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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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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崔銀美

1978년 강원 인제 출생.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이 있음. alfmrlal@naver.com

 

 

 

근린(近隣)

 

 

공원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은 1031일 오전이었다. 날개폭이 육 미터 남짓인 소형 비행체 한대가 근린공원 체력단련장에서 등산로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에 추락했다. 연합뉴스는 이 비행체가 RQ-105 기종의 육군 소속 무인정찰기로, 사고 당시 원격조종을 통한 무인정찰훈련 비행 중이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고를 목격한 주민들은 “하늘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나 쳐다보니 아파트 이십층 높이에서 비행체가 날아가고 있었”으며 “어느 순간 보니 이 비행체가 날개를 뒤집은 채 추락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은 근린공원에서 ‘어르신문화축제’가 열리던 날로 사고시각인 오전 열한시경, 공원 야외공연장과 체력단련장 인근에는 이미 백여명의 인파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중 사망자는 단 한명이었다. 튀어 날아온 기체 파편에 목이 찔린 사망자는 ‘대동맥 파열로 인한 대량출혈’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평소 근린공원에서 사망자를 자주 봐왔다는 한 주민은 ‘그 여자가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1

 

시월 첫날 아침 근린공원사거리의 도로상황은 무난했다. 신호대기 중이던 아반떼 승용차를 마을버스가 들이받는 일이 있었지만 출근길 교통흐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근린산 위로 떠오른 아침해는 가을이 시작된 산을 타고 내려와 부채꼴로 펼쳐진 근린공원 진입광장과 그 앞의 횡단보도까지 고루 비추었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잔잔했다. 야외활동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출근 차량이 빠지고 도로가 한적해질 무렵, 젊은 여자 한명이 근린공원 입구에 나타났다. 회색 치마레깅스에 짧은 후드점퍼를 걸친 여자는 잠에서 덜 깬 듯 흐느적거리며 벤치 쪽으로 걸어갔다. 여자는 부채꼴 이쪽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더니 고개를 파묻고 움직이지 않았다.

곧이어 늙은 여자 두명이 걸어와 부채꼴 저쪽 벤치에 앉았다. 잠시 뒤 같은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둘을 부르며 건너왔다. 건너온 여자는 숨을 헐떡이더니 자신이 간밤에 똥 싸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앉아 있던 여자 중 한명이 만원짜리 세장을 꺼내 그 꿈을 샀다.

서쪽 방면에서 오던 차가 사거리 북서 방향의 주유소로 들어갔다. 북동쪽에서 내려온 바람이 여자들의 등을 훑고 사거리 교차점을 지났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늙은 여자 셋은 그들의 대각선 맞은편, 사거리 남서 방향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우리 저기나 한번 가볼까?”

꿈을 산 여자가 말했다.

“원장이 꽤 용하다던데.”

가운데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 꿈을 판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거리 남서쪽 건물 안에 있는 것은 휴대폰 대리점과 편의점, 독서실과 피씨방, 학원들과 노인요양원이었다. 그 옆으로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 있었다. 건물 외벽을 덮은 현수막에 ‘관절’ ‘척추’ ‘통증’ 같은 글자가 보였다. 건물 앞에서 움직이며 그들의 시선을 끈 것은 키다리 허수아비 풍선이었다. ‘만성통증 조기치료’라는 여덟 글자를 몸에 새긴 허수아비가 양팔을 펼친 채 바람을 타고 있었다.

“옆에 있는 건물이 죽네……”

어쩐지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꿈을 판 여자가 한마디 했다. 나머지 두 여자가 웃긴다는 표정으로 꿈을 판 여자를 보더니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일교차가 점점 벌어져 그들 중 한명이 머플러를 풀었을 무렵 중년 여자 한명이 애완견과 자루를 안고 산에서 내려왔다.

“밤 많이 떨어졌어요?”

가운데 여자가 물었다.

“할머니들이 새벽같이 올라가서 얼마나 주워가는지 벌써 빈 껍질이 수두룩해요. 좋은 델 잘 찾아야 돼요.”

“어디가 좋아요?”

중년 여자의 팔에서 내려온 시추가 벤치를 맴돌며 짖었다.

“명당자리가 하나 있어요. 밤나무하고 참나무가 얼마나 큰지……”

“알알 알알.”

시추가 말을 끊으며 뛰어갔다. 동쪽에서 온 차들이 남쪽으로 좌회전을 시작하자 사거리 남동 방향의 아파트단지에서 빛무리가 흘러나왔다.

“알알 알알.”

보행신호와 함께 부채꼴 광장으로 쏟아져들어온 건 연두색 단체복을 입은 유치원생들이었다. 아이들은 시추에게 달려들기도 하고 공원 조형물에 올라타기도 하면서 흩어졌다 모였다 했다. 사각정자가 있는 부채꼴 꼭짓점에서 다시 줄을 선 아이들은 잠자리채를 높이 쳐들었다. 아이들은 교사의 손짓에 맞춰 합창을 시작했다. 잠자리 꽁꽁, 꼼자리 꽁꽁. 이리 와라 꽁꽁, 저리 가라 꽁꽁. 이리 오면 살고, 저리 가면 죽는다.

유치원 아이들이 휩쓸고 간 부채꼴 광장의 사각정자 위에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여자아이 한명이 앉아 있었다. 아이는 숲 체험을 떠난 유치원생들과 같은 또래로 보였다. 아이 앞에는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는 빨간색 크레파스를 꺼내더니 흰 종이 위에 제일 먼저 해를 그렸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정자에 걸터앉아 아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다음엔 누가 커피 좀 타와.”

꿈을 산 여자가 말했다. 점심때가 되자 여자아이와 엄마는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단지 후문으로 사라졌다. 사거리 남쪽 방향에서 온 맥도날드 오토바이가 그들을 따라 아파트단지로 들어갔다. 레깅스 여자가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허수아비 풍선의 팔 한쪽이 직각으로 꺾여 있었다.

 

2

 

꿈을 판 여자는 애초에 꿈을 팔 생각이 없었다. 깨고 나서도 흥분이 가시지 않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삼만원을 얼떨결에 받아드는 게 아니었다고 여자는 후회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여자가 볼일을 본 곳은 모래알과 조약돌이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웅덩이였다. 분홍빛 대변이 여자의 몸에서 끝도 없이 빠져나왔다. 변은 물속에서부터 똬리를 틀며 올라왔다. 물에서도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실한 변이었다. 여자가 꿈에서 깬 것은 그 변이 몸속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였다. 기다랗고 굵고 단단한 것이 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 여자는 눈을 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허전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여자는 꿈 생각에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실수를 한 것이었다. 그날 아침의 모든 행동과 언행이 평소의 자신답지 않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성급하고 수다스러운 편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온화하게 늙었다는 말을 듣고 사는 쪽이었다. 육십대 중반이었지만 아직 환갑 전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만큼 피부도 괜찮았다.

여자는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보았다. 꿈을 팔고 난 뒤 지난 며칠은 무얼 해도 예전 같지가 않았다. 밥맛도 없었고 무릎도 더 시렸다. 누가 말을 하면 서운한 생각부터 들었고 까닭도 없이 눈물이 돌았다.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거울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며칠간 구부정했던 여자의 등이 전화를 받는 동안 점점 펴졌다. 여자는 두번 연속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꿈을 판 여자는 꿈 따위는 잊어버린 듯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물을 끓여 보온병에 넣고는 커피 몇봉지를 챙겨 현관문을 나섰다.

같은 시간에 꿈을 산 여자도 전화를 받았다. 근린공원 부채꼴 광장에서였다. 전화를 끊고 난 여자는 벤치에 앉아 있는 레깅스 여자를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한동안 부채꼴 이쪽 벤치에 앉던 레깅스 여자는 며칠 전부터 부채꼴 저쪽 벤치를 차지하고 앉더니 오늘은 다시 이쪽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젊은 여자가 일관성이 없어.”

가운데 여자가 오자 꿈을 산 여자는 레깅스 여자에 대한 험담을 시작했다. 박스를 찾으러 갔더니 엉덩이 한번 들지 않고 쳐다만 보더라, 옷 입은 것도 볼썽사납다, 어깨 벌어진 것 좀 봐라, 굼뜬 애들은 질색이다. 꿈을 산 여자는 화풀이를 하듯 중얼거렸다.

“며느리로 저런 것들이 들어올까봐 내가 요새 잠이 안 와.”

보행신호가 떨어지자 아파트단지 쪽에서 여자아이와 엄마가 걸어왔다. 간격을 두고 꿈을 판 여자가 뒤따라왔다. 꿈을 판 여자를 보자마자 여자 둘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자긴 뭐 됐어?”

“실버댄스스포츠.”

꿈을 판 여자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세 여자는 모두 시월 말일에 있을 어르신문화축제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실버댄스스포츠에 꿈을 판 여자만 선정이 된 것이었다. 나머지 두 여자가 전화로 권유받은 공연은 한복을 줄별로 맞춰 입고 어깨춤을 추는 ‘노부(老)는 골드스타일’이었다. 댄스스포츠와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실버댄스에 참가하는 여자들은 모두 빨간 원피스를 입었다. 빨간 구두를 신고, 머리에는 빨간 꽃을 꽂고, 역시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남자 노인들과 탱고를 추는 것이었다. 실버댄스는 어르신문화축제의 꽃이었다.

꿈을 판 여자가 한턱내겠다는 듯 커피를 타서 돌렸다. 꿈을 팔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게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꿈을 판 여자는 혈색이 살아나 있었다.

“커피 맛이 왜 이래.”

꿈을 산 여자가 한모금 마시자마자 인상을 썼다.

“내가 김태희 말고 이나영 있는 걸로 사라고 했잖아!”

꿈을 산 여자가 순식간에 팔을 젖혀 벤치 뒤 회양목 위로 커피를 뿌렸다.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커피였다. 운동기구 위에 올라가 있던 중년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왔다.

“알알, 알.”

회양목 뒤에 앉아서 놀고 있던 것은 여자아이와 시추였다. 시추의 크림색 니트 위에 커피 얼룩이 점점이 져 있었다. 아이와 시추가 화상을 입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중년 여자가 달려오는 동안에도 아이 엄마는 정자 기둥에 멍하니 기대앉아 있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뜻밖에도 레깅스 여자였다. 레깅스 여자는 아이와 개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꿈을 산 여자를 한번 쳐다본 뒤 벤치로 돌아갔다. 어른들의 큰 소리에 겁을 먹은 여자아이가 엄마가 있는 정자 쪽으로 달려갔다. 시추가 종종거리며 여자아이를 따라 뛰었다. 달려오는 아이와 시추를 발견한 엄마가 “저리 가!” 낮게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아이와 개 모두 멈칫했지만, 아이는 엄마한테로 시추는 주인한테로 돌아갔다.

해는 정오를 향해 조금씩 이동해갔다. 단풍이 펼쳐진 근린산에서 간간히 사격소리가 들렸다. 사거리 서쪽 방면에서 달려온 맥도날드 오토바이가 공원 입구에 멈춰섰다. 맥도날드 라이더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휴대폰을 꺼냈다. 라이더는 휴대폰으로 깨진 보도블록을 촬영했다. 라이더는 다시 몇걸음을 옮겨 전신주를 찍었다. 관절척추병원에서 나온 팔 골절 환자가 키다리 풍선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웃었다. 신호대기 중이던 마을버스 기사가 ‘아반떼 씨발놈’이라며 삿대질을 했다. 맥도날드 라이더가 휴대폰을 이동해 마을버스 기사를 찍었다.

“저 영감이 지금 누구한테 욕을 하는 거야?”

꿈을 산 여자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방금 씨발년이라고 하는 거 들었어? 지금 나한테 욕한 거 아니야?”

“아니야.”

가운데 여자가 꿈을 산 여자를 끌어 앉혔다.

“그러니까 그 요양원 커플 말이야.”

가운데 여자가 말을 이었다.

“요양원에서 눈 맞은 게 문제가 아니야. 그 둘이 글쎄 합방을 요구했대. 요양원 측에 정식으로 요청을 했다는 거야.”

“세상에, 정신은 멀쩡한가보네.”

“그게 어떻게 멀쩡한 거야. 노망이지.”

“남자는 그 뭐지, 뇌경색인지 뇌졸중인지로 쓰러져서 들어갔다던데. 몸 반쪽은 아예 굳어버렸대.”

“여자는?”

“뭐라더라. 바람만 불어도 아픈 그런 병으로 시작을 해서 콩팥이고 뭐고 다 망가졌다던데.”

“통풍?”

“그래 통풍. 안 겪어본 사람은 절대 모른다더구먼. 바람만 스쳐도 그렇게 아프대.”

늙은 여자 셋은 문득 말을 멈추고 대각선 맞은편을 보았다. 왼쪽으로 몸을 꺾었던 키다리 허수아비 풍선이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꺾었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풍선은 갑자기 고개를 꺾더니 다시 두 팔을 펼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풍선의 움직임만으로도 바람의 세기를 알 수 있게 된 것에 불현듯 공포를 느꼈다. 바람이 자면 풍선은 흔들렸다. 바람이 세면 풍선은 펄럭였다. 바람이 아주 세면 풍선은 요동을 치며 춤을 추었다.

운동기구 위에서 어깨돌리기를 하던 중년 여자도 동작을 멈추고 대각선 맞은편을 보았다. 관절척추병원보다 한 톤 어두운 오래된 빌딩.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위로 수학전문학원 간판이 보이고 그 위층으로 요양원 창문이 보였다. 그 안에 중년 여자의 노모가 있었다. 여자가 짬을 내 부채꼴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노모의 침대가에서 공원이 내려다보이기 때문이었다.

네 방향으로 뻗은 가로수들이 정오 직전의 빛을 흩뿌렸다. 시추와 여자아이가 그늘과 양지를 오가며 뛰어다녔다. 아이가 낙엽을 모아 공중에 뿌리면 시추가 하나라도 잡으려고 튀어올랐다. 시추가 커다란 가로수 잎을 물어오면 아이가 나뭇잎으로 시추를 간질였다. 광장을 둘러싼 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져내렸다. 잠자리들이 꼬리에 빛을 매달고 쑥부쟁이 사이를 날아다녔다. 가을빛이 잠깐씩 풍경을 정지시키는 마법 속에서 사람들은 가을열매가 터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거……”

레깅스 여자는 아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내민 양손 위에 밤 하나, 도토리 하나가 올라가 있었다.

“엄마 몰래 주웠어요.”

아이는 부끄러운 듯 금방 눈을 떨구었다. 용기를 내서 온 듯했다.

“유치원 가고 싶지 않니?”

레깅스 여자가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엄마가…… 엄마 마음에 드는 유치원이 없어요.”

레깅스 여자는 정자 쪽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멀리서 보기에도 격앙된 손짓으로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아빠랑 문자로 싸워요.”

“그렇구나.”

“아빠는 엄마 문자 때문에 미치겠대요.”

“그렇구나.”

“우리 엄마는 힘들어요.”

“……”

“나 때문에.”

“……”

몇초였다. 레깅스 여자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에서 잠깐 일렁이고 사라진 무언가를 보았다. 여자가 미처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리 와!” 아이 엄마가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엄마한테로 뛰어갔다.

 

3

 

맥도날드 라이더는 엘리베이터 십일층 버튼을 눌렀다. 두주 넘게 매일 배달주문을 하는 집이었다. 주문시간은 낮 열두시 삼십분, 메뉴는 불고기버거세트 하나였다. 주중 점심시간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문을 하는 집은 처음이었다. 세주째가 되자 라이더는 특이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잠깐씩 여자의 인상이나 거실 풍경을 훑어보게 되었다.

티브이, 소파, 책장, 잘 정돈된 아이 장난감들. 거실 좌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던 아이가 반가움과 실망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는 게 다였다. 특이한 점은 없었다. 정상적인 여자라면 아이에게 패스트푸드를 매일 먹이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먹는 것일까? 어떻게 똑같은 불고기버거를 매일 먹을 수 있을까?

라이더는 촉이 좋은 형사라도 된 듯한 긴장을 느끼며 마을파수관 배지를 만지작거렸다. 마을파수관은 시에서 성실한 배달청년들에게 준 직책이었다. 파수관의 임무는 ‘여성폭력현장 감시 및 신고’와 ‘공공시설물 파손 등 생활안전 위해요소 신고’였다. 배달 중 그런 현장을 발견하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라이더는 실제로 씨씨티브이를 파손하며 다닌 한 사십대 남자를 신고해 우수 파수관으로 선발된 적이 있었다. 파수관 제도가 시행된 뒤 맥도날드 전 지점에서 처음으로 올린 성과였다. 라이더는 그때의 뿌듯함을 잊지 않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라이더는 배달 첫날을 되짚어보았다. 여자는 분명 라이더의 왼쪽 가슴에 달린 마을파수관 배지를 유심히 보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의 여자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파수관을 계속 부르는 건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집에서 혹시 폭력과 파손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는 걸까. 이상한 놈이라도 숨어들어가 있는 걸까. 협박을 받고 있다면 햄버거 값을 건네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이어가던 라이더는 정신이 돌아온 듯 피식 웃었다. 도움이 필요해서 배달을 시킨다니, 그런 건 영화에서나 일어날 일이라고 라이더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라이더가 내린 결론은 ‘그 여자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였다. 아무래도 그게 제일 현실성이 있었다. 아파트단지를 빠져나오면서 라이더는 여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다시 그려보았다. 얼핏 보기로도 여자는 예쁘장한 인상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라이더는 규칙적인 성생활을 하는 능숙한 주부와의 한번을 상상했다. 기분이 좋아진 라이더는 흥얼거리면서 근린공원사거리를 통과했다.

짧은 가을을 누리러 나온 사람들이 사거리와 공원 곳곳을 걸어다니고 있었다. 공원 야외공연장과 다목적광장에서는 어르신문화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공연 연습을 하던 노인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열매를 줍고 가을 과일을 먹었다. 요양원 커플에 대한 얘기가 정자와 벤치와 광장을 오가며 신화처럼 떠돌았다.

중년 여자는 시추를 데리고 근린산을 올랐다. 여자는 매해 단풍철이 되면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는 게 낙이었지만 올해는 딸이 장기출장을 가면서 맡긴 시추 때문에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 노모의 건강도 문제였다. 아쉬운 대로 근린산을 찾았지만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근린산에는 저고도 방어임무를 수행하는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예하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등산로는 거의 철책과 함께 이어져 있었고 철책에는 꼭 개구멍들이 있어서 시추를 잃어버릴까 신경이 쓰였다. 산을 타는가 싶으면 민간인은 우회하라는 군 작전지역 팻말을 만났고 나무가 우거진다 싶으면 콘크리트 임도(林)가 나타나 풍경을 끊어놓았다.

여자가 발견한 명당은 의외로 근린공원 근처였다. 다목적광장 오른편으로 지세가 높아지는 곳에 체력단련장이 있었고, 명당은 체력단련장과 본격적인 등산로 중간지점에 있었다. 이정표가 가리키지 않는 오솔길을 오십여 미터만 따라 돌아가면 밤나무와 참나무가 둥그렇게 우거진 숲이 나왔다. 제일 큰 참나무 밑에 사각정자 하나가 숨어 있었고, 울창한 나무들이 몇개의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며 겹겹이 이어져 있었다. 무덤터처럼 고요한 곳이었다. 밤과 도토리가 지천이었고 낙엽밭이 꽃길처럼 펼쳐져 있었다. 마을에 오래 산 연인들에게는 공공연히 알려진 장소였지만 중년 여자는 아직 거기서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체력단련장 부근에만 가도 시추는 벌써 오솔길을 헤치며 명당 쪽으로 내달렸다.

산에서 내려오자 부채꼴 광장에는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중년 여자는 그들이 조금씩 이상한 여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레깅스 여자는 집에 들어가서 편히 자지 않고 왜 공원에 나와서 자는지 이해가 안됐다. 아이 엄마는 얼굴에 이미 우울증 중증 상태가 나타나 있었다. 바깥에 꼬박꼬박 나오는 걸 보면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생각이 있는 것도 같았지만 또래 아이들이 나오는 오후가 되면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나란히 앉아 있는 여자 노인 셋은 한 계절씩 돌아가면서 서로를 따돌리는 사이였다. 그러면서도 늘 셋이 같이 어울렸다.

“그게 다 밤이에요?”

가운데 여자가 중년 여자의 등산가방을 보며 물었다. 가운데 여자는 중년 여자를 볼 때마다 자신도 밤을 좀더 주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딸네 집에도 줘야 했고 다음 달에 약식도 만들어야 했다. 가운데 여자는 중년 여자의 등산화를 한참 쳐다보았다.

“무릎이 성하니 얼마나 좋아그래.”

그때 꿈을 판 여자의 카톡 수신음이 울렸다. 실버댄스 파트너 노인이었다. 축제일이 가까워올수록 꿈을 판 여자는 마음이 점점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특히 합방을 요구한 요양원 커플 얘기는 여자에게 감동과 충격을 함께 주었다. 시월 첫날 꾸었던 꿈도 여전히 여자의 몸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다. 가을빛, 빨간 원피스, 파트너 노인의 훌쭉한 배와 손목뼈.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여자의 가슴을 두드렸다.

꿈을 판 여자의 얼굴이 달아오를 때마다 꿈을 산 여자는 초조해졌다. 꿈을 산 여자는 분홍빛 대변과 삼만원을 생각했다. 꿈 얘기를 듣는 순간 여자는 그게 보통 꿈이 아님을 확신했었다. 그런 확신은 지금껏 틀린 적이 없었다. 자신이 산 그 꿈의 효과가 언제 나타날 것인지, 꿈을 산 여자는 목을 감싸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저고도에서 송골매 같은 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저거 봤어?”

꿈을 산 여자가 물었지만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 온다던데. 좀더 주워놔야겠어.”

가운데 여자가 먼저 자리를 뜨고 시추는 여자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각정자를 맴돌았다. 여자아이는 그날따라 시추와 놀지 않고 정자에 앉아 그림만을 그리고 있었다. 레깅스 여자는 밤과 도토리에 대한 보답으로 막대사탕 하나를 가져왔지만 아이 엄마와 아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망설이고 있었다. 아이가 그림을 두어장쯤 더 그렸을 시간이 지났다. 아이 엄마가 갑자기 아이를 정자 밖으로 끌어냈다. 여자는 아이의 어깨를 거칠게 밀치며 해를 가리켰다.

“잘 봐. 니 눈엔 저게 빨간색으로 보이니?”

아이가 휘청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이는 무방비 상태로 해를 보았다. 저렇게 보면 눈이 부실 텐데, 레깅스 여자가 생각하는 순간 아이가 눈을 껌벅이더니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소매로 눈물을 쓱 닦아냈다.

“다시 말해봐. 해가 무슨 색이야?”

“……”

“대답 안해? 해는 노란색이잖아. 그래 안 그래!”

아이 엄마가 정자로 저벅저벅 걸어가 노란색 크레파스를 꺼냈다. 그때 숲 체험을 마친 유치원 아이들이 공원 안쪽에서 나타났다. 아이들은 속삭이듯 노래를 불렀다. 잠자리 꽁꽁, 꼼자리 꽁꽁. 이리 와라 꽁꽁, 저리 가라 꽁꽁. 이리 오면 살고, 저리 가면 죽는다.

여자아이는 정자와 아이들 사이에 서 있었다. 아이는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울 듯이 선 아이의 두 눈동자에 가을 구름이 몰려와 있었다. 아이가 공원에 마지막으로 서 있던 날 정오의 풍경이었다.

 

4

 

시월 하순 이틀 동안 비가 내렸다. 하루는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렸고 하루는 비안개가 근린산을 뒤덮었다. 이틀 동안 어르신문화축제 공연 연습은 중단되었고 누구도 근린공원에 나오지 않았다. 이틀 동안 근린공원사거리를 통과한 차량은 십팔만대, 사거리 횡단보도를 오간 사람은 구백이십명이었다. 강수량은 칠십 밀리미터, 체감온도는 영도, 해와 달은 뜨지 않았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초속 십칠 미터의 바람이 불어오던 그날밤, 사람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두 형상이 남서쪽 건물에서 나왔다. 그들은 바람을 거슬러 북동쪽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 뒤로 비안개에 휩싸인 아파트단지의 불빛이 펼쳐졌다. 총 이십사개동 이천세대의 불빛이 풍등처럼 떠오르다 허공 속에서 점멸했다. 그중 서른일곱 집의 여자들이 아이를 보며 말했다. ‘우리…… 같이 죽을까?’ 그날밤 한 집에서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나무들이 한방향으로 출렁이며 밤새 낙엽을 쏟아냈다. 날이 밝을 때까지 키다리 허수아비 풍선은 춤을 추었다.

 

5

 

비가 그친 뒤 기온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하늘은 개었지만 벤치에는 아직도 이틀간의 습기가 남아 있었다. 박스를 깔고 앉아 있던 늙은 여자 셋은 중년 여자와 경찰이 건너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를 어째.”

가운데 여자가 얼굴이 하얗게 굳은 중년 여자의 손을 잡았다.

“이게 한꺼번에 무슨 일이야.”

꿈을 산 여자가 정자에 탈진 상태로 앉아 있는 아이 엄마를 보며 말했다. 꿈을 판 여자는 흥분을 누르며 파트너 노인한테 문자를 보냈다. ‘그 둘이 요양원을 탈출했대요!’

경찰은 중년 여자에게 근린산 수색 일정을 말한 뒤 아이 엄마한테로 걸어갔다. 아이 엄마는 삼일 꼬박 곡을 한 상주 같은 모습이었다. 여자는 쉰 목소리로 흐느끼며 자기를 죽여달라고 말했다. 경찰은 아이 엄마에게 몇가지 정황을 묻는 듯 보였지만 여자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정신이 아닌 듯했다.

“속이 속일까, 그 예쁜 애를 어쩌다가.”

“애가 없어져서 온 산을 헤매고 다녔나보더라고.”

“아침에 체력단련장 쪽에 쓰러져 있었다던데.”

“그런데 애가 설마 산으로 갔을까. 주택가 쪽에서 찾아야 되는 거 아니야?”

“경찰이 어련히 알아서 찾으려고.”

“알알, 알알알, 알, 알알.”

시추가 부채꼴 광장을 어지럽게 돌았다. 형제들과 통화를 하는 듯하던 중년 여자가 시추를 안아들고 길을 건넜다. 꿈을 산 여자가 낮게 혀를 찼다.

“그 여자가 저 여자 엄마인 줄은 몰랐네.”

꿈을 산 여자는 중년 여자한테서 시선을 거두다 아이 엄마를 보고 있는 레깅스 여자를 보았다. 레깅스 여자는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아이 엄마를 보고 있었다. 주머니에 든 밤과 도토리와 막대사탕을 만지면서 레깅스 여자는 아이 엄마의 말을 곱씹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여자는 아이를 찾으려고 하지 죽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 엄마가 흐느끼며 하는 말은 진심처럼 들렸다. 아이를 잃어버린 죄책감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여자는 정말로 죽고 싶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수상해……”

꿈을 산 여자는 아이 엄마와 레깅스 여자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빤한 동네에서 아이가 어디를 갔을까. 그 또래 아이들은 대개 부모의 휴대폰 번호나 집 동호수 정도는 외우고 있었다. 단순 실종일까. 혹시 면식범의 유괴는 아닐까. 꿈을 산 여자는 그간의 몇 장면을 떠올렸다. 자신이 커피를 쏟았을 때 달려와 아이의 환심을 사던 레깅스 여자의 모습, 아이와 말을 트며 경계심을 풀던 레깅스 여자의 모습, 자신을 주책없는 노인네쯤으로 쳐다보던 레깅스 여자의 모습.

“내일이 벌써 마지막 날이네.”

“마지막 날? 어디 죽으러 가나보네.”

“아니, 시월의 마지막 날.”

꿈을 판 여자와 가운데 여자가 가로수를 쳐다보았다. 꿈을 산 여자는 휴대폰을 들고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여자는 중대 기밀을 얘기하는 듯한 목소리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로부터 다섯시간 뒤, 레깅스 여자는 경찰서에서 이틀간의 알리바이를 대야 했다.

“제보가 들어와서 간단한 조사가 필요했습니다. 돌아가셔도 됩니다.”

경찰서에서 나온 레깅스 여자는 하늘을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목이 막힌 듯한 답답함과 분노가 가슴을 치고 나왔다. 레깅스 여자는 주머니에 다시 손을 넣었다. 아이가 건네준 도토리는 너무도 작고 동그랬다. 그날 정오의 아이 모습이 잊히지가 않았다. 레깅스 여자는 근린공원으로 향했다. 날이 저무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 엄마만이 정자에 쓰러질 듯 기대 산을 보고 있었다. 그런 아이 엄마를 한 남자가 휴대폰으로 찍고 있었다. 남자 옆으로 눈에 익은 오토바이가 보였다. 네모난 배달통과 빨간 헬멧. 레깅스 여자는 남자의 목덜미를 낚아채 나무에 밀쳐 세웠다.

“너 뭐야.”

레깅스 여자는 삼두근으로 라이더의 쇄골과 목울대 사이를 압박했다.

“너 저번 달부터 공원에서 사람들 찍고 다녔지. 너 변태야?”

“저, 전, 마을파수관인데요.”

“그게 뭔데.”

“이것 좀…… 풀어주세요…… 누나.”

“죽을래? 내가 왜 니 누나야.”

라이더는 숨을 컥컥거렸다.

“너 저 여자 왜 찍었어. 저 여자 알아? 너도 저 여자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비가 오던 날부터 십일층 여자는 배달주문을 하지 않았다. 라이더는 공원을 지나다 며칠 만에 여자를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다가간 것이었다. 라이더는 자신이 정말 변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깅스 여자는 라이더에게 하루치 시급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여자는 라이더의 휴대폰 번호를 묻고는 임무 하나를 준 다음에야 팔을 풀어주었다.

라이더는 집으로 돌아가 그동안 찍은 휴대폰 속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그중에는 비안개에 잠긴 근린공원사거리의 가로등 사진도 있었다. 새벽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에 고장이 의심돼 찍은 것이었다. 가로등 너머로는 흐리게 흔들리는 점 하나가 같이 찍혀 있었다. 웬만해서는 알아볼 수 없게 찍힌 그것은 팔이 늘어진 아이를 업고 공원 위쪽으로 올라가는 한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6

 

여자는 낙엽밭에 아이를 눕혔다. 아이 몸에는 아직도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곧 따라갈게, 여자는 중얼거렸다. 비에 젖은 낙엽들은 여자가 아이를 위해 만들었던 배내이불 같았다. 여자는 아이의 몸 위에 한겹 한겹 이불을 덮어주었다. 다 덮고 나면 아이 옆 참나무 가지에 목을 맬 생각이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었다.

여자가 지금껏 죽지 못한 것은 아이 때문이었다. 엄마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이의 일상과 일생에 대해서 여자는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했다. 아이에게는 자살한 여자의 딸이라는 오명과 상처가 평생 따라다닐 것이었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천덕꾸러기처럼 크다가 남자 사촌이나 삼촌한테 몹쓸 짓을 당할 수도 있었다. 여자가 아는 세상은 그랬다. 여자는 자신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제대로 된 교육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는 그저 그런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할 것이고, 아이를 낳으면 자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양육할 가능성이 컸다. 자신이 겪은 고통이 아이에게서 그 아이에게로 다시 그 아이에게로 전해지는 것이었다. 그 대물림과 반복의 고리를 자신의 손으로 끊어야 했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나무기둥에 등을 기댔다. 땀과 습기로 후줄근해진 여자의 몸에서 김이 올라왔다. 여자는 배란기가 될 때마다 자신의 몸을 자해해왔다. 그 끔찍한 몸의 작용들을 이제 나무가 거두어줄 것이었다. 겹을 이룬 나무기둥들 사이로 비안개가 자욱이 들어차 있었다. 층층이 쌓인 젖은 낙엽이 산의 소음을 흡수해갔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아이가 아기였을 적, 유모차에 태워도 내내 울던 아이는 오솔길을 따라 이곳으로만 들어오면 울음을 그치곤 했다.

여자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숲 저쪽으로 무언가 거뭇한 것이 스쳐갔다. 여자는 순간 멧돼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멧돼지라면 아이의 시신을 파헤칠 수도 있었다. 여자는 두려움과 적개심으로 몸을 떨면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무기둥을 헤쳐갔다.

그곳엔 숲에서 제일 큰 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가지를 늘어뜨려 작은 집 한채를 감싸고 있었다. 지붕과 기둥만 있는 그 집은 사각정자였다. 살아 있는 두 형체가 정자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는 그게 교미의 현장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산에 고라니나 노루 같은 게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두 형체는 한참을 버르적거리면서도 좀체 맞물리지 못하고 미끄러져나가기를 반복했다. 머리와 머리가, 목과 목이 고통스럽게 뒤틀리다 다시 엉켜들었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끙 소리와 함께 두 형체는 사지를 떨었다. 움직임이 멈춘 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람의 엉덩이 부위였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두 형체가 사람임을 안 순간 여자는 토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터져나오는 토사물을 손으로 막으며 아무 곳으로나 기어갔다. 몸을 일으켜 내달리던 여자는 허리를 꺾으며 다시 토했다. 역하고 쓴 물이 온몸에서 역류했다. 여자는 내장이 뒤집힐 때까지 토하고 또 토하다 실신했다. 깨어났을 때는 날이 밝은 뒤였다. 누군가 괜찮으냐고 묻자 여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없어요. 아가, 내 아가. 저를 죽여주세요. 저를 죽여주세요.”

 

7

 

시월의 마지막 날은 완연한 가을 날씨로 시작됐다. 근린공원 부채꼴 광장에는 어르신문화축제 체험마당 부스들이 세워졌다. 노인들은 구 보건소에서 나온 이동 건강버스 앞에서 무료로 혈당 검사를 받았다. 오후에 있을 어르신문화공연의 리허설을 위해 야외공연장에는 사물놀이팀과 부채춤팀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 열시 반, 꿈을 산 여자는 ‘노부는 골드스타일’팀의 연락을 받고 근린공원에 나와 있었다. 그동안 연습에 자주 빠졌던 사람들은 한시간 일찍 모이라는 전갈이었다. 가운데 여자 또한 같은 연락을 받고 근린공원사거리에서 막 길을 건너고 있었다. 가운데 여자가 건넌 다음 신호로 꿈을 판 여자도 길을 건넜다. 꿈을 판 여자는 코트를 목 끝까지 여며 입었지만 속에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실버댄스 복장을 다 갖춰 입고 파트너 노인과 따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체력단련장에 도착하면 전화를 하라는 파트너 노인의 문자를 확인하며 꿈을 판 여자는 걸음을 서둘렀다.

부채꼴 광장은 아침부터 북적였다. 아이 엄마가 앉아 있는 정자에는 다른 노인들이 몇명 더 걸터앉아 있었다. 전통차 시음 부스의 온수통에서 따뜻한 김이 새어나왔다. 손녀의 손을 잡고 나온 할머니들이 단청목걸이를 만들어 아이들 목에 걸어주고 있었다. 맥도날드 라이더는 이른 아침부터 아이 엄마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가 산으로 가면 반드시 뒤를 밟아라, 레깅스 여자가 한 말이었다. 두시간 가까이 정자에 앉아만 있던 여자는 열시 삼십분경, 무언가에 홀린 듯 공원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에 근린경찰서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예하부대에서 온 전화였다. 요양원을 탈출한 두 노인이 발견된 곳은 근린산 봉우리의 군 참호 안이었다. 두 노인은 요양원 기저귀를 찬 채 구덩이 속에서 나란히 숨져 있었다. 경찰서의 연락을 받은 중년 여자는 부채꼴 광장에 주저앉았다. 노모가 발견됐다는 말을 듣고서야 여자는 노모의 행동을 실감한 듯했다.

“왜 그랬어 엄마아.”

중년 여자는 어린아이처럼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바람이 그렇게 불었는데 왜 나갔어 엄마아아.”

중년 여자는 산을 보면서 계속 엄마를 불렀다. 시추가 여자의 무릎을 핥다가 바지자락을 잡아끌었다. 연습팀을 찾아 체력단련장 쪽으로 올라가던 가운데 여자는 울면서 올라오는 중년 여자를 보았다.

“얘 좀 데리고 있어주세요.”

중년 여자는 등산로 쪽으로 정신없이 올라갔다. 엄마를 찾았나보구나, 착잡해하며 가운데 여자는 체력단련장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때 시추가 오솔길 쪽으로 내달렸다.

“얘, 어디 가니.”

가운데 여자는 시추를 쫓아갔다. 다 도착했다던 가운데 여자가 오지 않자 꿈을 산 여자는 체력단련장 쪽으로 나왔다. 어떤 흥도 나지 않는 날이었다. 나뭇가지를 분지르며 나오다가 꿈을 산 여자는 꿈을 판 여자를 보았다. 꿈을 판 여자는 통화를 하면서 오솔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여자의 빨간 구두가 젖은 낙엽 속으로 푹푹 빠져드는 게 보였다. 꿈을 산 여자는 꿈을 판 여자를 뒤따라갔다.

그 시간 근린공원사거리 남서쪽 횡단보도에 서 있던 레깅스 여자는 라이더의 문자를 받았다.

‘체력단련장 네시 방향 오솔길. 오십 미터 참나무숲. 제일 안쪽 나무 밑. 여자가 땅을 두드리며 통곡함. 낙엽더미를 쓰다듬으며 아가를 부름. 10.31. AM 10:47.’

레깅스 여자는 주먹을 쥐고 심호흡을 했다. 옆에 서 있던 허수아비 풍선이 몸 하단을 꺾으며 땅 위로 엎드렸다. 풍선은 모든 대기를 끌어모은 듯 서서히, 팽팽히 부풀며 아래에서부터 허리를 펴올라왔다. 풍선이 몸을 활짝 펼친 것을 신호탄으로 레깅스 여자는 달리기 시작했다. 레깅스 여자는 사거리를 전속력으로 가로질렀다. 여자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부채꼴 광장을 지나고, 야외공연장과 다목적광장을 넘어서, 체력단련장으로 뛰어올랐다. 북동풍이 근린산 정상에서부터 산을 흔들며 내려왔다. 맨가지와 낙엽들이 원래 한몸이었던 걸 아는 것처럼 동시에 휘날렸다. 레깅스 여자가 오솔길을 타고 들어갔을 때, 공원 곳곳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공원에 오토바이가 들어왔나?”

누군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하늘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누군가 숲 위를 가리켰다.

“저게 새야 비행기야?”

체력단련장에서 네시 방향, 오십 미터 안쪽에 흩어져 있던 여자들은 갑작스런 굉음에 동작을 멈췄다. 연인과 만나기 직전인 여자, 빨간 구두를 뒤쫓던 여자, 빈 밤껍데기를 뒤집던 여자, 숲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찾아가던 여자, 숲 저쪽 끝에서 울고 있던 여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시추만이 어떤 소리도 안 들리는 듯 낙엽이 수북이 덮인 그곳으로 달려갔다.

“알알, 알알알알알, 알알알알알알알알알알알알.”

시추는 낙엽더미 옆에서 겅중겅중 뛰기 시작했다. 풍속이 최고치를 기록한 추락 삼초 전, 머리 위에 있는 물체가 곧 떨어질 거라는 걸 모든 여자들이 예감했을 때, 비행체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바닥에 엎드렸고 누군가는 눈을 질끈 감았으며 누군가는 나무를 붙잡았다.

“알알알알알알알, 알알알알, 알알, 알, 알, 알, 알알.”

시추는 낙엽들을 한겹 한겹 물어 옮겼다. 삼초 후에도 삼십초 후에도 삼백초 후에도 시추는 낙엽놀이를 계속했다.

 

8

 

무인정찰기 RQ-105는 추락 직전 마지막 영상을 송신했다. 군 지휘소 지상통제장비 모니터에는 육십도 각도로 기울어진 낙엽밭이 담겨 있었다. 낙엽밭과 사선으로 맞닿은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깨끗했다. 잎을 다 떨군 맨가지만이 하늘 안으로 실금처럼 뻗어나가 있었다. 어디선가 빛이 새어들어와 밭과 하늘에 물방울무늬를 만들었다. 기울어진 풍경 한쪽에 빈 벤치가 있었다. 아직 누구도 앉았다 간 적이 없는 벤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산을 보며 놓여 있었다. 얼마인지 모를 시간이 지난 뒤 그 위로 커다란 참나무잎 하나가 날아와 앉았다. 나뭇잎은 다시 바람에 실려 사각지붕 위로 내려앉았다. 둥근 해가 여러번 뜨고 졌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자 낙엽밭 위로는 눈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