) 주간과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천 광씽(陳光興) 편집인이 환영사를 겸한 인사말을 전했다. 카또오 총장은 과거 류우뀨우왕국에서 일본의 현으로 병합된(1879년 류우뀨우 처분) 이래 태평양전쟁을 거쳐 27년간 미군정의 통치에 놓였다가 다시 일본으로 복귀한(1972년) 이 섬의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아시아 민중의 일원으로서 오끼나와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이어져왔고, 평화에 대한 희구와 함께 주민의 생명생활을 중시하는 태도가 확립되어왔다고 밝혔다. 백영서 주간은 제1회 회의가 ‘연대로서의 동아시아’라는 화두를 던진 이래 제2회, 3회 회의에서는 ‘화해의 장벽’으로서 3대 문제(중국-대만의 양안관계, 한반도의 남북관계, 오끼나와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지역통합의 차원에서 다시 사고했으며, 제4회 회의에서는 동남아의 잡지들까지 참가해 ‘대안적 발전모델’을 구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소개했다.1) 천 광씽 편집인은 동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라는 큰 틀 속에서 MAT 프로젝트(지역 공동의 사상자원 발굴 및 공유),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사상자원의 대중화사업 협력 모색), 아제서원(사상자원의 교육과 후학 양성)이라는 삼각 조직의 관계와 각각의 역할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서 본행사의 첫 순서로 제1쎄션 백낙청 편집인의 기조강연이 이어졌다.2) 이 강연은 아제서원의 연차강연 제1회이자 제506회 오끼나와대학 토요교양강좌로도 기획되었다. 토요교양강좌는 30년 넘도록 오끼나와대학이 지역주민을 위해 마련해온 시민교육 프로그램으로, 오끼나와와 일본 안팎의 주요 문제에 대해 권위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 유서깊은 자리다. 휴일 오전임에도 약 100여명이 청중이 모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백낙청 편집인은 1990년대 미군기지반대운동으로 본격화된 한국과 오끼나와 민중연대의 성격에서 시작해 ‘구조적 오끼나와 차별’(아라사끼 모리떼루)이 일본의 국내정치는 물론 나아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 공동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이렇듯 역사적구조적으로 연관된 동아시아의 ‘핵심현장’(본지 백영서 주간이 제기한 개념으3) 이번 회의 내내 가장 많이 거론된 주제어가 됐다) 곳곳에서 강화되어가는 국가주의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우리의 공통 과제라는 그의 지적에 많은 청중이 공감을 표했다.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중심에 자리잡은 동아시아에서 이 문제는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백낙청 편집인은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배타적 주권국가들의 ‘국가간체제’를 허무는 일(즉 근대적 세계체제의 변혁)을 목표로 세우되 이를 위해 주민들의 생활상의 이익을 국가권력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현존 국가들을 개조하는 일을 결합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이러한 접근이 그의 지론인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와 더불어 원리적 반자본주의에 빠지거나 자본주의 개량 또는 다양화에 안주하는 이분법을 넘는 ‘참된 중도(中道)의 길’과 상통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제1쎄션 약정토론에 답하는 백낙청 편집인(2013.6.29 오끼나와대학 동창회관)

제1쎄션 약정토론에 답하는 백낙청 편집인(2013.6.29 오끼나와대학 동창회관)

 

강연 이후 아라사끼 모리떼루, 오까모또 아쯔시(岡本厚), 쑨 거(孫歌)의 약정토론이 이어졌다. 아라사끼 모리떼루는 오끼나와 문제가 단순한 미군기지반대가 아니라 일본 민주주의와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핵심사안임을 지적한 강연에 동감하며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실천으로서 국경지대에 주목해달라고 주문했다. 가령 요나구니정(與那國町)이나 야에야마제도(八重山諸島)에서 이룬 기왕의 각종 합의에 일본정부가 훼방을 놓고 있는 상황이나, 지난 4월 체결된 일본-대만 어업협정이 두 지역 주민들의 공생권(共生圈)을 해치는 현실을 볼 때 국경을 넘는 민중연대에 대한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世界』 전 편집장이자 현재 이와나미쇼뗑(岩波書店) 사장 오까모또 아쯔시는 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그에 편승해 성장을 구가해온 지역질서가 2000년대 후반부터 큰 변화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오끼나와의 저항은 “미국과 일본의 온 체중이 내리누르는 가운데도 결코 의지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어서 현재 일본에서 일고 있는 국가주의의 바람, 특히 주변국들과 부딪치는 영토갈등은 역사 문제와 냉전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넘어설 수 있는 것인데, 일본이 그러한 자세와 각오가 부족함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가주의 극복의 힘을 홍콩/마카오, 대만, 한반도, 오끼나와 같은 핵심현장에서 찾자고 덧붙였다. 마지막 지정토론자 쑨 거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후뗀마기지의 관광지화 같은 미묘한 현실을 거론하며 오끼나와 민중의 상황을 좀더 면밀히 관찰하는 속에서 실천의 방향을 찾자고 제안했다. 민중의 투쟁은 좌절과 굴절 속에서 계속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에 총체적 민중연대란 말뿐인 빈껍데기에 불과하며 당면한 현실 속에서 입장 차이를 직시하고 연대의 대상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4) 이는 작금의 복잡한 영토분쟁을 볼 때 더욱 적실해진다는 그의 발언에 각 지역의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연에서 나온 핵심현장과 중심/주변 문제설정의 관계도 따져보자고 했다. 자칫 중심에 대한 저항의 와중에 중심의 논리에 포섭되는 측면은 없는지 점검하자는 것이다. 시선을 중국으로 돌려 강연에서 나온 ‘중도’라는 사상적 입장이 지금 무엇보다 중국 지식인들에게 필요하다고 하면서, 거대이론과 실천적 성과라는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는 지식 지형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한국과 오끼나와의 선배들에게 배워가겠다고 밝혔다.

백낙청 편집인은 답변에서 ‘중도’를 이루려면 각 개인의 ‘수행’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를 핵심현장과 중심/주변 구도와 연관해보자면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선가(禪家)의 경구가 말하듯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주인됨을 실천한다면 그곳이 바로 핵심현장이며, 권력관계로 설정된 중심/주변 구도에서 ‘주변’이 스스로 ‘중심’이 되려는 태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자가 처한 구체적 현실에서 구체적인 중도를 추구할 때 중도란 내용이라기보다 방법이라고도 했는데, 토론자들을 비롯한 청중에게는 사회과학적 인식과 불가의 수행론이 결합된 듯한 이런 담론에 대해 일부 난해해하면서도 퍽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2쎄션 ‘위기의 경계: 동아시아 평화의 핵심현장’에서는 본지 정현곤(鄭鉉坤) 편집위원이 2013년의 한반도와 시민참여 통일과정의 모색을 주제로, 오끼나와대학 교수이자 『케에시까지』 소속의 토리야마 아쯔시(鳥山淳)가 오끼나와 주민의 전쟁피해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 문제를 다루는 발표를 했다. 오랫동안 남북 민간교류의 일선에서 활동해온 정현곤의 발표는 2005615공동행사를 현장에서 치르며 겪은 체험과 지난 5년간 위기와 긴장으로 점철되어온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고뇌가 통역이라는 필터를 거쳐서도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했다. 그는 경색국면의 지속으로 비치는 남북관계의 현실 이면에 615공동선언의 효력이 여전히 흐르고 있으며 그로부터 점진성과 단계성, 시민참여의 원칙을 견지해간다면 한반도식 통일에 더욱 근접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보여주었다. 토리야마 아쯔시는 종전 이후 미국이 소련 진영에 대항하기 위한 동아시아의 거점으로 일본을 세우기 위해 일본의 전쟁배상 부담을 덜어주는 통에 아시아 각국에 대한 전쟁책임 역시 희박해졌음을 환기하며, 오끼나와전에서 주민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는 데서도 그 점이 반복되었음을 밝혔다. 특히 전상병자나 전몰자의 유족 등을 위한 원호법(援護法)이 기본적으로 전투협력자를 위한 것이지 주민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으며,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오끼나와 주민의 여론을 분열시키고 협력이라는 미명하에 군사적 폭력의 실상을 은폐하고 국가책임을 면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2쎄션의 약정토론은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왕 즈밍(王智明), 『熱風學術』의 구오 춘린(郭春林), 홍콩링난대학의 뤄 윙상(羅永生), 『오끼나와 타임즈』 기자 요기 타께히데(与儀武秀)가 맡았다. 왕 즈밍은 남북관계와 양안관계의 유사성을 들며, 명분과 신뢰를 중시하고 정부 주도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양안관계는 민간의 참여도가 남북관계에 비해 떨어지며 현장감각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오끼나와의 전쟁피해 같은 과거에 대해서는 대만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형편인데, 이러한 역사기억과 공통인식의 부족은 댜오위다오/센까꾸의 영토갈등에서 보듯 비단 과거사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동아시아 평화에 큰 걸림돌이 되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래 영토갈등에 대한 동아시아 지식인 공동성명을 준비하며 겪은 인식상의 차이를 소개하며, 지역 평화를 고민할 때 ‘중국 요인’을 좀더 강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화답하듯 구오 춘린은 중국은 자기반성으로부터 동아시아를 사유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뗐다. 그는 기존에 중국이 가졌던 동아시아에 대한 관점은 주로 서구의 패러다임에 기댄 것이었다고 평가하며, 진정한 동아시아 지식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지식공동체의 가능성과 조건을 점쳤다. 뤄 윙상은 정현곤의 발표에 홍콩인으로서 큰 공감을 느꼈다고 밝히면서 학생시절 양안관계에 제3자적 역할을 하노라고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정상적 민족국가의 경험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한국인과 오끼나와인, 홍콩인의 특수성에 착목해 ‘포스트 민족국가적 신정치주체’라는 개념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이튿날인 630일 오전 10시 같은 장소에서 제3쎄션 ‘현대사를 다시 생각하며: 냉전의 정치문화생활’이 열렸다. ‘문화쎈터 아리랑’ 사무국 소속으로 번역과 기고 활동을 하는 재일조선인 김미혜(金美恵)와 류우꾸우대학 교수 신조오 이꾸오(新城郁夫)가 발표자로 나섰다. 김미혜는 오끼나와전에 위안부로 강제연행된 조선인 여성 배봉기(裵奉奇)씨의 삶을 통해 재일조선인의 현대사 일단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식민지 여성으로서 겪은 위안부 체험도 처참했지만 그녀가 그후 ‘민단’이 아닌 ‘총련’의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1977년 한 일본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었음에도 한국에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는 사실 역시 비극적이다. 한국에서는 한참 후인 1991년 김학순(金學順) 할머니의 증언과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고소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식민지 지배와 국가가 자행한 성폭력, 그리고 남북분단과 이념대립이라는 중층적 모순의 피해자인 배봉기씨의 일생을 곡진하게 소개한 발표는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학술회의 분위기에 강한 울림을 전했다. 신조오 이꾸오는 오끼나와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카와미쯔 신이찌(川滿信一)의 「류우뀨우 공화사회 헌법시안」(1981)에서 ‘공생사회(共生社會)’의 발상을 발굴해 재해석하는 발표를 했다. 그는 이 헌법시안이 오끼나와가 독립을 모색하면서 또 하나의 국가(네이션스테이트)로 귀결되는 것을 막고 영토나 법률, 구성원에 대한 규정을 피해 문화적 동일성이나 출신에 무관한 연대하는 운동체를 구상했다는 점에서 비국가적이고 탈영토적인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어서 『開放時』의 우 충칭(呉重慶),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의 웨이 위에핑(魏月萍, Ngoi Guat Peng), 아제서원의 이께가미 요시히꼬(池上善彦)는 각 지역의 현실을 바탕으로 국가주의의 위력을 약화시키고 공동생활권을 형성하기 위한 방향과 기초에 관해 토론했다. 이날 청중석에는 헌법시안의 저자 카와미쯔 선생과 1975년 당시 배봉기씨의 증언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재오끼나와 동포 김수섭(金洙燮) 선생도 참석해서 소감을 들려주었다. 김미혜는 마무리 발언에서 국가주의 문제에 대한 토론에 덧붙여 여전히 많은 재일조선인이 어떻든 간에 통일국가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환기하며 희생자의 아픈 목소리로부터 미래를 그려나가는 정신을 잊지 말자고 강조해 청중석이 일순 숙연해지기도 했다.

4쎄션 ‘동아시아 평화와 연대의 문화창조’에서는 본지 백영서 주간과 ‘오끼나와 생물다양성 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 요시까와 히데끼(吉川秀樹)가 발표자로 나섰다. 동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의 구심점이자 동아시아 담론의 주창자인 백주간은 본인이 창안한 여러 개념들, ‘동아시아의 핵심현장’ ‘이중적 주변의 시각’ ‘연동하는 동아시아’ 등을 오끼나와 및 한반도 현실과 연결시키며 발표를 이끌어나갔다. 이번 발표에서는 특히 핵심현장에서의 주권의 중층성(분할과 분유)을 제기하며 기왕의 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현재 동아시아 곳곳에서 점화된 영토갈등역사분쟁에서 고유영토론이나 주권(의 지고성)을 손쉽게 부정하는 식의 대응은 비현실적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오히려 고유영토론의 예외적 영역을 설정함으로써 그것을 점진적으로 수정해가고, 여기에 주권의 재구성이라는 중장기적 과제를 결합하자는 그의 제안은 국경과 영토의 개념을 넘어서는 생활권(生活圈) 구상과 그 속에서의 자치권 확대를 요청한다. 그는 오끼나와와 한반도의 현실조건에서 이러한 제도적 모색의 일단을 풀어놓으면서 ‘공생철학’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공생(共生)이란 공고(共苦), 즉 고통을 함께 나누는 자세 속에서만 실현된다고 당부하며, 그리하여 핵심현장에서 서서 ‘공생 지평’이라는 경험세계를 함께 열어가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발표를 마쳤다. 이어서 요시까와 히데끼는 환경 관련 두 국제회의(Moana Nui 2013, IUCN)에 NGO의 일원으로 참석한 경험을 통해 환경 및 생태 담론을 가지고 동아시아 연대의 전략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음을 예시했다.

마지막 순서는 세이께이(成磎)대학 이정화(李静和) 교수, 본지 김항(金杭) 편집위원, 『케에시까지』의 오야까와 유우꼬(親川裕子), 『圖書新』의 수도 타께시(須藤巧)가 함께한 종합토론이었다. 전체 논의에 대한 총평에 더해 향후의 회의에 바라는 점까지 자유롭게 의견이 개진되었다. 다섯차례의 회의를 거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토론의 응집력도 한층 더해졌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였다. 대만의 한 참가자는 갈수록 회의에서 중국어권의 비중이 커지는 것이 중국의 달라진 국가 위상이나 규모를 반영하는 현상이겠지만 그와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중국어권과 중국측 비판적 지식인의 책임감 역시 더욱 무겁게 느껴야 옳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중국 본토 지식인에 대한 도전일 법한 발언이었는데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나하 시내의 식당에서 열린 고별만찬에서도 우애의 분위기는 이어졌다. 회의 참가자에 더해 오끼나와의 시민활동가들이 속속 자리를 채워 열기를 더해주었다. ‘연대’에서 시작해 ‘화해’를 거쳐 ‘공생’으로 심화해온 7년여의 시간을 뒤로하고 각 지역에서 온 참석자들은 이제 여섯번째 만남을 준비하며 각자의 핵심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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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 회의의 자세한 내용은 배영대 「진보의 위기와 비판적 지식인의 진로」, 『창작과비평』 2006년 가을호; 천 광씽 「화해의 장벽」, 『창작과비평』 2008년 가을호; 정신혁 「‘국제(國際)’를 넘어 ‘민제(民際)’로」, 창문블로그(http://blog.changbi.com) 2012.8.23 참조.

2) 강연 전문은 본지 이번호에 수록.

3) 백영서쑨 거 대화 「비대칭적 한중관계와 동아시아 연대」, 『창작과비평』 2013년 여름호.

4) 이러한 견해는 쑨 거 「민중시각과 민중연대」, 『창작과비평』 2011년 봄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