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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작은 소통의 시작부터
「천안함 프로젝트」 논란과 공동체상영
김효근 金孝根
창비 청소년출판부 편집자 depre83@changbi.com
일단 고백부터 해야겠다. 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 게으름 탓에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었고, 극장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상영은 나에게 우선순위가 한참 뒤였다. 결국 뒤늦게 포털 싸이트에서 다운로드하여 보았고, 지난 10월 18일 세교연구소의 주최로 ‘인문까페 창비’에서 열린 상영회에 참가했다. 지면을 할애받아 영화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지만 그리 능동적인 관객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에 얽힌 경위를 새삼 이 글에서 구구절절 밝힐 필요는 없겠으나 간단히 요약하자면 표면적으로는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항의하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겁먹은 극장이 일방적으로 상영을 중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당초 극장 측에서는 영화의 흥행이 나쁘지 않아 상영관 및 상영회차를 늘릴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영을 맡은 극장 메가박스는 개봉 이틀 만에 “일반관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모호한 이유로 사람들에게서 이 영화를 볼 기회를 빼앗았다. 누가 봐도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메가박스의 행태는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뒤에 「천안함 프로젝트」의 관람은 꽤 수고를 거쳐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일단 상영관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국내 3대 IPTV 또한 한달 만에 다운로드 서비스를 중지했다.
정말로 누군가의 입김에 의해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이 중지되었는지 그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대중에게 다가갈 기회를 박탈당했다. 하지만 대중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청계천광장에서의 대규모 무료상영회, 소규모 단위의 공동체상영 등이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누군가가 보아서는 안된다며 막았지만 많은 이들은 굳이 수고를 해가며 이 영화를 찾고 있다. 9월 상영중단 이후 꽤 시간이 흘렀지만 공동체상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상영을 원하는 목소리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흐름은 아니다. 천안함을 둘러싼 논란의 양상 자체가 핍박과 금지의 상징이 된바,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의 소행이라는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금기시되었고, 아주 작은 의심이라도 품었다가는 헌법재판관 후보라 해도 ‘종북 좌빨’이라는 딱지가 붙기 십상이었다. 그런 민감한 소재를 다룬 「천안함 프로젝트」가 미심쩍은 이유로 누군가에 의해 금지당했으니, 그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 그리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한데 과연 이 영화는 상영을 금지해야 할 정도로 자극적이고 선동적일까? 「부러진 화살」 등을 연출한 정지영(鄭智泳) 감독이 제작하고 백승우 감독이 연출한 「천안함 프로젝트」는 7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0년 3월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사건에 대한 의혹을 다루고 있는데, 북한군 어뢰의 소행으로 결론 내린 민군합동조사단의 백서를 차근차근 점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선체가 깨끗하다는 백서의 서술과 전혀 다르게 세로로 긁힌 수많은 상처, TOD(열상감시장비) 영상에는 전혀 잡히지 않은 폭발의 흔적 등 여러 의문점에 대해 일반인도 알기 쉽도록 설명한다. 논란의 격렬함에 비해 영화는 시종일관 차분하다. 섣부르게 주장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에 접근하고 있다. 백승우 감독이 각종 인터뷰에서 누차 강조한 대로 정부측의 해명이 아무리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비아냥거리지 않으려고 했다”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진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상영되어서는 안되는 불온한 영화로 인식한 모양이다.
공동체상영의 분위기 역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인문까페 창비’에서의 공동체상영은 그러했다. 감독은 물론 참석한 관객도 격앙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의견을 피력했다. 자칫 민감할 수 있는 천안함 장병 유가족의 부정적인 반응에 관한 질문에 백승우 감독은 자신이 평생 떠안고 가야 할 짐이라며 나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미 알려진 사실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도 「천안함 프로젝트」는 어디까지나 대중영화이기에 가장 쉬운 것들부터 말해야 했다고 답했다. 이후에는 각양각색의 참석자들이 저마다 의견을 이야기하며 공동체상영회는 곧 여럿이 소통하는 자리가 되었다.
‘소통’은 「천안함 프로젝트」를 둘러싼 일련의 소동에서 핵심을 관통하는 단어이다. 백승우 감독은 영화의 메시지나 연출의도를 묻는 질문에 일관된 답을 내놓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곳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시민들의 인터뷰 장면은 천안함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된 채 소통의 장애를 겪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는 영화가 상영 자체를 부정당하며 소통의 부재를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으니 기막힌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동체상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아직도 소통을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안함사건 이후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 영화를 발판 삼아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하면 어떨까.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저 포기하고 가만히 있는다면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꽉 막힌 채 변화하지 못할 것이다. 공동체상영에 참가한 날, 책장에 꽂아두기만 한 채 읽지 않고 있던 『천안함을 묻는다』(강태호 엮음, 창비 2010)와 『천안함은 좌초입니다』(신상철, 책보세 2012)를 뽑아들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다음은 사람을 물색해야겠다. 나와 이 주제로 치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