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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평
한국사교과서 ‘소동’의 끝은 국정교과서?
윤세병 尹世炳
대전 대덕고등학교 교사 threeb@hanmail.net
“역사전쟁이 아니라 역사소동이다.” 지난 1월말 한 심야토론에 출현한 동국대 홍윤기(洪潤基) 교수의 말이다. 그는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이하 ‘교학사 한국사’)를 제외한 7종의 교과서가 좌편향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 차원에서 서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덩어리인 교학사 한국사를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소동에 휩싸이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교학사 한국사를 둘러싼 갈등이 진보와 보수의 역사전쟁이 되길 원한 쪽은 통합진보당 사건 이후 ‘종북몰이’로 톡톡히 재미를 보던 수구세력이었다. 그러나 국민여론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표절시비로 얼룩진 교학사 한국사를 진보-보수의 잣대로 보지 않았다. ‘아이들이 배울 교과서인데 상식적으로 너무 하네’라는 것이 주된 반응이었다.
2013년은 교학사 한국사 문제로 뜨거운 한해였다. 소동은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들이 필자로 참여한 교학사 한국사가 8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사를 최종 통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검정에 통과한 교과서가 공개되면서 오류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교육부는 교학사 한국사를 살리기로 작정했는지 다른 교과서에도 문제가 많다며 함께 수정권고안을 내렸다. 수정 후에도 교학사 한국사에 오류가 나타나자 교육부는 다시 수정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해서 최종본은 12월이 되어서야 나왔다. 고치고 고쳐도 오류가 계속 나오는 누더기 교과서를 살리려는 교육부의 모습은 처량함 그 자체였다. 그러는 사이에 새학기 시작 6개월 전까지 교과서 선정을 완료해야 하는 법규정을 교육부 스스로 허물어버렸다. 애초 검정과정에서 걸러냈어야 할 교학사 한국사를 살리기 위한 악전고투 속에서 교육부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스스로 법과 원칙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교육부가 기를 쓰고 살려놓은 교학사 한국사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0%대의 채택률이 말해주듯 싸늘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창 한국사 교과서 선정을 위해 교과협의회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등굣길 교문 앞에서 누군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반대합니다”라는 글귀가 담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말을 건네보니 학부형인데 자신의 아이가 교학사 한국사로 배우면 어쩌나 하는 우려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러고는 대전 시내에서 교학사 한국사를 채택할 만한 학교가 있는지 내게 물었다. 그런 학교가 있다면 찾아가서 채택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한 졸업생은 우리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교과서 채택결과를 보고 교학사 한국사가 채택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며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교학사 한국사에 많은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교학사 한국사를 채택하려 하자 학생, 학부모, 동문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교학사 한국사의 채택을 유도하는 재단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한 역사교사는 양심선언을 하기도 했다. 수구세력은 교학사 한국사에 대한 거부를 이념의 틀로 재단하고 싶었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온 글과 자료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학생들 사이에선 수행평가 과제물만도 못한 교과서라는 비아냥의 대상이 될 정도로 교과서 자체에 결함이 많은데다, 친일적 서술에 분노하며 교학사 한국사를 채택하려는 학교를 방문해 항의하는 ‘위안부’ 할머니를 ‘종북’으로 몰아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교학사 한국사가 학교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국면 속에서 교육부는 그간의 파행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갑자기 ‘편수(編修) 기능의 강화’ 방침을 들고 나왔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편수라는 말 속에 (역사)편찬의 의미를 담고 있어 국정교과서의 부활을 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국가가 역사를 자신의 입맛대로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가령 박정희정부 시절에 나온 교과서의 한 부분을 보자. “대한민국은 1972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할 정치, 사회 풍토를 조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이로써 사회의 비능률적, 비생산적 요소를 불식하고 전근대적 생활의식과 사대사상을 제거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정립을 추진하고 있다.”(1979년판 고등학교 『국사』 300면) 또한 전두환정부 시절의 국정교과서는 5공화국 정부가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힘쓴다고 서술하였다.
역사를 비판적 안목에서 한층 자유롭게 성찰할 수 있도록 현행 검인정제를 넘어 자유발행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마당에 국정제 논의가 흘러나오는 것은 참으로 우울한 일이다.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뀌면서 학교현장에는 다양한 교과서가 보급되었고,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졌다. 국정으로의 회귀는 이러한 긍정적 변화를 묵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만일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려 한다면 이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교학사 한국사의 집필진과 교육부는 일본이 좀더 수월하게 자국 역사교과서를 왜곡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1982년부터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었고 실제로 성과도 컸다. 그러한 활동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한일 간의 민감한 사항인 독도 관련 서술을 보면, 교학사 한국사는 “(샌프란시스코조약에) 독도가 빠져 한・일 독도 영유권 분쟁의 계기가 됐다”(355면)라고 함으로써 독도를 영유권 분쟁지역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교학사 한국사는 한국정부가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배워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즉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이다. 한국의 많은 국민은 그것을 상식 이하의 책으로 보지만, 일본 측에는 한국정부의 ‘공식문서’일 수 있다. 이 책을 빌미로 한일 간 역사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땐 어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