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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나의 집은 어디인가

 

 

전성이 全城二

창비 계간지출판부 편집자 fromjsi@chang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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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의 이름이 뜬 전화가 걸려온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계약만료를 앞둔 세입자라면 누구나 하는 경험일 터. 입안에 든 밥알마저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용건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반()전세로 돌리겠습니다.” 말이 좋아 ‘전세’가 뒤에 붙었지 보증금만 시세보다 조금 줄었을 뿐 사실상 월세와 다를 바 없는 조건이었다. 그동안 전세가를 얼마나 올려달라 할까 마음을 졸이며, 혹시 ‘어차피 은행이자랄 게 이제 거기서 거기니 그대로 두겠다’고 아량을 베풀진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던 것은 결국 허사였다.

물론 주택임대차계약의 형태가 전세에서 월세로 많이 전환되고 있다는 소식을 귀가 따갑게 듣고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은 경기북부의 파주. 현실에 둔감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상당한 ‘변방’으로 느끼는 이곳까지 이런 ‘트렌디’한 상황이 닥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월세가 전체 임대차 거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와 동시에 전세도 월세도 아닌 반전세라는, 어찌 보면 기이한 이름의 임대방식이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전세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음에도 저금리의 장기화로 인해 실질적인 임대소득을 원하는 집주인들이 전세금 상승분을 월세로 돌린다는 것이다.1)

2년 전,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할 때만 해도 상황은 좀 달랐다. 부동산시장이 위축되고 전세가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데도 전세공급이 달리는 현실은 그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쨌든 피할 곳은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직장이 위치한 파주출판단지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쉽게 탈 수 있는 서울 합정동 인근지역을 알아보았으나 부근에서 우리의 예산으로 입주할 수 있는 집이란 신혼의 달콤한 꿈을 대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곳들뿐이었다. 누가 봐도 오래 묵은 퀴퀴한 다세대주택이라거나, 사실상의 원룸이라거나 하는 등등. 처음으로 독립하는 설렘과 신혼생활을 생각하면 산꼭대기여도 좋고 방 한칸만 있어도 좋다는 마음이었지만 어쩐지 쉽사리 이렇게 정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욕심이든 과한 허세든 간에. 그리하여 우리는 일산의 연식이 적지 않은 소형 아파트 몇군데를 거쳐 파주에 당도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신세계였다. 같은 금액으로 무려 30평대의 아파트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어진 지 십년이 넘은 단지긴 했지만 번듯한 모습에 자연스레 마음이 동했다. 관리비를 아낄 수 있는 20평대가 더 인기가 많아 대동소이한 가격에도 물량이 없다는 말에는 살짝 아쉬움이 남았지만 결국 계약을 하면서, 직장 근처라 통근 부담이 없는 상황에 대한 뿌듯함과, 중뿔나지만 고생하는 서울시민에 대한 안쓰러움이 함께 밀려왔다. 물론 이마저도 ‘빚잔치’의 결과로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나 싶었고 살기 좋은 집을 구한 것으로 생활에 의욕이 생겼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답답한 마음이 커져갔다. 열심히 대출금을 갚아나갔지만, 정든 이 집이든 혹은 비슷한 다른 집이든 새로 계약을 해서 살자면 지난 2년 동안 갚은 빚만큼, 심지어 그 이상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내가 사는 아파트의 전세가는 2년 전보다 30퍼센트 이상 뛰었다). 그게 아니라면 집주인의 지금 요구대로 ‘반전세’로 전환해 대출이자를 훌쩍 넘는 월세를 내면서 살든지.

서민층이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을 알아보기도 했다. 보증금과 월세 모두 부담이 적고 30년 이상 계속 지낼 수 있는 안정성도 있지만 소득이 도시근로자 월평균의 70% 이하여야 한다는 지원조건에 해당이 안되므로 그림의 떡이다. 큰 빚이 있고, 정상적으로는 오랫동안 내 집 마련은커녕 매달 이자부담에, 오르는 전세금을 따라잡기도 버거운 것이 현실인데 서민이 아니라니 어쩐지 억울한 심정이다. 아이라도 생기면 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실, 이삼십대를 두고 흔히 ‘3포 세대’(경제적 어려움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고 하는 상황에서 결혼까지 했으니 나는 그나마 ‘성공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출산과 더불어 안정적인 결혼생활의 필수조건인 주거문제도 갈수록 고민이니, 말장난 같지만 ‘1.5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전국의 수많은 ‘3포’들, 살인적인 등록금으로 대학진학까지 포기하는 이들, 그리고 힘들지만 내색하기 어려운 나 같은 애매한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그들 모두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이나 응원하는 듯한 이 사회적 분위기가 새삼스레 답답하게 느껴진다. 하기야 정부부터 사상 최악의 참사 앞에서조차 아무것도 하지 않는 터에 ‘고작’ 이런 문제를 떠들어봐야 뭐하겠는가.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쉽사리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아예 지금보다 더 엄청난 빚을 져서 집을 사버리면 어떨까 하는 역발상을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하우스푸어’가 되는 건가 아찔했지만, 그걸 요구하는 사회라면, 그래 까짓 거 생각이나 해보자 싶었다.

지난 71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사에서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한도를 완화하겠다고 밝혔고 그로부터 일주일도 되지 않아 81일자로 정식 시행하겠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요는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해 경기부양을 도모하겠다는 것인데 애초에 “각각 2002년, 2005년에 집값 폭등을 막겠다고 도입한” 이 제도가 이제는 반대로 한도율의 숫자를 바꿈으로써 주택가격을 올릴 수 있는 제도로 활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주택대출을 통해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미래 소득을 모두 끌어들이겠다는” 시도와 다를 바가 없다.2)

새집을 구하기 위해 다녀본 부동산들은 역시나 한결같이 이렇게 입을 뗐다. “뉴스는 보셨죠?” “LTV를 아십니까?”…… 말인즉슨 매매를 고려하는 사람에겐 집값이 앞으로 계속 오를 테니 빨리 사라고 부추기고, 전세를 찾는 이들에겐 합리적인 가격으로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전제하에 월세나 매매를 우선 권유하는 식이었다.

20대 직장인의 평균 수입이 연 2,300만원이고 34세 미만 가구주의 80%가 무주택자인 상황이다.3) 주택보유에 있어서도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여기에 청년세대의 문제까지 결부되면 여간 심각한 사안이 아닐진대 이에 대해 정부는 당장 대출규모를 확대해 매매수요를 자극하는 방안을 택했다. 최부총리는 “시장 정상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고 그동안 ‘서민보호를 위해 시행했던 정책의 효과가 오히려 서민에게 피해로 나타났다’며 여러모로 새 정책의 효과를 자신한다고 밝혔다.4) 정말 그런 것이었단 말인가. 이 선택은 향후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이 와중에 저 ‘정상화’란 말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많은 것이 의문인 채로 나는 오늘도 부동산을 그저 전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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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세 시대’ 가속화: ‘미친 전셋값’ 못 따라가 半전세 급증...월세 40% 넘었다」, 한국경제신문 2014.7.23.

2) 임동근 「부동산정책, 없는 이들의 빚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정책」, 『창비주간논평』2014.7.23.(http://magazine.changbi.com/?p=5048&cat=2)

3) 「정부 집값 띄우기…“88만원 세대, 내 집 꿈이 사라졌다”」, 노컷뉴스 2014.7.24.

4) 「최경환 “LTV·DTI 규제 완화 효과 확신”」,K BS뉴스 2014.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