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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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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鄭智我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등이 있음. jiajeong@hanmail.net

 

 

 

아하 달

 

 

나는 제왕이다. 알래스카 대설원을 치달리며 얼어붙은 대기를 뒤흔들어 바람을 일구던 바람의 제왕이다. 먼 선조 중 누군가 인간의 올가미에 걸린 뒤 바람만이 살아 숨쉬는 대설원을 떠나왔으나 아직도 내 핏속에는 바람이 피톨로 휘돌고 있다. 바람이 온다. 동쪽 강변의 버들강아지를 흔들어 깨우고, 막 돋아난 새움의 어린 살냄새와 여울 바닥에 납작 엎드린 늙은 쏘가리의 외로움을 담아 골짜기를 타고 오른 바람이 마당 끝 홀로 선 동백 이파리에 닿는다. 매서운 추위에 두툼하게 살이 오른 이파리는 미동도 없다. 헛되이 동백나무 곁을 맴돌던 바람이 홀로 무참하여 은근슬쩍 방향을 튼다. 바람에 실린 늙은 쏘가리의 외로움에서 나는 오갈 데 없는 서글픈 욕정의 냄새를 맡는다. 지난가을 나도 그러했다. 살아 있는 것들은 하나의 시계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때가 되면 발정이 난다. 오갈 데 없는 늙은 쏘가리의 욕정만 서글픈 게 아니다. 때가 되어 아무 데로나 향한 욕정은 더욱 서글프다.

배가 고프다. 태양이 중천에 솟은 지 오래다. 배가 고프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에 감각했다. 감각은 점차 날을 세우다 바람처럼 불시에 잦아든다. 줄에 묶인 나는 다만 기다릴 뿐이다. 기다림에는 여러 자세가 있다. 제발 밥을 달라고 애원하며 기다릴 수도 있고, 기다리지 않는 듯 기다릴 수도 있다. 혹은 기다림을 포기할 수도 있다. 늑대의 핏속에는 기다림의 유전자가 숨어 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설원에서 먹잇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이르러서야 먹을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온몸의 감각에 날을 세워 먹잇감을 향해 돌진해야만 겨우 삶이 유지된다. 차가운 눈밭에 엎드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조상처럼, 나는 어떠한 포즈도 없이, 기다리지 않는 듯, 기다린다.

기다리던 그 대신 낡은 오토바이의 석유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 먼저 찾아온다. 잠시 후면 우편배달부가 당도할 것이다. 옆집 똥개가 뒤늦게 냄새를 맡고 악착스레 짖기 시작한다. 집이라야 대문도 울타리도 없이 오종종하게 마주본 오두막 세채.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는 이는 우편배달부나 택배기사뿐이다. 낯을 익힐 법도 하건만 놈은 일단 짖고 본다. 놈 때문에 번번이 한낮의 적요가 흐트러진다. 앙칼지게 짖어대는 놈을 두어차례 죽지 않을 정도로 손봐준 적도 있다. 그래봤자 상처가 낫고 나면 놈의 기억은 떨어진 피딱지처럼 사라지고 만다. 피딱지보다도 못한 놈이다. 나는 짖지 않는다. 이 마을을 찾는 누구든 나로서는 반길 이유도 거부할 이유도 없다. 짖어야 할 다른 어떤 이유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하여 아직 짖지 않았다.

태양이 하늘의 중심을 벗어날 무렵, 문이 열린다. 그다. 아직 취기에 젖어 있다. 짐작했던 바다. 새벽까지 거실의 불만 켜져 있었다. 그런 날 그는 홀로 술을 마신다. 홀로 사는 그는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다. 불면의 밤, 술이 그의 약이다.

고기가 담긴 그릇을 든 채 주인은 정오의 햇살 아래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건 유혹이다. 그 유혹에 여러차례 무릎을 꿇었다. 그때마다 주인은 차디찬 경멸을 보냈다. 스스로 자존심을 꺾은 자에게 경멸은 최악의 벌이다. 술에 취해 하루를 바람처럼 흘려보낸 주인이 죄의식 탓인지 막 구운 삼겹살로 나를 유혹했을 때, 나는 쏜살같이 바람을 가르며 바위 위를 날았다. 앞발을 들고 덤벼드는 나에게 주인은 고기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삼겹살의 기름이 차게 식어 허옇게 굳을 때까지 나는 차마 먹지 못했다. 삼겹살 따위, 먼지로 사라질 때까지 외면하고 싶었으나 그것은 다만 자존심일 뿐, 자존심은 먹고 싶다는 본능을 넘지 못했다. 기름이 엉겨붙은 삼겹살을 꾸역꾸역 삼키며 나는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먼 선조의 슬픔을 이해했다. 올가미에 걸린 그는 몇날 며칠을 굶주렸으리라. 배가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그는 원수가 내민 고기를 나처럼 꾸역꾸역 삼켰을 것이다. 굶주림 앞에서는 슬픔도 무색하다. 슬픔을 이해하면서 나는 먼 선조를 증오했다.

바람에 털이 흩날릴 뿐,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이 무심하게 고기 냄새를 실어나른다. 의지와 상관없이 감각이 고기 냄새를 감지하고, 혀가 구멍을 열어 침을 흘려보낸다. 소리 없이 침을 삼킨다. 그는 나를 시험하고 있다. 내가 욕망 앞에서 의연하기를. 그는 내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침을 삼키며 견디는 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착각이다. 그는 자신이 나를 선택했다고 확신한다. 그 역시 착각이다. 내가 그를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우리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두달이 채 되지 않은 강아지였으나 내 덩치는 이미 어지간한 애완견보다 컸다. 사람 손만 한, 눈처럼 흰 내 발을 보며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고 우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나를 어루만지려 했다. 나는 가장 안쪽으로 물러나 낮게 으르렁거리며 그 손들을 탐색했다. 강아지일 뿐이었으나 설원을 치달리던 선조의 피가 뜨겁게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느 애완견과 달리 꼬리치지 않는 나를 쉽게 포기했다. 오직 그만이 한시간 넘게 나를 탐색했다. 나는 꿈쩍하지 않고 그를 쏘아보았다. 그는 나의 응시를 피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의 응시를 피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케이지 좀 열어주세요.

열린 문 사이로 나는 튀어나왔다. 그 문을 열게 해준 그보다 처음 만나는 세상이 더 흥미로웠으므로 나는 단숨에 그를 지나쳐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내가 뛸 때 방 안의 공기가 뒤섞이며 바람이 일었고 그 바람이 풍성한 내 털을 흩날렸다. 털 사이사이로 스며든 바람이 온몸의 땀구멍으로 스며들어 땀을 식혔다.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쾌감이었다. 나는 바람을 만들어 바람을 가르며 발바닥에 땀이 돋을 때까지 뛰어다녔다. 간혹 그의 발이 내 걸음을 막아섰다. 그것 역시 세상의 일부였다. 이제 막 돋기 시작한 이빨로 그 발을 깨물고 발톱으로 할퀴었다. 아무 반응도 돌아오지 않아 나는 이내 흥미를 잃고 다른 데로 뛰어갔다. 내가 자신에게 쉽게 굴복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나를 선택했다. 그는 모른다. 그가 마음을 굳히고 내게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있는 힘껏 그를 깨물 수도 있었다. 잠시 망설였으나 물지는 않았다. 그가 나에게 굴복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는 대신 손길을 피해 휙 고개를 돌렸고 그는 피식 웃으며 나를 안아 들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었다.

그와 나 사이의 팽팽한 시선이 바람을 일으킨다. 긴 털이 휘날린다. 바위 위에 우뚝 선 채 긴 갈기를 휘날리며 나는 굶주림을, 그의 유혹을 견딘다. 공복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다. 그러나 지난 삼년 동안 내 자존심은 동짓날의 북풍처럼 사납게 벼려졌다. 사나흘쯤 굶는대도 너끈히 견딜 수 있다. 굶어죽어도 좋다.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은 반사작용일 뿐이다. 침을 흘리면서 나는 의연하게 고기를 외면하고 그의 눈을 응시한다. 마침내 그가 왼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꿇고 나를 부른다. 세번째 불렸을 때에야 나는 허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먹을 것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나를 기다리는 그를 위해 가주는 것이다.

그가 고기 한점을 내민다. 달빛 환한 봄밤, 복사꽃을 희롱하는 바람처럼 나는 느릿느릿, 가볍게 먹이를 잡아챈다. 우편배달부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짖어대던 놈이 어느새 고기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놈이 원하는 것은 기름진 고기다. 놈의 주인은 놈 따위에게 절대 고기를 주지 않는다. 장바닥에서 사온 싸구려 사료가 유일한 먹이다. 놈이 그래서 고기에 환장하는 것은 아니다. 놈은 주린 창자가 뒤틀리는 순간에도 먹이 앞에서 의연한, 기품의 맛을 결코 알 수 없는 족속이다. 음식찌꺼기에조차 환장하고 덤벼드는 놈이다. 놈은 오직 먹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뱃가죽이 땅에 질질 끌릴 때까지, 상한 음식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놈이다. 놈은 온종일 뱃가죽을 질질 끌며, 눈을 희번덕거리며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나는 앞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낮춰 놈을 겨냥한다. 놈이 다리 사이에 꼬리를 끼운 채 뒷걸음질로 물러난다. 내 목줄이 닿지 않는 곳에 멈춰선 놈의 눈은 그의 손에 들린 고기를 향해 있다. 그는 좀처럼 놈에게 고기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놈은 삼년째 고기를 든 그의 주변을 맴돈다. 배가 부르지 않아도 나는 고기 몇점을 남긴다. 몇번 더 권하던 그가 멀찍이서 미친 듯 꼬리를 젓는 놈에게 남은 고기를 던진다. 놈이 고기로 달려든다. 나는 댓점의 고기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쓸어먹는 놈을 향해 돌진한다. 발밑에 깔려서도 놈은 항복의 비명도 지르지 않은 채 입에 물린 고기를 씹어 삼키느라 여념이 없다. 내 눈에 경멸이 담긴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놈이다. 덤벼드는 나를 향해 고기를 집어던질 때 그의 눈빛도 이러했다. 삼년 전의 일이 어제인 양 생생하다.

재빨리 바위를 타고 오른다. 부끄러움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는 내게 부끄러움을 일깨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놈처럼 살았을지 모른다. 고마운 일이지만 부끄러움은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는 나의 스승이자 원수다. 나는 바위에 버티고 서서 그를 외면한다.

이리 와.

몇번이나 그가 나를 부른다. 그의 숨을 타고 새어나온 알코올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온다. 취한 날의 그는 다정하다. 다정함에 여러차례 속았다. 잠들지 못하는 밤, 그에게는 술이 유일한 친구다. 취한 밤이면 그는 나를 찾는다. 하염없이 나를 어루만지고, 내 목덜미에 얼굴을 부빈다. 다정한 손길에 배를 내준 적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배를 보이고 발랑 누웠을 때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밤, 그는 내 배를 긁으며 오래도록 먼 산에 걸린 달을 보았다.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언젠가 그가 오랜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가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어루만졌다. 어루만지기에 여느 때처럼 몸을 뒤집었다. 순간 그의 손길이 멈췄다. 몸은 이미 반쯤 뒤집혀 허리가 꽈배기처럼 꼬인 상태였다. 그의 냉담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뒤집어진 그 상태로 그의 무릎에 다리를 얹은 채 동작을 멈추었다. 그도 나의 당황을 눈치챘다. 그 역시 당황했다. 반 남짓 드러난, 털도 없는 배 위로 바람이 스치고, 어색한 시간이 지루하게 흘러갔다. 뒤틀린 허리가 아팠다. 나는 실수한 척 한쪽 발을 그의 무릎에서 떼면서 몸을 반듯이 했다.

그뒤로 취한 그가 아무리 다정해도 나는 배를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불러도 가지 않는다. 취중에는 진심이 없다. 취중의 진심은 진심이 아니다. 가닿고 싶지만 가닿지 못한 무엇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건 진심은 아니다. 산중의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개중에는 여자도 있지만 아내나 연인은 아니므로 다정할 일이 없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다정히 대하지는 못했으리라 짐작한다. 나를 어루만질 때 그의 손길이 그러하다. 다정해본 적이 없는 듯 머뭇거리며 그의 손은 내 털들을 헤집는다. 털을 헤집을 뿐 그 속, 한번도 햇빛을 본 적이 없는 내 여린 속살은 차마 건들지 못한다. 술에서 깨고 나면 취중의 다정함이, 그 다정에 반응하는 내가 난감한 것일 게다.

취한 그가 바위를 타고 오른다. 그의 집 뒤란, 큰 바위들로 쌓은 축대 위에 네발로 버티고 서서 나는 다가오는 그를 바라본다. 도망가지 않는다. 지난 삼년, 나를 한마리 개가 아니라 저와 다를 바 없는 단독자로 대해준 그에 대한 보답이다. 그는 나를 통해 저를 본다. 그는 나만 자주 굶기는 게 아니다. 저도 자주 굶는다. 게으르긴 하지만 게을러서만은 아니다. 밥을 지을 때의 그는 비통하다. 밥을 먹을 때의 그는 고기를 향해 덤벼드는 나를 볼 때와 다르지 않다. 그는 밥 먹는 저를 경멸한다. 밥을 먹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죽이고 싶은 것인지, 먹고자 하는 욕망마저 넘어서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가능한 한 먹지 않고 가능한 한 자지 않고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는다. 나도 그러하다. 이것이 지속된다면 나는 개가 아니고 그는 사람이 아닐 수 있는 것일까? 아닐 수 있다면.

배가 뒤틀린다. 허기를 다 못 채운 탓은 아니다. 깊은 산중, 손바닥만 한 그의 마당에 햇살이 담뿍 퍼질 때부터 그랬다. 고통을 참으며 나는 그의 손길에 나를 맡긴다. 여전히 털을 더듬기만 하는 서툰 손길이다. 그저 몸을 주었을 뿐 나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가 차마 내 속살을 다정하게 어루만지지 못하듯 나는 차마 그 손길에 흐물흐물 녹아내리지 못한다. 손가락 끝이 여린 내 속살에 닿는 순간 불현듯 그가 손을 뺀다. 그가 돌아서고 바람이 분다. 저 늙은 쏘가리는 아직도 여울 바닥에 엎드려 팔팔하던 시절의 뜨거운 욕정을 더듬고 있다. 비릿한 바람이다.

나는 킁킁거리며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집은 없다. 그가 집을 마련해주었지만 나는 한번도 집에서 자지 않았다. 답답해서다. 알래스카 대설원이 내 선조의 집이었다. 휘어진 여울이 바라보이는 탁 트인 바위, 사방의 바람이 휘돌아치는 바위 위가 내 집이다.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안다. 바위 위는 안된다. 낑낑거리면 그가 나와서 무엇인가를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나는 그가 가을내 모아둔 낙엽더미 위에 엎드린다. 그의 게으름에 축복을. 낙엽더미는 높고 푹신하다. 이곳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지난여름의 더위는 가혹했다. 나의 긴 털은 겨울을 나기 위한 것, 남도의 더위에는 나를 향한 흉기와 다름없었다. 나는 바위 위, 다른 바위가 드리운 좁은 그림자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게으른 그가 보기에도 혹독한 더위였는지 하루에 한두번 바위에 물을 끼얹어주었다. 그러나 그도 잠깐, 햇볕에 데워진 바위에서는 금세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한증막인 듯 숨막히게 무더웠다. 나는 밥도 먹지 못했다. 여름의 끝 무렵에는 그늘을 따라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다. 보다 못한 그가 끼니마다 고기를 주었지만 더위에 입맛도 잃었다. 해가 지고 강에서 산자락으로 습기 찬 바람이 불어올 때나 겨우 몇점, 딱딱하게 굳은 고기로 허기를 채웠다. 풍성했던 털도 뭉텅이로 빠졌다. 몰골조차 사나웠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었다. 습기 찬 바람 속에 알래스카 설원의 기운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긴 기다림 끝에 가을이 왔다. 여름내 주린 배를 속성으로 채웠다. 그는 몰랐겠지만 나는 까치 몇마리와 까마귀 몇마리도 잡아먹었다. 옆집 닭 열마리도. 나는 닭들이 예사로 내 주변을 얼씬거리도록 오래도록 공을 들였다. 바로 근처까지 와도 꿈쩍하지 않았다. 차츰 대담해진 놈들은 내 몸을 넘어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모른 척했다. 나는 녀석 중의 하나가 무리에서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 한놈이 동떨어져 내 곁에 어슬렁거린 순간, 나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놈을 덮쳤다. 다른 놈들은 동료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털은 미리 파둔 구덩이에 묻었다. 애당초 다 잡을 생각은 아니었다. 발톱으로 찢어발긴 내장은, 피 냄새가 흥건한 내장은, 입때껏 먹은 어떤 것보다 황홀했다. 그러나 그 맛을 떨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굶주림이라면 그를 통해 충분히 단련했다. 단 한번의 사냥이 내 핏속 깊이 잠복해 있던 본능을 일깨운 탓이었다. 그것은 취한 그의 다정보다 강렬했다. 그의 다정은 자존심으로 물리칠 수 있었지만 사냥의 본능은 무엇으로도 물리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옆집 닭을 다 잡고 말았다. 옆집 남자는, 행여 죽을까 비에 젖으면 드라이어로 말려가며 키운 귀한 오골계라고, 구구 구구, 애타게 닭을 찾아 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 닭들이 토실토실 나를 살찌웠다. 녀석들로 하여 찐 살인 줄만 알았다, 풍만하게 부푼 배가.

단 한번이었다. 실수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찰나였다. 찰나의 실수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뱃속에 생명이 들어선 것을 그것들이 꼬물거리고야 알았다. 첫 잉태였다.

나는 신음을 삼킨다. 예리한 송곳니가 잇몸을 파고든다. 비릿한 피가 흐른다. 핏물을 삼키며 나는 이를 간다. 놈을 용서하지 않겠다. 놈이 하루종일 내 엉덩이 부근에서 뜀뛰기를 할 때 나는 생리 중이었다. 한번도 교미하지 않았으므로 녀석의 행위를 나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언제나처럼 먹을 것을 찾아 오두방정을 떠는 줄만 알았다. 내가 앉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그 짧은 찰나를 놈은 놓치지 않았다. 무엇인가 순결한 나의 내부를 파고들었고, 그 짧은 경험만으로 나는 그 행위의 의미를 간파했다. 그리고 당황했다. 놈 때문이 아니었다. 놈의 몸짓에 반응하는 내 몸 때문이었다. 내 몸은 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놈보다 강렬하게. 그러나 놈을 원한 건 아니었다. 몸은 무언가 원하고, 의식은 놈을 거부했다. 내가 고민을 끝내기도 전에 놈은 제 할 짓을 끝내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놈은 그날 온종일 내 엉덩이 뒤에서 뜀뛰기를 해댔던 것이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그날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잠도 자지 않았다. 가장 높은 바위에 선 채 나는 처연히 하늘만 보았다. 처연하다,라고밖에 달리 그날의 심정을 표현할 길이 없다. 놈을 받아들인 몸을 가진 나를 차마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죽지도 못하고 살 수도 없는 그 밤, 유난히 어둔 하늘에 초승달이 그린 듯 선명했다. 밤새 강물과 희롱하던 초승달이 서산으로 스러지고, 나는 잊었다. 바람이 불고, 바람이 잦아들었을 뿐이다. 가랑비가 흩뿌리고, 그렇게 지나갔을 뿐이다. 있었으나 있지 않았고 없었으나 없지 않았다. 배 속에서 놈의 피를 받은 무언가 꿈틀거리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럴 수 있었다.

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듯’이 아니다. 생살을 찢으며 무엇인가 세상을 향해 미끄러져 나온다. 미끄러지는 것도 아니다. 저의 의지로 나의 살을 찢으며 무엇인가 한점의 빛에 불과할 세상을 향해 악착같이 기어 나온다. 그것은 나의 고통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생살을 찢는 고통을 나는 이 악물고 버텨낸다. 물끄덩, 마침내 무엇인가 낙엽더미 위로 쏟아진다. 그것은 얇은 막에 갇혀 있다. 비린 피를 뒤집어쓴 그것은 갓 잡은 닭과 비슷하다. 발톱으로 찢어발기면 그것의 속에도 닭과 같은 내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만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썩은 고기에 눈을 뒤집는 구차한 똥개의 피가 흐르는, 누추한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놈의 피를 받은 그것은 놈처럼 온종일 땅바닥을 헤집으며 상한 음식을 찾고 혹 먹을 것을 던져줄까 사람의 뒤나 졸졸 따르며 평생을 보낼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한점의 고기가 되어 썩어 문드러지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시한 나무의 거름이 되어 풍성한 잎을 피우고, 또다시 져서 또다른 잎을 피우고, 피고 지는 순환에 갇혀 영원을 살 것이다. 나는 그것을 향해 발톱을 세운다. 막 그것의 심장을 내리찍으려는 찰나, 또다시 고통이 몰려온다. 배 속에서 생명들이 아우성친다.

두번째 것을 낙엽더미 위로 쏟아내고서야 놈이 보인다. 언제부터인지 놈이 처음 나온 것을 핥고 있다. 그것의 몸피를 둘러싸고 있던 엷은 막이 사라지고, 놈의 혀가 닿는 곳마다 보얀 털이 드러난다. 나의 털을 닮아 붉은 기가 도는 갈색이다. 피비린내 나는 양막에 싸여 있던 그것이 꿈틀꿈틀 나를 향해 다가온다. 그사이 놈은 두번째 것을 향한다. 첫놈이 배 근처에서 얼굴을 들이민다. 젖꼭지를 찾고 있다. 당황한 사이 첫놈이 젖꼭지를 문다. 아린 통증은 잠시, 앞선 모든 통증을 잊을 만한 짜릿한 쾌감과 함께 젖이 뿜어져나온다. 꿀떡꿀떡, 첫놈이 힘차게 젖을 빤다. 늑대의 피가 섞인 젖이다. 대설원을 누비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채 우주와 독대하던 내 모든 선조의 영혼이 담긴 젖이다. 선조의 영혼을 물리는 쾌감과 썩은 음식물이나 탐하는 놈에 대한 분노 사이에서 나는 갈등한다. 놈이 내 눈빛에 담긴 증오를 읽고 뒤로 주춤 물러난다. 두발 물러났다 눈치를 보며 한발 다가왔다, 놈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가도 오도 못하고 놈은 결국 짖기 시작한다. 아직 배 속에 담긴 두 생명과 젖을 빠는 두 생명을 팽개치고 나는 놈을 향해 달려든다. 날카로운 이빨이 놈의 목덜미에 박히려는 순간, 드르륵, 부엌 창문이 열린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다.

야, 인마!

그가 소리치며 달려나온다. 그사이 나는 이빨을 박는다. 놈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나뒹군다. 몸집이라야 내 머리통만 한 놈이다. 하늘로 향한 놈의 뱃가죽에, 나의 몸을 침범했던 하찮은 것이 달려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 난감한 상황이 고작 저 하찮은 것 때문이라 더 치욕스럽다. 나는 놈의 것을 발로 짓밟는다. 놈이 죽는 시늉을 한다. 그가 내 목줄을 잡아당긴다. 그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나는 놈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꽁무니를 사린 채 다리를 절뚝이며 붉은 핏방울을 떨구며 놈이 달아난다.

왜 그래, 인마.

그제야 낙엽더미에 생각이 미친다. 나는 있는 힘껏 낙엽더미를 향해 몸을 날린다. 줄을 잡고 있던 그가 뒤로 나자빠진다. 나는 내 치욕의 증거들을 풍성한 털로 감싼다. 그가 엉덩이를 툭툭 털고 다가온다. 나는 먼 데, 빈 하늘을 바라본다. 또다시 통증이 밀려온다. 이도 앙다물지 않고 참는다. 지난 삼년간 그에게 생리의 흔적조차 보인 적이 없다. 그가 주변을 살핀다. 나는 먼 하늘만 응시한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도 돌아서지 않는다. 그사이에도 내 밖의 것들은 집요하게 젖을 빨고, 내 속의 것들은 악착스레 나를 벗어나고 있다. 미끄덩, 또 하나가 낙엽더미 위로 쏟아진다.

조심스레 다가오는 그의 발소리가 들린다. 차라리 눈을 감는다. 눈을 감은 채 나는 낙엽더미에 얼굴을 묻는다. 빨리 양막을 제거하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할 것이다. 상관없다. 그것의 반은 놈이다. 그가 바짝 다가온다. 호흡이 거칠다. 그가 무릎을 꿇는다. 박동이 빨라진다.

야, 인마!

그가 그것을 집어 내 얼굴 앞으로 드민다. 나는 외면한다. 그가 내 뒷덜미를 잡아 그것을 향하게 한다. 나는 기어코 외면한다. 쭉쭉 빠는 소리가 들린다. 슬그머니 눈을 뜬다. 그가 그것의 입을 빨고 있다. 그것이 첫 숨을 토한다. 그는 고깃덩어리에서 생명이 된 그것을 내 배 밑으로 밀어넣는다.

그가 어디론가 황급히 달려간다. 광에서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사이 마지막 것이 세상으로 나온다. 나는 비로소 텅 비어 내가 된다. 놈이 다리를 절뚝이며 여전히 피를 떨구며 다가온다.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다. 놈이 눈치를 살피며 내 발치에서 마지막 것을 열심히 핥는다. 마지막 것이 배 밑으로 파고든다. 막 태어난 것들이 어찌 알고 죽어라 젖을 빤다. 마지막 생명까지 빨려나가는 느낌이다. 까무룩 잠이 든다.

고소한 냄새가 나를 깨운다. 참치와 날계란이다.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취기도 가셨는데 그 어느때보다 다정한 손길이다. 그가 한 손으로 여전히 나를 어루만지며 접시를 턱 밑으로 옮겨준다. 마당 가득 바람이 휩쓸고 있다. 미지근한 봄기운이 섞인 바람이다. 내가 깔고 누운 낙엽들이 바람에 쓸려 허공으로 솟구친다. 가벼이 공중으로 날아오른 낙엽들이 나선을 그리며 맴돌다 멀지 않은 다른 곳으로 내려앉는다.

천천히 접시를 핥는다. 배 밑의 것들이 고요하다. 먹을 것이 들어가자 젖이 다시 차오른다. 유방이 점차 뿌듯해진다. 먹는 내내 그는 나를 쓰다듬는다.

아궁이 앞으로 가자. 여기는 너무 추워서 안돼.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을 대하듯 그가 말을 건넨다. 아직도 나는 그를 정면으로 보지 못한다. 그가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몸을 일으킨다.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피해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다. 내가 멀어지자 새끼들이 낑낑거린다. 세상에 처음 토하는 소리다. 나를 찾는 소리다. 낑낑거리는 작고 낮은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나를 쫓는다. 나는 기어이 돌아보지 않는다.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한다.

그는 나를 안방 아궁이 앞으로 인도한다. 거기 오래전에 버린 집이 있다. 창고에서 다시 꺼낸 모양이다. 보송보송한 볏짚도 깔려 있다. 집 앞에 나를 묶고 그는 다시 뒤란으로 간다. 돌아온 그의 팔에 새끼 네마리가 안겨 있다. 그제야 새끼들을 유심히 살핀다. 네마리 모두 나를 닮았다. 몸피도 이미 놈만하다. 꼬리의 절반이 나와 달리 흰색이다. 놈의 흔적이다. 그가 조심스레 새끼들을 집 안으로 넣는다. 새끼들이 눈을 감은 채 본능적으로 나를 향해, 저희를 살릴 젖을 향해 기어온다. 내가 외면한들 녀석들은 아직 모멸을 알지 못한다. 나는 녀석들을 향하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는다. 향하지도 못하고 피하지도 못한다.

따스한 온기가 나를 깨운다. 촉 낮은 백열등이 아궁이 주변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 새끼들을 피해 몸을 일으킨다. 불길이 어른거리는 아궁이 앞에 그가 앉아 있다. 그의 곁으로 가지는 않는다. 따스해진 부뚜막 위에 가만히 얼굴을 얹는다. 대충 자른 참나무 토막에 앉아 있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 먹이가 들려 있다. 미역과 돼지뼈와 북어를 우려낸 뽀얀 국물이다. 내가 잠든 사이 읍내에 다녀온 모양이다.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그다. 그가 부뚜막 위에 밥그릇을 놓는다. 따뜻한 데서 먹으라는 의미일 게다. 자신을 위해서는 요리조차 잘 하지 않는 그가 끓여준 밥을 먹는다. 갓 잡은 생닭과는 다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차오르는 밥이다. 밥을 먹고 젖이 차오른다. 새끼를 키우는 동안 내 젖은 달처럼 기울었다 차오를 모양이다.

그가 아궁이에 참나무 장작을 두어개 넣는다. 타닥, 경쾌한 소리와 함께 푸르스름한 불꽃이 화르르 거세게 일어난다. 강에서 산자락으로 바람이 분다. 장작불은 바람을 먹이 삼아 기세좋게 타오른다. 나는 가만 그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의 발치에 몸을 누인다. 불길이 눈에 담긴다. 바람을 삼킨 불이 나의 시선을 삼킨다. 바람은 그저 스러지는 게 아니었다. 불을 살찌우고 바람이 스러진다. 부뚜막을 데우고 불길이 스러진다. 밤이 깊어간다.

아궁이를 등지고 그가 돌아앉는다. 바람이 어디로 가지도 않고 빈 마당을 맴돌고 있다. 그가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낸다. 목울대가 꿀꺽꿀꺽, 소주를 넘긴다. 늦가을의 그날 같은 초승달이 어둔 하늘에 걸려 있다. 그의 한 손이 내 목덜미를 향한다. 어루만진다, 다정히. 아직 취기는 승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본다. 나는 슬몃 고개를 돌린다. 그가 한손으로 내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하게 한다. 시선을 피한다. 내리깐 건 아니다. 좁은 마당 구석구석 산보하는 바람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을 뿐이다. 그는 집요하게 나를 보고 있다.

어떡하냐 너, 좆 됐다.

젠장,

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캉캉,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놈이 짖는다.

나는 그의 손에 들린 소주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언젠가 그가 술을 따라준 적이 있다. 나는 먹지 않았다. 냄새부터 쓰디썼다. 왜 그 쓰디쓴 걸 밥 삼아 마시는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취해서조차 제대로 다정하지 못했던 그다. 그가 물그릇에 소주를 따른다. 술을 핥는다. 혓바닥이 타는 듯 뜨겁다. 술의 경로에 따라 내장의 모양이 선연히 그려진다. 피가 데워진다. 놈이 벽 너머 슬쩍 대가리를 내민다. 술인지 고긴지 구별도 못하는 놈이다. 놈의 욕정이 이 모든 일의 발단이다. 놈이 새끼를 핥아 숨 쉬게 하지만 않았어도, 쓸데없이 짖어 그를 불러내지만 않았어도, 늦가을 어느날의 치욕스런 기억은 없었던 듯 사라졌을 것이다. 술을 찾게 만든 원흉이 저도 마시겠다고 낮은 포복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온다. 닭을 단숨에 찢어발길 때처럼 나는 모른 척한다.

쓰디쓴 술이 몸 구석구석 돌며 알래스카 늑대의 피를 잠재운다. 고여 있던 바람이 동백나무를 휘돌아나가고 먼 데서 새로운 바람이 다가온다. 늙은 쏘가리는 여전히 여울에 납작 엎드린 채 젊은 날의 욕정을 추억한다. 암컷을 어루만지듯 여울의 흐름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던 쏘가리의 몸짓이 굼떠진다. 호흡이 느려진다. 늙은 쏘가리는 벚꽃 분분히 흩날리던 지난봄의 어느 달밤, 마지막 힘찬 방사를 떠올린다. 호흡과 호흡 사이, 생()은 거기 있다. 호흡과 호흡 사이, 기억이 스민다. 마지막 숨을 토하며 늙은 쏘가리가 생을 뛰어넘을 때, 놈은 나의 시선을 넘어 집으로 들어선다.

깜박깜박, 나는 게으르게 술잔을 본다. 맑은 소주 위로 그날 같은 초승달이 떠 있다. 그는 하늘의 달을 본다. 달 아래 적막한 공간으로 바람이 불고, 술잔 속의 달이 출렁인다. 빙글빙글 어지러운 머리를 가만 그의 다리에 기댄다. 그의 체온이 느껴진다. 아우—, 나는 처음으로 짖는다. 가도 가도 끝없는 설원, 희디흰 눈 위로 젖어드는 달빛 속에 내 선조도 이렇게 울었다. 하늘과 땅 사이, 검고 깊은 허공이 공명하여 내 울음은 달에 닿는다. 아하,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