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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승우 李承雨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심인광고』 『오래된 일기』 『신중한 사람』 등과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한낮의 시선』 『지상의 노래』 등이 있음. lsw555@chosun.ac.kr
신의 말을 듣다
공사 중이던 고층건물이 무너지면서 여러명이 죽고 수십명이 다친 M시의 사고는 부실공사의 주된 원인으로 업체선정 과정에 인맥과 뇌물과 정치자금이 작용한 사실이 지적되면서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들끓는 여론을 몰고 왔다. 인구가 20만도 안되는 지방도시에 랜드마크 운운하며 복합레저타운 건물을 허가해준 것부터 수상한 일인데다가 그 사업을 따낸 건설회사가 도시개발이 예정된 지역에 인접한 땅을 싸게 구입해서 연립주택을 지어 판 것 말고는 달리 내세울 실적이 없는 소규모 회사여서 의혹을 키웠다.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불거지지 않았거나 나중에 불거졌을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의 수수를 비롯한 각종 추문들이 둑이 터진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졌다. 치명적인 것은 그 업체의 대표가 시장의 부인과 친척관계라는 소문이었다. 헛소문이라는 반격은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그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도시 전체로, 도시를 넘어 나라 전체로 퍼졌다. 진상조사와 담당자 처벌과 시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신문 칼럼과 관공서 건물 앞의 피켓시위와 각종 단체의 성명서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어갔다. 사람들은 모이면 그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했다. 이를테면 결혼식 피로연장에서도, 직장인들의 저녁 회식자리에서도, 30년 만에 만난 동창들의 대화에서도 그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그 화제를 처음 꺼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는 건 중요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불가능하기도 하다. 누군가 먼저 꺼낸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화제는 특정인에게 귀속되는 고유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 그 누군가는 곧바로 익명이 되어버린다. 이 사람이 한 말이나 저 사람이 한 말에 내용의 차이가 없으면 굳이 이 사람이 이 말을 했고 저 사람이 저 말을 했다고 구별해서 새길 이유가 없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안도가 이 상황이 제공하는 혜택인데, 실상 그것은 나는 고유하지 않다,의 다른 말이고, 나는 실체가 없다,를 덮는 말이고, 그러니까 허위다. 발화자가 구별되지 않는 의견이나 감정을 주고받을 때 우리의 마음이 편한 것은 그 때문이고, 편한데도 가끔 (이건 예민한 사람이 느끼는 거라고 할 수 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듯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새겨질 필요가 있는 것은 다른 의견이나 감정인데, 이럴 때 의식은 느슨한 자세를 고치고 똑바로 앉는다. 의식이 곤두서는 경험, 30년 만에 만난 사람 앞에서 국립 M대학의 10년차 교수인 김승종은 최근에 그런 순간을 겪었다.
일찍 사위를 보는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만나게 된 M고등학교 11기 동창들 가운데 몇명이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결혼식장 부근 맥줏집으로 들어가 만들어진 자리였다. 아닌 게 아니라 졸업하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았고 그냥 헤어지면 아쉬워할 만한 자리였다. 지난 기억을 떠올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주고받고 각자 살아낸 시간들을 한두줄로 요약하거나 장황하게 늘어놓느라 시끌벅적하던 술자리가 웬만큼 시간이 지나고 나자 시들해졌는데, 그때 누군가 불쑥, 승종이가 한건 했더라, 어제 신문 봤냐? 하고 새로운 말을 꺼냈다. 고등학교 때 살던 동네에 여태 살면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친구였다. 한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는 무슨 말이냐는 듯 빵집 주인과 김승종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김승종은, 내가 무슨, 하며 머리를 긁적였고, 말을 꺼낸 친구는, 저 친구가 말이야, 하고 신문에서 읽은 내용을 옮겼다. “저 친구가 이번 붕괴사고에 대해 인터뷰를 했는데 말이야, 시민들은 시장에게 부정과 전횡을 저지를 어떤 권리도 주지 않았다, 주지 않은 권리를 제멋대로 행사한 시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시민의 권리다, 뭐 그런 요지의 말을 했더라. 인터뷰하는 사진도 크게 났고.”
M시에서 발행되는 지방신문에 그런 기사가 난 것은 하루 전이었다. 며칠 전 김승종이 회원으로 있는 M미래포럼은 붕괴사고와 관련하여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에는 시장의 퇴진을 암시하는 문장도 들어 있었다. 그후에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공교롭게도 포럼 대표가 외국에 출장 나가 있는 바람에 부대표를 맡고 있는 그가 대신 기자를 만나야 했다. 그는 사양했지만 따로 하는 일도 없는데 부대표가 그거라도 해야지, 하며 부추기는 회원들의 성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했다. M미래포럼의 성명서는 그 문제를 다룬 다른 단체의 성명서와 다를 리 없었고 다를 게 없었다. 거리에 떠도는 장삼이사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에 불과했다. 그의 인터뷰도 다를 리 없었고 다른 게 없었다. 그는 성명서에 표현된 것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신문을 본 친구가 그가 했다고 옮긴 말은 성명서에 있는 문장 중 일부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가 했지만 그의 말이 아니었다. 그는 쑥스러워하며, 그거 우리 단체에서 낸 성명서에 다 있는 거야, 하고 말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고백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주장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주장이라고 할 만한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것인지 분간되지 않는 비난과 한탄의 말들이 그들의 입에서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를 성토하다가 뿌리깊은 이 나라의 정경유착을 개탄하다가 정치인의 부도덕과 공무원의 무능을 도마 위에 올리다가 돈 없고 ‘빽’ 없는 서민의 설움을 토로하다가 했다. 그리고 그런 대화가 으레 그렇듯 곧 초점을 잃고 시무룩해졌다. “승종이 말 잘했다. 시장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용감하고 훌륭하다, 우리 김승종.” 그 술자리 대화에 결론을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김승종은 다른 사람이 받을 칭찬을 대신 받고 있는 것 같은 쑥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에 대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만인의 공감을 불러낼 용감하고 훌륭한 발언을 한 사람의 뿌듯함을 은근히 즐겼다. 어쨌든 신문기자 앞에서 그 말을 한 사람은 그였다. 성명서에 들어 있는 말이고, 단체의 공식입장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이 아닌 건 아니었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단순히 M미래포럼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 한 시민으로서의 공분을 표현했다. 그때 그는 M미래포럼의 부대표였지만 김승종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그가 느낀 뿌듯함에 대해 염치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물론 아무도,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그런 비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김승종은 자기를 비난하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흔들렸다. 아무도 그가 흔들린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를 흔들리게 한 사람조차 그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를 흔들리게 한 사람에게 그를 흔들리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지만, 그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려고 바람이 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뭇잎이 흔들렸다는 사실만으로 바람에 그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현상이 항상 어떤 의지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한 친구는 다만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학기를 추억했을 뿐이다. 그 때문에 김승종이 불편해졌다고 해서 그에게 김승종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그에게 그런 의지가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어떤 단정도 정당하지 않다. “기억나냐, 김승종. 네가 쓰던 방 나한테 물려주고 간 거?” 김승종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말을 붙인 친구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아, 그거, 그랬지, 하고 그제야 생각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취생들끼리 그런 거래를 했단 말이야? 짜식들. 아, 좋았지, 그때가. 생각난다.” 옆자리의 친구가 과장되게 반응을 하며 술잔을 들었다. 다른 친구가 술잔을 부딪치며, 둘이 그런 사이였어? 우, 수상한데, 하며 장난스럽게 야유했다. 김승종과 수철이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한 건 같이 학교를 다닌 동창들은 거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둘은 동네는 다르지만 M시 인근 시골 출신이었다. 김승종은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혼자 자취생활을 했고, 수철은 2년 터울의 동생과 함께했다. 3학년 마지막 학기를 마친 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김승종은 짐을 싸서 집으로 내려갔지만, 재수를 하기로 결심한 수철은 동생과 함께 M시에 더 머물러야 했다. 승종은 방을 빼야 했고, 수철은 다른 방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의 필요가 맞아서 배턴터치가 이루어졌다.
김승종은 수철이 언급하자 그 일이 겨우 기억난 것처럼 반응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결혼식장에서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일이 바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수철이 그 일을 기억해내지 않기를 바랐으므로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바람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것 역시 알았는데, 수철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가 바로 그 일을 떠올린 것처럼 수철 역시 자기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그 일을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철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 그 일을 잊고 있었지만, 수철은 그의 얼굴을 보기 전에도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더라도 수철이 그 이야기를 자기 앞에서 굳이 꺼내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인데, 그때까지 이어지던 화제가 사그라들고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나오기 전에 잠시 생긴 술자리의 침묵 속으로 그가 툭 그 일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던 이 자식들 무지 부러웠는데, 하고 한 친구가 추억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고, 그러게, 얘네들, 스스로 밥 해먹으랴 빨래하랴 공부하랴, 무지 고생했을 텐데 그땐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 어쩌고 하며 거들었다. 승종이 살던 집이 양지바른 언덕바지에 새로 지은 2층 양옥이었지, 하고 누군가 생각났다는 듯 탁자 위에 손가락으로 약도를 그려가며 회고했다. “그 근처에서는 제일 근사했지. 담이 높았고 마당도 있었잖아. 지붕이 파랗고 담이 노란색이었어. 다들 얼마나 부러워했다구. 좋은 집이었지?” 그 질문이 누구를 향해 던져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승종은 대답 대신 수철의 얼굴을 살폈다. 자기가 대답할 수 있지만 어쩐지 수철에게 넘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철이 그 자리에 없다면 자기가 해야 하지만 수철이 그 자리에 있으므로 자기가 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철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승종은 고개를 숙인 채, 그러나 온 신경을 기울여 대답을 기다렸지만 수철은 웃기만 했다. 아니, 웃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는 그저 승종의 얼굴을 살짝 쳐다보았을 뿐인지 모른다. 아니, 그것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맥주를 들이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치켜떠진 무심한 눈길이 잠깐 스쳤을 따름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승종은 그가 자기를 힐끗 쳐다보았고, 그뿐 아니라 빙그레 웃음을 짓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기 때문에 수철이 자기를 보고 있는지 보고 있지 않은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기 때문에 수철이 자기를 보고 있지 않을 리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면 수철이 자기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해야 했지만 자기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려다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확인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 좋은 집이었지? 수철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승종은 물론 그 자리에 있는 친구들 모두 수철이 그 집을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는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승종을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 모두 그 집이 좋은 집이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을 재촉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질문이 반드시 의도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질문이 대답을 요구하거나 기대하고 던져지는 것도 아니다. 대답에 관심 없거나 심지어 대답을 성가셔하는 질문도 있다. 좋은 집이었지? 의미와 의도를 갖지 않은 채 그냥 던져진 이 질문은 그 자리의 취기와 소음과 무질서를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휘발되어 날아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의미와 의도를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것 없는 이야기들이 그 질문이 사라진 술자리로 들어왔다. 이야기들은 자리에 앉았다 일어서고 끼어들었다 빠져나갔다. 그러나 김승종은 앉았다 일어서고 끼어들었다 빠져나가는 이야기들을 감지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맞장구를 치듯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과장되게 웃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곳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리고 그래서 다행이었지만, 그는 모두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물론 소외시킨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은 그가 자기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해 2월,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기 때문에 3월이 되면 서울로 가야 했다. 그는 더이상 M시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집주인은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 학생의 형편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돌려줄 돈이 없는 자기 사정도 딱하다며 입주할 사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급하면 입주할 사람을 직접 구해오라는 말도 했다. 그는 그렇게까지 할 마음이 없었으나 마침 친구인 수철이 새로 지은 2층 양옥집에서 사는 그가 늘 부러웠다며 방을 뺄 거면 자기에게 넘기라고 했을 때 승종은 잠깐 머뭇거렸다. 네가 들어오려고? 하는 미지근한 승종의 반문에서 자기를 마땅찮아하는 것 같은 낌새를 느낀 수철이 표정을 바꾸며 나한테 소개해주기 싫다 그거야? 섭섭한데, 내가 너와 같은 집에서 사는 게 언짢다는 거야 뭐야, 하자 승종은 당황했고, 그게 아니라고 해명을 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친구에게 인계하기가 찜찜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친구가 저렇게까지 바라는 일이니까, 하고 자기를 다독이며 하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겨울이 되어 보일러를 틀기까지는 그 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상하게 그의 방만 난방이 되지 않았다. 새 집을 짓고 첫 겨울을 난 주인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한겨울에 장판을 들어내고 구멍을 뚫고 파이프를 교체하는 공사를 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사를 하다 어디를 건드렸는지 물이 새는 바람에 아예 보일러 밸브를 잠가놓고 겨울을 보내야 했다. 장판을 뜯고 방바닥을 파헤쳐 쌓아둔 흙더미를 피해 방 한쪽에 요를 깔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떨며 잔 기간이 한달이나 되었다. 흙더미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난방은 되지 않는 상태였다. 그가 친구에게 자기가 쓰던 방을 선뜻 권할 수 없는 이유였다. 물론 그는 네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좋지는 않아, 겨울엔 춥고, 하고 말했지만, 그 말은 좀 얼버무리는 것처럼 했고, 친구가 귀담아듣지 않은 걸 알면서도 다시 말하지 않았다. 빨리 고향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앞서 있던 상황이었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지 않은 자책감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몇가지 구실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주인은 날을 잡아서 곧 공사를 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게 할 것이다. 주인이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지키지 않을 거라고 의심할 이유가 그에게는 없었다. 김승종은, 그 어느 때보다 주인의 말을 철저히 믿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곧 3월인데, 추위가 거의 지나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한겨울도 보냈는데 뭐. 무엇보다도 그가 친구에게 문제있는 방을 떠넘기려고 먼저 제안한 것이 아니라 친구가 먼저 그 방을 원했다. 그는 좋은 방이 아니고 겨울엔 춥다는 말을 했으므로 숨기거나 속인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할 일을 안한 것이 없었고, 그러므로 못할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는 떳떳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에서 달아났다. 집주인에게 서둘러 난방공사를 해주라는 말을 하고 집을 나오면서 그는 집주인이 서둘러 난방공사를 할 거라고 믿었다. 아니, 집주인이 난방공사를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집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3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후에 문득 날을 잡아서 곧 공사를 할 거라는 집주인의 말을 의심하지 않은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다. 주인이 자기 입으로 한 말이니까 지키지 않을 리 없다고 확신할 만한 근거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왔다. 집주인이 공사를 서둘러 할 거라는 믿음은 일종의 담보였다. 그 담보를 잡히고 그는 그 집, 그 방에서 서둘러 벗어났다. 자기가 할 일을 안한 것이 없고, 그러므로 못할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30년 전의 생각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는 할 일을 안한 것이고, 그러므로 못할 일을 한 것임을 수철의 존재가 상기시켰다. 수철은 그때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평도 하지 않았고, 비난도 하지 않았다. 사과도 요구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에게 불평이나 비난할 만한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정말로 주인은 난방공사를 바로 했고 수철은 그 방에서 춥지 않게 지냈는지 모른다. 그 방에서 그와는 달리 만족하게 지냈는지 모른다. 아니면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겨 그 집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모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김승종은 안절부절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수철은 아무 행동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그를 압박했다. 그는 수철이 그 방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봐 마음을 졸이면서도 차라리 무슨 말인가 해주면 차라리 낫겠다는 이율배반의 기분에 빠져들었다. 너는 그 방의 난방장치가 고장 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친구인 네가 친구인 나에게 그 사실을 감추고 그 방에 들어가게 했다. 자기만 빠져나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친구를 이용했다. 왜 그랬어, 나한테? 나는 반드시 너의 해명을 들어야겠고, 너의 사과를 받아야겠다. 김승종은 수철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 나는, 너도 알다시피, 이 도시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고, 너는 방이 필요했고, 내가 자취하던 그 2층 양옥집을 마음에 들어했고, 그리고 또 나는 난방 문제를 분명히 알렸고, 그리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림은 수철은 물론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누군가 김승종의 어깨를 툭 치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이럴 때 한 말씀 해야 하는 거 아냐? 하고 자기들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일 때까지 그는 혼자 오래전의 현실에 들어가 있었다. 그가 시끄러워서 잘 못 들었어, 뭐라고 그랬지? 하자 그의 어깨를 건드린 친구가 아, 이 염병할 놈의 자식, 어디 갔다 온 거야? 하며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고는 조금 전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늘어놓았다. “이 자리에서 나온 것 중에 가장 무거운 화제다. 아니 화두다. 요약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자기 옆집에 배달된 선물세트를 훔쳤다는 누명을 썼단다. 딴생각을 하느라고 자기 층에서 내리지 못하고 몇층 위로 올라갔다가 남의 집 현관 앞까지 가서야 아무래도 자기 집이 아닌 것 같아 호수를 확인하고 도로 내려왔는데 그걸 본 사람이 있었단다. 씨씨티브이에도 희미하지만 그와 비슷한 씰루엣이 잡혔고. 꼼짝없이 누명을 썼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소용이 없더란다. 자기 결백을 주장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더 혐의가 짙어지기만 하는 것 같더란다. 물건 잃어버린 사람 성질이 또 좀 고약했는지 신고하겠다고 길길이 뛰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는 거다. 신고하려면 하라고 소리쳤더니 진짜 신고를 해가지고 경찰이 와서 조사를 하고 집을 수색하고 그런 우세가 없었다는 거다. 뭐 집 안에서 택배물건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그냥 풀려나긴 했지만 물건 잃어버린 사람이나 이웃이나 심지어 경찰까지도 도무지 자기를 향한 의심을 떨쳐낸 눈치가 아니더라는 거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은데, 억울함을 풀 방법이 없어서 죽는 줄 알았다는 거다. 그의 집에서 물건이 나왔다면 그가 도둑질을 했다는 증거가 되겠지. 그런데 그의 집에서 물건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그것이 그가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거다. 그가 도둑질을 했다는 증명은 증거물이 하겠지. 그럼 그가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는 증명은 무엇으로 해야 할까?” 친구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려 있다는 걸 김승종은 어렴풋이 느꼈다. “이 자리에서 나온 것 중에 가장 무거운 화두 맞네. 그리고 이 자리에 가장 안 어울리는 화두이기도 한 것 같다. 대체 퍽이나 억울한 이 사람이 누군데?” 생각이 분산되어 있어서 이야기의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나누기에 적당한 화제가 아닌 것 같다는 김승종의 말은 진심이었다. 동창들이 그 이야기에 유난스레 집중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다. 어떤 반응인가 기대하고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 억울한 사람이 바로 나야, 하고 나선 사람이 수철이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수철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김승종은 머리끝에 뜨거운 기운이 확 끼얹어지는 걸 느꼈다. 옆자리의 친구가 요약해준 그 억울한 사연을 다시 떠올리고 의미를 캐내려 신경을 곤두세웠다. “내가 옛날부터 교회 다니는 건 알지? 뭐 주일날 예배드리러 한번 가는 게 전부인 날라리 신자지만 그래도 명색 모태신앙에 서리집사다. 신심의 깊이 같은 거하고 상관없이 나처럼 오래 교회를 다니다보면 매사에 습관처럼 작동하는 원리 같은 것이 있는데, 그러니까 그런 갑갑한 상황에서 어째 하나님께 호소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겠냐? 그래 하나님한테 따지고 들었지. 이것보세요, 공의롭다고 자처하는 하나님. 내가 이웃집 물건 훔치지 않았다는 거 당신은 아시잖아요. 아시잖아요. 그런데 왜 하지도 않은 일로 누명을 쓰게 하는데요?” M시 인근 도시의 준종합병원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자칭 날라리 집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특별히 한곳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김승종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그가 김승종을 향해 말하고 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그렇지만 김승종은 자기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귀는 기울였지만 눈이 마주칠까봐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어느 순간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아, 뭐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건 아니고, 문득 어떤 목소리가 내 안에서 생생하게 울려퍼졌는데, 그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더란 말이지. 이분이 뭐라고 했냐 하면…… 나는 네가 그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안다. 네가 했는데 들키지 않아서 감춰져 있는 크고 작은 아주 많은 것들을 안다. 그 말을 듣는데, 아찔하더라. 그 말을 듣자마자 살면서 내가 저질러온 숱하게 많은, 그러나 발각되지 않아 나만 알고 있는 크고 작은 허물들이 우루루 떠오르는 거야. 살면서 잘못한 게 참 많더라. 몰랐는데 참 많다는 걸 알려주더라. 네가 하지 않은 일로 누명 쓴 이 하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더 크고 많은, 공개되지 않은 네 모든 허물들을 까발리길 원하느냐? 하고 묻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 억울해할 자격이 있느냐고, 그런 일을 앞세워 하나님의 공의를 문제 삼고 따질 수 있느냐고 하는 그분의 질문이 내 입을 막아버리더라. 주책없이 눈물이 막 나더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50년이나 교회 다녔지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처음이니까 잊을 수 없지. 나는 그때 내가 하나님의 말을 들었다는 걸 믿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숙연함이 시끄러운 술자리로 침범했다. 그것은 좀 서먹하고 어색한 침범이었다. 수철의 얼굴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걸 보고 얼굴을 피한 친구도 몇 있었다. 30년 만에 만난 동창들은 낯익은가 하면 낯설고, 낯설면서도 낯익은 존재들이다. 달라졌어도 친숙하고, 친숙한데도 어딘가 달라 보이는 존재들이다. 그것이 낯섦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이고 또 낯익음에도 밀착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다. 그날의 수철은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에게 그런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거기에 덧붙여 말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 그 때문이었다. 부언하자면 그들 대부분은 수철의 이야기를 일종의 간증처럼 들었는데, 그런 유의 종교적 담화에 대해 대개의 평범한 중년 남자들이 보이는 반응대로 그 친구들 역시 어색함과 거북함을 신중한 침묵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는 아니었다. 김승종은 수철이 의미없이 그 이야기를 한 것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생각은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수철이 고등학교 때 그에게서 인계받은 방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그랬으면 좋았겠지만) 말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혹은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말해지기 위해서는 말할 것이 ‘있어야’ 하고 ‘있는’ 것을, 혹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있고’, 있는 것을 ‘안다’고 해서 다 말해지는 것은 아니다. 있고, 있는 것을 앎에도 어떤 것은 말해질 수 없거나 말하지 않기로 결정됨으로써 말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말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언제든 말해질 수 있는 상태로 웅크리고 있다. 그것들은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있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김승종은 정신의 쓰라림을 느꼈다. 그는 수철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다른 친구들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그 자리가 어떻게 끝났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 자리를 떠난 다음에도 수철이 한 말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철이 들었다는 신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종종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것도 안다. 네가 했는데 들키지 않아서 감춰져 있는 크고 작은 아주 많은 것들을 안다. 네가 하지 않은 일로 누명 쓴 이 하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더 크고 많은, 공개되지 않은 네 모든 허물들을 까발리길 원하느냐? 수철의 신은 왜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이런 말을 하는가? 김승종은 수철의 신을 원망했다. 수철은 왜 자기 신으로부터 들은 말을 전해서 나를 괴롭히는가? 김승종은 그러나 수철을 원망할 수 없었다. 그러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움츠러들고 회초리를 맞은 것처럼 등이 아팠다. 나는 왜 수철을 원망할 수 없는가? 그렇게 자문하다가 그는 신음을 내며 주저앉았다. 하나의 문장이 화살처럼 날아와 그의 가슴팍에 박혔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철의 말이 신의 말이기 때문이다. 말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은, 언제든 말해질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수철이 그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신이 된 수철이 그를 지배했다. 너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신이 된 수철이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생각을 묶고 행동을 통제했다. 수철의 통치 아래 들어간 그는 더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가령 지방신문에 실린 그의 인터뷰를 본 사람들이 옳은 말을 했다고 추켜세우거나 동감을 표시하거나 조언을 구할 때마다 김승종은 그 목소리를 들었고, 그럴 때마다 거북해했고, 낯을 붉혔고, 어쩔 줄 몰라했다. 사람들은 그가 겸손해서 그런다고 생각했지만, 겸손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들은 겸손과는 상관없는 요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방송출연 요청이 있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응할 수 없었다. 월간지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역시 응하지 않았다. 응할 수 없었다. “성명서에 있는 내용대로 말한 것뿐이에요. 특별한 이야기 한 거 아니에요. 사실 난 그 성명서를 작성한 사람도 아니고요.” 그렇게 변명하고 전화를 끊은 게 여러번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내면의 혼란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했고, 그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려 했고, 심지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실어주었다. 그럴수록 그의 자괴감은 깊어갔다. 같은 학교의 교수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아무 말 하지 않는데도 혼자 의로운 척한다고 비난하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을 해놓고 혼자 용기있는 척하다니, 꼴사납네…… 어린 시절부터 그를 보아온 친척들이나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너는 뭐 얼마나 깨끗하냐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힘들었다. 네가 어떤 놈인지 아는데, 갑자기 정의의 사도인 양 하다니, 낯도 두껍지…… “너는 떳떳해?” 그것은 곧 수철의 목소리로 치환되어 들렸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네 떳떳하지 않은 행동들이 알려지길 바래?” 그것은 곧 신의 음성이 되어 그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떳떳하지 않은 그의 크고 작은 허물들이 툭툭 하나씩 떠올랐는데, 그는 그것이 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들은 거의 대부분 그가 떠올려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고, 설핏 떠올랐다 하더라도 죄책감을 느끼게 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들은 허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죄책감을 유발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위선자였고 거짓말쟁이였고 속이는 자였고, 음란한 자였고 사기꾼이었다. 그는 정직하지 않았고 교만했고 게을렀고 음흉했다. 그는 떳떳하지 않았고, 떳떳하지 않은 자기 행동들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처형되는 악몽을 여러번 꾸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피하게 되었다. 수업하러 학교에 가는 것 말고 거의 항상 집에서 지냈다. 그러나 ‘M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NGO연합이 추진한 시청 항의방문을 피할 명분이 없었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보려 했지만 마땅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M미래포럼의 부대표인 그의 불출석을 용인하려 하지 않았다. 부재중인 대표를 대신해야 할 부대표가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것도 인터뷰를 통해 강경한 의견을 피력해놓은 마당에 그런다는 것은 누구의 이해도 끌어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소속단체 회원들도 그의 소극적인 태도를 나무라며 참석을 종용했다. 대놓고 직접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기회주의자나 겁쟁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그렇다고 그를 따라다니며 자책하고 괴롭히는 신의 목소리를 들먹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틈새에서, 그러니까 그의 의식 속에서 현실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현실이었지만 그의 의식 밖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자기의 의식 속 현실을 그 사람의 의식에 이식시켜야 했다. 그것은 어긋난 두 차원을 일치시키는 과정과 같아서 용이하지 않았고, 그에게는 그럴 기력이 없었다. 그는 외국에 출장 간 사람이 자기가 아닌 것을 아쉬워했다. 감기몸살에 걸리지도 않고, 학회나 강의 일정도 없는 걸 안타까워했다.
시장은 항의방문단을 피하지 않고 예의를 다해 맞았다. 김승종은 그런 시장이 못마땅했다. 그는 시장이 자기들을 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피하고 싶을 거라고 추측했고, 피할 거라고 예상했고, 내심 피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맞닥뜨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시장 입장에서 보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을 것이다. 피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고 피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원한다’고 쓴 피켓과 의혹과 비난의 눈초리가 만들어낸 팽팽한 긴장 속에서 시장은 사과했고 신속하고 공정한 사후처리를 약속했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다짐했고 ‘M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정참여를 보장했다. 법에 따라 책임질 일이 있으면 지겠다는 말은 했지만 시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스스로, 즉각, 어떤 단서도 달지 않고 물러나는 것이 이 사태에 대한 책임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항의방문단의 요구를 충족시킬 말은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예의를 지켜 묻고 대답하던 자리가 차츰 과열되는가 싶더니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상황으로 변했다. 시장은 그다지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벌건 얼굴을 하고 앉아 항의자들의 다그침을 힘들게 견뎌내고 있던 그는 누군가, 당신은 살인자야! 하고 고함을 치는 순간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주제를 모르고 날뛰네. 당신들이 무슨 심판관이라도 되는 줄 아나본데, 웃기지 마라. 당신들이 하는 일이 뭐야? 의혹 만들어내고, 문제 부풀리고, 시비 걸고 방해하고, 그래서 잇속 챙기고…… 기생충 같은 것들, 당신들이 뭐 그렇게 정의로운데? 뭐 그렇게 깨끗하고 떳떳한데?” 더이상 대화는 불가능했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몇 사람이 탁자를 치며 일어나 시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쪽에서, 기생충이라고? 당장 사과해, 하고 소리치고 저쪽에서 살인자라니, 어따 대고, 하고 소리쳤다. 소리들이 맞부딪치고 급기야 몸이 부딪쳤다. 배석했던 시청 공무원들이 막아섰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시장을 회의장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공무원들이 빠져나간 시청 회의실은 한목소리로 시장을 성토하는 자리가 되었다. 다들 시장의 무례와 오만을 묵과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일과시간이 끝날 때까지 회의실 복도에 모여앉아 ‘비리 부도덕 무책임 막말 시장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몇차례 회의가 있었다. 누군가의 휴대폰 녹음장치를 통해 녹음된 시장의 막말이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되었다. 시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운동이 결의되고, 실행되었다. 청사 앞에 천막을 치고 릴레이 단식농성에 들어가자는 논의가 있었고, 논의대로 실행되었다. 시청 앞에서의 단체별 시위 일정이 짜였고, 일정대로 이루어졌다. 이견은 없었다.
이견이 없었다고? 김승종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날 시청 회의실에 김승종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현실 속에 있지 않았다는 것도.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심정적인 동조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그 회의실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지만, 동시에 그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과 다른 현실 속에 있었다. 그런데 이견이 없었다니. 마치 그 자리에 그가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단정해서 말해도 되는가? 물론 그러면 안된다. 그는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있는 그를 보기를 원한다. 회의실만이 아니라 그의 현실도 보기를 원한다. 어떤 점에서는 그의 현실을 더 원한다.
시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생충 같은 것들, 어쩌고 항의방문단을 향해 막말을 하는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그때 김승종이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 “기생충 같은 것들. 당신들이 뭐 그렇게 정의로운데? 뭐 그렇게 깨끗하고 떳떳한데?” 그것은 그 무렵 그가 자주 듣던 말이었다. 그의 내면에서 되풀이 울리던 그 말을 그는 은연중에 신의 말로 이해해왔다. 그 말이 그의 내면을 은밀하고 조용하게 채울 때 그는 그 단어들이 발음되는 순간의 음성기관을 상정(想定)했다. 그의 음성기관을 통해 그 말을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신은 말했고 그는 들었다. 그런데 그 신은 그 말을 그의 음성기관을 이용해 말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신의 말이었고 또 그의 목소리였다. 신의 말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목소리에 담긴 말이었다. 그가 그것을 신의 말로 이해하지 않으면서 믿는 척 기만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그는 전적으로 신의 말이라는 걸 믿었지만 동시에 그 신의 말이 자기 목소리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상기함으로써 설명하기 힘든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까? 달이 태양빛을 받아 빛을 반사한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도 인류는 달빛을 달빛이라고 부른다. 달의 표면을 통해 전달된 태양빛은 햇빛이 아니라 달빛이다. 달의 표면에 반사된 태양빛은 순화되고 부드러워진다. 자기 내면에서 자기 음성기관에 담겨 발화된 신의 말은 감당할 만했다고 첨언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회의실에서 그가 들은 것은 그의 음성기관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 담겨 순화되고 부드러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외부에서 그를 향해 토해진, 엄청나게 크고 말할 수 없이 무서운 목소리를 들었다. 폭포가 쏟아지는 것 같고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그 소리를 그는, 왜 그랬을까, 자기를 향해 직접 토해진 말로 들었다. 그의 몸은 딱딱해졌고 입은 얼어붙었다. 그는 꼼짝도 하지 못했고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다. 김교수, 무슨 말을 좀 해봐요, 이게 말이 돼요? 하고 다그치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시장의 사과를 받기 전에는 이 방에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고 흥분해서 내지르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주먹으로 탁자를 치는 소리와 거칠게 서류를 넘기는 소리와 딱딱한 바닥을 두드리는 구둣발 소리와 뜻을 파악할 수 없는 소음들이 웅웅거리며 귓속을 돌아다녔다. 소리들은 또렷해졌다가 어렴풋해지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사건의 현장 깊숙이 들어간 것 같다가 현장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되풀이 오갔다. 눈을 감았다는 의식이 없는데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눈을 감았다는 감각이 없는데 보이는 것이 없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네, 어디 안 좋아요? 하는 목소리는 그의 몸 안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득히 먼 데서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얼마 후 누군가의 등에 업혀 회의실을 벗어날 때까지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링거를 맞으며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여러 사람이 김승종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전화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화벨이 혼자 울리다가 말았고, 나중에는 전화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전화벨이 혼자 울리다가 말았다. 의사는 그의 몸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김승종은 그의 몸에서 이상징후가 발견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는 영양제와 충분한 수면을 처방했다. 링거액의 주입이 끝나고 잠에서 깨어난 그를 병실에 더 잡아둘 이유를 확보하지 못했으므로 의사는 퇴원을 권했다. 긴장하지 말고 좀 쉬세요, 이상이 있으면 다시 오시구요,라는 말을 했지만 이상이 있어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어투는 아니었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김승종은 시장의 막말발언을 보도하는 라디오뉴스를 들었고, 육두문자를 써가며 시장을 욕하는 택시기사의 막말을 들었다.
여러군데서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문자메시지까지 읽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의 몸상태를 걱정하는 몇건의 문자들 사이에 인터뷰를 요청하는 언론사의 메시지와 향후대책 논의가 필요하니 연락 달라는 M미래포럼 임원의 메시지가 섞여 있었다. ‘M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름으로 발표할 시장 퇴진촉구 성명서의 초안도 있었고, 다른 내용 없이, 연락 바랍니다,라고만 보낸 문자도 여러건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건성으로 읽고 밀쳐두었다.
택시에서 내린 다음에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거리를 걸어다녔다. 생각이 뭉쳐 있을 때면 두 발에 자기를 맡기고 무작정 걷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뭉친 생각들이 풀리기도 하고 풀렸다가 뒤엉키기도 했다. 엉켰다가 다시 뭉치기도 했지만 풀리기 전과 같은 상태로 뭉치는 법은 없었다. 항상은 아니지만 그는 자주 그의 두 발이 그의 뇌보다 더 판단을 잘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실제로 그는 걷다가 막힌 논문의 방향을 뚫기도 하고 결정을 못해 망설이고 있던 문제를 풀기도 했다. 근육의 역동성에 대한 그의 신뢰는 무의식적이었다. 걷기를 관장하는 근육은 인과관계의 복잡한 회로를 따라 차근차근 답에 접근하는 대신 특유의 추진력과 순발력으로 회로를 관통해 답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그 순간에 김승종이 지갑 속에서 며칠 전 받은 수철의 명함을 찾아 꺼낸 것은 근육의 역동성이 순발력있게 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뭉쳐 있는 생각이 수철로부터 비롯했다는 사실을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수철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일이 수철을 만나고 난 후 아무렇지 않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수철을 통과해야 한다는 걸 벌써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그를 괴롭히는 신의 말은 수철의 신의 말이었다. 수철은 그의 신에게 하소연하고 따졌다고 했다. 그는 수철에게 하소연하고 따져야 했다. 왜냐하면 수철이 그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수철은 마치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줄 알았다는 듯 목소리가 덤덤했다. 김승종이 다짜고짜, 너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겠다, 죽을 것 같다, 하고 말했는데도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죽으면 안되지. 죽으면 안된다.” 그것이 수철의 말이었다. 걸음을 옮기면서 김승종은, 그래, 제발 나 좀 살려주라, 하고 외쳤다. 그의 걸음은 자기도 모르게 빨라졌다. 그의 말도 덩달아 빨라졌다. 그의 입에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그는 난방장치가 고장 난 방 이야기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격정적으로 커졌고 가끔 신음이 섞여들었다. “너는 그렇게 떳떳해? 그렇게 깨끗해? 이 목소리가 나를 꼼짝 못하게 한다. 나는 너에게 붙들린 수인처럼 되었다……” 그는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대해 말하고 시장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아찔한 경험에 대해 말했다. 전화기 저편은 조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승종이 쉴 새 없이 몰아쳐 상대방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왜 나를 추궁하지 않았니? 하고 물어놓고 마침내 김승종은 두 발을 멈춰 세웠다. 전력질주를 하고 난 것처럼 숨이 가빴다.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너는 추궁받았지 않나? 그런 것 같은데.” 수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그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그러니까 네가 듣고 있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인지 궁금한 거지? 하고 물었다. 수철은 정확하게 핵심을 찌름으로써 김승종의 입을 막았다. 그는 숨을 고르고 귀를 곤두세웠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왜 이러느냐고 따지는 내게 하나님이 내가 범한 수많은 잘못들을 떠오르게 해서 나를 부끄럽게 했다고 했지? 그땐 정말 땅이라도 파고 숨고만 싶더라. 나는 억울하다고 호소할 자격이 없는 놈이더라.” 김승종은 마음이 급해졌다. 상대방의 약간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재촉하듯 그게 다야? 하고 물었다. “그게 다라면 못 살았겠지. 그런 상태로 어떻게 살겠어, 사람이.” 그러니까, 하고 동의하면서 김승종은 다시금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았느냐고? 너의 신이 너를 어떻게 살렸느냐고? 그는 속으로 재촉했다. 수철은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그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서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다른 말 들은 게 있다, 하고 수철이 말을 이었다. 김승종은 자기가 수철에게 전화한 것이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뛰다시피 걸었다. 바람이 쉬쉬 소리를 내며 스쳐갔다. “오래전에 먹은 신포도가 지금의 이를 시게 하지 않는다. 지금의 이를 시게 하는 것은 방금 먹은 신포도다. 나를 살린 말이야, 이게.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이것을 저것으로 대체할 수 없고 저것으로 이것을 덮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건, 네가 먼저 들었다는 말과 다르잖아, 너의 신은 너의 감춰진 허물들을 보여줌으로써 너를 침묵하게 만들었다고 했잖아, 하고 질문할 때 김승종은 이미 어떤 목소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내면에서 그의 음성기관에 담겨 발화될 준비를 마친 말이었다. 그러므로 딱히 수철에게 대답을 요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말이 외부에서, 그를 향해, 직접, 들려지기를 바랐다. 그가 듣기를 바란 것은 신의 목소리였다. “하나님의 말을 하나님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이상한가? 그런데 하나님의 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한 말이 하나님의 말이라는 게 깨달아지는 거야. 하나님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분의 말도 살아서 움직인다고 할까?” 김승종은 다짐을 받듯 간절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물었다. “그 말이 신의 말이라고 확신할 수 있냐?” 약간의 침묵 후 수철이 대답했다. “너도 참. 그것이 하나님의 말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말을 한 사람이 하나님인지가 중요한 거 아니야?” 그 순간에 수철은, 김승종에게 신이었다. 그는 신의 말을 들었다고 확신했다.
시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민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청사 앞에 천막을 치고 릴레이 단식농성을 하고, 시청 앞에서 단체별로 시위를 하는 일련의 과정에 김승종은 이견 없이 참여했다. 김승종은 누구보다, 그리고 그전보다 적극적이었다. 반성도 책임질 의지도 없는 오만방자한 시장에게 화가 난 M시 시민들 이만천명이 시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서명하는 데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만천명은 시 전체 인구의 9분의 1이었고, 성인 인구의 5분의 1이었다. 궁지에 몰린 시장은 사법부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