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2014년 6월 12일 열린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에서는 김수이(문학평론가) 손택수(시인) 은희경(소설가) 한기욱(문학평론가)을 제32회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신동엽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3년간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하며, 시·소설·평론 부문에서 2인에게 수상한다. 심사위원회는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이 올린 아래 11권의 작품을 놓고 심사를 진행했다.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김성규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김지녀 『양들의 사회학』, 박형권 『전당포는 항구다』, 서대경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 유병록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이상 시), 기준영 『연애소설』, 박솔뫼 『그럼 무얼 부르지』, 전수찬 『수치』, 정소현 『실수하는 인간』, 최진영 『팽이』(이상 소설)
심사위원들은 7월 17일 모임에서 이상의 11권을 검토하면서 김성규 시집, 박형권 시집, 서대경 시집, 유병록 시집, 박솔뫼 소설집, 전수찬 장편, 최진영 소설집으로 대상을 압축하고 장시간 토론을 펼쳤다. 그 결과 세계의 비참을 알레고리적 사유로 날카롭게 환기시키는 김성규 시집과 청년세대의 고뇌를 진솔한 언어로 그려내며 폭넓은 공감대를 획득한 최진영 소설집을 제32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심사평
김수이(金壽伊) 문학평론가
김지녀의 『양들의 사회학』은 재기와 활기가 반짝이는 시집이다. 작위성을 자연스러움으로 바꾸려는 노력, 인간과 삶의 내부를 관통하고 재구성하는 ‘교묘한’ 시선들이 계속 쌓여가기를 기대한다. 유병록의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의 장점은 감각적인 언어와 날카로운 세계인식의 양날이 잘 벼려져 있는 점에 있다. 그 칼로 일상과 존재의 통점을 찌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다만 어떤 부분들은 아직 모호하고 현란하다. 박형권의 『전당포는 항구다』는 오래된 것, 낡은 것들에 바치는 헌사이자 애사이다. 처연하고도 따뜻한 정서의 세계를 노래하는 미학적 재능이 탁월하지만, 익숙한 주제를 익숙한 방식으로 다루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서대경의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는 시적인 에너지와 패기가 넘치며, 질서의 배후와 세계의 심연을 단번에 파고드는 통찰력이 뛰어나다. 매력과 위력을 동시에 지닌 시집이다. ‘과잉’의 스타일 혹은 전략을 화려하게 구사하는 가운데 적절히 제어하는 이중의 방향성을 좀더 강화하면 좋을 듯하다. 김성규의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는 오늘의 세계에서 시와 시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자본의 제국에서의 비루한 삶을 ‘수거, 재활용’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에서 확고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알레고리와 현실의 밀착력이 다소 약하지만, 이는 문제의식의 스케일과 새로운 시적체제 구상에 따른 하나의 과정적 경과로 볼 수 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시가 인간과 세계를 구원해야 하며 구원할 수 있다는, 저 유구하고 고독하며 (불)가능한 임무를 자임하는 김성규에게, 불굴(不屈)의 시인 신동엽에 기대어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낸다.
박솔뫼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는 기존의 소설보다 ‘(훨씬) 덜 쓰는’ 형태의 무심함 내지 의연함으로 기묘한 매혹을 발산한다. 소설에 대해 어떤 강박도 갖지 않고 쓰려는 자세는 그 자체로 사실 강박적이지만, 이 자세가 우리 소설의 ‘다른’ 출구를 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출구가 더 선명해질, 우리 소설의 더 풍요로운 시간을 기대한다. 전수찬 장편 『수치』는 탈북자들의 생활상을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이 진지함이 서사와 구성의 내적 필연성으로 긴장감있게 흡수되지는 못하고 있다. 최진영은 다양한 주제를 다각도로 실험하면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팽이』에 실린 단편들은 80년대생 세대의 결여와 절망을 진솔한 언어로 그려내면서 다른 세대 및 세계와의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수록작 간의 완성도의 편차가 아쉬운 점은 있지만, 이야기의 흡인력, 문체의 속도감, 삶에 대한 혜안 등에 힘입어 한표를 보태었다.
손택수(孫宅洙) 시인
연속이냐 단절이냐가 아니다. 신동엽 문학에서 자기집중과 이탈은 이분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제32회 신동엽문학상 심사는 전통의 단절과 단절의 전통 사이에서 어떻게 연속하면서 단절할 것인가를 고구(考究)하는 일군의 흐름들과의 반가운 만남의 자리였다.
먼저, 최종심에서 거론된 시인은 김성규 박형권 서대경 유병록이었다. 네분 모두 수상자로서 손색이 없었으나 박형권과 서대경의 경우 기시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유병록은 세련된 감각이 구체적 삶과 좀더 긴밀하게 삼투하는 작업이 과제로 요청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김성규 시집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알레고리적 사유가 세계의 비참을 한층 예각적으로 환기시키는 방법적 자각의 산물임을 공감하면서도 그 작위성이 여전히 문제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사물을 들여다보는 투명하면서도 기이하게 일그러져 있는 그의 렌즈가 독자적인 영토를 개척해갈 것이라는 기대를 꺾기에는 그의 흠결이 오히려 미래를 자극하는 면마저 있었다. 더러 어떤 흠은 완결성에 대한 성마른 호출을 유보시키면서 그 자체로 눈부신 실패의 기록이 된다. 그의 알레고리가 안으로 더 깊어져서 재현 불가능한 세계를 더욱 강렬한 것으로 경험하는 장관을 연출하리라는 기대로 그의 수상에 선뜻 동의할 수 있었다.
소설부문에서는 박솔뫼 전수찬 최진영이 최종심에 올랐다. 박솔뫼의 소설은 기존의 소설을 추문화시키는 도전적인 방법론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자체가 새로움이 탄생하는 자리일 수도 있겠으나 공감의 진폭이 마냥 넓지만은 않았다. 그 대척점에 있는 전수찬의 소설은 그 치밀함과 진지함을 높이 샀지만 오히려 그것이 작품의 공간에 경화를 일으키면서 예측 가능한 구도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피할 수 없었다. 박솔뫼와 전수찬의 사이에 있는 최진영의 소설은 무엇보다 오랜만에 맛보는 서사적 긴장감이 있었다. 성공한 작품은 성공한 대로 실패한 작품은 실패한 대로 소설공간 속으로 독자를 흡입하는 강렬한 에너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작가는 새로움이 차이의 존재론에 기댄 개인의 방언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구성물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와, 이 작가의 심층을 복류천처럼 흘러가는 집단적 저류에 깊은 신뢰를 보내며 수상을 거듭 축하한다.
은희경(殷熙耕) 소설가
알다시피 문학상이란 가장 잘 쓴 작품에 주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상의 성격에도 걸맞은 작품이어야 한다. 이번 심사는 그 두가지의 간극이 크지 않아 비교적 순조로웠다고 생각한다.
최종심에 네권의 시집이 올라왔다. 박형권의 『전당포는 항구다』는 뻔한 소재로 예상 가능한 직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 한국어가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부려지며 사유와 일체감을 이루어 유장하면서도 산뜻하다. 그러나 세계가 너무 결정돼버린 듯해 답답함이 느껴졌다. 유병록의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는 우리가 시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을 세련되게 보여준다. 서대경의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가 보여주는 언어적·시각적인 해체와 확장의 세계 또한 매력적이었다. 수상작은 김성규의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이다. 자신이 불러낸 세계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문제를 겪어내지 않고 애매하게 그려 보이고만 있는 듯한 겉돎이 느껴졌지만, 그것이 이 시인이 부조리한 현실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다른 심사위원들의 견해에 쉽게 동의했다.
각별한 즐거움을 갖고 소설 심사작을 읽었다. 기준영의 『연애소설』이 가진 내성적 파괴력, 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이 담고 있는 은밀한 집념을 포함하여 모두가 흥미롭고 잘 쓴 작품들이었다. 그중 무엇이 수상작이 되어도 좋다는 마음이었다. 박솔뫼의 『그럼 무얼 부르지』에서는 요즘 말로 ‘클래스’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선 세대가 만들어낸 세계를 세련되게 하거나 깊이있게 만드는 게 아니라, 큰 틀을 부술 수 있는 불연속적인 윤리의식과 독특한 미적 감수성을 갖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전수찬의 『수치』는 그 반대지점에 있는 듯하다. 자기가 바라보는 부조리한 풍경을 정공법으로 돌파해가려는 의지가 느껴졌지만 힘을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수상작은 최진영의 『팽이』이다. 세계와의 대결이 담긴 팽팽한 서사와 파괴적인 감수성으로 소설적 스케일을 확보하고 있다. 에너지를 담고 있는 다양한 상상력을 통해 역량과 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문학은 역시 재미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일, 그것에 매달리는 재미야말로 창작자의 권능이자 독자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수상작들의, 삶을 뒤집어보는 전복성에 특히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것이 바로 중요한 쓸모가 탄생하는 지점이기도 할 테니까.
한기욱(韓基煜) 문학평론가
올해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을 대하면서 신동엽에게 문학이란 무엇이었는지 되새기게 된다. 다른 세상을 열망했으되 그를 위한 대의라도 껍데기는 배격했고, 공동체를 지향했으되 보통 사람 하나하나의 충일하게 살아 있음을 무엇보다 중히 여긴 그의 문학정신이 여느 때보다 절실해진 요즘이다.
시부문에서 서대경의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는 장자의 호접몽과 샤갈의 초현실주의를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언어와 신기한 발상으로 눈길을 끌지만 내면의 불확실성 지대에서 펼쳐지는 언어와 사유의 파노라마에 너무 빠져 있다는 느낌도 든다. 유병록의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는 사물을 육화된 감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재능이 돋보이나, 「두부」처럼 빼어난 감각을 선보이는 시편이 있는가 하면 설익은 경구와 관념에 기우는 시편도 적지 않다. 박형권의 『전당포는 항구다』는 이 양극화시대를 맨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겨운 삶을 거침없이 읊는다. 전통적인 어법과 시어를 구사하면서도 묘하게 언어적 활력이 살아 있는 것은 ‘민중시’라 불리는 작품들이 빠지기 쉬운 상투성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우리의 삶과 세계, 지각과 언어에 대한 발본적인 의문이나 탐구심이 못내 아쉽다. 김성규의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의 시편들은 민중적 정서를 함축하면서도 그 핵심에는 늘 의문이 놓여 있다. 시인은 자신이 체험하는 세계에서 납득되지 않는 기제와 미지의 영역을 알레고리의 방식으로 끌어들인다. 「망명자」 「심문관」 「정원사」로 이어지는 삼부작에서 가장 눈여겨볼 구절은 “우리는하하한번도저저저전지되지않은으으의심을수숨긴자자자들입지요”(「정원사」)라고 더듬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런 알레고리적인 발상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의 시의 중심축인 전통적 서정의 세계, 가난과 재난의 신산함이나 가족과 고향에 대한 애틋함의 세계 너머를 형상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소설부문의 최종심에 오른 작품도 모두 만만치 않았다. 전수찬 장편 『수치』는 이른바 ‘탈북자’들의 삶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데 공을 들이기보다 그들이 남한에서 꾸려가는 삶의 의미를 존재론적으로 사유하면서 윤리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뜻깊은 작품이다. 하지만 작가가 부여하고자 하는 윤리가 너무 승하여 서사적 활력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박솔뫼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는 새로운 문학세대의 낯선 어법과 독특한 감수성을 선보인다. 신예작가지만 이미 자기 고유의 문체를 획득한데다 기존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나 역사적 사건을 대하는 사유의 특이한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재현/의식의 가능과 불가능을 가르는 분할선이 과도하게 불가능 쪽으로 설정됨으로써 그간 소설문학이 성취한 사회적 지평, 즉 소설이 대중과 공유하는 영역이 왜소해져버린 느낌이다. 최진영의 『팽이』는 대체로 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돈가방」 「남편」 같은 소설은 우리 시대 대중의 공통감각을 바탕으로 일상적 현실의 작동방식을 그 속에 내장된 섬뜩한 어둠까지 기막히게 잡아채는 언어적 재능을 보여준다. 이런 작품들을 대하면 소설의 활력은 시대의 문제를 관통하는 이야기와 인물들의 살아 있는 말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팽이』에는 의식과 재현의 영역을 넘어서는 다양한 서사적 실험을 시도하는 작품도 여럿 있지만 그리 주목할 만한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실험은 세계와 언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대하려는 작가의 예술적 분투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될 필요가 있고, 더 치열하게 수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사위원들과의 토론을 거친 뒤, 김성규의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와 최진영의 『팽이』를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 수상자 두분께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수상소감
물결치는 보리밭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김성규 金聖珪
1977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 시작. 제4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가 있음.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
문명의 빌딩 위로 눈이 내리고 인간은 쫓기듯 도시를 떠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우리를 도시에서 밀어낼 때 눈을 들어 사람들은 하늘을 볼 것입니다. 원망과 기대의 눈빛으로 본 하늘, 평온하고 무서운 눈동자로 우리를 보고 있을 하늘. 그날이 오기까지 인간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늘 위태로이 쫓기는 세대, 바로 눈앞의 것을 움켜쥐려 하지만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에 홀려 달려가는 세대가 바로 우리입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사무실에서 서둘러 전화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받고 싶은 상이었지만 수상 소식을 듣자 처음 햇빛을 보았을 때의 눈부심과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동굴 같은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보았습니다. 어둠은 아늑하고 따듯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처음 이 세상에 났을 때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버드나무 가지와 대지에 뿌리내린 인간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흘러가는 강물, 뭉쳤다 흩어지는 구름, 흙바닥에 떨어진 낱알들, 모든 것이 호기심이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부터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가난하고 지겨운 농촌을 떠나 세상 속으로 나오고 싶었습니다. 신동엽 선생님의 「종로5가」에 나오는 소년처럼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충청도 산골짝에서 “기껏해야 버스길 삼백리 서울로” 왔습니다.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 물결이 / 뒹굴고 있었”지만 저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며 도시빈민으로의 전락을 거듭해왔습니다. 가난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하늘에 / 흰 구름을 보고서 /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 고향을 생각”(「고향」)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체념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희생했던 누나들에게 미안했고 그 빚을 갚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을 탓했고 모순덩어리의 세계를 만든 하늘을 보며 눈을 감았습니다.
하늘의 찬란한 빛을 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로 보면 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은행국의 물결 속에서 떠내려가는 자에 불과합니다. 저의 시 또한 허우적거리는 자들, 살고자 하는 자들의 울음소리에 불과합니다. “내일이라도 한강 다리만 끊어놓으면 / 열흘도 못 가 굶어 죽을 / 특별시민”으로, 욕망의 늪에서 “맹목기능자(盲目技能者)”로 저 또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저 고층 건물들을 갈아엎고 그 광활한 땅에 / 보리를 심으면 그 이랑이랑마다 얼마나 싱싱한 / 곡식들이 사시사철 물결칠 것이랴”(「서울」)라는 신동엽 선생님의 시를 떠올립니다.
물결치는 보리밭을 만들기 위해, 그 소박함으로 돌아가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엄청난 폭력과 재앙을 겪어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은 단순히 소박하고 평온한 농촌마을이 아닙니다. 고층건물을 갈아엎는 재앙과 그때 느껴야 하는 고통과 깨달음이 지난 후에 찾아오는 평화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재앙에 재앙을 거듭해야 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 바로 그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온갖 폭력과 약자에 대한 차별은 물결치는 보리밭을 위한 수난의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믿어야만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나날의 연속입니다.
부족하고 철없는 저에게 신동엽문학상이라는 무거운 짐을 얹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신동엽 시인이 품었던 보리 이랑을 가슴속에 새겨넣고 살겠습니다. 도시빈민으로 살고 있는 자식을 자랑으로 알고 계시는 부모님께 죄송합니다. 어둠 속에서 다만 제가 살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당신들의 간절함 때문입니다. 죄스럽지만 다시 어두운 동굴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겠습니다. 한결같이 침울하고 부족한 책을 두권이나 만들어주신 창비에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선한 마음으로 시를 써왔던 선후배와 동료 시인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고통스러웠다면 앞으로 더 아파해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죽음의 세월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마음에 언젠가 보리 이랑이 물결치도록 하루하루 흙 속에 시의 씨앗을, 죄의 씨앗을 심겠습니다.
수상소감
길을 헤매다 멈추고 들은 대답
최진영 崔眞英
1981년 출생.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2010년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소설집 『팽이』가 있음.
반가운 소식을 듣고 잠시 좋아하다 이내 혼자 부끄러워했다. 지지와 격려를 받은 셈인데도 어쩐지 쓸쓸했다. 어떤 글을 쓰고 모아 책에 담았는지 떠올려봤다. 서럽고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사람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쓴 그것들이 과연 나의 이야기였을까. 줄곧 생각해봤지만 그렇다는 답도 아니라는 답도 내리지 못했다. 지금 쓰는 이 문장은 내 마음에 얼마나 가까운가. 그조차 잘 모르겠다. 해가 지날수록 내 마음 말갛게 들여다보기가 힘들다. 자꾸 길을 잃고 헤매다 걷기를 멈추고 케케묵은 문장 뒤에 숨어버린다. 그래도 될까.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는지만 잊지 않는다면, 아직은, 괜찮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기분이다. ‘괜찮다’는 말을. 철저히 이기적으로 이 길 위에 서 있다. 미안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