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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2권, 창비 2013
각성을 촉구하는 ‘일본 속의 우리 문화’ 읽기
오찬욱 吳讚旭
명지대 일문과 교수 cwoh@mju.ac.kr
작년부터 급격히 악화된 한일관계는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 정치인의 잦은 실언과 일본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가 계속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 지도자의 사려 깊지 못한 행보는 모처럼 조성된 일본 대중들의 친한(親韓) 정서에 찬물을 끼얹어 여태껏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울에서는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의 신간소설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는가 하면 토오꾜오에서는 주말마다 반한 시위가 되풀이되면서도 여전히 TV 프로그램이 한류 드라마로 채워지는 것을 보면 한일 모두 전체문화보다 하위문화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경향이 점차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러한 와중에 유홍준(兪弘濬)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두권이 출간되었다. 1권은 큐우슈우(九州) 편으로 도요(陶窯) 탐방이 중심이고 2권은 나라(奈良)・아스까(飛鳥) 편으로 고대 불교유적 답사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저자는 “이럴 때일수록 일본에 대해 좀더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을 쓰게 됐노라고 집필배경을 밝히고 있으니 우선 시의성 있는 출간이라 하겠다.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가는 답사기는 김달수(金達壽)의 『일본 속의 조선문화』 씨리즈(전12권)가 효시로, 그는 1970년부터 20여년 동안 일본 전국을 돌면서 ‘도래인(渡來人)’의 흔적을 꼼꼼히 조사해 이 방면에서 선구적 개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온통 한반도로부터의 영향에 집중돼 있었고, 사물을 설명할 때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 기존의 통설을 인용하는 방식을 택해 전문성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후 그의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나름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나선 답사기를 발표했지만 대부분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우리가 일본에 준 영향에만 초점을 맞춘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니 서점과 인터넷에 일본 속의 한국문화에 대한 견문기와 해설서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새로운 일본 답사기가 독자들을 흡인하고 설득시킬 독자성과 차별성을 얼만큼 확보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고대문화가 한반도의 절대적인 영향하에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도 “한국인들에게 일본 속의 한국문화가 일본의 문화유산 속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남아 있는지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견 반복되는 주장 속에 저자가 기존의 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몇가지 새로운 시점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 하나는 저자가 고대 일본인들이 선진문화를 수용하고 소화해가는 과정을 시발점뿐 아니라 그 귀착지에 이르기까지 두루 소개하고 있는 점이다. 기존의 책들이 나라의 불교문화를 이야기할 때 한반도와 관련 있는 부분만을 다뤘다면, 저자는 나라의 불교유산 전반을 시야에 두고 시대와 지역별로 차별화되는 양식의 변천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있다. 즉 한반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아스까문화가 하꾸호오(白鳳)시대를 거쳐 텐뾰오(天平)문화로 변천해가는 과정의 의의를 글로벌한 시좌에서 음미하며 평가하고 있는데, 오로지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일본의 고대문화를 바라보았던 다른 책들과는 그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일본은 630년부터 894년까지 무려 260여년에 걸쳐 총 20회의 견당사(遣唐使)를 파견해 각 방면에서 당의 문화를 직수입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한자음 하나만 들더라도 백제를 통해 정착된 중국의 남방음(오음吳音) 대신 당시의 당음을 ‘정음(正音)’으로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주지하듯이 율종(律宗)의 대가인 당의 고승 감진(鑑眞)을 일본으로 데려오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내했다. 텐뾰오문화는 일본인들이 이렇게 한반도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울인 피눈물 나는 노력의 귀결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에까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저자의 자세는 공정하다.
이 점은 큐우슈우의 자기(瓷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임란 후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에 의해 일본의 자기문화가 발전해간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루면서도, 일본에 그전부터 있었던 도기문화의 예술성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그 가치를 설명하는 균형감각에서 다른 책들과는 위상을 달리하고 있다.
다음은 미술사가로서 저자의 전문성이다. 기존의 저자들이 주로 문헌자료에 의거해 나라의 불교미술을 설명하고 있는 데 비해 저자는 미술사가답게 나라에 남아 있는 불상과 사원 양식의 구체적인 변천상을 들어 고대 일본인들이 주변국의 문화를 흡수하여 자기화해가는 과정을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다. “유물로 하여금 말하게끔 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답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일본의 불상이 아스까양식에서 하꾸호오양식을 거쳐 텐뾰오양식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기존 한・일 연구자들의 편견과 오해를 하나하나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점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듯 고대의 동아시아 문화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일방적으로 전해졌을 것이라는 주관적인 당위성에 입각하거나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 같은 일방적 주장이 강한 불확실한 사료에 의거해 일본의 고대사나 문화를 논할 수밖에 없는 역사나 문학 전공자들이 갖지 못한 강점이어서 구체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나라의 문화유산이 가지고 있는 ‘명(明)’의 세계뿐 아니라 그곳에 중첩돼 있는 ‘암(暗)’의 부분 또한 놓치지 않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다름 아니라 이른바 ‘폐불훼석(廢佛毁釋)’에 대한 지적이다. ‘폐불훼석’이란 메이지유신 직후 자행된 불교문화재 파괴행위를 말하는데, 메이지 정부가 신도(神道)를 국교화하면서 이른바 신불분리 정책을 강행한 4년 동안 일본 전국에서 수많은 절이 폐사되고 법당과 불상, 불구(佛具)가 파괴되는 일이 있었다. 나라 지역의 불교문화재 역시 이 광풍의 소용돌이를 피해가지 못했는데 저자는 나라 일대의 불교문화재가 겪어온 굴절된 이면사까지 들려줌으로써 영욕의 역사를 함께 조망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2차대전 중 맥아더의 배려로 나라와 쿄오또가 공습을 면해 문화유산이 온존되었다는 이야기에 비해, 그전에 이미 일본인 자신의 손에 의해 이 유산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치부에도 메스를 들이대면서 독자들이 다각적으로 나라의 불교유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길안내를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일방적 시각’이 아닌 ‘쌍방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복안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이 책에서 힘주어 강조하듯이 일본의 고대 전기(前期)는 한반도와 중국의 문화를 차례로 받아들여 텐뾰오문화로 발전시켜나간 시대이다. 이제 우리도 이 과정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게 아닐까?
아울러 고대 일본인들의 이러한 노력을 돌아보면서 근대 일본인들이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이식해놓은 일본판 근대라는 형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얼만큼 해왔는지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라고, 이 새로운 답사기는 은연중 촉구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