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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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시인 특집
 

김상혁 金祥赫

1979년 서울 출생. 2009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redinsilver@naver.com

 

 

 

외설

 

 

머리에 검은 비닐을 쓴 키다리가

치마를 올리고 뾰족한 곳들을 보여주었다

불결한 입김으로 우리 얼굴을 닦아주었다

자기의 타액 냄새를 맡으며 그 키다리는 우리가 떨고 있음을

자신이 첫번째 키다리임을 믿었다

점점 태양이 지지 않는다

파래진 아이들이 벽에다 등을 붙이고 차례차례 휘파람을 부는 동안

지겨워진 키다리가

다 자란 아이들 머리에는 검은 비닐을 씌우고

이제는 더럽히고 싶은 것들을 말해주었다

쓸모없이 아름답기만 한 너희들의 머리는 한때

그저 소리를 지르기 위해 바닷가로 갔다

누구도 너무나 많은 기억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

키다리들은 우리를 다시 일렬로 세우고

제 치마 속을 허락하고

더 많은 아이들에게 검은 비닐을 씌워주었다

자기 얼굴이 궁금할 때까지 검은 것을 버리지 마라

가슴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불을 무서워 마라

대낮인데 키다리가 모두의 털을 밀며 구멍마다

굵어지는 제 꿈을 용접봉처럼 꽂아주었다

 

 

너를 내 아이라고 생각한다

 

앞서서 사뿐사뿐 걸어야지 걷다가도 누가 부르면 웃으며 돌아봐야지 끌과 칼을 쥐셔요 나는 작업대 위에 놓아둔 발포석고처럼 순종합니다 꽃다발처럼, 나에게 수많은 머리통을 달아주어서 아름답지만 엄마는 내게 분무기를 겨눕니다 오늘은 또 사랑받는 머리 하나를 떼어 공중으로 던져요 태양의 정정함 때문에 눈을 가립니다 제일 좋은 건 스스로 다리를 자르고 기적을 믿는 나의 근황 아침마다 변기 속으로 털 많은 악몽을 눕니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생활의 배후마다 신이 있다고 말할 겁니다 깜깜함과 약한 것들에 대해 비슷한 기분이 생길 때까지 나는 내 아래를 쓰다듬어요 무엇을 내려다보는 일에서 연애를 배우며, 짐승의 등에다 밑을 닦으며 공포를 엉망으로 만드는 밤 낯선 이가 자꾸만 내 속에서 노크를 하네요

똑똑,

나오셔요?