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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지돈 鄭智敦
1983년 대구 출생.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hier910@gmail.com
창백한 말
1
장이 모스끄바에 도착한 날은 1월 2일이다. 장은 비행 동안 책을 읽거나 잠을 잤다. 화물로 보내지 않은 그의 숄더백에는 세권의 책이 있었다. 『러시아 미술사』와 발터 벤야민의 『모스끄바 일기』, 보리스 사빈꼬프의 『창백한 말』. 떠나기 하루 전 만난 장은 모스끄바에 가면 미술관에 갈 거라고 했다. 그의 손에는 『러시아 미술사』가 들려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쳐 여러 도판을 보여줬다. 브루벨의 「악마」와 로드첸꼬의 「순수한 빨강, 순수한 노랑, 순수한 파랑」 등이었다.
나는 로드첸꼬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로드첸꼬의 그림은 백년 전의 것이라기엔 너무 현대적이었다. 현대란 현재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이나 시대를 지칭하는 거라고 장이 말했다. 그는 현대는 시간이 아닌, 인물이나 작품으로 오는 거라고 다시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전혀 현대적이지 않다고 했다. 별로 와닿지 않는 말이었으나 나는 잠자코 들었다. 그의 얘기가 이어졌다.
장은 해외여행이 처음이지만 설레지 않는다고 했다. 여행은 모스끄바에 있는 장의 여자친구인 미주의 계획이었다. 미주는 셰쁘낀이라는 연극대학의 학생으로 아담한 키에 붉게 물들인 머리,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한국에 왔을 때 두어번 봤지만 제대로 얘기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말이 없었고 고개를 땅에 처박고 있었다. 매너가 없거나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장과 미주는 모스끄바에서 일주일을 머문 후 카이로로 갈 예정이었다. 미주는 카이로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반면 장의 목적은 모스끄바였다. 정확히 말하면 모스끄바에서 책을 읽는 거였다. 여행이나 관광을 대하는 장의 태도는 냉소적이었다. 그는 돌아올 기약만을 남긴 채 사라지는 것만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말했다.
장은 모스끄바에서 일기를 쓸 거라며 검은 가죽커버의 노트를 꺼냈다. 일기의 첫장에는 이오시프 브로드스끼의 시가 적혀 있었다.
바람이 숲을 남겨두고
구름과
희디흰 고도를 밀어올리며
하늘까지 날아올랐다.
그리고, 차가운 죽음인 듯,
활엽수림은 혼자 서 있다,
따르려는 의지도,
특별한 표시도 없다.
브로드스끼는 쏘비에트 정부로부터 ‘사회에 유용하지 않은 기생충’이라는 선고를 받은 1964년에 이 시를 썼다. 63년에 이미 레닌그라드 신문으로부터 ‘형편없는 포르노그래피에 반 쏘비에트’적이라는 맹비난을 받고 정신병원으로 끌려가 유황주사를 맞고 물고문을 당한 뒤였다. 검찰은 그를 ‘벨벳 바지를 입은 한심한 유대인 포르노그래피 작가’로 기소했다. 당시 판사와 브로드스끼의 심문 내용은 방청석에 있던 한 여기자의 손에 의해 사미즈다뜨(지하출판물) 형태로 유출되었는데 이는 브로드스끼를 반체제의 전설로 만들었다. 판사가 묻는다. ‘피고는 누구의 허락을 받고 시인으로 활동하는가?’ 브로드스끼가 대답한다. ‘없다. 나를 인간으로 허락해준 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흐마또바는 멍청한 쏘비에트 정부가 그를 스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브로드스끼는 1972년 추방 이후 국제적인 명사가 되었고 8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장은 틈만 나면 브로드스끼의 일화를 인용했다. 예술가를 기생충으로 보는 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마찬가지야. 자본주의에선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사회주의에선 구충제를 먹여서 죽이려고 하지만 자본주의에선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죽거든.
2
장의 일기는 눈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모스끄바의 셰레메쩨보 공항에 내린 장이 처음 본 것은 눈이었다. “작은 눈송이들이 주황색 유도등 주위로 흩날렸다. 활주로는 밤의 바다처럼 어둡고 축축했다. 미주는 게이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 오른팔을 꽉 붙들었다.”
그들은 택시를 타고 미주의 집이 있는 브랍찌슬랍스까야로 향했다. 택시의 여린 진동이 장의 필체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도로 너머로 낮은 건물들이 보였다. 납작 엎드린 건물 위로 밤하늘이 멀리까지 드러났다.” 택시에서 내린 장이 처음 본 러시아인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스킨헤드들이었다. “눈보라가 치는데도 그들 중 몇몇은 민머리를 내놓고 있었다. 그들은 택시에서 캐리어를 내리는 우리를 지켜보았다. 검은 가죽점퍼와 회색 후드티. 낡은 청바지와 군화. 미주는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러시아인을 정면으로 보지 않는 게 안전하다고, 스킨헤드에 의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뻬레스뜨로이까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실업, 빈부격차가 러시아를 휩쓸었고 사람들은 무기력과 패배감에 휩싸였으며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극우 민족주의자가 되었다. 노인들은 스딸린과 쏘비에트를 그리워했고 젊은이들은 히틀러와 미시마 유끼오, 안드레아 바더를 영웅시했다. KGB 장교 출신인 뿌띤은 스딸린에 대한 존경을 공공연히 밝히며 유도복을 입고 칼라시니코프를 옆구리에 꼈다. 폭력은 일상이었고 외국인에 대한 혐오도 일상이었다. 뿌띤 집권 이후 500여명의 언론인이 죽어나갔다. “이 나라에선 지각있는 이들과 정신 나간 이들과 좌절한 이들이 한몸이다.”
장은 미주의 집에 있는 동안 사빈꼬프의 『창백한 말』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미주의 집은 낡은 아파트의 14층에 있었다. “좁은 엘리베이터는 끼익대며 오르내렸고 현관문은 지하벙커로 들어가는 것마냥 육중한 소리를 냈다. 높은 천장과 커다란 문, 두개의 방과 좁은 거실, 부엌, 화장실. 휑한 거실에 비해 침실인 방은 붉은색 러그와 갈색 책상, 주황색 스탠드의 조화로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장은 두개의 매트리스를 쌓아올린 미주의 침대에 누워 책을 읽거나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고 배가 고플 땐 부엌에서 씨리얼을 먹었다.
장은 단문으로 이루어진 『창백한 말』을 천천히 읽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은 필사했다. 일주일에 불과한 장의 일기가 꽤나 긴 것은 일기의 반이 『창백한 말』의 인용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제 저녁 나는 모스끄바에 도착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제 저녁 나는 모스끄바에 도착했다. 나와 같은 지붕 아래 수백명이 함께 지낸다. 나는 그들에게 타인이다. 이 돌로 된 도시에서 이방인이고, 어쩌면 세상 전체에서 이방인인지도 모른다.”
보리스 사빈꼬프는 20세기초, 러시아에서 혁명의 시간을 보낸 테러리스트이자 문필가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 유럽은 거대한 실험실이자 전쟁터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망상가와 혁명가,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 전쟁광과 우울한 암살범이 하루가 멀다 하고 테러를 일으켰다. 벨빌의 호텔 방에서 뻬쩨르부르그의 오흐라나 수장이 암살되고 스위스에서 짜르의 각료로 오인된 샤를 뮐러가 살해당했으며 레쀠블리끄 광장에서 맥시멀리즘 당원들이 위병대에게 기관총을 난사했다. 사빈꼬프는 사회혁명당 당원들과 함께 세르게이 대공 암살을 주도했다. 사빈꼬프 일당은 끄렘린을 지나는 세르게이 대공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고 대공은 마차와 함께 산산조각났다. 사빈꼬프는 이 사건으로 체포되지만 스위스로 탈출해 프랑스로 망명한다. 『창백한 말』은 망명시절 빠리에서 쓴 소설로 세르게이 대공 암살사건이 주요 배경이 된다. 그는 소설에서 묻고 또 묻는다. 테러는 정당한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빈꼬프는 쏘비에트 혁명 이후 국방차관이 되지만 볼셰비즘에 대한 증오심으로 다시 테러리스트가 된다. 1924년에 체포된 그는 감옥에서 자살한다.
『창백한 말』의 주인공인 조지 오브라이언은 암살의 주도자이자, 에르나와 옐레나라는 두 여인의 연인이다. 조지는 사빈꼬프 자신의 모습이다. 조지는 에르나와 옐레나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암살의 윤리적 정당성 사이에서도 고뇌한다. 신의 이름으로 암살의 가치를 믿는 동료 바냐에 반해 조지는 무엇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는 암살과 사랑 모두에 회의적이다. 장은 조지가, 그리고 사빈꼬프가 허무주의자라고 생각했다. 혁명 당시 사빈꼬프가 받았던 비판도 특유의 허무주의적인 시선 때문이었다. 장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허무주의자가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가. 이상이 없는 자가 어떻게 혁명가가 될 수 있는가.”
3
장은 모스끄바에 도착한 처음 사흘 동안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미주는 마지막 시험 준비로 바빠서 장과 함께 있어줄 시간이 없었다. 장은 학교에 가는 미주를 따라 나가서 붉은 광장에 들렀지만 곧 돌아왔다. 그의 눈에 백화점과 잡상인으로 뒤덮인 붉은 광장은 한심했고 바실리아 성당은 거대한 사탕처럼 보였다.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다국적기업이 휩쓸고 지나간 러시아는 장의 관심 밖이었다. 센뚜르 구경 좀 했느냐는 미주의 말에 장은 볼 게 없다고 대답했다.
미주는 장이 하는 얘기를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올리가르히니 노멘끌라뚜라니 나츠볼이니 하는 말도 몰랐고 러시아의 사상가나 혁명가, 예술가인 네차예프와 바꾸닌, 불가꼬프, 만델스땀, 따뜰린에 대해서도 몰랐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장을 시대착오적인 예술지상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20세기 초반에 경도되어 있었고 혁명에 물들어 있었다. 그는 그때의 사상과 예술, 인물을 줄줄 읊고 다녔다. 모든 게 가능해 보이던 시절,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던 세계에 대해.
2차대전과 포스트모더니즘, 이제는 신자유주의까지. 이것들이 모든 걸 망쳐버렸어. 장의 말이다.
나는 그것들이 뭘 망쳤는지 모르지만 취업이 만만치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느라 분주한 사이 장은 졸업을 미루고 일용직과 도서관을 전전했다. 장은 그게 일종의 싸보따주라고 말했다.
장의 싸보따주가 성공적이었던 것 같진 않다. 그는 틈만 나면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뭐 하나 번듯하게 해내는 게 없었다. 어느 날은 시를 썼고 어느 날은 소설을 썼으며 어느 날은 영화를 찍었다. 까페에서 보자고 해서 갔더니 넉잔의 커피를 마시고 식사 대용으로 브라우니와 크루아상까지 먹어치운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계산은 내 차지였다. 나는 운이 좋게 취직을 했고 돈도 꽤나 벌었다. 시는 읽지 않은 지 오래였고 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만 봤으며 소설은 읽을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장과 만나면 할 얘기가 없었다. 장은 대학 때 그대로였다. 그는 요즘의 예술 경향이나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했고 재스민 혁명에 대해, 월가 점거에 대해 떠들어댔다. 씨나리오 공모전에 민족볼셰비끼당에 가입한 고려인 청년의 이야기를 냈다고 했고 재스민 혁명 때 올라온 페이스북 포스팅의 댓글로 시를 썼다고 했다.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 지면으로 보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의 작품은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고 어디서도 당선되지 않았다.
장이 가장 관심있어한 주제는 이상과 허무의 관계였다. 장이 말했다. 21세기는 허무의 시대다. 그러나 가짜 허무의 시대다. 그는 진정한 이상주의자만이 진정한 허무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진정한 이상주의자도 아니었고 진정한 허무주의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진정한 주의자라는 게 진정으로 존재할 수나 있긴 한가. 그런 것에 누가 관심이나 있는가. 장은 (옛날)책과 영화를 너무 봤고 어느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보였다. 그는 심지어 소개팅에 나가거나 면접을 보러간 자리에서도 이상과 허무의 관계에 대해 말했고 아나키스트와 쏘셜리즘, 빠리꼬뮌에 대해 떠들었다. 면접관이 묻는다. ‘당신이 관심있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장이 대답한다. ‘빠리꼬뮌과 반동의 역사입니다.’ 장이 떨어진다. 소개팅녀가 묻는다. ‘평소에 뭐 하세요?’ ‘아나키즘 서적을 탐독하며 미래주의자의 시를 읽습니다.’ 소개팅녀가 침묵한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이념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장의 입장에선 헛소리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세기에 살고 있었다.” 나나 미주가 21세기에 산다면 장은 20세기 초반을 살고 있었다. 나는 장이 이런 인간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미주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장은 내게 비행기 삯을, 미주에게 여행 경비를 빌렸다. 미주는 장에게 빌려준 여행 경비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미주에게 모스끄바에 오길 잘했다고 말했다. 붉은 광장은 시시했지만 창밖의 눈은 시시하지 않다고, 모든 게 변했어도 창밖에서 내리는 눈은 사빈꼬프가 본 것과 같을 거라고 말했다. 미주가 내일은 같이 학교에 갈거니 잠이나 자라고 했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봤다. 작은 눈송이들이 창문을 쉬지 않고 두드렸다.”
4
미주가 마지막 시험을 치르는 동안 장은 셰쁘낀 안을 돌아다녔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양식의 벽과 문, 창문과 계단이 이어졌고 큰 키에 황금빛 머리의 사람들, 붉은 머리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오갔다. “푸른 벽과 커다란 샹들리에.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것들. 늙은 고성. 퇴락한 귀족이 두고 간 흔적들로 이루어진 곳.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고동색의 거대한 문틀만으로도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장의 생각과 달리 한국인 유학생들은 셰쁘낀의 낙후된 시설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학교가 오랫동안 지원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장의 생각은 이방인 특유의 낭만적인 시선에 불과하다는 거였다. 이런 말을 한 건 미주의 선배인 정태로, 그와 장은 미주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정태는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그는 장거리 연애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며 나와 미주 사이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는 미주를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은 정태를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는 “짧게 자른 머리에 산만하고 건들거리는 매너를 가진 사내로 스콜세지 영화에 나오는 조 페시”를 떠올리게 했다. 시험이 끝난 후, 장과 미주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체홉 거리에 있는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곳에서도 정태는 끊임없이 장과 미주의 관계에 대해, 장거리 연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은 “아무 짝에 쓸모없는 얘기였다”고 썼지만 정태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쁠라또노프의 단편소설 「귀향」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귀국하면 읽을 소설로 「귀향」과 『체벤구르』를 적어두었다. “쁠라또노프는 실패한 소설가다. 그도 사빈꼬프처럼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이라고 비난받았다.”
일행은 학교 기숙사로 자리를 옮겼다. 기숙사로 가는 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보드카와 안줏거리를 사기 위해 다들 마트로 들어갔을 때, 장은 홀로 남아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가벼운 눈이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했다. 땅에 닿는 순간 사라진다는 걸 알기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날아올랐다. 거리를 수놓는 눈들의 마지막 생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붉은 광장의 새 건물들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장과 미주는 새벽이 올 때까지 유학생들과 함께 있었다. 오랜 시간 대화가 오갔지만 장은 일기에 대화의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그들도 미주처럼 예술에 무지했다. 발터 벤야민도, 사빈꼬프도 모를 뿐 아니라 러시아 미술과 문학도 상식적인 수준만 알고 있었다. 뿌슈낀과 샤갈 정도. 대화의 폭이 넓어질수록 드러나기 시작한 그들의 취향—할리우드와 TV 프로그램을 선호하는—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장에게 취향의 문제는 항상 결정적이었다. 내가 장과 미주 사이에 종종 의문부호를 붙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장은 엄격하게 예술의 위계를 나누고 그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했다. 기준에 못 미친 이들과의 교류는 내부에서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내가 보기엔 미주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게다가 미주의 존재는 장에게 여러 불편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술자리 내내 견제하는 태도를 느꼈다. 어색한 대화와 과장된 친밀감.”
5
1월 6일, 장은 미주 일행과 함께 영화·연극대학인 부끼끄의 졸업공연을 보러갔다. 정태는 졸업작품의 수준이 높을 거라고 했다. 단편영화와 단막극을 주로 선보이는데 실험적이고 독특한 작품이 많다는 거였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파티가 예정돼 있었다. 미주가 장에게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러시아 영화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오타르, 뭐라고 하는 감독이었나?” 감독의 이름은 오따르 이오쎌리아니였다. 그는 러시아인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했고 장이 좋아하는 건 프랑스 영화지 러시아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장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러시아 대학생들이 만든 작품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부끼끄는 모스끄바 외곽에 있었다. 가는 동안 이제껏 봤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 이어졌다.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과 새하얀 눈밭의 공원. 작동을 멈춘 전동차가 있는 사거리. 낡고 초라한 건물과 흐린 하늘, 검은 옷의 사람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임에도 해는 무대의 커튼처럼 드리운 구름 뒤로 퇴장했다.”
부끼끄에 도착한 일행을 맞이한 건 금발의 러시아인이었다. 그는 미주에게 볼키스로 인사를 건네고 다른 이들과 가벼운 악수나 포옹을 했다. 다들 그를 알료샤라고 불렀다. 그는 미주와 절친한 사이라고 했다. 어설프지만 정확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장의 오른손을 꽉 붙잡은 알료샤는 장에 대해 많이 들었다고 했다. 반면 장은 그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알료샤는 부끼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배우와 연출을 겸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장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자신의 작품이 공연될 예정이니 “좋게, 좋게 봤으면 좋겠다”라고, 알료샤가 장에게 말했다.
교실로 사용되는 대여섯개의 방에서 영화나 연극이 상연되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방을 오가며 작품을 보았다. 저녁까지 서른편의 작품이 상연된다고 했다. 장은 미주의 안내에 따라 넓은 주랑과 복도를 오가며 작품들을 보았다.
“투란도트의 패러디 또는 이국취향의 소극: 두명의 배우, 경계가 없는 좁은 무대. 여배우는 기모노를 입고 있다. 누워 있는 그녀의 주위에 황금빛 향로, 독한 냄새의 향이 피어오르고 천장에서 내려온 엷은 천이 그녀가 흔드는 부채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거린다. 남자는 과장된 몸짓으로 좁은 무대를 오간다. 여자의 대사는 톤이 높은 흥얼거림, 비둘기의 구구거림과 같은 기이한 발성이다.”
“러시아의 시골, 트랙터를 고치는 남자에 관한 단편영화: 따르꼬프스끼나 소꾸로프 등을 떠올릴 수 없는, 평범하고 소박한.”
“체홉의 작품: 호두색 트렁크를 든 남자, 정장을 한 여인. 여러 작품의 꼴라주 또는 압축 및 재창조? 놀랍도록 생동감 넘치는 음향효과가 인상적(기차 소리, 역 안의 소음들, 바람과 나무의 속삭임).”
알료샤의 작품은 마지막에 상연되었다. 장과 미주 일행은 알료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여러개의 문과 복도, 주랑을 통과하고 계단을 내려간 뒤에야 공연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각종 목재와 합판이 널려 있었고, 낡은 피아노와 이젤, 테이블과 서랍장 따위도 눈에 띄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푸른 수염」 같은 동화에 나올 법한 거대한 문” 너머 공연장이 있었다.
문 주위에 모인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그때 알료샤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더니 뭐라고 외쳤다. 사람들 역시 웃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외쳤다. 미주는 장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관객들은 기다리는 동안 낡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그들은 부끼끄의 학생이었다. “그들의 사지는 중력에서 자유로웠고 웃음소리는 삐그덕대며 피아노를 연주했다. 잠시 후, 거대한 문이 열리더니 백발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관객들은 일순 조용해졌다. 공연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6
“흑백의 화면. 구식 자동차에 올라타는 여자와 두명의 남자. 흐린 하늘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진창 늪과 같은 땅의 곳곳을 백색으로 탈색시킨다. 바람이 부는 듯, 잎이 없는 자작나무들이 까마귀처럼 푸드덕거리고 우울한 정조의 전통음악이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아주 오랫동안 들리는 자동차 시동 소리. 황량한 들판, 오래된 농장이 있는 낡고 넓은 집에 당도하는 세명의 주인공. 끝없는 바람 소리. 초점이 잡히지 않는 흑백화면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그들의 다리와 발, 진흙과 흙탕물에 젖은 신발. 여자의 치마가 바람에 날리듯 일렁이고 남자들이 달리는 소리, 고조되는 현악기의 선율, 느리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중첩된 흑백영상들. 화면이 투사된 백색 벽. 차가운 바람이 불듯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리면 허공으로 치솟아 펄럭이는 여자의 머리칼이 보인다. 깃발처럼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검고 긴 머리칼. 잠시 후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남자의 씰루엣이 백색 벽 위로 우두커니 서 있다. 물이 고인 잿빛 대지, 허공, 정적.
순간 관객석 중앙에 앉아 있던 흰 머리칼의 배우가 일어선다. 총을 빼드는 백발의 청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 속의 남자가 쓰러지고 현악기 소리가 요란하게 치솟는다. 영상은 길 위를 천천히 흘러간다. 신음처럼 줄어드는 음악 소리. 무대로 나오는 배우들. 조명이 그들을 비춘다.”
장은 영화와 연극이 혼합된 알료샤의 공연을 상세히 묘사했다. 작품이 상연되는 동안 미주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일행 중 몇몇도 미주처럼 졸기 시작했다. 어제 밤새 과음한 탓이리라. 반면 장은 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알료샤의 작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귀를 후벼파며 커져가는 음악 소리. 조명이 번득이고 백색 벽 위로 모스끄바의 야경을 찍은 영상이 비친다. 영상의 중앙을 알료샤와 백발의 청년이 해머로 내려친다. 반복되는 그들의 망치질에 튕겨 나오는 먼지 조각들. 금이 가고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벽 뒤로 검은 구멍이 드러난다. 쿵쿵대는 음향효과가 지축을 울리듯 반복된다.”
파티에서 장과 알료샤는 미주의 도움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알료샤는 작품의 의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말로 옮겨질 수 있다면 공연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얘기.” 둘 사이에 혁명과 문학, 사빈꼬프에 대한 소소한 논쟁이 오갔다. “알료샤는 『창백한 말』이 낭만주의에 사로잡힌 삼류 연애소설에 불과하며, 사빈꼬프는 니힐리즘에 빠진 기회주의자라고 했다. 나는 사빈꼬프의 허무주의는 필연적인 거라고 했다. 알료샤는 니힐리즘에 필연은 없다고 했다. 그는 빅또르 쎄르주를 안다면 니힐 따위를 말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장은 빅또르 쎄르주가 누군지 몰랐다. 그는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빅또르 쎄르주에 대해 검색했다. 빅또르 쎄르주는 혁명기 러시아를 살았던 사상가이자 문필가다. 그는 1890년 짜르 독재에 반대해 러시아를 떠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보냈으며 1917년에는 에스빠냐에 있었고 1919년에는 볼셰비끼 혁명에 가담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으며 20년대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40년대에는 멕시코에서 살았다. 그의 삶은 투쟁, 망명, 추방, 다시 투쟁, 망명, 추방으로 반복되었다. 쑤전 쏜택은 쎄르주가 떠돌아다니는 투사이며 엄청난 재능과 부지런함을 지닌 작가라고 썼다. ‘쎄르주의 회고록을 읽다보면 오늘날에는 무척 낯설게 여겨지는, 내적 성찰의 힘이나 열정적인 지적 추구, 자기희생의 코드와 무한한 희망 같은 것으로 가득한 시대로 돌아가게 된다.’ 장은 밤새 쎄르주에 대해 찾고 관련된 글을 읽었으며 일기에 쎄르주의 글을 옮겨 적었다. “결국,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진실을 추구할 때 있을 수 있는 끔찍한 일은, 진실을 아는 것이다.”
알료샤는 장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이틀 뒤에 다시 만났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일기를 읽으며 장과 알료샤의 대화를 상상했다. 그들은 모스끄바의 조용한 까페에 자리잡을 것이다. 잿빛 하늘에서 내린 눈이 창밖을 거닌다. 치익 하는 스팀 소리만 반복적으로 울리는 까페에서 그들은 사빈꼬프와 쎄르주에 대해,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한 세기 전의 혁명가들에 대해 길고 긴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나나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제는 사라진 지난 세기의 이상에 대해서. 나는 그들의 대화가 까페 안의 정적을 몰아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스팀의 온기처럼 까페 안을 가득 채울 그들의 대화를.
7
7일 오후, 장과 미주는 뜨레찌야꼬프 미술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밤새 내린 눈으로 거리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장과 미주는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장은 집에 있고 싶었지만 오늘이 아니면 미술관에 갈 기회가 없었기에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인적이 드문 길 위에 그들의 발자국만이 “낮은 소리와 함께 흔적을 남겼다.”
모스끄바에서 대학을 다닌 3년 동안, 미주는 한번도 미술관에 가지 않았다. 미술은 미주에게 “겪어보지 못한 동물” 같은 거였다. 존재하지만 볼 일도, 보고 싶지도 않은 그런 것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뜨레찌야꼬프가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이라는 장의 말에,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했다.
“눈이 내리는 센뚜르의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미주는 고집을 부렸다. 이틀 후면 모스끄바를 떠날 터인데 이렇게라도 거리 풍경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건 미주의 진심이 아니었다. 그녀가 뜨레찌야꼬프라며 당도한 곳은 오래된 기차박물관이었다.”
미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뜨레찌야꼬프 역으로 가자는 장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같은 센뚜르 내이기 때문에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거였다. “여기서 지척이야.” 미주가 말했다. 그녀는 기차박물관 앞에서 알료샤에게, 정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고 뜨레찌야코프의 위치가 어디인지 물었다.
“미주가 말했다. 걸어서 가는 게 좋다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러자고 했다. 하늘은 어느새 거뭇해져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해서인지, 먹구름 때문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잿빛 대기. 모스끄바는 항상 저녁이었다.”
그들은 해가 완전히 지고 난 후에야 뜨레찌야꼬프 앞에 당도했다. 그러나 들어가진 못했다. 오후 여섯시가 넘어 입장시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경비원과 얘기를 나눈 미주는 더듬거리며 그 사실을 말했다. 나는 멀리 뻗어 있는 길의 끝을 보았다. 가로등이 주황색 빛을 흩뿌렸고 반질거리는 대리석 건물들이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작은 새처럼 천천히 내려앉는 눈. 나는 미주에게 말했다. 눈이 내린다고. 이 추운 날씨에 얼마나 걸었는지 아느냐고. 미안해. 미주가 대답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본 적도 없는 미술관을 왜 안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미주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알료샤에게 전화가 왔다.”
알료샤는 뒤늦게야 뜨레찌야꼬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미주는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었고 미주는 때때로 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출입이 통제된 뜨레찌야꼬프 앞에서 “차가운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가 통화하는 동안 우두커니 서서 눈을 맞았다. 뜨레찌야꼬프의 거대한 동상이 보였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미주가 전화를 끊고 난 뒤 나는 말했다. 알료샤와 무슨 사이냐고. 미주는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다시 말했다. 알료샤와 무슨 사이냐고, 바른대로 말하라고. 미주는 친구라고 했다. 의심하는 거냐며 미술관을 못 찾은 건 미안하지만 갑자기 왜 이러느냐고 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또 말했다. 모든 게 마음에 안 든다고, 너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느냐고. 바보같이 미술관 하나도 못 찾고, 히히덕거리며 놀려고 모스끄바에 왔느냐고 말이다. 미주는 굳은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몸을 돌려 걸어갔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으며 말했다. 모스끄바에서 내가 한 게 뭐냐고. 단지 미술관에 가고 싶었을 뿐인데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느냐고. 내가 있는 동안 니가 해준 게 뭐냐, 넌 학교 동기들과 노느라 정신없었지 않냐, 그 멍청한 애들하고 말이다. 미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걸었다. 나는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질질 끌며 그녀에게 악다구니를 썼다. 눈은 왜 이렇게 내리느냐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 이런 삭막한 곳에 왜 나를 불렀느냐고. 나는 너 때문에 온 거라고 소리를 질렀다. 미주는 돌아보지 않았다. 바람에 휩쓸린 눈들이 내 말을 치고 지나갔다.”
둘의 싸움은 여행 자체에 관한 것으로 번졌다. 장은 카이로 따윈 가고 싶지 않다고 했고 미주는 그럼 가지 말라고, 어차피 자기 돈으로 가는 거 아니냐고 따졌다. 둘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싸웠고, 집 앞에서도 싸웠다. 싸우는 와중에 장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왜 화를 내는 걸까. 미술관에 못 가서? 미주를 믿지 못해서?”
집에 돌아온 둘은 더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장은 『창백한 말』을 다시 읽고 일기를 썼다. 몸에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열이 났다. 다음날 오후까지 장은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8
『창백한 말』의 주인공 조지 오브라이언은 대공 암살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 댓가로 동료인 표도르와 바냐, 에르나를 잃는다. 공허함에 사로잡힌 그는 연인이자 유부녀인 옐레나의 남편을 살해한다. 그러나 “내가 쏜 끔찍한 총탄이 사랑을 태워버린” 듯 옐레나에 대한 사랑도 잃는다. 그는 홀로 모스끄바를 떠나 뻬쩨르부르그에 이르러 생각한다. “어제는 오늘과 같고, 오늘은 내일과 같다. 똑같은 우윳빛 안개이고, 똑같은 잿빛 평일이다. 사랑도 똑같고, 죽음도 똑같다.”
장은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8일 오전, 그가 침대에서 꼼짝 않고 있는 동안 미주는 마트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두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장은 그동안 일기를 썼다. “다시 저녁이 찾아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눈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와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창백한 말』의 역자는 조지가 자살했다고 적었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조지의 자살 여부는 불명확하다. 조지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나는 혼자다. 나는 지루한 인형극을 떠난다. 모든 것은 헛수고이고 모두 거짓이다.” 사빈꼬프의 죽음 역시 조지처럼 불명확하다. 공식적인 기록에는 그가 루비안까의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고 나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기록일 뿐이다. 솔제니찐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OGPU(연방국가정치보안부)가 사빈꼬프를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죽어간 정치범이 흔했고 장은 사빈꼬프 역시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들 모두 자살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대에 의해 살해당했다.”
장이 마지막 일기를 쓰는 동안 미주는 알료샤와 함께 아파트 근처의 까페에 있었다. 예정된 만남은 아니었다. 마트에 있던 미주에게 알료샤가 연락을 해 갑작스레 만나게 된 거였다. 장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는 미주의 방에서 작품 구상에 빠져 있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눈은 닿기 무섭게 사라지지만 모두 눈을 기억한다. 그는 어둠을 틈타 도망칠 것이다. 눈이 그의 발자국을 덮어주고 해를 가려주었다. 땅 위에서의 마지막 저녁이 지나간다.”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이 문장들이 어떤 작품이 될지도 알 수 없다. 장은 귀국하면 소설을 쓸 생각이라고 썼다. 일기에는 사빈꼬프와 쎄르주, 혁명, 눈, 반동과 구치소, 게페우 등의 단어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장은 일기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새하얀 눈밭에 당겨진 불꽃처럼, 문장들이 활활 타올랐다.”
알료샤와 미주는 서너시간가량 까페에 있은 후 밖으로 나왔다. 알료샤는 장을 보고 싶어했으나 미주는 장이 피로하니 다음에 보라고 했다. 알료샤는 기회가 닿으면 자신이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 미주는 알료샤를 배웅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서성이는 장을 볼 수 있었다. 장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장은 그들에게 다짜고짜 화를 냈다. 열꽃이 피어 불그레한 장의 얼굴 위로 허연 입김이 풀풀 날렸다. 그때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장의 열띤 목소리에 따라 눈송이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장이 고꾸라질 때 미주는 우지끈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장의 왼쪽 얼굴이 눈 속에 파묻혔다. 장은 브랍찌슬랍스까야의 지하철역 앞에서 죽었다. 응급차가 왔지만 그때는 이미 호흡이 끊긴 뒤였다. 사인은 흉기에 의한 두부손상이었다. 장은 모스끄바의 지하철역 앞에서 죽었다. 아무도 상상치 못한 곳에서. 그가 흘린 피는 흰눈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그 피는 쉬지 않고 내리는 눈 아래 다시 새하얗게 덮였다.
미주는 장과 알료샤가 지하철역 앞에서 가벼운 몸싸움을 했다고 말했다. 둘의 싸움은 전혀 거칠지 않았다. 팔을 잡거나 뿌리치는 정도의 사소한 싸움이었다. 그러던 그들 곁으로 스킨헤드 무리가 다가왔다.
스킨헤드들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주와 알료샤는 즉각 위험을 감지했다. 그러나 장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했으나 그 위험이 어떤 종류의 위험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장은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는 코앞까지 다가온 스킨헤드 무리에게 영어로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미주가 장을 말렸다. 알료샤 역시 장을 말렸다. 눈이 계속해서 내리는 1월 8일 오후 다섯시경이었다. 스킨헤드의 리더로 보이는 이가 알료샤에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알료샤는 너희가 도와줄 일이 아니며,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미주 역시 우리는 다들 친밀한 사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킨헤드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모두 다섯이었고 어느새 장 일행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미 해는 진 뒤였다. 눈보라가 일어날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우리가 처리해주겠다. 스킨헤드의 리더가 말했다. 여기 처리할 문제는 없다, 우리는 각자 집에 돌아갈 것이다. 알료샤가 그들에게 말했다. 이 남자와 나는 친밀한 사이다. 그는 나의 동료다. 알료샤는 거듭해서 말했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흘기며 지나갔다. 미주는 몸을 떨었다.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때 장이 말했다. 나치. 모두 그를 보았다. 장은 스킨헤드들에게 또 한번 나치라고 말했다. 장을 보는 알료샤와 미주의 표정이 얼음처럼 굳었다. 반면 스킨헤드들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미주가 장에게 말했다. 그들은 이런 일을 즐긴다고. 장이 다시 한번 말했다. 나치.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