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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근혜 1년,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
 

대화

박근혜 1년과 민주파의 대응

 

 

김종엽・은수미・이철희・정현곤

 

 
김종엽・은수미・이철희・정현곤 ©이영균

©이영균

 

김종엽(사회) 이번호 대화에서는 정치현장, 정치비평 그리고 시민운동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 은수미 의원, 이철희 소장, 그리고 정현곤 위원장 이렇게 세분을 모셨습니다. 이제 곧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됩니다. 그래서 우선 박근혜정부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그것에 이어서 87년체제의 수립 이후 ‘87년 운동체제’라 부를 만한 사회운동의 흐름이 어떻게 이어져왔는지와 함께 사회운동의 현황을 점검하고자 합니다. 보통 집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합적으로 행동하는 걸 사회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니까 정당활동이나 정치운동도 넓은 의미의 사회운동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파의 사회운동은 이명박정부를 지나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명박정부에 이어 다시 박근혜정부가 등장함에 따라서 사회운동의 어려움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최근 박근혜정부의 노동운동에 대한 공세는 보수파가 민주파의 사회운동을 약화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파괴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줍니다. 그래서 87년체제의 사회운동이 안녕한가를 진단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우선 지난해 안녕들 하셨는지부터(웃음) 이야기를 시작해보지요.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분이 이철희 소장님이신 것 같은데 먼저 말문을 열어주시죠. 이소장님은 2012년부터 유명인으로 떠서 이제는 목욕탕 가면 인사하는 사람도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웃음)

 

박근혜정부 1년의 한국사회

 

이철희 李哲熙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역임. 저서로 『1인자를 만든 참모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기는 정치, 소통의 리더십』 등이 있음.

이철희 李哲熙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역임. 저서로 『1인자를 만든 참모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기는 정치, 소통의 리더십』 등이 있음.

이철희 말씀하신 것처럼 2012년 총선 즈음에 정치현장을 떠났습니다. 정치평론가의 삶은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는데, 정치평론이라는 게 직업으로 가능해진 건 묘하게도 종편(종합편성채널) 때문입니다. 총선과 대선 시기에 종편이 정치뉴스 내지 정치평론에서 블루오션을 발견했고, 거기에 제가 자연스럽게 출연하게 됐지요. 2013년에는 선거가 없어서 정치평론 시장이 줄어들 거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더 늘어났어요. 북한 관련 뉴스 시장도 컸는데, 이 부분은 보수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진보는 북한과 관련해서 여전히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래서 2013년에 먹고사는 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만, 정치평론가로서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어떤 진영을 대변해서 평론을 하는 건 아닙니다만 정치의 이슈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남북관계를 둘러싸고 냉전적인 주제로 티격태격하는 등의 구시대적인 모습을 바라보면 답답합니다. 민주당이 못한다는 건 이미 국민적 상식이 됐지만, 박근혜정부도 생각보다 무척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실행 면에서는 자잘한 테크닉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시대상황에 맞게 정치의제를 세우고 그에 맞는 리더십을 펼치는 측면에서는 퍽 미숙한 점이 있습니다. 안보보수가 지금 보수 전체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이 거기에 끌려가는지 그걸 끌고 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거기에 시장보수 세력이 결합되어 있는 것 같아요. 외면의 프레임에선 안보지만 내용적으로는 시장보수의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거죠. 전 이 정권이 결국 ‘줄푸세’(세금과 정부규모를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로 돌아갔다고 생각해요. 지난 1월에 있었던 대통령 기자회견은 그걸 정치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많은 대중이 정치를 통해 삶의 변화를 꾀하려고 했음에도 정치가 화답하지 못하면서 실망하거나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87년체제론』(편저) 등이 있음.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87년체제론』(편저) 등이 있음.

김종엽 종편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저도 이소장님이 출연하시는 ‘썰전’(JTBC 방영)을 자주 봅니다. 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목요일 11시에 마땅히 볼 게 없어서고,(웃음) 다른 이유는 ‘썰전’ 나름의 균형감각 때문입니다. 이명박정부의 언론장악에서 비롯된 것이긴 한데, 미디어의 진영화가 심해지다보니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기보다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을 다시 확인하고 탐닉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더불어 무슨 내용을 어떻게 전달해야 상대편에게 설득력이 있을지 고민하지 않는 사회가 된 거지요. 진영화가 심해진 매스미디어 영역에서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정치평론가가 일대일로 나오는 유일한 프로그램이 ‘썰전’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은수미 의원은 의정활동을 1년 반 정도 하셨지요? 다른 인터뷰에서,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제의를 받고 수락한 직후 비례 순번이 빨라 국회의원이 될 것을 몇시간 만에 알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웃음) 그러면서도 초선의원으로서는 상당한 활동력과 명성을 얻으신 것 같습니다. 그간의 의정경험에 대한 소감 그리고 국회 안에서 보게 되는 박근혜정부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은수미 殷秀美 19대 민주당 국회의원.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저서로 『날아라 노동』 『IMF 위기』 등이 있음.

은수미 殷秀美 19대 민주당 국회의원.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저서로 『날아라 노동』 『IMF 위기』 등이 있음.

은수미 제 개인사는 인터뷰에서 많이 이야기했으니 그보다 민주당 의원으로서 지난 한해 중요하게 느낀 문제를 짚고 싶습니다. 우선 이소장님께서 지난해 국정원 선거개입이나 NLL 문제, 그리고 종북 논란 등이 전면에 부상한 것을 염두에 두고 ‘문제는 경제인데’라는 취지의 얘기를 하셨는데, 그 경제문제를 푸는 데 저도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오히려 ‘문제는 정치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민주당 편에서 보면 작년에 세가지가 핵심과제였다고 생각해요. 첫째, 대선 직후부터 제기된 환골탈태 수준의 당의 혁신, 둘째, 국정원 선거개입과 관련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 셋째, 한국사회의 소득불평등 문제입니다. 제가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고 주력한 부분은 셋째 과제였습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지키기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활동 같은 것이지요. 이 위원회가 십여가지 정도를 실질적으로 해결했고, 최소한 갑()들에 대한 견제의 역할은 했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당의 혁신과 민주주의의 위기 해결에 일조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세가지 수준이 하나가 풀리면 다른 것도 풀리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앞의 두 과제에 대해서도 당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별도의 전략을 가져야 했어요. 스스로 평가해보면 그런 점에서 제 판단은 좀 안이했고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박근혜정부에 대해서인데, 저는 민주당도 못하지만 박근혜정부도 못한다는 이철희 소장님의 판단 가운데 뒷부분에는 동의가 잘 안됩니다. 박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747 줄푸세’에서 ‘474 민영화’(474는 박대통령이 연초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국정목표로서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은수미 의원은 이런 목표를 박 대통령이 민영화를 통해서 달성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474 민영화라고 부름편집자)로 나아갔고, 민주당이 주장해온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특검을 포기해야 한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공약과 야당을 얼마나 무시하면 이런 식으로 주장하겠습니까? 민주당이 대통령의 이런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하고 나갔어야 했지만 그런 모습을 안 보였죠.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잘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얘기하고 나서도 지지율이 48%에서 다시 50% 이상으로 올랐잖아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소장님은 박근혜정부가 생각보다 못한다고 하셨지만, 현 정부는 보수언론, 재벌, 군부, 보수적 관료 등을 비롯해 여러 집단의 네트워크 형태로 하나의 정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정부는 정파의 대표로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이 네트워크가 무서운 거죠. 민주당 혹은 야권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박근혜정부에 대해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하지 않으면서 기본전략을 새롭게 짜는 것이 지난해에 대한 온전한 반성을 통해 얻어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종엽 은의원께서 곧장 중심 주제를 논쟁적으로 제기한 느낌입니다. 정현곤 위원장께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시민운동의 면에서 지난 1년을 되짚으시면서 은의원이 제기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주시지요.

 

정현곤 鄭鉉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세교연구소 상임기획위원. 저서로 『천안함을 묻는다』(공저), 논문으로 「남북사회문화교류 발전을 위한 방안」 등이 있음.

정현곤 鄭鉉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세교연구소 상임기획위원. 저서로 『천안함을 묻는다』(공저), 논문으로 「남북사회문화교류 발전을 위한 방안」 등이 있음.

정현곤 지난해에는 역시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싸움에 주력했고, 철도민영화 문제 등에도 관여했습니다. 전선에 같이 서면서도 시민운동의 독자공간을 만드는 방향을 중시했고요. 경실련, YMCA,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여성단체연합,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을 특색화해서 별도의 캠페인을 진행한 건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철도민영화 문제의 경우도 당시 ‘KTX 민영화저지와 철도공공성강화 범대위’가 있었고 저희도 참여하고 있었지만, 시민단체 중심으로 ‘철도공공성시민모임’을 따로 구성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파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는 ‘시민사회 중재단’을 만들어 또다른 목소리를 냈어요. 사회운동의 측면에서는 허리를 강화하자는 것이고 운동의 효과 면에서는 지지의 폭을 넓히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라는 운동틀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제 접근 외에 지난해에 시민사회의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도 힘을 썼습니다. 시민운동 출신이 정치권으로 많이 이동해갔지요. 이런 공백을 메우면서 시민사회 자체 기반을 다지고 강화해야 할 필요가 커져서 그런 목적으로 여러분들과 힘을 합쳐 ‘시민’이라는 이름의 별도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시민사회로 자원을 이동시키자, 시민운동 평생 하자, 이런 취지이고 시민센터 운동방식이라 하는 건데, 2006년부터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충북 등에서 결성되어왔고 마침내 서울에서도 구성한 겁니다.

박근혜정부에 대해서는 지지율 추이로 대략적인 상황을 짚어볼 수 있을 텐데요.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당시에는 경제민주화든 정치개혁이든 시대흐름을 따르는 주장을 했지요. 여성대통령론도 그랬고요. 그렇게 해서 끌어올린 게 51.6% 지지율이죠. 물론 불법적 대선개입으로 들어간 표를 빼야 되니 약간 낮추는 게 맞겠지만.(웃음) 그런데 그후 한때는 여론조사 수치가 67%까지 올라갔어요. 이 수치 자체가 그렇게 유의미하다고 보지는 않아요. 보통 대통령이 되고 1년 정도 기대치의 프리미엄이 있다고 보는데 그걸 반영하는 거니까요. 전체적으로는 들쑥날쑥하다가 대체로 53%대에서 보합세가 유지됩니다. 그러니까 당선 당시의 지지도가 임기 초기의 프리미엄과, 공약 불이행이나 국정원 문제 같은 마이너스 효과와 함께 작용하면서 이런 지지율에 머무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60대 이상의 지지는 거의 80%에 육박한 반면 20~30대는 주로 30%대에 머물러요. 40대의 지지도도 40%를 겨우 넘죠. 이런 세대별 지지추이는 박대통령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정부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흐름은 비관적인 면이 있습니다.

 

종북・안보・통일 패키지 공세의 위력

 

김종엽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박근혜정부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소장님은 박근혜정부가 국정운영의 큰 방향수립과 전략 수준에서는 취약하다고 하신 데 비해, 은의원은 우리 사회 지배집단의 네크워크와 결속력 속에서 박근혜정부를 봐야 하며 그 점에서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하셨죠. 그리고 정현곤 위원장은 지지층의 구조 면에서 박근혜정부가 지닌 허약함을 지적했는데요.

 

은수미 세대별 지지를 놓고 박근혜정부의 취약함을 말하는 것은 자칫 박근혜정부를 과소평가하는 쪽으로 이끌리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정권이 그렇지만 이 정부도 모든 사안에서 국정지지도를 높일 생각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본인도 20~30대에게는 지지도가 취약하고 50~60대 이상에서 높다는 사실을 알 겁니다. 문제는 이런 지지율 구도에서 20~30대 지지까지 높일 수 있게 해주는 공통분모를 정치적 의제의 중심에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종북・안보・통일이라고 봐요. 어떤 정치인이든 핵심 이슈를 가지고 자기정체성을 세우고 지지율을 높이기 마련인데, 50~60대한테는 안보불안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20~30대에게는 북한 혐오감을 이용합니다. 이걸 결합시키면 종북・안보・통일이 되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 지지도뿐 아니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높은 중요한 이유는 종북・안보・통일 프레임이 먹히기 때문입니다. 이걸 잡고 있기 때문에 ‘474 민영화’가 경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버틸 만한 거지요. 그래서 종북・안보・통일 프레임이 중요한 거고 그런 프레임을 지지하는, 박근혜정부를 둘러싼 네트워크의 힘을 무시하지 말자는 겁니다. 아까 정위원장이 시민운동이 기울여온 노력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정치가 너무 못하는 게 더 큰 문제긴 하지만 김대중・노무현정권 10년을 경유하면서 일궈놓은 것들이 보수진영에 의해 쉽게 무너지는 현실에 대해 시민운동도 자기 운동의 정체성이나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질문을 해야 할 때 아닌가 싶습니다.

 

이철희 두분 말씀이 다른 듯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강해 보이는 그 안보 프레임이 사실 대한민국 보수가 대선 때 취했던 개혁적 프로그램조차 제대로 관철시킬 만큼의 역량이나 자신감이 없어서 들고 나온 것이니까요. 결국 쓸 수 있는 카드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시대처럼 고도성장이라는 시대적 목표가 있고 그것이 일정한 성과를 낸다면 안보는 상당히 안정적인 프레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대다수의 삶이 황폐해졌잖아요. 안보 프레임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잠시 유예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과 현재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갖는 염원 사이의 부조화는 어느 순간 파열을 일으킬 겁니다. 통일대박론도 결국 카드가 없다는 방증일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부터 스탠스를 잘못 잡아서 스스로 운신폭을 좁혀놨다고 봐요. 그 기점을 아마 대선 당시의 인혁당 등 과거사 문제로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과거사 문제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개혁적 보수로의 길에서 과거로 되돌아간 거죠. 그렇게 대통령이 돌아선 것을 계기로, 또는 대통령을 잘 견인한 덕에 보수 중에서도 안보 분파가 득세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보 프레임이 복지 프레임을 누르게 되는데, 이게 야권을 누르는 효과보다는 여권 내부의 헤게모니 싸움을 정돈하는 효과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체 사회에 관철시키기에는 애당초 무리한 프레임이기 때문에 끝까지 가긴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근혜정부가 아주 튼튼한 정권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점은 민영화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예요. 박근혜정부가 철도파업조차도 감당 못할 역량이었는데, 민영화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에 민영화 문제 가지고 제대로 붙으면 저는 진보개혁 쪽에도 재편과 혁신의 기회가 되리라 봐요. 그러니 박근혜정부가 안보 프레임에서 이쪽으로 옮겨온다면 다행으로 여기고 박수치고 환영하면서 거기서 전선을 형성해내야 할 일이죠. 지금은 아직 이 정부가 약간 여유를 가질 만한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에서 다수가 겪고 있는 고통을 생각해보면 그들도 전략적 구도를 잘 잡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올해도 박근혜정부가 성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과거 어떤 정부보다 허약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김종엽 안보 프레임이나 종북 프레임이 젊은 층에서는 혐오감을 동원하고 나이 든 층에서는 적대감을 동원한다는 것, 그 점에서 박근혜정부가 어느정도 성공했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통일대박론은 그 두가지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나요? 통일대박은 실제로 실적을 내야 하는 영역인데, 갑자기 북한이 붕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상대방과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문제니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위원장께서 하실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만, 우선 박근혜정부의 특성과 관련해서 저도 몇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박근혜정부가 허약함과 강고함의 양면을 가진 것은 여느 정부와 마찬가지일 텐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와 종합적으로는 어떤가를 판단하는 것이 관건이겠지요. 저는 박근혜정부의 근본 약점은 우리 모두가 봐왔듯이 선출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에 있다고 봅니다. 정당성 위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박근혜정부의 행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가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 방향은 이미 지적된 것처럼 안보 프레임에 의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과와 실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정치적・절차적 정당성이 든든하면 실적부담에서 다소 자유로운 면이 있지만 박근혜정부는 그쪽이 취약하니까 실적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크리라 봅니다. 통일대박론도 그런 부담을 가중시키는 면이 있지요.

하지만 어떤 강점이 엿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두가지 일화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영훈중학교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비리로 인해 교감이 자살한 사건과 관련됩니다. 그때 박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영훈중학교의 국제중학교 인가를 취소해야 한다는 발언을 합니다. 그런데 문용린 교육감이 이삼일 뒤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버스가 문제가 있으면 버스를 갈아야 하지만 운전에 문제가 있으면 기사만 갈면 된다”라며 대통령에게 ‘대들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교육감 따위가 어디” 하며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정권 쪽에서 조용히 넘어가려 했어요. 이 정권의 속성으로 보면 좀 놀라운 일이지요. 그걸 보며 제가 느낀 건, 박근혜정부가 자기 진영의 정서와 분위기를 이해하고 그것과 같이 가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아마 은의원이 이야기한 이 정권의 네트워크적 속성으로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난해 8월 세법개정안 발표 때 일이에요. 정부가 세수를 늘리려고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려고 했잖아요. 중간범위의 소득자도 세금을 더 내게 만든 건데 그것에 불만이 들끓자, 7천만원 이하 소득자에게서는 세금증가분이 거의 없도록 곧장 재조정합니다. 박근혜정부가 처음으로 정책을 거둬들여 고친 사례인데, 제가 보기에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면 신속하게 반응하는 정치적 능력이 있습니다.

 

안보 프레임에서 사회경제 프레임으로 옮겨야 하나

 

정현곤 박근혜정부의 강점 그리고 특히 안보 프레임의 강력함에 대해서 저는 좀 달리 생각합니다. 작년 상황을 살펴보죠. 국정원이 이석기(李石基) 내란음모사건을 터뜨린 게 829일입니다. 28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정원 시국회의 내에서 운영위원회를 열었죠. 통합진보당 쪽은 공동대응을 강하게 요구해왔지만 저희는 이석기사건과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을 분리했어요. 국정원 전선은 오히려 확장을 했고요. 그후 9월말엔 전교조 설립취소 공격이, 12월초엔 철도파업이 터졌지요. 저쪽의 구도대로라면 종북몰이를 하면서 사회운동세력 전반을 깨뜨렸어야 해요. 그게 기획의 완성이거든요. 그런데 국정원 선거개입 싸움이 계속 커지면서 정권의 의도가 잘 관철되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도 국감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등 공로가 컸지요. 그 공로를 이어가지 못하고 특검을 접고 특위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꼴이 우스워졌지만요. 어쨌든 전체적으로는 종북 프레임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전교조에 대한 공격은 본안 소송이 남아 있지만 일단 법원에 의해 행정당국이 제지되는 모양이 나왔고요. 철도민영화라고 하는 전혀 다른 전선이 형성됐지만, 민영화 반대투쟁이 대중의 상당한 지지를 얻게 되면서 여기서도 박근혜정부가 취해온 기획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게 연초에 통일대박이라는 프레임 도약으로 나타난 이유로도 보이고요.

 

은수미 글쎄요.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기준이 무엇인지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제가 아까 이 정부를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보자고 했는데, 저는 이들이 보수대연합이라는 형식을 새로운 형태로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 탄핵사건을 떠올려봅시다.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이겼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탄핵소추를 당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벌써 하야를 열번은 했어야죠. 그런데 그걸 막고 종북 물타기를 했잖아요.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는데, 그랬으면 야권이 이겼어야죠. 그게 안돼도 최소한 퇴진요구까지는 나갔어야 되는데 저쪽이 대선불복론으로 완벽하게 방어한 꼴 아닙니까. 그리고 올해 들어서 다시 규제완화 같은 대기업 편들기와 민영화를 노골화하고 통일대박론까지 들고 나왔잖아요. 어쨌든 여기까지 막아낸 보수 네트워크가 이 정권의 힘이라고 봅니다.

 

이철희 박근혜정부의 정치적 반응능력에 대한 사회자의 지적은 의미가 있습니다만, 그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박근혜정부의 안보 프레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다룰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사회자가 지적한 사례에서 대통령이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식의 지시를 하며 직접 개입했고 기초연금법 논란 때도 직접 나서서 진화를 했는데, 저는 이게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전선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 부분에서 뭔가 터지면 감당이 안되기 때문에 빨리 막고 자신이 원하는 이슈 구도로 가겠다는 건데, 야권은 이런 점에 착목해서 세제개편과 기초연금 문제에 더 집중했어야 합니다. 좀더 도발적으로 문제제기 하자면 이렇습니다. 은의원이 파악하듯이 민주주의나 절차적 정당성 싸움을 야당이 잘못 풀었거나 여당이 잘 막을 만큼 능력이 있어서 이 문제가 덮였던 것으로 저는 느끼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은 불이 붙을 사안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야당이 오히려 먹고사는 문제에서 전선을 만들 역량이 없다보니까 민주주의나 절차적 정당성 문제에 올인했다는 인상입니다.

 

김종엽 이소장 얘기에 공감이 갑니다. 사실 정권퇴진 의제와 관련해서 민주당은 국민이 거기까지 등 떠밀어주면 가겠다는 거였지, 스스로 정국을 주도해서 끌고 가겠다는 의지는 없었던 걸로 보여요. 그러면 국가기관 선거개입 재발방지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든 국정원을 크게 개혁하는 법률은 독하게 싸워서 따냈어야 합니다. 그것도 못해냈다는 건 선거로 먹고사는 정당으로서는 실격이 아닐지.

 

이철희 그렇습니다. 민주당 쪽에서 워터게이트 얘기가 흘러나오는데 미국의 워터게이트는 현직 대통령(리차드 닉슨)이 저지른 문제잖아요. 이건 아직 현직 대통령이 개입된 정보가 없는데 왜 그렇게 갖다붙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MB인데 그렇다면 MB를 쳤어야지요. MB는 가만두고 박대통령을 바로 공격하면 이게 풀리느냐는 거예요. 민주당이 잘못 푼 점도 있기는 하지만 잘 풀었다 해도 그것이 지금 대중의 요구에 맞는 사안은 아니에요. 저는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려면, 가령 ‘가난한 민주주의’ ‘불평등한 민주주의’라고 얘기를 해야지 민주주의 자체만 떼어놓고 말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은수미 이소장이 지적하는 문제를 저 나름대로 ‘일상의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아무튼 관련해서 저는 국정원사태가 왜 대중의 일상과 잘 접맥되지 않는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가 여러곳에서 비정규직들과 만나보면 국정원 사태에 관심이 없어요. 오히려 저한테 당신같이 노동에 전문성있는 의원이 왜 국정원 문제를 거론하느냐, 우리 문제를 얘기해야지 하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미 민주주의가 무너져 있어요. 노동삼권도 없고 대기업에 이리저리 치여서 죽겠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 해서 그게 대수냐 이거죠. 민주당이나 당내 개혁세력이 이런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불평등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는 데 무능력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가지가 필요해요. 제가 페이스북에 ‘도대체 빨간 머리띠하고 촛불시민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느냐’라고 올린 적이 있는데, 노동시민과 일반시민의 소통과 결합이 첫번째 사회적 조건입니다. 이런 사회적 조건에 희망적인 조짐이 보이긴 합니다.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철도민영화 반대여론이 60퍼센트이고 철도파업 반대여론이 60퍼센트예요. 그러면 누구는 파업찬성이 40퍼센트밖에 안되네 이렇게 얘기하지만 사실 이건 천지개벽이에요. 2009년의 철도파업도 민영화 반대였는데 완전히 박살났죠. 이번처럼 정규직이 한 파업을 그나마 40퍼센트가 지지한 게 아주 드문 경우예요. 비정규직이 파업을 해도, 예를 들어서 급식노동자들이 파업을 해도 지지율이 50% 정도면 잘 나오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철도파업 지지는 최근 1, 2년 사이에 바뀐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민주주의와 헌법의 근간이 흔들리는 방식으로 파업사태가 흘러가고, 거기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니 뭐니 노동자 쪽이 거의 파멸할 정도로 고통을 당해도 그걸 막을 정책과 법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요. 노동시민과 일반시민이 전면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이런 문제가 도덕적인 이슈가 아니라 정치적 이슈가 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조건은 정당의 혁신이에요. 저희 안에서 개혁파라거나 강경파라고 얘기되는 사람들도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하는 정치를 내걸고 당의 혁신을 제기하지 못했어요. 저는 첫번째 문제, 즉 빨간 머리띠와 촛불시민을 결합시키고 그걸 정치적으로 풀어내는 일에 훨씬 관심이 가 있었지만, 돌아보면 더 중요한 것은 두번째인 당의 혁신이었어요. 제가 소득불평등을 없애고 소득 주도의 성장을 하는 민주당 ‘소득플랜’을 전면적으로 내걸자는 프레젠테이션을 당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 사고를 가지고 전선을 형성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던 거죠. 민주당의 혁신 없이 시장보수를 막기는 어렵습니다.

 

이철희 정당혁신은 플랜과 정책 문제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민주당 혁신의 핵심은 인적청산이에요. 왜 그걸 갖고 싸움을 안 벌이나요? 저는 어떤 면에선 민주당의 젊은 의원들이나 486의원들이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경실모’(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약자. 남경필, 이혜훈 의원 등이 주도하며 40여명의 원내외 인사가 참여편집자)는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안에서 경제민주화를 외쳤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후 대부분 뭉개긴 했지만 어쨌든 열심히 주장했지요. 그런데 민주당은 대통령 퇴진 얘기만 했어요. 왜 그런 의제를 잡고 싸워요? 그래도 할 거면 486 제도권 의원이 나와서 금배지 던지면서 그 얘기를 했어야지 그런 자세는 없고 의제만 붙잡고 있는 형국이니까 장하나 의원 같은 아랫세대 사람이 그 몫을 감당하려 나서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인적청산안을 과감하게 내놔야죠. 그리고 사회경제적 의제를 왜 당내에서 제기 못해요? 을지로위원회에서 잘 만들었잖아요. 저쪽에선 이걸 덮기 위해서 다른 카드를 다 꺼내놨어요. 그럼 이게 저쪽의 약한 고리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집중을 했어야지요. 노동정책 하면 은수미가 떠오를 정도로 계속 강화시켜야 돼요. 참, 내가 개인 컨설팅을 하고 있네.(웃음)

 

박근혜정부 아래 대북포용정책은 유효한가

 

김종엽 안보나 종북 프레임을 사회경제적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대해서 정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현곤 설득력있는 주장입니다만, 안보 프레임에 대해 우리 나름의 담론과 프로그램을 갖추는 게 우선 중요합니다. 그런 준비가 돼 있지 못할 경우 저들이 때로는 통일대박론으로 때로는 북한혐오론으로 또는 군사훈련이나 북한을 자극하는 각종 이벤트로 느닷없이 공세를 취할 때 당하게 돼 있어요. 그리고 이런 전선에서 당하게 되면 민주주의든 사회경제적 개혁이든 달성하기 난망해지죠. 그렇기 때문에 민주파의 중심 정책이자 담론인 포용정책에 대해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의 포용정책 안에 화해협력 단계에서 남북연합 단계로 가는 과정의 설계가 들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화해협력 다음 단계인 남북연합의 의미가 내부에서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게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퍼주기론이 계속 논쟁이 되는 이유는 화해협력 수준의 문제를 다음 단계에서, 그러니까 포괄적인 의미의 통일론 안에서 수습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해 적극적인 담론 형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북연합이라는 통일 미래에 대한 상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남북관계를 풀었어야 해요. 이런 부분에서 우리 입장이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면 통일대박론도 쉽게 비판되었을 거고요. 통일대박론에 전제된 통일에 대한 그림은 흡수통일 외에는 전혀 없어요. 이건 북의 존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 남북연합이 빠진 포용정책에도 이런 흡수통일 요소가 있어요. 이런 구도에서라면 보수의 통일론을 넘기 어려워요. 보수의 담론이 계속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건 이쪽의 주장과 담론이 잘 정리되지 못한 탓이 큽니다.

 

이철희 그런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토론을 위해 제 입장을 단순화해 말하자면 저는 지금의 포용정책 가지고는 못 버틴다고 생각해요. 지형 자체가 바뀌었는데 그걸 완강하게 고집하는 것은 정치적 관점에서 맞지 않다고 봐요. 하다못해 2.0 버전으로라도 가야 하죠. 그런데 그 2.0의 내용이 뭐냐, 핵심을 그대로 유지한 채 2.0으로 간다는 건 말장난이고요. 통일대박론이 허구라고 싸우지 말고 복지가 대박이다, 이걸로 가야 된다는 거예요. 저쪽에서 담론을 제기하면 그걸 붙들고 싸우지 말고, 그건 너희가 알아서 하고 우리는, 예를 들면 복지가 대박이다 이걸 갖고 치고 들어가는 게 맞지, 통일대박론이 옳거니 그르니 어떤 통일이 맞니 틀리니 하는 것은 저쪽에게 유리한 주제니까 그렇게 하지 말자는 겁니다. 차라리 구도를 통일이냐 평화냐 이렇게 가져가야지요. 남이 차린 밥상 위에서 내 거 많이 먹겠다고 싸우는 자세는 별로 실익이 없으니 그 밥상은 너네 먹어라 하고 줘버리든지 아예 쳐다보지 말자 이거예요.

 

정현곤 쳐다보지 말자고까지 하시는 건 좀.(웃음) 말씀 속에 담긴 고민을 이해합니다. 외교안보 부문은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의 권한이 훨씬 크기 때문에 역관계상 붙어봐야 밀리기 쉬운 게임임은 분명하죠. 그래서 저도 민주정부 10년의 대북정책을 주로 말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은 저쪽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인데, 시민사회운동 입장에서는 지금 더 예리하게 다듬어야 할 시기라 보는 거죠.

 

이철희 그런데 통일대박론 밑에 급변사태나 흡수통일 말고 보수정부와 북한 간의 담합 씨나리오도 있는 거 아닐까요?

 

은수미 이미 역사적 사례로 74남북공동성명(1972)이 있잖아요. 지금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 얘기가 매우 광범위하게 돌고 있어요. 통일대박론 이면에는 북과 담합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김정은체제도 지금 불안정하거든요. 담합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해요. 통일대박론은 지방선거까지는 안보의제로 밀어붙이고 선거가 끝나면 통일의제로 전환한다는 걸 암시한 거라는 거죠.

 

정현곤 저도 담합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은 안합니다.(웃음) 하지만 저는 그 가능성이 있어도 문제될 게 별로 없다고 봅니다. DMZ에 군대를 넣는 식으로 안보정국을 조성하는 것을 두고 담합을 말하는 것은 아닐테고, 잘해보자는 식으로 이벤트를 만들다 나중에 뒤집는 것일 텐데, 그 자체로 축적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 지금 흐름이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이소장께서 평화냐 통일이냐라는 식의 구도를 제기하는 것이 낫다고 하셨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사실 이 구도의 덫에 빠진 것이 지금까지의 포용정책이라고 보거든요. 이 구도의 문제는 북한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습니다. 북이 느끼는 체제안전의 문제가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론으로 완전히 보장되지 않습니다. 북은 우리가 그려놓은 평화의 틀에서 수시로 벗어납니다. 그러니 평화를 얘기해봐야 지속성이 안 생기죠. 지금 북의 행동반경이 무척 다양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평화냐 통일이냐의 전선은 이미 무너졌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래서 포용정책 2.0이 제기된 거고요. 업그레이드된 포용정책은 이런 양자택일 구도를 깨고 통일을 새로운 구도 속에서 수용합니다. 남북연합을 중심에 놓고 화해협력을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남북이 공존할 수 있는 틀을 분명하게 북에 제시할 때만 안전문제가 해결돼서 화해협력과 평화도 순항할 수 있다는 입장이에요.

 

은수미 글쎄요. 2월 국회에서 박근혜정부는 통일대박론을 배경에 깐 북한인권법 중심으로 전선을 끌고 가려 할 텐데 저는 이 전선은 야권에 극히 불리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쪽이 통일대박이라고 하면 우리는 복지대박, 또는 ‘복지가 대끼리’라고 하면 좋겠다 생각해요.(웃음) 우리 홈그라운드에서 점수를 따고 그다음에 안보 프레임으로 나가는 수순이 좋겠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제가 전문가들한테 물어봤어요. 다들 햇볕정책 2.0에 다 동의해요. 그런데 그 구체적 내용은 지금부터 연구해야 한다는 거예요.(일동 웃음) 그러면 그 얘기를 지금 하기는 어렵죠. 우리 쪽에 준비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저쪽이 안보냐 평화냐라는 담론을 끌고 온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햇볕정책 2.0이라는 말에 내실이 빈약하더라도 일단 대응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 우선 유리한 지형으로 이끄는 게 필요하죠. 그 점에서 ‘복지가 대끼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남북관계에서도 좀더 대응이 쉬운 것부터 제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남북한 사형제도를 폐지하자고 하는 거예요. 장성택(張成澤) 처형 소식을 종편채널들이 2주간이나 계속 내보냈잖아요. 그 효과가 상당히 컸습니다. 김정은에 대한 혐오감을 극대화했죠. 그러니 남북 공동으로 사형제도 폐지하자는 주장 같은 것을 제기해볼 만도 하다는 겁니다. 아직 햇볕정책 2.0 전체의 내용이나 프레임을 우리가 구축 못하고 있으니,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우리의 대안을 보여주는 것, 전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엽 저는 정당과 시민운동의 입장에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은 집중력있게 에너지를 모으고 의제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죠. 예를 들어 ‘종북 프레임’이라고 하면 그 프레임을 깨고 다른 프레임으로 대체해내는 능력이 중요하지 종북 프레임과 정면대결하는 대안적 담론을 어떻게 개발하느냐는 부차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해온 시민운동은 그런 문제를 떠안고 계속해서 그 일을 수행해야 하니까 자신의 담론과 비전 그리고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에 항상 붙들려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은의원과 이소장께서는 안보나 종북 프레임이 기본적으로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에 유리한 구도라고 보시는 것 같은데, 2013년을 돌아보면 저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판단합니다. 안보나 종북 프레임도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것을 활성해줄 사건적 계기가 필요하고, 이 부분에서 정치적 역량이 개입하죠. NLL 대화록 논란과 이석기사건을 보면서 저는 만약 새누리당이 NLL이 아니라 이석기사건부터 터뜨리고 그 성과에 힘입어 통진당 그리고 NLL로 공격해 들어왔으면 어땠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그 편이 더 효율적이었을 겁니다. 제 판단이 옳다면 저쪽도 사건과 의제를 엮어나가는 능력 면에서 그렇게 체계적이고 유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다른 한편 NLL 논란이 벌어졌을 때, 저쪽이 심각한 패착을 여러번 두었습니다. 그런데도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 쪽에서 국가기록원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하겠다고 하는 등 실수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에요. 안보・종북 프레임하에서도 민주당에게 유리한 국면이 있었지만 잘하진 못한 거죠.

그리고 지금까지 박근혜정부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판단이 쉽지 않은 이유가 제가 보기에는 한편으로 박근혜정부가 강점과 약점을 복잡하게 가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박근혜정부의 여러 행태가 어설프게 보이는 면과 치밀하게도 보이는 면 모두를 가지고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몇달 전 비판사회학회에서도 박근혜정부가 파시즘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을 했는데 그때도 파시즘이라고 보는 입장 중에서도 그게 ‘잠정적’ 파시즘이냐 ‘구조적’ 파시즘이냐를 가지고 의견이 갈렸습니다. 대중은 물론 학자나 평론가도 규정이 쉽지 않다는 징후지요. 이 문제에 대해 간단히 총평을 해보고 이어서 박근혜정부의 공세 아래에서 이쪽 진영은 어떻게 대응하고 무엇을 바꿔나가야 하는지 논의해보지요.

 

이철희 저는 박근혜정부가 치밀한 쪽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초 기자회견을 보면, 자기 진영 내에서 정돈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 혼자 지르는 느낌이에요.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 사이에 인적 구도가 제대로 조응하고 있지 못한 거 같아요. 최근 개인정보유출 사건 다루는 것을 봐도 어설퍼 보이지 않습니까, 중구난방이죠. 그래서 결국 싸움에서는 현 정부의 약한 고리를 얼마나 잘 건드릴 것이냐가 관건입니다. 4대강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왔을 때를 봅시다. 제가 듣기에는 여권 내부에서 4대강 문제를 건드리면 결국 TK를 건드리는 게 된다, 노무현정부가 힘들어진 게 대북송금 특검 때문인데 노무현정부 하듯이 내부 지지기반에 그렇게 균열을 내면 안된다, 그러니 4대강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해요. 이건 역으로 이 문제가 저쪽 진영의 내부 균열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약한 고리라는 것인데, 여기에 야당이 집요하게 매달리지 못했죠. 전체 구도에서 박근혜정부가 썩 잘하는 건 아니지만 더 못하는 쪽이 있어서 그럭저럭 여기까지 왔다는 게 제 총평입니다.

 

사회운동 위기와 민주파의 기반 약화

 

김종엽 이제 논의방향을 약간 바꾸어서 1987년 이후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을 이끌어온 민주파 사람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또 어떤 혁신을 필요로 하는지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직접적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온 박근혜정부의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박근혜정부는 앞서 말했듯이 경제적 성과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한국경제는 정치적 투입의 효과로 실적을 향상시키기는 어려운 복잡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적을 내기 어려울 때 그것을 보충하는 한 방식은 반대와 저항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정부가 실적을 낼 능력은 떨어지지만 사회운동의 여러 진지를 파괴할 능력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보수집단은 노동운동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일반고용과 특수고용 또는 파견노동을 분할하고 서로 반목시키는 통치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공무원노조, 전교조, KTX 노조에 대한 정부의 행동에는 노동운동의 중심부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내비치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노총 조합원수가 70만 정도 되는데, 법외노조 상태인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를 빼고 나면 사십몇만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그 40만에서 보건의료노조하고 금속노조를 주저앉히고 나면 남는 세력이 별로 없다고 해도 무방해요. 노동운동 쪽이 쓸려내려가면 사회운동 전체에 심각한 파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이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보고 진보적 팟캐스트를 듣고 선거에서 야권을 지지하는 집단인데 이 집단의 약화는 민주파 자체의 약화와 침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은수미 노동운동 상황을 전반적으로 짚기는 쉽지 않고 개인 의원의 입장에서 노동문제를 말씀드릴게요. 제가 정기국회를 두번 겪었는데, 2012년 정기국회에서는 쟁점이 SJM 폭력사태(경비용역업체 컨텍터스가 파업 중인 SJM 노동자들을 폭행한 사건)와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였어요. 노동권이 중심 이슈였지요. 작년에는 이슈를 ‘하청사회’로 잡았어요. 삼성전자서비스부터 시작해서 인천공항 등등 온갖 하청을 다 다뤘죠. 이게 노동권 문제이자 경제민주화와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지금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활동의 40프로 정도 비중으로 다뤄요. 그래서 실제로 해결된 사례도 있어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근무하다 자살한 최종범씨 장례식은 을지로위원회에서 해결한 문제예요. 올해는 이걸 더 확대해서, 단계적인 불평등을 없애고 노동권을 확립하는 원년으로 삼자, 그리고 그 불평등 내에 손배(노조를 향한 손해배상청구) 없애기, 산재 없애기, 하청 없애기 이 세가지를 담자고 했어요. 이런 식으로 국회의원으로서 제 의제는 잡았는데, 당 차원에서 집중하게 하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계속 고민한 게 앞에서 지적한 노동과 시민 간의 불통 문제입니다. 둘을 연계하려고 제가 강연 같은 걸 할 때는 ‘일하는 시민’이나 ‘시민의 권리로서의 노동권’이라는 말을 씁니다. 이런 것이 정치적 의제로 쭉 공감을 얻어가려면 보편적인 동의가 있어야 하거든요. 한마디로 말해 시민사회운동에서 특히 노동과 일반 시민을 결합해 그것을 자기 문제로 인식하게 해서 노동권을 전면화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 당내 개혁적 의원들을 여기에 집중시킬 수 있는지가 정말 안 풀려요. 예를 들어 철도민영화 문제는 이슈가 확 뜨니까 관심이 집중되는데, 삼성전자서비스 문제는 사람이 죽어도 안되더라고요. 알바와 조합과 노동과 근로자와 하청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차원으로 결합되어야 하는데, 그래야 노동권이나 손배소 문제를 중요한 정책적 이슈로 제기할 수 있을 텐데, 아직 해결책을 못 세웠다는 거죠. 이 해결책이 2017년 집권전략과 매우 밀접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엽 사실 노조를 향한 현재 형태의 손배소는 어떻게 정치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이렇게 긴 세월 동안 흘러왔나 싶은 일들이기도 합니다. 손배소를 아예 없애는 건 새누리당이 반대해서 어렵다 해도 적어도 충분히 의제화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면 회사측 손해금액 산정을 훨씬 엄격하게 한다는 정도의 법개정마저 여당이 못하겠다고 나자빠질 순 없지 않을까요. 가압류 조건이 너무 가혹해서 당사자의 생계를 끊어버리는 판국인데, 적어도 배상금은 법적으로 판결이 난 다음에 가져가라고 할 정도로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민주당이 다 함께 힘을 합쳐 움직이면 말입니다.

 

이철희 그렇습니다. 그런 노력이 노동의 조직화를 높이는 길이고 야권의 지지기반을 확충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너무 눈앞에 보이는 정치의제만 따라가지 말고 이런 지형과 진지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지요.

 

은수미 제가 상반기 환경노동위원회를 거의 끝냈고 하반기 마지막 환노위가 남았어요. 환노위는 야당이 우위에 있으니까 이번에 사고를 좀 친다면(웃음) 전교조법이나 최저임금법을 적어도 상임위는 통과시킬 수 있을 거예요. 본회의는 통과 못할 수도 있지만요. 그러고 나면 법개정의 향배는 선거결과에 크게 달려 있을 겁니다. 지방선거에서 지면 민주당은 사실 방어에 정신이 없을 거예요. 그러면 가을에도 환노위는 대단히 어려워질 거라고 봐요. 법 통과가 난망해지겠죠. 환노위에 힘이 실리고 노동법을 개정할 수 있는 정도가 되려면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이겨야 하겠죠.

 

김종엽 선거 이야기로 가기 전에 노동운동 상황뿐 아니라 시민운동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아서 그 이야기를 좀 해봤으면 합니다. 시민운동도 이미 MB정부 때부터 고생해왔는데 풍찬노숙이 길어짐에 따라 후속세대 충원이나 확장이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사회운동의 고립화단계가 파괴단계로까지 심화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어떻습니까,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정현곤 두가지 정도만 얘기해보겠습니다. 하나는 운동의 경제적 기반 문제입니다. 2012년에 저희가 시민사회 활동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어요. 127개 단체와 개인운동가 300명, 총 427개 표본을 가지고 했는데 평균임금이 1336천원으로 나와요.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물론 가계소득은 300만원 좀 넘게 나옵니다. 배우자와 같이 버니까요. 활동가 재충원이 잘되고 있느냐는 질문에서는 79퍼센트가 안된다고 답했어요. 가장 큰 이유로 다수가 낮은 임금을 꼽았습니다. 그밖에는 열악한 근무환경, 비전 부재 이런 것들이에요. 시민사회운동이 재생산 위기에 봉착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운동의 공공성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작년 내내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점검을 해보면서 몇가지 잡히는 게 있었어요. 우선 여성운동 쪽에서는 공익을 위해 희생해온 여성지도자 상()을 못 만들었다는 자책감이 크더군요. 박근혜 후보가 한 집안의 고생한 맏딸 이미지를 다 가져가는 동안 정작 여성운동이 쌓아온 공공성 이미지는 온 데 간 데 없어졌다는 겁니다. 여성계가 성차별을 줄이고 성평등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꽤 기여를 했는데, 그 중심 전략은 차별을 받는 여성에게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대중은 그것을 여성운동과 그 지도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가지고 이득을 취한다고 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게다가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진영과의 연대가 약해서인지 결과적으로 가난한 여성대중의 노동조건이 나빠지기까지 했죠. 여성운동 쪽 고민이 깊었습니다. 환경운동 쪽도 그래요. 초록, 환경, 생명의 가치가 보편적이다 이렇게 판단하고 초록에 투표합시다 하는 운동을 했는데 확장력이 없었어요. 그걸 보고 생명과 녹색의 가치가 진영논리에 갇혀 있구나 생각했답니다. 참여연대나 경실련도 그래요. 그쪽에서 일하던 분들이 정치권이나 국가기관에 쉽게 들어갔거든요. 그가 어디에 있든 간에 공익을 위해 일하면 되는 건데 대중은 이런 것을 보면서 사회운동도 결국 개인의 이익을 찾아가는 것이란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에요. 사회운동 전반이 공적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전통을 계속 상승시키지 못한 것이지요.

지금 대안운동의 영역에서 사회적 경제라든가 마을 만들기 같은 사업이 본격화되고는 있지만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이런 영역에서 시민운동의 공공성이나 공익성을 어떻게 실현할지가 확신으로 체감되는 수준에 이르진 못하고 있습니다.

 

김종엽 사회운동가들이 먹고사는 문제나 인력충원의 문제는 이쪽 진영이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던 것 중의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정부에 들어가서 일했던 사람이 정권이 바뀌고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먹고살 거냐, 국회의원 하던 사람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뭘 할 거냐, 시민단체의 사무처장을 하다가 그다음엔 뭘 할 거냐 같은 문제죠. 그런 문제가 개인적인 해결로 넘어가고 아주 적은 수만이 정치권으로 이동하는 상황이었지요. 전체 사회운동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문제의 해결방안이자 사회운동의 새로운 방향으로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런 영역에서 토대가 마련돼야 재단도 만들고 연구소도 만들고 해서 사회운동의 생태계와 순환리듬을 갖춰나가는 건데 그러질 못한 것이죠. 보수집단의 회전문에 대응해서 우리 쪽에서도 나름의 ‘진보적인 회전문’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지금 민주파 안에서 안정감있게 먹고살 만한 사람은 대학교수, 국회의원, 그리고 변호사 정도밖에 없는 실정인 것 같더라고요.

 

은수미 저는 정위원장께서 이야기한 여성운동의 고민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네요. 저는 여성 중에서도 중산층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보다 마트에서 파견용역으로 일하는 50~60대 혹은 음식점에서 서빙하는 40~50대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에 훨씬 관심이 많이 갔어요. 그들은 늘상 성희롱에 시달리고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에 관심 갖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여성학자나 여성계 인사가 그렇게 많은데도요. 이제 공공성을 한층 깊게 고민한다면 그런 약자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겠구나 싶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운동에서 공공성의 정의(定義)를 분명히해야 한다고 봐요. 저는 공공성이란 약자와의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생태운동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빈민에게 생태와 환경이란 무엇인가. 빈자들은 오히려 개발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지하 단칸방보다야 임대아파트가 낫죠. 이런 사람들한테 환경이나 생태라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제가 끊임없이 들어요. 제가 환경노동위 소속이기도 해서 환경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지금도 고민스럽죠. 그런 점에서 저는 사회운동이 현실에서의 공공성 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약자와의 연대가 공공성의 최우선적 핵심이다, 환경이든 생태든 여성이든 노동이든 우리 주변의 약자들에게 공공성이 무엇인지를 설득할 수 있으면 전 그것이 곧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고 사회운동의 동력이라고 봅니다. 저도 정치가 회복해야 할 공공성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에 성공하면 2017년에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대와 혁신 없이 돌파구는 없다

 

김종엽 은의원은 역시 현역 의원이셔서 이야기의 결론이 정치적 과제로 귀일되는 것 같습니다. 좀전에 노동권과 노동 관련 법 개정을 위해서도 지방선거에서 승리가 중요하다는 말씀도 하셨으니 그 문제를 다뤄보죠. 여러가지 쟁점이 있겠지만, 2010년 지방선거와 대비하면 가장 뚜렷한 것이 그때는 모두 입을 모아 야권연대와 연합정치를 외쳤는데 지금은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통진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의당과 노동당도 독자노선을 강조합니다. 민주당과 조만간 창당되리라 보이는 안철수신당 쪽도 이야기 안합니다. 다들 제 길을 가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상태죠. 결국 너무나도 훌륭한 시민들이 알아서 전체 선거판에서 야권의 힘을 키울 수 있는 후보에 대해 신중하고 전략적인 선거행위를 해주기만 바라고 있는 것 같아요. 단순다수대표제에서 어떤 식으로든 연합정치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가 없이는 야권의 승리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말을 안하고 있는 겁니다. 이 문제에 관해 평소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철희 현재 상황은 연합정치, 연대, 후보단일화가 야권의 유일한 전략이라는 것 자체가 식상하게 느껴지는데다가 야권이 다른 전략에 대한 고민 없이 여기에만 매달려온 데 대한 역풍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말씀하셨듯이 단순다수제 선거제도하에서 연대전략은 불가피한 선택이에요. 그런데 왜 각 정파나 정치세력이 연대는 없다고 외치느냐, 저는 그게 혁신하지 않으려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총선에서의 통합은 혁신을 은폐하기 위한 통합이었거든요. 그때는 연대하면 되는데 무슨 혁신까지 하느냐, 그런 거였죠. 지금은 연대를 하려면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혁신을 해야 하는데 거꾸로 연대를 안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은 혁신을 회피하는 거지, 혁신하기 위해서 연대 안하겠다는 게 아니죠. 아주 비겁하고 약삭빠른 태도예요. 지금 당장 연대론을 꺼내놓는 건 유보하더라도 연대론이 먹히려면 어디까지 혁신할 거냐 하는 담론으로 문제를 푸는 게 정상적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대단히 위험한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게 제 진단입니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전면적인 연대방식으로는 안될 거고 어쩌면 이 상태로 지방선거를 치를지도 모릅니다. 그랬다가 깨지는 결과가 나온다면 나름의 교훈을 얻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단기적인 해법은 없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연대를 하려면 지금부터 각 당이 해결해야 할 혁신과제를 한두가지 꺼내놓고 밀어붙여야 합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못하면 내부에서 혁신그룹을 형성해 그것을 추진하고 그 성과로 연대를 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런 것 없이 연대하자는 얘기는 효과가 없다고 봅니다. 다른 정당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이런 상황에 처하니까 새삼 지난 대선 이후 안철수 변수를 야권이나 진보세력이 어떻게 관리했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기 내지 질투, 얕잡아보거나 기대하는 게 뒤섞여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관망하니까 안철수 의원이 야권의 혁신과 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일부 교란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은 큽니다. 그래서 이번에 연대가 되든 안되든 안철수 변수를 어떻게 다룰 것이며, 야권 전체의 진용을 어떤 형태로 짤 거냐에 대한 그림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런 그림을 가지고 연대를 고민해야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전체적인 연대는 가능하지 않을 전망입니다만, 그래도 상징적으로 경기도든 어디든 한두군데에서 야권연대를 성사시키고 서울은 어쨌든 지켜내는 게 중요합니다. 서울시장에 안철수 의원이 출마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쪽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는데, 이건 연대를 깨게 하는 아주 위험한 발언이에요. 서울을 어떻게 지켜낼지, 또 한두군데에서 어떻게 연대의 모델을 만들어낼지를 고민해야죠.

 

김종엽 어떤 식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중앙당은 물러서고 후보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쪽으로 열어주는 게 오히려 낫겠다는 말씀인지요?

 

이철희 후보 차원으로 가는 건 아니고 당 내부, 주로 민주당에서 움직임이 있어야죠. 안철수신당 쪽은 지금 윤여준이나 보수쪽 인사들이 들어갔기 때문에 쉽게 안 움직일 거예요. 안의원이 그들을 제어하지 않는 이상은 쉽지 않아 보이고 정의당은 얘기한들 힘 자체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결국 민주당 내부의 바닥에서부터 논의가 올라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먹히려면 민주당의 혁신이나 기득권 포기가 필요합니다. 덜 거창하게 얘기하면 한마디로 인적청산, 사람 몰아내는 거예요. 당장 쫓아낼 방법이 없더라도 세게 밀어붙여서 하나의 기조로 만들어낸 다음 그것을 연대의 흐름으로 이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런 게 이뤄져도 연대가 성사되는 지역은 몇군데 안될 겁니다.

 

2014년, 우리 앞에 놓인 과제

 

김종엽 그렇군요. 좀더 깊게 나누고 싶은 주제와 이야기가 더 있지만, 예정된 시간이 다 되어가서 이야기를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무리발언으로 민주파 내지 야권 그리고 사회운동 전반의 혁신을 위해서 한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철희 얘기하던 김에 제가 먼저 말을 하지요. 전체 사회운동의 발전도 그렇고 우리 사회에서는 워낙 정치권력의 향배가 핵심 사안입니다. 그런데 주제넘게 얘기한다면 지금 진보진영이나 야권에는 2017년 집권플랜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게 없으면 야권 전반과 사회운동의 혁신의 초점과 방향이 부실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없는 게 단지 미래의 일만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대선도 엄밀하게 평가하자면, 2002년의 복제판입니다. 그나마 100퍼센트 복제도 못했고요. 한국처럼 변화가 빠른 사회에서 십년이 지났음에도 예전 전략을 그대로 복제했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역량을 보여준 셈입니다. 좀더 소급해서 보면, 민주화 이후에 진보진영이나 야권의 시대를 가능케 한 시대과제를 새롭게 규정할 만한 게 딱히 없는 상황이에요. 물론 보수도 마찬가지죠. 보수는 현실을 지키자는 쪽이니 굳이 거창한 걸 안 내놔도 되지만 어쨌거나 ‘선진화’라는 담론을 꺼낸 반면 이쪽은 그것조차 잘 못했어요. 대중에게 진보가 이야기하는 게 뭐다,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이다라고 간명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보니까 그에 기반해서 어떻게 집권하겠다는 얘기도 빠지는 거죠. 그래서 우왕좌왕하는 겁니다. 계속 ‘민주 대 반민주’ 구도만 붙들고 박근혜정부의 실정(失政)만 잘 파헤치면 집권할 수 있다, 집권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저는 이미 이건 안 먹힌다고 봐요. 설사 요행히 집권하더라도 5년이 지나고 나면 또 정권을 뺏기게 될 거예요. 제가 최근에 집권여당이나 야권에 주문하는 게 선거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겁니다. 4년, 5년 주기의 선거에서 이기는 데 모든 것을 걸고 그것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인데요. 그래서 일상의 민주주의, 일상의 정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126석 가지고 4년 내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할 거냐를 고민해서 비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대충 넘기고 지방선거면 지방선거, 총선이면 총선, 대선이면 대선, 그때그때 어떤 후보를 내세우고 어떻게 이길 거냐에 골몰하고 있으니 실력이 쌓이지 않지요. 이런 선거정치보다는 일상정치에 주력해야 합니다. 그 일상정치를 주도할 의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고요. 전 거기서 승부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없이 야권은 지금 불행하게도 2017년까지의 길에서 대단히 어려운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차피 이긴다, 여권에 후보가 누가 있느냐, 야권은 후보가 많다, 박원순부터 시작해서 안철수, 문재인 등등 내셔널 피겨(national figure)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인물 중심으로 편제돼서 분파가 나눠지는 것이 심각한 폐해예요. 안철수 의원을 봅시다. 인물은 부상했지만 그의 ‘새 정치’가 뭔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안철수 아젠다가 없잖아요. 문재인도 의제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만 있고 아젠다는 없는 이런 상황으로 얼마나 버틸까요. 그 때문에 저는 걱정스럽게 보는 편이고요. 전체적으로 야권이 근본부터 되짚어서 어떻게 하면 집권하겠다는 것을 큰 방향에서 논의하고 합의하지 않으면 어떤 전문가를 붙여놔도 이기는 그림을 만들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이기는 그림이라는 것은 집권했을 때 다수 연합을 그대로 유지해가면서 자신의 프레임을 관철하는 게임플랜을 의미합니다.

 

은수미 토론을 시작하면서 ‘문제는 정치다’라고 했는데, 저는 민주당이 2017년 집권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봅니다. 이중의 위기인데요, 우선 객관적 상황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가 있습니다. 세대(50~60대), 지역(충청도), 소득(저소득층), 집단(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별로 뚜렷한 보수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주체적 상황에서는 민주당의 혁신 실패가 있지요. 정체성의 혼란과 지지자에 대한 배신, 낡은 분파 프레임의 재생산과 의제 주도권 상실 등으로 민주당은 무너지고 있고 지자체선거도 위험한 상황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지요. 환경권, 노동권, 정보인권 등 시민인권의 총체적 재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한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치열한 혁신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진행할 수 있다면, 희생과 헌신을 할 정치집단이 민주당 내에 존재하고 그들이 국민의 공감을 받는다면, 여전히 가능성은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2014년에 약자를 위한 강한 정치, 국민을 위한 인권정치, 시민을 위한 열린 정치를 표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심각한 불평등, 종종 199라고 불리는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99%를 위한 정치행동의 시기, 정치혁신의 시기가 되어야 하고요. 민주당이 정말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믿게 되는 것은 실제로 ‘정말 이 사람이 날 사랑하는구나’라고 느낄 때인 것처럼, 민주당이 약자와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아무리 표방해도 시민이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심각한 위기를 극복할 결단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정현곤 우선 연합정치 부분은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저희 쪽에서 먼저 제안도 하고 매개도 했습니다. 정당 간에는 자리가 걸려 있어서 그런지 늘 경쟁이에요. 그에 대해 가치와 정책의 영역에서 대의를 부여해서 모아주고 걸러주는 거멀못 역할을 시민사회가 했죠. 기억하시겠지만 당시 정치를 중시하면서도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있는 사람들, 그게 시민정치세력인데 시민사회가 그 힘과 결합했어요. 2011년 서울시장 보선과정에서 나타난 모습이지요. ‘희망과대안’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 ‘혁신과통합’이 그때 움직였어요. 저는 그런 역할이 올해에도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두번째는 시민사회운동을 어떤 방식으로 강화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저는 의제와 지역을 축으로 하는 실질적 네트워킹으로 가자는 입장입니다. 지금의 사회운동 연대엔 형식적인 면이 많습니다. 네크워크가 생기면 여기에 관계된 단체들이 각자 자기 힘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단지 몇곳만이 내용과 형식을 쥐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연대형식이 많은데, 대개 중복되는 단체가 그 일을 해요.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현장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발전시켜나가질 못해요. 자기 미션을 잊고 생존만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아요. 허장성세라는 거죠. 사회운동 생태계 전반이 재조정되어야 합니다. 미션을 자각하고 연대를 새롭게 세워야지요. 저는 현재 전국적 판도에서라도 수천개의 강소형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마지막으로 ‘힘 내라, 시민사회 활동가’, 뭐 이런 캠페인을 할 생각입니다. 활동가 공제회는 기본이고요. 시민운동가로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어떤 기반, 철학과 실력과 물질적 기반을 만들도록 도우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운동은 협동조합이 그러듯이 스스로 출자하고 책임지고 함께 살아가는 원리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전교조나 대기업노조 같은 단위에서 시민사회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기금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들 너무 쉽게쉽게 살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김종엽 제가 작년초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으로 있으면서 느낀 것은 정치인이나 시민운동가나 학자나 서로 만나고 대화하기보다는 서로를 관찰하는 데 머무를 때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관찰의 수단은 대체로 언론매체에 의한 보도였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런 것들을 얼마나 다양하게 검토하고 비교하느냐는 정도고요. 그리고, 정치인이 가장 두드러지게 그렇겠지만, 다들 기자와의 접촉을 통해 정보를 조율하고 통제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끄는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그 과정에서 언론매체 나름의 고유한 편향이 작동하게 되지요. 그래서 정치인과 운동가와 학자 사이에 무언가 협력과 씨너지가 생겨나기보다 오해와 불신이 증폭될 위험이 커집니다. 창비도 따지고 보면 언론매체의 하나라 이런 점을 자각하고 노력하긴 해도 그 위험에서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2014년에 민주파의 위기를 뚫고 나가려면 그렇게 흩어져서 서로를 관찰하지만 말고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대화도 그런 자리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참석해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2014.1.23 세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