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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신예소설가특선
정영수 鄭映秀
1983년 서울 출생. 2014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apedoors@gmail.com
애호가들
진행 중인 강의만 모두 끝내면 더이상 강사 일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몇년 전부터 이 일이 내게 맞지 않는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접속법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세시간 동안 중세 스페인어에 대해 떠들어대는 일이나, 한 학기에 책 한권 거들떠보지 않는 아이들에게 로뻬 데 베가의 희곡에 대해 설명하는 일, 형편없는 수준에 성의까지 없는 레포트에 점수를 매기는 일이나 성적입력 기간이면 밀려오는 억지투성이 메일에 일일이 대꾸해줘야 하는 일 등 모든 것에 진력이 났다.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한다면 그건 혹시 언젠가 교수가 될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일 텐데, 요즘은 그에 대한 의욕조차 시들해진 게 월급 좀더 받고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만 제외하면 교수라고 해도 하는 일은 시간강사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지긋지긋한 일들을 평생 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차라리 번역이 멍청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보람 있는 일이었다. 몇년간 부업 삼아 스페인 문학을 번역해온 결과 나는 그 작업이 다른 어떤 일보다 내게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내 번역은 꽤 훌륭한 편이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담당 편집자도 그렇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적어도 로뻬 데 베가의 작품만큼은 나보다 더 잘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나라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하나 세웠는데 조만간 지긋지긋한 강사 일을 때려치우고 스페인으로 날아가, 이를테면 그라나다 같은 곳에 볕이 잘 드는 2층 아파트를 구해 창 너머로 생기 넘치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번역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오래된 도시를 산책하고 까페에 들러 에스쁘레소를 한잔 마신 다음 열린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책상에 앉아 베가의 희곡을 천천히, 하루에 스무쪽 정도씩 번역하는 삶은 꽤 멋지지 않은가. 평생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일년 정도, 운이 좋다면 이년 정도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 계획이 곧 현실로 다가올 조짐이 보였다. 얼마 전 편집자와 저녁을 먹는 도중에 그가 자그마치 천이백면에 달하는 로뻬 데 베가의 희곡 선집을 준비 중이며 역자를 물색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나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넌지시 운을 띄운 것이다. 그렇게 상세하게 기획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은 이 바닥의 법칙으로 봤을 때 계약서만 안 썼다 뿐이지 사실상 내게 의뢰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나는 겉으로는 그런가요, 하고 말았지만 실은 당장 일어나 뜀박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작업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일년은 걸릴 것이었고 연이어 다른 작업을 시작한다면 이년까지 그라나다에 머무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넌더리나는 학생들과도 영영 안녕이었다. 내 머릿속엔 오로지 로뻬 데 베가와 그라나다의 볕이 잘 드는 2층 아파트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영한이 교수 자리를 꿰찼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근대 스페인 문학의 이해’ 수업 종강모임에서 들었다. 내가 진행한 수업은 아니었지만 우리 학과에는 각 학기의 마지막 수업 뒤풀이에 강사들이 모두 참석하는 전통 비슷한 게 있었기 때문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오영한과, 타학교 출신으로 이번 학기부터 수업을 하게 된 새로 온 강사 그리고 석사과정 중인 조현수가 있었다. 그외에 다섯명 정도 더 있었지만 내가 아는 얼굴은 그 정도였다. 일부러 조금 늦게 가려고는 했는데 너무 늦었는지 벌써 몇명 정도는 집에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술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분위기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가 지나치게 오영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새로 온 강사에게 내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조금 호들갑을 떠는 말투로 오영한의 조교수 임용 사실을 말해주었다. 아직 정식으로 발표는 안했지만 사실상 결정은 됐고 다음 학기부터는 지도학생까지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 소식을 듣고 놀라지도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무리 이 나라 인문대학이 사대주의에 찌들어 유학파라면 깜빡 죽는다고 해도 아직 서른다섯도 되지 않은데다 강의를 시작한 지는 삼년도 채 안된 햇병아리가 교수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더욱 가관이었다. 학생 서넛이 오영한 주위에 둘러앉아 눈을 빛내며 그 인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꼼꼼하게 추임새를 넣어주고 있었는데 특히 조현수가 제일 신난 것 같았다. 그놈이 내 수업을 세학기 연속으로 들었을 뿐 아니라(거기다 그중 하나는 청강이었다) 종종 진로나 연애에 대한 상담도 요청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쓴 평론을 보여주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번 학기에는 안 보인다 했더니 오영한의 수업을 들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듣긴 들었으니 오영한에게 다가가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이게 뭐 축하할 일인가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무슨 소리야 교수 못 돼서 안달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는데 말을 하고 보니 내가 꼭 그 교수 못 돼서 안달인 사람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정하겠답시고 한마디 더 했다가 오히려 괜한 오해나 살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어쨌든 오영한이 그렇게 겸손하게 나오니 더 보탤 말이 없어서 나는 머쓱해진 채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그다음부터는 맥주나 마시는 것밖에는 더 할 일이 없었다. 새로 온 강사와 이야기를 좀 나누긴 했는데 관심사도 잘 안 맞고 해서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유머감각이 부족하고 무슨 말을 해도 쓸데없이 긍정적인 방향으로(그럴 수도 있죠, 다 잘될 거예요, 요즘 다들 힘들죠 뭐,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은 겁니다, 하는 식의)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점점 대화가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맥주 한잔 마시고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나 귀를 기울이다가 다시 한잔 마시고 하며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2차까지 따라가게 되었는데 그때쯤 되니 다들 취해 있었다. 특히 조현수가 제일 많이 취한 것 같았다. 난데없이 주먹을 휘두르며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자신의 문학관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보르헤스가 어떻다느니 옥따비오 빠스가 어떻다느니 하더니 이어서 제삼세계의 향취가 나는 작가들의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는데(알베르또 푸겟이니 오라시오 끼로가니…… 기억도 잘 안 난다) 평소 대화를 나눠본 바로 나는 그놈이 그들의 작품보다는 그저 발음하기 어렵고 어딘지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들을 들먹이는 걸 좋아할 뿐이라는 데 전 재산도 걸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보니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조현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놈의 수다에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인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나도 그때는 꽤 취한 상태였고 피곤하기도 해서 별말을 하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새로 온 강사가(이름이 뭐였더라?) 긴 시간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는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었는지 오영한의 교수 임용을 축하하자면서 1차 때 수도 없이 되풀이했던 무의미한 건배 제의를 또다시 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내 이름을 들먹이면서 다음은 선생님 차례입니다,였다. 갑자기 나한테 시선이 집중되었고 나는 다른 계획이 있다고 아까 그 선생과 대화할 때 이미 말했음에도 그따위 소리를 하는 저의가 궁금했지만 학생들 보는 눈도 있고 해서 적당히 넘어가려 했는데 그때 조현수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내게 분발하셔야겠네요 선생님, 하고 말한 것이다. 거기에는 명백히 조롱의 기색이 묻어 있었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불현듯 끝간 데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다음에 내가 한 행동은 나 자신도 놀랄 만한 것이었다. 그에게 거의 욕설에 가까운 거친 말들을 퍼부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의 무례한 언사를 지적했고 진실하지 못한 태도를 비난했으며 조악한 현실인식을 까발렸다. 그러니까 나는 그가 오로지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작가들의 이름을 늘어놓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했고 덧붙여서 지금까지 내게 제출한 그의 레포트들이 얼마나 거지 같았는지, 나아가 그가 썼다고 내게 보여준 평론은 또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그것을 읽을 때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하는 얘기를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그러는 동안 조현수는 얼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점점 감정이 고조되었고 나중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아무 말이나 마구 쏟아냈다. 한참을 쉬지 않고 말했더니 발음이 꼬이고 숨이 찰 지경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쏟아내고는 자리에 앉아 다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그다음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전화가 여섯통이나 와 있었다. 두통은 출판사에서 온 것이었고 나머지 네통은 은영에게서 온 것이었다. 웬일로 이른 아침부터 전화들인가 싶어서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 여기저기가 쑤신 걸 보니 간밤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퍼마신 듯했다. 실내는 후텁지근했고 온몸이 땀에 젖어 끈적거렸다. 커튼을 쳐두어서 빛이 방 안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창밖에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는 모양이었다. 문자메시지도 두개 와 있었는데 내용은 ‘어디야? 왜 전화 안 받아?’와 ‘제정신이야? 문자 보면 바로 전화해’였고 모두 은영이 보낸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점심에 그녀와 만나기로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약속은 아니었고 그녀가 내 가죽소파가 너무 낡았다고 해서 같이 새 소파를 사러 가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내 소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다 그런 데에 돈을 쓰는 것도 아까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고집을 피웠다. 소파에서 나는 오래된 인조가죽 냄새를 견딜 수가 없단다. 이렇게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어떻게 거기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무언가 냄새가 나긴 했다. 그러나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라나다에 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은영이었다. 아직 그녀에게는 그 계획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가지 말라고 할 것이고 어쩌면(이것이 더 나쁜 경우인데) 같이 가겠다고 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벌써 반년 전부터 자극 없는 지지부진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제대로 마무리할 시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뭐 급할 거 있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우리는 적당히 만나서 적당히 저녁을 함께 먹었고 가끔은 서로의 집에 가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를 꽤 많이 좋아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이렇게 미지근하게 지내다가 어영부영 같이 살게 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전화해봐야 좋은 꼴은 못 볼 테고 아마 저녁때쯤 되어서 전화하면 적당히 마음을 추스른 상태일 것이다. 분노도 촉매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타오를 수 있는 법이니까.
그것은 내 경우에도 그랬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지난밤 일을 후회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그런 폭언을 퍼부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때려본 적도, 앙심을 품고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한 적도 없었을뿐더러 그런 짓을 할 만한 성격도 못 됐다. 더 의아한 것은 실제로 내뱉은 것만큼 조현수의 문학에 대한 이해나 애정이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며 그가 보여준 평론도 미숙한 면이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해서 은근히 다음 글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후에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그 일을 떠올리자 기분이 침울해졌고 조현수에게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출판사에서 혹시 메일을 보냈을까 해서 확인해보았지만 새로 온 메일은 없었다. 물론 전화를 한 이유는 볼 것도 없이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진행상황을 확인하려고 한 것일 터였다. 두번이나 건 것을 보면 팀장이 아침부터 한마디 한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 바뀐 담당자는 왠지 미덥지 못한 면이 있었다. 뭘 부탁해도 한번에 처리하는 법이 없고 메일을 보낼 때 종종 첨부파일을 빼먹었으며 이모티콘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초짜인 게 분명했다(베테랑 편집자는 메일에 절대 이모티콘을 쓰지 않는다). 원고는 얼마나 잘 봐줄지 두고 봐야 할 일이겠지만 지금까지 하는 것으로만 보면 그것도 시원찮을 것이 뻔했다. 나는 필요하면 연락하겠지 싶어 출판사에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커피를 다 마시니 정신이 조금 들어서 책상에 앉아 원고 파일을 열어보았다. 요즘 학기말이라 레포트 채점이다 뭐다 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통에 번역에는 거의 손을 못 대고 있었다. 남은 분량을 가늠해보니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면 사나흘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번역하고 있는 것은 로뻬 데 베가의 『베들레헴의 목동들』이라는 소설이었는데 중세 스페인어로 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별로 까다로울 것이 없는 작품이었다. 나는 구텐베르크 사이트에서 현대 스페인어판 텍스트를 구했고 그것을 참고하면서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이미 국내에 여러차례 번역된 바 있는 것이었는데 나는 기출간 판본들을 모두 찾아 읽어본 뒤 하나같이 쓰레기 같은 번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80년대말에 번역된 한 판본은 의외로 괜찮은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구석으로 치워버리는 대신 옆에 두고 내가 번역한 문장들과 비교했다. 그 무엇에서도 미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고 이러한 작업방식 때문에 내 번역이 더욱 완벽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간 형편없게나마 작업을 해준 다른 번역가들에게 차라리 감사할 일이었다. 어떤 번역가는 작업을 할 때 다른 판본은 전혀 확인하지 않는 것이 정도(正道)이며 그렇게 해야 자신만의 고유한 번역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황당한 생각이다. 번역에 번역자의 고유한 무언가가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번역의 본질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었다. 오로지 작품 그 자체만이 스스로 고유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그것이 어떤 언어로 되어 있든 각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 각 문장이 만들어내는 의미는 하나일 수밖에 없음이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니 번역에서 가장 중요하며 사실상 유일하게 중요한 요소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성’이고 그것을 위해서 기존 판본을 참고하는 행위는 필수적이라 이 말이다. 어떤 이는 번역의 다양성을 옹호하면서 뽈 리꾀르가 『번역에 대하여』에서 쓴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늘 가능하다”라는 말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 문장에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다른 방식’이 아니라 ‘같은 것’으로, 이 말은 사실상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말하는 ‘언어는 달라도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의 본질은 동일하다’라는 말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각기 다른 언어라 하더라도 의미를 지닌 최소단위의 단어는 하나의 방향성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마치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며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결국은 정가운데의 한점을 향해 뻗은 거미줄처럼 서로 다른 세계의 언어가 하나의 의미를 지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선의 방향을 올바르게 지정하는 것이 번역자의 소임일 뿐 고유니 뭐니 하는 소리는 완전히 헛소리라는 말이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해럴드 블룸을 위시한 혹자들이 ‘번역은 불가능하다’느니 ‘모든 번역은 오역이다’느니 하고 말하는 것과 달리 사실 번역은 가능하며 심지어 언제나 가능하다.
지금까지 말한 그릇된 인식은 학계에도 만연한데 이를테면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페인어를 완벽히 이해해야 하고(이건 어느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스페인에서 학위를 받아야 하며(여기서부터 좀 이상해진다) 스페인어로 말을 하고 스페인 음식을 먹고 스페인어로 논문을 쓰고 그것을 스페인의 학회지에 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보르헤스 같은 작가를 완전히 읽어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번역된 글이 아닌 그의 영혼의 손때(표현이 뭐 이따윈가 싶지만)가 그대로 남아 있는 원어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 보르헤스의 미학, 의미, 가치 혹은 그게 뭐가 됐든 아무튼 그런 걸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잠꼬대 같은 소리에 불과한데 예를 들어 ‘Vamos a casa’라는 스페인어 문장을 ‘집에 가자’라는 우리말로 바꾸었다고 해서 어떤 미학적이나 의미론적인 손실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지 의문스럽다. 문장이 길어지면 좀더 다양한 선택지가 나타나겠지만 원문이 가리키는 의미와 어감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장은 반드시 존재하며 그것을 찾아내는 게 번역가의 진정하고 유일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잘못된 인식, 원어 근본주의에 거의 신앙과도 같은 믿음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강화하고 퍼뜨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공상영 교수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기본도 안된 햇병아리 오영한을 그가 단지 바르셀로나 국립학교에서 박사를 따고 구멍가게보다 못한 스페인의 이류 학회지에 소논문을 실었다는 이유만으로 교수 자리에 앉힌 장본인이다. 내가 학부생일 때만 해도 석사논문은 물론 박사논문까지 우리말로 쓰는 것이 장려되었는데 요즘에는 박사논문은 물론 석사논문까지 스페인어로 쓰기를 종용하니 문학의 심연을 탐험한다는 우리 학과의 설립 목표를 생각하면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모국어가 아닌 바에야 숙련된 번역가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정확하게’ 번역한 텍스트를 곧바로 수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공교수가 단지 오영한이 (심히 전략적으로) 스페인어로 논문을 써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를 높게 산 것은 머저리 같은 판단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결론적으로 연구자가 갖춰야 할 소양이 무엇인가 숙고해보면 당연하게도 문학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 점에 있어서라면 내가 보기에 오영한은 조현수보다도 못할 정도로 빈약한 수준이었다.
조현수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학생처에 연락해보니 내가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문자에 어느정도 사과의 메시지를 집어넣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학교 근처에 있다면 잠깐 만나고 싶다는 의사만 전했다. 이십분쯤 후에 답장이 왔는데(내게 우호적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지금 도서관 대출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밤 열시나 되어야 끝난다고 해서 나는 잠깐 들러 사과만 하고 돌아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도서관에 가기 전 간단히 끼니나 해결하겠다고 들른 학교 앞 일식당에서 내가 누굴 마주쳤느냐면 바로 공교수였다. 그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오영한이었다. 혹시나 마주칠까 하는 마음에(내가 왜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생식당을 피해 학교 밖에서 밥을 먹으려 했던 것인데 거기서 딱 맞닥뜨려버린 것이다. 나는 못 본 척 지나가고 싶었지만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문에 달린 종이 유난히 큰 소리를 내며 울렸고 오영한과 공교수가 동시에 내 쪽을 쳐다보았기 때문에 꼼짝없이 인사말 정도는 나눠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공교수는 이 우연한 만남을 조금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재미있어 하다가(기껏해야 학교 정문에서 오십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마침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들어보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알 수 있었다. 오영한이 내가 어젯밤 조현수에게 한 짓을 떠벌린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왜 그를 마주치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세상에서 소문이 가장 빠른 곳이 있다면 바로 학교일 것이다. 공교수는 앉아서 같이 먹자고 했는데 나는 합석하고 싶은 마음이 고양이 오줌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급히 가봐야 할 곳이 있다고 둘러댔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갑자기 급한 일이 있다고 돌아나가는 것만큼 황당한 소리도 또 없겠지만 공교수는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갑자기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번역은 잠시 미루고 논문에 집중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자기도 나를 추천하고 싶지만 연구 실적이 부족해서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실적이란 이류 스페인 학회지에 하나마나 한 소리를 길게 늘려놓은 논문을 싣는 것이었다. 나는 설혹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가 나를 추천할 마음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 예 알겠습니다 그래야 하고 말고요 하고 적당히 대답했다. 그는 내게 한 이삼주라도 일을 내려놓고 푹 쉬다보면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내 기분이 어떤지 자기가 도대체 어떻게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만 나는 다시 예 예 알겠습니다 그래야 하고 말고요 하고는 적당히 인사말을 남긴 뒤 얼른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다음주에 오교수의 임용 축하연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얘기였다.
“물론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한이가 교수가 되었다는데 당연히 가야죠.”
하지만 당연히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아직 정식으로 발표도 안 났는데 벌써부터 오교수라니 잘들 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영한이 스페인에 간다고 했을 때 무사히 학위를 마치고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이년 정도 버틴 다음 엉터리 같은 핑계를 대면서 돌아와 유학파 행세나 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오영한을 처음 봤을 때, 그러니까 내가 학부 삼학년생이고 그놈이 신입생이었을 때 그놈은 갓 서울로 올라온 시골뜨기였는데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모범생으로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뭘 해도 서툴러서 책상 하나도 제대로 옮길 줄을 몰랐다. 거기다 공부만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은 없었는지 문학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오영한은 입학했을 당시 보르헤스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지금은 뭐 하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는 내 동기 한 놈이 나한테 야 얘 보르헤스도 모른대,라고 해서 나는 진심으로 보르헤스의 작품세계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그런 작가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는 뜻이었다. 마르께스는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오영한에게 보르헤스를 읽어보라고,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마르께스를 읽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던 놈이 방학 때 무슨 짓을 했는지 가을학기부터는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이름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결정적으로 우리의 관계가 이상해져버린 사건이 있었다. 오영한과 내가 교양수업을 같이 들을 때 그에게 레포트인가 기말고사 족보인가를 빌려다 복사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가 가방에 있다고 하길래 얼른 꺼내서 가져가려고 하다가 무언가가 딸려 나와서 보니 필기노트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수십명의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이름과 생몰년, 대표작과 작풍 같은 것이 작은 글씨로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수험생이 정리해놓은 핵심 요약 노트 같았다. 나는 그것을 얼른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왠지 민망한 장면을 봐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그것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영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는 내가 그걸 봤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다음부터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어색해졌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이름을 읊어대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갑자기 머뭇거리거나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와 거의 얘기도 하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두었고 그가 유학 가기 전에 있었던 환송회에는 아예 나를 부르지도 않았다.
오영한을 다시 본 건 내가 박사과정을 마치고 모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나는 그가 스페인에서 박사를 무사히 마치고 왔으며 나와 같이 강의를 하게 되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어렴풋이 그가 더이상 문학과는 상관없는 삶, 그러니까 어디 증권회사나 전공을 살린다면 남아메리카에서 목재를 수입하는 무역회사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거의 팔년 만에 만난 오영한은 나를 대하는 게 영 이상했다. 서먹해한다거나 어색해하는 게 아니라 아주 모르는 사람 취급했던 것이다. 처음 내가 반말로 인사를 건넸을 때 그는 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얼굴을 했다. 나는 딱히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는 오영한이 강의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다가 다시 돌아온 뒤로 그와 거의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어서 그의 스페인 문학에 대한 지식이나 애정이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솔직히 박사과정을 졸업한다는 게 얼마나 지난하고 고역스러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그를 인정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가방에서 본 노트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영한에 비하면 차라리 조현수는 명석한 학생이었다. 조금 허세가 있긴 해도 문학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는 진지한 편이었다. 나는 이번 학기에는 그를 보지 못해서 잊고 있었지만 조현수와 이야기하는 것이 꽤 즐거웠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학생 중에서는 물론이고 학교 전체에서 그처럼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없었다. 조현수는 다른 학교에서 학사를 마치고 이 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학부 때는 경영학인가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문학이라는 예술형식 자체에 더 깊이 파고드는 면이 있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회의하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언젠가는 내게 그와 관련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왜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17세기 스페인 문학을 연구하는 이유가 뭘까요? 21세기의 서울에 사는 우리가 베가나 께베도를 연구해서 뭘 어쩌자는 걸까요?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쓴 걸 과연 그들이 관심이나 가질까요? 우끄라이나 사람이 박지원의 소설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하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죠? 내가 그때 그에게 무슨 대답을 해주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것이 바로 문학의 본질이니 뭐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저 의미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은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프란시스꼬 데 께베도의 시에 드러난 탈지성주의적 경향과 그 한계」 같은 제목의 논문을 쓰는 것이 정말로 의미가 있는 일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 비하면 번역은 논란의 여지없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특정 시대, 특정 언어권에서 가치있는 작품을 다른 시대, 다른 언어권에 존재하게 해 그것이 인류 보편의 가치를 획득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번역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학을 수용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오로지 번역 작업밖에 없고 나머지는 있으나 마나 한 변죽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조현수가 제기한 의문은 꽤나 타당했고 거의 정곡을 찌른 셈이었다. 여기까지 이르자 나는 조현수와 나의 우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지난밤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이 더욱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내가 우려하는 만큼 화가 난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을 수도 있었다. 평소 우리의 대화는 늘 어느정도 신랄한 면이 있었고 지난밤에도 내가 술에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사실 지난밤 일이 모두 명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지 보통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어조였을 수도 있었다. 문자메시지의 답장이 조금 늦은 것도 서가 정리를 하다가 그랬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놓였고 어느정도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조현수는 보이지 않았다. 대출대에는 조현수 대신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학생 하나만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내가 들어오자 스마트폰 화면을 서둘러 끄고는(아마도 게임 같은 걸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여기서 일하는 남학생은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가 두시간 전에 나갔다고 했다. 문자를 몇번 주고받고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더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가버렸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도 약속이 있었는데 조현수 때문에 못 가게 되었다면서 불평을 했다. 나는 그녀의 불평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두시간 전이면 내가 문자메시지를 보낸 시각이었다. 내 연락을 받고 어딘가로 달아나버린 것이다.
나는 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그녀의 집 앞에 있는 까페에서 만났다. 화가 나 있을 것이라는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소파에 대해서는 잊어버린 듯했다. 그녀는 새로운 소식이 있다고 했다. 나와 관련된 거야? 하고 묻자 그녀는 그럴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소식이 나와는 티끌만큼도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자신이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고 했다. 교양과목이고 꽤 먼 곳에 있는 학교여서 차비가 강의료보다 더 들 테지만 어쨌든 경력에는 도움이 될 테니까,라고 그녀는 말했다. 내가 봐도 나쁜 조건은 아닌 것 같아서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몇년 동안 박사논문을 쓰지 못해 고생하고 있었고 실제로 돈을 벌지 못해서라기보다 자신이 서른이 넘도록 경제적으로 무언가 생산해낼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수업 하나 맡아봤자 버는 돈이라고는 뻔하지만 정신적으로나마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오영한이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놀라지 않았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식이었다. 그녀는 오영한이 스페인에서 박사를 따고 논문을 Los Papeles(그 이류 학회지의 이름이다)에 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그가 어떤 일을 하든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납득한다고 했다. 나라도 ‘그런 걸’ 본 사람은 잊고 살고 싶겠어. 오히려 자기보다 그 사람이 더 불편한 상황일걸? 나는 도대체 자기가 왜 그 사람을 이렇게 신경쓰는지 모르겠어.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오영한을 신경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이 우스울 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정말로 지긋지긋해졌고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도 모두 끝났고 성적처리 같은 자잘한 일들만 정리하면 학교에 더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에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지금 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아.”
“뭘 생각해? 이미 하기로 했는데.”
“그거 말고. 우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뜻이야.”
그녀는 잠시 혼란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아니, 왜 얘기가 갑자기 거기로 점프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지금 헤어지자는 소리야?”
“그게 아니라 생각을 해보자는 얘기야. 이번에는 조금 오래.”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방을 챙겨서 까페를 나갔다. 나는 십분쯤 앉아 있다가 계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문자메시지가 왔다. 거기에는 ‘생각해봤어.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고 써 있었다.
나는 그라나다에 가는 일을 앞당기기로 했다. 그래서 그후로 사흘 동안 번역 일에만 매달렸다. 『베들레헴의 목동들』을 끝내야 뭐가 되든 될 것 같았다. 그사이에 조현수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내가 은영에게 연락하지도 않았다. 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베들레헴의 목동들』만 마치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번역 작업도 평소보다 즐겁게 느껴졌고 새삼스럽지만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나는 오영한에 대해서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와는 이제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애초에 관계가 있었던 적도 없었다.
출판사에서 전화가 온 건 내가 마침 번역을 다 마쳤을 때였다. 받아보니 그 신입 편집자가 아니라 편집부장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 올 일이 있는데 차나 한잔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원고를 끝내기도 한데다가 편집부장이 전화한 걸 보면 예전에 그 신입 편집자의 전임자가 내게 얘기했던 로뻬 데 베가 희곡선집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아 흔쾌히 나가겠다고 했다.
만나기로 한 까페에 도착하니 편집부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와 서른이나 되었을까 싶은 남자가 하나 앉아 있었다. 메일만 주고받아서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어린 쪽은 그 신입 편집자가 틀림없었다. 편집부장은 처음에는 특별한 용건이 없는 것처럼 생각나는 대로 아무 얘기나 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날씨 얘기라든가 최근 출판계 동향이라든가 하는 것들. 나는 그가 희곡선집 얘기를 꺼내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한참 동안 사설만 늘어놓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그러다가 책을 한권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로뻬 데 베가의 『과수원지기의 개』였는데 꽤 오래전에 내가 번역한 책이었다. 그는 조금 망설이는 듯한 동작으로 그 책을 내 쪽으로 밀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책을 들어 열어보았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았더니 형광펜으로 줄이 가득 그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줄을 많이 쳤는지 노란 형광빛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책장을 넘겨보니 페이지마다 평균 절반이 넘는 부분에 줄이 쳐져 있었다. 편집부장은 곤혹스럽다는 얼굴로 회사에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과 내가 번역한 판본을 대조해서 이같은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밑줄이 그어진 부분은 다른 출판사에서 이미 나와 있던 번역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부분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이 내가 번역한 판본은 곧바로 절판시켰으며 그동안 애써주신 것도 있으니 손해배상 같은 것을 요청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나는 화가 났다. 눈에 띄게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초짜 편집자가 내 번역과 다른 판본을 대조했다는 장본인인 것 같았다. 도대체 그놈은 뭘 안다고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편집부장까지 이렇게 나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편집자란 인간들이 번역이라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을까. 형광펜으로 그어진 문장들은 정확했고 더이상 손볼 필요가 없었다. 그 문장들을 바꾼다면 그건 원작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변질시키는 일이 될 뿐이었다. 그 이미 나온 판본의 오백 문장은 그런 문장들이었다. 나머지 삼백 문장은 명백히 틀린 번역이었다. 나는 그것을 완벽한 문장으로 대체했고 그래서 내가 번역한 『과수원지기의 개』는 완벽한 판본이 된 셈이었다. 완벽한 문장들까지 단지 이미 다른 책으로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틀린 문장으로 바꿨어야 했을까? 웃기는 소리였다.
“그 문장들은 완벽했어요. 수정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편집부장은 계속 죄송하다고만 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로뻬 데 베가의 희곡선집 번역 일은 물 건너갔다는 사실뿐이었다.
나는 노랗게 빛나는 『과수원지기의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 걸었더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찬물로 샤워를 한 뒤 커피를 내리려던 차에 원두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인터넷으로 새 원두를 주문했다. 그러고는 조교실에 전화를 걸어 오영한의 임용 축하연이 언제인지 물어보았다. 다음주 수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