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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앤드루 바세비치 『워싱턴 룰』, 오월의봄 2013

미국 군사주의 실체와 한반도 현실

 

 

김준형 金峻亨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학 jhk@handong.edu

 

 

촌평-워싱턴룰_fmt이 책은 일방적이고 과도한 군사주의에 기반해 있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 앤드류 배써비치(Andrew J. Bacevich)가 정의하는 ‘워싱턴 룰’(Washington Rules)은 미국만이 세계질서를 규정하고 운영하는 특권과 책임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미국은 냉전체제에서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자국의 리더십으로 자유세계를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군사력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냉전이 끝난 후에도 이를 멈추기는커녕 더 강화해왔다. 더욱이 이는 월남전, 꾸바 미사일 위기, 이라크전에서의 대실패와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과거 유럽의 제국주의와 자국을 구별하는 가장 큰 이유로 타국의 영토를 정복해 착취하지 않는다는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지금도 미국이 전세계 다른 모든 국가의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군사비를 사용하고 30만이 넘는 군대를 해외에 주둔시키고 있으며 항상 어떤 형태로든지 전쟁 또는 준전시 상황에 있는 군국주의 국가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저자는 트루먼(H. Truman)에서 오바마(B. Obama)에 이르기까지 미국 외교 60여년을 분석한 결론으로 집권정당에 따라 강도나 양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워싱턴 룰은 불변의 초당적 합의라는 결론을 내린다. 특히 미 군사력의 세계적 주둔, 세계적 투사, 그리고 세계적 개입주의는 성()삼위일체처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주의에 대한 기존의 비판담론과 배써비치는 두가지 점에서 구별된다. 먼저 이념노선과 인생경력이 남다르다. 그는 촘스키(N. Chomsky)나 하워드 진(Howard Zinn) 같은 진보지식인과 달리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인물이다. 물론 네오콘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자신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을 같은 편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 같지만,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를 졸업해 23년간 육군장교로 근속했으며 월남전에도 참전하는 등 전형적인 보수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사람을 무작정 이념의 프레임으로 재단해버리기도 어렵다. 그는 대령 예편 후 만학의 길을 걸어 프린스턴대에서 외교사로 학위를 마치고 보스턴대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 보수성향의 저널에 기고하면서 네오콘의 입장과 유사한 견해를 피력해왔다. 물론 이라크전 이후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 입장으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가톨릭 보수주의자로 규정한다.

둘째 특징은 미국의 과도한 군사주의의 원인을 미국의 시스템 전체 문제로 판단하고 있는 점이다. 대다수 비판자들이 미국의 오만이나 일방적 군사주의를 레이건(R. Reagan), 부시(G. Bush), 체니(D. Cheney) 같은 특정 인물이나 기독교 우파, 네오콘 등 일부세력의 책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을 개인이나 당파, 이념노선까지 초월하는 미국의 역사와 구조의 산물로 규정한다. 이 때문에 소련도 빈 라덴(O. Bin Laden)도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도 사라졌지만 워싱턴 룰은 굳건하고, 부시든 오바마든 상관없이 책의 부제처럼 ‘미국은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의 비판은 그래서 전방위적이다. 미국을 지배하는 동심원을 비유적으로 지칭하는 ‘워싱턴 벨트웨이(Beltway)’ 안에 있는 행정·입법·사법의 상층부, 거대 금융기관, 거대 군수산업의 로비스트, 싱크탱크 등을 망라하는 세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보통의 미국인도 비판의 칼날을 비껴가지 못한다. 즉 미국식 예외주의에 입각한 과도한 군사주의는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라는 선전과 달리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유지되고 있을 뿐이며, 국민 역시 소비의 자유를 위해 이런 모순과 위선을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미국은 빚더미에 앉은 지 오래고, 2008년의 금융위기에도 멈춤 없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한다.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책 말미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우선 오직 미국만이 신의 섭리를 파악할 수 있으며, 막강한 힘으로 그러한 신의 섭리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오만한 신조를 폐기하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미국이 밖으로는 힘이 아니라 희생을 투사하고, 안으로는 국내 문제에 몰입함으로써 더 나은 국가로서의 본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정부의 ‘총’을 눈감아줌으로써 ‘버터’를 공급받았던 시민 역시 건국 초기의 시민정신을 회복해 고삐 풀린 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감시와 통제에 나서라고 주문한다.

비판의 신랄함에 비해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이상적이고 당위적인 면이 있다. 이 때문에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과도한 군사주의의 중심에 미국패권체제와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이 놓여 있기에 그가 말하는 시민의 혁명적 각성에 의한 변화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금융위기가 불러온 재앙적 결과에도, 불과 수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월가의 근본 체질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는 현실은 이를 강력히 시사한다. 투기적 금융과 과도한 군사주의는 미국을 파국으로 몰고 갈 원인인 동시에 현재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경쟁력이다. 게다가 이 둘은 또한 결합되어 있다. 미래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 패권의 동력을 포기함으로써 미리 위기를 자초하는 반성과 개혁이 과연 얼마나 가능한 것일까?

『워싱턴 룰』(부제: Americas Path to Permanent War, 박인규 옮김)은 우리가 처한 최근 상황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현재 동북아는 역내국이 공통적으로 새로운 권력을 출범시켰고, 강대국의 세력재편이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과거의 대결적인 진영논리와 냉전질서의 부활까지 점쳐진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봉쇄적 대응, 그리고 일본의 재무장 가속화로 안보 딜레마는 심화되고 있다. 모든 나라가 앞다투어 국가안보회의(NSC)를 만들고 국정을 안보담론 위주로 재편하며, 국내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강경한 대외정책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배써비치가 말하는 군사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동북아에도 드리워지는 것이며, 미국의 군사주의에 새로운 빌미를 공급할 수 있다. 특히 남북관계 악화로 인한 한반도 위기는 확실한 땔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한반도 긴장구조를 해소해야 함에도 박근혜정부가 안보담론과 군사동맹의 중독에 빠져 오히려 미국 군사주의의 하부구조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