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경위

 

올해 사회인문학평론상 공모에는 총 44편의 원고가 도착했다. 세명의 심사위원이 그중에서 각각 3편 내외를 추천하여 총 8편이 본심 대상이 되었다. 719일에 열린 심사회의에서는 별다른 이견 없이 비교적 수월하게 수상작을 선정할 수 있었다. 본심 대상작 중 최현희 문순표 강희정의 글이 진지한 문제의식과 수준 높은 글솜씨를 보여주었으나, 이영유의 글이 내장한 선 굵은 주제의식과 그것을 밀고 나가는 일관된 논리의 힘은 수상작으로 선정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본심 대상작 8편은 다음과 같다.

강희정 「대한민국은 지금 실어증: 나르시시즘의 회복을 위한 탈출계획」, 박홍근 「개인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이다」, 박성열 「인간의 레고화()를 넘어서: 인문학과 자기계발의 사이에서 ‘나’와 ‘너’를 사유하다」, 문순표 「오늘날의 전위 또는 일베의 기원: 거부인가, 전도인가?」, 유소연 「청년착취, 한국경제의 맨 얼굴」, 이영유 「2013년 대한민국, 우리가 선거하지 않는 이유」, 최새은 「세대갈등 논쟁에서 드러난 이야기와 가려진 이야기」, 최현희 「우리, 이효리적 주체들: 이토록 곤궁한 얼굴의 정치학」 (가나다순)

 

 

 

심사평

 

올해로 세번째를 맞이하는 사회인문학평론상은 현장의 사회적 의제를 비평의 언어로 전유하여 사회의 성찰성과 인문학의 현장성을 복원하자는 이중의 성찰을 위한 기획이다. 두차례의 공모를 통해 이러한 기획의도가 많은 분들의 호응을 얻어 다수의 훌륭한 원고를 보내주셨고, 이번에 응모된 원고들의 주제 선정과 글쓰기 방식을 보면 사회인문학평론이 어느정도의 윤곽을 잡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응모작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문학평론은 물론 이른바 문화평론과도 다른 영역에서 포착된 것이며, 그것을 틀 짓고 끌고 나가는 규범과 논리에서도 사회인문학평론 특유의 방법의식이 어렴풋이 산견(散見)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인문학평론의 내용과 형식이 일정한 틀로 고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장의 역동성과 인문적 사유의 풍성함이 사회인문학의 요체이기에 그렇다. 다만 분석이 아닌 주장만을 앞세운 독백, 화려한 이론을 한껏 구사한 현학취미의 패치워크, 사회적 의제를 개인 경험으로 환원한 ‘사소설’적 자기고백, 그리고 대중문화 현상을 고정된 틀로 재단한 비평적 소품 등은 본 공모에서는 지양되어야 할 글쓰기 경향이다. 이번 응모작들 중에서도 이런 경향에 속하는 작품이 꽤 있었는데, 공모가 거듭될수록 현장과 인문학 양쪽의 성찰성을 높일 수 있는 수작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이번 심사에서 본심 대상작으로 선정된 8편은 모두 위에서 말한 경향을 극복한 수준작이었다. 특히 최현희 문순표 강희정의 원고는 모두 참신한 주제의식과 수려한 글솜씨를 보여주었다. 이번 응모작들 중에는 ‘일베’ 현상을 다룬 글이 유독 많았는데, 이 현상이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확인케 해주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음을 고백해둔다. 다만 그 상처 때문에 일베 현상을 냉정하고도 심층적으로 다루는 일은 아직 어렵다는 생각이다. 다수의 응모작이 즉각적 거부와 규범적 단죄에 치중하여 깊이있는 해부와 분석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순표의 글은 이론적 성찰을 바탕으로 일베 현상을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난해한 개념과 용어가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채 구사된 탓에 논지가 불분명하고 현학적 색채가 짙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강희정의 글은 날이 갈수록 타자의 욕망에 종속되어 자아나 주체라는 말이 의미를 잃어가는 한국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빼어난 성찰이다. 다만 주제가 너무 크고 핵심개념인 나르시시즘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상작으로 선정하기에는 모자라다는 인상을 주었다. 얼굴과 이름의 정치학이란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몸’을 주제화한 최현희의 글은 수상작에 가장 근접한 것이었다. 특히 이효리라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사회의 인문적 성찰로 전유하는 방법의식과 하나의 평론을 맛깔난 읽을거리로 제시하는 글솜씨는 높이 평가되기에 마땅했다. 다만 사유의 힘이라는 측면에서 수상작에 견주어 강렬함이 부족했다. 수상작으로도 손색없는 작품이 최종 선정에서 아쉽게 탈락한 것은 심사위원으로서는 행복한 경험이었음도 덧붙여 둔다.

이영유의 「2013년 대한민국, 우리가 선거하지 않는 이유」는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논란 없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지난해의 총선과 대선 결과가 한국사회의 시계바늘을 한참이나 되돌려버렸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번의 선거가 사회의 피로도에 어느 정도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가를 이만큼 실감할 수 있었던 때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한국사회는 선거 때마다 투표율을 높이려는 캠페인이 선거운동만큼의 열성으로 펼쳐진다. 특히 젊은 층에 대한 선거독려는 마치 그들의 낮은 투표율이 한국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양 투표율 제고의 가장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다. 이영유의 글은 이런 상황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다.

이 글의 혜안은 세대론으로 흐르기 쉬운 젊은 세대의 낮은 투표율 문제를 ‘투표할 권리’의 공공적 재구성이라는 성찰적 관점으로 전유했다는 점이다. 투표권을 재산소유권 등 근대 자유주의의 소유권 패러다임으로부터 탈각시켜 권리 자체를 구성하는 ‘권리의 권리’로서 인민적 공공성으로 기초 지우려는 시도는 심사위원 모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별다른 인용 없이 스스로의 언어만으로 뚝심있게 글을 밀고나가는 논리의 힘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다만 후반부로 가서 다소 힘이 소진되는 듯한 감이 있었지만 결정적 결함이 될 수는 없었고,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당선자께는 감사와 더불어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부디 앞으로도 사회인문학평론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사회인문학이 지향하는 이중의 성찰이 많은 분들의 공감과 협력을 통해 한층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 김수이 김종엽 김항 |

 

 

 

수상소감

 

161-수상자-이영유_fmt

이영유

1988년생. 숙명여대 영문과 대학원 재학중.

 

 

 

우리는 무엇 때문에 평론을 읽습니까? 진리를 찾기 위해서도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여가시간을 선용하기 위해서도 평생학습의 제도권 밖에서의 자가적 실행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평론은 진리를 찾게 하기엔 목적을 너무나도 방만하게 주장하며 지식을 얻게 하기엔 사실을 너무나도 선택적으로 배치하기 때문입니다. 평론을 여가로 읽자니 우리는 독서대중의 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왔고 평론으로부터 교훈을 얻자니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너무 가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평론을 읽습니까?

평론은 입장의 표명입니다. 평론이 가능한 세계는 입장과 관점 자체에 높은 가치를 두는 세계입니다. 정확히 말해 평론은 ‘인격적인 것’이 가능한 세계를 조건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평론가가 의견을 갖고 당신을 설득하려 한다면, 그는 당신이 자신의 근처에 머무르는 이유가 지식이나 정보나 즐거움이나 교훈의 획득 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평론가는 위험하게도 자신의 입장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며 그 입장 속에서 당신의—의지적이나 무의식적인—사회적 영혼에게 응답함으로써 당신과 대화를 시작하려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 이유로 평론은 타인의 입장에 인격적인 가치를 둘 수 있는 ‘당신’을 필연적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평론의 급진성은 평론을 읽음으로써 인격의 도래를 되살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평론은 ‘인간의 의견’에 주의를 기울이는 감각의 구조를 재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보잘것없는 입장은, 금방 잊힐 수도 있고 아예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껏해야 사유에 약간의 변침(變針)을 가져오는 것이 전부일 것임을 인정하지만 그 조금을 과장할 수 있는 것이 인간 각자의 사유의 시간이며 윤리라는 것 또한 믿습니다. 제 입장을 읽어주신, 또 그것이 좋은 지면에 실릴 수 있게 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공부를 ‘시작’하게 하시고 가장 순수한 성실함으로 제게 ‘말’을 가르쳐주시고 저를 ‘타자와 세계’로 이끌어 내주신 김영민 선생님께 제 모든 존경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진실로 ‘파르헤시아’로서 계시기에 제가 ‘신중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께 제 존재 전체를 빚졌습니다. 저와 함께 사유와 대화의 급진적 실험을 하고 있는 난설 동학들, 은교씨, 영광씨, 주희씨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공부를 도와주시고 항상 응원해주시는 어머니, 아버지, 동생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