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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미월 金美月
1977년 강원도 강릉 출생.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 있음. welcomesnow@hanmail.net
장편연재3(마지막회)
세 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네
그들의 이야기
엘리베이터 앞의 줄이 길었다. 복도에도 사람들이 복작복작하여 통행에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진은 설마 이 많은 사람이 전부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하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 했다. 그러나 웬걸, 아닌 게 아닌 것 같았다. 몇몇 사람의 손에 낯익은 표지의 책이 들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출간된 지 사흘 만에 2쇄를 찍었다더니 과연 시장의 반응이 뜨겁구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행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삼십분이나 남아 있었다. 진이 빌딩 밖으로 나오는데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오분 후 도착 예정.’
소윤이었다. 누가 프로페셔널한 편집자 아니랄까봐 그 짧은 한 문장을 쓰는데도 꼼꼼하게 띄어쓰기 한 것을 보고 진은 픽 웃었다.
명주의 네번째 장편소설 출간기념 행사가 열리는 장소는 종로에 위치한 빌딩 꼭대기의 이벤트홀이었다. 아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빌딩 입구의 벽에 명주의 얼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인쇄된 현수막이 부착되어 있었다. 사진 속의 얼굴은 나 작가입네 하는 전형적으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진이 보기에 그것은 매일 아침 집에서 명주가 잠이 덜 깬 채로 식탁에 앉아 커피를 내릴 때의 표정과 상당히 흡사했다.
소윤은 예정대로 정확히 오분 후에 도착했다. 손에 명주가 좋아하는 제과점의 치즈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진은 자신이 동료 작가의 출간행사에 선물을 사 간 적이 한번도 없음을 깨달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행사에 가본 일 자체가 없었다.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것 같은 기분이야.”
소윤은 들떠 있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그게 다 일이었는데.”
그랬을 것이다. 행사 준비하랴, 작가들 뒤치다꺼리하랴, 정신없었을 것이다.
소윤이 농한기를 맞은 농부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빌딩 전면의 현수막을 올려다보는 사이에도 명주의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소윤과 진을 지나쳐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진은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예전부터 품었던 의문이지만 소설이라는 게 읽어서 재미있으면 그걸로 됐지 굳이 소설가까지 만나서 뭐하자는 것일까 싶었다. 소설가를 연예인 좋아하듯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열렬히 흠모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 테고 말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응?”
소윤의 답은 빠르고 간명했다.
“외로워서 그런 거지.”
“외로워서라고?”
소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영화나 연극, 콘서트 같은 것과 달리 출간 기념행사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혼자라고 했다.
“뭔가 딱 부러지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 알고 보면 답은 사실 외로움일 때가 많아.”
소윤은 계속 말을 이었다.
“왜 그랬어? 외로워서. 왜 죽였어? 외로워서. 왜 떠났어? 왜 돌아왔어? 외로워서. 왜 자꾸 물어봐? 외로워서.”
“……”
“다 외로워서 그런 거라니까.”
딱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진은 반박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전 자신의 첫번째 책이 출간되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녀도 딱 한번 출간행사를 치른 적이 있었다.
사오년 전이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그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는지 출판사마다 경쟁하듯 신간 홍보행사의 일환으로 작가와 독자의 만남 이벤트를 벌이던 무렵이었다. 첫 소설집 출간 기념으로 진 역시 처음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장소는 신촌에 있는 북까페였다. 출판사는 행사를 위해 까페 안쪽에 따로 마련된 파티룸을 통째로 빌려 독자 열명을 초대했다. 그들에게 무료로 커피와 케이크까지 제공하겠다고 했다. 진은 혹 출판사에 누가 될까봐 행사에 오고 싶다고 했던 친구도 부르지 않았다. 행사 당일에는 아침부터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옷장을 온통 헤집어가며 가장 세련되면서도 무난해 보이는 옷을 골랐다. 평소에 하지 않는 화장도 안한 듯 옅게 하느라 오후 시간을 다 보냈다. 그러느라 어느 틈엔가 하늘이 흐려지고 굵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년 만의 폭설이 수도권 전역을 강타했던 그날 저녁, 행사가 시작될 예정이던 일곱시 정각의 북까페 파티룸에는 다섯 사람밖에 없었다. 진, 행사 진행을 맡은 동료 평론가, 그리고 진의 담당 편집자를 포함한 출판사 직원 세명. 일곱시 오분이 되었을 때도 인원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내 휴대폰을 붙들고 있던 편집자가 독자 네명으로부터 갑자기 사정이 생겨 불참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나머지 여섯명과는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휑뎅그렁한 파티룸과 대조적으로 까페 안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백년 만의 폭설에 들뜬 사람들은 소리 높여 웃고 떠들며 커피를 마셨다. 정수리에 흰 눈을 얹고 양 손에 입김을 불며 까페에 들어왔다가 빈자리가 없어 되돌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편집부 직원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쉬지 않고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셋이 번갈아가며 창밖을 내다보고는 애꿎은 폭설을 탓했다. 폭설 탓이라도 할 수 있으니 차라리 다행인 걸까. 진은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 자리에서 ‘우리끼리 그냥 술이나 마시러 가요’ 하고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는 사람은 행사의 주인공인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진의 담당 편집자가 오분만 더 기다려보자고 제안했을 때 고개나 겨우 끄덕였을 뿐이다.
그때 진의 행사장과 지금 명주의 행사장 분위기는 얼마나 다른가. 소윤은 사람들이 외로워서 작가를 만나는 행사 따위에 참석한다고 했지만 여러해 전 진의 출간기념 행사장에서 가장 외로웠던 사람은 바로 진이었을 것이다.
왜 그랬어?
외로워서.
진은 문득 세상의 모든 질문에 그렇게 답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 진은 언제나 소설을 생각한다. 언제나 소설을 쓰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안 쓰는 쪽에 더 가깝다. 그것이 문제다. 생각은 늘 하는데 어찌하여 정작 쓰지는 못하는가.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근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저 천직이 아니기 때문일까.
진은 노트북을 덮었다. 더 버티고 있어본들 소득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노트북을 파우치에 넣고 파우치를 다시 배낭에 넣었다. 탁자 위의 쟁반을 치우면서 보니 찻잔에 들어 있는 것은 뜻밖에도 홍차였다. 무엇을 주문했는지도 잊고 있었다니, 그렇다고 소설을 많이 쓴 것도 아닌데, 대체 여기까지 뭐 하러 왔나 싶었다.
진이 소설을 쓰겠답시고 매번 수고스럽게 까페로 행차하는 이유는 바로 그 ‘수고스러움’ 때문이었다. 수고를 해야, 이를테면 뭔가를 지불해야, 그게 아까워서라도 좀더 절박해진 마음으로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잘 안되고 있었다. 수고만 하고, 지불만 하고, 그러고 나서 서너시간 속절없이 노트북 화면만 주시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집에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작업이 더더욱 지지부진했다. 야심차게 덤벼든 장편소설은 여전히 답보상태고, 그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던 차에 마침 문예지에서 원고청탁이 왔기에 쓰기 시작한 단편소설은 두 페이지쯤 쓰다가 버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진공청소기 소음이 먼저 진을 반겼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거실 벽 콘센트에 꽂힌 청소기의 전원선이 주방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은 문이 반쯤 닫힌 소윤의 방까지 이어져 있었다. 소윤의 방이니 소윤이 청소하고 있으리라. 진은 허리를 구부리고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머리카락 한올을 주웠다. 줍고 보니 그 옆에 한올이 더 있었다. 둘 다 모발이 새까맣고 굵은 것으로 보아 쟈르갈의 머리카락임이 분명했다. 수시로 청소기를 돌려도 미처 치우지 못한 머리카락은 이렇듯 언제 어디에서나 툭툭 나타나곤 했다. 하기야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하루에 빠지는 모발의 갯수가 칠십에서 팔십개에 이른다는데, 한집에 다섯명이 살고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진은 무의식적으로 청소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고자 거실 바닥을 훑어보았다. 역할 분담을 약속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청소는 대개 그녀가 담당하곤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청소야 하면 된다. 운동화를 빨라면 빨고, 나물을 손질하라면 하고, 소파를 옮기라고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 명주의 지적대로 쓸데없이 생각만 너무 많은 까닭일까.
“소설가는 예술가가 아닙니다. 노동자죠, 육체노동자.”
진은 새삼스레 엊그제 명주가 행사장 무대 위에서 독자들의 질문을 받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명주는 무조건 쓴다고 했다. 소설의 본질이라든가 효용 같은 것에 대해 오래 고민하거나 거창한 의미를 찾거나 하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이야기를 마구 옮겨 적는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소설가가 꼭 갖춰야 할 것은 정신력보다 체력이라고.
“시인은 시를 잘 쓰는 사람이지만 소설가는 소설을 열심히 쓰는 사람이니까요.”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대사 같은데도 명주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면 왠지 명주가 처음 한 말처럼 들렸다. 그것이 명주가 가진 눈에 띄는 장점 중 하나였다. 말을 그럴듯하게 잘한다는 것, 게다가 듣는 이에게 신뢰감을 준다는 것.
한 독자가 좋은 소설이란 어떤 것이냐 물었을 때, 객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진은 귀가 번쩍 뜨였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언제나 답을 찾고 싶어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명주는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명주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러나 소설을 쓸 때 좋은 소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항상 마음에 품고 쓰려고 합니다. 답을 아는 것보다 질문을 잊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아, 실로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진이라면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소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소설, 독자에게 위로가 되는 소설…… 이런 식의 뻔한 대답조차도 쑥스러워서 입속으로만 웅얼거리다 말았을 것이다.
진은 때때로 저 자신에게 질문해보고는 한다.
나는 어쩌다 소설가가 되었을까.
어쩌다,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사실 어렸을 때 진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학교 선생이 장래희망을 물었을 때 자신이 똑 부러지게 소설가라고 대답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장래에 소설가가 되고 싶었으니 장래에 소설가가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다행한 일이다. 진이 의아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처음에 왜 하필 소설가를 꿈꾸게 되었을까, 어째서 선생님에게 소설가가 되고 싶노라 대답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야 어렸을 때부터 글짓기를 잘하기는 했다. 하지만 진은 글짓기를 잘하는 것 이상으로 그림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불렀고 운동신경도 뛰어났으며 심지어 공부마저 잘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사생대회에 나가면 그림으로 상을 받고, 교내 가요제에 나가면 노래로 상을 받고, 체육대회에 나가면 계주의 마지막 주자로 뛰고, 그러면서도 성적은 최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열 재주를 가진 그녀가 나머지 아홉 재주보다 글짓기에 유독 관심이 많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먼 친척이나 이웃집에 존경할 만한 작가가 있어서 그를 닮고 싶었다든가 난생처음 타인에게 칭찬을 받은 사건이 글짓기로 인한 것이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운명을 바꿀 만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통 모를 일이었다.
“어, 진언니 왔어요?”
추측과 달리 소윤의 방에서 나온 것은 쟈르갈이었다.
“어, 너였구나?”
“네. 집에 저 혼자 있어요.”
쟈르갈이 생글생글 웃으며 진공청소기를 끌고 거실로 나왔다.
“소윤이랑 명주언니는?”
“일하러 간다고 했어요.”
거실 청소를 끝낸 게 아니라 이제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청소할 거 많지? 도와줄까?”
“아니에요. 거의 다 끝났어요.”
무미건조한 대화였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쟈르갈 앞에서 진은 뭔가 할 말이 더 있다는 듯 머뭇거리다가 곧 제 방으로 들어섰다. 방문을 닫고 나서야 소준의 행방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소준과 쟈르갈이 이 집에 머문 지 어느새 한달이 되었다. 그런데도 진은 그들에 대해 통 아는 것이 없었다.
사실 소준이 밖에서 무슨 일을 하며 다니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복수 운운했던 쟈르갈에 대해서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평소 쟈르갈의 얼굴이 어떠했던가. 아니, 방금 전만 해도 어땠는가.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에 쟈르갈의 표정은 너무나 평화롭고 무구해 보였다. 복수라는 단어의 무시무시한 어감과 열아홉살 소녀의 순진한 표정 사이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진은 알고 싶었다. 그것은 진이 가져본 적 없는 것이었다. 복수라는 단어는 그녀의 삶에서 너무도 멀리 있었다. 금치산자라든가, 살인이라든가, 고아라든가, 탈북이라든가, 스와핑이나 에이즈 같은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진이 자신의 삶에 직접 끼어들 수 있다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개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진의 삶은 무사하고 순탄했다.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었고 외면하고 싶은 것은 다 외면할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이루었고 개중에는 노력하기 전에 이미 얻은 것도 많았다. 그녀의 서른두해 삶에는 이렇다 할 그늘이 없었다. 예컨대 부모가 이혼을 하지도 않았고, 학창 시절에 왕따를 당하지도 않았고, 지독한 가난을 못 이겨 가출했던 기억도 없고, 대학입시에 실패하거나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거나 길에서 강도를 만나거나 자살을 시도해본 적도 없었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의 소설에서 비중이 큰 등장인물은 대개 중산층 가정에서 유복하고 나약하게 살아온 지식인 계층이었다. 사람은 겪은 만큼 알고, 아는 만큼 쓰는 법이니까.
물론 이런 얘길 한다면 명주로부터 핀잔을 들을 게 뻔했다. 명주의 주장에 따르면 아는 만큼 쓰는 것이 아니라 쓰는 만큼 안다. 그리고 겪어야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직관으로도 알고 상상으로도 안다. 예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명주 자신만 해도 지옥에 가본 적이 없고 태평양 심해의 요괴들을 만난 적도 없으며 역병이 창궐하는 마을에서 살아보지도 않았으니까.
진은 노트북이 든 배낭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책상 위에 며칠째 뜯지 않은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책과 각종 공과금 고지서였다. 진은 위에 놓인 것부터 하나씩 봉투를 뜯었다. 기계적으로 손을 놀려 봉투와 내용물을 분리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미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애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온 것은 보름 전이었다. 진은 휴대폰 주소록에 미애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소원한 관계였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때가 진이 등단한 직후니 무려 십년 전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진이 놀란 것은 미애의 연락이 갑작스러워서가 아니라 그 내용 때문이었다.
‘미애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애가 도합 21명에게 단체로 보낸 메시지의 내용은 달랑 한줄이었다.
이른 아침이었고 진은 메시지 소리에 잠에서 깬 참이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미애가 정말 죽었을까, 그렇다면 누가 미애의 휴대폰으로 이런 단체 메시지를 보낸 것일까, 혹시 미애 본인이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하며 혼란스러워했다. 수신자 21명 가운데 진이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진은 휴대폰을 쥔 채 다시 잠들었다. 잠에서 완전히 깬 다음에는 갑자기 생긴 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경황이 없어 그 메시지를 잊어버렸다. 며칠 후에 확인해보니 그새 장례 일정에 대한 메시지가 추가로 올라와 있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미애의 휴대폰으로 미애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미애는 정말로 죽은 것이다. 진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볼까 망설이다가 결국 걸지 않았다. 장례식 날짜는 이미 지나 있었다. 하기야 미리 알았다 해도 진은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미애는 진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둘은 삼년 내내 같은 반이었지만 누가 봐도 서로 친해질 수 없는 관계였다. 둘 사이에 교집합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진은 선생들의 총애를 받는 모범생이었으나 미애는 선생들이 포기해버린 문제아였고, 진은 주로 혼자 다녔으나 미애는 함께 어울리는 패거리가 따로 있었다. 키 크고 예쁘장한 아이들로 구성된 그 패거리는 늘 교실 뒤에 모여 앉아 저희끼리 웃고 떠들었다. 딱히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하는 일이 없는데도 아이들은 그 패거리를 두려워했다. 듣자 하니 그들은 밤마다 짙은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이웃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려 나이트클럽에 출입한다고 했다. 그밖에도 툭하면 부탄가스를 마신다더라, 본드를 분다더라, 말 안 듣는 패거리의 누군가를 집단 구타했다더라,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지만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었다.
진은 패거리의 존재는 알았어도 그 구성원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미애가 그중 하나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미애가 어느날 불쑥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 십중팔구 몸을 사렸을 것이다.
“응? 뭐라고?”
진이 미애의 말을 한번에 알아듣지 못했던 것은 패거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미애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좀 써줄 수 있냐고.”
“써줄 수 있냐니, 뭘?”
미애는 머뭇거리며 진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연애편지를 보내고 싶은데 저는 글재주가 없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아마 진이 공부도 잘하거니와 글짓기를 잘한다는 것을 알고 부탁한 것이었으리라.
말하자면 그것은 진이 난생처음 받아본 원고청탁이었다. 진은 미애에게 그 남학생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첫인상은 어땠는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런 건 알아서 뭐하게?”
“그런 걸 알아야 쓰지.”
“아.”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비밀이 생겼다. 미애는 틈날 때마다 진에게 그 남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진은 틈날 때마다 그 남학생을 상상하며 온갖 정성을 기울여 편지를 썼다. 얼마 안 있어 자연히 미애가 패거리의 일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진의 눈에 비친 미애는 태도만 불량해 보일 뿐 그저 외모에 관심 많고 새침하고 마음 여리고 남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보통 여중생이었다.
편지는 퇴고에 퇴고를 거치며 숫제 문학작품으로 승화해갔다. 그러나 마침내 대망의 연서가 완성되던 날, 진은 자율학습 시간에 예고 없이 교실로 들이닥친 선생에게 그것을 들키고 말았다. 선생은 편지를 읽고 뭔가 짚이는 바가 있었는지 대뜸 진에게 이 편지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이실직고할 것을 종용했다. 진은 끝까지 자신의 편지라고 주장했다. 선생은 믿지 않았지만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결국 진은 벌로 손바닥 열대를 맞고 편지를 압수당했다.
미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진의 의리에 감동해서였다. 그리고 패거리 사이에 소문이 날까봐 두려워 자신이 나서서 선생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이 몹시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것은 의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진실을 말했다. 진에게 그 편지는 정말로 그녀 자신의 편지였던 것이다.
괜찮다고 해도 미애는 계속 침통한 표정이었다. 결정적으로 선생이 편지를 빼앗아갔으니 모든 게 허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걱정 마. 그거 없어도 돼.”
진의 호언에 미애가 눈을 크게 떴다.
“나 그 내용 다 외우거든.”
오랜 시간 한 단어 한 단어 공들여 쓰고 공들여 고쳤기 때문에 저절로 외우게 된 것이었다. 진은 순식간에 이전 것과 토씨마저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다시 써서 미애에게 건넸다.
그날 미애는 진에게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진이 따라가보니 미애의 집은 시장통에 있는 조그만 건어물 상점이었다. 마른 멸치와 새우와 꼴뚜기와 조갯살 꾸러미 사이에 앉아 있던 중년 여자가 미애를 보자마자 악을 썼다.
“이 망할 년아! 내가 정신 나간 년들하고 다니지 말랬지!”
그 험악한 대사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식과 처음 보는 자식의 친구를 겨냥한 것임을 알고 진은 혼비백산했다.
“에이 씨, 엄마! 얘는 그런 애 아니야!”
미애가 진의 앞을 막아서며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얘는 우리 반에서 일등 하는 애란 말이야!”
“뭐? 일등 하는 애가 뭐하러 니랑 친구를 하냐!”
미애의 어머니는 여전히 호통을 쳤지만 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그새 누그러져 있었다.
그날 진은 가게 안쪽에 딸린 방에서 미애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애가 진에게 짝사랑하는 남학생이 아닌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미애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서른살이 넘으면 제주도에 수영장이 있는 대저택을 짓고 살 거라고도 했다. 진은 코앞의 시험성적에나 신경 쓸 뿐 성인이 된 후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미애가 갑자기 어른스럽게 보였다. 둘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미애의 어머니가 사과를 깎아서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진을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미애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애에게는 공부 잘하는 친구를 본받으라고 했다.
“좀 이상하지 않아?”
어머니가 방을 나가고 나서 한참 후에 미애가 중얼거렸다.
“뭐가?”
“공부 못하는 애한테 공부 잘하는 애를 본받으라고 하는 거 말이야.”
“그게 뭐가 이상해?”
“그럼 공부 제일 잘하는 애는 누구를 본받아야 하는 거야?”
진은 그것이 공연한 트집 같아서 웃었지만 미애는 끝까지 웃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둘의 관계는 그것이 끝이었다. 얼마 안 있어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차츰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다 중학교 동창에게 전해 듣기로 미애는 고등학교 때 임신을 해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고 했다. 그렇게 진은 미애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미애의 전화를 받은 것은 진이 등단을 하고 나서 일간지와 인터뷰를 했을 때였다. 미애는 신문기사를 보고 반가워서 전화했노라 했다. 너는 작가가 될 줄 알았다고, 네가 자랑스럽다고, 보고 싶다고, 당장 만나자고 했다. 자신은 세 아이의 엄마이며 보험설계 일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진은 반갑다기보다 누군가 자신의 연락처를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다. 미애가 그후로 계속 전화를 걸어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응답을 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 공포심 때문이었다.
우편물 정리를 끝냈다. 미애가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른다. 진은 배낭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슬프다기보다는 떨떠름했다. 어차피 지금껏 서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미애가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알게 되었으니까, 죽었다는 것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과 정말로 모르는 것은 다르니까.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가만있자, 그때 미애가 남학생에게 편지를 제대로 전달했던가. 그래서 그 남학생과 사귀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애가 했던 질문만 또렷이 기억이 났다. 그럼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애는 누구를 본받아야 하는 거야? 만약 지금 그렇게 물어봐준다면 웃지 않을 텐데. 그때 저 혼자 웃어버린 것이 진은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노트북 화면에 워드프로그램이 떠 있었다. 진은 쓰다 만 문장 끝에서 커서가 더 나아갈 곳이 없어 난처하다는 듯 깜박이는 것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진공청소기 모터 소음이 요란했다. 쟈르갈은 텔레비전 장식장과 바닥 사이의 좁은 틈에 청소기 흡입구를 밀어넣고 있었다. 그 일에 얼마나 열중했는지 진이 거실로 나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은 샤워를 하러 욕실로 가려다가 돌연 마음을 바꾸었다. 그대로 문지방 앞에 서서 쟈르갈의 이름을 불렀다. 두차례 불렀는데도 듣지 못하자 쟈르갈이 돌아설 때까지 기다렸다.
“어, 언니?”
진은 쟈르갈에게 다가갔다.
“저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쟈르갈이 잘 안 들린다며 진공청소기의 전원을 껐다. 진은 소음이 일거에 사라진 방 안에 자신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려퍼지는 것을 들었다.
“쟈르갈이 전에 복수한다고 했던 것 말이야.”
“복수?”
순간 쟈르갈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그것을 상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리라. 진은 그런 쟈르갈이 안쓰러워서 슬그머니 그녀의 팔을 잡았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겨우 열아홉에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복수씩이나 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응. 저번에 공원에서 그랬잖아, 복수하러 갈 거라고.”
한국 사람에게 된통 배신을 당한 것일까. 혹시 누가 돈을 떼어먹었나. 그것도 아니면 혼인빙자간음을 해놓고 도망이라도 간 것일까.
“아아, 그거? 복수?”
한참 후에야 쟈르갈은 겨우 생각났다는 듯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는 진을 돌아보았다.
“그것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어요?”
“응. 어쩌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진은 진심으로 쟈르갈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면 그 복수라는 게 의외로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어쩐지 쟈르갈의 눈빛이 흔들린다 싶었는데 그녀가 별안간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은 그거, 거짓말이에요.”
진이 영문을 몰라 눈만 끔벅거리는데, 쟈르갈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했다. 그냥 재미로 그랬다고, 관심을 끌고 싶었다고, 언니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아무 이야기나 지어낸 거라고 했다.
“진짜야? 진짜 거짓말이었어?”
쟈르갈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옆으로 늘어진 긴 머리카락에 가려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진은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게 거짓말이었다니.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의와도 아무 상관이 없는 심심풀이 거짓말이라니. 너무 황당해서 진은 이거야말로 소설의 한 장면 같구나, 이 아이는 소설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입체적 인물이로구나, 소설은 내가 아니라 얘가 써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너 때문에 괜히 걱정하지 않았느냐며 나무랄 수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애초에 진을 사로잡았던 것은 쟈르갈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 그녀의 사연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게 마음에 켕겨서 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명주는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체중계에 올라섰다가 흠칫했다. 지난 며칠 사이에 체중이 3킬로나 줄어 있었다. 의사는 명주에게 당분간 보양식을 먹고 잠을 많이 자고 푹 쉬어야 한다고 했다. 병원을 나섰다. 회전문을 미는데 링거 주사기를 꽂고 있던 왼쪽 팔뚝이 뻐근했다. 몸 전체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겨우 하루 입원해 있었는데도 퇴원 수속을 밟고 병원 문을 나서니 정말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의사의 진단대로 과로라면 과로였다. 그것도 노동이라면 노동이었으니까. 새 책이 출간된 직후에는 으레 그랬다. 각종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방송에 출연하고, 대형서점의 싸인회며 토크쇼며 출판사가 주관하는 갖은 이벤트에 참석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야 했다. 이번 책의 경우는 독자들의 반응이 이전보다 월등히 좋아서 여느 때보다 훨씬 바빴다. 책 때문에 바쁜 것인데도 너무 바쁜 나머지 정작 그 책은 펼쳐볼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책에 혹시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여부를 소윤이 신속하고 꼼꼼하게 살펴봐주었다.
“언니, 책에 맞춤법 틀린 단어 있는 거 알아요?”
소윤이 한밤중에 명주의 방문을 두드린 것은 책이 나온 바로 그날이었다.
“뭔데?”
“느닷없이. 그거 받침이 잘못 표기된 게 여기 있더라고요.”
소윤이 펼쳐 들고 온 책을 명주의 눈앞에 내밀었다. 명주는 속이 뜨끔했다.
“이렇게 쉬운 단어를 실수하면 어쩌자는 거야. 안 그래요?”
소윤이 대놓고 편집자를 탓하는 와중에도 명주는 머릿속으로 그 단어의 받침이 지읒인지 시옷인지 헤아리느라 차마 책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어쩌면 편집과정에서 실수가 생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명주가 틀리게 썼는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정서법에 취약하다는 것은 명주의 콤플렉스 중 하나였다. 그녀는 쉬운 단어를 종종 틀리게 썼다. 오히려 어려운 단어는 틀리게 쓰는 일이 결코 없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없어서 미리 사전을 찾아보고 쓰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발 빠른 소윤 덕분에 3쇄를 찍기 전에는 오탈자를 모두 바로잡을 수 있었다.
진에게서도 도움을 받았다. 명주가 연이은 인터뷰며 행사들에 시달리느라 노상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는 것을 지켜보더니 진은 자진해서 명주의 신간 발송작업을 맡았다. 말이 쉽지, 책을 보내주어야 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하고 그들의 주소를 일일이 확인한 후 책을 넣은 봉투에 옮겨 적고 우체국까지 가져가서 부쳐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명주가 쓸데없이 남의 일에 힘 빼지 말고 소설에 집중하라며 만류하자 진은 대꾸했다.
“이런 게 멀리 보면 결국 소설 쓰는 일이에요.”
진의 설명인즉슨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어떤 쓸데없는 일도 결코 쓸데없지 않다고 했다. 다시 말해 공연히 남의 일에 힘 빼는 이는 공연히 남의 일에 힘 빼는 상황에 대해 잘 알고, 허송세월하는 이는 허송세월하는 이의 시간에 대해 잘 알며, 사기만 당하고 사는 사람은 사기만 당하고 사는 사람의 심정에 대해 잘 아는 법이니, 그것들이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소설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 그것참, 하고 명주는 헛웃음을 흘렸다. 말에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없거니와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 불평할 일이 하나도 없겠구나 싶어서였다. 그렇게 진이 가끔 수도자 같은 소리를 할 때마다 명주는 만약 진이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을까 궁금해지곤 했다. 그날 명주의 책 발송작업을 하던 진은 봉투에 풀칠을 하다 말고 뜬금없이 물었다.
“언니, 못난 사람은 잘난 사람을 본받아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못난 사람은 잘난 사람을 본받아야 한다…… 명주는 진의 말을 한번 되뇌어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러면 말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은 누구를 본받아야 해요?”
명주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곧 대답했다.
“그야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더 잘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기가 제일 잘났는데.”
“그러니까 더 잘난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야지.”
더 잘난 사람이 있다고 상상한다…… 이번에는 진이 명주의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 그러더니 명주더러 고맙다고 했다. 명주가 자신의 책 때문에 진이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고맙지 네가 무엇이 고맙냐 물어도 그저 웃기만 했다. 생각해보니 명주가 여럿이 한집에 살면서 책을 출간한 적은 처음이었다. 아니, 작가가 되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한집에 살게 된 것이 처음이었다.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병원에서 종일 자고 나오는 길인데도 좌석에 등을 기대자 스르르 졸음이 왔다. 진과 소윤은 명주가 어젯밤 외박을 한 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진짜 가족이라면 왜 집에 안 들어오느냐고 전화라도 했을 테지만 진과 소윤은 그러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관계였다.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세 사람 사이에 암묵적으로 성립되었던 관계는 동거 반년 만에 단단하게 정립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주가 남들과 한집에 사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나이도 적지 않겠다, 작가로서 수입도 쏠쏠하겠다, 여자 셋이 함께 복작거리고 살기에는 집이 좁기도 하겠다, 그러니 결혼을 하거나 독립해서 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명주도 그에 동의했다.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보다 혼자 살 때의 장점이 훨씬 많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들과 같이 살아서 좋은 점이 있다면 언제든 수다를 떨고 싶을 때 함께 수다를 떨고 맥주를 마시고 싶을 때 함께 맥주를 마실 대상이 옆방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최소한 소설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주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 정도였다. 그런데 그 별것 아닌 장점이 사실 지금 명주에게는 무척 중요했다.
네번째 장편소설 출간을 전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운전면허 실기시험에서 또 낙방했고, 십년 이상 된 금니를 새것으로 바꾸었고, 소윤에게 소개팅을 시켜주었다가 욕만 먹었고, 소준과 쟈르갈이 온다 간다 말없이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린 것을 며칠 후에야 알게 되었으며, 장편문학상 투고 제안을 거절했고, 스마트폰을 새로 장만했다가 바로 그날 밤에 술에 취해 분실했고, 그 바람에 일찍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주는 엊그제 친구 아들의 돌잔치에 갔다가 우연히 전남편과 조우했다. 그 친구가 명주와 전남편이 공통적으로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강명주씨.”
처음에 명주는 악수를 청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몸에 전체적으로 살이 많이 붙은 탓도 있지만 그가 그녀와 함께 살던 시절에는 보여준 적 없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데 그 표정이 영 낯설었던 것이다. 명주는 하기야 그가 워낙 책을 좋아하던 사람이니 작가가 된 전 부인을 보고 반가워 웃음 짓는 것도 당연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명주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요.”
그가 존댓말을 하는 것도 예상 그대로였다. 명주는 앞으로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그것 또한 미리 헤아릴 수 있었다. 제가 실은 강명주 작가님 팬입니다. 책도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싸인 좀 해주세요. 전 와이프가 이렇게 유명 작가가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전남편은 삼년 전에 재혼을 했으며 쌍둥이 아들을 두었다고 했다. 명주에게는 살이 많이 빠졌지만 오히려 더 건강해 보인다고 했다. 아직 혼자인 것 같은데 더 늙기 전에 빨리 좋은 사람 만나라고도 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지 오분도 안되어서 명주는 자신이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남편은 명주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연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는 명주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명주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가방 안에 갓 출간된 책이 들어 있었지만 그에게 줄 마음도 없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던가. 그처럼 책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는 사람이 명주의 책을 읽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달래주러 지옥으로 갈 수도 없고, 요괴들과 싸우기 위해 불사신으로 환생할 수도 없고, 폐허가 된 마을에서 누이동생과 근친상간을 할 수도 없을 텐데.
그가 아직 자신의 책을 읽은 적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명주는 왠지 허전했다. 자신의 책이 평소에 책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에게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이 어딘가 탐탁하지 않았다. 물론 작가가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명주는 문득 지하세계니 불사 요괴니 외계 전쟁이니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언젠가 소윤도 말했다.
“진언니 소설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라면, 명주언니의 소설은 누구에게도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때 명주는 속으로 안도했다. 소윤의 이야기가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뭐하러 소설로 쓴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관점을 바꿔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그게 그거였다.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없는 일 또한 굳이 소설로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소설로 쓸 필요가 있는 이야기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헤어지기 전에 다시금 악수를 청하면서 전남편은 말했다. 전에는 미안했다고, 이제 그는 책 같은 건 읽지 않는다고, 책 때문에 이혼한 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책 따위가 아님을 이혼한 후에 비로소 깨달았다고.
반팔 소매 아래 드러난 명주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냉방이 지나치게 잘되는 택시였다.
엘리베이터 한쪽 면에 경고문이 부착되어 있었다.
‘경고: 유리창을 깨지 마시오. CCTV 감시 중. 범인 적발시 경찰에 고발하겠음.’
육하원칙이 생략되어 있어서 유리창을 깬 장본인 말고는 언제 어느 곳의 유리창이 깨졌다는 것인지 파악할 수 없는 글이었다. 잠시 그것을 들여다보던 명주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으로 향했다. 그녀와 진과 소윤이 살고 있는 집은 7층에 있었다. 명주는 3층에 이르렀을 때 유리창 옆 벽면에 경고문이 다시 등장한 것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에 나붙어 있던 것과 똑같은 복사본이었다. 그러나 3층 유리창은 멀쩡했다. 세월의 더께가 적당히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에 갈아 끼운 것도 아니었다. 4층에도 예의 그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유리창도 별문제 없어 보였다. 5층으로 올라가면서 명주는 문득 소준과 쟈르갈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왜 갑자기 말도 없이 집을 나가버렸을까. 누가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이 급작스럽게 집을 떠난 이유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명주는 진이 평소에 쟈르갈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으니 뭔가 알 것 같아서 진에게 쟈르갈에 대해 물었고, 소윤이 소준의 친누나니 뭔가 알 것 같아서 소윤에게는 소준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어느날 집에 와보니 소준과 쟈르갈 둘 다 이미 짐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이다. 소준은 제 누나의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소윤은 화를 내지도 않고 속상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왔을 때 슬그머니 온 것처럼 갈 때도 슬그머니 간 거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과 삼년 만에 연락이 닿은 전력이 있는지라 앞으로 삼년쯤은 연락이 안된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명주는 언젠가 쟈르갈이 이 집을 떠나면 복수하러 가겠노라 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이 나서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거 다 거짓말이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진은 쟈르갈이 제 입으로 다 털어놓았다고 했다. 단지 재미 삼아 해본 거짓말이었다고, 명주와 진과 소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고 쟈르갈이 실토했다는 것이었다. 명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있는데 소윤이 콧방귀를 뀌었다.
“언니도 참, 그 얘긴 어떻게 믿어?”
“그럼?”
“오히려 그게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소윤의 말은 쟈르갈이 진에게 복수에 얽힌 사연을 곧이곧대로 밝히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이었노라 둘러댔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명주는 차라리 소윤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미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 쪽에 더 마음이 가게 마련이니까. 전자에는 없는 절박함이 후자에는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당장은 소준과 쟈르갈의 부재가 눈에 띄겠지만 한달만 지나면, 어쩌면 한달도 채 안 걸려서, 부재뿐 아니라 그들의 존재도 잊힐 것이었다.
5층 벽에도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다리가 서서히 아파오기 시작했다. 6층에도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층에 경고문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명주는 7층에 당도했다. 낯익은 현관문이 보였다. 명주는 더웠고 몹시 피로했다. 어서 저 번호키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 쓰러져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8층을 지나 9층에 이르렀다. 경고문에 언급된 유리창은 9층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갈아 끼운 지 얼마 안된 새 유리창이었다. 명주는 9층 계단과 복도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경고문에서와 달리 CCTV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명주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에서 서성이던 진과 소윤이 얼른 그녀를 맞았다.
“언니, 괜찮아요?”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두 사람이 앞다투어 물었다. 조금 전에 이 건물 내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는 것이었다. 명주도 들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거실에서 뭐 하고 있었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소윤이 무어라고 대답하긴 했는데 명주의 귀에는 똑똑하게 들리지 않았다. 아까 병원에서 먹고 나온 약 기운이 이제야 퍼지는지 정신이 몽롱하고 뼈 마디마디가 근질거렸다. 명주는 세 사람이 늘 앉아서 영화를 보곤 하던 살구색 천소파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누가 그러는 걸까?”
머리맡에서 소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왜 유리창을 깨는 걸까?”
진이 대답했다.
“외로워서.”
명주는 억지로 눈을 떴다. 진과 소윤이 거실의 다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인 것처럼 둘 다 자꾸만 벽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소윤이 명주에게 뭔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대답한 것 같기도 했다. 명주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 눈이 감기기만 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낮부터 어떤 손님이 오는 것일까. 좌우지간 누군가 이 집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거실 소파에 이렇듯 볼썽사납게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초인종이 울린 것은 명주가 힘겹게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진과 소윤이 벌떡 일어나서 현관문으로 갔다. 명주는 소파에 앉은 채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소윤이 문을 열었다. 현관문 밖에 서 있는 것은 호랑이였다. 소윤이 어서 들어오라는 듯 옆으로 비켜섰다. 진도 호랑이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서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호랑이는 현관에 잠시 서서 집 안 전체를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거실로 들어왔다. 호랑이가 먼저 거실 한가운데 자리를 잡자 그 옆에 진과 소윤이 조심스럽게 따라 앉았다. 호랑이가 고개를 들어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명주를 바라보았다. 뭔가 경계하는 듯한, 그러나 위엄이 서린 눈빛이었다. 명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탁을 향해 걸었다. 더이상 졸리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자리에 앉자 마침내 호랑이와 명주와 진과 소윤이 다탁을 둥글게 둘러싸고 앉은 모양새가 되었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명주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