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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병초 李炳初
1963년 전주 출생. 1998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밤비』 『살구꽃 피고』가 있음. kbc88@wat.ac.kr
송사리떼
산 그림자 비친 못물 속에 벚꽃이 환하오
연습장에 끼적거린 글씨들처럼 갈피 못 잡는 송사리떼가 흰 꽃잎에 살짝 물린 연분홍에 홀려 몸띵이째 들이받소 냅다 들이받고 이리저리 휘갈겨지는 몸짓들을 못물 속 뜬구름이 감싸주오
송사리들은 꽃잎 겹쳐진 때깔 속에 들어가 씨를 삐고 싶은지, 오죽잖은 글씨 휘갈기며 몸띵이를 내뺐다간 꽃잎에 덴 듯 휘까닥 배를 뒤집곤 하오
송사리들에 홀려 겨우내 기역자로 휘어졌던 속이 펴지는 중이오
산문(山門)
송홧가루를 빠져나온 바람이
저만치서 입술을 훔친다
바위틈에 끼어 크다 말았어도
밑동이 내 허벅지만한 소나무
솔밥들을 매달고 쭉 찢어진 데를
시린 햇살이 꽂힌다
배꼽 떨어진 삽처럼 막심 못 쓸
눈두덩 주저앉은 저것의 속내
바위틈에 똬리 트느라고 애 꽤나 녹았겠다
어디 큰판에 가서 화끈하게 붙어보지도 못한
푹 꺼진 윗목 같은 날들
먹잇감에 쫓기던 새벽 꿈자리를 매달고도
맨살에 와닿는 실바람에 화악 쏠리던 시절이
왜 없었으랴
집 두고도 집 그리워했던
흰머리 늘어나는 머리맡이
우툴두툴 밑동에 맺혔을 거다
누가 캐가려다 못 캐간
저 뒤 캥기는 자세로 두고두고 늙어갈 소나무
아무 말도 못하고 쭉 찢어진 데를
송홧가루 묻은 햇살이 가만가만 처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