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교육시평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가 남긴 교훈
정지영 鄭址英
천안 북일고 교사 stopyung@hanmail.net
일요일 저녁, “일병 위의 계급이 뭐야?” “소대보다 큰 거는 뭐야?”라며 아들이 군대 계급과 편제를 궁금해한다. 밥을 먹던 아내도 “군대리아 맛있었어?” 하면서 16년 전에 만기전역한 필자에게 군대생활을 물어본다. 요즘 모 방송국의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예능의 대세가 된 것 같다. 텔레비전을 통해 접하는 군생활에서 아내와 아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군대라는 곳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다.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는 공통의 화젯거리가 생긴 것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은연중에 열살 아들이 상명하복의 복종과 계급의 위계질서를 배우고, 아내가 끈끈한 전우애로 미화된 군대문화를 긍정적으로 여기진 않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러면서 불현듯 올해 7월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에서 병영체험을 하던 다섯명의 학생이 파도에 휩쓸려 저세상으로 떠난 사건이 떠오른다. 계절이 두번이나 바뀌었음에도 새삼 기억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관리부실로 인한 인재(人災)였다며 관련자 처벌과 교육부의 대책 마련으로 마무리되고 있지만, 이 사건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문화를 추종하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과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일이 터진 학교는 충남 지역에서 최상위 성적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지역 명문고로서, 학교의 위상에 걸맞은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있었음에도 전에 없던 병영체험 캠프를 추가하여 진행하고 있었다.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며 입시공부밖에는 해본 것이 없는 온실 속의 화초들로 하여금 극기체험을 통해 인내심과 자립심을 키움으로써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협동심을 배우게 하겠다는 교육적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병영체험이었을까?
필자가 근무하는 지역을 관할하는 충남교육청에서는 2010년 ‘나라사랑 병영체험 캠프’를 학교에 추천하고 관련 예산을 지원했다. 충남교육청뿐 아니라 부산, 대구, 울산, 충북 등지에서도 예산지원을 했는데, 충남교육청의 지원규모가 가장 컸다고 한다.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심을 함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2010년 천안함사건으로 비롯한 남북의 첨예한 대치로 흉흉한 정국에서 충남교육청은 인성교육을 위해 적극적으로 강조하던 항목인 ‘나라사랑’을 이같은 ‘안보교육’으로 곧장 연결시킨 것이다.
또한 30년 군사정권을 거치며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기강과 규율의 문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20년이 지났지만 학교 수련회, 대학생 MT, 신입사원 교육, 직장 체육대회 등 일련의 통과의례 속에 숨은 그 잔재가 공동체의식을 기른다는 명목으로 사회 곳곳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군과 민이 함께하는 민간인 극기체험’으로 1997년에 시작된 해병대체험이 학교와 기업, 관공서 등에서 사설캠프로 확대 실시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특히 천안함사건 이후에 학교에서 병영체험을 선호하는 현상이 더욱 확대되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에는 84개 학교의 학생들이 병영체험에 참가했는데, 2012년에는 515개로 그 수가 여섯배나 늘어났다고 한다.
그밖에 다른 사정도 있다. 학교현장에서는 입시제도를 선진화한다며 교육부가 무리하게 도입한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대비할 수 있는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한 여건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터라 기존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최근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인성과 협동심을 교육해야 할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이를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기 때문에 병영체험을 선택하는 학교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사건은 군대문화가 팽배한 사회적 분위기와 졸속으로 진행된 대입제도의 문제점, 그리고 남북의 불안한 정세가 복잡하게 얽혀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사건 이후 교육부는 체험학습의 축소와 안전사고 예방교육 의무화 같은 사후 약방문식 대책만 내놓고 있다. 하지만 경험적 지식을 쌓고 체험 속에서 다른 구성원과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올바른 인성을 배울 수 있는 산교육의 장은 학생들이 나눔과 배려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또한 교육청이나 학교가 주체가 되는 행사가 아니라 각자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학생 주체의 체험학습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도 사건이 터진 다음에 쏟아내는 비난과 질책보다는 진정한 교육에 대한 반성과 고민을 함께함으로써 체험학습을 통해 진로를 찾아가는 우리 학생들을 응원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교육오년지소계(敎育五年之小計)’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불도저식으로 2년 만에 바꾼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이번 정권에서도 ‘융합형 교육과정’이라는 명분하에 또다시 새롭게 개발된다고 한다. 잦은 변경으로 갈팡질팡하는 교육제도 속에서 미래의 창의적 인재가 탄생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탁상행정으로 손쉽게 바뀌는 정책이 아닌,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통해 학생 스스로가 정체성을 찾고 타자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를 만들어야 한다.
더이상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되는 학생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저 하늘로 떠나간 다섯명의 아이들을 기억하면서 되새겨야 할 것이다. 평화로운 일요일 저녁에 막막한 마음으로, 천안공원묘지에 묻힌 고(故) 장태인, 진우석, 이병학, 김동환, 이준형 군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