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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근혜 1년,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
연합정치의 진전을 위하여
변혁적 중도주의의 시각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등과 편서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lee87@skhu.ac.kr
1. 왜 변혁적 중도주의인가?
연합정치를 변혁적 중도주의의 시각에서 검토한다는 취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주지하다시피 연합정치는 최근까지 야권의 주요한 정치전술이었지만 변혁적 중도주의 자체는 아직 생소하고 어려운 개념이며 구체적인 정치전술과 어떤 ‘주의(主義)’로서의 추상 수준 사이에서 큰 차이가 있어 양자의 결합이 그리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2012년에는 선거 승리라는 단기적 정치목표를 넘어서 남한사회의 개혁이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으로 이어지는 큰 변화에 대한 원(願)과 변혁적 중도의 지향을 담는 용어로 ‘2013년체제’가 제시된 바 있다.1) 이러한 의미에서 2013년체제론은 일종의 ‘변혁적 중도주의의 보급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2012년 선거국면에서 2013년체제론을 매개로 연결된 연합정치와 변혁적 중도주의의 관계는 사실 꽤 오래된 것이다.
변혁적 중도주의는 ‘온건개혁세력, 각종 진보세력, 합리적 보수세력’이 ‘분단체제 변혁’을 목표로 광범위한 중도세력의 형성을 추구하는데,2)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2008년부터 연합정치 논의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2012년 선거국면에서는 연합정치가 필연적 흐름으로 보였지만, 2008년으로 되돌아가보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3)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의 양대선거에서 민주파가 참담한 패배를 겪은 이후 연합보다 ‘창조적 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이명박정부가 과거 수구적 정권과 차별적인 보수정권이 되리라는 예단을 근거로 민주와 반민주(혹은 독재)라는 구도를 계속 한국정치에 적용하는 것은 낡은 사고이며 민주파 내의 진보세력과 보수적 개혁세력의 분리를 촉진하는 것으로 정세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세인식이 분단체제라는 한반도적 상황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후 사태의 전개가 잘 보여준다. 분단체제하에서 수구적 기득권 세력이 여전히 한국사회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변혁적 중도주의는 ‘창조적 분화’가 중도적 지혜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이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를 부를 것이고, 따라서 분단체제하에서 받는 억압의 극복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세력의 연합으로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의 정세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4) 이러한 주장에 대해 중도가 어떻게 변혁적일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변혁적 중도라는 변증법적 결합은 우리 상황에서 변혁적 과제가 그 시기 ‘급진적’ ‘혁명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선보다 중간에 가까운 노선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5) 즉 분단체제 극복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이에 기여할 수 없다면 아무리 급진적인 주장이라도 ‘변혁적’으로 되기 어려우며, 반대로 중도적 길이 분단체체 극복의 현실적 대안이 될 때는 ‘변혁적’으로 된다.6)
물론 연합론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기 시작한 데는 2008년 촛불항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이 본격화되면서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폭발하자 이를 담아낼 수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반이명박 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민주파 내에서 공유할 수 있는 정치연합, 즉 선거연합이 그 구체적인 전술로 제기되었다.7) 이에 따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선거연합이 성사되고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연합정치는 2012년까지 야권의 중요한 정치전술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11년 처음 제창된 2013년체제론은 이 시기 연합정치의 주요 목표로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변혁적 중도주의 보급판으로서의 효과를 어느정도 발휘했다. 그러나 연합정치가 2012년의 선거 승리만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의 출범에 값하는 비전의 공유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 이러한 비전은 변혁적 중도주의를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점 등 2013년체제론의 근본 취지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연합정치가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2013년체제론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직후 백낙청은 연합정치가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진정한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하는 한편 이러한 관점에서 연합정치의 질적 제고를 위한 여러 제안을 한 바 있다.8) 그러나 대선이 목전에 다가오고 후보단일화 논의가 본격화되던 시점에서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것이 이 글에서 다시 연합정치와 변혁적 중도주의의 관계를 논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변혁적 중도주의를 따르지 않은 것이 2012년 연합정치가 실패한 원인이라고 강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기로에 처해 있는 연합정치가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는 데 변혁적 중도주의가 여전히 유의미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지, 그렇게 되기 위해서 변혁적 중도주의 자체에는 어떤 성찰이 필요한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2. 연합정치가 직면한 난제
승리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2012년 대선 패배가 민주파에 준 충격은 2007년 대선에서 패했을 때보다 더 컸다. 2007년의 패배 이후에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논의라도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하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정부와 국민 사이의 허니문도 끝나가고 카드 신용정보 유출대란, 조류독감 확산 같은 국가적 재난사태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박근혜정부에 대한 달라진 민심을 보여줄 수 있는 호기임에도 이러한 노력을 주도해야 할 민주파의 진로는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연합정치에 대한 논의가 이러한 문제점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촛불항쟁을 거쳐 2010년 6월 지방선거로 나아가던 2010년초에 야권과 시민사회는 정책연합 및 공동정부를 매개로 하는 연합정치로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2010년 3월 4일 야5당은 지방선거에서 공동승리와 연합이라는 원칙에 대해 합의했다.9) 이러한 상황과 달리 지금은 각 정치세력이 연합보다는 경쟁에 전념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연합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데는 나름의 객관적인 이유가 있다.
선거 전 연합정치가 작동하려면 참여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에 대해 어느정도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해야 하는데 현재는 이것이 어렵다. 무엇보다 야권의 주요 정치세력이 각기 혼란스러운 재편기를 겪고 있다. 진보정당들은 패권주의, 종북주의 논란을 겪으며 분열한 이후 여전히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연합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민주당은 안철수(安哲秀)세력과의 경쟁으로 폭풍전야 같은 상황이다.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창당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새정치신당’은 여론 지지도에서 민주당을 압도하지만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게다가 연합에 앞서 혁신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높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연합정치를 사실상 선거 승리의 수단으로만 간주함으로써 각 정치세력의 혁신을 통한 화학적 결합이 진행되지 못했던 것이 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이자 대선 이후 기존 야당에 대한 지지율이 급격하게 하락한 원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연합의 필요성만을 강조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이처럼 연합정치가 어려워진 객관적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연합정치를 부정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선거결과라는 측면에서 연합정치가 비록 기대를 완전히 만족시켜주지는 못했지만 한국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민주파가 보수파와 일대일로 맞설 수 있는 정치역량을 만들어주었다. 2012년 총선 비례투표에서 민주파는 보수파보다 많은 득표를 했고,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진 대선에서도 야권 단일후보인 문재인(文在寅)이 50%에 가까운 48%를 득표했다.10) 그리고 연합정치의 위력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선거 시기에 복지, 경제민주화 같은 민주파의 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연합정치가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민주파가 수구헤게모니를 극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정치전술이다. 따라서 매 시기 정세에 부합하는 연합정치의 실현방도를 찾아가야 하는바, 현재 이를 위해 반드시 검토해야 할 문제는 다음 두가지이다.
첫째, 연합과 혁신이라는 두 과제 사이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다. 2012년 선거국면에서 두 과제를 동시에 제기했으나 실천적으로는 연합의 측면만이 강조되면서 혁신의 과제는 뒷전으로 밀리곤 했다. 지금까지 후보단일화와 연합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대체로 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전히 연합정치의 필요성에 동의하더라도 연합이 혁신과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둘째, 한반도 차원의 변혁과 남한사회의 개혁을 병행추진한다는 변혁적 중도주의의 지향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선 전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시민들의 대북정서를 악화시키고 남북한의 개혁과 한반도적 차원의 변혁 간 선순환 혹은 병행추진에 대한 믿음을 허물어뜨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단체제 극복이 과연 연합정치의 지향으로 계속 유의미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3. 연합은 혁신과 결합될 수 있는가
비례대표제나 결선투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과는 달리 총선과 대선에서 최다득표제를 채택한 우리 경우는 선거 후 연합이 불가능하고 연합공천이나 후보단일화 같은 선거 전 연합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선거 전 연합은 정치세력 간 경쟁을 통한 혁신을 제약하는 문제점이 있다. 연합과정이 주로 기존 정치세력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진행되기 때문에 새로운 세력과 아이디어가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축소된다. 연합을 구성한 정치세력의 내부 공천과정이 민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점을 어느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의 대중적 기초가 취약한 상태에서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이뤄지는 것도 쉽지 않다. 2012년 민주파가 세력결집에는 성공했지만 각 정치세력이 약속했던 기득권 내려놓기가 얼마나 실행되었는가를 보면 실망스러운 면이 많다.
그렇지만 혁신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것을 연합만의 문제로 돌리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각 정당에서 얼마나 혁신이 진행되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민주파는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에서 각개약진했지만 이것이 혁신을 촉진하지는 못했다. 야권의 지리멸렬한 모습은 정치의 활력을 더 떨어뜨리고 정치에 대한 불신만 높였다. 촛불항쟁 이후 연합정치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흐름이 각 정당에 흘러들어감에 따라 혁신에 대한 요구와 기대도 높아질 수 있었다. 다만 연합만으로는 혁신을 보장할 수 없었으며 혁신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연합정치의 파괴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따라서 연합을 무조건 혁신과 대립시키거나 반대로 연합만능론에 빠지는 일이 없이 매 시기 연합과 혁신을 결합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연합을 위한 정치적 환경이 악화된 상태에서 연합정치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한층 창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야권 내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이를 혁신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과도한 세 불리기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새로운 정당건설을 추진하는 세력이나 세가 약한 정당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판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신의 취약한 인적・물적 자원을 노출시켜 정치세력으로서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자기파괴적 경쟁을 초래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11) 과거 방식의 세력경쟁보다는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의제의 개발과 실행에 제한된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낡은 진보나 수구와는 차별적인 정책의 발굴에 주력하고 성과를 쌓아가는 것이 낡은 정치를 극복할 대안으로 인정받는 빠른 길인데 이러한 작업이 가능한 지역은 많지 않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는 공천 및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치적 기득권을 극복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야권 내 기득권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은 연합의 필요성만 강조하거나 다른 야권세력을 분열주의로 공격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이러한 태도는 연합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확산시킬 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인물의 진출을 가로막는 기득권 내려놓기를 먼저 감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당과의 협상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호남 일부지역에서 기초단체에 무공천을 하는 방법이 있다. 나아가 현재 민주당 소속의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대한 객관적 성과평가를 진행해 그 결과를 공천에 반영함으로써 인적 교체를 추진하는 방안도 있다. 야권 내 소수정당과 민주당이 이러한 방향으로 경쟁을 진행한다면 혁신을 촉진하고 더 높은 수준으로의 연합을 위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 반대로 세 불리기와 기득권 고수가 충돌할 때는 모두가 패배하는 길만 남는다.
다음으로 객관적 조건에 맞는 연합방식을 찾아야 한다. 현재 연합정치가 직면한 문제는 연합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높임으로써 해결해가야 한다. 지금처럼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는 연합정치가 최대의 효과를 내기 어렵다. 민주파는 2017년 수권을 목표로 하는 통합적 수권정당을 건설해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 실시되는 2016~17년의 정치적 전환기를 준비해야 한다.12) 이때에도 지난 총선의 지분 나누기와 대선의 지루한 단일화협상을 반복한다면 민주파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민주당과 새정치신당은 물론이고 진보정의당도 단일정당으로 결집해 시대전환의 중심 동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는 지분을 나누는 지루한 정치세력 간 협상에 정치적 자원이 지나치게 많이 투입되는 상황을 막고 일종의 연합적 정당 내에서 최대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연합정치를 전환하는 것이다. 12)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물음이 제기될 텐데, 정책적인 측면에서 걸림돌은 생각보다 적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결성된 통합진보당도 표면적으로 보면 중도개혁, NL, PD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합이 선거를 앞둔 몸집 불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자기혁신의 과정이 결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여러 문제를 낳았다. 현재의 정의당도 전통적 진보정당과 개혁당-열린우리당에 참여했던 세력이 하나의 정당으로 결합해 있다. 이는 현재의 정당 간 벽을 허무는 통 큰 연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일정당으로 결집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비전의 합의수준을 더 높여야 하는데 이러한 연합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변혁적 중도주의가 이에 중요한 참조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또한 누가 통합과 연합의 대상이고 아닌가에 대한 기준도 함께 제시해준다. 통합적 수권정당을 건설하는 데 더 큰 문제는 단일정당 내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있다. 과거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합당은 가능했지만 민주당이 그러한 통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현실도 민주당과의 통합이 소수세력에게 불리하다는 경계심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이는 당의 지도부 선거와 공천방식의 획기적인 혁신이 병행되어야 해결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기득권 내려놓기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지혜를 더 모을 필요가 있다.13) 그리고 통합적 수권정당의 결성이 곧 연합정치의 문제가 당내 경쟁으로 해소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장의 수권보다 미래지향적 비전의 대중화와 새로운 정치실험을 더 중요한 목표로 삼는 경우에는 독자정당으로서 정치활동을 전개할 필요도 있다. 다만 이들도 우리 사회에서 수구파 헤게모니를 극복하는 데 이해를 같이하고 또 현실적으로 의회진출의 가능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통합적 수권정당은 이들과 국지적이고 제한적인 연합을 실현함으로써 연합정치의 폭을 넓혀야 한다. 요약하자면 중기적으로는 더 강한 수권정당과 제도정치에서 제한된 목표를 갖는 소수정당 사이의 연합이 연합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렇지만 단기간 내에, 특히 이번 지방선거 전에 이러한 수준으로 연합정치가 진전되기는 어렵다. 통합적 수권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정치 구상은 빨라야 2016년 총선을 목표로 추진해야 할 중기적 과제이다. 단기적으로, 특히 지방선거까지는 경쟁과 연합이 공존하는 가운데 연합정치의 진전을 위한 정치적・조직적 조건을 만들어낼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적어도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정부의 폭주를 저지하고, 2016년 총선에서 민주파가 다시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선거를 정치화하지 않으려던 과거 여당과는 달리 박근혜정부는 현재 민주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광역 및 기초 단위 공략에 나서고 있다. 지방선거의 승리를, 과거 민주파의 공세에 밀려 내놓았던 공약을 폐기하고 수구적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계기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지방선거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져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임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여론조사는 민주파에 부정적이지 않다.14)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지지도는 서로 접근하겠지만 수도권, 충청권에서 민주파가 승리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섣부르게 패배주의에 빠질 일은 아니며 명확한 목표를 갖고 지방선거에 나설 필요가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민주당을 제외한 야권 정당이, 그들이 현재 주장하는 바와 달리 실제로 모든 선거에서 경쟁적 구도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고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조정이 필요한 지역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광역단위에서 보면 수도권, 부산, 충청 등에서 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세의 엄중함을 고려하면 이 지역에서 야권 승리에 훼방꾼 노릇을 하는 정치세력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호남지역을 포함한 다른 지역, 그리고 기초단위에서는 필요하다면 경쟁에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이는 당장 야권 전체의 선거결과에 다소 부정적인 영향은 미치겠지만 야권 정당들이 자신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그 이후 연합을 위한 구체적인 근거를 만드는 계기로 삼는다면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일만은 아니다.15)
4. 남한의 개혁과 한반도 차원의 변혁은 선순환할 수 있는가?
변혁적 중도주의가 핵심적 목표로 삼는 분단체제의 극복에 대해 여전히 오해가 적지 않다. 이를 통일지상주의와 등치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남한사회의 개혁과 한반도 차원의 변혁(남북한의 점진적 통합과정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을 상호연관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통일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발상과 거리가 멀다. 이는 단순히 분단선을 없애는 작업이 아니라 한반도체제를 변혁해가는 과정이다.16) 그럼에도 남아 있는 오해를 불식하고 논의를 발전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실천의 두 차원을 구별해야 한다.
첫째 차원은 남한사회의 개혁전략 수립 및 추진에 있어 분단체제라는 조건을 고려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급진적 프로젝트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허한 급진주의에 그치며, 분단체제 극복의 변혁적 지향이 거세된 온건개혁주의는 기껏해야 지속 가능하지 않은 단기적 성과를 얻는 데 그칠 것이다. 분단체제로부터 발생하는 가장 큰 제약은 우선 정치적인 것으로, 한국사회의 세력관계를 매우 불균형하게 만들고 특히 보수가 수구세력에게 ‘하이재킹’됨으로써 합리적 보수의 주장조차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정치환경을 구조화했다. 이는 정치민주화만이 아니라 경제민주화, 복지 등 경제사회 영역의 개혁을 추진하는 데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조건이다. 따라서 변혁적 전망에서 볼 때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개혁조차 이루어지기 어렵고 일시적으로 얻은 개혁의 성과도 무너지기 쉽다. 결국 수구적 보수의 헤게모니를 극복할 정치사회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을 때 개혁의 지속적인 추진이 가능하며, 이러한 작업은 분단체제를 약화시키고 극복하는 일과 결합될 때 더 용이해질 것이다. 전통적 변혁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념과 지향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진보와 온건개혁세력이 만날 수 있는 근거도 이러한 객관적 현실에 있다. 최근 종북논리가 경위야 어떻든 수구세력이 반대세력을 정치적으로 억압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면서 분단체제가 남한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감은 다시 증가하고 있다.17)
둘째 차원은 분단체제 극복에 부합하도록 남북의 점진적 통합을 추진하는 작업이다. 즉 강제적으로 어느 한편이 다른 한편을 흡수하는 방식의 통일은 한반도에서 실행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재앙에 다름없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과 다른 점진적 통합방안으로 국가연합의 일종인 남북연합이 제시되었고 민주파 내에서 이에 대해 비교적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이는 6・15공동선언(2000)에서 남과 북이 원칙적으로 합의한 방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최근 남한에서, 핵개발과 미사일 실험을 반복하고 분단체제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부담을 민중에게 강압적으로 떠넘기는 북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방안을 실현하는 작업에 어려움이 조성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도 남한사회의 개혁과 한반도적 차원의 변혁을 결합해야 한다는 논리가 민주진영의 비전과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는 수용되었으나 이러한 비전이 선거운동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NLL 문제가 쟁점으로 등장하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이면서 북한변수가 야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가 더 지배적이다. 대선이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신년사에서 ‘통일대박’론을 들고 나오자 민주파가 이에 대해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비판하거나 평화가 중요하다는 식의 수세적 대응에 머무르는 것도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남한사회 내에서 분단체제로 인한 질곡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민주파의 분단체제 극복 의지와 전망은 약화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분단체제의 동요가 심해지면서 우리 사회의 저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자칫하면 실체가 불분명하고 분단체제 극복과는 거리가 먼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으로 상당부분 흡수될 수도 있다. 물론 새로운 정세 속에서 분단체제 극복에 대한 신념을 다시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남과 북의 기득권을 모두 극복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재인식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수구세력의 흡수통일론과 마찬가지로 통일운동 내의 남북 협력・화해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이나 희망적 사고(핵개발은 협상의 수단이기 때문에 핵실험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을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이끌 수 있다는 판단 등)가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점은 이미 명확해졌다.
따라서 분단체제에 대한 더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에 기초해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현실적인 길을 찾아내야 한다. 무엇보다 남과 북의 어느 기득권세력과 자신을 일체화하는 쪽은 분단체제 극복에 기여하기 어렵다. 야권 내에서도 북한의 인권문제를 한반도인권이라는 차원에서 대응하는 일, 진보세력 내부에서 북한에 대한 인식을 정리하는 작업(수령론의 영향을 받는 NL과 민족주의 좌파적 NL의 분리, 분단체제 극복의 문제의식이 없는 반북주의나 급진주의의 배격) 등이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 북한의 기득권세력에 대한 무비판적 인식이 분단체제 극복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하겠지만,18) 동시에 최근 민주당 내의 일부 인사들이 그렇듯 북한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으로 종북주의 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식의 행동도 곤란하다. 예를 들어 1월초 김한길 대표의 신년기자회견 등을 통해 민주당 지도부가 여당과 북한인권법 관련 협상에 나설 뜻을 밝히는 과정이 이러한 난맥상을 잘 보여준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할 필요가 있고 지난 시기 민주파 내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19) 이러한 배경에 대한 언급 없이 북한붕괴론에 입각해 대북단체 지원법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 여당의 북한인권법에 편승하는 모습은 분단체제의 극복이 아니라 강화에 기여할 뿐이다.
남북의 기득권을 혁파하는 것이 쉬운 과제는 아니다. 분단체제 극복은 매우 점진적이고 장기적 과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도의 자세가 더욱 요청된다.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주장이 당장 남과 북의 기득권세력을 모두 청산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비현실적인 길이며 결국 남과 북 어느 한쪽의 기득권세력만을 목표로 삼는 편향에 빠지기 쉽다. 사회운동 혹은 정치운동의 여러 흐름이 분단체제 극복을 자신의 핵심과제로 삼는 일이 어려운 것은 동요하는 분단체제의 복잡성 탓이기도 하지만,20) 실천과정에서 발생하는 하중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도 있다. 최근처럼 객관적 정세가 어려울수록 분단이라는 현실을 사고에서 배제하고 싶은 욕망도 커지게 된다.
그러나 달아나고 싶다고 분단의 현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이 남과 북 그리고 외부의 기득권세력을 약화시키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이러한 기득권세력과 협력하거나 이들을 활용할 여지는 항상 존재한다는 점을 잘 활용하면 분단체제 극복에 폭넓은 세력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남북의 기득권세력은 크게 보아 분단체제의 유지에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있지만, 사안별로 그리고 때로는 의도치 않게 분단체제 극복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한다. 무엇보다 이들도 분단체제가 자신의 기득권에 유리하기는 하지만 냉전체제라는 안전판이 사라진 이후 분단체제의 동요가 초래하는 불확실성을 관리해야 하고, 특히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결과는 피해야 하는 처지다. 최근에는 북한이 상대적으로 분단체제의 동요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더 많이 지고 있기 때문에 북은 한편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분단체제를 새로운 평화적 상태로 이행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더 적극적으로 표명하기도 한다. 또한 남한과 미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 있기에 북한에 대한 압박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북한과의 갈등이 통제 불능 상태로 발전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남과 북 어느 쪽에서든지 분단체제 극복을 추구하는 세력이 힘을 얻게 되면(물론 이 가능성은 남한이 훨씬 높다) 이 역시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즉 분단체제는 생각만큼 강고하고 고정된 체제가 아니다. 이미 저변에서 크게 동요하고 있음을 냉전시기 이후 남북관계의 부침과 그에 따르는 남과 북의 변화가 잘 보여준다. 가깝게는 2013년 북의 3차 핵실험 이후 대화와 대결을 반복하는 상황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이에 변혁적 중도는 분단체제의 복잡성이나 시기적으로 분단체제의 폐악이 극에 달하는 상황 또는 기득권 집단들의 통일공세에 압도당하지 말고 분단체제가 스스로 틈을 보이는 계기를 장악해 분단체제 극복으로 이어갈 준비와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분단체제가 확대재생산한 적대감을 고려할 때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남한 시민들은 반북 정서가 악화되어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국민에게 특정한 방향의 정보가 일방적으로 전달될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긍정적 변화의 계기가 만들어지면 북한과 대화와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에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왔다. 북한체제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이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데 관건이라는 체험적 인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공세가 일으킨 먼지가 가라앉게 되면 시민들이 남북관계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여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는데,21) 남은 일은 변혁주체들이 분단체제의 극복에 대한 신념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실현 가능한 길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것이다. 작금의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에 대해서도 수세적으로만 임할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에 유리한 현실적인 통일론으로 대응하는 일도 이러한 준비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과거 포용정책도 대북협력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다소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합리화되었고 이러한 점이 소위 ‘퍼주기’(즉 북을 도와주었지만 북은 변화하지 않았다) 논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대북협력이 북한의 변화로 직접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남북통합이 병행되어야, 즉 북한이 변화에 나설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같이 마련되어야 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나아가 남과 한반도 차원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보수세력이 원인이야 어떻든 적극적인 통일론을 제기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무엇이 분단체제 극복의 올바른 길인가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논의할 시기이다.
5. 자기성찰적 실천으로 변혁적 중도의 길을
현재 많은 사람들이 시대변화에 희망을 갖기 어려운 주된 이유에는 언젠가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박근혜정부의 (거듭되는 실정에 비해) 높은 지지율이 아니라 변화를 외치는 세력들이 과연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비전과 능력을 갖추었는가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정략적 발상이나 자기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변화 요구는 이러한 피로감을 가중시킬지언정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주변의 문제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그 해결방법을 진지하게 찾아가는 자기성찰적 실천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희망을 다시 만들어내는 첩경이다.
그런데 야권의 여러 정치세력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평가작업은 내부 정파갈등으로 비화되거나 다른 정치세력을 비판하는 데 활용되었고 변화와 혁신에 대한 기초를 제공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천을 비추어볼 평가의 기준조차 세우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새정치신당이 정치적으로 국민에게 특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에도 민주당을 포함한 어떤 야당도 넘볼 수 없는 지지율을 1년 이상 기록하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은 것이다. 새정치신당이 언젠가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쳐 야권 지지세력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태도이다. 이와 더불어 새정치신당 측도 세를 넓히는 과정에서 초심을 잃을 위험성이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연합정치의 진전을 위한 시민정치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실 시민정치의 힘은 내부의 인적 역량이라는 측면이나 대외적인 영향력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많이 약화되었다. 그렇지만 시민정치는 특정한 사람들의 창조물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억압된(혹은 제도권 정치가 흡수하지 못하는) 정치적 열망이 분출되는 공간이다. 당장 시민정치는 각 정치세력의 혁신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그것이 민주파의 정치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특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그 과정이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당들이 내놓고 있는 정책과 공약, 그리고 공천방식을 혁신이라는 기준으로 따져보는 작업은 매우 시급하다. 이를 통해 연합정치의 진전에 시민정치가 제몫을 다할 수 있는 동력도 만들어내야 한다.
시민정치가 연합정치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당장 협상을 통한 연합공천이나 공동정부의 추진 등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연대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도록 압박함과 동시에 연대를 통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즉 야권 정치세력들이 연합만능론이나 연합부정론의 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견제하는 임무를 시민정치가 맡아야 한다. 또한 시민과 직접 만나 대화하는 공간을 열면서 지역별로 어떤 방식의 연대가 적절한지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연합을 위한 중재자 역할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이는 야권 정치세력들의 준비와 객관적 정세를 고려하며 판단할 수밖에 없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상황이 어렵고 과제가 산적해 있을수록 우리의 마음가짐과 실천을 비추어볼 거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민주파가 성찰과 혁신을 수행하는 데 자신을 비추어볼 거울의 기능을 변혁적 중도주의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깔고 있다.22) 물론 한두차례의 선거결과가 연합정치에 대한 과도한 회의론을 초래하는 현실은 변혁적 중도의 토대가 여전히 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의 시련은 올바르게 대응한다면 변혁적 중도에 대한 공감대가 더 확산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제 단순히 연합을 위한 연합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연합인가를 잘 따져봐야 연합도 가능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변혁적 중도주의의 입장에서는 2016~17년 정치적 전환기의 민주파의 과제와 그 실현방안을 더 구체화한 새로운 보급판을 만들어가는 작업으로 연합정치의 진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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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낙청 『2013년체제 만들기』, 창비 2012.
2) 변혁적 중도주의는 백낙청(白樂晴)이 2006년 1월, 창비 홈페이지(www.changbi.com) 신년사에서 처음 제창한 것으로 당시에는 자주파(NL), 평등파(PD), 온건개혁파의 3자연대를 주장했다. 단순한 전술적 연대가 아니라 각각의 운동이 환골탈태하는 과정을 의미한다는 점과, 3자의 결합을 통해서만 결합다운 결합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변혁적 중도주의의 핵심적 취지로 강조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백낙청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비 2006)에 실린 「6・15시대의 대한민국」과 「분단체제와 ‘참여정부’」를 참고. 그러나 특정 시기에 통용되던 운동권의 개념을 계속 차용한 것이 적절하지 않고 생태운동 등을 고려하면 자주파, 평등파만으로 진보를 지칭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점차 ‘각종 진보’ 등으로 표현을 바꾸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세의 변화에 따라 합리적 보수도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중도세력에 참여할 길을 열어두어야 하기 때문에 필자는 중도세력의 범위를 본문에 제시한 바와 같이 정리했다.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중도를 형성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백낙청 「2009년 분단현실의 한 성찰」,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창비 2009, 279~80면 참고.
3) 이 글에서는 김종엽(金鍾曄)의 제안을 따라 한국정치의 세력분류를 보수파와 민주파로 한다. 그는 이러한 분류가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보다 분단체제 아래서 보수가 민주적 법치를 온전하게 수용하지 않는 집단임을 잘 보여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의 교차로에서」, 『창작과비평』 2013년 가을호 467~68면). 민주파를 대체할 수 있는 또다른 표현으로 진보개혁이 있는데 이는 사실 야권 혹은 민주파 내에 존재하는 진보와 개혁이라는 두가지 경향을 포괄하는 세력연합적 개념이다. 이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지향을 지칭하기 위해서는 민주파나 민주개혁이 더 적절한 표현으로 보이며 이러한 취지에서도 본 글에서는 민주파나 민주개혁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4) 졸고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반도 변혁」,『창작과비평』 2008년 봄호 29~30면.
5) 백낙청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58~59면.
6) 이러한 이유로 변혁적 중도는 전쟁에 의존하는 변혁이나 북한의 변혁만을 목표로 하는 수구적 주장은 물론이고 변혁이 빠진 중도노선 혹은 개혁노선이나, 남한만의 변혁을 추진하거나 변혁을 민족해방으로 등치하는 주장 등의 비현실적인 급진노선과도 다르다. 그러므로 변혁적 중도주의는 후자(급진노선)의 흐름들이 자신의 이념을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목표에 비추어 성찰하고 이를 위해 힘을 합쳐가자고 요청한다. 백낙청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 22~23면.
7) 졸고 「민주주의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창비주간논평(weekly.changbi.com) 2009년 8월 5일자 및 「정치연합, 진보개혁세력 상생의 길」,『창작과비평』 2010년 봄호.
8) 백낙청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
9) 야5당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며, 합의문 발표 자리에는 민주통합시민행동, 시민주권, 회망과대안, 2010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입회했다.
10) 현재 밝혀지는 바처럼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광범위한 선거개입과 매우 부정적인 언론환경 속에서 얻은 성과라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앞으로 이러한 요인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계속 추궁하는 일과 함께 이 제약을 극복할 길을 만들어내는 것도 민주파의 과제이다.
11) 예를 들어 새정치신당을 추진하는 세력 내의 ‘연대는 패배주의’라거나 ‘절대 연대는 없다’라는 식의 논리는 위험스럽다. 새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현재 더 중요한 과제라는 점은 분명하며 이에 대한 강조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만약 이러한 주장이 선거에서 연합과 연대의 필요성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라면 지난 대선시기 의석수 축소 주장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창당작업이 어느정도 진전된 이후에는 새 정치와 연합의 관계에 대한 더 정교한 입장을 내놓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12) 필자는 2011년 초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던 연합정치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당시 민주당보다 포괄적인 세력이 정당혁신과 정책연합을 매개로 통합적 수권정당을 건설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연합정치의 진화로 2012년을 준비하자」,『창작과비평』 2011년 여름호 4~5면.
13) 이 점에서 2012년 총선에 대한 더 세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당시 연합보다 더 큰 문제는 당내 공천과정에서 발생했음에도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기득권 정치인의 경우는 공천과정에서 경쟁을 제한하려고 하며 새로운 진출을 시도하는 입장에서는 경쟁기회의 확대를 원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과거처럼 하향식 공천은 어렵다는 점에서 전략공천 같은 전략적 선택의 여지는 남겨놓되, 신진정치인의 참여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상향식 공천방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14) 현재 여론조사로는 서울, 인천, 경기, 충남에서 모두 야권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오차범위 이상으로 앞서 있다(한겨레 2014.1.29). 이러한 결과는 아직 여권의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민주파가 (2010년 지방선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선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15) 이 글은 연합정치의 과제를 단기, 중기로 나누어 제시한다. 그렇다면 장기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을 법한데 필자는 앞서 설명했듯 수권정당 건설과 정권교체를 중기과제로 보고, 수권 이후 합리적 보수세력까지 포괄하는 정치연합과 사회통합을 구축해 남북의 점진적 통합과정에서 한반도의 총체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장기과제로 생각한다.
16) 이러한 의미에서 분단체제 극복 대신에 한반도체제의 개혁 혹은 변혁이라는 표현이 변혁적 중도의 지향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정현곤(鄭鉉坤)과의 대화에서 얻었다. 그렇지만 당장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개념을 한반도체제의 변혁으로 대체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17) 이러한 변화에는 역시 천안함사건이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분단체제의 예외적 상황을 상례화하려는 수구의 공세가 강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이명박정부의 통치위기」, 『창작과비평』 2010년 가을호 참고. 수구파는 이 사건을, 남한의 민주화 및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 화해・협력이 분단체제를 흔들고 나아가 분단체제 극복의 동력이 강화되어가는 추세를 일거에 뒤엎는 계기로 활용했다. 그 이후 민주파가 안보와 대북관계에서 수세에 몰린 것은 이러한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18) NL 내 일부 세력의 일방적인 북한인식과 과도한 군사적 현실주의가 갖는 문제에 대한 비판과, 변혁적 중도주의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승환 「이석기사건과 ‘진보의 재구성’ 논의에 부쳐」, 『창작과비평』 2013년 겨울호 참고.
19) 민주당 내에서도 그동안 ‘북한주민인권증진법안’(심재권 의원), ‘북한민생인권법안’(윤후덕 의원), ‘북한영유아 지원에 관한 법률안’(정청래 의원), ‘북한주민 모자보건 지원에 관한 법률안’(심재권 의원),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관한 특례법안’(인재근 의원) 등을 발의한 바 있다. 2011년 5월 30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민주당 대표 사이에 체결된 8개항의 합의사항에는 “북한주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고 북한주민의 민생이 실효성있게 개선될 수 있도록 북한민생인권법을 제정하기 위해 법사위에서 상정하여 토론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 인도주의 지원, 대북단체 지원, 북한인권기록소 등의 쟁점에 대해 여야 이견으로 법안제정이 진전되지 못했을 뿐이다.
20) 김종엽 「분단체제와 87년체제의 교차로에서」 471면.
21) 정권의 종북공세에도 국민이 남북 화해협력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등에 대해서는 본 특집에 실린 이태호 「‘시대교체’와 군사주의의 덫」 참조.
22) 김종엽과 이승환(李承煥)의 앞의 글도 모두 진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변혁적 중도주의적 모색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