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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책의 진화와 팟캐스트

 
 

윤동희 尹東熙

창비 인문사회출판부 편집자 abc@changbi.com

 

 

팟케스트 (4)_fmt보이는 라디오, 듣는 책, 귀보다는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안무로 무장한 대중가요. 모두 본질에서 벗어난 듯한 모습이다. 이제 사람들은 라디오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긴다. 책도 읽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일까? 최근 매체 간의 이종결합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에 힘입은 ‘스크린쎌러’를 꼽을 수 있다. 원() 콘텐츠가 영화냐 책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이 먼저 관심을 두는 매체가 책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책을 둘러싼 매체 환경의 변화를 감지한 출판사와 작가는 기획 초기단계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기도 한다. 프로모션 과정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다. 최근 출간된 정유정 장편소설 『28(은행나무 2013)은 소설과 함께 듣는 BGM 음원을 별도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한 바 있다. 일찍이 장르문학에서 선보인 책과 음악의 결합을 일반 대중소설로 확장한 이러한 시도는 대중이 책을 소비하는 방식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다. 책을 알리기 위해 독자들을 영화관 앞으로 끌고 가는 대신, 책상 앞에서 영화관의 기분을 살릴 수 있도록 한 배려인 것이다.

그뿐 아니다. 다큐멘터리, 예능, 시사교양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TV 프로그램이 단행본으로 만들어진다. 책으로 출간될 때에는 DVDQR코드를 활용해 관련 동영상을 제공하고, 심지어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팝업북(pop-up book) 형태로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그러니 출판편집자는 방송국 PD의 차기작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마련이다. ‘Why’ 씨리즈 ‘마법천자문’ 씨리즈 등이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재생산되는 모습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콘텐츠 지형이 바뀌면서 새로운 저자들이 유입되기도 한다. 화보집 혹은 자전적 에세이를 내던 유명 연예인은 사라지고 소설과 만화, 자기계발서 저자를 제2의 직업으로 삼는 유명 연예인이 늘어났다.

전반적으로 영상매체가 활자매체를 압도하는 모습이다. 이제 책은 방송 및 영상매체의 파생상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종이책을 위협하는 흐름은 콘텐츠 창조자인 작가가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는 저자가 직접 전자출판을 하려는 모습만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소수의 성직자와 지배층만 향유하던 지식이 모든 사람에게 흘러간 것과 같은 혁명(인쇄혁명)은 이제 책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세계적 석학의 대중강연 실황을 공유하는 TED, 아이비리그 강의를 유・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유튜브와 애플의 팟캐스트가 책에 앞서 대중에게 가닿는다. 출판계는 이를 책으로 만들어내기에 급급하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책이 진화할 것이라는 대의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확실한 것은 책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단순히 책만 잘 만들어서는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 책을 접하는 경로가 변화한 만큼 독자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을 우호적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최근 들어 위즈덤하우스, 창비, 문학동네가 운영하고 있는 ‘팟캐스트’(Podcast, 인터넷방송의 일종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때 접속해 듣고 싶은 부분만 청취할 수 있음)는 이러한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팟캐스트의 등장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이 바뀐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인터넷상에는 한해 출간되는 책의 종수를 능가하는 방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이를 어떻게 모아내느냐, 개인의 취향에 맞게 가공하느냐는 알타비스타, 구글 같은 검색엔진의 등장 이전부터 큰 고민거리였다. 가장 오랫동안 지식을 가공, 유통, 축적하는 역할을 해온 출판계에서는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보를 걸러내는 거름망, 정보를 모아내는 허브의 역할로서 팟캐스트는 이미 책에 준하는 미디어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한다. 최근 시작된 각 출판사들의 팟캐스트는 책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에서 지식의 허브를 만들고, 책에 우호적인 미디어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고민의 결과다.

하지만 숨 가쁜 변화에 무작정 휘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동시에 들려온다. 지구의 역사에서 기록의 역사는 지극히 짧다. 그럼에도 인류는 책을 통해 짧은 시간에 놀랄 만한 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책은 지식과 문화의 공유수단이자, 세대를 초월한 전파수단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인터넷과 SNS의 원형이다. 그리고 여전히 제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는 매체다.

새롭게 등장한 웹페이지와 전자책이라는 형태가 ‘지식의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검증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물론 검증을 기다리기보다 공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한 곳도 있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이 책을 파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서버 대여업에 뛰어들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식의 유통, 공유, 축적을 담당하는 서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지식 저장공간에 관심을 갖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가상공간에 담긴 정보가 한번에 사라지는 건 대형도서관이 화산활동, 지진 같은 천재지변에 의해 사라질 확률보다 높다는 게 위험요소이기는 하다.

더이상 책과 다른 매체 사이의 경계를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진 오늘날 팟캐스트는 가장 주목받는 미디어다.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나 비평가 혹은 이러한 메시지를 받기만 하던 독자가 한 방향의 관계 대신 각자 책과 관련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팟캐스트는 책을 둘러싼 미디어 지형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제 우리는 전자책은 물론이고 다양한 매체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책, 팟캐스트로 대변되는 우호적인 매체의 등장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이 그 모양과 성질을 달리하며 진화하고 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책〓종이’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